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월베스트선정-독서후기] 결산주의자들, 어서 오세요!(병장 윤원일)  
병장 김상열   2008-04-16 09:44:03, 조회: 531, 추천:3 

상병 결산입니다. 책을 읽고 개인적으로 소박하게나마 감상을 남겨둔 것들을 부끄럽지만 방출합니다. 제가 책마을에서 가장 좋아라 했던 글도 결산이었고, 그들의 결산들로 인해 내 위시리스트에는 수십, 수백의 책들이 추가되었으며 그래서 이토록 질리지 않고 독서를 이어갈 수 있었노라고,




그래서 저도 ‘부끄럽지만’ 누군가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올려봅니다.




(사적인 리뷰에서 발췌하다보니 이래저래 앞뒤가 안맞는 구절도 있고, 말투도 높았다 낮았다 마음대로네요.)







1.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자기계발서류의 책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내가 단 한줄이라도 그런 책들을 읽어본 적은 없었지만 단지 성공하기 위해선 - 성공이 인생의 목표라는 전제하에 - 이렇게 이렇게 해야 한다는 다소 계몽적이고, 일률적인 내용만을 담고 있기 때문이죠. 생각할 여지는 남아있지 않고, 그저 나도 저렇게 해야겠구나 라는 작심삼일간 다짐의 욕망을 얻어낼 수 있다는 그것으로 끝입다. 그래서 전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누가 할줄 모르나? 안되는거지. 그런데, 이 책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도 어쩌면 이런 책의 일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려한 문장과 비유, 진실한 내면으로부터의 울림이 읽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그로하여금 저렇게 살아야 겠다는 일종의 삶의 가르침을 전해주는 책이니까. 그러니까 결국 목적은 같되, 그 지향점은 정 반대를 향하고 있는 책이라고 할까요.




2. 칼의 노래 - 김훈
아름다운 수사는 칼의 노래를 타고 흐르고 있었고 생동하는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적도, 적의 적도 아닌 개인의 무상함과 무내용은 그의 글자들 어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아름답다. 그는 더 이상 조선의 영웅도, 존경하는 인물의 수위권을 자랑하는 현재의 영웅도 아니었다. 끊임없는 고뇌와 불안정함, 고통과 의지의 감정들은 밀물과 썰물처럼 그와 나의 앞을 흐르고, 조선의 충무공은 김훈을 통해 3일간 내 삶에서  만개하였다.




3. 현의 노래 - 김훈
김훈은 불친절하다. 장이 넘어가는 장을 넘기자 ‘우륵은 죽었다’란다. ‘면은 칼을 놓치고 제 피위에 쓰러졌다. 스물 한 살이었고, 혼인하지 않았다.’ 슬프다. 장황한 수식보다 이 한 문장이 주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비장감은 헤아릴 수 없이 크다. 어쩌면 그의 소설에서 인물이란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개개 인물은 그 개별성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성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우륵과 충무공과 김훈은 시공을 넘어서 존재한다. 그들은 보편적인가? 김훈은 신문기자로 재직하면서 모든 부조리와 소외와 외로움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충무공도 우륵도, 그들은 역사상의 실재인가 김훈의 양태인가. 그들은 보편적인가? 나는 보편적인 인간인가? 내 개별성도 김훈의 기표 앞에서는 미끄러지는 존재일 뿐일까? 




4. 철학과 굴뚝 청소부 - 이진경
처음 철학에 관심을 갖게 만들어준 책. 존재론 / 인식론에 대한 줄기를 엮어 그만의 문체로 독자들을 잡아당기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것이 어찌보면 이진경의 한계라고 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난 그로인해 철학의 세계에 발을 딛었고, 얼마되지 않은 사유의 중간에서 철학이 내게 준 고민과 사유와, 수사와 관념의 혼돈은 감당해내기 너무 큰 것이어서 매트릭스의 빨간약처럼 이 책을 차라리 선택하지 말았으면 생각마저 들게 한 ‘탁월한’ 독서경험이었습니다. 




5. 대담 - 도정일, 최재천
이진경의 표현을 빌자면 뇌과학은 성과를 모른 채 인식이 무엇인지를 철학적으로 논변하는 것이나, 분자생물학이나 이공생명 연구의 성과를 모르면서 인간이나 생명에 대해 사유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역사학은 인류학의 방법론을 사용하고 있으며, 경제학이나 사회학은 카오스나 복잡계 과학의 연구방법을 통해 갱신되어야 합니다. 문학은 생물과 기계의 변화된 경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에 대해 다룰 수 있어야 한니다. 이런 점에서 모든 지식은 분과의 형태로 존재하는 지식의 낡은 영토에서 벗어나 다양한 영역을 횡단하는 탈영토성을 강화해야 하며, 분과가 요구하는 낡은 연구의 규칙들에서 탈코드화되어야 합니다. 물론 내가 이런 사고의 필요성을 감지하고 책을 집어 들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심심찮게 거론되었던 통섭적 사고에 대한 관심이 책의 선택에 관여했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인문학의 지향점은 자연과학과의 접점에 있지 않을까요.




6. 논리철학논고 - 비트겐슈타인
(전략) 원자명제는 세계와 접촉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은 인식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침묵 속에 덮어두어야 한다. 이를테면 우리가 ‘삼각형은 달콤하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며, 이를 무의미한 명제라고 하는데 이는 명제를 구성하는 대상의 내적속성(혹은 논리적 형식)이 대상들간의 결합에 일정한 규칙성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사과’라는 대상은 미각성과 형식성을 내적속성으로 하기에 ‘사과가 달콤하다’, ‘사과가 둥글다’라는 원자명제가 유의미함을 증명해내지만, ‘삼각형’은 미각성을 속성으로 갖고 있지 않으므로 ‘삼각형은 달콤하다’라는 명제는 무의미하다. 비트겐슈타인이 (그의 전기 저서 - 논고에서) 궁극적으로 밝혀내고자 했던 바는 유의미한 명제와, 무의미한 명제의 구분을 통해서 인식 가능한 세계, 실재의 선을 긋고 그럼으로써 주체와 대상의 일치라는 근대철학의 근본적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다. (후략)




7. 아내가 결혼했다 - 박현욱
축구와 연계한 스토리텔링이 말 그대로 ‘재미 있었고’, 낄낄대며 봤지만 주변의 여자들에게는 절대 권하고 싶지 않은 책. 나도, 그런적이 있었던가.. (멍)




8. 펭귄뉴스 - 김중혁
책마을에서의 칭찬일색의 평에 책을 선택하게 되었지만, 사실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던 독서였습니다. 표제작인 펭귄뉴스도 장르소설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아날로그적이었고 참신한 발상에 비해 플롯이 엉성한 느낌이 많았습니다. 다음 작품을 기다려봐야겠습니다.




9. 1984 - 조지오웰
스무살이 벌써 몇 년이나 넘어서야 이 책을 읽게 되었다는데 약간의 부끄러움도 없지 않지만, 어쨌든 왜 그리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줬는지 충분히 이해할 법한 명작이었습니다. 언젠가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조지오웰이 그리듯 사회주의 체제하에서의 억압과 예속을 경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적이 있었는데 정작 오웰 자신은 스페인에서나 그토록 열광적이었으면서 미련한 후학들에게 회의를 갖게 하는지 의아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고전은 괜히 고전이 아니라는 것을 잘 나타내준 책입니다.




