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베스트-내글내생각] '이곳'과 '그곳' 그리고 '사람'  
병장 이찬선   2008-12-16 17:18:32, 조회: 299, 추천:4 

궁 생활의 일상적인 권태로움과 극명히 대조적으로, 우리가 잠시나마 향유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곳’ 으로의 설탕 나들이는 언제나 피안의 그것을 의미한다. 특히 본인과 같이, 나와 저녁밥 사이의 거리가 흡사 영원히 되돌아오지 않을 듯 날아만 가는 ‘후지산 대폭발 슛’을 바라보는 허망한 심정과 비스무리 할 때면 더더욱 그렇단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면 본인의 나들이는 어느새 일탈을 꿈꾸는 외도라기보다는 일정한 패턴으로 고착화 된 공식과 같은 것이 되었다는 점이다. - 오롯이 형식적인 면에서만 그렇다는 것이다. 허나, 이리도 나들이 전날만 되면, 어린이 날 전날 밤에 아빠가 나에게 안겨줄 ‘유령의 성’ 레고를 상상하며 장밋빛 내일을 꿈꾸는 꼬꼬마의 설렘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 분명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나들이는 형식적인 고착화 정도야 가볍게 코웃음 치며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매력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게 분명하다. 그것이 무엇일까? ‘살려줘’로 대변되는 이곳에 대한 깝깝한 내 속내의 반대급부로 인해, 간이며 쓸개며 모든 것을 다 때주는 무한 희생, 봉사 그리고 덤으로 세계 최고의 아양까지 손에 넣은 것을 보면 그 매력적인 힘은 자기 존재 내에서 자신을 정립하기까지 한다. - 특별 설탕의 존재는 그대가 있음을 비추는 반증이다. 역시나 그는 위대하도다! 그대가 있기에 난 휴머니스트로 다시금 태어난다!



나들이의 위대성을 열렬히 예찬하는 것은 이쯤으로 그만두기로 하고, 그와는 조금 다르게 그 근본 동인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 내 무식한 머리로써는 아무리 생각해봐야 그것이 ‘사람’이라는 두 글자밖에 뱉어내지를 못하니, 내가 어느새 휴머니스트가 되긴 되었나보다. 후후. 컴퓨터 프로그래밍 속에서 입력되는 명령어 마냥, 냉험한 일갈의 양태를 지니고 우리에게 부과되는 소소한 언도적 명령에서부터 ‘국가’의 부름이라는 이곳 담론 - 그것이 비록 가장된 것일지라도 - 의 중핵을 지니고 있는 사명으로까지, 완벽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행의 한복판에서 우리가 점하는 위치는 사람1, 사람2, 사람3... 이라는 양화의 낭떠러지 끝이다.
점차 옅어져만 가는 ‘존재 의미’가 서서히 무취색의 흐리멍텅한 눈동자에 드리워질 때 우리가 움켜쥘 수 있는 구원의 동아줄은 결국 ‘나들이’이다. ‘사람 냄새’가 풀풀 풍기는 그들과의 언어적, 신체적 어울림 속에서 바코드에 쓰여진 숫자로 표시되는 상품 정보 같던 내 존재의미는 점차 팔색조의 날개짓 마냥 다채로워 질 수 있다. 허나 이렇듯 나들이에 꼼짝 없이 포획된 우리의 처지가 그리 녹록치 못한 것임은, 그것에 대한 편집증적 집착과 이곳에서 제시되는 롤-모델의 성격의 합당성이 정확히 반비례 관계라는 것에서 나타난다. 이 둘 사이에서 형성되는 긴장 관계의 원만한 조율 속에서 난 ‘병’들의 우두머리라는 해골탑 위로 올라와 앉을 수 있게 되었다. 난 다시금 아주 숙련된 솜씨로 구원의 동아줄을 움켜쥐었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설렛다. 그 설렘은 내가 지금껏 움켜쥐고 있던 동아줄이 썩어버린 동아줄이라는 것을 알기전까진, 쉽게 가시지 않았다.



