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베스트-일상이야기] 책 예찬.  

상병 손근애  [Homepage]  2009-02-17 10:59:26, 조회: 393, 추천:4 

책, 책이란 무엇인가. 책이라는 짧디 짧은 한 글자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무엇인가.
책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상·사항을 일정한 목적· 내용·체재에 맞추어 문자·그림으로 표현하여 적거나 인쇄하여 묶어 놓은 물건의 총칭이다. 하지만 사전적 의미가 다 그렇듯, 책의 의미 역시 사전적 의미만으로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은 현 세대에서의 의사소통을 위하여 언어라는 것을 만들어냈고, 현 세대에서 쌓은 지식의 산물 내지는 발전을 후대에서 잃어버리지 않고 더욱 발전시킬 수 있도록 언어를 어떠한 물체에 적는 법을 생각해냈다. 문자의 발명이다. 그리고 문자의 발명은 곧 이 세상에 ‘책’이라는 것의 존재를 드러내게 했다.
즉, 책은 앞서 만들어놓은 것들의 유실을 최소화하고, 그것을 토대로 다음 것을 만들 수 있게 함으로써 사람이라는 하나의 (생물학적으로는)약하디 약한 동물이 전 지구를 뒤덮을 수 있게끔 만든 일등공신인 것이다. 인류의 유산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러한 지식의 전달이 주 목적인 책이지만, 그 활용도는 실로 무궁무진하다. 보라, 최근 많은 사람들이 책을 펼치면 10장을 채 넘기기도 전에 잠드는 증상을 호소하고 있지 않는가. 조금만 더 연구한다면 몸에 좋지 않은 수면제 대신 쓸 수 있는, 보다 좋은 처방이 됨에 틀림없다.(부작용이 없음은 물론이고 잘하면 지식획득의 순기능까지 있다!) 또, 책은 대대로  떳떳하지 못한 돈-아내 몰래 숨겨야 하는 비상금이라던가-을 가장 효과적으로 숨길 수 있는 비밀 금고의 역할 또한 충실히 수행해왔다. 몰래 책 갈피 사이에 적당히 종이돈을 집어넣고 책장 한 구석에 박아놓으면 웬만해서는 찾기 힘든 천혜의 금고가 되는 것이다. 어떤 책은 냄비받침으로 유용할 것 같지 않느냐는 인상적인 문구로 광고를 하는데, 생각해보면 그 또한 불가능한 활용도는 아니다. 또, 두터운 하드커버의 백과사전은 유사시 도둑을 KO시키는 역할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고(실제로 그런 미담(?)들이 심심찮게 전해진다) 심지어 끈으로 엮어 배에 두르면 웬만큼 날카로운 물체에 찔려도 끄떡없는 방탄의 역할까지도 해낸다.

활용도를 배제해 놓고, 책 자체만으로 봐도 책은 충분히 완성되어 있다. 심플한 네모의 칼각, 각 내용에 걸맞게 디자인 되어 있는 겉 표지, 은은하게 번져나오는 책 특유의 따스한 내음, 제품보호 운운하며 절반이 공기인 포x칩 류의 과자에 비할데 없이 충실히 들어있는 내용물까지, 이 책이라는 물건에서 도대체 뺄 것이 무엇인가. 

그렇다. 책은-이토록 마력적이라고까지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매혹적인 물건인 것이다.

이렇게 광범위한 책의 매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보통 책은 만인의 스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나에게 있어서 책은 더 많은 의미를 갖는다. 어릴 때의 날 구원해준 구원자였고, 지금을 이루고 있는 것들의 8할을 차지하고 있는 진정한 스승이었으며, 어느 때든지 나와 함께 해주는 든든한 친구였다. 나의 삶에서 이 사각형의 종이 냄새 가득한 글자 모음을 빼면 과연 얼마나 남을 것인가. 
이런 책에 대한 나의 애정은 인생의 최종목표에도 영향을 끼칠 정도로, 난 책이라는 사각형 물체가 너무 좋았다. 

