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베스트선정-독서후기]그래도 교육이 희망이다
일병 박재선 2008-10-19 21:02:40, 조회: 323, 추천:3
독서기간: 2008. 9 ~ 2008. 10 (2회독)
제목: 「교육사회학」
출판사: 교육과학사
저자: 김신일(전 교육부총리,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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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에 대한 언급은 최대한 자제하며, 저의 사견을 서술하고자 합니다.)
1. 한국교육. 교육을 말하다.
한국에서 '교육'에 대해서 한마디씩은 할 수 있을 법한 교양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한국의 교육엔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들 말합니다.
'분명히 지금 이뤄지고 있는 교육은 뭔가 잘못되어 있는 것 같긴 한데, 뭐가 문제일까?'
무엇이 문제인지 명쾌하게 논리를 전개하려면 우선 '교육'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할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교육을 분석하는 방식들에 대한 고찰도 필요함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 소개하는 책은 이러한 교육의 제문제들을 분석하기 위한 '사회학적인 필요'에 의한, 교양을 쌓기 위한 입문서로서 큰 손색이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도 열심히 임용고사를 준비하고 있을 많은 분들에게 교육학 과목 중 하나인 '교육사회학'을 폭넓게 이해하기 위한 책이라 추천해주고 싶기도 하구요.
<교육사회학>이라는 독자적 학문이 미흡하다고 볼 수 있는 한국의 지적토양에서는, 교육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함으로서 '교육'에 대한 사고의 틀을 확장하기 위해서 읽든(교육의 사회학), 교육 역시 사회 문제 중 하위영역의 하나로서 사회문제를 '교육'이라는 코드로 해석하고자 읽든(사회학 내 교육), 오롯이 독자의 몫이라고 해둬야 겠습니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문학이 무엇인가, 예술이 무엇인가... 등등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으레 나오는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부터 시작하는 숱한 정의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의 상식적인 생각으로도 교육을 서툴게나마 정의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교육의 큰 특징들을 생각한다면 더더욱요. 교육은 변화, 발전을 수반한 일반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및 결과를 총칭한다고 거칠게 정의할 수 있겠지요. 물론 바람직하지 않은 변화를 가져오는 것도 교육이냐?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바람직하지 않는 가치(이를 테면 북녘에는 뿔달린 괴물이 살고 있다는 신화(영교육과정:선택적으로 배제하거나 추가하는 교육과정)라던지, 친구들끼리 쓰는 욕(잠재적교육과정:은연 중에 학습하게 되는 가치적 학습)이 그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를 배우게 되는 것도 분명 교육이라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 바람직하다, 바람직하지 않다 하는 가치에 대한 판단의 기준도 어떻게 보면 폭력적일 수 있는 문제이며, 교육이라는 것은 반드시 중립적이지 만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상 체감하고 있으며, 군대 내 '교육'이라는 것의 행태만 보더라도... 더 이상의 설명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교육은 어떤 변화(그것이 개인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를 야기하게 되는데, 교육을 사회적선발의 도구로 파악하고 산업사회 내 수단적기능을 역설한 뒤르켐 같은 사람들을 우리는 <기능주의>로 부를 수 있으며, 교육을 사회적 불평등 재생산 도구로 이해하고 마찬가지로 수단적 기능을 비판하는 부르디외 같은 사람들을 우리는 <갈등론자>라고 부르며, 기존 교육의 수단적 가치를 거부하고 보다 미시적인 접근으로 교육을 목적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려 노력하는 조류를 <신교육사회학> 혹은 <교육과정사회학>등으로 나눠 판단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교육사회학에 대한 계보를 분석해보면, 크게 세가지로 나뉨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교육에 대한 개념, 그리고 교육이 기여하는 분야, 교육에 의한 학력격차, 교육이 사회적 평등에 기여하는 정도 등에 대한 세부적 이론들이 설명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이론들의 한계점을 짚고 새로운 교육학을 모색해야함을 책 끄트머리에서 주장합니다. 저자인 김신일 부총리가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을 ' 21세기 교육학으로 상정한 것인지 저는 감히 궁금합니다.
2. 정치적 중립, 그리고 민주주의를 말하다.
