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기표(고유명사)의 용법 - 우리가 공부하는 것의 대의  
병장 박원익  [Homepage]  2009-10-01 16:32:38, 조회: 1, 추천:0 

1.  고유명사란 무엇인가?

  이준혁님께서 '고유명사'의 문제를 드디어 언급해 주셨습니다.(이준혁, 1960#, <[내글내생각] 고유명사의 언급에 관하여>) 어쩌면 왜 이제서야 그것이 언급되었는가 의문이 들 정도로, 그러한 문제제기는 지금 상황에서 적실한 것 같습니다. 책마을에서 칸트, 헤겔, 라캉, 프로이트, 고진, 지젝 등등의 '고유명사'들이 이미 난무한 상황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준혁님은 고유명사에 대한 하나의 태도를 보여주셨습니다. "어떤 사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고 하다면, 고유명사를 사용하지 않고도 충분히 '자신만의 언어'로 그것을 표현해 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를 표현하는 데 장황한 설명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준혁님께서는 '크립키'의 <이름과 필연>을 인용하면서, 칸트와 헤겔 등등의 '고유명사'proper name를 도입할 때 생기는 혼란을 우려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최근에 책마을에서 일련의 저자들을 언급하면서도 그들을 '불성실'하게 인용하는 세태를 꼬집은 준혁님의 말씀에 비춰볼 때 이상한 일인데, 왜냐하면 제가 아는 바로는 (저는 가라타니 고진의 <트랜스크리틱>을 통해서 크립키를 접했습니다) 크립키는 그러한 고유명사가 야기하는 '혼란'이 언어의 긍정적 조건이라는 가능성을 열어두었기 때문입니다. 가령 "칸트란 말이지..."라는 말에 대해 "그런데 '칸트'라는 말을 통해 너는 무엇을 뜻(욕망)하는 건가?"라는 질문이 나오고, 거기에 답변이 나오면서 우리는 끊임 없이 그것에 대해 말하고 욕망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칸트라는 고유명을 투명하기 자기화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칸트의 개념에 대해서는 함구해야'한다면, 우리는 단지 칸트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어쩌면 다른 모든 화제에 대해서도 영원히 입을 닫고 침묵해야 할 것입니다. 가령 사람들이 방송매체에서 일상적으로 떠들어대는 각종 고유명사들 치고 제대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 있나요? 혹은 그런 것들은 원칙적으로 제대로 내면화되 수 없기에 떠들여지는 게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저는 칸트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라, '고유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준혁님의 입장은, 크립키보다는 오히려 '고유명'이 가지고 있는 어떤 신비를 일반적인 기술을 통해 해소해버리려는 기획을 추구한 버트란드 러셀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러셀은 '고유명'(에베레스트 산)이 지니고 있는 혼란의 가능성을, 그런 고유명에 대해 서술하는 "자신만의 언어", 즉 일반적인 기술(세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등등)로 환원시킬 수 있다고 믿은 것이지요. 에베레스트 산이 용법상으로 실제 의미하는 바가 이게 다라는 건데요. 이것을 준혁님의 입장에 대응시켜본다면, 칸트라는 고유명이 가지고 있는 뭔지 모를 '신비감'은 칸트의 저작과 생애에 관한 등속의 텍스트를 남김 없이 접근하고 그것을 자기화할 때(하지만 이것은 제가 봤을 때 일종의 허구로만 존재하는 '조망점'으로 보입니다)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크립키는 오히려 러셀에 반하여, 고유명은 결코 일반적인 기술을 통해서, 그것에 대한 나름의 패러프레이징을 통해 해소되 수 없다는 것을 단언합니다. 왜냐하면 에베레스트 산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기술해도, 가령 에베레스트 산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서술해도, 여전히 왜 하필 '이 산'인가라는 의문이 남아있으며, 그러한 고유명에 대한 지칭 자체가 여전히 신비한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이지요.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칸트가 "감성의 형식"이나 "오성의 범주" 내지는 "상상력의 도식화 작용" 등등으로 언급한 인식의 기능들의 고유명은, 단지 우리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일상적 용법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말입니다. 말하자면 그러한 칸트의 용어들을 일상적인 수준에서 완전히 자기 나름대로 소화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칸트가 언급한 '오성'이니 '감성'이니 '상상력'이니 하는 말로 지칭한 것들은 여전히 칸트만의 고유한 것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그러한 제거될 수 없는, 최후까지 해명되더라도 여전히 그것에 저항하며 자신의 비-의미를 드러내는 고유명사를 '기표'라고 부를 생각입니다. 물론 이것은 정신분석가 라캉의 '기표'입니다. 라캉은 기표가 확실히 존재하며, 우리에게 지울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크립키와 동일한 노선을 공유하며, 오히려 러셀과 같은 기술 환원주의자에 반대하는 것이지요. 