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베스트-내글내생각] 온라인 상에서의 논쟁에 대하여  
일병 이정환   2008-12-23 13:25:30, 조회: 260, 추천:0 

작년 쯤에 써서 블로그에 올렸던 글입니다. 엉성하고 깊이도 없어 낯부끄러운 글이지만 이 글에 담긴 몇 가지 생각은 아직 유효하기에 한번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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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논쟁 당사자들과 그것이 전개되는 과정에 따라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첫째는 논리와 합리성을 중시하며 진심으로 자신의 글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가질 수 있는 이들이 논쟁의 당사자가 되는 경우이다. A가 예리한 문제의식이 담긴 시의적절한 글을 인터넷에 올린다. 그 글과는 다른 의견을 가진 B가 A의 글을 논박한다. B의 논리에 내재한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렇게 논쟁은 건설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어 논쟁의 결말과는 관계없이 논쟁 당사자들은 각기 긍정적인 지적 자극을 받게 된다. 두번째는 논리와 합리성은 무시하고 결점이 있는 글을 올린 A에게 B가 그 결점을 지적하면서 시작되는 논쟁이다. 이 경우엔 대개 A가 B의 글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외면함으로써 논쟁은 어느 순간부터 논쟁의 외피를 쓴 B글의 공개강의가 되어 버린다. 마지막, 쌍방이 모두 논리와 합리성 따위엔 관심이 없는 경우이다. 마지막 유형은 논리싸움이라기 보다 자존심을 건 감정싸움이라고 하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대부분 두번째나 세번째 유형에 속한다. 두번째, 세번째 유형의 논쟁을 지켜보면 어느 일방이나 쌍방이 본질적으로 똑같은 말을 언어만 바꿔서 계속 반복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게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논점과는 상관없이 상대방의 인격을 공격하는 표현이 등장하기까지 한다. 대부분의 논쟁이 이렇게 소모적으로 전개되는 이유는 논쟁의 일방 혹은 쌍방 모두가 논리적 무결성을 중요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애초에 글쓴이는 글의 내용엔 관심이 없었다. 그가 관심있었던 것은 글을 통해 획득되는 인정, 이미지였다. 당시 화제가 되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 발언한 어떤 이는 애초에 그 이슈에 진지한 문제의식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 발언함으로써 획득되는 '의식있는 참여적인 이미지'와 그에 따른 인정, 공감을 원했던 것이다. 물론 그 이슈는 정교한 사고를 요해서는 안되며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합의가 되어있기에 전혀 민감하지 않은, 말랑말랑한 것이어야 한다.

  이런 이들에게 있어 글의 내용은 부차적일 것이다. 애초에 논리나 논점 따윈 안중에도 없었으니 상대가 논리적으로 지적하고 들면 감정을 앞세워 상대의 글을 제 입맛에 맞게 오독하고, 상대 글의 논리적 맥락과는 상관없이 따온 구절을 토대로 '자신의 감정과 자존심'을 방어하기에 바쁘다. 따라서 논리적 무결성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C에게 D가 논리적 결점을 지적하는 것은 별 소용이 없다. 서로가 중요시하는 전제와 화법부터가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알면서 왜 논쟁을 하느냐.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C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논쟁이 두번째와 세번째 유형으로 전개되는 경우 난 C가 내 논리에 설복하리라는 기대를 처음부터 접어 버린다. C와 대화하고 C를 설득하여 생각을 바꾸게 할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이다. 내가 의식하는 것은 C가 아니라 '말없이 논쟁을 지켜보고 있는 익명의 독자들'이다. 즉, C와 나, 그 어떤 쪽에도 편향된 정서를 지니지 않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논쟁을 지켜보고 있는 이들이다. 입은 C를 향하고 있되, 눈은 논쟁의 외부를 향해 있는 것이다. 

  단지 부술 뿐이다. C글의 논리적 외피를 파괴하며 '논리적인 듯이 글을 쓰고 있는 상대는 사실 논리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고 그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할 뿐'이라는 사실을 '말없이 논쟁을 지켜보는 익명의 독자들'에게 폭로할 뿐이다. 파괴되는 C글의 외피를 보며 정서적으로 어떤 쪽에도 기울어져 있지 않고 중간지대에 서있는 대다수의 성실한 독자들은 C논리의 허구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따라서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 지에 관계없이 논쟁은 중립적 위치에 있는 제3자가 C논리의 결점과 C주장의 허구성을 깨달을 정도의 수준에서 종결된다. 애초부터 논리에 관심이 없었던 데다가 논쟁 외부를 보지 못하는 C는 아무리 정교하게 논박해도 끊임없이 '자신의 훼손된 자신감'을 회복, 방어하려 들 것이기에 D는 자신의 해설글이 정규교과를 정상적으로 이수한 정도의 평범한 독자들에게 충분히 이해될만한 수준이라고 판단되면 미련없이 논쟁을 끝마쳐야 한다. 잔말은 필요없다.