“벌써 저녁 먹은거냐?” 근 1년이라는 시간의 공백속에서 나를 대하는 형의 첫마디였다. 그 한마디가 궁인들에게 얼마나 희망적인 동시에 현실의 위치를 여실히 깨닫게 해주는 잔혹한 것인지, 그 이중의 의미에 잠시간 몸에 소름이 돋아 말문이 막혔지만, 형을 만나면 꼭 한 대 시원스레 때려주어야 겠다는 생각만큼은 분명해졌다. 결국 나의 복수심은, 밥과 술을 산다는 형의 제안과 타협하여 ‘same,same'이 되었지만. 잡다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던 내가 조금은 답답해 보였는지 형은 바람이라도 좀 쐬자며 차를 해안도로 쪽으로 몰아갔고 잠시나마 자유의 몸이 된 나는 짭쪼름한 해풍의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그렇게 조금을 달려 도착한 곳에는 낯익은 다리 하나가 놓여져 있었는데 그 다리는 송도 신도시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인천을 동북아 물류의 허브 도시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의 일환으로 엄청난 부지의 바다를 매립하여 세운 신도시로 들어가는 다리 위를 건너면서 형은 무엇인가 조소인지 아니면 고소인지 모를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저기 송도 신도시에 사는 애들은 말이야, 송도 신도시에서 나올 때 그러니까 이 다리를 건너서 밖으로 나갈 때 뭐라고 하는 줄 알아? 나 인천가요. 그런다더라.” 
“으응?” 단발마적 신음소리로 내 대답을 갈음했다.



뜨뜻미지근한 정체 모를 소리로 대충 얼버무렸지만, 형의 그 말은 어느새 내 뇌리속에 박혀, 거칠디 거친 이물감을 일으켰다. 흡사 손가락에 찔린 나무가시가 자꾸만 건들여지듯이. “인천 간다”라는 그들의 말 속에서 ‘인천’이 ‘송도신도시’를 포함하는 행정구역상의 한 범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할 진대, 그렇다면 그들에게 이 둘의 공간성을 가르는 괴리감 그 심연에는 무엇이 놓여있을까? 중첩된 이미지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국제적인’과 ‘자유경제’라는 슬로건이 머리 위를 뒤덮었고, 그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아파트 분양권을 손에 쥐기 위해 며칠 밤을 세워가며 자신의 육신의 안락함을 꿈꿔왔지만, 그 속에서 떠밀린 사람들의 등쌀을 이기지 못한 분양 사무소의 유리문들은 쨍그랑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나야 했다. 그 와중에 자리다툼으로 인한 멱살질 또한 빠지지 않았지만, 지상낙원처럼 여겨지는 그 아파트를 각자 차지한 그들은 어느새 얼마의 프리미엄을 논하며 아주 고상하게 서로 침을 튀기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그들의 공감대는 곧 들어서게 될 외국인 사립 자립 고등학교의 내국인 비율에 그리고 그것이 입시전쟁 속에서 얼마만큼의 아웃풋을 내 주느냐로 이어질 것이다. 후후. 다르긴 다르구나.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한창 건설 중인 타워펠리스의 회색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여기저기 난립한 크레인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기란 여간 쉽지 않아 땅으로 시선을 돌리니, 머리 위에 삐죽삐죽 솟아난 타워펠리스와 크레인이 인공호수에 반사되어 보인다. 흡사 내가 그것들을 짊어지고 있다는 듯이. 
‘인공호수에 비친 환영의 그림 속에서도 그것들은 내 위에 있구나. 하긴, 무엇이 새삼스러우랴. 해방의 광장에서 우리의 냄새를 지우고는 그것들에게 자리를 내준 것은 바로 우리가 아니던가?’ 
아까부터 형은 인공호수 위에 세워진 경회루 비스무리한 - 사실 외형적으로 보자면 거의 흡사했다 - 정자 건물을 보며 난리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날씨 덕분에 실제 정자 건물과 호수에 비친 정자 건물은 거의 완벽한 데칼코마니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은 사진기를 들고 오지 않은 것을 못내 아쉬워하며, 나에게 화각과 조리개 그리고 셔터스피드를 논하며 연거푸 자신의 망막의 셔터를 눌러대곤, 사진을 찍으러 다시 와야겠다는 다짐으로 아쉬움을 달래는 듯 했다. 하지만 심드렁한 표정의 내가 못마땅했던지, 이내 한마디 툭 던진다.
“넌 미적 감각이 없어.” 
황급히 담배 한 개피를 꺼내 물고는 불을 댕겼다. 사그라지는 담배 연기 저 편으로 너울진 내 모습에서 더 이상 설렘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담배 연기 사이로 보이는 그곳은 더 이상 나들이의 그곳이 아닌, 내가 떠나왔던 곳, 바로 양화의 낭떠러지 끝이었다. 



