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베스트선정-내글내생각]단상-대학 사상에 부쳐.(병장 김현진)  
병장 김상열   2008-04-16 09:27:00, 조회: 542, 추천:0 

말년 나가신 운영자님과 파견 나가신 부운영자님을 대신하여 옮깁니다.
명예의 전당으로 옮겨야 되는지 책가지로 옮겨야되는지 몰라 일단 책가지로...

역시, 광장이 있어야 굿판을 벌이든 축구를 하든 뭔가 해도 할 수 있나 봅니다. 공간이란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지요. 책마을이 부활하니 글이 절로 써지네요. 이런 느낌 오랜만입니다.

그럼, 오랜만에 달려 볼까요. 




(*이 글은 군에서 금지하는 "정치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정치학의 광의의 차원에서, 정치란 인간 집단의 의사결정 과정의 전반을 의미하므로, 군에서 금지하는 정치란 현 대한민국의 정치체제에 한정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정치"라는 표현은 그저 대학자치의 차원에서 사용되었으며, 글쓴이는 그 이상의 해석을 원치 않음을 명시합니다. 그리고 편의상 이하 경어 생략.)





'비운동권'이라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비(非)운동'이라는 말은 기존 운동권에 대한 찬성이나 반대의 개념에서 벗어나 있다는, 정확히 말해 '탈운동'의 뉘앙스를 주지만, 실상 그 비운동권이 대학교 선거 일선에 나선 이후 운동권과 대결하면서 보여준 성격은 '철저히 반(反)운동권적인 모습'이다. 그런 그들을 "비운동권"으로 표현하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이다. 이는 그들의 성격을 왜곡한다는 점에서 부당하며, 모든 종류의 싸움을 부정적인 것으로 호도하는 그들의 지나친 온건함, 상처받지 않으려는 소시민적 나약함의 반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감히 주장한다. 그들은 "반운동권"이라고 불려야 한다. 


  어떤 성격이 그들을 반운동으로 규정하는가? 좀 더 생각해보면, 반운동권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운동권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운동권이 갖고 있던 가치기준의 차원에서 대립구도를 형성해야 했음에 주의를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거의 모든 운동권이 기존 권위주의 정권과 사회에 대한 반대의 차원에서 '진보'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엄밀히 말해 운동권은 그저 사상(의 실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운동권의 근본 자체를 흔드는 반운동권의 성격은, 철저히 '반(反)사상적'이다. 그들은 사상을 거대담론으로 치부하며, 학생회는 거기에 홀려있기 이전에 학생들의 피부에 와 닿는 것들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운동권은 진보적이지 않은 가치들을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그들은 실제로는 진보적이지 않다. 내부에 만연한 조직 특유의 권위주의적 태도와, 진보와는 꽤 어울리지 않는 민족주의를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라.(민족주의적인 태도의 이유는 반미 성향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이러한 특성이 정해지기 전에는 나름의 고민과 성찰이 있었으리라 짐작되지만, 적어도 지금 이들에게 '이미 있는 것들'에 대한 고민은 없다. 


  실제로 많은 대학가에서 반운동권 총학이 설립되고 또한 유지되고 있는 실정을 보면, 반사상적인 그들의 "서비스"는 꽤 학생들에게 만족을 주고 있는 듯하다. 그동안 운동권이 거대담론에 지나치게 이끌린 나머지 그들을 뽑아준 학생들에게 소홀했음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동의하고 있는 것 같으며, 그런 그들의 욕구를 반운동권이 잘 짚어냈다고 볼수도 있겠다. 만약 운동권에 대한 학생들의 부정적 심리를 캐치하지 못했다면, 그들은 운동과 서비스를 동시에 추구하는 중립정책을 썼을 것이다. 다른 거 하나만 해주겠다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둘 다 해주겠다"는 것이 더 유용해 보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총학의 반사상적이고 반운동적인 성향은 단점을 갖고 있지 않은가? 반운동이 시대에 적합한 "정답"인가? 그들이 "반"운동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태생과 성격은 앞에서도 말했듯 변증법적이다. 기존 운동권에 대한 반테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운동권이 몰락한 이후 홀로 남을 반운동권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이 하나의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반사상의 영역에서 정치는, 특히 선거는 어떤 행태를 보여줄까? 


  본래 사상은 행위의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존재 의의를 갖는다. 따라서, 사상이 없음을 사상으로 하는 그 모순 때문에 비운동권간의 싸움은 반드시 "선거만의 차원"으로 한정될 것이다. 총학을 결정하는 데 있어 선거 외의 요소는 개입되지 않는다. 선거에서 보여주기 위한 것들, 공약과 정치적 전술, 이미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공약의 우위로 결판이 날 공산이 크기 때문에 대개의 공약은 과장될 수 있지만-가능성은 크다. 이념 없는 정치에 공(空)약이 판치는 모습을 보라!- 어쨌든 이념은 부딪혀도 서비스는 부딪히지 않는다. 많이 할수록 좋은 게 서비스니까. 따라서 그들이 내걸었던 공약들은 '그게 누구의 것이든지' 실현된다. 이긴 자는 진 자의 좋은 공약을 가져갈 거니까. 단, 실현 가능한 만큼만.