정치는 일상적인 것입니다. 정치를 거칠게 표현해서 '취향에 의한 사회적 의지'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혼자 생각해본 적이 있었습니다.(정치학을 공부하시는 분께 실례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사견은 여기까지 줄이겠습니다.)
군인들에게 정치적 중립,은 의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사무실에서 세절하는 x나라당 국방위원들의 약력을 보면 예비역 대장 출신이 많다던지, 보수대연합 같은 곳에서 주한미군철수반대 집회에서 팔뚝질을 하는 예비역 출신 장교들도 많지만요)
교사에게 정치적 중립은 의무입니다. 초중등교육법이 정한 교육과정 시행령에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 의무'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전교조로 대변되는 좌편향 교사들의 교육적 실천(쇠고기개방과 식품안전에 대한 교육, 반전교육, 통일교육(?), 학력고사반대운동 등등)들이 언론의 뭇매를 맞을 수 있는 것이지요. 정치적 중립. 말은 참 그럴 듯한데 말이죠. 그게 참 쉽지가 않네요. 막상 교단(학생들보다 10cm가량 높은)이란 것도 없애고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처음 학급운영을 시작했던 재작년의 경우, 아이들의 자율적이고도 실천적인 학습을 도와주기 위해 여러가지 활동을 계획했을 때 걸려온 학부모님의 전화(내용은 학원 숙제가 많아서 그러니 학교에서 숙제를 덜 내어주셨으면 좋겠다는 간곡한(?) 부탁이었습니다.)를 두고도 정치적 중립이 가능할까 생각해봅니다. 그 학부모님도 자신의 정치를 저에게 행하신 것인데, 수많은 아이들을 한 교실에 모아놓고 생활하다보면 여러가지 정치적-혹은 개인적으로 말했을때, 취향에 의한-문제가 부딪히는 미시적인 수많은 부분들에서 교사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킬 수 있을까요?
아마도 교육과정시행령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정치적 중립을 '교육 내용'(방법은 내용에 따라 결정된다는 tylor의 말을 빌리자면 방법까지 포함하여)에 적용하려는 듯 합니다. 하지만 교육과정시행령에는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은 교육내용의 요강적 최소한 기준일 뿐이며 교사는 전문가의 위치에서 교육내용의 다양한 재구성을 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거든요. 위에서 언급한 일부 좌편향(?)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사회비판적 지식 습득을 강요하지만 않았다면, 많은 선배교사들이 오늘도 진보적인 교육내용과 그에 걸맞는 민주적방식을 고민하고 있음을 봐왔던 저로서는 정치적 중립이라는 말은 한낱 말장난에 불과하단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전통적인 교육관(절대적 지식이 존재함으로, 절대적 존재까지 긍정하게 되는... 그래서 사회적 계급격차를 무의식적으로 긍정하는)에서도 그렇고, 기능론자들이나 갈등론자들 모두 '교육이 지배계급의 이익에 해당되는 지적 내용을 구성하여 아동에게 가르친다'라는 결론을 낸 것으로 보았을 때, 지금 이대로의 교육도 충분히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은(우편향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말이죠.
그렇다면, 다양한 아동(그리고 학부모님들도 교육의 주체로 포함하여 끌어들인다면)들과 교사가 행복한 교실(물리적 개념을 떠나 공동체적 개념으로 생각했을 때)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실천해나가는 교육주체로서 '교육권력의 자기결정권'(요건 제가 급조한 용어일 뿐입니다)을 국가로부터 각 개개인들로 이전해나가는 작업인데, 이러한 풀뿌리 민주주의적 교육권을 '민중교육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어떤 내용을 선정하느냐 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그러한 '교육권력'의 민중으로의 이양하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적 교육원리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교육 내용의 좌편향, 우편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 교육을 행하는 주체들이 교육을 결정하지 못한다면 역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한계 역시 교육에서도 재생된다는 점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민주주의(직접민주정치)의 원리를 구현하기 위해서 사회집단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학급'이라는 공동체에서 교사가 '군림'하지 않는 존재여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뭔가 고민하면 할수록 교사의 노동강도는 높아져만 가는군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지시자가 아닌, 아동들의 주체적인 지식 구성에 도움을 주는 촉매의 역할을 강조하는 구성주의적 교육이론을 사범대와 교대에서 끊임없이 사골처럼 우려먹는 것도 그리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나중엔 구성주의적 교육이론에 대한 비판과 대안도 모색해볼만 할 것 같습니다.
