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베스트-독서후기] 도서 추천 - 장대익, [다윈의 식탁]  
상병 김예찬   2008-12-26 17:38:03, 조회: 157, 추천:2 

  장대익, [다윈의 식탁] , 김영사, 2008






'다윈'이나 '진화'는 인문계 고등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인문학을 공부한 '문돌이'였던 저에게 정말 먼나라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기독교인으로 태어난 저 자신과 역사적인 현실 기독교 사이의 갈등은 저에게 결국 리처드 도킨스의 무신론적 저서들을 접하게 했고, 그 책들은 저를 무신론자로 개종시키지는 못했지만 '불 같은 도킨스의 세례'로 저에게 진화생물학에도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진화론이 가설이 아닌 과학적 상식이 된지 오래인 지금이지만,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부분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해묵은 지식을 어렴풋이 떠올릴 뿐이구요. 특히 과학에 대한 관심이 다른 어느 나라 보다 '실용'적인 것에 국한된 한국이기 때문에 이러한 경향이 더한 것 같다- 는 것은 개인적인 생각이구요, 아무튼 오늘은 최근에 나온 진화생물학에 대한 좋은 대중 교양서를 소개할까 해서 이렇게 키보드를 두들겨보게 되었습니다.

최근 교양서 베스트셀러 순위에서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장대익 교수의 [다윈의 식탁]이 바로 그 책인데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은 잘 알지 못하는 바로 그 '진화론'에 대한 논쟁거리들을 모두 다 모아놓은 책입니다. 그렇다고 딱딱하고 재미없는 학술 서적이라고 생각하지는 마시길. 이 책은 "다윈 이후 최고의 진화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 박사의 장례식을 계기로 한 자리에 모인 우리 시대의 지성들, 특히 그 유명한 [이기적인 유전자]의 리처드 도킨스와 언제나 그의 이론에 대립각을 세우며 위대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해 온 하버드대학의 스티븐 제이 굴드 박사가 일주일 동안 대면 토론을 벌인다는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각각 도킨스 팀과 굴드 팀으로 나누어진 양측 토론자들의 면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 도킨스 팀 - [통섭]의 에드워드 윌슨, 언어 심리학의 거장 스티븐 핑커, 호혜성 이론의 창설자 트리버즈, 진화이론의 '근대적 종합'의 한 주역이었던 에른스트 마이어 등
   굴드 팀 - 하버드의 대표적인 진화유전학자 리처드 르원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우리 시대의 지성 노엄 촘스키, 집단선택론의 새로운 주창자 엘리엇 소버 등

진화생물학에 대해 살짝이라도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일주일이라는 대토론회를 벌였다는 사실에 대해 경악과 함께 "아니, 난 그런 토론회 따윈 들어본적 없다구?!"라고 당황해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안심하시길. 이러한 토론이 벌어졌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장대익 교수의 픽션일 뿐입니다. 장대익 교수 역시 이 대토론회의 서기 역을 맡았다는 설정, 그리고 본인의 코멘트를 통해 토론을 정리하면서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고 있기도 하구요.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 토론의 발언들은 토론의 가상 참여자들이 책이나 인터뷰 등에서 분명히 이야기한 사실들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믿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적응, 협동, 진보, 선택, 종교 등 진화생물학의 각 분야에서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문제거리들에 대해 참가자 개개인의 학술적인 대립 뿐 아니라 사적인 감정들마저도 여실히 드러나는(!) 대논쟁이 펼쳐지는데 어찌 재미 없을 수 있겠습니까.

이 토론회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대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강간도 적응인가? - 인간의 마음이나 행동, 그 모든 것은 과연 자연 환경에 적응한 결과인 것일까?

이기적인 유전자로 테레사 수녀를 설명할 수 있나? - 협동이라는 현상을 통해 보았을 때, 자연 선택은 과연 유전자에만 작용하는 것인가? 집단적 수준에서 자연 선택이 이루어지진 않을 것인가? 

유전자에 관한 진실을 찾아서 - 유전자의 정의는 과연 무엇이고, 과연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인가? 유전자와 환경의 영향력 중 무엇이 우세한가?

진화는 100m 경주인가, 넓이뛰기인가? - 진화는 천천히 점진적으로 일어날까? 아니면 일정한 시기에 도약하듯이 진행되는 것인가?

박테리아에서 아인슈타인까지 - 진화는 과연 진보와 동의어인가? 과학은 과연 객관적 진실을 추구하는 학문일 뿐인가, 아니면 사회에 의해 구성되는 것인가?