10. 카스테라 - 박민규
사회의 해악거리와 소중한것들, 기타 잡다한 것들 - 이를테면 두명이 모자란 중국인 전체와 같은 것들을 냉장고에 넣었더니 눈물나는 카스테라가 되었더라. 탁월한 관찰력과 해학성, 묘사력. 그냥 모든게 다 좋았다. 휴가 중 술을 마시며 소설이 생각났고 내 삶이란 대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에 대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쳇 그따위 토익점수, 학점 몇점 따위야 마음만 먹으면 남들하는만큼은 충분히 얻어낼 수 있다니까. 다 그래요. 결국은 내 삶을 얼마나 즐겁게 살 수 있냐는 것이 문제잖아. 내 스무살 청춘을 남들처럼 영어공부에 취직공부에 학점공부에 모두 쏟아부어버리고 싶지 않았을 뿐이에요. 우웩.




11. 철학, 역사를 만나다 - 안광복
딱히 높은 난이도도, 기본상식도 요하지 않은 가벼운 개괄서입니다. 뭐, 딱 그정도!




12. 비판사회학 - 앤서니 기든스
사회학의 쟁점과 문제점들, 산업사회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전통주의적 견해, 계급과 군대와 성과 가족에 대한 담론을 ‘가볍지 않게’ 훑어볼 수 있는 얇지만 가볍지 않은 사회학 서적입니다. 기든스라는 저자의 이름이 주는 중후함 만큼이나 많은 생각거리를 던저주고 있습니다.




13. 핑퐁 - 박민규
적응이 안돼요. 다들 결국엔 자기 할 말만 하는 거잖아요. 얘길 들어보면 누구도 틀렸다고는 할 수 없어요. 왜 그럴까요. 왜 아무도 틀리지 않았는데 틀린 곳으로 가는 걸까요. 내가 이렇게 사는건 누구의 책임일까요. 무엇보다 그걸 용서할 수 없어요. 60억이나 되는 인간들이 자신이 왜 사는지 아무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거잖아요. 그걸 용서할 수가 없어요. _ 본문 중. 그러니까, 존메이슨의 소설처럼 나도 세상이 깜빡한 존재는 아닐까 갑자기 두려워졌던 독서였습니다. 깜빡 했을지도 모르죠. 핑! 퐁!




14. 당신들의 대한민국 1, 2 - 박노자
처음 읽은 것은 아니지만 늘 그렇듯이 박노자의 책을 읽는데는 닿을 수 없는 이상에 대한 회의 내지는 회피가 수반되는 것 같습니다. 철없는 학부생에게 손에 잡히지 않는 그의 완벽한 비판은 그래서 더욱 가혹한 법이지요. 어쨌든 박노자를 읽으며 나는 다시 한번 적극적 실천자가 되지는 못할 망정, 무책임한 방관자는 되지 않겠노라고 다짐합니다.




15. 68, 세계를 바꾼 문화혁명
공동저자라 따로 명시를 해두지 않았더군요. 68운동에 대해 알아가면 갈수록 우리나라 87년도의 움직임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21세기의 지금에서 이런 거대한 변혁이 또 한번 가능할까 라는 물음 앞에서 저는 또 한번 답답하고 안타까워졌습니다. 




16. 철학의 문제들 - 버틀란트 러셀
철굴을 읽고나서 인식론과 존재론에 대한 더 깊은 사유의 필요로 집어든 책입니다. 안타깝게도 심각한 번역의 문제로 인해 이해할만한, 아니 읽을만한 수준의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어쨌든 예, 뭐 그렇습니다. 서광사의 책이었습니다. 어째 독서후기가 책에 대한 내용이라기보다는 번역의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만 그만큼 심각했다니까요. (땀)




17. 파인만의 또 다른 물리 이야기, 일반인을 위한 QED 강의 - 리처드 파인만
아마 뜬금없이 물리학 책을 집어들었던 이유는 역시나 존재 / 인식론에 대한 사유에서 양자역학을 모르고 넘어가기는 아쉽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고등물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저에게 파인만이 아무리 친절하고 쉽게 다가온들 그렇게 쉽게 이해할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래도 간략히는 양자역학에 대해 알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최면을 걸고 있습니다.




18. 꿈의 해석 - 프로이트
프로이트가 현대철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폄하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대부분의 평대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실은 과학의 탈을 써서 얻은 명성에 비해 과학적 근거가 많이 부재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드, 에고, 슈퍼에고 같은 전통적 개념들은 고개를 끄덕일만한 수준의 것들이었습니다만, 리비도적 상상력에 근거한 해석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기에 충분했고 그 환원론적 관점을 수긍하기란 조금 힘들었습니다.




19. 과학콘서트 - 정재승
이 정도 상식이면 어디가서 말빨좀 세우겠구나하는 세속적인 감상으로 읽었습니다. 딱히 감상이랄 것 까지는 없고, 그냥 스펀지를 책으로 읽은 느낌이랄까요.




20. 현대과학의 6가지 쟁점 - 캐스티
인간기원설, 유전자론, 언어본능, 인공두뇌, 외계생명체, 실체와 인식에 대한, 그러니까 꽤 철학적인 논쟁 요소들을 과학적으로 이리저리 재고 뜯어놓은 책입니다. 인문 / 사회과학 분야의 논쟁이 대부분 결론없는 아우성에 그치는 것에 비해 과학이 주는 명쾌함이 늘 과학의 일종에 경외감 같은 것을 불어주는 것이겠지만, 그래서 더욱 열심히 철학과 사회를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21. 담론과 해방 - 김경만
대부분의 한국 사회과학자들은 ‘고도로 추상적인 이론적 논의’는 당면한 사회․정치적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사회과학자의 ‘실천적 역할’을 강조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마치 지식인들은 어떤 당파성과 이해에서도 자유롭기 때문에 좀더 ‘객관적인 이해’를 대변할 수 있다고 단순히 ‘전제’해온 국내 학계는 지식인의 ‘실천적 역할’이 무엇이며, 그런 실천에 효과적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데는, 역설적으로 그들이 ‘상아탑에 안주하는’ 지식인들이라고 비하해온 지식인들간의 고도로 추상적인 이론적 논쟁이 필요하다는 것을 망각해왔다. 우리는 사회운동가 혹은 정치가로 변신한 사회학자들 대신 학자가 필요하다. (중략) 비판이론가들은 해방적인 야심을 가진 학자들이 벗어나려고 노력해왔던 오래된 문제 - 즉 어떻게 권력과 권위를 주장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권력과 지배의 손아귀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가라는 - 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했다.




22. 뿌리깊은 나무 - 이정명
한글 창조를 둘러싼 살인극 - 이라는 광고에 혹해서 집어 들었던 두권짜리 소설입니다. 주체할 수 없이 벌려두었다가 급히 수습하려는 결론에서 조금 아쉬운 느낌도 있었지만, 저는 이런 궁중극이 좋더군요. 영화도, 드라마도 그렇고.




