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을 이맘때, 여행중이었고, 전혀 생경한 2년의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여행은 가까웠고, 여행은 또한 멀었습니다. 주어진 날이 카운트 다운에 돌입할 무렵 잊혀졌던 사람들에게도 응원을 받고, 단 1명뿐인 첫사랑에게도 연락이 오는걸 보면 그리 나쁜 것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의 거창한 핑계로 그들과 연을 이을 수도 있겠구나. 못내 아쉬운 그들인지 나인지 모르는 모두와 그렇게 이별 아닌 이별을 차근히 준비하고 있었지요.
헹여나 큰 욕심이나 바람은 없었습니다. 다만 조급한 생각으로 2년 후를 상상하며 '나이에 걸맞는 생각만을 지녔으면 좋겠다.', '건강' 두가지만을 생각했고, 어찌저찌 지내다 보니 두번째만 충족시킨채 그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병 생활이 끝나갈 무렵이었습니다. 함께 업무하던, 지금은 사그라진 님이 이곳 주소를 가르쳐 주었지요. 논의되는 말들 속에 섞여들 틈이란 존재하지 않았고, 진득하니 앉아 지켜볼 만한 여유도 없었습니다. 다만 허락된 것은 가만히 읽고, 가만 가만 독서 결산을 옮겨 적어보고, 짧게 되새김질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요. 수 개월여의 시간동안 좋아하되 가벼운 것들을 바랐었고, 원하되 쉽게 읽힐 것들만을 탐했습니다. 부끄러워 독서 결산은 적어보질 못했지만, 아니 공개하지 못하고 떠나지만 적어도 1년간의 목록들이 주욱 뽑아져 나오는걸 보며 남몰래 웃음지어 봅니다.
올 초 다시 자리잡은 책마을로 저를 이끈 사람은 생활관 동기였습니다. 뒤늦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습니다. 그로 인해 이곳에 발을 들이게 되었고, 그로 인해 참 많은 것을 배웠다고. 서로 다른 시간대의, 서로 다른 공간의 사람들이 점으로 만나 말을 섞는 이곳은 가장 지나친 자극제가 되었고, 특수한 집단에 속한 만큼 정치적인 중립성을 요구받는 상황에서 그에 상응하는 '예의'를 배울 수 있었으니까요.
짧지 않은 군생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곳이 이곳이었습니다. 지극히 협소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던 1명에게,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만나 논쟁하고, 철학과 사회과학이 뒤섞임과 동시에, 정치와 문화가 서로 교류하는 이 공간은 말로 다할 수 없을만큼의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영어를 조금 끄적이고, 회계학을 조금 끄적이고, 딱 좌우뇌에 이끼가 자리하지 않을 정도의 공부만을 하려고 했습니다. 다만 허락된 시간에 그정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 여겼지요. 수많은 선배님들의 길을 어스름이 접한 순간 이런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워 졌습니다.
서로 다른 길에서 출발하여 다른 목적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소통'이라는 대 전제를 실천하고 있는 그분들을 보며 진정 깊음이 어떤 것인가에 관하여, 그리고 나의 얕음의 실체에 대하여 알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 오기전 지극히 편협한 사고방식을 지닌 꼬꼬마 대학 새내기였기에 또한 그다지 공부에는 열의와 재능을 보인 적이 없기에, 큰 도약을 꿈꾸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습니다. 그러나 책마을을 통해 언저리를 맴돌았지만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보는 눈이 넓어졌고, 사회과학의 한 분야 그것도 경영학의 한 갈래에 속한 '세무학'이라는 전공을 가진 제가 인문 내지는 역사,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 또한 공간과 그를 구성한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시간이 흘러 누구나 맞이하는 그 날이 다가오고 있는 시점에도 쉽게 실감이 나지 않는 걸 보면, 이 집단에서 참으로 오랜 시간을 보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곳에 침윤되어 하루를 그저 '살아지고' 있던 어떤 때에는 사회와 크게 구분선을 긋고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단지 안쪽의 일들로 치부시킨 것도 여럿이고, 그로 인해 포기하거나 색안경을 끼고 응시했던 가치들도 여럿이었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나'는 이 자리에 있되 안팎이 다르지 않음을 인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울타리 안과 밖의 상황이 어떠하든 디디고 있는 토양은 다르지 않고, 외적 요인이 어떠하든 간에 믿고 실행하는 가치는 변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얼마간 그것을 잊고 지내왔음이 못내 아쉬웠구요. 사회를 향하는 문은 가까이에 있고, 또한 멀리 있었습니다. 하지만
생활인이 주체적 인간이 되는 길은 그저 요원한 일이었지요. 가까운 길을 2년을 걸려 돌아왔으니 먼길임에 틀림없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길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어렴풋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병소 문이 스스로 열리든, 두손으로 힘차게 열든 간에 중요한 것은 이 자체를 한발자욱 전진이라고 믿는 것일듯 합니다.
