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베스트-내글내생각] 행보기 성적쑤는 아니자나요
상병 김무준 2008-11-25 17:43:17, 조회: 414, 추천:1
수능이 끝나고 수험생이었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럭저럭 잘 쳤다고 말하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일단은 등급이 나와 봐야겠는데, 다들 생각했던 것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실망을 느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위로도 할 수 없었다. 겪어보지 못했으니까. 아, 내가 공부를 썩 잘했기 때문에 성적에 실망을 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학창시절 나는 꽤나 반항적인 부류에 속했다. 하지만 조금 특이했다. 나는 답을 찍는데 천부적인 능력을 타고났다고 자부한다. 중학교 배치고사에 당당히 한 자릿수에 들었다. 이제와 고백하건데 아직도 부모님은 내가 한 달 만에 문제지 일곱 권을 독파한 덕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난 그저 문제지 일곱 권의 답을 베꼈을 뿐이고 시험장에서 엄청난 잔머리로 답을 찍었을 뿐이다. 나는 공부와는 거리가 먼 인간이었다. 성적 따위는 부모님이 만족할 정도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고, 학생회 중요 직에 앉고 선도부 따위를 했음에도 수업 땡땡이치고 노는 데는 전교 톱 텐 안에 들었다. 선생님들과 싸워도 말로 날 제압할 수 있는 분들은 드물었고 그런 고로 아마 수업 받은 시간보다 교무실 앞에 무릎 꿇고 앉아있던 시간이 더 길었으리라. 성적을 잘 받아 칭찬받는 일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나의 재미는 다른 곳에 있었다. 미친 듯이 놀고도 당신들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데서 쾌감을 느꼈다. 까놓고 말해서 그들의 가치를 때려 부수는 데 즐거움을 찾던 날라리였다. 선생들은 나를 어르고 달래 과학고 따위에 보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그 어두침침한 기운을 알아채고는 아주 그냥 공부를 손에 놓았다. 아는 답 피해가기. 일부러 답 밀어쓰기. 답안지에 마시마로 그려 넣기 등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그들을 비웃어 주었고, 그림을 그려 도 대회에 나간다거나 하는 색다른 충격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나를 죽어라 패는 선생은 있어도 나를 싫어하는 선생은 없었다.
내가 믿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르는 무엇이 필요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는 학교 수업에 충실하거나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성적표 상위권을 받을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아 슨샘요. 공부 안해도 성적 뽑을 수 있다니깐요. 아 참 내말 몬믿네. 다 아니까 자는 거라니깐요. 아 진짜 고만 때리이소. 사람 미치겠네. 수업시간은 취침시간이 되었고, 야자시간은 독서시간이 되었다. 취침시간은 으흐흐. 낮 동안 못한 각종 뻘짓거리를 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되었다. 첫 모의고사를 치르고, 학교에서는 한 자릿수에 들었을 뿐이지만 동네의 몇몇 고등학교 사이에서는 내가 톱이었다. 그것도 차이가 삼사십 점 정도는 났으니 이건 뭐 찍어서 맞췄다고도 할 수 없는 성적이었다. 당시 학교에는 일곱 개 학급 중에 ‘특별반’이라는 상위 10%에 속하는 클래스가 있었는데, 그 반에 데려다 놓아도 한 자릿수 안에는 들 수 있었다. 전국 상위 일 퍼센트를 찍었으니 선생들은 이 별난 놈을 특별반에 집어넣어 초특급 유망주로 키워야하나 말아야 하나에 대해 짱구를 굴렸다. 어르고 달래고 패고 협박해도 나는 꿋꿋이 잠을 잤다. 지들 잘난 맛에 사는 네가지 없는 특별반 학우들의 싸다구를 왕복 삼천만 번 정도 갈겨주었다. 아 이 통쾌함이란 월드컵 이탈리아 전에서 안정환이 헤딩슛으로 골든 골을 뽑아 낼 때보다 더 짜릿했다. 서울대를 보내니 연고대라도 보내야 하니 들리는 소문을 듣고 피식 웃어준 후. 나는 공부를 손에 놓았다. 언어영역 듣기시간에 당당히 퍼질러 잤고, 수리영역은 죄다 찍어버렸다. 맹세코 내가 혼신의 힘을 다해 문제를 푼 것은 고등학교 첫 시험뿐이었다. 그려. 당신들이 최고로 뽑는 그것을 얻어 주었으니, 나는 다시 한 번 당신들의 짱구를 박살내주기 위해 전교 꼴등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마.