23. GO, 연애소설, 레볼루션 NO 3, 플라이 대디 플라이, 스피드 - 가네시로 가즈키
가즈키의 열혈 팬인 후임이 다섯권의 책을 싸그리 긁어왔길래 하나씩 빌려 읽었습니다. 역시나 재미있고 쑥쑥 읽혔던 탓에 오히려 생각할 거리가 없었다는 흠이라면 흠일까요. 어쨌든 이 책들을 읽고 아마 일주일 정도는 생동감에 들떠서 몸부림쳤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24. 윤리 21 - 가라타니 고진
인간의 모든 행위에 있어서 그 자체로 자유적인(자연적인) 면은 없으며 모두 어떤 결정론적 구조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는 스피노자는 구조환원론의 비주체화와 몰윤리성이라는 비수를 내재하고 있습니다. 칸트는 여기에서 ‘괄호넣기(벗기기)’의 방식을 통해 주체와 윤리와 책임을 구제해냅니다. 이는 포스트구조주의의 담론, 이를테면 구조주의와 실존주의가 결합했을 때 어떤 양태로 나타나는가 하는 문제에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중략) 이 일련의 작업을 통해 고진은 20세기의 비윤리적인, 경제환원론적인, 파괴적인, 이기적인 세계를 극복하고 ‘윤리21’의 세상을 창조하고자 합니다. 그 윤리21의 기본적인 바탕은 칸트가 제시한 윤리와 책임의 담론에 있으며 고진을 통한 칸트의 재해석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충분히 상식적이지만, 비판적인 훌륭한 지침이 되어줄 것입니다.




25. 향수 - 파트리크 쥐스킨트
우리는 대개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 앎을 통해 나와 사람과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정작 스스로에 대해 스스로가 알고 있는 것은 얼마나 되는가의 반문은 모든 것을 혼란속에 집어넣고 맙니다. 세상의 모든 인식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며, 또한 우리가 인식하고 있다고, 인지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사실은 얼마나 반(反)진리적인가 하는 것 말입니다. 결국 존재의 피상만을 인식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는 때때로 벌거벗고 교태를 나누거나 혹은 단도를 들고 뜯어 죽여 결국 먹어치우거나 하는 비극으로 구분지어지고 맙니다. 인간은 대체 얼마나 무지하고 얼마나 나약한 것일까요. 아마도 그 한계에 대해 인간은 심각하게 뉘우치고 반성하며 끊임없이 원죄에 대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원한 약자 - 인간이 추구해야할 생(生)의 방법이자 목적일 것입니다.




26. 거꾸로 읽는 세계사 - 유시민
전문 역사가도 아닌 사람이 쓴 역사책 치고는 훌륭했습니다. 서문에서 살짝 피난처를 두긴 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관적이고 상식적인 책이었기에 ‘책 자체’에 대해서는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역사에 관점을 배제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면 이렇게 뚜렷한 색깔을 갖고 일관적으로 구성한 책이 차라리 낫다는 겁니다. 뻔하기도 했지만 몰랐던 부분도 많았던 내용도 그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정말이지 대단한 반전입니다. 예, 저자가 ‘유시민’씨거든요. 물론 20년이나 된 책이지요. 그래서 놀라운겁니다. 사람은 변하는 모양입니다. 다만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20년 전의 유시민씨를 현재의 그에게 오버랩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길 바랄뿐입니다.




27. 소유나 존재냐 - 에리히 프롬
요즘의 독서에서 내내 회의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자들의 - 지식인들의 - 이런 역작들이 실제에서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입니다. 이렇게 내적으로 탁월하고 혁명적인 사상들이 현실적으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수 있을까요? 아니, 실제로 어떤 영향을 끼치기나 하는것일까요?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분명 ‘부정적’입니다. (중략) 프롬의 저서를 읽은 나는 여전히 내 소유물을 통해 나를 확인하고, 내 목숨을 연명하고, 내 존재와 미래를 구상합니다. 이러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구태의연한 자기합리화와 게으름을 찬양합니다. 




28. 달려라 아비 - 김애란
김애란은 그러니까 무려, 80년생이다. 80년생 젊은 여작가의 삶에 대한 관조란 도대체 얼마나 깊어야하는 것일까. 시종일관 유쾌한 문체와 비유속에 통속적이고 비극적인 인물들. 세련되지만 결코 세속적이지 않은 문장들. 그속에서 유목하는 권위와 추억과 삶. 김애란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는 주저함이나 구김살이 없다. 당돌할 정도로 당당하며 초연할 정도로 담담하다. 추천하고 싶은 소설. 좌애란에 우민규랬다. 




29. 빛의 제국 - 김영하
결론은, 그러니까 김영하의 소설은 잘 팔린다. 영화를 보듯 쭉쭉 잘 읽히고, 잘 떠오르고, 시간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으니까. 그게 소설의 본연의 임무아니겠냐만은, 나는 그래서 김영하한테 아쉬운거다. 등단 초기의 단편집에서 보였던 재기발랄함과 그 안에서 묘하게 배치된 삶에 대한 관조가 ‘빛의 제국’이나 ‘검은 꽃’ 같은데서는 도대체 찾을 수가 없다. 현대인의 소외와 개별성, 고독과 허무함에 대한 관망이 다른 작가의 글에 비해 특출난 것도 아니고, ‘간첩’이라는 특이하면서도 거대한 소재를 이리저리 굴려내 만들어놓은 결론이란 어린아이가 더 이상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굴려내 만들어버린 눈덩이와 하등 다를게 없었으며, 쓰리썸이나 일상적인 외도와 같이 자극적인 플롯으로 말하고자 했던게 뭔지 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30. 감금의 정치 - 최정기
수용소나 감옥 등을 비롯한 감금시설이 그 본연의 목적보다는 통제와 배제를 통한 파시즘적 질서의 재생산에 기여한다는 주장은 이제 그리 신선한 논의가 아니다. 푸코는 이미 고전이고, 수용자 인권개선을 말하는 사회운동은 사람들에게(심지어 한국사회에서조차도) 더 이상 충격적이지 않다. 다수성과 소수성의 경계 설정을 통한 국가권력과 지배형태는 이미 전사회적으로 보편화된 양태로 현실화되어 있으며, 반대급부로 그 경계로부터의 탈주와 전복적 사고는 현대의 진보운동에서 주류적 위치를 차지한지 오래다. 이런 사상적 조류에 대해 굽어볼 수 있는 개괄서!




31. 들뢰즈, 카프카, 김훈 : 천개의 고원, 그리고 한국문학의 지평 - 장석주
김훈이 각별하게 주목하는 것은 가족, 사회, 국가에 복속되지 않는 개별자의 삶, 아니 개별자의 몸이다. 개별자의 오감은 인식의 세계로 나아가는 촉매이자 통로다. 김훈은 보편적인 의미에서 ‘감각주의자’다. 김훈은 세계를 사유하는 자가 아니라 세계를 감각하는 자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 개념적 지식과 추상을 얼마나 혐오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감각에의 도저한 탐닉은 누구라도 손쉽게 식별할 수 있는 김훈 문학의 한 특징이다. 그 감각의 매개로 열린 지각속에서 나와 세계의 있음과 있어야 함의 상호적 관련은 추상과 관념의 외피를 벗고 드러난다. ‘칼의 노래’는 감각적 개별자로서 자기동일성을 수립하고 있는 한 인간이 국가공동체, 혹은 권력의 중력이 어떻게 개별자의 의지와 욕망에 삼투하여 억압하는가를 보여주는 고백적 내러티브로 읽을 수 있다. ‘이순신’은 역사의 영웅이 아니라 국가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지 않는 내면을 가진 개별자, 권력의 중심에서 탈영토화하여 유목하는 인간의 표상적 기호일 따름이다. 아울러 ‘현의 노래’ 역시 국가 장치에 포획된 개별자들이 자신의 몸에 각인된 권력의 미시정치학의 성분들을 지우고 그 ‘바깥’을 향하여 나아가는가를, 그 탈주 동선을 따라 추적한다. 김훈의 소설적 상상력은 항상 반역사주의적인 방향으로 추동한다. 김훈이 ‘칼의 노래’나 ‘현의 노래’에서 보여주려는 것은 ‘역사’라는 긴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소멸하는 몸의 현상학이라는 오로지 ‘순간’에서만 발현하는 반(反)기억이다. 김훈은 ‘이순신’과 ‘우륵’의 입을 빌려 개별자의 몸으로 촉지되는 자명한 감각적 사실들만이 실체고, 그것의 바깥에서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과 조직들은 존재감 없는 유령일 뿐이라고 말한다.