쓰러지는 몸을 서로에게 기댔다. 사람이 그리운 탓에 퍼부은 술 때문일게다. 잘 다니던 회사를 이번 달로 정리하고 형은 고시원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단지 서로의 담배연기만이 우리를 동하게 할 뿐이었다.  
“네가 있는 곳이 힘든 곳이라는 걸 잘 알아. 하지만 네가 그 곳에서 나오게 된다면, 더 잘 알게 될 거야. 이곳과 그곳의 경계 따위는 애초에 없었으니까.”
헤어지기 전 형이 나에게 건넨 충고 아닌 충고였다.
뚝. 썩어버린 동아줄이 끊어졌다. 
알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회 구조를 재생산하는 메커니즘, 그 한가운데를 점유하고 있는 것이 이곳의 존재이유란 것을. 하지만 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알지 아니하고자 했다.’  결코 무엇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이곳의 비합리성과 폭력성을 ‘이곳’이라는 공간적 특수성으로 한계 짓기 위한 교두보였으니까. 이러한 교두보는 물론 ‘이곳’의 부정성에 기생하며 해골탑을 밟고 올라온 나를 위한 변명이기도 했다. 그래서 존재하지도 않는 경계를 짓기 위해서 그토록 부단히도 나들이를 갈망했고, 자기 최면을 걸었다. 정작 우리를 양화의 낭떠러지 끝으로 몰고 있는 것에 나 또한 속해있음을 눈 감은채로.



돌아오는 버스 안, 나와 같이 사는 녀석들의 얼굴을 한명 한명 떠올려 보았다. 다들 비슷한 또래이지만 참 가지각색의 놈들과 부대끼며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미처 깨닫지 못한 그것이, 내가 만들어 버린 경계로 인해 나와 함께 사는 그 놈들 또한 공간적 특수성으로 인해 나의 사유에서 억압받아 왔음을 반증하고 있었다. 무엇인가 거창한 것을 약속하는 것은 너무도 쉽게 오만함의 함정으로 빠져들곤 한다. 그러니 그 놈들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 그 놈들과 진득하니 앉아서 이야기 하는 것으로 시작해 보려고 한다. 그것이 하물며 고단한 삶의 투덜거림이든, 정말 못된 광부에 대한 욕이든, 여자친구와의 고민이든. 물론 그것이 이곳에 대한 진정한 고민과 통찰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개혁과 그것을 넘어선 혁명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사람을 향해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다시금 되뇌인다. 내가 그들에게서 또 그들이 나에게서 가끔은 향기로운 하지만 가끔은 꾸리꾸리한 사람 내음새를 맡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우리 인간됨의 진정성은 족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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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9:01:40 

 

상병 박장건 
  역시 사람이 재밌죠.. 2008-12-16
22:55:55
  

 

상병 이지훈 
  이곳과 그곳이 다른 곳인가. 그리고 이곳과 그곳의 내가 모두 나 자신이긴 한건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내가 '이곳'이니까 라고..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요 

여기는 여기니까 하고 제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 혹은 주변 사람들을 너무 쉽게 생각해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휴 

가장 최근 단물 빼먹은 날과 다음 단물 빼먹는 날의 시간적 차이가 크면 클수록 공간적 특수성으로 한계짓는 머릿 속 작업이 더욱 박차를 가하는 것 같아요 흑 

아...저도 지금 제 옆에서 컴퓨터를 투닥투닥하고 있는 제 후임프부터 똑바로 바라봐야 하겠어요 진득하니...말이죠 하핫 

좋은 글 잘봤습니다 흐흐 2008-12-16
23:48:03
  

 