  그렇다고 철저하게 논리에만 집중해버리면 안된다. 로고스보다 파토스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 때문이다. 자신의 글이 제3자들에게 미칠 정서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논리만으로 밀어붙인다면 그 글은 지적 마스터베이션을 위한 C의 글과 다를 바 없게 된다. 내용이 아무리 정당할 지라도 선택한 어휘와 표현들이 제3자들에게 반감을 불러 일으킨다면, 논쟁 상대와 익명의 독자들 그 누구에게도 논리를 통해 자신의 문제의식을 호소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파토스가 로고스에 선행하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논쟁글을 쓸 때는 자신이 선택한 어휘와 표현, 구성이 제 3자들의 정서에 미칠 파장까지도 철저하게 고려하여 글을 써나가야 한다. 내가 글쓰기 능력이 부족하다고 자조하는 것은 이와 같은 전략적인 글쓰기 능력이 아직 미숙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인터넷 상에서의 논쟁에 회의적이거나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얻는 것 하나도 없이 감정만 소모할 뿐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이성이 욕망을 누르기는 어려운 일이기에 내 글에 동의, 동감하는 이들도 막상 실제 현실에서 어떤 실천을 할 지는 알 수 없다. 열심히 머리 굴려가며 최대한 전략적으로 글을 써도 그 글의 현실적 유용성은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내 이상을 이 세상에 관철시키고자 하는 나는 그럴 수 없다. 이상은 저 높이 있으면서, 모순된 현실을 바꾸고 싶으면서 현실적으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내가 넋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실천가들이, 지식인들이 아무리 비웃어도 어쩔 수 없다. 위대한 사람들이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동안, 못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이것 밖에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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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18:12 

 

병장 이동석 
  으아아아아- (일단 선 스크림 후감상) 2008-12-23
13:37:38
 

 

병장 양 현 
  그렇기에, 키보드 워리어라는것이 생긴겁니다. 전, 책마을의 키보드 워리어가 되렵니다. 
전직은 뭘로하죠? 2008-12-23
13:39:48
  

 

병장 이동석 
  정환님의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되는군요. 두둥- 

본문의 내용은, 온라인상에서의 논쟁에 대해 논하다가, 그 양상에 대해 분석하고 정환님 스스로의 논쟁에 임하는 자세-가 보이는데, 중간에 혼용-으로 보이는게 있습니다. 오타일까요, 제가 설탕을 못먹어서 당이 부족해 생긴 착시일까요. B가 나올자리에 갑자기 '나'가 나왔다? 

한창 책마을에서 들쑤시고 다녔던 저로서는 꽤나 찔리는 글입니다. 허허. 

말미의 
[사람들이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동안, 못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이것 밖에는 없는 것이다.] 
정환님이 책마을에서 보여주실 모습을 예고하시는걸까요. 아 궁금해라. 그 모습이 어떨지. 2008-12-23
13:47:20
 

 

병장 정영목 
  전직 키보드 워리어로서 꽤 반갑고 동감가는 글이군요. 전 개인적으로 1:4:0의 비율로 상대를 만났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이 0인 이유는 제가 도발 면역에다 파토스 기근자라서 그런거고... 그러고 보니 문득, 예전 키텔이라는 곳에서 타이타닉 때문에 싸웠던 기억이 떠오르는군요. 제 첫 번째 전장이었죠. 

참고로 키보드 워리어는 CR20을 넘나드는 강력한 캐릭터입니다. 30세까지 동정을 유지하면 키보드 매지션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도 그쪽 테크트리임. 2008-12-23
14:28:59
  

 

일병 이석재 
  하지만, 가끔씩 생각해보는건, 자신이 글로 무언가를 비판하거나 그런것들을 시도해보지 않으면 어디서 해보겠습니까. 물론 인터넷에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소모적인 논쟁을 자주 시도하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리가 있기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좀 더 논리정연하게 만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파괴'라는 욕망, 전쟁대신 인터넷에서 그 욕망을 풀어야 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욱 좋은 결과이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요즘따라 저조차도 말초적으로 변해가고 있는거 같아서 쓰는 댓글입니다. 2008-12-23
14:35:03
  

 

일병 이정환 
  양현님, 전직은 학생으로 하시는 것이 키워로서의 생명연장에 도움이 될 듯합니다. 