구글에서 전 세계의 모든 책을 스캔하여 DB화 하고, 책의 전문 제공은 물론 검색에도 이용될 수 있도록 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바야흐로 전자책 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KINDLE로 대표되는 전자책 전용 단말기 시장이 매년 70%이상씩 성장하면서 차세대 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단다. 현재까지 나온 책은 물론, 앞으로 나올 모든 책도 전부 디지털화하여 인터넷을 그야말로 정보의 우주로 만들겠다는 구글. 지금까지 그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것을 구글은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나가 가시화하고 있다. 이 어이없을 정도로 단순하고 거대한 스케일의 계획을 읽으며 그저 헛웃음만 흘렸다.

입궁 전, 사정상 많은 짐을 들고 다니지 못하던 나는 전자책에 손을 대었었던 적이 있다. 멀티미디어 기기를 하나 갖고 있던 터라, 텍스트 파일로 이루어져 있던 전자책들을 하나하나 넣어서 읽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다른 문제가 있었다.

분명 책을 읽는데, 책을 읽는 것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분명 텍스트가 (화면이지만) 있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손쉽게 페이지가 넘어간다. 스토리도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도무지 책 읽는 것 같지가 않았다. 손 맛이 아쉬웠고, 책의 향이 그리웠다. 한권을 그렇게 읽은 뒤, 나는 다시 전자책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저 정보의 전달이라는 책의 순기능만 집약된 것 같아 아쉬웠다. 바쁘고 챙겨야 하는 것 많은 현대에서 종이책이라는 물건은 확실히 거추장스러움에 틀림없고 불편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펴들었을 때의 감성은 전자책을 꺼내 읽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 정취, 페이지를 넘기는 그 손맛. 책을 펼치는 그 행위자체만으로도 정서 함양에 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책이라는 것은 그저 읽을 텍스트만 모아놓은 사전류가 아니란 말이다. 물론 종이를 만들고 제본하는 데에 많은 원 자재가 필요하고 그 자체로도 자원의 낭비가 심하기 때문에 언젠가 전자책으로의 전환은 필수적으로 여겨지기는 한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내가 살아있는 현재냔 말이다. 젠장.

문득, 대형 서점을 처음 가본 때가 생각난다. 
교보, 영풍, 반디, 리브로 등 동네 서점과 비교할 수 없이 큰 대형 서점이 있다는 걸 수원 살던 촌뜨기는 어머니가 전해주는 말을 통해서만 알았었다. 마음껏 움직일 수 있게 된 후, 처음 가본 대형 서점은 상상 했던 것 이상의 규모를 뽐내며 나를 압도했다. 각 벽면마다 빼곡이 들어차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책들이 뿜어내고 있는 책의 향기에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였다. 난 왜 이런 곳을 이제야 와본 걸까. 콜럼버스를 이해할 수 있었다. 신세계에 온 느낌이었던 것이다. 

그래. 그랬었지.
첫 느낌은 많이 희석되었었지만 그 공기를 가득 메운 책의 향기만큼은 가도 가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뭔가 취하는 느낌의 그 향기. 한가득 들이마시면 정신을 잃고, 정신을 차리면 한가득 책이 들려있는 것을 보면, 분명 취하는 게 틀림없다. 술에 취해본적은 없지만.

정보의 유통이 빨라진 것 만큼의 속도를 각 개인에게 요구하는 현대에 전자책이라는 것은 분명 매력적이다. 거기다 훨씬 싼 가격에 책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은 비단에 꽃을 더한 격이리라. 하지만 나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게 되리라는 확신에 가까운 예감에 오한이 든다. 기사를 읽으며, 이번 설탕때 반드시 서점엘 가서 그 향기에 흠뻑 취하고 싶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던 나는, 이 향기에 지독히도 중독되어 있음이 틀림없다. 이 향기가 나를 놓아주지 않을 듯하다. 종이책의 역사가 끝날 때까지, 내 안의 책은 어디까지나 종이책이다. 암, 그렇고 말고.

ps. 어디에 올릴지 고민하다 좋아하는 건 일상이니까 일상이야기로...(사실 두서없이 너무 좋다좋다해서 주르륵 써갈긴 글이라 차마 내글로는 못올리겠습니다. 끙.) 카테고리가 안 맞으면 지적해 주세요. 옮기겠습니다.