기표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정교한 해명으로도 자기화될 수 없는 채로 그저 우리의 언어에 어찌 할 수 없이 '주어졌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고유명사들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이지요. 라캉은 <세미나11>에서 바로 그런 고유명사가 있기 때문에, '무의식'이 존재한다고까지 이야기합니다. 언어에 주어진 불투명한 기표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의식을 가지지 않을 겁니다. 그러한 기표들은 언젠가 해명되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2. 고유명사에서 기표의 정치학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마치 비트겐슈타인처럼, 이 '기표'가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용법'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비트겐슈타인 역시 '기표'를 부정했지만, 러셀과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부정했던 사람인데, 그는 그 기표를 각종 기술적 명제들로 해명할 수 있다고 믿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이 어떤 일상적인 '용법'으로 사용되는지를 직관하면서 그러한 기표의 불투명성이 해소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기표가 지닌 궁극의 불투명성이 '신비'로 남는다는 원칙을 고수했지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라"고 말할 때, 우리가 침묵해야하는 것은 왜 번거롭게도 이런 저런 칸트니 헤겔이니 하는 고유명사들이, 그런 언어적 문턱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입니다. 그러한 고유명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채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니까요. 이런 점에서 그는 라캉과 놀라울 정도로 가깝게 되지요. 하지만 라캉이 비트겐슈타인과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는, 그가 '기표의 도입'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라캉에게 기표란 단지 어떤 신비(비트겐슈타인 같은 합리주의자도 굴복할 수 밖에 없었던 신비)로서 주어진 원초적 사태가 아니라, 우리의 장 안으로 '도입'되는 무언가입니다. 라캉은 왜 어떤 기표가 기표로서 '도입'되고, 다른 것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해 사고한 것이지요. 예를 들어, 왜 준혁 씨는 다른 하고 많은 기표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칸트를 기표로서 인정하지 않을까요? 왜 헤겔과 칸트는 기표로서 도입될 수 없는 것일까요? 이런 비슷한 질문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라캉은 기표를  최초로 정치적으로 사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다시 기표의 용법으로 돌아가자면, 우리는 그 단어를 실제로 사용하는 일군의 사람들을 거론해야합니다. 영화비평과 정치 평론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일군의 라캉주의자들을 말씀드리는 건데요. 정치 이야기가 나왔기에 드리는 말씀이지만, 오늘날 정치평론에서 '기표'라는 단어가 비로소 기표로서 도입된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굽시니스트님이라는 유명한 웹툰 작가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 당시에 히트시킨 일련의 정치평론 만화는, 놀랍게도 아직 소수의 라캉주의자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던 '기표'라는 단어를 대중에게 각인시켰습니다. 가령 과거의 산업화 시대와, 반공정서의 '기표'로 통하던 박씨의 기표에 대응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와 개혁의 '대항기표'로서 정립되었다는 건데요. 이렇듯 만화를 통해 대학원생 논문에나 나올 이런 논점을 재미있게 설명하면서 부지불식간에 대중들에게 '기표'라는 단어 자체에 어떤 기시감을 부여하면서, 전혀 위화감을 불러일으키지 않게 되었지요. 물론 기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유한' 용어로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표'라는 단어 자체가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기표'로서 도입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렇듯, 우리에게 낯선 언어가 어떤 기표로서 도입되고, 그것이 사고지평을 확장시킬 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번역'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헤겔의 '즉자' '대자'라는 개념이 훌륭하게 번역된다는 것은, 그 개념의 불투명성이 한국어 속에서도 오롯이 드러날 때입니다(발터 벤야민, <번역가의 과제> 참조) 우리 말로서 충분히 대응되지 않는 개념을 딛고서 사고의 '도약'을 감행할 때, 우리는 그 단어가 비로소 기표로서 도래했다고 볼 수 있지요. 헤겔이 나온 김에 헤겔의 명언을 인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신비는 동시에 고대 이집트인들 자신에게도 신비였다." 이 유머러스한 구절은 즉자대자라는 개념이 헤겔에게도 동시에 불투명한 무엇이었음을 알려주지요. 그런데 그는 그것을 가지고 당대의 사고지평의 확장을 이뤄냈습니다.

