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베스트-독서후기]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 - 이용우  
병장 이훈상   2008-11-09 14:52:30, 조회: 216, 추천:1 

영화 ‘말레나’를 보셨습니까? 매트릭스 2에서 요염한 자태를 뽐냈던 모니카 벨루치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영화죠. 말레나에서는 요염할뿐만 아니라 여성이 가질 수 있는 모든 매력을 보여줬었습니다. 이거 뭐, 휴....모니카 벨루치를 생각하니 가슴이 콩닥콩닥해지는 게 역시 여신님이라 불릴만 합니다. 
이런 얘기하려고 말레나얘기를 꺼낸 건 아닌데, 죄송합니다. 암튼 이 영화는 2차대전 당시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말레나라는 여신님이 살고 있었어요. 부터 시작합니다. 말레나는 너무 이뻐서 마을여자들에게 공공의 적이 되는데 그녀의 남편이 전쟁에서 전사했다는 소문이 퍼진 후 그녀는 전보다 더 심한 모욕을 당합니다. 그녀의 아빠가 죽고나서는 마을여자들은 그녀에게 대놓고 창녀취급을 하고 그녀 또한 생계가 어려워 독일군 병사를 상대로 몸을 팔아 진짜 창녀가 됩니다. 전쟁 후 말레나는 마을 여자들에게 린치와 머리를 삭발당하고 추방되게 되고 살아돌아온 남편은 그녀를 찾고 다시 마을로 돌아옵니다.    
이 영화는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고 그에 따른 여러 가지 시사점이 발견되겠지만 전 여기서 말레나가 마을여자들에게 린치당한 후 머리를 삭발당한 것에 초점을 맞춰볼까 합니다. 실제로 말레나에게 가해졌던 폭력은 영화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에 비일비재했던 일이죠. 프랑스에서는 독일에게 해방되자마자 독일에 부역했던 여성들을 착출하여 머리를 삭발했다고 합니다. 이 삭발식엔 15세 이상 모든 연령대의 모든 직업의 여성이 끌려나와 ‘응징’을 당했는데 그 수가 약 2만명이었다고 합니다. 말레나처럼 성관계가 아니더라도 애정관계, 경제적 협력, 밀고 등등 그 이유도 다양했다고 하고요. 지금도 프랑스에서 ‘숙청’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이 ‘여성삭발식’을 떠올린다고 하니 슬픈 과거입니다.


물론 ‘숙청’은 여성들에게만 가해진 것은 아닙니다. 정부의 고위 각료, 기업가, 문화계, 노동계등등 해방 후 프랑스 사회는 숙청의 시대를 겪게 되고 이것은 나중에 과거사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됩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역사에는 이름조차 없었던, 이제야 조금씩 얘기가 되고 있어 우리에게는 마냥 부러워 보이는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에 대해 꼼꼼히 조사해서 풀어논 책입니다. 책은 크게 네부분으로 구성됩니다. 프랑스가 독일에게 점령당했던 1940-1944년 상황의 간략한 소개와 해방후 행했던 전방위적 숙청, 시간이 지난 후 거의 반세기만에 이루어진 또 다른 숙청을 기술하고 마지막에서는 숙청에 대한 그당시 여론과 지금의 기억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죠.


1940년 6월 프랑스는 최후의 방어선인 솜(Somme)전선이 무너지면서 결국 22일 독일과 휴전협정을 맺게 됩니다. 사실상의 항복선언인 22일 독-프 휴전협정에서 프랑스는 파리를 포함한 북부지방과 영불해협의 해안가를 뺏기게 됩니다. 프랑스 정부는 남부 휴양도시 비시로 옮기게 되고 독일이 남부까지 점령하게 되는 42년 말까지 독일에 모든 면에서 협력하게 됩니다. 그 시절 정부를 비시정부라고 부르죠. 독일강점기는 1944년 8월 25일 파리가 해방될 때까지 계속됩니다. 

