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월 통합 월베-내글내생각] 20대의 낭만을 위하여  
상병 정근영   2009-04-04 17:54:05, 조회: 464, 추천:0 

  때때로 어느 누구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나를 절대적으로 신뢰해주는 부모님은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를 사랑해주고, 친한 친구들과의 짧은 통화는 언제나 그랬듯이 과거로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1년여를 함께 지내온 선후배들과의 깊은 유대감은 결코 내 마음을 채울 수 없을만큼 부족하지는 않을 터인데, 칠흑같은 어둠 속에 몸을 뉘이면, 주변에 열 명도 넘는 37도의 열덩어리들의 함께 있다는 사실조차 무색케 할 만큼 내 가슴은 꽁꽁 얼어붙고, 마치 낯선 세상에 혼자 내팽개쳐진 듯한 외로움이 온 몸을 휘감는다. 오직 하나 변한 것이 있다면, 2년이 넘는 시간동안 내 곁에 있어준 그녀가 더는 그 자리에 있지 않다는 사실뿐인데, 그렇다면 내 마음이 이다지도 허허롭고 공허한 까닭은 오직 그것때문인 걸까.

  얼마전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굳이 그것을 알아내려 한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자주 하지도 않는 인터넷을 할 때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녀의 미니홈피에 들어가 그녀의 흔적들을 뒤쫓다보니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을 어찌하는가. 차라리 모르는 편이 좋았겠다는 후회를 해보지만 이미 늦어버린 것을. 치밀어오는 배신감과 서운함에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줄담배를 피면서 그녀의 욕을 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정말 나를 사랑했다면 그렇게나 빨리 빈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수가 있느냐고. 그리고 내가 알던 그녀가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와 의리도 없는 사람이었냐고. 무엇보다도 내가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그 어떤 친구보다도 날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녀가, 이제는 다른 사람의 곁에서 미소짓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의 영혼은 아직 때묻지 않고 순수하며 낭만적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가슴 속 깊이 품고 있다. 때문에 사소한 일에도 쉽게 웃고, 또 그만큼이나 울음이 헤프며, 순간순간의 감정에 휘둘리기를 잘한다. 아무리 이미 끝난 사랑이라 할지라도, 2년여의 사랑이 나에게 남긴 것이 상처뿐인 슬픔이기를 원치 않고, 먼 훗날 돌이켜 생각했을 때 포근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추억으로 남기를 원한다. 그런데, 가끔 주위를 둘러보면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하나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는 한다. 누군가는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누군가는 자격증이니 국가고시니 하는 것들을 향해 달리고 있으며, 누군가는 책을 읽고, 누군가는 시니컬한 어조로 사회를 비판한다. 왁자지껄한 술자리 속의 유쾌한 웃음은 끊이질 않고, 바쁜 와중에도 누군가는 애인과 사랑을 속삭이며, 누군가는 나이트니 클럽이니 하는 곳에 가서 어떻게 하면 여자를 자빠뜨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한다. 20대가 되어 초등학교 때부터 쌓아온 인간관계는 더욱 폭넓어지고, 발달하는 과학기술은 언제 어디서나 친구와 화상통화가 가능하도록 하며, 언제든지 미니홈피에 들러 안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너와 나의 관계성이 이렇게 정점까지 치솟았고, 커뮤니케이션의 통로는 항상 열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20대가 이렇게 외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과 우정, 열정, 신념, 끈기, 혈기, 젊음과 같은 20대 본연의 가치가 이렇게 활활 타오르고 있음에도 내가 20대를 긍정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왜 우리는 보다 근원적인 고독 속에서 절망적인 몸부림을 계속하고 있는가.

  낭만이다.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 아니, 발빠르게 변하고 있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무가치하고 쓸모없다고 조롱하며 우리 스스로 내팽개쳐 버린 것. 이 낭만이 단지 사랑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리라. 아름다운 것, 선한 것, 가치있는 것을 지향하는 모든 생각과 행위가 바로 낭만이다. 과거의 사랑을 추억하며 쓴웃음을 짓는 것도 낭만이고, 그리운 사람에게 차마 보내지 못할 편지를 한 통 쓰는 것도, 팔레스타인의 고통을 안타깝게 여기는 것도, 체게바라나 전태일이 자신의 신념을 위해 기꺼이 몸을 바친 것도, 어린시절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이리저리 돌아다닌 것도, 심지어 우리가 지금‘20대의 소통의 장’을 만들려고 하는 것도 낭만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에게서 낭만을 앗아갔는가. 치기어리고 철없던 어린 시절을 더욱 그립게 만드는 낭만적 순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공부하는 기계로 전락해버렸다. 그것이 우리 스스로 택한 행위였으면 좋았겠으나, 안타깝게도 현실을 그렇지 않았다. 부모님은 억지로 학원을 보내 늦은 새벽까지 공부를 시켰고, 선생님은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책을 보면 꿈을 이룬다’는 소리로 학생들을 현혹하며 각종 공식과 내용을 암기하도록 했다. 우리의 감정과 느낌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지선다의 객관식 문제에는 애초에 우리의 주관이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타인과 공감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으며, 어느 정도 자신을 절제하고 참을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하는 법이라며 책이나 한 번 더 보라고 강요했다. 이런 학생들에게 낭만을 꿈꿀 수 있는 여력이 남아있을 리 없었다. 더구나 나쁜 남자와 쿨한 여자가 대세인 이 시대에, 지나간 사랑을 잊지 못하고 아파하는 것은 고리타분하고 구질구질하다며 놀림받기 일쑤였고, 쉽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웃음과 울음이 헤픈 사람은 어설프고 허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여겨졌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며 쿨함을 강조하는 이 시대에 20대의 낭만이 설 자리는 없었다.