ps2. 책 예찬을 올리려고 보니 바로 축구 예찬이 올라와 있군요. 으하하. 오늘은 예찬씨가 사랑받는 날인가봅니다. 원제는 '전자책 시대에 부치는 책 예찬'이었는데 예찬 시리즈에 어울리기 위해서 그냥 책 예찬으로 합니다. 아하하.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3-11 13:23)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9:28:24 

 

상병 이재환 
  우후후후, 책은 역시 손맛! 2009-02-17
11:02:39
  

 

일병 송기화 
  책 페이지의 그 팔랑거리는 느낌이란. 가끔 종이에 베이는 쓰라림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정도 리스크도 매력입니다. 

예, 책 많은 곳에 가면 기분이 좋아져요. 2009-02-17
11:53:44
  

 

상병 김용준 
  저는 언제 쯤이면 책에 푹 빠져서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요? (웃음) 2009-02-17
12:05:33
  

 

상병 윤영준 
  도서관 책들의 그 오래되고 눅눅한 내음이 전 좋습니다. 큭 

햇빛이 창문 사이로 비춰오고 따뜻한 난로 옆에서 쭈그려 앉아 책을 읽는 그 즐거움. 2009-02-17
12:20:50
  

 

병장 김형진 
  입궁하고 나서도 1년이 넘어 책이라는 것에 첨으로 흥미를 갖게된 저로썬, 
이런 글이 신기하면서도 가슴이 즐거워집니다 
무슨 이유때문인진 저도 모르겠내요 2009-02-17
12:44:05
  

 

병장 손정훈 
  집에보면 저보다 나이가 많은 책들이 계십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넘어오는 향은 책에 집중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죠. 2009-02-17
13:32:04
  

 

병장 김민규 
  잊고있던 그 로망이 되살아나는 느낌. 추천한방 2009-02-17
13:43:17
  

 

상병 김보성 
  역시 전자책보다는 클래식한게 좋죠 
한장 한장 넘길때 나는 소리하며 .. 
그리고 책의 향기까지 
전자책보다 활자책이 훨씬더 좋다고 생각해요 2009-02-17
14:13:32
  

 

상병 손근애 
  재환님 // 그렇지요. 페이지 한장 넘길때마다 느껴지는 그 손 맛. 크으! 

기화님 // 종이에 베이는 건 이상할 정도로 아프지 않나요? 후후. 까칠한 아이입니다. 

용준님 // 책마을에 들어오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얼마 안남으셨다고 생각되네요. 우리 언제 한번 정모를 대형서점에서 해봅시다. 아마 아무 이야기도 못하고 각자 책만 파겠지만. 

영준님 // 도서관의 그 향기도 정말 좋지요. 후후. 책은-그런것 같아요. 시간이 오래될수록 그 책이 지나온 모든 것들이 다 향으로 남아서 결국은 조금은 답답하고 고풍스러운 향기로 승화되지요. 새책에서의 향기가 가슴 벅찰 정도로 설레임이 차오르는 향긋함이라면, 오래된 책의 향기는 그 책이 지나온 시간을 웅변하는 압도적인 묵직함의 향입니다. 
물론, 그 둘다 너무 좋습니다. 

형진님 // 그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을 좋아할수 밖에 없는 본능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소리에 눈을 뜨십시오.(뭔 소리래?) 

정훈님 // 으하하. 정말 '계시는'거군요. 향에 고풍스러운 맛이 있지 않나요?후후 

민규님 // 책마을 주민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로망이겠지요. 추천 감사합니다. 

