[독서후기] 20대, 욕망, 자기최면
일병 박준우 2009-08-04 00:41:34, 조회: 358, 추천:0
* 공유할 텍스트 : 오쿠다 히데오, '20살 도쿄'
20대 라는 것.
20살 이라는 것은, 아니 그러니까 20대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어떤 ‘면죄부’ 라고 생각한다. 20대에는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데, 현실적으로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해볼 수는 없다. 시간, 돈 그 외 기타 등등의 사회적, 물리적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하기 위해 어떤 것은 포기해야만 하며,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에 대해 선택해야 한다. 뭐, 사실 10대도 이런 선택을 하고 30대도, 40대도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이런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선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은, 그래도 20대의 선택은 특별하다. 20대에게는 젊음 이라는 면죄부가 있으니까. ‘까짓것 다시하면 되지!’ 이런 젊음을 가진 20대는 주변의 간섭이 심한 10대와 자신 이외에도 생각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은 3,40대와는 다르게 순수하게 나 자신에 의한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20대는 비교적 가장 자유로운 시기라고.
그렇다면 20대인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왔고,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돌아보면 나의 20대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고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살아왔다. 여자가 좋으면 여자를 만나고, 놀고 싶으면 놀고, 떠나고 싶으면 떠났다. 그리고 나면 나는 항상 어떤 허탈함을 마주하게 되었다. ‘아, 이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보면 또다시 새로운 욕망이 내 앞에 나타나서 나를 유혹했고, 그렇게 욕망을 쫓는 생활을 반복했다.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참 민망한 일이지만, 나는 이런 솔직한 20대를 보내고 있는 내가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훌륭한 20대를 보내고 있어!!” 박수갈채라도 보내주고 싶다.
욕망이라……. 나는 이 욕망이란 것이 어떤 갈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시시때때로 갈증을 느낀다. 그리고 갈증을 느낄 때 우리는 그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물을 마신다. 이 갈증은 아마 죽기 전까지 계속될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은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 갈증이 없는 삶은 얼마나 재미없을까?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아……. 그래, 욕망이란 것은 채울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행복하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을 한다. ‘이번에는 나의 욕망이 온전히 채워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하고 멍청하기까지 한 기대이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그런 기대가 바보 같고 쓸모없기만 한 행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일종의 속임수이다. 자기최면이라고나 할까? 물을 맛있게 마실 수 있도록 주문을 거는 것이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자면, “이 물이 나를 갈증으로부터 영원히 해방시킬 것이다.” 라고 믿는 것, 그러니까 적어도 욕망을 헤엄치는 동안은 이것이 나를 완벽하게 해방시켜줄 것이라고 믿는 것이 그 과정을 즐기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후에는 다시 허망함을 마주하게 되겠지만, 이런 맹신(혹은 속아 넘어가 주는 믿음)은 내가 과정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실망하지 않기 위해 기대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적어도 지금은 실컷 기대하고, 경험하고, 반성하는 그런 20대이고 싶다.
욕망에 끝이 있건 없건, 나는 그런 것은 모르겠고, 사실 관심도 없다. 어른이 되면 어떻게 될지도 관심 없다. 결혼? 그건 그때 가봐야 알지…….
지금은 그냥 용기 있게 시작하고, 최선을 다하고, 과정을 즐기면 그뿐이다. 욕망에 끝이 있다는 기대를 품고 달려들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랑을 한다.
만약 한없이 커오던 불안한 환상의 균열을 더 이상 외면하지 못하는 때가 온다면, 견딜 수 없다. 아마 그럴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수반할 것이다. 나는 영원히 20대이고 싶다.
그래도 그런 걱정은 뒤로 미루고 싶다.
870511-....... 난 아직 20대니까…….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8-24
18:41:04
병장 이종보
............ 알거같아. 왜 동훈씨가 카사노바라고 하는지.(응?)
큭큭...... 농담입니다.
한가지 생각해볼만한 점이 있는데, 어른의 경계는 어디일까요?
법적으로 성인이 되는 나이일까요? 아니면 결혼한 순간부터일까요?
아니면 스스로가 어른이라고 인정한 순간부터일까요?