32. 철학콘서트 - 황광우
‘철학’이라는 제목에 혹해서 골라들었던 책이었고, ‘콘서트’라는 제목에 역시나 하고 내려놓은 책이었습니다. 과학콘서트, 경제학콘서트, 철학콘서트 - 우리 출판업계 상상력의 빈곤을 보여주는 일련의 콘서트를 감상한 결과 이건 도무지 침착하게 볼래야 볼 수 없는 책들입니다. 과학콘서트를 읽느니 ‘스펀지’를 보는게 유익하겠고, 경제학콘서트를 읽느니 고등학교 경제교과서를 보는게 낫겠습니다. 철학콘서트를 읽느니 차라리 성경을 읽겠습니다. 




33. 유럽통일 - 서병철
유럽통일에 대한 여러 측면을 간략히 소개해둔 글입니다. 정작 후기로 써두었던 글은 엄하게도 무릎팍 산을 기고 있더군요. ‘7-80년대 우리의 ‘성장모델’이 미국이었다면, 현재 우리의 ‘지향점’은 유럽인 것처럼 보인다. 프로페셔널한 직업군과 세련된 도시인의 삶, 한적한 여유와 화목함 같은, 사람들은 흔히 TV에서 자주 보게되는 유럽인들의 삶의 단편에 대해 막연한 환상들을 품고 있다. 마치 제 2의 ‘새마을 운동’처럼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언젠가 우리들도 잘 살게 되면 저렇게 되지 않을까 하면서. 막연한 사대주의. 우리 자신도 스스로 돌볼줄 모르면서 막연한 환상에 젖어 남들 따라만 가다간 다리만 아플 뿐이다. 혹은 찢어지던가.’




34. 파우스트 - 괴테
혹여나 어떤 구원이나 계약을 통해서 인간과 사회와 우주의 본질과 원리를 규명할 수 있다면 기꺼이 얽매인 육신을 포기할 수 있을까? 인간의 탈을 벗어나 영들의 세계에서 앎과 진리의 쾌락을 향유하는 방편으로 절대자로의 귀의는 인식의 완결성을 보장해 낼 수 있을까? 흔히 이데아와 매트릭스로 대표되는 ‘저 세계 너머 어딘가의 공간’의 가능성은 배움의 길에서 궁극적인 지향점이 되곤 한다. (매트리스라고 써놓고 세 번이나 읽은 뒤에야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군인들이란 젠장;) 학문이란 스스로를 원소로 하는 집합에 대한 연구인 덕에 언제나 부분으로의 조감에 그칠 수밖에 없는 원죄를 가지고 있다. 필연적으로, 불완전성이 전제하는 염세주의는 향락과 쾌락으로의 ‘변질’을 운명적으로 담보하고 있다. 궁극적 진리의 인식에 대한 갈망과 절망, 인간이 희망하고 노력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괴로워하고, 또 생각하고 체험하는 영원히 반복되는 존재의 고달픔에 대한 서사. 인생의 자극과 감정, 사랑과 증오, 인식과 향락에 대한 욕망, 성스러움과 죄악, 아름다움과 추악함, 경건함과 미신, 이기심과 희생의지, 순결과 야비함, 이성과 관능의 향연. 낙관주의와 염세주의, 개인주의와 사회주의, 범신론과 범악마론, 물질주의와 이상주의, 기독교와 그리스 신화. 인간과 삶에 대한 모든 인식. ‘파우스트’에 담겨있는 완전함으로의 지향은 그것이 메피스토텔레스와의 계약에 의한 일종의 구원이 아니라, 삶에 대한 역경 - 비록 그것이 가혹하고도 불가해하며 모순투성이지만 그로 인해 몰락하지 않고 피나도록 생(生)과의 투쟁을 벌이고 내면적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힘을 부여받는데 있다.




35. 반동적 근대주의자 - 박정희
박정희에 대해 광적인 신뢰와 향수를 표하는 우리네 할아버지의 믿음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무서운 사실은 명동거리를 지나가는 백명 중 적어도 90명 이상의 사람들이 ‘민주주의 발전에 해를 끼쳤으나, 경제발전에는 공을 세웠다’ 라고 똑같이 대답하는 것이다. 박정희가 이룩한 것처럼 보이는 경제성장은 실은 이러이러한 정세와 환경속에서, 그리고 저러저러한 인적 요소와 사회분위기 덕에, 그리고 그것은 흔히 수입대체산업화가 어쩌고 기간산업과 내수산업이 어쩌고하여 ‘사실은 박정희가 경제발전을 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백날 설명해봐야 돌아오는 대답은 ‘어쨌든 지금 잘 살고 있지 않느냐’ 밖에 없다. 아무리 학술적으로 박정희를 둘러보고 재고 뜯어내봐야 대다수의 국민에게 ‘박정희’가 가지는 아우라는 쉽게 제거해 낼 수 없다. 요컨대,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는 법이다. 정말이지, 난 이런식의 불가지한 결론으로 글을 마치는 것이 가장 싫다. 그런데 더 할 말이 없다. 재수없게 보여도 어쩔수 없다.




36. 강산무진 - 김훈
해즈로 넘어와 처음 올려두었던 독서후기를 태그에 걸어두겠습니다. 




37. 길 위의 생 - 나쓰메 소세키
나쓰메 소세키.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름이었는데, 알고보니 가라타니 고진의 저서에서 곧잘 인용되었던 작가였습니다. 일본의 ‘국민작가’ 칭호를 받으며 지폐에까지 새겨졌던 인물이었다는걸 보니, 대단하긴 했던 모양입니다. 역자의 글에 따르면 문학의 틀을 뛰어넘은 일종의 정신세계로 일본인들의 일상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작가였다고 평해진답디다. ‘길 위의 생’은 이런 작가의 자전적 내용을 기본으로 한 소설입니다. 소세키의 일생에서 가장 비참했던 순간을 그리고 있는데, 가정불화의 이유로 양부에 의해 길러졌던 유년기 시절의 기억과, 현재의 기억이 중첩되면서 생겨나는 관계의 충돌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에고이즘에 속박되어 유적하게 살아가는 지식인으로, 하지만 늘 그런 자신을 경멸하면서도 또다시 자기합리화를 늘어놓는 기만적인 심리가 전반적으로 소설을 관통하는 무대가 됩니다. 좁은 인간관계속에서 얽히고 설키는 인간사는 과거를 기억하고 싶지 않은, 혹은 현재의 우월함을 고고하게 간직하고 싶은 주인공에게 생의 본질에 대한 허무함 내지는 미완결성의 책임을 느끼게 합니다. 