이제부터가 숙청의 시작입니다. 숙청은 크게 두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숲이나 길거리에서 응징하는 초법적 숙청과 재판에서 결정되는 사법적 숙청으로 나뉩니다. ‘성난 군중‘을 떠올리시면 딱 맞으시려나요.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는 44년 6월부터 레지스탕스, 일반 시민에 의한 독일부역자 약식처형이 급증가하게 됩니다. 해방전후 약식처형에 의해 죽은 사람들의 수는 약 만여명정도 된다고 합니다. 여성들의 경우는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삭발식을 당했고 합하면 3만명정도 되네요. 그때 프랑스 국민이 4000만이 조금 넘었다고 하니 꽤 많은 사람들이 이 초법적 숙청으로 죽은 겁니다. 해방후 조선에서도 프랑스정도는 아니었겠지만 초법적 숙청은 꽤 있었겠죠. 군중의 집단적인 행동이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는데 중앙 군대가 어찌 그걸 다 막을 수 있겠어요. 초법적 숙청이 성난 군중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더 큰 폭력사태를 막았다는데에는 의의가 있을지 모르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연적으로 일어난 현상이었습니다. 분노가 분노로만 표출되는 경우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프랑스의 과거 청산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 후에 일어난 사법적 숙청때문일 것입니다. 사법적 숙청은 무엇보다도 반민족적이고 반민주적이며 반인륜적인 범죄들에 대해서 법으로 처벌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한다는 의의를 갖습니다. 이것은 성난 시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혀 사회혼란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부의 정통성을 정당화시키기도 하는 부수적인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드골정부는 맨처음 숙청자들을 숙청하기 위한 사법기구, 경찰조직, 고위 관리를 새로 뽑아야했습니다. 우리로 치면 친일파가 친일파를 처단할 수 없으니 새로운 인물들로 채우는 거죠. 때문에 지사, 경찰, 고위관료들의 숙청이 최우선으로 실시되고 그와 비슷한 시기에 숙청을 하기 위한 재판소(부역자재판소, 공민재판부, 최고재판소)를 세웁니다. 이제부터는 줄줄이 숙청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대독협력자 숙청은 해방후부터 50년대 초까지 진행되었는데 부역혐의를 받은 사람이 35만명, 이중 정식재판을 받은 사람이 12만명이고 이중 9만 8000명이 실형을 받았습니다. 1500명이 처형되었고 3만 8000명이 수감되었습니다. 또 4만명 이상의 공직자들(공사 기업, 군인 포함)이 각종 징계를 받았죠. 그밖에 언론계, 문화계, 노동계, 종교계에서도 자체적으로 부역자들을 퇴출시키거나 징계조치를 내렸습니다. 한마디로 프랑스 사회는 사회 전체가 ‘숙청’이란 단어였던 거죠. 이렇게 숙청이 가능했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에게는 숙청을 행할 능력이 있는 정부가 있었습니다. 드골 정부가 조선의 임시정부와 달랐던 것은 그 능력의 유무인데 그 능력은 바로 강점기 당시 저항하고 희생한 경험에서 나옵니다. 물론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광복군을 창설하고 훈련시켰지만 독립전쟁에서 인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했고 연합국도 인정해주지 않았죠. ‘툭 떨어진 해방’을 맞았기에 이렇게 역사가 배배꼬여 이지경인거지요.

이쯤하면 그만해도 되지 않나 싶은데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51년과 53년 대규모 사면법으로 종결되는 듯 하더니 70년대말 부역자들에 대한 잇달은 기소와 90년대 이들에 대한 재판으로 과거사 청산 문제는 다시 한번 살아나게 됩니다. 사건은 프랑스의 한 시사주간지 ‘렉스프렉스’가 반유대주의자인 루이 다르키에를 인터뷰한 내용을 기사로 실음으로써 시작되었는데 다르키에는 스페인에서 잘먹고 잘살고 있었으며 반성은 눈꼽만치도 없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프랑스 시민들은 이에 분노하게 되고 ‘프랑스 유대인 희생자 자녀협회’회장인 세르주 클라스펠드 변호사는 그를 반인륜범죄 혐의로 고소합니다. 이어서 ‘렉스프레스’, ‘르 카나르 앙셰네’등의 언론은 독일강점기 시절 고위관직에 있으면서 레지스탕스 탄압과 유대인 검거를 주도했던 인물들을 찾아내어 기사화하고 이들은 유대인 희상자들에 의해 차례로 기소,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아 감옥에서 죽습니다(아닌 사람도 있긴 합니다만). 책을 읽으면서 이 부분이 가장 통쾌했습니다. ‘정의는 언젠가 반드시 실현된다‘식의 만화같은 멘트가 실현되는 순간이랄까요. 우리나라에도 비슷할 뻔한 경험이 있었죠. 전 대통령 2명을 기소, 재판에서 실형까지. 그 땐 이 나라에도 정의가 있구나 하며 철없이 좋아했는데 결국 그들 둘은 허허허. 