  본래의 논점으로 돌아가 봅시다. 저는 정치평론의 영역에서, '기표'가 비로소 기표로서 도입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그럼에도 이 기표를 정치적으로 사고하기 위해, (비트겐슈타인처럼) 이 기표를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기표의 '용법'에 대해 따져봐야할 것 같습니다. 사실 그 기표가 도입된 것은 정치적 인물을 평론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노무현이라는 '고유명'을 우리가 일련의 일반적인 정치적 견해로 환원시킬 수 없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기표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이지요. 말하자면 누군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완전히 같은 이력과 이념을 공유한다손 치더라도, 그는 여전히 '그 노무현'이 아닌것이며, 노무현 그 자신은 그러한 일반적인 정치적 신념과 변별되는 독특한 아우라로 남습니다. 그가 정치사에서 하나의 '기표'로 도입되었다느 것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이지요. 아무튼 노무현은 여기서 긍정적인 기표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다른 용법도 있지요. 우리가 타도해야할 모종의 정치세력, 그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기표'라고 말합니다. 그러한 기표는 제거되어야 할 기표이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거은 한국 정치평론계에서 라캉주의자들이 굳이 기표라는 표현을 쓸 때, 그것은 대개 '인물'의 차원에서 표상된다는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기표이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기표이고, 다른 사람도 기표입니다. 하지만 가령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기표'라고 한다면, 왜 민주주의 자체는 기표로서 사고되지 않는 것일까요? 가령 '민주주의'라는 것은 노무현이라는 독특한 개인을 일반적으로 기술하는 어떤 것으로 환원됩니다. 하지만 가령 에베레스트 산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기술할 때, 일반적인 것으로 기술된 '세계'와 '산' 그 자체도 여전히 '신비'한 것으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요? 말하자면 고유명을 결정하는 것, 그것은 태도의(정치적인) 문제입니다. 일반명사로 알려지는 것도 다시 '기표'로서 도입되어 사고될 수 있는 것이지요. 저는 그것이 철학의 기본 매트릭스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을 자기 것으로 소환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거기서 사용되는 기표를 부정하지 않고서 그것을 수용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칸트가 '오성'이나 '감성' 그리고 '상상력'으로 말한 것은, 우리식대로의 표현으로 얼마든지 환언될 수 있습니다. 사실 칸트가 오성, 감성, 상상력으로 말한 것 자체도 독일어 안에서의 일상적인 용법에서 유래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칸트의 용어들은, 후대의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전혀 다른 용어로 패러프레이징되어 일반적으로 서술된 채 비판당하고 있습니다. 칸트가 행한 범주구분들은 정신사적 발전단계에서 한번쯤 거칠만한 입장 쯤 되는 것으로 격하되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헤겔은 왜 칸트가 그것을 굳이 '오성'이나 '감성' 등등으로 말하며, 그것을 궁극적으로 상상력과 매개시켰는지는 여전히 궁국적으로 불투명한 것으로 남습니다. 헤겔의 중립화된 서술 속에서 칸트의 역사성은 거세되어 있는 것이지요.