38. 하얀강 밤배 - 요시모토 바나나
다 그런건 아니지만 요즘 유행하는 일본 소설들은 너무 가볍다. 뭐, 그것도 매력이라면 매력이겠지만. 어쨌든 죽은듯이 잠이나 실컷 자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와서 한번도 만족스럽게 잠을 자본적이 없었으니까. 그래서인지, 소설을 읽는내내 졸렸다.




39. 철학적 탐구 - 비트겐슈타인
개인적으로 비트겐슈타인을 포스트모더니즘류의 철학자로 분류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명명되는 일련의 것들이 실은 알맹이가 비어있고 일종의 트렌드성 용어로 사용되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 진중한 철학자들에게 이런 멍에를 씌우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어쨌든 근대철학에 대한 대립의 위치에서 비트겐슈타인을 평해야 한다면, 역시 맑스와 함께 가장 선구자적 역할을 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그의 전기 대표 저작인 ‘논고’에서의 이상언어에 대한 신념을 신화적으로 보면서, ‘탐구’에서 - 정확히는 ‘청색책, 갈색책’에서부터 이런 태도를 ‘일반성에 대한 열망’과 ‘특수한 경우에 대한 경멸적인 태도’로 묘사하는 부분은 서양철학사 전반에 결정적인 전회라고 생각된다. 이는 단순히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일상언어 학파를 전면에 등장시켰다는 의미 이외에도, 데리다와 푸코, 들뢰즈로 대표되는 대륙철학의 해체주의에 가장 큰 수원이 되었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40. 새참 - 성석제, 윤대녕 등
스포츠 신문에 조각조각 실린 유머들보다는 진중하고, 유쾌한 단편소설보다는 가벼운 ‘새참’같은 글조각 모음집 입니다. 각박한 세상에 잠시나마 미소를 머금게 하고싶다는 것이 작가들의 의도였다니, 그들이 지금껏 보여준 역량에 기대어 봤을 때 결코 어렵지 않은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찰나의 웃음 속에서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생각거리들을 떡밥처럼 던져두는 작가의 낚시꾼 근성은, 정말이지 ‘아무나 글쓰는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쓰고 있던 소설, 혹은 에세이, 정확하게 말하면 ‘막글’이 다시금 부끄러워졌습니다. 난 이야기꾼으로는 소질이 없는 모양입니다.




41. 길에서 만난 세상 - 국가인권위원회
일반성에 대한 무제한적인 신봉과 이반성에 대한 무차별적인 배척. 자본주의의 이름아래 인륜과 인권조차 물화(物化)되는 세태와 파쇼적인 기질이 빚어낸 참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좌파, 진보 같은 색깔 있는 말들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내 옆에 누군가가 이유 없이 차별당하고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것이 불합리하고 하루빨리 개선되어야겠다고 생각하는게 인간다운 당연함이 아닐까. 사람들이 정말이지 평화를 사랑했으면 좋겠다. 




42. Unforgettable places to see before you die - Steve Davey / Marc Scholssman
정처없이 걷는걸 좋아한다. 한참 예민하던 시절 - 그러니까 흔히 슬럼프라고 말해지는 것들이 찾아왔던 그해 여름, 재수생 신분의 나는 지하철을 타고 무작정 어디로 떠나는걸 즐겼다. 한번도 가본적 없던 곳에서 내려 몇시간이 되었던 그저 걷기만 하는 독특한 여행이었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전람회와 토이 음악을 벗삼아 사람구경, 하늘구경, 차구경하며 어둑해질 때까지, 혹은 더 이상 다리가 아파 가지 못하게 될 때까지 그저 걷기만 하는 재수시절의 유일한 피크닉. 서울의 거리가 좋았다. 활기차고 밝고 떠들썩하고 잠들것 같지 않은 화려함, 하지만 종종 그 이면을 감추고 있는 외로움과 고즈넉함이 좋았다. 가까운 듯 멀었고, 익숙한 듯 낯설었던 다양함이 좋았다. 실패한 스무살만이 할 수 있는 사색(死色)이 된 얼굴로 즐겼던 사색(思索)들이 좋았다. 세상의 모든 고독이 마치 내것인양, 음악에 몸을 맡기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일이 너무도 자유로워서 그냥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싶은 적도 있었다.

책소개 : 세계 유명 여행지 40곳에 대한 가이드가 담겨있습니다. 감상 포인트라던가, 역사적/지리적 배경 등이 사진과 함께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산토리니 섬과 베네치아가 가장 좋았고, 쿠바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3. 문화콘텐츠 입문 - 인문콘텐츠학
다양한 문화콘텐츠에 대한 소개와 전망 등을 개괄적으로 풀어놓은 말그대로 입문서입니다. 그래서 딱히 적어둘 것도 없고해서 후기에 우리나라 음반산업을 살리는 방안을 모색해 본 허접한 글을 실어두었습니다만, 옮기기 부끄럽습니다. 뭐 한줄로 요약하면, 소녀시대 만세! 정도?




44.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 - 프리드리히 엥겔스
엥겔스의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은 인류학적 증거와 유물론적 역사인식에 바탕을 두고 여성 종속의 원인과 여성 해방을 위한 실천적인 틀을 제시하는 맑시즘의 바이블 저서입니다. 생산성을 기본으로 한 인간진보의 과정에서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이 발생하는 경과를 상세히 밝히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엥겔스는 여성 해방을 위해 여성종속의 가장 중요한 계기인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 ‘적어도 상속할 수 있는 부(생산 수단)의 대부분을 사회적 소유로 전환시킴으로써 상속에 대한 모든 관심을 최소한도로 줄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 사적인 가사노동을 공적인 산업으로 전환함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성적 사랑과 애정에 기초한 결혼의 완전한 자유가 가능해진다고 주장합니다.

20세기 역사의 많은 부분들만큼이나 맑시즘이 가족과 여성문제를 바라보는, 그리고 여성해방을 실천하기 위한 움직임에 커다란 동력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비록 현재에 와서 저작이 발표되던 당시와 달리 많은 인류학적 증거가 발견되었고, 다소 선형적인 역사관과 다위니즘, 수동적인 여성관을 암시했던 엥겔스의 주장이 비판받음에 따라 그 영향력이 많이 감소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현대 사회문제의 다양한 층위와 관계를 분석하지 못하고 환원론적으로 해석하려는 맑스주의의 전형적인 한계라고 생각합니다만) 여전히 ‘맑스주의 페미니즘’은 ‘급진적 페미니즘’과 함께 여성해방운동에 큰 조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억압은 곧 남성 스스로에 대한 억압이고, 여성 해방이 곧 남성 해방이라는 변증법적 인식은 현재 극도로 왜곡된 우리사회의 여성문제를 해결하는데도 훌륭한 지침서가 될 것입니다.




45. 진보와 대화하기(따뜻한 진보, 김석준을 만나다) - 김외숙, 송성준
역사는 내가 찾고 헤맸던 책속이 아닌, 현실과 행동에 의해 만들어지고 또 발전한다. 뻔한 정답을 앞에 두고 당장 뭔가를 손에 잡고 싶어하는 이기적인 투정과, 모든 것을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유아기적 소유욕이 발목을 붙잡고 있을 뿐이다. 주변의 모든 이들처럼 ‘코리언 스텐다드’를 꿈꾸는 한 학부생의 지적유희와 오만함 앞에 ‘세상의 따뜻한 사람들’은 너무 숭고하다.