  최근 일주일 동안 절대적인 고독에 허우적거리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 세상에 사랑에 아파하고, 이별에 슬퍼하지 않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 것인가. 그들 각자도 또한 각각의 고독에 몸부림쳤을테고,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과 싸워봤을텐데, 왜 나는 혼자라는 생각에 한없이 내면으로 침잠하고 말았나. 역설적으로 그 고독이란 것도 또한 고독하다는 이유로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아무래도 이렇게 석연치 않은 모습으로 끝을 맺는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을 알고 있지만, 모든 것을 돌이키기에는 너무 멀리 왔음을 알고 있지만, 나는 뒤늦은 편지로나마 내 진심을 전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것이 뒤틀린 인연을 되돌릴 수는 없을지라도, 심하게 엇갈려버린 우리의 감정을 어느 정도는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기를 바랐다. 내 가슴속에 남아있는 낭만을, 나는 아무래도 죽어가게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를 축복했다. 내 사랑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훗날 만나더라도 웃으며 지나치기를 바란다는 말을 전하고, 그녀의 변심까지도 용서했으며(과연 내게 용서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행복을 빌어주었다. 나는 비로소 나의 고독을 온전히 끌어안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시스트가 될지언정, 결코 낭만을 버리지 않겠다고.


나는 글을 잘 쓰지 못한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실체를 꿰뚫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탁월한 지식으로 학구적인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감동이 북받쳐 올만큼 문학적인 글은 더더욱 쓰지 못한다.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을 향하는 것 뿐이다. 스스로를 고백하고, 내 모습에 비추어 타인을 보는 것, 그것이 내가 쓸 수 있고, 또 써야 할 글이라는 것을, 이제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때때로 내 글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할 때가 있다. 과연 이 글이 책마을에 어울리는 글인가를.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만들어갈 시즌 2를 생각할 때면 더 심해진다. 다행스러운 것은, 나의 글이 그나마 고유의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사실이다.(어쩌면 본인 혼자만의 착각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계속 이런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곳이라면, 부족한 나의 글을 받아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오직 하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20대의 고독과 존재의 불안함을 조금이나마 감싸주고,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잔잔한 울림을 만드는 것이다. 그 작은 울림이 다른 분들의 더 좋은 글들로 인해 큰 파도가 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혹여 불완전한 언어로 인해 90%에 오해에 도달한다고 할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10%의 이해가 무가치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니, 오히려 10%의 이해를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소통하고 대화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20대를 논하자. 서로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불가능에 대한 도전도 또한 낭만이 아니던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살아가고, 언젠가 끝나버릴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사랑을 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 본래 낭만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외칠 것이다. 20대의 낭만은 아직 죽지 않았노라고.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자들이, 바로 여기 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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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1.98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09:36:23 

 

병장 김민규 
22.34.42.32   핑- 
곧 봅시다. 함께할수 있어서 너무 고맙습니다. 
다시금, 사랑을 위하여, 낭만을 긍정하면서. 2009-04-04
19:58:10
 

 

병장 김도환 
18.65.3.107   최백호가 부릅니다 -낭만에 대하여 
죄송합니다. 이런 진중한 글에 잡스러운 개그를 섞어서..이건 좀 다른 이야기 일지도 모르지만, 일전에 택시를 타고 가다가 기사님과 함께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좀 과하다 싶은 애정 - 아니 에,정행각을 펼치는 남녀를 목격 했습니다. 그때 기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압권 
이었죠. 

-손님 나이때는 잘 모르겠지만, 저 젊어서 마누라랑 연애할때는 길거리에서 손도 못 잡고 멀찍이 떨어져서 다니고 그랬거든요. 허허허- 이거 이렇게 가다간 손님이 제 나이 쯤 되면 길거리에서 떡치는 사람들도 보겠습니다. 허허- 

쉽게 끓고 쉽게 식어버리는 사랑, 아니 욕구..가끔은 아버님 세대의 낭만을 느껴보고 싶네요. 2009-04-04
20:08:06
 

 

상병 정근영 
20.3.1.98   민규 / 늦었네요. 요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좀 필요해서, 잠수타고 있었답니다, 흐. 그나저나 워크샵에 대한 2차 공지가 슬슬 올라올 타이밍이 된 것 같은데, 어찌되고 있는지- 

