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칸트의 역사철학   

  최근에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던 <칸트와 역사철학>은 그 동안 오래동안 정치적인 측면에서 오해와 무지의 베일에 싸인 칸트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선 보인다. 일례로 칸트는, 특히나 정치철학적인 맥락에서 '자유주의자'로서, 특히나 휴머니스트로서만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한구 교수에 의해 세심하게 정리되고 해설된 이번 칸트의 번역본 신간은 이와 철저하게 모순되는 지점들을 '징후적'인 방식으로 지적하고 있다. 가령 이교수는 칸트를 비판하면서 그가 "역사의 목적을 도덕성의 실현을 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인류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함으로써 개인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완전히 비도덕적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개인의 희생 위에서만 실현되기 때문"이라고 언급하며, "이때 우리는 도덕성을 위해서 도덕성을 희생시키는 자기 모순을 범하게 될 것이며, 개인의 희생을 불합리하게 강요하는 전체주의적 원리를 거부하기도 어렵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할 때 그는 칸트에 대해 매우 정확한 요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유주의적 휴머니즘의 관점에서 과도하고 불합리한 주장으로 보이는 한계야말로, 칸트 정치-역사철학의 가장 정합적인 핵심이 아닌가?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전체주의적 원리를 거부하기 힘들어지는, 그러한 역사적 순간들이야말로 진정한 칸트적 순간들은 아닌가. 칸트 자신이 "마치 자연이 인간의 안녕보다는 인간의 이성적 지존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말할 때, 그는 매우 정확한 요점을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비록 그의 <영구평화론>이 제외되어 있지만) 칸트의 역사철학과 정치철학적 전망이 담긴 논문들을 묶어낸 이 책에서야말로, 범용한 자유주의자들이 '참기 힘든', '과도한' 주장들을 매우 일관되게 펼치고 있는 칸트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칸트의 정치철학의 '역린'을 건드릴 수 있을까? 그의 철학에 있어 개념적 성좌를 형성하고 있는 기표들을 오로지 칸트 고유의 어조를 통해 읽어내는 것이 관건이다. 여기서 '자연'이라든지, '계몽'이라든지, '시민사회'라든지 하는 용어라든지 심지어 '인간'(여기서 칸트가 말하는 인간은 개별 인간이 아닌 유적 인간으로서, 도리어 개개의 현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비정한 무관심을 내포한다)이라는 개념조차도, 칸트에 의해 완전히 새롭게 재정의되고 있음을 지적해야 한다. 칸트의 계몽주의조차도 공리주의적인 18세기 일반의 계몽철학과 완전히 다르며, 그가 말하는 시민사회는 헤겔이 당대 의회-민주주의를 선취한 영국의 부르주아 시민계급을 모델 삼아 이야기했던 것과 조금도 비슷하지 않다, 평화를 논의할 때 칸트는 그것을 '비폭력주의'와 무관한 층위에서 접근하고 있으며, 기타 등등.