상당히 아쉬운 것은 졸업할 때 까지 단 한과목도 전교 꼴등을 해본 적은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시험을 망쳐도 귀신같은 성적을 받는 친구들이 있었고, 나는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수능직전 치른 시험에서는 내 뒤에 두 명인가 세 명인가 있었다. 마지막 모의고사에서는 오백 점 만점에 오십 점인가 사심 점을 받았다. 선생들, 심지어는 친구들마저도 공부 안하니까 그렇게 되지. 라고 말했다. 훗. 다시 비웃어 주었다. 한 달을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공부했고 수능을 치른 후 나는 수도권에 갈 수 있는 성적을 받아냈다. 충격과 공포지 이 그지 깽깽이들아. 선생들은 경악했고 친구들은 휘청거렸다. 그렇게 겨울이 흘렀고 나는 대학을 가지 못했다. 뭐, 갈 수는 있었을 테지만 결과적으로 안 갔으니 못 간 거겠지. 친구들은 SKY니 육공사니 포공이니 카이스트니 하는 곳에 갔다. 타협만 했다면 인기 없는 과라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캠퍼스나 부산 최고 국립대에 갈 수도 있었을 테지만. 뭐 어쨌거나 내 학력은 고졸로 표기되어 있고, 어디를 가든 알게 모르게 무시를 당하고 있다.
잘난 대학에 간 잘난 녀석들은 잘난 삶을 살고 있을까. 글쎄다. 원하지도 않는 과에 유망하다는 이유로 간 놈이나, 문과였음에도 공대에 지원한 놈이나, 지역의 대학을 가기 위해 토목과를 간 놈들은 그저 그렇게 한 학년을 보내고 나처럼 관광공사에 입사했다. 나는 입사 전까지 꽤나 재미나게 살았다고 생각한다. 바에서 일하며 다양한 종류의 사람을 만나봤고, 만화방에서 몇 천 권의 만화를 독파해 보았으며, 국내 최대의 물놀이 용품 회사에서 올해 공급되고 수출된 모든 물품을 만져보기도 했다. 한 달 만에 컨테이너 오십 대를 비워보았고, 십 톤 트럭 삼십 대를 채우기도 했다. 이건 맹세 컨데, 해운대 광안리에 떠다니던 튜브의 구십 퍼센트 이상은 내 손을 거친 것들이었다. 갈매기를 달기 위해 민간인 신분으로 지원해 최종 면접까지 가보기도 했고, 말레이시아 친구 분들을 모시고 한국 문화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암. 그렇고말고.