  그러므로, 모든 것은 이미, 선거 이전에 결정된다. 


  "비운동권"으로 완성되는 반운동권의 목표는 대학가에서 정치의 소멸을 가져다 줄 것이다. 비운동권의 체제하에서 우리는 충분한 서비스를 보장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비스 이상의 것들을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학교측이 부당한 이유로 등록금을 올려도, 그럴듯하게 포장된 이유로 학생들의 자치적인 행사를 막아도, 심지어 폭력적으로 제압하거나 학교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쫓아내도,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평화와 고요함이라는 반운동적 가치가 그들의 미덕이고, 그 미덕 아래 정치적 원칙들은 묵살된다. (그 총학이 항의한다 해도 그들의 상위 체계에 의해 묵살당할 것이다) 서비스의 수혜자에게는 필연적인 파편화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생에게는 "양들의 침묵"만이 주어진다. 선거권을 갖게 되는 성인이 되어서도 초등학교 반장 이상의 의사결정 체계(반장선거도 의사결정 체계라고 할 수 있을까마는)를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가 대학 내에서만이 아니라 이후 사회 현실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는 방법을 배울 수 없게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념 없는 정치를 상상해본 적이 없다. 파시즘과 자유주의의 싸움, 진보와 보수의 싸움, NL과 PD의 싸움. 우리는 오로지 이념과 이념의 싸움만을 목도해 왔고 운동권과 반운동권의 싸움마저도 이념과 (반사상이라는)이념의 싸움으로 수렴되고 있다. 그러나 운동권의 소멸이야말로 반운동권의 사상적 기반을 흔들 것이며, 이는 그들이 비운동권으로 '전락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운동권은 정확히 이 지점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운동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금의 비운동권처럼 사상 자체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썩어 있는 사상"에 사형을 선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운동/반운동이라는 미시적인 변증법의 굴레로부터 벗어난-운동권적이자, 진정으로 비운동권적인- 시대와 사람을 위한 새로운 사상을 잉태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심도있는 철학적 고민과 학교 안팎에서의 다양한 사고간 끝없는 토론으로 수행되어야 하며, 따라서 산모의 진통보다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래서일까, 아직 내 귀에 그 진통은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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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일병 정한성  
으아...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나의 무지함이 내 가슴을 꾹꾹 누르는군요. 숨 막힐 지경입니다.
2007-11-12 08:13:13  

02|병장 황인준  
저도 추천을 살포시.
사실 저역시 이런 글을 읽기에는 아직 무지합니다만,
그래도 피부로 느끼면서 경험을 해왔기에 어느정도는 이해가 가고, 공감이 갑니다.

그렇지만 '서비스'를 더 중시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을 뜬눈으로 지켜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사상'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서였을 까요?
저 스스로도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할 지 갈피를 못잡는 것은 최소한의 진통조차 제대로 겪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지 생
각되는 군요.
2007-11-12 08:50:52  

02|병장 배진환  
중심내용은 아니지만,

'운동권'이라는 단어 사용 부터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단어는 80년대 정부의 바른말'만'을 하던 매체에서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싸잡아 부정적으로 보이기 위해 만들어낸 단어일 뿐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운동권'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지. 빨갱이들, 데모, 폭력, 등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보통' 사람들, 학생들의 생각입니다. 
80년대 부터 폭력시위, 데모등 모든 부정적인 부분만을 (그들의 주장과 목소리, 그 실천의 이유는 전혀 말하지 않으면서) 부각시켜 '운동권'의 소행이라고 말해 왔던 매체의 영향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비운동권, 반운동권을 따지기 전에, 그들의 사상을 논하기 전에 '운동권'이라는 단어 사용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7-11-12 12:26:00  

02|병장 이기중  
'정치적으로 올바른' ->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이 아닌지...

제가 다니던 대학에서는 제가 다니던 시절부터 이미 총학생회 선거는 선거 자체로 끝나는 것이었고 이미지와 '서비스'공약의 질이 승부를 결정지었죠. 비운동권 혹은 반운동권 뿐 아니라 운동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뭐, 다른 곳도 크게 다르진 않았을 듯. 이념과 이념의 싸움은 이미 대부분의 학생들에겐 관심밖의 일이었고, 표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으니까요. 그나마 예전엔 내부단도리 용의 사상투쟁 정도가 있었지만, 요즘엔 선거공간에서 그런 것을 찾아보는 것도 아예 불가능한 듯합니다.