  가령 칸트의 역사철학은 자연철학에 목적론적인 관점을 도입하면서 시작된다. 자연이 의도한 목적에 따라 인간사는 부지불식 간에 그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자연이 인간사에 은밀히 도입한 목적은 자연이 인간에게 천부적으로 부여한 도덕적 소질을 남김 없이 계발하라는 지상명령이며,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론서 목적으로 대우받는 최상의 정치체제, 즉 보편적인 세계 시민사회를 건설하는 정치적 프로그램이다. 이는 계몽주의적 기획의 연장선상에서 각자가 자신의 이성을 자유롭게 사용할 것을 요청한다. 여기서 칸트가 도입한 목적론적 관점은 배후에 인간 역사를 조종하는 정신적 실체가 주장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우발적인 인과법칙이 지배하는 인간의 역사에, 도덕적인 목적으로 상정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이성적 요청이 '가능하다'는 것만 칸트는 말한다. 인류는 끊임 없는 진보와, 시민사회로 표상되는 도덕적 완성과정을 경주한다는 목적론적 서사는 하나의 거대한 가정절로서 취급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러한 관점은 결코 임의적인 주관성에 의해 도입된 게 아니다. 물론 그것은 칸트의 말대로 "세계사의 고찰을 위한 특별한 관점"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관점이 실천이성의 관심사에 부합하며, 그러한 한에서 유일하게 이성적인 관점(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단지 여러 가능한 관점들 중 하나의 가능한 관점들을 소묘하는 포스트모던 상대주의의 지평에서가 아니라, 상대적 관점들을 사전에 조건짓는, 불가능한 '응시'의 지점으로 파악되어야 한다)인 이유는, 그것이 당대 유럽의 정치-경제적 정세 속에 잠재하는 '타자'에 의해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가령 칸트는 근세 유럽의 절대왕조들 간의 가혹한 군비경쟁에 의해 기회를 박탈당하게 될, 미래 후손들의 관점(응시의 지점)을 도입한다. 그것은 물론 '불가능한 관점'이며 단지 어떤 부조리한 느낌에 의해서만 도입된다. 그러나 그들의 관점을 통해서만, 전쟁이 종식된, 앞으로의 세계 시민사회를 향한 목적론적 요청이 정당화되며, 그러한 한에서만 그것은 계몽의 기획에 실제로 봉사한다. 왜냐하면 후손들의 관점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바의 관점에 의해서만, 즉 여러 민족이나 정부들이 세계시민적 목적에 얼마만큼 기여를 했는가 혹은 얼마만큼 손상을 입혔는가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평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대의 역사적 정황 속에 잠재하는 이러한 타자의 응시는 물론 오직 '현재'의 정치-경제적 난국과 무관하지 않다. 칸트의 동시대인들도 당장 독일 전역을 황폐화시켰던 '30년 전쟁'의 후손들이었다. 그러한 점에서, 역사에 대한 여러 가능한 관점이 존재하겠지만, 역사를 자연이 부여한 시민적 덕성을 계발하라는, 그리하여 앞으로 다가올 보편적 시민사회 속에서 군비경쟁이 종식되게끔 하라는 요청만이 유일하게 '이성적'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들은 칸트가 처해 있던 정치적 상황 속에서, 자신의 기표를 어떻게 발명했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가 얼만큼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개념들을 고안했느냐가 아니라, 그가 살았던 시대의 화두였던, '계몽', '공화주의', '시민사회' 등등의 기존 개념들에 어떤 새로운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느냐는 관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칸트의 말대로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논의되고 있는 개념들이 특정 집단(그것이 국가적인 차원이라 해도 무방하다)에 의해 코드화된 채 읽히는 상황을 돌파해서, 그것을 완전히 낯선 관점 속으로 내던지는 것이다. 칸트의 말대로 대개 공적인 논의로 여겨지는 것은 사실상 이성의 "사적 사용"에 불과하다. 그것은 "그에게 맡겨진 시민적 지위나 공직에서 이성을 사용하는 경우를 말한다." 설령 시민의 법적 자격으로 이런 저런 논쟁에 참가한다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특정 국가나 시민사회 내부에서 발견될 수 없는 어떤 불가능한 자리에서, 완전히 낯선 동일시의 지점을 발명(그는 그것을 "세계시민적 관점"이라 부른다)하는 한에서, 그런 도약을 감수하는 한에서만 익명의 독자대중들(앞으로 도래할 후손을 포함한, 인류 일반으로서의 '독자') 앞에서 서야만 비로소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미친 내기 속에서만, 새로운 사유 속에서 기존의 개념들을 새롭게 재발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2.. 칸트와 공화주의 