46. 트랜스:아시아 영상문화(TV와 스크린을 통해 아시아를 횡단하고 통과하기 그리고 넘어서기) - 김소영
TV와 영화를 통한 아시아 상호 간의 교류는 이제까지 지리적, 인식적 오지로 남아있던 아시아의 어떤 곳을 구체적으로 TV와 영화의 스크린 위로 가져온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지정학적 서사와 이미지로 아시아를 상상 가능하게 하는 자원이다. 물론 여기서 아시아의 중요성은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의 대중문화에 대한 저항의 거점을 함의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제국주의와 냉전에 의해 막혀 있던 아시아 상호간(Inter-Asia)의 대화의 가능성을 전제하는 데 기반을 두고 있다.




47. 한국영화사(80-90) - 한국영상자료원(KOFA)
8-90년대 한국영화에 대한 소개와 해석들이 담겨있습니다. 굵직굵직한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당시 사회상과 맞물려 영화계가 어떤 형상으로 움직이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의 후기에는 비평의 근거와 비평가의 역할에 대한 글을 써두었는데, 아마 디워 논쟁가 함께 예전 책마을에서 논의되었던 ‘학수님과 수영님의 논쟁’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이었을 겁니다. 역시 밝히긴 부끄럽고, 그저 내게 있어서 소녀시대는 베토벤 보다 위대하다, 뭐 이런 겁니다. (빠방!)




48. 한국사회 권력이동 - 박길성 / 한준
17대 대선 업무 덕에 인사파트 행정병인 나는 얼마간 바빴다. 부재자신고를 하고 투표용지를 받고 투표소에 가서 투표를 하는 일련의 행위들에, 군대 특유의 비효율성이 가미되어 꽤 정치적이라고 생각했던 스스로마저 대선을 ‘아무짝에 쓸모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게까지 만들었던 피곤했던 업무였다. 어쨌든 이런 기회에서나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어떤 의식들을 가지고 있는가 살짝 알아볼 수 있게 되었는데, 후보자 공약집을 읽으며 XXX 만은 제발 안되었으면 좋겠다는 내 혼잣말을 들은 당돌한 후임녀석이, 자기는 그 후보를 지지할 것이며 당연히 그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선동까지 하고 나서는게 아니겠는가. 그러더니 나보고는 대체 이런 마당에 누굴 지지하냐고 묻기까지 하는거다. 원체 정치와 종교를 가지고 논쟁하는데는 이골이 나있는터라 쓸모없는 싸움(!)은 하고 싶지 않아서(내 평생에 위의 두가지 주제로 생산적인 논쟁을 펼쳐본 역사가 없었다) “열심히 지지하세요. 사실 내가 반대한다고 해도 그 사람이 될건 뻔해보이네요” 하는 식으로 넘어가고 말았는데, 그 녀석에게 그런 광적인 신뢰를 심어준 모 후보의 저력이 무엇일까 심히 궁금했다. (후략)
전문을 밝히기는 위험한 글이어서 고이 접어 나빌레라.. (응?)




49. 연금술사 -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를 읽고 남기는 독후감들이 열이면 아홉 ‘포기하지 말고 꿈을 이루기 위해 삶을 개척해야겠다’라는 모범적인(?) 감상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나는 ‘닥치는데로 막 살아라!’라고 소심하게나마 반항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인생이란게 순간순간마다 ‘마크툽’이라고 외치며 초연할 수 있는 거라면 아등바등 부대끼며 살아가야할 이유가 없으니까. 이를테면 내일 당장 세계가 멸망한다는데 열심히 삽질을 할 군인은 없는 것처럼. (중략) 정작 중요한건 어쨌든 그는 점쟁이와 노인과, 도둑과 영국인과 연금술사와 파티마를 만났고 바람이 되었고 보물을 얻을 수 ‘밖에 없었다는’ 20세기판 예정설이 팬시적인 제목을 달고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재판된 코엘류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것. 그러니까 결론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든가 ‘꿈을 잃은 현대인의 나침반’이라든가 하는 수식을 업고 시종일관 나를 졸리게 만들었던, 그래서 역시 베스트셀러는 믿을게 못된다는 편견을 확고하게 해준 지루했던 아포리즘 한 줄을 읽은 느낌이었다는 것.




50.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 김연수
독후감을 쓰도록 강요하는 학교 시스템 덕분에, 나는 첫학기부터 김연수의 소설을 읽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독후감을 제출하여 D라는 당당한 성적을 받았다. 그리고 그때부터가 김연수와의 악연의 시작이었다. 김연수라는 이름이 잊혀질만한 무렵 황순원 문학상에 실린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을 읽으면서 나는 김연수가 ‘소설을 잘 쓰지 못하는 작가’이거나 아니면 ‘내가 소설읽기에 재능이 없는 독자’이거나 중에 하나일거라고 확신했다. 그런 확신은 아마도 김연수의 글 다음에 박민규의 글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어쨌든, 알 수 없는 저주에 이끌려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를 손에 쥐고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을 2년반만에 다시 읽기 시작했다. (중략) 역사란 빈틈없이 치밀하게 짜여진 한편의 추리소설 같은 것처럼 인식되곤 하지만, 사실은 그와 그녀가 걸었던 알 수 없는 행로의 골목길들만큼이나 우연의 소산으로 이뤄진 삶들이, 안중근이 아니었어도 다른 역의 우덕순이 이등박문을 저격했으리라는 - 결국은 그렇게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무것도 아닌 역사의 우연성이, 그 사소함이 역사를 구성하는 실체가 된다. 수많은 우연과 농담들이 지배하는 우습지 않은 삶들이, 그렇지만 오랜시간이 흐르고 하면 그 우연한 일들이 모두 필연이 되는 도저히 불가지한 것들의 연속인 삶들이 이제는 따져묻고 캐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납득해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어쩌면 내가 썼던 독후감도 김연수의 소설과 같은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노라고 그 조교에게 항의를 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글이란 모두 거짓말일 따름이라고, 김연수나 나나 유령작가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결국 말할 수 없었노라고, ‘뿌넝숴’, ‘뿌넝숴’라고 항의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51. 사다리 걷어차기 - 장하준
(미국 중심의) 패권적 신자유주의라고 명명되는 일련의 경제, 정치 체제들이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분석하고 대안을 내놓는 것은 이제 더 신선할 것도 없는 작업이다. 으레 현대의 지식인이라면 인간소외와 불평등의 문제를 경제구조의 모순과 횡포 속에서 발견해냄으로써 (지식인 각자가 생각하는) 발전된 사회상의 실현을 위한 실천적, 이론적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고 요구된다. 저자가 독자로 하여금 책을 읽고 뜨거운 가슴을 갖게 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것은 슬픈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감성을 자극하여 우리 사회 도처에 널린 문제점들을 폭로하는 일은 사실 그다지 생산적일 것도 없는 일이다. (중략) <사다리 걷어차기>는 시종일관 차가운 책이다. 흔히들 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체제가 현대사회 문제의 가장 큰 핵심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왜 정작 경제학적으로 그 핵심을 정면돌파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경제학 수업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비교우위와 자유무역에 대한 것이지, 그것이 가져오는 폐해가 아니라는 것에 신경쓰지 않았을까. 연중 출간된 경제학 도서중에 가장 뛰어난 작품에게 소여뒤는 ‘뮈르달 상’을 수상했다는 것도, 본래는 영문판으로 출간되어 한국어로 번역된 책이라는 것도 도처에 널린 서적들과 차별화되는 점이었겠지만 ‘가장 경제학스러운 방법으로 고전 경제학을 해체시킨’ 정공법이 마음에 들었다.