3. 학벌, 경제구조, 입시제도, 폭력.
우리는 유독 인맥(학연과 지연을 기반으로 한)을 중시합니다. 어차피 함께 사는 세상, 인맥이 있어서 나쁠 건 없지만, 사회적 교육격차가 당연시 되는 '서열화된 사고방식'을 끊임없이 재생산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학벌은 그래서 위험합니다. 수많은 사회학자들이 지적했듯, 교육은 소득격차를 당연히 가져오며(기능론적 관점)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위한 필요한 수단(갈등론적 관점)입니다. 학벌은 입시제도의 존속을 가능케하며, 입시제도는 전인교육이 아닌 국가적 차원의 획일적인 시험 및 평가의 토대가 되는 지식위주의 교육내용을 끊임없이 요구하며, 그러한 교육내용을 아무리 창의적으로 재구성한대봐야 결국은 '수능점수를 가장 잘 따게끔 가장 세련된 입시공부'에 불과할 뿐입니다. 입시제도가 존속하는 한 사교육시장은 과열 팽창하여 서민들의 일상적 빈곤을 가져옵니다. 학원재벌, 재단이 득세하게 되며 교육의 돈벌이화, 교육의 시장화정책은 탄력을 받게 됩니다. 지배이데올로기와 기존의 경제구조가 강요하는 지식의 습득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이 비정한 서열화게임에 학생들은 영문모르고 끝없는 경쟁의 시험대에 오릅니다. 미시적인 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아이들은 '서열화'에 길들여져, '학벌'에 길들여져, 사람의 목숨까지도 서열화하는 철학적 도덕적 경박함을 보여줍니다. 입시교육의 스트레스는 교실 내의 숱한 미시적 폭력을 낳습니다. 교사들은 전인적 성장을 돕는 사람이 아니라 시험문제를 찍어주고 채점 평가하는 반복된 노동을 해야합니다. 가시적 성과로 학교의 효율성을 판단하는 교육청, 교육부의 천박한 인식은 교장선생님들의 학교경영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명문고, 명문대로 진학하기 위해, 영어를 좀 더 잘하기 위해... 그리하여 부르디외가 말했던 '문화자본-졸업장'을 획득하기 위해, 아동들은 상대평가의 끝없는 경쟁 속에서 서로를 적으로 생각하고 성적 앞에서 비정해져야함을 강요받습니다.
이렇게 보면, 한국 공교육의 문제(사교육은 공교육 정책에 의해 가변적이며 시장지향적이므로 '교육'이라기 보단 '교육적시장'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므로 논외로 하겠습니다)의 근원은 뿌리깊은 학벌의식과 입시제도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4. 희망은 있다
일부 교육과정사회학자들이 매력을 느끼고 있는 <저항이론>은 그리하여 흥미롭습니다. 저항이론은 지루로 대표되는 사회학자들에 의해 80년대 이후 주창되고 있는 신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교육선발과정에서 탈락되는 학생들은 스스로 그러한 삶을 자청한 것이다, 라는 이론입니다. 다시 말해 주류사회의 이데올로기에 반항하는 아동들이 시험을 소극적으로 거부하는 행태가 비행적인 행동으로 연결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반항아들을 마냥 사회적 저항의 영웅으로 그려내는 듯한 오바를 애써 감추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 저항이론은 진보적 교사들에게 있어 아주 매력적인, 그리고 연구의 가치가 많은 이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육과정을 연구하고, 대안적 교육과정을 만들고 있는 교사들의 모임이 있습니다. 전국oo교사모임(oo에는 과목 이름이 들어가 있겠지요)들이 그것인데요, 단순히 입시지향적인 지식공부를 위한 내용이 아니라, 실천적이고 일상적인 내용들을 포함한 이상적 교육과정을 직조하려는 교사들의 모임이겠지요. 아는 선배들 몇 분이 국어교육과정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대학생들보다 더 치열하게 공부하고, 실천하려는 선생님들이 많다는 것은 참 좋은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교육을 가능케하는, 우리의 희망인 새싹-아이-들이 아닌가 합니다. 아이들이 존재하는 한, 교육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죠(대학원 졸업 이후의 평생교육도 역시 중요합니다만..평생교육의 개념이 강조되는 요즘의 세태를 들여다 보면, '평생교육'을 '평생 노동의 도구로 단련시키려는 지배이데올로기의 농간'으로 보는 저같은 삐딱이들도 있으니깐요) 교사와 아이들 모두가 행복한 교실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지만, 이 세상을 바꿔나가는 가장 기본적인 변혁의 시작이니깐요. 그래서 교육이 희망이고, 교육으로 출발해야 한다고, 감히 생각해봅니다.