동석님, '예리한 문제의식이 담긴 시의적절한 글을 올리는' A가 3번째 문단에서는 '논리적 무결성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A가 되어 버리네요. 다시보니 오독의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C, D로 수정하죠. 

그리고 책마을에서의 제 모습은 뻔하지 않습니까. (웃음) 

영목님, 전 이미 글렀군요. 이런. 

석재님, 윗 글은 논쟁 자체가 무용하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 글의 어떤 부분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드셨는지 의아하군요. 2008-12-23
16:06:09
  

 

일병 구진근 
  백마디의 말보다 한번의 실천이 낫다. 
라는 말을 어디선가 본것 같군요. 
저는 키보드 원더(wander)로 전직 안하려 노력해야겠네요 2008-12-23
21:33:38
  

 

상병 이지훈 
  깔끔한 글이군요 허허 잘 봤어요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없다면 실천 또한 무용한 것이라고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실제로 실천적 노력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겠으나,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행동을 이끄는 확실한 신념은 글쓰기를 통한 생각의 정리라고 생각하고요. 아, 물론 대부분의 실천가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확실한 신념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글쓰기라는 것이 그것이 전략적이든 그렇지 않든, 현실적 유용성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현실적 유용성을 위한 기초적인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아니, 되어야만 한다고...생각해요 
하하 '고작 이것'을 너무 합리화하는 생각일까요? 2008-12-23
22:04:14
  

 

병장 김정희 
  글 잘읽었습니다. 이 곳에서 다는 첫번쨰 리플이네요. 방금 글과 리플들을 읽는데만 해도 많은 생각을 했네요. 일단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제 성장의 큰 자양분이 될것같아요. 이런생각들이. 그냥 제 개인적인 견해를 말씀드릴게요. 이곳은 각자의 견해를 나누고 서로 긍정적인 지적자극을 받는 그런 첫번째 유형과 같은곳 맞지요?(웃음) 

음, 일단 제 생각은요 마지막 문단이 약간은 논점에서 벗어나 버린듯한 느낌을 받았어요.온라인상의 논쟁의 유형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듯하다가 약간 벗어나지 않았나 싶네요. 2008-12-24
11:17:51
  

 

병장 김정희 
  점심먹고 오느라 아까 리플을 마저 못달았어요. 

마지막문단에 대해서, 저랑 견해가 다르신데 이정환일병님같은 생각도,이지훈 상병님 같은 생각도 할수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상을 현실에 관철시키고자 하는 이정환 일병님의 의지는 강하지만 그럴순 없다. 그럴순 없는 이유가 단지 '못나서'인가요? 아니면 현실적 유용성을 보장받을수 없다고 생각해서 인가요? 어느 쪽이든 제 견해와는 차이가 좀 있어서 제 생각도 한번 말해보려고 합니다. 전 이상이란 저 높고 높은 곳에 있어서 손에 닿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치 않습니다. 그 어떤 이상이라도 현실에 반영할 바를 품고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그 높고 높은 곳에 있어서 그 어떤 생각의 영역도 닿지 않는 곳에 이상이란 것이 있다면 인간의 짧은 생에 그것을 찾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불과할 따름이지요. 이상은 작은 현실에도 반영할수있다고 생각합니다.작은 행동하나하나에도요. 이런 제 생각 자체가 단지 '이상'일까요. 리플을 쓰는 도중에도 여러생각들이 왔다갔다 하네요. 정리되지 않은 생각 글로 쓴점 죄송합니다. 그냥 여러 말이 해보고 싶었어요(웃음) 2008-12-24
12:31:26
  

 

일병 이정환 
  정희님, 맞습니다. 윗 글은 작년에 제 블로그 상에서 누군가와 싸우고 난 후 즉흥적으로 쓴 글이라 정리되지 않았어요. 그렇기에 정희님이 지적하신 것과 같이 논점이 일탈된 것과 더불어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은 글이 되어 버렸네요. 윗 글의 '그럴 순 없다'는 '온라인 상에서의 논쟁에 대해 회의하고 부정적인 태도를 보일 수만은 없다'는 뜻이었어요. 제가 문장 성분을 생략하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오독을 유도하게 되었네요. 

정희님의 이상론과 실천론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이상'이란 것도 본래는 현실을 바탕으로 구성된 것이기에 태생적으로 현실에 구현될 씨앗을 품고 있고, 그것을 현실에 실현시키고자 행해지는 실천은 미시적인 차원에서부터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보잘 것 없는 글에 성의있는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해요. 외부로부터 받은 지적 자극을 놓치지 않고 꾸준히 안고 사유하다 보면 분명 정희님 '성장의 큰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2008-12-26
20:4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