가르다가, 가르다가 선이 조금씩 옆으로 삐져나가서 영원히 어린이로 남을수도 있을까요?
(이건 무슨소리?) 2009-08-04
00:49:10
일병 박준우
종보//도대체 어디서 알거 같다는 실마리가 새고 있는겁니까... 후....
제가 생각하는 어른의 경계는 '나 자신에 의한,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없게 되었을때?' 그러니까 스스로 더이상 젊지 않다고 느낄때가 되겠죠...
영원한 어린이(라기보단 영원한 20대)로 남을수도 있겠지요... 잘 모르겠지만 그러고 싶어요.
(하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당장 먹고살기가 막막해진다거나, 혹은 결혼을 한다거나... 하면 끝장이겠죠... 아마도...) 2009-08-04
00:58:41
상병 장일대
요즘에는 그 20대의 면죄부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내용을 책에서 읽었던것 같습니다.
다들 실패도 반성도 하기싫어하는것 같다는..
단지 20대를 나중을 위한 준비의 세월로 보낸다는 내용.
여러가지를 할수있고 정말 젊고 꽃다운나이를 준비로만 보내기엔
너무 아쉬운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실패하고 반성하고있는걸까요..(엉엉) 2009-08-04
08:19:57
병장 박주현
20대도 온전한 의미에서 자신의 욕망만 채우기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닐테죠,
20대의 욕망은 이미 내가 속한 사회환경의 욕망이 반영되어 있을테니까요
장일대 상병님/ 동의해요, 면죄부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덧붙여,
면죄부 자체가 존재하는 지를 모르고 사는 20대도 있을듯,
근데 또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면 실패를 피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전
생애에서 발생하는 욕망이 아닐까...하는 그런 생각도 드네요..
저의 허접한 사고로는 ...(엉엉) 2009-08-04
08:31:59
상병 백성현
20대가 즐겨야 할 나이지만, 엄연히 20대에게도 책임감은 짊어져야 합니다.
무분별한 쾌락과 욕망만을 선호하다가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찾아오곤 합니다.
즐기면서도 책임감을 짊어져야 하는 시기... 20대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2009-08-04
08:46:52
상병 정인환
20대는 하면된다가 통하는 시기가 아닐까요 큭큭 2009-08-04
08:56:15
일병 지승인
면죄부라니요. 답글이라기엔 아쉽네요.(그래서 저도 다시 아쉬운대로 답글을) 우리가 해야할 건 딱 한가지. 진짜 우리가 무엇을 욕망하는가를 찾는 것.
20대를 규정짓는 모든 언어들에 반대합니다.
"지금은 그냥 용기 있게 시작하고, 최선을 다하고, 과정을 즐기면 그뿐이다. 욕망에 끝이 있다는 기대를 품고 달려들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랑을 한다"
이건 그저 코드의 반복에 불과해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들. 긍정으로 가득찬 희망찬 언어들.
열정! 열정! 젊음!
언젠가 학교에 미친듯이 도배해놓은 광고지를 보았더랬죠.
"스펙에 목숨을 걸어라"고.
-이런, 시대의 스펙 열사들.
그 열정에 가득찬 모든 이들이 역겨운 저의 생입니다.
선택할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 책마을에 몇번이나 똑같은 글을 반복하는게 정말 이젠 지겹지만 그래도 또 떠들렵니다. 왜 선택해야하는 것인지 묻고 싶을 따름입니다. 갈증이라고 말하는 그 욕망-그래 일단 성적욕망은 차치하고 나서라도(왜냐하면 저도 딸딸이를 치는 동물이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이 부분은 인정하고 넘어가겠습니다)-이 과연 얼마나 진정 내것인가를 단 한번이라도 함께 돌아보자는 건데.
입궁이후 거주지가 결정된 바로 그날, 스무살 도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상실의 시대를 동시에 읽었었는데 스무살 도쿄는 강간하듯이 읽었습니다. 마음에 안들어서. 추억에 젖어서 허우적대고 있는 꼴이라니.(그렇다고 재미가 없었다는 건 아니지만, 허)
역시 전 설명에는 자질이 없네요. 누군가 또 비슷한 말을 해주겠지. 2009-08-04
09:13:37
상병 윤정기
남루하더라도 지난하지 않은, 비루하더라도 추하지 않은, 그래서 더 아름다운 20대지요.