52. 88만원 세대 - 우석훈, 박권일
20대들은 정확히 하고 싶은 일이 없고, 확실하게 할 줄 아는 것이 없고, 겁은 많아서 실패는 무진장 두려워하고, 무엇이든 보상이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으면 절대 시작도 하지 않으며, 눈은 높아서 자기가 하는 일도 주변의 현실도 모두 못마땅하고, 시시껄렁하고, 옛날 사람들처럼 고생고생하면서 자수성가할 자신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고, 어떻게 하면 편하고 안정된 직장을 얻어 돈을 벌수 있을까만 궁리합니다. 가장 혈기왕성해야 할 20대가 그런 식이니까 사회가 무기력해지고 경제가 침체되어 불경기가 오는 것입니다. _ 김형태 저서, 너 외롭구나 中

20대에게 ‘네가 노력을 안해서 취직을 못하는 것’이라 공개적으로 조롱하는 ‘문화계 인사’들이 몇몇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청년백수들’에게 카운슬링을 가장한 모욕을 퍼붓고는 그 글들을 모아 책으로 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걸 읽은 20대들 상당수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감읍해한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통쾌한 지적이다’, ‘주옥같은 명문이다’라며 사방팔방 친구들에게 권한다. _ 88만원 세대, 에필로그 中

뭘 해도 안되는 탓에 결국엔 ‘구조가 문제다’라고 말하기는 쉬운 일이다. 거기에 대고 노력도 해보지 않고 항상 편한 것만 찾으려드는 ‘무력함과 이기주의가 문제다’라고 비난하는 것도 쉬운 일이다. 누군가의 책임을 묻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다들 책임을 묻기에만 바빴지 그 책임을 떠안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88만원 세대인 외로운 너, 외로운 우리가 절망하고 있는거다. 그 책임은 도대체 누가 져야하는걸까. 유신세대가? 386세대가? X세대가? 20대가? 박정희가? 노무현이? 이명박이? 글쎄.




53. 남한산성 - 김훈
<칼의 노래>와 <현의 노래>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지만, 김훈의 작품에서 존재의 미학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상당하다. 김훈에게 있어 개별자의 존재란 일정한 선을 따라 탈주하는 ‘순간적’인 반(反)기억의 현상이다. 어떻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있는 것, 그것이 김훈의 존재론이다. 갈피까지 하면서 읽었음에도 독서후기를 구성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것저것 느낀 것도, 할 말도 많았는데 역시나 김훈의 글에 대해 쓴다는 것은 늘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것이 글인가라는 지독한 회의감이 수반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최고의 수사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의 글을 평하는 것이 어쩐지 외람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글에는 내가 쓴 글보다는 오히려 인용해둔 구절들이 더 길었다. 뭐, 그의 글을 짧게나마 읽으면서 이 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누군가에게 선사한다면 아마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경외가 아닐까 싶다.




54. 호모 코레아니쿠스 - 진중권
일상에서 특별함을 발견하는 작업들 - 진중권의 표현을 옮기자면 ‘제 문화를 상대화하여 익숙한 모든 것을 낯설게 보는’ 행위는 작가에게나 비평가에게나, 혹은 운동가에게나 언제나 상상력의 근원이 되곤 한다. 항상 그래왔으며, 그래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것들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 관조하는 시선은 일견 객관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런 연구는 관찰자 자신을 구성원으로 담보하는 사회과학 연구의 방법론적 딜레마에서 다소간 해방될 수 있는 전통적인 피난처이기도 하다. 미학자이자, 우리사회의 저명한 비평가로,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진중권은 자신의 유학시절 경험을 토대로 우리사회를 낯설게 독해하여 자신을 포함한 한국인의 익숙한 고통을 그 근원까지 읽어내려 한다. ‘반성 없이 습관적으로 존재하는 폭력들’에 익숙해진 한국인의 신체를 고통스럽게하여 한국(인)의 정체성을, 그의 직업용어를 빌리자면 미학적 층위를 드러내겠다는 것이다.




55. 퀴즈쇼 - 김영하
올해초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김영하의 신간 <퀴즈쇼>가 출간됐다. 4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분량의 소설을 이토록 빠른 시간내에 ‘제작’해낸걸 보면, 그의 몸속에 소설의 씨앗이 숨어 있었던 것은 아닌가하는 평론가의 농을 그저 실없이 웃어넘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쨌든 김영하 소설의 읽는 재미는 여전했고 숨가빴으며 그의 최신작 중에서는 가장 만족스러웠던, 읽을 만한 작품이었다. [건방진데;] 이십대 혹은 이십대적 삶에 대한 연민을 동기로 시작하게 된 이 소설은 현실적인 의미의 20대들이 살아가는 정치적인 의미의 사회와, 익명의 인간과 인간이 관계를 맺는 가상 사회를 병렬적으로 구성함으로써 한 편의 퀴즈쇼 같은 그들의 희극같은 비극을 이야기 한다. 그러니까 그의 말대로 ‘가장 아름다운 자들이 가장 불행하다는 역설’에 대하여. 현대사회의 면면들을 시뮬라크르한 방법으로 꼬집는 - 대개는 김영하의 소설에서 발견하기 힘든 - 방법적 구성들이 심상치 않았는데, 어쩌면 김영하가 박민규의 소설을 무의식적으로나마 머릿속에 두지 않았을까 하는 제멋대로의 평가를 해보기도 한다. 




56. 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윌리엄 포크너는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문학의 가치를 깨닫게 된지 오래지 않은, 특히나 영미권 문학에 있어서만큼은 문외한에 가까운 독자의 입장에서, 내 삶을 이끄는 작품을 접해본 적도, 혹은 작품의 위대함을 느껴본 적도 없었다고 고백하지만 - 장영희 교수의 충실한 한권의 가르침에서 내 위시리스트에는 또 수십의 문학들이 추가되었으며, 이들이 분명 나를 살아가도록 가르치는 큰 힘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더불어 교정으로 돌아가 가까운 발치에서 그녀의 수업을 들어봐야겠다는 유아기적 감상도 함께 갈피해두련다.




57.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 김용규
철학과 고전이 어감부터 주는 뭉뚝한 편견들을 따뜻한 테라스와 향기로운 에스프레소가 준비된 카페에서 녹여버릴 수 있는 산뜻한 책입니다. 저자의 말대로 ‘오랜 친구와 담소를 나누는 듯한 기분’으로 읽어넘길 수 있는 수준의 내용이지만, 그렇다고 결코 가볍기만한 것들은 아니라서 때로는 삶에 대해서 때로는 사회에 대해서, 고독과 권태와 관계에 대해서 진중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파우스트, 데미안, 어린왕자, 오셀로, 변신, 구토, 고도를 기다리며, 페스트, 광장, 당신들의 천국, 멋진 신세계, 1984,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이상 13편의 고전에 대한 철학적 인식을 통해 문학과 철학과 삶에 대한 궤적을 부드럽게 좇는, 책 제목에서 느껴지는 사이비틱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수작이었습니다. 추천! 




58. 걸 - 오쿠다 히데오
30대 초중반 (일본)직업여성들의 사랑과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 공감할 거리는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일본소설들이 대부분 그렇듯 쉽고 재밌게 읽을만했다. 단편들을 엮어서 드라마로 만들면 인기 있지 않을까 하는 기특한[?] 생각도 했다.