  칸트는 대개 자유주의자로서, 그것도 매우 나쁜 의미에서의 자유주의자로서만 읽혀지고 있다. 가령 국제 정치학에서 칸트주의란 마키아벨리즘적 현실주의와 대립되는 자유주의적 이상주의로 분류된다. 그런 관점에서 국가 간의 현실적인 이해타산에 따라 전쟁도 불사할 국가들을 규제하는 유일한 원리는, 얼마나 그 국가가 의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잘 받아들이는지의 여부로 판가름난다. 즉 대개 국제정치의 영역에서 '칸트주의'적으로 사고하는 자들은 전쟁을 일으킨 위험이 있다고 낙인찍힌 국가가 얼마만큼 책임 있는 의회제도를 잘 수용했는지, 얼마만큼 외국 자본의 투자에 의존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실망하기도 기뻐하기도 한다. 가령 의회제도와 대의민주주의를 잘 갖춘 나라일수록, 설사 첨예한 국익이 걸린 문제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덜 호전적으로 대응할 것임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칸트 자신에게 이런 사고방식은 매우 낯설 뿐만 아니라 근거 없는 것이기까지 했다. 우선 칸트 자신은 이미 당대의 영국식 의회제도에 대한 어떤 환상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칸트에게 있어 국제정치에서 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일국의 정체가 어떠한지 여부와 완전히 무관한 사항이었다. 가령 칸트에게 공화共和주의 이념이야말로 유일하게 당대 유럽사회의 계몽적 관심사에 가장 잘 부합하며, 더불어 전쟁을 방지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목표였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칸트에게 있어 그 이념은 일국의 "국가형태"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게 아니라, 그 국가의 실제적인 "통치방식"과 그러한 통치방식을 강제하는 국가 간의 협약에서 찾아지는 것이다.() 게다가 칸트가 거주했던 프로이센이야말로, 온건한 자유주의자-의회주의자들 입장에서 위험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오늘날 북X이나 이란과 같은 깡패국가Rouge state에 가까웠다. 그러나 칸트는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사태에 접근하지 않았다. 가령 놀랍게도 어느 나라보다 '자유민주적'인 영국에 대해 칸트는 단호하게 그것이 '절대군주정'이라고 일갈한다.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하게도, 영국 군주가 국민의 동의 없이 의회와의 야합 속에서 외국과 전쟁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오늘날 국제정치의 지평에서 가장 '호전적'인 국가들은 대개 의회제도를 갖춘 자유주의 세력들이다. 다소 충격적으로 들리겠지만, 칸트에게 있어 영국과 같은 나라는 살싱상 입헌주의 국가도 아니며, 심지어 공화정도 아니라는 것이다. 칸트에게 있어 공화정체란 "전쟁을 도발하지 않는" 나라와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절대군주란 무엇인가? 그는 전쟁이 필요하다고 명령하면 즉시 전쟁이 발생하게 되는 그러한 명령을 내리는 자이다. 그러면 제한된 군주란 무엇인가? 그는 미리 국민에게 전쟁을 할 것인지 아닌지를 묻고, 만일 국민이 "전쟁이 일어나서는안된다"고 대답하면 전쟁을 일이키지 않는 그러한 군주이다--왜냐하면 전쟁이란 모든 정치적 권력이 국가의 최고 통치자의 처분에 맡겨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국의 군주는 국민의 동의를 구함이 없이  상당히 많은 전쟁을 수행했기 때문에 절대군주인 것이다. 물론 그는 헌법에 의해서는 절대군주일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은 국가권력에 의해, 즉 그 자신이 모든 행정부처를 마음대로 장악할 수 있고, 또 그가 국민의 대표들의 보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의해 항상 헌법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같은 매수제도는 분명 공개되어서는 성공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제도는 매우 불투명한 베일에 가려진 비밀로서 존재하고 있다." <다시 제기된 문제 137p>

  여기서 칸트는 의회제에 의해 권력이 제한된 군주라 해도, 그것이 의회와의 공조 속에서 헌법을 초월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의회제도 자체가 그러한 월권행위를 은폐하는 구실을 한다는 급진적 비판으로까지 나아간다. 물론 칸트가 칭송해 마지 않는 프리히드리히 대왕이야말로 슐리지엔 지방을 놓고 전쟁을 도발해 왔다. 그러나 칸트의 요점은 그러한 전쟁에 관해 대다수의 국민이 어떤 방식으로 그 의사를 표출할 여지도 없이, 의회의 승인을 통해 외국과 식민지 전쟁을 일삼는 바로 그러한 '자유-민주적' 행태야말로 '절대군주제'와 다를 게 없다는 것이었다. 오늘날 어느 용기 있는 '칸트주의자'들이 가령 국민의 동의 없이 의회의 묵인 속에서 수 많은 나라에서 파괴공작을 일삼았던 쌀나라를 '절대군주제'라고 비판하겠는가? 이런 점에서 칸트는 사실 자유민주주의나 의회제의 옹호자였다기보다는, '공화주의자'로서 재평가되어야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그가 당대의 선진 해양세력으로 부상하던 자유주의적 영국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독재적인 후발국 프로이센에 거주했다는 전기적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그 자신은 계몽사상가로서 당국으로부터의 검열과 탄압을 감수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막강한 상비군을 보유하고 있던 '프로이센 대왕'이야말로 가장 탁월한 계몽군주이며, 그야말로 유럽의 계몽정신을 대표하는 유일한 자라고까지 이야기한다. 이러한 아부에 가까운 발언들은, 종종 칸트 자신의 소심한 심성 탓으로 돌려지곤 하지만, 오히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발언에서 칸트의 요점을 발견해야할 것이다. 