하지만 20대의 면죄부라는 것이 단순히 '죄를 면한다'의 입장이라면 조금 더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죄'라는 것이, 아담의 아들로써의 '원죄적'인 것이라면, 즉, 20대가 짊어진 한국사회의 아들로써의 '원죄'라면, 전 그것을 왠지 '죄'라고도 인정하고 싶지가 않군요.
우리는 어쩌면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그 선택을 통해 '면죄'하는 습관을 기르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도 '죄'라는 것은 사라지지 않고 미래의 30,40대의 우리에게 고스란히 만기된 적금통장처럼 떡하니 튀어나오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우리는 부딪히고, 깨지고, 피튀기면서도 자신이 진정 무엇을, 왜 '욕망'하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2009-08-04
09:15:45
일병 지승인
정기님,(자의적인 판단하에) 땡스.
저는 '면죄'라는 말 자체가 언어도단이네요. 그게 '죄'인 것을 내면화한 순간에 이미 20대건 30대건 끝장입니다. 진정 자신이라면 그건 죄라고 말할 수 없는 거죠.
누군가는 또 그럼 살인은 죄가 아니냐는 식상한 말로 받아칠까봐 사지가 떨려옵니다. 그런 '죄'를 말하는게 아니라, '자유로운' 이라는 언어에 포섭된 우리가 '이건 사실 잘못된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우습다는 겁니다. 진정 꿈꾼다면 꿈꾸는 건 '죄'일 수 없죠. 2009-08-04
09:28:47
상병 윤정기
승인님 / 헐. 어째 제 답글이 승인님 답글과 연결되어 버렸네요. 허헛.
예. 면죄부라는 것이 나타내는 뜻은 결국 '젊으니까, 시행착오를 겪으며 일어나는 실패로 인한 사회적 책임을 개인의 경험으로 (긍정적으로)치환한다'는 경향이 강한데, 그 경험이내포하는 의미가 결국은 '사회적 인간상'의 답습은 아닌지, 그 경험속의 선택이 필연적이자 수동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심을 말씀드리는 거죠. 승인님이 말씀하셨듯, 우리들은 진정으로 꿈꾸고 있는가 하는 것. 진정으로 욕망하고 있는가 하는 것 말이지요.
그리고, 내친김에 약간 생뚱맞은 뱀발 하나.
Q. 이승진님이 지승인님인가요? 만약 맞다면 왜 이름을 바꾸시었나요? 2009-08-04
09:52:19
병장 차종기
실패를 두려워해서 도전을 하지 않는다.
저도 우리 20대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사실 저도 젊음을 면죄부라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생각하지 죄가 없네요.
아니, 입궁할때, 대한민국에 태어난 게 죄지, 아픔에 허덕일때, 이렇게 태어난
내 죄지, 하며 죄를 운운했던 때가 생각나는군요. 그래도 가끔씩 보이는 밝은 빛이
아아, 그래 나는 아직 젊으니까, 괜찮아. 라고 자위 했던 적도요.
정기씨의 말대로, 선택을 강요당해서, 면죄하는 습관을 기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그러니까, 다들, 20대의 젊음이 면죄부가 아니라, 진정으로 꿈꾸고, 진정으로 욕망하는
일이 면죄부라는 말인거죠?(아닌가.)
희망, 긍정적인 말들로 가득찬 20대가 무조건적으로 항상, 좋은 것만 아니라는 것이지요?
흐응? 그래도 준우씨의 글에 조금은 공감이 가네요. 2009-08-04
10:36:38
일병 김용균
면죄부라는 표현이 20대의 삶이 결국 현실에 묶여버린 기성세대로 흘러간다는 것을,
그런 삶이 되지 않으면 마치 죄가 되는 것처럼. 아, 잔인합니다.
역시나... 한 줄 써내려가는 것조차도 너무나도 어려운 글이네요.