3. 기표를 도입하기

  아무튼 정치평론의 영역에서, 이제는 심심찮게 사용되는 기표의 '용법'은 대개 인물을 지칭할 때 사용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령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기표라고 말할 때, 왜 우리는 '민주주의' 그 자체를 기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요?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해서 얼마나 투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민주주의야말로 궁극의 기표가 아닐까요? '민주주의'라는 단어에는 해소될 수 없는 불투명성이 있기 때문에, 물론 그것은 사실상 기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여전히 헌법학 개론이나 정치학 수업에 성실히 참여하면 그것이 더 잘 이해될 수 있다고 믿어지기 때문에, 그것은 기표로서 전혀 도입된 바가 없지 않을까요? 이러한 곤궁은 곧바로 정치적 곤궁으로 이어지는데, 가령 오늘날 사회 불만세력(?)이 우리 임금님더러 '반민주적'이라고 비난하는 식으로 자신들의 불만을 표출하는 방식이 그것입니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전혀 기표로서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어떤 자명한 대상으로 이해하는 것이지요. 

  저는 다시 우회해서, 자크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을 거론하고 싶습니다. 그 책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조제프 자코토는 '지적 평등'을 원칙적으로 단언한 교육학자(?)로서 유명합니다. 그는 지적 평등을 실천 속에서 증명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그가 행했던 것은, <텔레마코스의 모험>이라는 당대의 고전 모음집을, 글을 전혀 읽을 줄 모르는 무지한 이들에게 던져주고는, 몇몇 단어들을 가르쳐주고서 무작정 '읽게'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코토의 방법은, "칼립소는, 칼립소는 못했다, 칼립소는 하지 못했다..." 이런 방식으로 단어 하나하나씩 떠듬더리면서 한발짝 한발짝 '읽어나가고', 자신이 읽은 것에 대해 '설명'하게 하는 방식이었지요. 그들이 지금까지 배운 건 '지식'이나 '지혜'가 아니라, 단순히 책에 나온 물질적 '기표'였기 땜누에, 그들은 그것을  이용해서 모종의 지적 '도약'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이 작문한 것들은 대개 웬만한 작가의 수준에 도달한 것들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사람들은 단순히 그들이 그 뜻을 전혀 모르면서 단지 그것을 말할 뿐이라고 비난했지요. 마치 칸트에 대해 알음알이("칸트는, 칸트는 했다, 칸트는 말했다....")를 하는 사람들이 그 뜻을 전혀 모르면서 칸트에 대해 멋대로 떠드는 것에 불과하고 우리가 비난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텔레마코스의 모험>을 제대로 읽으려면, 저자에 대한 권위적 주석들을 인용하고, 이들이 쓰여진 이런저런 배경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고전의 참뜻을 알 수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그것은 당연히 중요한 과정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기표'가 무엇인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지요. 자코토는 오히려 특권적 지혜를 표상하는 고전의 저자들과 그들의 언어를, '기표'로서 도입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기표인 한, 우리는 그러한 기표 앞에서 원칙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자코토가 증명한 '지적 평등'입니다. 우리가 지적으로 불평등한 것은, 어떤 멍청이가 칸트도 제대로 읽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칸트를 우리가 점근선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야할 어떤 철학적 물신으로 은밀히 숭배하는 헛똑똑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그들은 칸트라는 고유명에 칸트보다 더한 어떤 원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굳이 칸트를 호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하지요) 그들은 칸트에 제대로 접근할 수 있는 일반적인 '방법'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자코토는 그들이 행하는 것이 '바보 만들기'에 불과하다고 일갈합니다. 다시 말해 칸트와 그의 개념들을 진정으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우선 우리의 언어 지평 속에서 기표로서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그 기표에 대해 어떤 방법으로 접근하든 우리는 그것 앞에서 동등한 입장이라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칸트라는 기표를 그것이 기표로 남아 있는 한 자기 멋대로 '내면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한에서, 칸트는 누군가의 특별한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는 특권적 지식으로 그치지 않고, 비로소 만인에게 '공적으로' 열려 있게 되는 것이지요. 자코토가 스스로를 '무지한 스승'으로 자처한 것은 결코 빈말이 아닌데, 그는 앞서 상기한 방법대로 네델란어를 전혀 모르는 프랑스인이었으면서도 네델란드 학생들에게 <텔레마코스의 모험>(이것은 네델란드어와 프랑스어 대역본으로 적혀 있었습니다)을  통해 프랑스어를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단지 그는 책을 던져주고, 두 언어를 비교해보게 한 것이지요. 그 기표를 주의 깊게 도입한 학생들은 결국 프랑스어를 체득하게 된 것이지요.





