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베스트-독서후기] 여러분의 꿈은 무엇입니까?  
병장 고은호   2008-11-04 00:29:32, 조회: 310,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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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더워져가는 여름날. 나는 우리반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 수업은 미술시간으로 '자신의 장래희망'을 직접 찰흙으로 만들어보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의 조막만한 손으로 조물락 조물락 거리며 부지런히 자신의 꿈을 만들어가는 교실. 생각만으로 마음이 따뜻해 지지 않는가? 나는 교실 가득히 풍기는 진지한 분위기에 흐믓한 얼굴로 교실을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의 꿈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 흐믓한 표정은 얼마 가지 못했다. 아이들의 대부분의 목표가 의사나,대통령, 경찰, 변호사, 선생님, 스튜어디스, 가수 등이였던 것이다! 아, 그 외에도 축구선수가 한 명 있기는 했다. 어떻게 된게 15여년 전 나나 내 친구들의 꿈과 희망이랑 별 차이가 없을 수 있지? 15년이면 강산이 한 번 하고도 반은 더 바뀔 시간이고, 등산가방만한 무전기에서 휴대폰으로 화상전화 할 정도로 발전한 시기이며,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 언제면 나오나 기다리다가 이제는 손가락만한 MP3로 언제든지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 수 있고, 286PC에서 아는 형한테 겨우 빌린 동급생, 혹은 드래곤나이트4나 했지만 지금은 실시간으로 전세계 수 많은 사람들과 풀HD 동영상을 공유할 정도로 인간의 도구가 발달 해나간 시간이다. 

그런데 정작 그 도구를 만들던 사람들의 꿈은 별로 달라진게 없는 것이다. 그 직업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그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예전의 나와 같아 보였다. 물론 예전의 나는 별다른 꿈이나 희망없이 주위에서 좋다고 하는 직업을 듣고 나불댔었었다.

나는 순간 내가 이대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우리 애들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는 것처럼, 하나같이 아깝고 멋진 나의 아이들인 것이다. 그런 아이들이 나처럼 아무런 꿈도 없이 이 황금같은 시기를 보내게 할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분연히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교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너희들의 꿈은 무엇이니?" 그러자 아이들 중에서도 유달리 똑똑했던 반장이 대표로 말했다. "좋은 대학에 가서 돈 많이 버는 직장에 들거가는 것이요." "....잠시만. 그것 만으로 너희들의 미래를 정해버리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니?" "하지만 우리 엄마가 돈 많이 못 벌면 나중에 고생만 하면서 밥도 잘 못 먹는다고 그랬는 걸요." 그리고는 GG. 

틀림없이 각자의 꿈과 비전, 희망찬 미래에 대해서 수십분간-미술 수업을 못할 정도로 떠들어 댔지만 그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별다른 생각이 있어서 말했다기 보다는 밀려오는 황금 만능주의의 파도 속에서 이래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에 그저 나오는대로 주절주절 토해냈기 때문이다. 자신이 쏟아낸 토사물의 원재료가 무엇인지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렇게 그날의 나는 기억 속에 없다.

"꿈"이란, "희망"이란 뭘까?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올바른 꿈이란 무엇이고, 나쁜 꿈은 무엇이며, 나는 교사로써 어떤 꿈을 아이들에게 인도해 줘야 하는 것일까?

서점에 가서 보면 널려있는 수 많은 베스트 셀러들은 나를 보며 외친다. 자신을 집어 들라고. 그리고 스스로을 깎아 가면서 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뛰라고. 그러면 성공하게 될 것이라고. 도대체 성공이 뭐지? 단지 부귀영화? 나의, 우리의 목표는 단지 배부르게 맛난 것 먹고, 비싼 명품을 몸에 두르며,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성같은 주택에 사는 것에 불과한가? 그렇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가면 속에 숨기고, 다른 사람을 짓밟으며 위로, 더 위로 성공을 쫓다 올라가 잡으면 과연 행복할까? 

아니, 그것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삶을 보내기에는 삶이 너무나도 아쉽다. 아깝다. 하지만 먼 고대에 이미 맹자가 주창했던 것처럼 항산이 없으면 항심도 없다. 그리고 그런 점은 이미 돈에 의해 계급이 나눠지기 시작한 현대에 와서는 더욱 더 뚜렷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하고 사는 삶이 훌륭한 것이란다."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내가 무슨 권리로 아이들에게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내뱉을 수 있을까.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산티아고의 삶은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는 정말로, 너무도 가난해서 하루 종일 먹는 것은 커피 한잔에 물 한통에 불과할 정도이다. 거기다가 그는 84일동안 단 한마리의 물고기조차도 잡지 못했다. 주위에서는 이미 그에게서 운이 떠나갔다고 손가락질 하며 놀리고, 그와 오랜 세월 함께 해오던 소년도 아버지의 강압에 밀려 그를 떠나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바다를 원망하지 않는다. 바다를 항상 "라 마르"라고 부르며 사랑했다.