덧글 다시는 분들께 경의를 표현합니다. 흐흐흐흐.. 2009-08-04
11:15:20
상병 윤정기
주현 / 음, 만약에 A라는 20대 남자(이 남자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수많은 취업준비생 정도라고 해둡시다)가 Z라는 일류회사에 입사원서를 냈다가 실패하고,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자" 고 외치며, 다른 (비슷한)회사에 다시 한번 지원하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그는 한국사회가 원하는 '사회인'이 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며,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Z라는 회사는 과연 그의 선택일까요? 한국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기 원하는 그의 욕망은 과연 그의 것일까요? 행복추구라는 보편적 권리 이전에, 그 추구에의 맹목적 욕망 속에는 한국사회가 바라는 '사회적 인간상'이라는 무의식적 질서가 녹아들어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인지 A라는 남자는 언제나 긍정적일 수 있습니다. 경험의 축적이라는 명목 아래에서 말이지요. 말 그대로 '자기최면'을 거는 것이죠.
우리들의 초자아속에 녹아들어 있는 '면죄'라는 개념이, 젊음을 불태울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그저 '사회적 책임'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그리하여 욕망하고자 하는 욕망만이 남는, 그리고 '무엇을'욕망하는지조차 모르는 주먹이 먼저인 '젊음의 면죄부'를 말하는 겁니다. 2009-08-04
11:19:33
병장 박주현
정기/ 아! 답변 감사합니다. 이러저러한 행동을 해서 실패를 해도 '젊으니까...'라는 말로 스스로 (간혹 주위에서도) 봐준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사회적으로 습관화되있고 이러저러한 행동들 조차도 자라온 사회의 영향을 받아 그 행동들의 동기가 온전한 의미에서 나의 욕구가 반영된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2009-08-04
13:53:15
일병 박준우
주현//비교적 가장 자유로운 시기라는 것은 그나마 20대의 욕망이 사회환경으로부터 비교적 가장 자유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패를 피하는 것은 최선을 다하거나 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져야지, 그렇다고 도전을 안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성현//당연히 무분별한 쾌락과 욕망을 선호 한다는 건 아니죠...일단은 법적 성인일 테니까... '욕망' 이라는 단어가 좀 무분별해 보일수도 있지만, 일단은 어느 정도 테두리 안에 있어야 겠죠.
승인,정기// 제가 생각한 면죄부라는건... 사회적 인간상에 대한 벗어날 수 없는 피해의식은 아니었는데. 그냥 간단하게 뭐든지 해보고 안 되면 내밀 수 있는 '황금열쇠-우대권' 정도였는데...
그런데 '진짜 우리가 무엇을 욕망하는가를 찾는것.'은 어떻게 이루어질수 있을까요?
저는 사실 20대의 욕망이 사회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공감할 수가 없습니다. 스펙에 목숨을 걸고, 회사에 취직하고 그런것은 (적어도 제가보기엔) 제가 생각하는 20대와는 전혀 거리가 멀기 때문이죠. 뭐 좋아요, 스펙을 올려보고 싶으면 올려볼수도 있고, 일을 해보고 싶으면 취직을 할수도 있죠. 남들이 하는게 재미있어 보이면 그것을 따라할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모든 선택의 주체는 '나 자신' 아닌가요?
뭐랄까 사회의 간섭으로 부터 벗어나서 나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찾아야 한다. 고 말하는 것은 이미 사회의 간섭을 받고있다는 사실을 전제 하고 있는것은 물론이고 그것으로부터 꼭 벗어나야만 한다는 어떤 피해의식처럼 느껴집니다. 내 인생을 결정하는데 ‘나’ 보다 ‘사회’가 더 많은 힘을 행사하고 있는건 아니란 거죠.
사회의 거의 모든 '나'들은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인생을 설계합니다. 그 과정에서 분명히 사회의 영향도 받겠죠. 그러나 중요한건 결국 그것은 모두 '나 자신'이 선택하는 거라는 점입니다. 개인적으로 (비교적)본능에 충실하게 살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떤 개인이 내린 선택이 스스로의 것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 조작된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는 건 좀 안타까운거 같네요.
A라는 사람은 12시가 되고 배가 고파서 점심을 먹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옆에서 친구가 이런 말을 하는군요. "넌 배가 고픈게 아니라 그냥 12시가 되었기 때문에(밥먹을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배가 고프다고 느끼는것 뿐일 수도 있어."