4. 기표와 공부의 대의

  제가 지금까지 저자의 권위를 강조하고, 어떤 저자들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은, 그것이 '기표'로서 먼저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표가 아니라, 보다 일반적인 기술로 해소될 수 있는 것(우리가 '교양'으로 이해하는 게 흔히 그런 건데요)이 된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그것을 보다 훌륭하게 말로 풀어낼 수 있을만큼 그것에 대해 잘 '안다고 가정된 주체'를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치 특정 정치인을 민주주의의 '기표'로 이야기할 때, 그 정치인이 민주주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몸소 체현하고 있다고 믿게 되듯이 말입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칸트에 대한 상상적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유식한 스승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러한 권위는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칸트나 헤겔이 공자와 맹자가 그랬듯이 누군가에게 '스승'의 역할을 했던 시기를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권위가 종말한 지금, 우리는 헤겔과 칸트가 용도를 상실한 기표로서 우리와 낯선 지평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게 될 겁니다. 문제는 그러한 기표들이 주체의 장으로, 즉 우리들 가운데 무의식적으로나마 기표로서 도입된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낯선 것을 익숙한 것으로 도입하는 것만큼,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가령 '민주주의'라는 것 역시는 본래는 그 자체로 매우 특이한 '고유명사'였다가 그 용도를 상실한 채 (마치 철수와 영희처럼) 일반적인 술어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앞서 저는 칸트가 가령 '상상력'을 일상적인 용법 속에서 기표로 재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말년에 칸트는 <영구평화를 위한 시론>에서, 우리가 어린이 만화를 통해서나 접했던 '세계평화'나 영구평화라는 일반적인 용법에 또 다시 '기표'의 위상을 부여하며, 공적인 담론공간에 도입합니다. 우리가 만일 '민주주의'라는 것을, 혹은 '세계평화'를 마찬가지로 기표로서 새롭게 발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그 이전만 하더라도 자명해 보이던 사회적 영향력을 이미 상실해버린, 혹은 그 기표에 대해 안다고 가정된 주인들을 상실해버린 지금 상황에서, 날 것으로 드러나버린 그 기표의 '불투명성'을 온전히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완전히 새롭게 재발명할 수 있을까요?

  만일 우리가 '공부'하는 것에 어떤 대의가 있다면, 저는 주인을 잃어버린 수 많은 기표(고유명사)들을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것에 있다고 감히 단언하고 싶습니다. 가령 노무현은 민주주의의 주인이었다고 애매하게나마 말할 수 있겠지요. 그 기표는 이미 애매한 고유명사로 알려져 있던 헤겔이나 칸트, 마르크스, 스피노자, 라캉, 프로이트 등등이 될 수 있으며, 혹은 민주주의나 세계평화 그 자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건 그러한 기표의 권위를 재도입한다는 것의 의의는 그러한 기표를 다시 어떤 안다고 가정된 주체에게 귀속시키는 퇴행으로서가 아니라, 그러한 기표를 공적인 공간으로 열어두는 바로 그러한 '행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장담컨대, 바로 그러한 한에서만 우리는 기표의 권위를 진지하게 다룰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