보성님 // 빠르게 디지털화되가고 있는 사회에서 사람은 역설적으로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찾는 현상이 보이는데, 종이책은 이런 현상에 기대어 설명할것도 없이 진리지요. 
믿으십시다. 2009-02-17
19:02:42
  

 

일병 김유현 
  어릴적, 처음으로 도서관에 갔을 의 설레임. 처음으로 아동용 도서실이 아닌 일반 도서실에 도달했을 의 희열, 고2 겨울, 10대 초반의 진주여행 이후로 어머니와 동생과는 처음으로 함께 여행했던 서울, 교보문고의 거대한 규모에서 난 무엇을 느꼈던가. 그, 캠퍼스 탐방이라는 명분으로 포장된 서울 여행은 결국 서점과 헌책방과 지하철 사이의 어딘가에서 끝났다. 이듬해 겨울, 논술 준비라는 미명하에 이루어졌던 40여일간의 고시원 생활은 내게 도피욕구와 좌절과 불안정감, 그리고 계속되었던 난독증을 한층 더하게 했었을 뿐이고, 결국 나는 한걸음 더 물러나게 되었었다. 

....이것이 어떻게 해도 흘러나오지 않던 자기 고백이군요. 책이라면 뭐든 흘러나오는 걸 보니 이놈의 책-지향성은 어쩔 수 없나봅니다. 제 기원대(10대와 비견해)의 모든 것이라고 볼 수 있었던 것이 이 책이라는 물건이군요. 악기와 바둑이 더 있긴 했습니다만, 

아직까지 전자책은, 기억력과 관련된 전설적인 이야기 - 책을 촤르르륵 펼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넘기게 되면 그 책의 내용을 모두 습득하게 된다는 - 를 구현할 수가 없어요. 전자책으로는, 불가능해요. 그런 것. 그러니까, 우리는 책을 통해 괴물이 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겁니다.(....에에?) 

뭐어, 잠재능력의 개발이란 면과 컴퓨터를 통한 소통은 내면의 무언가와 교류하기엔, 그리고 이너비전을 연마하기엔 너무나 열려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2009-02-17
20:46:17
  

 

일병 김유현 
  으윽. 마지막 문장 A/S. 

잠재 능력의 개발이란 면과 내적 성찰-통찰을 연마하기에는 컴퓨터를 통한 소통이 너무나 열려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작용할지는 Case by Case겠지요. 현상의 원인이 아닌 부차적인 것을 이유로 뭔가를 비난 할 수는 없죠. 2009-02-17
22:33:38
  

 

상병 김보성 
  이런 글을 가지로! 라고 외쳐야 하나요 
늦었지만 추천합니다. 
가지로 2009-02-18
08:54:00
  

 

상병 손근애 
  유현님 // 역시 책이라는 것에 얽혀있는 사정들이 각자 많은 것 같습니다. 뭐니 뭐니해도 우리는 내 책에는 따뜻한 시크한 책마을 남자들이겠죠. 전자책은 아직 종이책을 대신할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감히 외쳐봅니다. 

보성님 // 헉. 감사합니다. (웃음)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많은 걸 보니 종이책의 미래가 제가 죽을때까지는 명맥을 유지하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런데 어째 저를 비롯한 위의 덧글에서 공감해주신 분들은 전자책이 활성화 됐을때 꿋꿋히 종이책을 사모으다 용돈(내지는 월급)을 거덜내서 아내에게 바가지 긁히는 모습이 눈에 선연하게 떠오르는 걸까요. 미스테리입니다. 2009-02-18
14:57:18
  

 

일병 김태건 
  언제나 서점에 가면 마음의 위안을 얻음과 동시에 너무도 많은 책을 한꺼번에 읽고싶어 발을 동동구르게 되죠. 우후훗... 2009-03-11
14:47:14
  

 

상병 김민우 
  저 역시 촌놈이라..중학교 시절 처음 교보에 발 디뎠을때 가슴 벅참이 떠오르네요.. 2009-03-15
11:50:09
  

 

상병 김지호 
  나이들면 꼭 공공도서관이랑 가까운데 집을 잡고 살아야겠습니다. 

중고등생때야 학교도서실에서 짱박고 살았지만 사회인이 되면 그게 힘들테니까요 - 

더불어, 제 방은 서재로 만들 생각입니다. 마눌님이 찬성을 해 주셔야 할 텐데. 

아 그리고 애기 키울때 잔잔히 부모가 독서하는 모습을 보면 애도 그걸 평생 지침으로 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