A는 이렇게 대답하고 밥을 먹으러 떠납니다. "내 배속은 내가 제일 잘 알아." 2009-08-04
13:53:25
일병 지승인
준우님, 예전에 나왔던 길고 긴 공간 이야기를 다시 한번 살펴보신다면 같은 맥락인걸 파악하실 수 있을텐데요.
B라는 사람은 03시가 되고 야동을 보려고 합니다. 이하 생략.
A의 경우는 예외입니다. 말씀 드렸잖아요. 성욕. 식욕같은 문제와는 별개입니다.
성욕과 식욕 따위에 그 '황금열쇠'를 사용할 생각은 없으시겠죠, 설마.
사실 별로 설명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정확히 말하면 제가 힘들인만큼 절절함이 안묻어나서) 예전에 준우님은 초식남이라는 어휘를 사용하죠. 어디서 나온건지 그건 참 놀랄만큼 준우님의 라이프 스타일에 적합한 어휘가 아닐 수 없다며 준우님은 무릎을 치네요. 2009-08-04
14:15:36
일병 박준우
승인//예, 공간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네요...
결국 공간은 결국 '지대'에 의해서 선택의 폭이 좁아질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 욕망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점점 사회적이고 획일화된 20대가 쏟아져 나온다고 하지만, (이번에도) 저의 체감상으로는 전혀 그렇지가 안거든요.
"피씨방에 가면 모든 사람이 피씨방에 있는거 같고, 도서관에 가면 세상사람들이 다 도서관에 있는거 같다." 라고 학생때 들었던게 생각나네요... 그렇지만 제 주변만 이상한것은 아닐거라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20대는 자유롭게 꿈을꾸고 우리가 꿀수있는 꿈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공간 담론에서 지적하신바 처럼 놀수있는 사람이 얼마 없는것과 다르게, 세상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들이 수두루죽죽 있고요.
욕망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것은 좋습니다. 그렇지만 그 의문이 순수한 욕망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되겠지요...
뭐랄까... 청춘예찬이네요...
뱀발.
그런데 식욕과 성욕같은것을 왜 분리시켜야 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젊고, 예쁜(도대체 어떤 기준에서 예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자 연애인들이 마스터베이션의 도우미가 되는것과, 세대에 따라서 선호하는 식단이 다르다는 것 또한 승인님의 입장에서는 똑같이 사회로부터 강요받는 욕망 아닌가요? 2009-08-04
14:49:42
일병 지승인
준우님의 A의 경우라면 그렇다는 거죠. 기다려요. 2009-08-04
15:04:44
병장 양동훈
우리가 꿀 수 있는 꿈은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나에게 와닿는 꿈이 몇 가지나 됩니까? 꿈은 그저 꿈일 뿐, 우리에게 현실화될 만한 꿈이 정작 얼마나 됩니까?
그 꿈이, 꿈이 있다고 해서, 그 꿈을 진정 나의 꿈이라고 인정할 만한 것이 몇 가지나 됩니까?
제가 비판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비관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왜 저는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걸까요. 20대랍시고 꾸는 수많은 꿈들이 그냥 '이건 나에게는 꿈일 뿐이야'라는 사고 속으로 침잠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 아닌가요? 진정 나의 꿈을 좇을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이 정작 이 시대에 얼마나 될까요? 비겁한 회피라고 할 지 모르겠지만, 굶어죽기 싫으면 꿈 따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정작 이 시대 20대의 절대적 인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3, 40대보다도 더욱 더 끔찍한, 그런 절대적 인식 말이지요.
반짝반짝 빛난다는 것도, 결국 사회라는 이 개떡같은 틀이 만들어놓은 고정화된 '성공상' 아닐까요? 결국은 그 뿐이라는 건 그냥 저만의 생각인가요. 으악. 토나와. 2009-08-04
15:47:32
병장 양동훈
저는, 이 글에 댓글을 달고 있는 모든 분들이 부럽습니다.
순수해 보여요. 정말, 맑고, 정말 '젊은이'들의 모습인 것 같아요.
전 왜 이렇게 늙어버린 건가요.
왜 이렇게 비틀어져 버린 거죠.
아.
