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슬픔의 절묘한 조화
지난 주 부대에서 1번가의 기적을 상영하였다.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영화니 꼭 보라는 말을 들었고 주말에 생활관에서 빈둥거리기보다 문화생활 영위차원에서 보는 것도 그닥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영화를 보았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1번가의 기적은 철거 예정지 들어서있는 자신의 집을 팔겠다는 강제동의서를 받으러 온 깡패(임창정)가, 그곳의 아이들과 여성 복서(하지원)에게 정이 드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영화는 코미디로 홍보되었지만(임창정과 꼬마 배우들의 대사가 무척이나 웃겼지만), 영화 전체가 풍기는 느낌은 저항과 분노이다. 영화는 코미디라는 형상을 이용하여 지금 우리 사회에서 행하여지고 있는 무차별적인 폭력과 부조리를 문제제기하며 저항과 분노를 희망으로 대체한다. 코미디이면서 슬프다? 그럼 소위 '웃기다 울리는 영화' 인가? 그렇지는 않다.1번가의 기적이 던지는 웃음은 대체적으로 가볍게 다가오고, 지극히 현실적인 슬픔은 무겁게 다가와 관객의 마음을 때린다. 그렇지만 슬픔과 웃음의 탁월한 배합으로 감정선을 무너뜨리지 않는데, 가령 너무 슬펐던 토마토 세례 장면에서 슬픔을 잡아빼며 길게 끌지 않고, 곧 즐거운 물장난 장면으로 이어나가며, 다시금 희망의 끈을 부여잡는 식이다.



1번가를 덮치는 사회적 폭력
작품적인 시각에서의 슬픔과 웃음의 균형적 배합도 놀랍지만, 진정 놀라운 것은 가난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영화는 '1번가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외부에서 온 임창정이 사람들의 삶에 정이 드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외부인이 지역민에게 동화되는 내용은 특별한 것은 아니다. 선생 김봉두나 마파도 등 비슷한 것들이 많다. 그러나 1번가의 기적은 1번가를 유토피아로 미화하거나 가난을 낭만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적나라한 방식으로 구체적인 그들의 사연에 밀착해나간다. 암에 걸린 고물일을 하시는 할아버지가 돌보는 부모 없는 아이들, 한때 동양챔피언까지 올랐던 권투선수였으나 지금은 허리를 다쳐 누워있는 홀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일당 2만 5천원을 받으며 일을 하는 여성 복서, 홀어머니와 살면서 1번가를 창피하게 여겨 매일 슈퍼에 맡긴 운동화를 신고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 젊은 아가씨, 언제나 무기를 들고 철거 용역을 내쫓다 마침내 분신하시는 아주머니 등등. 그들은 착하지도 순진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억척에다 막무가내이다. 동네에 하나뿐인 푸세식 공중화장실에서, 철거 예정지라 수돗물도 콸콸 나오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서, 선을 따오지 않아 인터넷은 되지도 않는 마을에서, 그들은 마지막 보금자리에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악을 쓰며 저항한다. 그들은 알고 있으리라. 보상금 수백만원으로는 얼마가지 않아 받은 돈을 다 잃고 거리에서 방황할 것이라는 것을. 그들의 가난은 무지나 의지 부족 탓이 아니며,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이 벼랑으로 내모는 사회적 폭력에 의한 것임을 영화는 정확히 말하고 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영화 속 철거 장면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영화인가 라고 반문한 사람도 있다고) 굉장히 현실적이다. 그동안 재개발과 철거가 나오는 영화는 있었지만, 비열한 거리에서 처럼 대부분 조폭의 입장에서 철거는 힘들지만 폭력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로 다루어졌다. 그러나 1번가의 기적은 철거민의 눈으로 철거를 재조명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악만 쓰며 저항하는 사람들과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의 집이 포크레인에 박살나는 광경을 지켜보는 어린 아이들의 시선으로, 철거란 자기 삶의 터전을 파괴당하는 공포스러운 것임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할아버지와 아이들이 식사하는 도중 덮치는 포크레인의 악몽은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아이들은 동요를 부른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임창정은 너희들 강변 살고 싶구나? 강변 땅값이 얼만지 알아? 라며 대꾸한다. 집이 부서지는 광경을 보며 울고 있는 아이들에게 임창정은 노래를 시킨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노래처럼 헌집이 부서지고 새집이 지어지겠지만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은 그 새집이 이들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고 있다. 영화의 말미는 기적같은 해피엔딩으로 귀결되지만, 이것이 무성의한 결말로 여져지진 않는다. 왜냐하면 불가능한 화해를 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원이 최선을 다한 경기에서 관장님은 '네가 이긴거야.'라고 말하지만 3:0으로 완패한다. 그러나 라커룸에서 아버지에게 챔피언 벨트를 받은 그녀는 용기를 얻는다. 임창정은 조직에 저항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구타 뿐, 그가 철거를 막지는 못한다. 그러나 새로운 삶을 희구하게 된다. 그들은 패하지만 승리한다. 영화는 결말을 통해 각자 꿈꾸는 이상향을 보여준다. 하늘을 나는 아이는 놀이동산이 된 마을을 보게 되고, 부모님을 잃은 아이는 부모님을 만나고, 연애는 성공을 이루고, 복서는 챔피언이 되어 스프리스와 3억원의 후원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나레이션이 흐르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사막 같은 곳도 추억이 될까요?" "그건 우리 마음에 달렸지." 비정규직은 늘어가고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있지만, 빈곤 문제는 다세포소녀처럼 희화화되기 일쑤이고, 슬픔과 분노 역시 그놈 목소리에서처럼 과거의 특정 사건으로 국한되는 상황에서 1번가의 기적의 문제제기는 올바르다. 현재 우리곁에서 소리없이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폭력을 바라보고 이를 넘어서기 위한 희망의 노래를 마음에 품는 것,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당연한 윤리이자 상식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