우리에겐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이 마냥 부럽기만 하지만 막상 프랑스에선 그렇지도 않습니다. 해방직후 대독협력자 숙청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아주 뜨거웠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의 ‘조속하고 철저한’ 숙청에 대한 열망에 비해 정부의 행동은 느리고 약해보였습니다. 당시 시민들 대부분은 “잔챙이들은 너무 심한 처벌을 받고 거물들은 빠져나가도록 내버려둔다”라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러나 숙청의 문제가 시간을 끌고 프랑스 사회는 경제난을 해결하고 새로운 국가 건설의 문제를 안고 있었기에 숙청의 열기는 45년 이후 급속히 줄어들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론과 기억은 점차 분열되기 시작합니다. 피숙청자의 입장에서는 숙청이 너무 과도했다는 의견부터 나중에는 숙청 자체를 부정하는 의견도 나오게 됩니다. 반면 숙청주체쪽에서는 피숙청자들에 대한 대항 논리가 필요했고 자신들의 행위들을 정당화하는 작업을 하게됩니다. 뭐 당연한 거겠죠. 레지스탕스의 경우는 조금 특이한데 그들은 일단 숙청이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은데서 오는 실망감에서 숙청을 실패라고 평가하는 비관적 부류와 숙청주체와 인식을 같이 하며 숙청을 정당화하는 부류로 나눠지게 됩니다. 저번에 ‘해체주의와 그이후’를 소개해드리며 잠시 말씀드렸죠? 프랑스에서는 68혁명이후 푸코등의 해체주의 철학자들이 등장하며 기존 철학계를 뒤집어 놓습니다. 특히 푸코는 지식과 권력이 어떻게 야합하는지 분석하며 국가권력 혹은 국가이성을 해체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시대의 조류를 탔을까요. 로베르 아롱은 ‘숙청의 역사’를 내놓으며 피숙청자 쪽의 기억을 대변하는 ‘희생’을 강조합니다. 70-80년대 일반 시민들의 인식도 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숙청의 아픈 역사를 해부하는 것 보다는 강점기의 아픈 역사 후 따라오는 또 다른 아픈 역사를 애도하는 방식이 되죠. 사실을 망각하고 느낌을 기억하려고 했던겁니다. 결국 비판적 시각에서 ‘숙청‘에 대한 연구는 미국 역사학자 피터 노빅에 의해 처음으로 행해지고 프랑스에서는 90년대 이후에나 가능하게 됩니다.  
맺음말에서 저자는 역사교과서를 말합니다. 역사교과서는 ‘당대의 공식적 기억이나 지배적 기억 혹은 국가나 사회가 그 구성원들에게 전수하고 싶어하는 기억을 훨씬 더 잘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제가 곱씹지 않고 그대로 옮겨보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교과서들의 숙청관에 대해 지적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 교과서들이 해방 직후의 부역자 숙청을 근본적으로 부당하다고 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정당성을 명시적으로 주장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고위층에 대한 미진한 숙청을 비판했다는 것 자체가 숙청의 정당성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지만, 교과서들의 논조는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대부분의 교과서들이 극히 적은 지면만을 숙청 문제에 할애하고, 종종 사실 자체만을 간략하게 서술하고, 부당성을 주장하지는 않지만 정당성을 명시적으로 인정하지도 않고, 심지어 필요성이나 불가피성을 강조하지도 않고, 최소한의 의의조차 언급하기를 꺼렸다는 사실은 그만큼 해방 직후 숙청에 대한 인식과 기억이 여전히 합의되지 않고 혼란스럽다는 것, ‘공식적’기억을 설정하기가 매우 어려우며 ‘지배적’기억 역시 망각과 트라우마, 그리고 몇몇 ‘신화’에 가까운 극단적 기억들 사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 국가 혹은 사회가 그 어린 구성원들에게 전수하고 싶은 모종의 기억이 있다기보다는 여전히 전수 자체를 꺼린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中 