  "만일 그러한 (공화주의) 이념의 정치체제가 일단 대규모에서 승리하면, 그것은 전쟁을, 다시 말해 모든 선한 것의 파괴자를 없애는가장 좋은 정치체제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정치체제를 갖추는 것이 하나의 의무이다. 그러나 군주들이 독재적으로 통치한다 해도, 공화적(민주적이 아니라)인 방식으로, 즉 자유로운 법의 정신에 알맞은 원리에 따라 국민들을 다루는 것이 잠정적으로는 군주들의 의무이다(성숙한 이성을 가진 국민이 그 스스로 통제하듯이). 물론 군주들이 국민들의 동의를 일일이 구하지는 않겠지만." <다시 제기된 문제, 138p>

  가령 칸트에게 있어 '공화정'이란, 그것이 "국가형태에서 공화적이든, 혹은 단지 통치방식에서만 공화적이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후자의 경우 그것은 국민이 스스로 보편적 법의 원칙에 입각해 만든 법률에 준해서 한 사람의 통치권자(군주)가 국가를 지배하도록 하는 것이다."(133p) 공화주의는 대의기관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법률(헌법)에 의한 지배를 천명한다. 그런 점에서 절대군주는 반드시 그 통치방식에서 공화제와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공화제는 그 안에 있는 시민 일반이 입법적 관심사를 능히 발휘할만한 도덕적 존재로서 대우받는, 그것이 '원칙'이 천명되는 그러한 정체를 의미한다. 그런데 칸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 누구에게나, 나아가 인류 전체가 그러한 '입법자'의 소질이 천부적으로 부여되었다는 원칙을 보편적인 차원에서 천명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원칙이 의회제도를 통해 표출되든 계몽군주를 통해 실현되든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칸트는 그것이 영국식 의회제보다는 프로이센 식 계몽군주의 절대적 의지 속에서만 적합하게 체현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가령 이것은 공화주의의 이념이 어디에서 나오는지에 대한 기원의 문제로까지 거슬로 올라간다. 칸트는 단호한 어조로, 그것은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사물들의 운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사물들의 운동을 통해서 가능"(140p)하다고 단언한다. 오늘날의 맥락에서 말하자면 공화정의 기원은 '의회적'(아래에서 위로)라기보다는 '헌법적'(위에서 아래로)이다. 즉 공화주의의 이념은 결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시민들의 민의를 수렴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외부'에서 도입된 것이다. 실제로 칸트는 비슷한 맥락에서 제 국가들이 공화주의적 이념 속에서 평화적으로 공존해야한 다는 그러한 요청은, '국제관계'의 맥락 외부에서 생각될 수 없다는 바를 명확히 했다. 공화주의 이념은 국가 내부의 시민여론의 수렴에 의해서 의지된 것이 아니라, 국가들 간의 파멸적인 군비경쟁과 전쟁의 참상에서 도래한 것이다. 그것에서 예견된 앞으로의 파국 때문에 각 국가들은 그 정체가  어떻든 간에, '국제연맹'을 만들 수 밖에 없으리라고 칸트는 예측했다. 그것이 공화주의적인 이념을 향한 발걸음이며, 그것은 처음부터 '국제적'인 문제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공화주의라든지, 그것이 수반하는 헌정질서는, 즉 '헌법'은 국가 '외부'와의 관계 밖에서는 생각될 수 없다. 이상주의자로 왜곡되곤 하는 칸트는 이런 점에서 누구보다 '현실적'인 사상가였다. 