일병 김예찬 
  상관 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작년 여름에 펜타포트 가서 송도 신도시쪽을 바라보니 위압적인 고층 빌딩들이 쑥쑥 자라나는 모습이 마치 에반게리온에 나오는 네오 도쿄의 모습 같아서 SF 적이더군요. (네오 도쿄 맞나요? 제3동경시였나? 아무튼.) 송도 신도시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연수구의 상대적으로 황량한 풍경은 송도 거주자들이 무언가 특권의식을 느낄만 하긴 하더군요. 2008-12-17
08:35:17
  

 

병장 문두환 
  어제 밤에 보고 댓글을 달려고 했는데 마침 광부님이 또 부르셔서 나가다보니 이제서야 인사드리는군요. 먼저 반갑습니다(방긋). 

이곳이 저곳의 축소판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처럼 어쩌면 밖이나 안이나 별반 다를 바 없이 구린내가 나는 곳은 마찬가지이긴 하겠지요. 이 공간에 대한 불합리성을 인정해버림으로서 자신을 정당화 시키는 방패막을 만들어 내고 최소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마저 회피하는 우리의 모습을 말하는 것 같아 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합니다. 궁에 관련되어 그것에 관해 사유했던 윗 책마을 선배들의 글만큼이나 다가오는 글이었네요. 한번쯤이라도 이곳의 그리고 자신의 모순에 대해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상병 최후의 날>과 <우리들의 결코 명예롭지 않은 그림자를 위하여>는 아프게 읽혔을테니까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08-12-17
08:40:04
  

 

병장 양홍석 
  궁과 사회, 구분을 나누는 괴리는 전혀 쓰잘데 없는 거라고 아버지가 말씀하셨죠. 
넌 단지 자기자신을 단련시킬수 있는 2년의 시간을 얻은거라고도 말씀하셨죠. 
전 동의하지 않았어요, 사회에 있다면 더 잘할수 있을것 같다고, 젊은 날에 이게 
무슨짓인지 모르겠다고, 애써 부정하려 했어요. 
그런 부정속에서 벌써 1년 반을 허송세월을 보내버렸어요, 이제 조금씩 조금씩 알겟네요 
한탄을 하며 장벽을 바라보는 동안에, 수많은 기회의 시간들이 사라져버렸다는걸요. 

글 잘 읽었습니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또다시 느끼게 해주시는군요! 2008-12-17
09:48:47
  

 

병장 양 현 
  아직 느끼기엔 멀었어요. 
한참 이요. 
그런데 뭐 벌써 느끼라고 이러시나요. 

전 당장에 C버튼을 누르고 3을 누를래요. 그리고 입으로 외쳐야죠. 
'거절한다.' 

이상 서든어택중에서였습니다. 전, 아직이라구요. 2008-12-17
10:44:35
  

 

상병 김용준 
  잘 보고 갑니다. 그래요. 제 생각에도 안이나 밖이나 거기서 거기에요. 어짜피 사람 사는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면 착한사람, 어진사람, 좋은사람, 사악한사람, 간사한사람, 비열한사람등등...어디든 있다는거죠....그러니 여기서 어느정도 단련? 해나가는건 어떨까요? 2008-12-17
14:34:20
  

 

병장 이동석 
  추천을 날리겠습니다. 


[사회 구조를 재생산하는 메커니즘, 그 한가운데를 점유하고 있는 것이 이곳의 존재이유란 것을. 하지만 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알지 아니하고자 했다.’ 결코 무엇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이곳의 비합리성과 폭력성을 ‘이곳’이라는 공간적 특수성으로 한계 짓기 위한 교두보였으니까. 이러한 교두보는 물론 ‘이곳’의 부정성에 기생하며 해골탑을 밟고 올라온 나를 위한 변명이기도 했다. 그래서 존재하지도 않는 경계를 짓기 위해서 그토록 부단히도 나들이를 갈망했고, 자기 최면을 걸었다. 정작 우리를 양화의 낭떠러지 끝으로 몰고 있는 것에 나 또한 속해있음을 눈 감은채로.] 

가슴으로 알지 아니하고자 한- 사람의 딜레마를 공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