입사 후 꽤나 운이 좋았다. 관광공사 내에서 컴퓨터를 만질 수 있다는 건 선택받은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이다. 혼자 노트에 깨작이던 글을 옮겨 적을 곳이 생겼다. 네이버 뉴스 페이지 메인을 장식해보기도 했다. 물론 내 이름으로 올라간 건 아니지만. 젠장. 어쨌거나 람보 투어를 다녀보기도 했고, 제법 특별한 임무를 맡아보기도 했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계약기간을 보내고 있다. 일전에 누군가 당신은 행복합니까 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입사 전 만큼이나 행복하다. 관광공사가 내게 꿈을 준 것은 아니지만, 꿈을 꿀 수밖에 없는 환경을 제공하기는 했다. 새로운 목표가 생겼고,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공부하며 살고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 십이 년의 교육기간동안 했던 헛짓을 합쳐도 올 한 해 동안 공부한 노력만큼은 되지 않을 테니까. 친구들 대부분은 나보다 육 개월에서 일 년 가량 계약기간이 길다. 나는 친구 놈들이 술 처먹고 여자 후리고 게임에 빠져있을 시간에 관광공사의 각종 투어에 참여했으니 이건 당연한 일이다. 답답하고 힘들다는 녀석들의 푸념과 자조를 듣는다. 근데, 이건 알아야한다. 나와 우리 세대는 이곳에서 녀석들이 당한 취급보다도 더한 부조리와 악 폐습을 겪어왔으며, 어떻게 보면 이해되지 않는 변화의 선에 서있다. 우리는 그 힘든 시간 속에서 이겨냈고 당당히 배터리를 채우고 있다. 이건 일찍 투어를 다닌 만큼이나 당연한 일이다.
진짜 행복은 저녁식사나 설탕 따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날로 편해지는 공사생활에 있는 것도 아니다. 상위 일 퍼센트의 녀석들이 짧은 숫자가 찍힌 종이를 들고도 정작 행복하지는 못했듯이. 나는,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더 큰 행복을 위해 변화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거나, 더 높은 곳을 볼 수 있는 눈을 얻는 게 진짜 행복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학교와 공사에서 얻어터지고 손가락질 받아도 즐거울 수 있었고, 아이러니 하지만 밖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행복을 이곳에서 얻을 수 있었다. 날이 갈수록 스트레스는 늘어만 가고 피부는 썩어만 가고 머리는 굳어만 가지만. 가슴은 콩닥콩닥 꿈을 향해 설레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젊은 놈들이 나를 할배라고 낄낄거릴 날이 왔을 때 쯤 어쩌면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것에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게 언제 건 간에 그건 먼 훗날의 이야기고 나는 아직 철이 없는지라 내 행동에 후회해본 적이 없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에 한 점 부끄러움은 있을지라도.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나는 나이 스물하나를 먹도록 하나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는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나는 앞으로도 백 오십 밤 이상을 컴퓨터 앞에 앉아 보내야 할 테다. 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무리와 어떤 방법으로도 이길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이 쓰나미처럼 몰려들겠지만. 그래도 청춘에 봄은 오고, 세월이 흘러 여름도, 가을도 올 것이다.
인생의 가을에 접어들 때 즈음하여. 벤치에 끊었던 담배를 한 대 물고서. 까만 트렌치 코트자락을 휘날리고. 흰 머리가 드문드문 보이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씨-발 그래도 행복이 성적순은 아니었어. 우후훗. 하고 웃을 날을 기대하며. 나는 오늘도 손가락을 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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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04:36
상병 이우중
이건 정말이지
천 개의 공감
으로도 모자랄 지경이네요.
그런데 여섯번째 문단의 '나와 우리 세대'는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지 궁금해요. 2008-11-25
18:08:04
상병 김무준
다른 비정규직 직원이 옛날 직원이라고 부르는 세대를 말한다고 풀이해둡죠. 2008-11-25
18:44:03
병장 이동석
전 2006년에 입사했지만, 사실 뭐가 좋아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야 뭐 편해졌지만, 동료 직원들이 회사 참 많이 좋아졌다고 이야기 할때마다 예의상으로라도 공감을 못해서요.
그런것과는 상관없이 햄볶는건 성적순이 아니니까요.