  "완전한 시민적 정치체제를 확립하는 문제는 국제관계의 문제에 의존하며, 이 후자의 해결 없이는 해결될 수 없다. 개별 인간들이 하나의 합법적인 시민적 체제를 위해 일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인간으로 하여금 그러한 일에 종사하게 하는 바로 그 반사회성은 다시 모든 공동체들이 하나의 국가로서 외적인 관계를, 즉 다른 국가들과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관계를 맺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 결과 한 국가는 다른 국가에게 다른 국가에게--개별 인간을 억압하고 강요하여 합법적 시민 사회로 들어서게 했던--그 사악함을 기대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자연은 인간이 만든 거대한 사회나 국가체제에서까지도 인간들 간의 불화를 수단으로 하여, 그와 같은 불가피한 대립 속에서 평화와 안정의 상태를 찾아내도록 한다."(<세계시민적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 35p)

  가령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국민 저항권을 이야기할 때 헌법 1조 1항을 자주 인용하지 않는가?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무엇보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공화국"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중요한 관건은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할 때, 그것을 이해하는 고유한 "공화주의적" 방식이 무엇이냐는 물음이다. (가령 집회 현장에서) 흔히 이 헌법조문을 즐겨 인용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그것은 조금도 의회주의적 요소를 포함하지 않는다.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하는 주체는, 그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는 기관이 아니라, 헌법 그 자체이다. 이것은 확실히 불합리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헌법이 권력의 주체를 국민으로 귀속시킬 때, 그것은 국민 일반의 여론이 그것을 의욕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결코 아니다. 헌법 1조에서 천명하고 있는 것은, 국민이 여론이 어떻든지와 무관한 고수되는 하나의 '원칙'이다. 그러한 원칙은 물론 그 나라의 국민의 의식수준이나 여론양상과 무관한 지점에서, 즉 '외부'에서 도입된 것이다. 실제로 광복 후 한국에서 헌법이 제정될 때, 대다수의 국민들의 그 존재조차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우리가 인정해야할 사실은 다음과 같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원칙은 실제로 국민들이 그렇게 원했기 때문에 초래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시점은 '외부에서 도입'된 것이 맞다. 그런 것이 없다면, 공화정도 헌법 같은 것은 애초에 알려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공화주의 이념은 일국이 어찌할 수 없는 외부의 국제관계를 내면화할 때에야 비로소 '도입'되는 것이다. 공화정이든, 시민사회든 그 모든 개념들은 이렇듯 자발적인 내부에서가 아닌 외부에서 도입되어야만 비로소 사고될 수 있다. 그렇게 사고되어야만 실제로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정이념이 실제로 국가로 하여금 무럭사용을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민주주의'나 '자유'의 이름으로 전쟁과 압제를 일삼는, 즉 다른 나라가 다른 나라에게서 사악함만을 기대할 수 밖에 없는 상태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3. 칸트와 평화주의 

  칸트는 대개의 국제정치 문제에 접근하는 자유주의자들이 그러하듯, 국제평화에 기여하는 요소를 단지 일국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그러한 관점에 매몰될 때, 오히려 지금껏 자유주의적 의회제도를 갖춘 국가들이(칸트 당대의 영국이 그러했듯) 가장 호전적인 군비경쟁을 부추겼다는 이율배반에 부딪히게 된다. 칸트는 오히려 평화에 기여하는 요소를 엄밀히 '국제관계' 그 자체에서, 즉 개별 국가들의 '외부'에서, 그 계기를 찾고자 했다. 앞서 보았듯이 헌법은 바로 그 외부적인 시점, 타자의 불가능한 시점을 내부로 도입한 결과이다. 칸트는 그 관계성을 현실적인 차원에서 분명히 고찰하고 있다. 

  "무역을 통해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우리 유럽대륙에서의 각 국가들이 겪는 동요상태는 다른 국가들에까지도 분명히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다른 국가들까지 위험에 휩쓸리게 되므로 다른 국가들은 스스로 중개자가 되어--비록 합법적 형태를 갖추지는 못한 것이지만--이전 세계에서는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미래의 거대한 국제기구를 서서히 준비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이러한 국제기구가 단지 아주 생경한 구상 속에 있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구의 모든 참가국들 사이에는 이미 어떤 감정이 태동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은 개혁의 성격을 띤 많은 혁명을 거쳐 마침내 자연이 최고의 의도로 삼고 있는 보편적인 세계시민 상태가 도래할 것이란 희망을 준다."

