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 로러는 게임 디자이너입니다. 그런데 여느 게임 디자이너들과는 다르게 소속된 회사도 없고, 그럴듯한 스튜디오도, 개발기기도, 심지어는 함께 게임을 만드는 동료도 없습니다. 그는 게임 디자이너로 살아가면서 게임 디자인으로 버는 직접적인 수익은 거의 없습니다. 그가 만드는 모든 게임은 무료로 배포될 뿐 아니라, 저작권을 스스로 포기하여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저작권이 소멸된 상태)으로 공개합니다. 그는 저작권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오픈소스* 개발자이기도 합니다.

* 소프트웨어의 소스를 대중에 공개하는 것을 말합니다. 비유하자면, 비밀무기의 설계도를 몽땅 공개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로러의 자연주의적인 삶 때문에, 그는 히피 게임 디자이너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의 집 앞마당은 야생초원과도 같은 모습을 자랑하고 있는데요. 그 때문에 소송을 당하기도 했지만, 잔디를 깎지 않는 것이 자신의 자연적인 삶에 대한 표현이라고 주장한 그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는 그의 삶 자체가 자신의 철학에 대한 표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게임에도 역시 적용되죠.

  회사도, 스튜디오도, 마땅한 개발기기도, 동료도 없는 그는 어떻게, 어떤 게임을 만들까요? 그가 게임을 만드는 데 쓰는 것은 노트북 한 대 뿐입니다. 그리고 그가 만드는 게임은 호화찬란하고 거대한 상업용 게임도 아닙니다. 아주 작고 단순한 인디게임입니다.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여정>(Passage)이라는 게임입니다.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띠 모양의 좁은 화면에 작은 도트 캐릭터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다른 상용게임처럼 화려한 3D 그래픽에 다채로운 액션 같은 건 전혀 없습니다. 10년, 아니 20년 전에 나왔어도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소리를 들을 그래픽에, 할 수 있는 거라곤 움직이는 것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의 게임은 주류 언론에서도 소개되며 나름대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의 게임은 지금까지 호화찬란한 3D 게임이 다루지 못 했던 ‘죽음의 불가피성’이라는 소재를 무겁게 표현하고 있었죠. 주류 게임 디자이너 중 한 사람인 클린트 호킹(Clint Hawking, <스프린터 셀> 시리즈를 디자인한 유비소프트 소속 디자이너)은 그동안 수백명의 디자이너가 한 것보다 더 큰 일을 해냈다고 칭송했습니다. (여기서 지금 게임을 자세히 설명하긴 그러니까, 나중에 기회가 되시면 구글 같은 검색엔진에서 'Jason Rohrer Passage'를 검색해서 게임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그의 게임은,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상용게임과는 다른 어떤 가능성을 비추고 있었죠.


◎ 새로운 흐름

  요 몇 년 사이 게임계에는 로러처럼 상업게임과는 다른 대안을 찾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상업게임이 게임이라는 미디어의 가능성을 의미없는 폭력과 상업주의 속에서 썩히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비판의 움직임은 이전에도 몇 차례 있었습니다. 80년대의 주요 히트작인 <밸런스 오브 파워>, <동부전선>을 디자인한 원로 게임 디자이너 크리스 크로포드의 비판이 좋은 예입니다. 그는 80년대 중후반부터 화려한 그래픽에 의지하고 폭력으로 점철된 게임계를 비판해왔습니다. 94년, 그는 결국 자신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는 게임계를 떠나겠다고 선언하고, 그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를 만들고자 산 속으로 은거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 그것도 젊은 사람들에 의해, 비판은 실질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것에 인터넷의 발달이 한몫 했다고 생각합니다. 본디 그 근본이 디지털인 비디오게임이 인터넷 회선의 발달로 상업망을 거치지 않고도 대중에게 손쉽게 전달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더불어 게임의 개발도구도 점차 간편화되어, 소수의 인원으로도 그럴 듯한 게임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습니다. 대안을 찾던 사람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비판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저는 이러한 대안을 찾는 움직임을 크게 세가지로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자본과 독립된 게임을 만들고자 하는 ‘인디 게이밍’, 게임매체를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아트게이밍’, 게임을 다소 실용적이고 진지한 목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시리어스 게이밍’입니다.