뻔한 것이지만 역사란 현재를 위한 것입니다. 과거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과거를 위한 것은 절대 아니죠. 따라서 역사는 있었던 일 자체보다는 그 일을 어떻게 인식하고 기억하느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프랑스인들은 시대에 따라 과거사 청산을 다르게 인식하고 다른 감정으로 기억해왔고 지금에서는 얼핏 애매하기까지 한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인의 이러한 입장이 과거사 청산에 대한 반대논리는 되지는 못합니다. 그들은 그당시 그런 경험을 했기에 지금의 혼란도 있을 수 있는 거겠죠. 기억은 망각을 향합니다. 특히 기억하기도 싫은 기억은 더더욱 그렇지요. 그러나 70-80년대 피숙청자들의 기억이 대중을 이끌었다는 점, 유대인 희생자들의 기억이 거의 반세기만의 반인류범죄 재판을 이끌어냈다는 점은 기억이 가진 힘을 보여줍니다. 기억하는 자가 사실을 만드는 승리자가 되죠. 우리나라의 역사는 참으로 지고지난합니다. 36년의 식민통치, 한국전 당시의 대량학살, 30년간의 군부통치, 그리고 쉬임없는 전쟁참가 등등 오죽하면 함석헌 선생님이 우리나라는 역사의 찌꺼기를 받는 세계의 하수구라고 하셨겠습니까. 근데 이왕 하수구가 된 거, 찌꺼기들 확실히 처리해야겠죠? 기억되어야할 기억을 끊임없이 재생산해서 망각의 늪에서 건져내는 것, 아마 그것이 호호호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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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04:55 

 

상병 이우중 
  와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럼 모니카 벨루치가 '말레나'로 나오는 건가요? 
그나저나 함석헌 선생님이 그런 말도 하셨군요... 아는 게 씨알밖에 없어서요. 허허 

참, 근데 저 정말 이런 말 하기도 싫고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지만 
누군가 이 글을 본다면 논란의, 아니 탄압의 여지가 생길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렇다고 글에다가 빨간줄을 죽죽 그을 수도 없고 말이죠. 

그래서 말인데, 가지로! 2008-11-09
15:14:17
  

 

병장 김민규 
  바디연맹식 숙청에서부터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까지 우리 사회에 있었던 여러 형태의 '숙청'도 결국은 역사의 찌꺼기를 받은 결과였군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물건너의 그네들도 한켠에서는 미진한 처리에 찜찜하고 한켠에서는 먹고살기 바쁜데 과하다는 생각이고 그런가봐요. 뭐.... 미키씨의 새 시대인데, 이제 그런 것 논할 시간이 있을까요? 바야흐로 심시티의 왕국이 도래하겠군요. 2008-11-09
16:10:35
  

 

병장 문두환 
  한편으로는 과거 그 자체의 '사실'을 끄집어 내는 것도 결코 소홀히 할 부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에 대한 관심도 관련된 지식도 아무것도 없었던 고등학교때 수업시간에 진행했던 근현대사에 관한 발표수업만으로도 충격을 받았던 것을 보면 후세대들에게 암묵적으로 쉬쉬거리는-쉿! 알면 다쳐!주의는 아직도 남아 있는 듯 하니까요. 역사적 사실을 평가하고 인식하기도 전에 잘못된 정보를 접하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요. 7차교육과정에서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배울땐 국사 교과서에서 근현대사는 4페이지 정도 됐던 것 같군요. 푸흐흐. 2008-11-09
16:18:34
  

 

병장 김민규 
  7차 교육과정에서는 근현대사가 200쪽짜리 하나의 심화선택 과목으로 빠져 나왔습니다. 사회탐구영역 11개 과목중 당당한 하나가 된 거죠. 문제는, 그 과목을 선택하지 않으면 여전히 국사책 끄트머리의 몇 페이지로 끝이라는 점. 보통 고딩들은 4개정도의 사탐 과목을 배우고 그 중 두세개를 수능에 반영합니다. (7개 과목을 배웠던 저는 오덕후였구요) 
한동안 이 근현대사 교과서들의 이념적 편향을 두고 말이 많았는데, 글쎄요.... 그게 왜 편향인지는.... 대학에서 배우는 것에 비하면 여전히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답답하고 겉만 핧고 지나가는 정도일텐데. 
한편으로 근현대사라는 주제 자체가 주는 특수성을 감안해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아 개중에는 당시에 활동했던 인물이 생존하고 있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들이 떠나고 나면 근현대사는 그냥 근대사의 한 장으로 편입되고, 새로운 연대가 추가되겠지요. 그렇기에, 근현대사에 대한 [평가]의 문제는 적어도 교과서상에서는 조금 보수적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사실을 제시해주되 그것을 해석하는 문제는 (역량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수용자의 몫으로 남겨둬야 하지 않을까요. 문제는 두환님 말씀대로 쉿- 알면 다쳐! 주의가 팽배한 분위기속에서는 이도저도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데 있겠죠. 2008-11-09
16:31:57
  