도환 / 저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고, 하룻밤의 욕망을 위해 행해지는 모든 행위들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이 무엇일까 싶기도 하고요. 물론 저 역시 된 사람이 아닌지라, 막상 그런 상황이 닥쳐온다면 부처님처럼 가만히 있을 수야 없겠지요. 그렇지만 제가 굳이 플라토닉 러브를 지향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엔조이를 위한 만남에 쉽게 마음이 가지는 않아요. 젊은 나이에 할 수 있는 것이 씨뿌리는 것 밖에 없다면, 우리의 젊음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본문에서 말한 낭만에는, 낭만적 사랑에 대한 회귀라는 의미도 있답니다. 잘 짚어주셨어요, 흐흐 2009-04-04
20:27:11
 

 

병장 김우현 
18.1.11.19   아아...저의 입장들과도 비슷한 느낌의 글이네요. 
어쩌면 상반된 내용일지도 모르나... 
글을 적는 방법을 몰라서 이렇게 애타게 글을 올리는 방법을 찾고 있는 1人입니다... 2009-04-04
20:40:29
 

 

병장 김도환 
18.65.3.107   메뉴에서 즐겨찾기 -> 즐겨찾기에 추가 -> 대충 이름 정하고 확인누릅니다. 왼쪽창에 즐겨찾기 링크가 추가되었으면 링크를 우클릭하고 속성으로 들어갑니다 -> URL에 javascript:function dm(){for(i=0; i<document.getElementsByTagName("a").length; i++){document.getElementsByTagName("a").item(i).href += "&pid=Book";}};dm(); 를 붙여넣기합니다. 한드시 한줄로 되게끔 붙여넣으셔야됩니다. 그리고 다시 확인. 무슨 프로토콜 어쩌구 메세지 뜰거예요. 이때 그냥 확인누르세요. 이 메세지 안뜨면 링크 주소에 문제가 있는겁니다. 

자. 그럼 읽고싶은 글을 누르기 전에 즐겨찾기 한 번 클릭하고 나서 글을 누르면 문제없이 들어가질겁니다. 목록페이지가 다음으로 안넘어가지는 문제도 즐겨찾기 클릭하고나서 누르면 넘어가집니다. 

링크는 웹스 펌이고 주소만 살짝 바꿨습니다. 2009-04-04
21:04:00
 

 

병장 김도환 
18.65.3.107   글 쓰는 방법은 저렇게 친절하게 책마을 주민분이 알려주셨습니다. 2009-04-04
21:04:27
 

 

상병 한영빈 
18.32.7.48   무한감동입니다. 2009-04-06
13:38:50
 

 

상병 김태완 
16.48.6.23   많은 20대들이 공감 못하는 글을 쓰고 '공감해 보아라, 공감못하면 그것은 소양부족 때문이므로 소양을 더 쌓고 와라'는 식의 글은 나의 부족함을 깨닫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므로 부정적이진 않습니다. 
하지만 역시 전 거시적인 관점에서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실체를 꿰뚫을 수 있는 글이나 탁월한 지식이 담긴 학구적인 글이 아니라 근영님의 글처럼 나 자신을 향하는 글, 스스로를 고백하고 거기에 투영된 모습에 비추어 타인을 볼 수 있는 글이 더 좋답니다. 오히려 이런 글이 20대가 느끼는 동질성에 대한 공감을 얻어 마음의 불을 지펴주기 때문입니다. 2009-04-06
14:52:00
 

 

병장 김형태 
54.4.11.94   어젯밤 근영씨의 글을 들고 올라가 밤늦도록 스탠드를 켜놓고 있었습니다. 잘 봤습니다. 확실히 느낀것은 지금 이 시대가 보여주는 많은 '인스턴트식 무언가'를 저와 같은 입장에서 보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는 것입니다(물론 더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낭만이라는 것이 더 아름답게 보이겠죠. 앞으로 같이 갑시다. 2009-04-07
07:52:06
 

 

상병 정근영 
20.3.1.47   영빈 / 별 말씀을요. 과분한 말씀이에요. 부끄럽군요, 허허. 

태완 / 음, 저 역시 태완님처럼 자신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글들을 좋아합니다. 더 발전하게끔 하는 열정을 다시금 내 안에 불사르게 하니까요. 그래도 저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마음을 열 수 있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요. 그것은 제가 저런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없기도 하거니와, 제가 아니더라도 다른 분들이 충분히 보여주고 있어서기도 해요. 앞으로 자주 뵙길- 

형태 / 저도 뿌듯하네요. 물론 저나 형태씨와 같은 생각을 하는 분들이 이 곳 책마을에는 꽤나 있으리라고 생각되지만, 이것을 '모든 20대'라는 범위로 넓혔을 때에는 절대적으로 소수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같이 나아가봅시다. 잊혀져가는 낭만을 되살리기 위하여. 다시금, 반갑습니다- 2009-04-07
13:09:10
 

 

병장 송원호 
18.51.1.57   그저 한마디.. 
'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