'서비스'만을 하는 비운동권 학생회가 학교측의 부당한 등록금 인상에 맞서 싸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등록금 인상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모든 학생이고, 이들의 불만을 대변하는 것 또한 '서비스'일테니까요. 다만, 운동권의 안티테제에 갖혀 집회등의 투쟁을 무조건 기피하는 반운동권이라면 불가능하겠습니다만, 이런 벽을 넘어선 비운동권이 생겨나는 것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어쩌면 학생회운동에서 새로운 사상의 생성은, 운동권이 가진 기존 이념의 도그마가 아니라 지금/여기의 학생들이 생활에서 느끼는 필요로부터 시작해서 사회구조의 문제를 밝혀내는 새로운 과정을 겪어야 할거라고 봅니다. 마치 80년대 학생회 운동이 처음 생겨날 당시 군사독재에 대한 저항이 바로 학생들의 생활에서 나오는 요구를 반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요. 물론 이런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겪어야 한다는 것은 꽤나 지루하고 어쩌면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입니다만.

사실 지금은 총학생회의 수권세력이 NL이든 PD든 반운동권이든 학생들에게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기 때문에, 총학생회에 대한 관심 자체가 떨어지는 상황입니다. 총학이 통일을 얘기한다고 통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비정규직 철폐를 얘기한다고 비정규직 철폐가 되는 것도 아니거든요. 등록금 투쟁을 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선본이 된다고 해서 등록금이 내려가리란 보장도 없습니다. 이 점이 현실정치의 총선이나 대선과 가장 다른 점입니다.
따라서 총학생회 자체가 의미있는 세력이 되고, 그를 둘러싼 이념적 논쟁이 의미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총학생회가 대학사회에서 권력을 가져야 하겠습니다만, 권력을 가지는 것은 학생들의 관심과 지지 없이는 불가능한 일. 이건, 키탈저 사냥꾼의 저주로군요.
2007-11-12 17:06:27  

병장 김현진  
기중 님// "정치적으로 올바른"이라는 말은 일종의 관용어구 같은 겁니다. 이를테면 흑인을 Black이라고 하지 않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고 표현하거나, 사람: Man->Men, 성: Sex->Gender 로 표현하는 거라던가 등등.

그러나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은 "완곡한 수사"의 일종입니다. 흑인을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인종차별이 없어졌음을 반영하는 게 아닌 것처럼, 완곡한 표현은 진실을 가리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지요.

좋은 댓글 잘 봤습니다.


/키탈저 사냥꾼의 저주는 뭔가요??
2007-11-12 17:22:01  

02|병장 이기중  
아, 그런 의미였군요. 용어의 뜻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어떤 맥락에서 쓰인건지 이해가 안됐거든요.
키탈저 사냥꾼의 저주는 이영도의 '눈물을 마시는 새'에 나오는 얘긴데, A가 없으면 B가 불가능하고, B가 없으면 A가 불가능한데 현재는 둘 다 없기 때문에 둘 다 성취가 불가능한 상황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2007-11-13 08:24:19  
  
병장 김현진
존재와 인식에 관한 이야기와 흡사하군요. 
2007-11-13 16:25:52  

02|일병 박종윤  
이전에, 한번 통독했다가 오늘에서야 다시 정독했는데, 현상에 대한 꽤나 치밀한 통찰이었기 때문에, 최근 제가 고민하고 있는 몇가지 아이디어들과 맞물려 있었기 때문에, 한번 다시 정리되는 의미도 있었고, 좋은 독서였습니다.

최근 어떤 후배와의 통화에서 "학교는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다가, 농담처럼 "아, 이제 우리 운동권 그만하자 쪽팔려서 어떻게 하냐" 라고 이야기 했었는데, 일종의 블랙유머였지만, 정말로 "그만해야" 될 것 이라 생각합니다. 지금과 같은 형태로는 말이지요. 제가 이런 말 안해도 다들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있고요.(웃음) 이제 정말로 '정치' 해야지요.(웃음)
2007-12-17 10:59:58  
  
병장 김현진
오타 수정합니다. 고친다 고친다 하다가 이제야 고치네요.

[그리고 운동/반운동이라는 미시적인 변증법의 굴레로부터 벗어난-비운동권적이자, 진정으로 비운동권적인- 시대와 사람을 위한 새로운 사상을 잉태하는 것이다.]

=>[그리고 운동/반운동이라는 미시적인 변증법의 굴레로부터 벗어난-운동권적이자, 진정으로 비운동권적인- 시대와 사람을 위한 새로운 사상을 잉태하는 것이다.]
2008-02-15 07:56:48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20:46 

 

상병 이동석 
  총학선거 투표율이 바닥을 뚫은지 오래라서 재선거에 재선거를 거듭하여 간신히 구색이나 맞추는 정도라 '과자 자판기 설치'가 공약이든 '등록금 동결'이 공약이든 별의미가 없는 대학사회. 
촛불운동을 계기로 정치 참여에 대한 호불호가 좀 더 첨예해졌다는데 대학사회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합니다. 물론 강 건너 일처럼 식당에서 틀어두는 티비에서나 보는 일이고 열람실이나 스타벅스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상당수겠지만, 2008-06-09
06:4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