글을 마치며...
책마을에 글을 한 편 쓰다보면 일직근무가 그리 지겹지 만은 않군요.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11-18 14:39)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8-12-08
20:36:07
일병 박재선
아...깜빡하고 말머리를 안썼습니다. 비번을 몰라 수정을 못하겠네요. 운영자님 죄송합니다. 2008-10-19
21:05:17
상병 이우중
괜찮아요 '책마을'님이 친절하게 수정해주실거에요.
좋은 글인데.
안그래요? 동, 아니 '책마을'님(웃음) 2008-10-19
21:20:57
병장 박장욱
우중님의 말씀에 갑자기 투페이스가 생각나는 이유는....[응?!] 2008-10-19
21:54:43
병장 강문석
교육은.. 먹고 사는 법을 가르치기 보다는 뭘 먹고 싶은지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말은 다들 비슷하게 해도 결론은 또 다들 다르게 내리더라구요. 2008-10-19
22:27:44
병장 김낙현
저는 교육의 문제가 어째서, 이렇게 바껴야 하니마니 하기 전에...
첫 출발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처음은 가정교육인데 요즘 입시열기가 너무 뜨거워서 집에서 철학을, 생각을 가르치지 못하는 것 같아서요.
옛날엔 선생님 그림자도 안 밟는다고 그런 신성한 직업이었는데 요즘은 입시도구로 전락해 버렸으며 존경의 이미지는 점차 사라지고 있죠. 선생님이 애들 눈치보게 생겼는 데 무슨 존경을 받을까 말이죠.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배울 수 있도록 그런 눈과 귀를 갖게 하는 건 가정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저는 요즘 일어나는 거의 모든 어린이 문제를 그렇게 보는 사람이라 그럴지도 모릅니다. 2008-10-19
22:41:14
병장 문두환
언론에게서 정치적 중립을 기대하면 어려운 것과 교육과 같은 공적인 영역에서 정치적 중립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과 차이가 있을까요?(이건 질문입니다) 교육은 결국 그 사회에서 정치경제 권력을 지닌 '주류'의 정치적 성향이 반영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대찌게 가게 후배로부터 들은 이야기로)일선에 나가 있는 교사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부분은 상부에서 내려온 지침과 실재와의 괴리라는 것입니다. 교육이 그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생산'하는 개념이 되어버리면 참 슬프겠지만(하지만 지금의 교육의 모습은 사실 이렇지요),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교육의 내용이 결정되는 듯 하니까요. 그래도 그 안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보다 옳은 가치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선생님'들의 노력이 있기 때문이죠.
파울로 프레이리 - Pedagogy of the oppressed
사실 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많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이 책도 참 괜찮은 듯 합니다만. 흐흣. 2008-10-19
23:24:13
일병 박재선
병장 김낙현/
루소도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가 있습니다만... 저도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갈등론자들의 이론에 따르면, 아동의 학력격차에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가 '집안환경' 이나 '아버지의 직업'인 경우가 많았거든요. (물론 교육이 사회적불평등 재생산에 기여하는 또다른 행태를 인정한다면 말이지요)
가정교육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혹은 어느 쪽 한 사람이 혼자일 경우도 포함하여) 논의하여 형성할 수 있단 점에서 기존의 공교육의 제도적 비융통성을 극복할 수 있으므로, 대안적 교육과정으로 <홈스쿨링>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쪽의 지식이 얕은지라 감히 뭐라 말을 할 순 없겠지만...