바깥 세계에는 '웰빙' 열풍이 오래되었지요. 혼자만의 공리공론으로 그칠지언정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느 방편을 취하는 것이 이를 위한 첩경이 될 수 있을까. 가진 지식과 경험이 일천하기에 섣부르게 결론을 지었습니다. '나를 위해 맞추어진 잘 먹고 잘 사는 법 따위란 존재하지 않는다.' 가 그것이지요. 나를 위함은 물론이거니와 타인에게도 보편 타당한 잘 사는 법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학위가 보장하는 것도 아니요, 지위가 부여하는 것도 아닌것 같았지요. 그렇다고 보장자산이 나의 안위를 보장하거나 만족을 완벽히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닐듯 했구요. 짧은 생각이 이러할 진대 어떤 길을 택해야 할 것인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 '마음 이끄는 대로 행하자' 등이 그것이었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루소가 그랬다지요. "자유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걸 의미하기 보다, 원하지 않는 무엇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라고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제는 돌아갈 바깥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마음껏 향유하면서, 조금은 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행하며 지내려 합니다. 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또 2년 혹은 그 이상이 지나면 알 수 있겠지요.
한달 전쯤부터, 잃은 것과 얻은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왔습니다. 사박사박 적어보다 이내 노트를 덮었습니다. 왜냐하면 얕은 호흡으로 그 총합이 영점에 가까워 졌기 때문입니다. 마음놓고 삶을 관조한다거나 제 3자의 눈으로 자신을 볼 수 있는 여유를 얻었고, 솟아나는 조급함에 소요할 여유를 잃었습니다. 나이를 2살이나 얻었고, 2년의 기회비용을 잃기도 했습니다. 이 곳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잊지 못할 경험들을 했고, 20대 초반에 할 수 있는 경험을 잃기도 했습니다. 많은 친우들과 멀어졌고, 동거동락한 새로운 친우들과 만났습니다. 사랑을 잃기도 했지만, 다른 곳들을 향한 열렬한 사랑을 얻었습니다. 이렇기에 영점에 수렴하는 듯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다는 아닙니다. 롤러코스터를 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수 있습니다. 처음 타고난 뒤,그리고 2~3번 타고 난 뒤 종착점은 시발점과 단 1mm도 다르지 않지만 360도 회전을 하기도 했고, 급강하를 하기도 했으며 중간에 사진도 몇방 찍혔을 수도 있지요. 두번 세번 지속되면 카메라가 어디있는지 알고는 멋진 표정을 지어보이기도 하고, 회전을 즐기기도 합니다. 하물며 도돌이표 같은 생활이었지만 여기서의 2년이 롤러코스터보다 못하지는 않을꺼라 생각합니다. 고로 분명 얻은 것이 있겠구나. 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가려 합니다. 이곳에서 얻은 영점들을 통해, 사회의 이것 저것에 마음 놓고 조준을 해보렵니다.
언젠가 따르는 선배님이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셨습니다. 책을 많이 보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긴 이야기를 해주시진 않았지만, 그 의미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습니다. 일면 수긍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적극적인 찬동의 뜻도 밝히지 않았으니 의뭉스럽다 하실 수 있지요. 그분의 진심을 곡해하려는 뜻은 없습니다. 지름길을 택하는 데 있어서 서책이 방해가 되는 경우도 여럿 봤으니까요. 하지만 조언을 가슴에 새기고 조금 돌아가더라도, 믿는바 옳은 길 위에 서고자 할 것입니다. 이것이 23살의 제가 껴안을 수 있는 최선의 방식입니다. 어차피 세계를 전부 이해할 순 없으므로 원하는 것만을 취사 선택하겠지만, 현상과 사건의 이면을 보는데 도움이 되는 책들을 가까이 할테지요.
이제는 평범한 시민으로 거듭나려 합니다. 자유와 평등, 권리와 의무를 명확히 인지하고 적절히 행하는 사전적 의미의 그것에는 부족함에 몸서리 치겠지만 적어도 그에 가깝고자 노력할 터입니다. 시민은 멀리에 있고, 몇 일뒤 돌아갈 학교는 가까이에 있습니다. 아마도 학생이 먼저 되겠지요. 수 개월 전 언급하였듯이 학생의 특권을 마음껏 누리는 그런 인이 되려고도 할 것입니다. 그 길에서 많은 사람들과 조우하고, 한껏 겸손하여 많이 배우고, 딱 그만큼, 공부한 바를 나누며 그렇게 살고자 할 것이구요. 지나치게 조숙하고자 노력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과도한 어리숙함은 지양하고자 합니다. 나이에 걸맞는 열정으로, 적확히 어울리는 배움의 자세로 한 걸음 내딛으려 합니다.
따로이 감사 인사를 적고 싶은 분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각자의 영역에서 쏟아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정제되어 맛깔스런 언어로 풀어내는 그들에게 열정과, 뒤따르는 지적 욕구를 또한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요. 도움을 받은 만큼 이곳에서 풀어낼 그릇을 갖추지 못하여 아쉬움이 앞섭니다. 그래도 언젠가 길 위에서 우연히 스치기를 믿으며.. 여기서 못다한 이야기를 그때 다시 잇기를 바라며..
생활관 동기로 2년간 함께 생활한 사랑스런 지민씨
알동기면서 한달을 동거동락한 주형씨
세희씨, 진씨, 건룡씨, 준연씨, 진호씨, 수영씨, 영목씨, 본성씨, 기중씨, 기창씨
그리고 이미 전역한 수많은 선배님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아직 몇일 남았지만, 실제로 컴퓨터를 붙잡고 몇자 적을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미리 올립니다. 쪽지라도 1통 보내주시면 연락처 나누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