  물론 이 국제관계를 칸트는 (맑스가 자본주의의 역사를 그렇게 보려고 했듯) 우선 '자연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했다. 그것은 우선 철저하게 인간의 의도를 배제하고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내 그 자연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자신의 목적(인간의 도덕적 소질을 남김 없이 계발하고, 시민사회를 건설하라는 지상명령)을 실현하는 과정으로서 세계사를 움직인다는 관점에서 고찰된다. 물론 역사의 주체가 자연이라는 것은 역사에는 아무런 주체가 없다는 것이나 다름 없다. 다만 마치 우리를 어떤 목적을 향해 추동하는 것 같아 보이는 자연은 다른 아닌, 칸트가 분명한 어조로 지칭한, '무역을 통해 아주 밀접하게 연관된' 유럽의 지정학적 '교통공간'이다. 칸트가 자연이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는 과정으로서 역사를 바라볼 때, 이는 이러한 공간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시민사회'라는 목표 자체도 존립근거를 잃으리라는 뜻이다. 흔히 앞의 구절에서 제시된 "보편적인 세계시민 상태"란 하나의 점근선적인 이상향으로 독해된다. 마치 개별 시민사회들이 합쳐져서 세계 시민상태로 나아간다는 투이다. 그러나 칸트는 분명 그러한 세계시민 상태란 하나의 '감정'으로서 도래한다고 이야기했다, 즉 그러한 세계시민적 상태에 관한 감정 없이 시민사회란 사고될 수조차 없다. 시민사회는 본래 '세계시민 상태'를 향한 감정과 더불어 도래하는 것이다. 시민사회는 반드시 인류 전체의 상호적인 국제적 교류를 전제한 코스모플리타니즘적 감정 속에서 수반된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시민사회가 아닌 (칸트의 표현대로라면) 하나의 거대한 "가정집단"이다.  

  그러나 개별국가들이 마주하는 외부의 관계성은 반드시 호의적인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관계 속에서 거의 즉각적으로 '전쟁'의 가능성이 잉태된다. 그런데 대개의 (홉스와 같은) 사회 계약설 신봉자들은 그러한 전쟁의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역으로 패권적인 '일국'의 성립과정을 정당화했던 것에 반해, 칸트는 오히려 전쟁의 가능성은 계약의 조건이 아닌 사실상 그러한 사회계약의 산물임을 분명히 했다. 전쟁을 선포하고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주권자'이지 다른 누군가가 아니다. 그 주권자가 자연상태에서부터 계약을 통해서 탄생했던 아니든 간에 그러한 주권자가 성립하고 나서부터 "좋든 싫든" 우리들은 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여기서 칸트는 역설적이게도, 정확히 '프로이트적인' 함의를 지닌 '문화'라는 단어를 제시한다. 전쟁은 문화의 내적 조건이자 그것의 산물이다. 프로이트는 '문명'(내지는 문화를)을 공격충동이 문명 그 자신에게로 돌려진 것으로 파악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칸트 역시 '문화'를 '반사회적 사회성'의 산물로서 이해한다. 전쟁의 양가적인 위상에 대한 칸트의 서술은 그가 전쟁을 결코 이기적인 정념들 간의 투쟁으로, 혹은 자연상태의 혼란으로 바라보는 것을 거부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문명화된 민족을 위협하고 최고의 악은 전쟁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실제의 전쟁보다는 오히려 미래의 전쟁에 대비한 지속적이고 점점 더 증가하는 준비가 더욱 그러한 악의 근원이 된다. 국가의 모든 힘이 그것을 위해 사용되며, 좀 더 위대한 문화를 위해 쓰일 수도 있을 문화의 결실들도 그것을 위해 사용된다. 도처에서 자유는 침해받게 되며, 개인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보살핌은 가혹하고 혹독한 수탈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외침의 위협에 대한 불안의식에 의해 정당화된다. 그렇지만 한편 이와 같은 끊임없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국가의 지배자들에게 이런 인류에 대한 존경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고 한다면, 현재 존재하고 있는 문화가, 상호 간의 복지 증진을 도모하기 위한 공동 집단들 간의 밀접한 협력 관계가, 수 많은 인구가, 그리고 매우 심한 제한을 가하고 있는 법률 하에서도 아직 남아 있는 자유가 어느 정도나 가능했겠는가?"