 

병장 이훈상 
  아핫! 정말 하고 싶은 말을 빼먹었군요. 

근현대사책 중 그럭저럭 괜찮은 시각을 가진 책 추천해달라는 거였는데, 혹시 생각나는 책 있으시면 추천 꼭 부탁드립니다. 통사형식도 좋구요 아님 그냥 어떤 사건을 콕찍어서 풀어논 책도 좋고, 특별한 주제로 엮은 책도 좋습니다. 한국현대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거든요. 2008-11-09
16:49:49
  

 

일병 김예찬 
  서중석 선생님의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추천드립니다. 책 제목이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아마 이 비슷한 제목일 겁니다. 2008-11-09
17:32:05
  

 

병장 김민규 
  저도 예찬님 추천에 한 표 드립니다. 제목이 아마 맞는 것 같은데.... 대학 교양수업때 썼던 교재군요. 2008-11-09
18:21:36
  

 

병장 정병훈 
  '숙청'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네요. 뭐 이공계 공부를 하고, 한국사나 국사에 대해서 전혀 공부를 하지 못해서 뭐라 말할수가 없지만, 한가지 분명한건 이대로 가다간 '역사가 송두리째 흔들리겠다'라는 거 정도는 확신할수 있습니다. 
역사공부를 좀 해야되는데 참 아쉽죠. 
그나저나 예찬님께서 추천해준 책. 저도 한번 관심 갖고 봐야겠군요. 2008-11-09
19:33:23
  

 

상병 이바름 
  우리나라 근대사 이야기 꺼내면 밤새도록 욕할 수 있죠. 

예전에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나라가 위급하면 싸울것이냐?'라는 설문조사를 했었다고 합니다. 결과는...10% 미만이 '싸우겠다.'라고 응답을 했다고 하더라구요. 어르신들은 자라나는 새싹들의 싹아지가 없다고 하시는데, 우리나라 근대사 보면 그게 현명한 선택이지요. 2008-11-09
23:21:14
  

 

상병 이지훈 
  "한국근현대사 산책" 인가요? 확실한 제목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저자가 한 명이 아니고 여러 저자가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서 다루죠 
책 전체 내용이 한 쪽으로 치우친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고요 
여러 의견을 들을 수 있어서 좋더군요 
50년대, 60년대 이런식으로 각 년대 마다 2권씩 나와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보다 먼저 나와서 6권인가까지 나온게 있는데 책 이름을 까먹었군요... 
한국근현대사를 이야기할 때 많이 나오는 좋은 책인데요 
강준만 선생님? 헉 헷갈리네요 이거 참 죄송하네요...책은 많이 접했으면서 이름이 
가물가물하다니... 
이 분이 엮으시고 역시 구성은 위의 책과 비슷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위의 책보다는 조금 무거운 느낌이 듭니다 2008-11-10
00:25:37
  

 

일병 김예찬 
  지훈님이 이야기하신 두번째 책 이름은 저도 가물가물하네요.. 이 책 제목도 [한국 현대사 산책]이었던 것 같은데(땀) 어쨌든 강준만 교수님이 쓴 책은 맞을 겁니다.. 강준만 답게 이런저런 상세한 사료가 붙어있어서 아주 좋은 책입니다. 2008-11-10
07:57:39
  

 

병장 이동석 
  이런... 저 이거 집에 다녀와서 가지로-댓글을 달았었던걸로 기억하는데, 롤백이 여기까지... 암튼, 훈상님이 그립군요. 밖에서 잘 지내시겠지만. 허허. 2008-12-11
10:44: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