이러한 대주제들을 걸쳐놓고 양 측의 토론자들이 펼치는 진검대결은 매우 흥미진진합니다. 굴드와 도킨즈의 '전설적인 대립'을 확인한다는 측면에서도 매우 재미있구요. 장대익 교수는 특히 굴드와 도킨즈에 대해서는 특별히 페이지를 할애하여 어쩌면 근시일 내에 과학 위인전에 등장할지 모를 현대 과학사의 두 중요한 인물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줍니다. 생물학에 약한 초보자들 - 예를 들어 저와 같은 - 도 쉽게 토론을 따라갈 수 있도록 적절한 용어 설명과 친절히 관련 서적 소개까지 이루어지고 있구요.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전형적인 '문돌이'인 제가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하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이 책은 진화생물학, 특히 도킨즈의 관점에서 본 '종교'에 대한 메시지를 간명하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특별히 [만들어진 신]이나 기타 도킨즈의 글들을 통해 그의 종교관을 확인할 필요 없이 이 책 하나면 간단히 종교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둘 수 있습니다. 둘째로, 이 책은 과학과 사회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비판적 사고의 단초를 제공해줍니다. 특히 다윈의 진화론과 진화론이 지지받았던 당시 영국 사회 분위기에 대한 굴드의 이야기는 '과학적 진실'을 맹목적으로 떠받드는 작금의 현대 사회에 대해 따끔한 경고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유전자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 간략하고 알기 쉽게 정리해주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과학 교과서의 서술적이고 기능적인 설명과 다르게, 유전자에 대한 정의가 각각의 학자들 사이에 차이가 존재하며 그 역할과 기능도 理論에 따라 異論이 많다는 사실, 그리고 유전자결정주의 / 유전자환원주의라는 '위험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정보도 알려줍니다.

이러한 책의 장점들은 과학에 큰 관심이 없는 우리가 쉽게 엘리트주의적 과학에 의해 속아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우리가 '앉아서 당하지 않도록' 시민적 상식을 키워준다는 점에서 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황우석 사태'나 과학윤리와 관련되어 논쟁이 되고 있는 여러 가지 법안들 - 안락사 / 인간 복제 / 인체 연구 수준의 제한 등 - 에 대하여 침묵하거나, 언론플레이에 넘어가게 되는 일이 없도록 '더 깊고 넓은 시민적 상식'을 주장해온 저에게 [다윈의 식탁]처럼 쉽고 재미있으면서 어느 한 쪽의 편에 서지 않고 다양한 의견을 보여주는 책은 치명적으로 마음에 드는 책입니다. 

마지막으로 [통섭]의 역자로서의 능력 뿐만 아니라 교양서 저술가로서도 훌륭한 능력을 보여준 장대익 교수에게 감사하면서, '문돌이'로서 제 자신의 공부들, 예컨대 역사 / 사회학 / 정치학 / 철학 / 경제학의 제영역에서 진화생물학의 성과들을 어느 정도 접목시킬 수 있을지 좀 더 고민해보아야 겠습니다. '다학제간 연구', '통섭' 등의 개념들이 지금처럼 일정 부분 공허한 울림이 아닌 실천적인 목소리로 공부에 쓰일 수 있도록 말이지요.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1-17 21:06)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16:22 

 

상병 정근영 
  예찬씨 글은 언제나 어려웠는데!(울음) 그래도 이번 것은 조금 낫군요 
너는 주로 소설쪽에 편중된 책읽기를 한 탓에, 이런 전문적 지식을 다룬 책들이 사실 좀 낯설어요. 입궁한 후 너무 취향대로만 읽지 말고 여러분야로 견문을 넓혀 보아야 겠다고 다짐했지만, 어느새 소설을 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네요. 

내일 1.2g으로 밖을 돌아보고 오는 김에, 이 책도 한 번 살펴봐야 겠네요. 
감사해요(웃음) 
앞으로도 좋은 책들 소개해주시길 부탁드릴게요 2008-12-26
21:58:59
  

 

상병 이지훈 
  다학제간 연구..! 

이과 분야(수학, 화학, 물리, 생물 등)는 거의 잼병인지라 가능한 많은 지식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쉽진 않더군요. 허허 얼마전 '짧게 풀어 쓴 시간의 역사' - 스티븐 호킹 읽다가 이게 어째서 더 쉽게 읽으라고 나온 책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대부분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던져버린 기억이 나는군요. 원래 독서후기 쓰고 싶었는데 말이죠 흑 

이 책도 한 번 도전해봐야겠습니다. 물리학과 생물학이 우리의 사고, 삶, 사회, 역사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을 요즘 뼈저리게 느끼고 있거든요. 

감사합니다 좋은 책 정말 많이 퍼주시는군요(?) 2008-12-26
22:11:21
  

 

일병 김태경 
  재미있어요. 과학으로 인문학을 정의 한다는건. 저희 과 교수님 한분이 생각나네요. 열역학으로 정치와 스타크래프트를 정의하셨었죠.(웃음) 특히나 이학은 그렇잖아요. 자연을 관찰하고 법칙을 찾아내는... 그런 관점에서 다른 사회적 현상들에도 충분히 적용가능하다고 생각해요. 2008-12-27
03:51:24
  

 

일병 이석재 
  글 잘봤습니다. 제 생각을 첨부하자면, 진보와 진화는 어쩔땐 역방향으로 흘러가는거 같기도 합니다. 2008-12-27
14:08:14
  

 

상병 김용준 
  과학에 대한 생각은 어려워서 안드로메다에 보낸지 오래인데도 쉽게 풀어논거 같아서 읽기 쉽네요.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다. 상식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후후. 2008-12-29
11:38:28
  

 

병장 정영목 
  전 대체로 굴드 쪽에 손을 들어줍니다.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대"라는 그의 말은 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어요. 물론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론도 꽤 설득력이 있습니다만. 2008-12-30
09:24:38
  

 

병장 이동석 
  두둥- 이걸 이제 보다니- 2009-01-15
20:2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