목이라도 매달아야 되는 건가.
후................................ 2009-08-04
15:53:04
일병 박준우
동훈//20대에게 꿈이 꿈일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꿈이 꿈일 뿐인건 30,40대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20대는 꿈에 대한 실천이 있기 때문에 20대라고 생각하거든요...
굶어죽기 싫으면 꿈을 포기해야 한다는건, 좀 과장인거 같네요... 굶어죽든 말든 상관없이 달려드는게 20대라고 생각하거든요.
반짝반짝 빛난다는건, 제가 보기에 그렇다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사회적인 틀 안에서 그렇다는건 절대 아닙니다.
뱀발. 제가 보기엔 동훈씨도 충분히 반짝반짝 빛나는거 같은데요... 2009-08-04
16:17:16
병장 양동훈
준우// 저는 그냥 시덥잖은 소리나 하고 있는 '양아치' 정도일 겁니다. 킥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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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부모님과 누나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평범한 가정주부이시고, 아버지께서는 현재 월 500정도를 버는 직장인이신데 오늘내일 하시는 중이죠(과연 언제 그만두게 되실까요?). 그리고 누나는 신참 사회인인데, 아마 지금 월 150~200 정도를 대강 벌고 있을 겁니다.
아버지께서는 말 그대로 오늘내일 하시고 계시니, 만일 그 직장인의 삶이 내일쯤 끝난다고 치면, 누나가 월 200을 번다고 아주 후하게 쳤을 때 그 돈의 절반 가량은 융자를 갚는데 들어갈 겁니다. 그러고 나면 나머지 절반은 당연히 생활비로 쓰이겠죠?
그러면 저는 이제 아주 쿨하게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대학을 졸업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벌어야 할 겁니다. 지금 여기 이러고 있는 것은 사실 무척이나 배부른 짓이죠. 집에는 당연히 무척이나 폐만 끼치고 있는 셈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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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다수의 '궁인'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만 이런 것은 아니겠지요.
정작 지금의 20대의 문제는, '목숨을 걸고 굶어죽든 말든 상관없이 달려들 만한'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는 데 있을 겁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구요. 물론, 어렴풋이 한 가지 정도 생각나는 것은 있는데, 못 가겠습니다. 겁이 나서 말이죠. 이미 양 어깨 한가득 삶의 무게감이 짓쳐오고 있는 셈입니다. 허허허.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 '그게 제일 힘든 거란다.'
라는 아주 지극히 평범한 담론이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허허. 2009-08-04
16:25:15
상병 홍령건
20대라.. 문득 이글을 읽으니 88만원 세대가 떠오르는 군요. 사실 20대는 굉장히 어정쩡한 시기이죠. 10대처럼 마냥 부모님 품에 안겨서 살수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독립하자니 독립기반도 없고...
20대 꿈을 향해 달려가야할 나이 맞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려면 아니면 자신의 진짜 꿈을 찾으려면 몇번이나 부딪히고 넘어져봐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열정이란 부딪혀도 겁내지 않을 용기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끈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재 20대... 물론 저도 20대지만... 세상의 풍파는 너무나도 모질군요. 모든걸 다 걸고 내던지기에는 겁이 너무나도 많은 청년이라... 현재 나 자신을 위해 살수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런지 궁금합니다... 저조차도 나를 위해서 살기 보다는 무언가 남에게 보이는 그런 시각을 위해서 사는 것 같으니까 말입니다.
마치, 키선장의 말이 떠오릅니다. '새장의 문을 열어봤나?' 자유로 인해 피폐해져 갈바에야 차라리 안정적인 구속을 택하는것... 그것이 요즘 20대의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2009-08-04
17:14:14
상병 양제열
와, 이 정도면 공지로 가도 될 거 같은데요?(웃음)
꼼꼼히 읽고 싶지만 밥 먹으러 가야되니 흐
내일 읽도록 하겠습니다. 2009-08-04
17:20:37
병장 남대영
여기 글 올리신 분들은 주변에 이런 대화 하는 친구분들이 많으신가요?
제 주변에는 이런 대화를 즐겨하는 사람,, 찾기 힘든데,,
여러분들이 모두 제 친구들이었으면 참 행복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