59. 침이 고인다 - 김애란
한층 더 달달하고 담담한 반짝임으로 중무장한 김애란은 ‘특선’처럼 다가와 독자로 하여금 침을 고이게 만드는 이야기들을 선물하고 갔다. 아마 ‘모든 별자리에 깃든 이야기처럼, 그 이름처럼, 내 좁은 동선 안에도 자신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 말하는 그녀 때문에, 좁은 내 열 평짜리 사무실은 떠오를 듯 가벼웠고 그 어딘가에는 내가 말하고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거라 위안 받으며 나는 몇 분간 눈을 감았다.



60. 그 남자네 집 - 박완서

몇 시간을 달음치다 마지막 갈피를 접하며 스러지는 아스라함 때문에 난 장편을 즐긴다. 전율이라고 하기는 조금 거창한 듯도 하지만, 어쨌든 그 비슷한 감정 - 책을 덮고 가만히 표지를 내려다보며 몇 분씩이나 멍하게 반추하게 만드는 그런 애잔함이 좋다. 박완서와는 첫 대면이었지만, 가까운 지인이 평했던 ‘김훈에게 기대할 수 없는 무엇’을 느낄 수 있었던 따뜻함이 여실히 묻어났다. (중략) 지금 살고 있는 곳과 그리 멀지도 않은 내 유년의 공간들을 뜬금없이 그리워했던 스물두살의 나를, 불과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스물네살의 내가 그리워하는 걸 보고 있자니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고, 언제쯤이면 또 지금의 나를 추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고개를 저어보기도 한다. 번잡하고 비루한 일상에서 추억하는 과거는 이토록 아슬아슬하고도 찬란해서 걷잡을 수 없다.




61. 프루스트와 기호들 - 질 들뢰즈

들뢰즈가 프루스트를 탐독했다는 사실은, 하이데거와 활덜린, 푸코와 보르헤스의 관계만큼이나 철학과 문학의 상관관계를 잘 나타내주는 하나의 지표처럼 읽힌다. 들뢰즈의 <프루스트와 기호들>은 시기적으로 최초의 판본이 <니체와 철학>, <칸트의 비판철학>이 나온 시기와 겹치며, 최후에 추가된 장은 <앙띠오이디푸스>가 완성되고 <천의 고원>의 첫 부분들이 쓰여지던 시기와 겹친다. 이렇듯 들뢰즈는 그의 철학에서 줄곧 프루스트와 관계하고 있었으며, <프루스트와 기호들>은 들뢰즈가 당면한 철학적 문제들을 문학을 - 정확히는 프루스트와 카프카의 - 통해 풀어나가는 방법론적 연구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저작이다.

아직까지는 들뢰즈가 비트겐슈타인보다 더 어렵다. 아마, 언젠가 철학을 ‘배워 볼만한 것’이라고 말하는 날은 내가 들뢰즈와 칸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날이 되지 않을까.

-------------------------------------------------

02|병장 정찬용  
Gooooooooooooood!! 정말 멋지군요! 상병생활 힘드셨을텐데 이렇게 수준높은 것들을 이렇게 많이~

그래도 작년과는 달리 올해에는 이중에 읽은것들이 꽤 많이 눈에 띄네요. 다행 (땀)

저도 내년엔 이렇게 자랑스런 결산을 해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어요!
2008-01-18 01:17:40  

02|상병 정영목  
조지 오웰은 무정부주의자(통일노동자당)입니다. 공산주의자(통일사회당)가 아니지요.

"정작 오웰 자신은 스페인에서나 그토록 열광적이었으면서 미련한 후학들에게 회의를 갖게 하는지 의아하기도 했습니다."에 약간 걸려서 답글 남깁니다.
2008-01-18 07:53:49  

02|병장 황인준  
잘 읽었습니다. 저하고 정확히 9권이 겹치네요(웃음).
정말 다양한 장르로 많이 읽으셨네요. 이걸 보니 저 역시 결산을 남기고 싶어지군요.
2008-01-18 08:39:23  

02|병장 황인준  
아! 그러고보니 카테고리 지정을 안해놓으셨네요.
2008-01-18 08:58:58  

01|병장 윤원일  
글이 다 안올라가는데 집중하다보니, 깜빡했어요. 근데, 독서후기 카테고리가 맞을려나요.
2008-01-18 09:47:47  

03|병장 김영훈  
알찬 결산이군요. 추천 누르고 갑니다. 
2008-01-18 10:05:46  
  
병장 장재혁
오호..잘 보았습니다..
겹치는 목록도 있고, 이런책도 있구나! 하는 것도 있고..

저도 추천한방 꾹!
2008-01-18 10:25:18  

02|병장 심수홍  
지금 88만원세대 읽고 있는데

주위에 많은분들께 권해드릴 생각입니다.
2008-01-18 13:41:26  

02|병장 이현승  
'트랜스:아시아 영상문화(TV와 스크린을 통해 아시아를 횡단하고 통과하기 그리고 넘어서기) - 김소영'

허허.. 저도 이책을 우연히 접했는데 '이소룡'에 관한 논문이 특히 흥미롭더군요. 

저자가 좀 과하다 싶을 정도의 논의로 이끌어 나가지만 그렇게도 볼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8-01-18 17:21:54  

병장 김현진  
아. 2년여의 군생활을 부끄럽게 만드는 멋진 결산글이군요. 반성하고, 좀 더 배워야 겠습니다.

2008-01-18 21:27:40  

03|병장 문혁  
결산주의자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한 지 60일, 그 전부터 읽을 책들과 결심한 후 읽은 책들.. 역시 제겐 결산은 무리였나 봅니다. 결산이 어렵습니다. 읽었다는 건 표현 하겠는데, 제가 느낀걸 표현 하려고 하니까 참 힘듭니다.
2008-01-22 14:36:54  

03|병장 문혁  
44.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 - 프리드리히 엥겔스,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혹여 읽어보셨을지도 모르겠지만, 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전 철학의 종말 - 프리드리히 엥겔스 도 추천하고 싶군요. 마르크스 주의의 핵심인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이 어떤 경로를 거쳐서 헤겔의 변증법에서 유물론적 변증법으로 이행되는지를 그 사이에 놓여있는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의 철학을 언급하면서 설명해 주는 내용입니다. 맑시즘을 이해하려면 (공산당 선언)과 더불어 가장 먼저, 그리고 필수로 읽어야 하는 고전이라고 하더군요. 특히나 변증법적 유물론이 무엇이고, 그것이 헤겔의 변증법에서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독자적으로 발전하는지에 대해서 궁금한 막시즘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원한다면 한 번 쯤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책의 추천사를 넣었습니다. 웃음)
2008-01-22 14:41:23  

03|병장 김영훈  
결산이 꼭 그렇게 어려운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한두 줄이라도 감상을 남길 수 있다면, 그런게 모여서 결산이 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그렇다고 잘 되고 있는건 아닙니다만.. 왠지 너무 어렵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덧글 남겨봅니다.
2008-01-23 10:39:56  

04|상병 이태형  
...과연 내가 독서광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끔 해주는 글이었습니다.
추천 쾅!
2008-02-11 16:21:36  

03|상병 진종헌  
여러가지 안목을 높일수 있어서 참 좋네요(웃음)

하나씩 사서 봐야겠다는..너무 급하지 않게(웃음)
2008-03-17 08:4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