학창시절의 일화- 불필요한 오기였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다만, 시스템에 대한 소극적인 반항-으로는 보입니다. 물론 저도 기껏해야 뻥쳐서 조퇴하고 자는척 하다 담넘고-같은 것밖에 못했지만,
다만, 이러저러한 마음에 안드는것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항 해볼 생각은 없으셨는지, 지금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2008-11-25
18:52:42
상병 김무준
내가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해주겠죠 뭐. 혼자 날리는 조소였습니다. 지금은 나 살기도 바쁘대니깐요? 2008-11-25
19:12:51
병장 이동석
뭐 적극적으로 저항하라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어떤 의도로 '바지를 내렸는지' 궁금했던거죠. 이를테면 무준님의 글을 이동슥식-으로 읽는겁니다. 2008-11-25
19:20:28
상병 김무준
재밌잖아요. 팍팍한 삶에 가끔은 나같은 존재가 충격과 공포와 짜증과 희망(?) 따위를 심어 줄 수 있다는게. 뭐 물론 뒷통수 맞은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나 때문에 누군가 대학에 떨어졌다거나 선생을 그만뒀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으니까요.
현실과 타협한 한도 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제일 큰 반항이었을 뿐.
BGM 요아리 - 인생은 아름다워 2008-11-25
19:24:37
병장 김낙현
거침없군요. [웃음]
저는 그만큼 휘저었으면 충분히 적극적이다 못해 충격적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동석님은 좀 다른가요.
그그 이상하지도 않은 문제들로 점수를 매겨 성적이라고 평가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기 때문에 고놈은 행복하고 전혀 무관한 것 같습니다. 똑같은 사람이 없는데 무슨 기준으로 위아래를 잡고, 또 그걸로 상대적인 것인양 행복을 정할까요. 그냥 혼자 좋으면 그만이지.
무준님의 아름다운 인생을 응원합니다. [꺅꺅] 2008-11-25
20:41:33
병장 이동석
엥? 전 이게 비난이나 공격으로 읽히리라곤 생각을 못했는데, 그런가요?
그냥 옮긴글도 옮긴이의 생각을 반영한다고 믿기에, 롹스피릿을 확인하려고 한번 여쭤보았습니다. 그리고 무준님 글에 유난히 난장깐다고 여기실지도 모르겠는데,
전 그저 어떤 입장-과 조우할때 그 입장을 탐구하는 변태적 취미가 있다고 해두지요. 그러니까, 무준님 처럼 어떤 거리낌도 외부에 두지 않고, 단지 내부에서 확고한 입장을 가진 분들의 글에는 언제나 이런 댓글이 달릴겁니다. 그건 저보다 더 제 이상형에 가까운 인간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거꾸로 보면, 그만큼 외부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을정도의 입장이 오롯한 글을 별반 만나보지 못했다는거지요. 피곤하게해서 죄송합니다. 2008-11-25
21:58:06
병장 정병훈
요새들어 동석님이 사과하는걸 자주보네요. 흐흐흐
사과는 왜하냐고 저에게 말하던 때가 엇그제 같은데 말입니다. 2008-11-25
22:07:51
상병 김무준
낄낄낄낄 2008-11-25
23:21:48
병장 이동석
병훈님과 무준님에게 웃음을 드리기 위해서지요. 흐흐.
똥폼잡아봐야 뭐합니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면 미안하다고 하는거죠. 2008-11-26
08:32:16
병장 박장욱
전 진짜 김무준님께서 종교 만들면 거기 광신도 될지도.. 크크
글이 어떻게 이렇게 뇌리쏙에 촥촥 박히는 말을 하는지... 흐흐 2008-11-26
09:00:12
상병 김용준
잘 보고 갑니다. 병훈님에 이어 무준님 빠돌이로도 활동해야겠네요. 하하.
(이거 너무 바빠지려나? 흐흐.)
음. 전 공부에 공자도 잘 모르고 공부 잘하면 정말 싫어했던 적이 있는데 학창시절에 제가 무준님을 봤다면 사이가 나빴을지도 킁...(땀땀)
제 성격이나 생각이나 행동 모두가 은사님을 만나서 바뀐게 정말 다행입니다. 하하. 2008-11-26
10:0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