바다로 나가 2박3일동안 물고기 한 마리에게 끌려다니며 자세 한 번 편히 잡지 못하고, 물 한모금, 밥 한끼 편히 먹지 못하며 생사를 겨루었을 때도 그는 물고기를 증오하지 않았다. 오히려 "물고기는 내 형제다.""이 녀석에게도 무엇인가를 먹였으면 좋겠는데." "난 이제까지 너보다 더 위대하고 아름답고 침착하고 또 고귀한 놈을 본 적이 없구나."라고 하며 물고기를 아끼고 사랑했다. 

또한 드넓은 바다에서 오직 혼자있다는 외로움에 몸서리 치며 끊임없이 함께해온 소년을 부르고 생각하며 그리워했다. 자신의 점점 약해지려는 내면과 끊임없이 밀려오는 두려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 지쳐가며 힘들어 했다. 심지어 말을 못하는 물고기나 우연히 날아온 새, 심지어는 쥐가난 자신의 왼 손에도 말을 걸어댈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그는 바다에서 자신이 얼마나 외로운가를 알았다. 하지만 그는 곧 바다와 하늘, 구름, 물오리 떼 등을 보면서 누구나 바다에서는 결코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간신히 집으로 돌아 왔을 때도 자기 자신과 바다를 상대로 말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말 상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그 모든 불행을 잊으며 행복해 했다.

어떻게 그는 그럴 수 있었을까? 단지 많은 삶을 경험한 노인이라서? 혹은 어차피 희망이 보이지 않는 막장인생이라서? 단지 그런 이유였다면 그렇게도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고 오롯히 버티며 힘겨운 삶의 한 복판을 웃으며 걸어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자신이 어부라는 사실을, 바다사나이라는 사실을 삶의 일부로 깊숙히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그에게는 마치 밥먹고 잠자고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바다의 일이 그의 삶에 스며든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어떠한 경우가 닥쳐온다 하더라도 웃으며 자신을 독려할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구도 숨쉬는 것이 귀찮다고 숨을 그만 쉴 수 없는 것처럼, 밥 먹기가 힘들다고 밥을 먹지 않고 살 수는 없는 것처럼, 이미 그는 어부였던 것이다. 

나는 산티아고처럼 살 자신은 없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그런 삶만이 옳다고 강요할 생각도 없다. 위인전을 보고 아무리 감탄하고 존경한다 하더라도 그 삶을 똑같이 따라하는 초등학생도, 그렇게 살라고 강요하는 부모님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내 삶에 하나의 빛을 제시해 주었다. 답이 없어 보이는 질문에 이런 답이 있을 수도 있다는 길을 제시해 준 것이다. 없는 상태(空)인줄 알았으나 단지 비어있을 뿐(虛)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직 '꿈'이란게 무엇인지, 뭐가 옳은지는 잘 모르겠다. 실은 평생 알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다음 산티아고의 말을 작별인사 삼아 작살에 낚시줄 둘러매고 나의 답을 찾으러 떠나야겠다.


"오로지 살기 위해서 또는 그것을 팔아 양식을 얻으려고 고기를 죽인 것은 아니야.
자부심 때문에 그리고 내가 어부이기 때문에 죽인 것이다.
나는 고기가 살았을 때에도 그놈을 사랑했고 죽은 후에도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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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12-18 21:43)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05:14 

 

상병 이지훈 
  초등학생 때 장래희망을 직업으로 쓰는 것이 왠지 자신을 틀에 가두는 느낌이랄까요? 
직업말고 나머지에 대한 고려는 없다. 뭐 이런 느낌이죠. 짧은 단어(직업명)로 자기 꿈을 다 표현한다니...꿈이 그렇게 간단한게 아니잖아요. 그렇게 어렸을 적에도 말이예요. 장래희망은 직업으로 해야한다는 그런게 있잖아요 기입란도 작고...지금 생각해보면 행정상의 편의로 생겼다는 느낌이 드는 "장래희망" 란입니다. 길게 길게 글로 작성할수록 꿈꿀 가능성도 많아지고 더 풍부해지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엔 말이죠. 너무 당연한 말인가요? 허허 
이런 느낌이 들면서부터 열심히 일기쓰고 있습니다 그래도 구체화되지 않는 건 여전하네요 2008-11-04
05:18:40
  

 

병장 이동석 
  추천입니다- 

겨우 며칠전 일같은데, 벌써 십몇년이나 되버렸네요. 2008-11-04
10:41:33
 

 

병장 정병훈 
  캬! 노인과 바다입니까? 

정말 멋지네요. 흐흐흐 특히 마지막 문장말이에요. 

노인과 바다 꼭 사서 봐야지. 2008-11-04
11:28:29
  

 

일병 구진근 
  저의 꿈은 5살때 세계정복 이었고 7살에 조금더 생각이 진보되어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가 되어서 세계정복 이었으며 16세때는 생물학적으로 세계정복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했고 17세때 이후 소설가로 장래희망을 바꾸었으며 18세때 장르문학(판타지)소설가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응?) 2008-11-04
14:30:15
  

 

병장 고재형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가면 속에 숨기고, 다른 사람을 짓밟으며 위로, 더 위로 성공을 쫓다 올라가 잡으면 과연 행복할까? 


좋네요. 크아. 잘 쓰셧습니다 2008-11-05
12:01:24
  

 

병장 김민제 
  잘 읽었습니다. 

꿈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2008-11-05
18:4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