  여기서 칸트는 거의 최초로, 아감벤이나 칼 슈미트 이전에 전쟁을 (국가 이전의 자연상태가 아닌) "예외상태"로 최초로 사고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칼 슈미트는 예외상태를 일국의 차원 내부에서 대처할 수 없는 위기로 정식화한 바 있다. 이러한 예외상태야말로 일국 내부의 대의기관(의회제도)의 한계를 드러낸다. 의회기관은 국가의 상태, 여론, 향방을 '재현'하는 기관이지만, 예외상태는 '재현'되거나 '대의'될 수 없는, 일국의 관점을 넘어선 근본적인 위기이다. 그것은 의회기관 상위의 '강제력'을 요청한다.(이것이 나치의 집권을 옹호하는 이론으로 오용되기도 했지만 분명 강력한 진실을 내포하고 있다) 이와 똑같이, 칸트는 일국의 관점에서 전쟁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그 피할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역으로 주권의 기원이 내부의 사회계약이나 대의제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보다 상위에 있는 차원에서, 바로 그러한 '전쟁의 가능성'에서부터 온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 가능성은 자연상태에서가 아니라 다수의 국가들이 뒤엉킨 채 공존하는 국제질서로부터 초래된다. 칸트가 말한 '자연'이란 그런 것이다. 그것은 홉스가 말한 '자연상태'와 조금도 같지 않다. 그것은 개별국가들이 어찌할 수 없는, 그 국가 하나하나가 어떤 의도를 갖고 있든지와 무관하게, 국가들에게 닥쳐오는 (정치경제적) 위기로 표상된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코스모폴리타니즘'도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듯 감상적인 인류애의 발현이라기보다는, 바로 그러한 적대적인 계기를 내포함으로써만 비로소 성립된다. 코스모폴리탄적 '감정'은, 그것이 하나의 감정이라면 그것은 프로이트가 말한, 초자아의 심급에서 유래된 '섬뜩한 두려움'의 감정이다. 칸트가 언급한 인류에 대한 '존경' 역시, 타자에 대한 나르시즘적 투사가 아닌, 바로 이 '초자아'를 통해서만, 각 개별 국가의 나르시즘에 위기를 초래하는 상위의 폭력적인 권위로서 사고되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칸트의 평화주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칸트는 우리가 전쟁을 겪을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게다가 그는 '상비군'의 존재를 긍정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화주의적 이념 하에서 그것을 승인하는 것이다. 그가 행간에서 모델로서 은밀히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은, 프랑스 혁명 당시의 '시민군'이었다. 당대 온갖 최강국의 군대들을 물리친 이들은, 후일 당대의 유럽 사회의 '초자아'로 기능했다. 그것은 당대 유럽의 새로운 국제질서, 즉 칸트의 표현대로 '국제연맹'을 강제하는 폭력적인 힘이다. 이것은 '폭력'을 통해서만 성취 가능하다. 물론 전쟁은 전 인류를 수단화하는 반인륜적인 범죄이다. 그러나 우리는 전쟁을 필연적으로 겪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이 반복될수록, 오히려 우리는 희망에 한 걸음씩 다가가게 될 것이다. 이에 관한 '칸트적 반복'의 유사한 사례는 마오 X둥이 인상적인 방식으로 발언한 바 있다. 

  "우리는 평화를 바라며 전쟁에 반대한다. 하지만 제국주의가 전쟁을 일으킨다면,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소요에 대한 태도와 마찬가지이다. 즉 제1조는 반대하는 것이요, 제2조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소X의 인구는 2억이었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모두 합쳐 9억의 인구가 사X주의로 돌아섰다. 제국주의자들이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킨다면 수억의 인구가 사X주의로 돌아설 것이며, 제국주의 편에는 남은 땅이 별로 없을 것이다."
-마오X둥, <쌀 제국주의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이러한 태도에는 분명 공포스러운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이 공포야말로 (칸트저인 의미에서) '자유'의 조건이다. 칸트는 이 점을 자신의 독자적인 '평화론'에서 매우 명확히 한다. 이것이 칸트가 통상적인 비폭력주의자들과 다른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