제 여자친구가 공립유치원교사라서, 취학전 아동의 교육에 대해서도 고민해본적이 많았습니다. 공립유치원은 대개 공립초등학교에 병설된 경우가 많은데(유치원 학급만 모아서 만든 단설유치원도 드물게 있긴하지만)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면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대한 수요가 갈수록 늘어나지요. 따라서 가정교육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실제 비중이 낮아지고 있는 건 사회적 추세라고 봐집니다. 그런데 중요한건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차이에요. 유치원(만6세 이하)은 교육기관인데, 어린이집(만3세~4세)은 보육기관이거든요. 유치원도 넓은 의미의 의무교육으로 포함하자는 교사들과 교육부의 움직임이 있는데, 여성인력의 고용증가로 인해 어린이집을 정책적으로 보호 육성하려는 보건복지부와 여성부(부처 이름이 맞나 모르겠네요)와의 알력관계가.... 장난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어쨌든 가정교육... 그리고 취학전 교육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긴 한데 말이죠. 앞으로 많은 논의가 필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우선은 유치원교육도 의무교육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과 더불어 어린이집도 국가적인 차원의 지원이 필요할 것 같은데 말이죠)
병장 문두환/
교육이든 언론이든, 정치적 중립이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적인 영역에서도 분명 사회적 분위기에 의한 주류의 '취향'이 낳은 정치적 의지가 생겨나기 마련이죠. 생각해보세요. 선생님이 학급에 1명 모범상을 줄려고 추천받기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잘하면서 집도 잘살고 얼굴도 잘생기고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은 아이와(완전 잘써놓은 레디메이드 인생같죠?), 집은 가난하지만 공부를 잘하고 착하지만 그다지 인기가 없는 소심한 아이가 있습니다. 학급의 아이들과 선생님은 과연 누구를 맘 속으로 '모범상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낙점할까요? 뭐... 정치적 중립은 말그대로 중립을 가장한 의도적이고 선별적인 침묵에의 강요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봅니다. 누구나 정치적인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을 모아놓고 탈정치적이 되라고 강요하는 건 웃긴 마법의 주문이나 마찬가지죠.
프레이리의 책은 진작에 읽었어야하는데 단 한번도 읽어보지 못했었습니다. 어떻게든 구해서 읽어보고 싶네요. 2008-10-20
07:28:35
병장 문두환
/재선님
흐흐. 맞아요. 일전에 동석님의 주말논쟁에서도 고개를 끄덕였던 부분이기는 한데, 어떻게 사람에게서 감정을 배제하겠습니까. 사람들이 언론에게 중립, 중립을 기대하고 또 강조하지만 세상 어디에도 중립적인 언론은 없습니다. 다만 '공정'한 언론이 존재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되는 것이죠. 하다못해 교통사고에 대한 보도만 해도 누가 누구를 들이 받았다, 끼어들었다 라고 하는 표현에서 주체 객체 설정에서 일정한 가치판단이 개입하는데 복잡한 사회야 말해 무엇하겠어요. 교육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중립적인 교육은 없어요. 다만 어떤 것이 우리가 받아들이고 후세에 전달해야 할 가치인 것인지에 대한 '공정'한 논증의 과정이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그저 '지침'만 있을 뿐이지요. 허허. 2008-10-20
09:06:48
병장 이동석
음, 읽고 나서, 제가 말머리를 달아야되겠기에, 내글내생각일까 독서후기일까를 잠시 고민했습니다. 흐흐.
어쨌거나, 다음부턴 로그인 하고 글 써주시는게... (땀)
내용에 대해선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만, 지금은 작업중이라, 다음기회에... 2008-10-20
09:18:19
상병 이동열
감정을 가진 사람은 주관적이고, 사람인 이상 공정한 객관성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요...
그덕에 정치적인 중립 또한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교육문제에 있어서도 현재 '좌편향교과서'문제가 이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뭐 더 얘기하고 싶어도 껄끄러운 이야기라 무리일것같기는 하지만...
하지만 이를 떠나서 분명 '인간적인' 선생님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에 기울어져있든 말이죠- 그리고 저는 그런 분을 만났다고 생각합니다(웃음) 2008-10-20
11:45:57
일병강진우
휴가때 책사서 꼭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2008-11-24
00:3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