◎ 시리어스 게임 (Serious Game)

  시리어스 게이밍은 그 형식적 변화에 있어 셋 중에서 가장 덜 급진적이라 할 수 있는 대안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여느 게임보다 더 급진적이고, 논란이 일기 쉽고, 어떤 게임은 일부러 그것을 의도하기도 합니다.

  시리어스 게임은 국내에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는 ‘기능성 게임’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시리어스 게임이란 의료, 군사, 종교, 광고, 훈련, 저널리즘, 사회운동 등 현실적인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지는 게임을 말합니다. 이는 영상매체로 다큐멘터리나 교육용 영상, 훈련용 영상, 보도영상, 광고영상을 만드는 것과 유사합니다.

  얼마 전 대한민국 국방부에서도 신병교육훈련을 게임으로 만들 거라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이것 역시 시리어스 게임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 육군에서는 이미 <아메리카즈 아미>(America's Army)라는 육군입대 홍보용 일인칭 슈팅 게임을 무료로 보급해 큰 인기를 얻었고, <풀 스펙트럼 워리어>(Full Spectrum Warrior)라는 팀 기반 슈팅 게임을 만들어 미 장병들에게 보급했습니다(그리고 이것은 또 상용게임으로도 발매되어 괜찮게 팔렸습니다).

  최근 서울 아산병원에서는 ‘소아암 환자를 위한 게임’을 공모하기도 했습니다. 소아암 환자인 어린이들이 게임을 통해 치료과정을 이해하고, 두려움을 줄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아마 이 공모는 프랑스에서 동일한 게임을 개발한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에서도 역시 게임을 통해 브랜드를 홍보하려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제품 홈페이지에 플래시게임을 넣는 것은 이미 흔한 일이고, 외국의 한 자동차 회사에서는 자사의 차를 운전해볼 수 있는 레이싱 게임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게임을 통한 정치와 이념의 표현 역시 적지 않습니다. 독일의 한 나치 단체는 유태인이 적으로 등장하는 일인칭 슈팅 게임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잔혹한 표현과 유태인에 대한 비하로 유태인 사회에서 논란이 되었습니다. 이슬람 테러단체 헤즈볼라 역시 이스라엘을 적으로 하는 일인칭 슈팅 게임을 제작해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게임의 제작자는 자기네 어린이들이 서구게임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이슬람의 영웅이 등장하는 게임을 만들고자 했다고 합니다.

  게임 연구자 이안 보고스트는 시리어스 게임을 “상호작용을 통한 설득의 기술”이자 “절차적 수사학”(procedural rhetoric)이라고 칭하며, 비디오게임이 가진 표현의 힘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보고스트는 시리어스 게임제작 스튜디오인 ‘퍼세이시브 게임즈’(Persuasive Games)를 운영하며, 타임(TIME)지같은 언론을 비롯해 다양한 영리/비영리 기관, 정치단체를 고객으로 시리어스 게임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게임에 익숙한 세대가 사회의 주류가 될 때가 오면, 표현의 방법으로 상호작용을 이용하는 일이 흔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 인디 게임 (Indie Game)

  인디 게이밍은 시리어스 게이밍이나 아트 게이밍처럼 작품 내부의 성격보다는, 외적인 환경으로 정의해볼 수 있습니다. 인디라는 말(independent, 독립)이 의미하듯이, 상업 자본과 독립되어 그에 간섭받지 않고 제작되는 게임을 말합니다. 영화나 음악의 독립영화, 인디음악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인디게임 제작팀은 한 명 혹은 네다섯 명 정도의 소수로 이루어집니다. 때문에 개발여건이 제한될 수밖에 없고, 화려한 그래픽이나 기술보다는 독특한 아이디어와 디자인(상호작용)으로 승부해야 합니다. 상업자본의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제작자의 의도가 100% 가까이 반영될 수 있다는 것도 그 개성에 한몫 하고 있습니다. 신선한 개성은 곧 식상한 상업게임에 질려있던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고, 인디게임은 대안게임 운동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디게임은 최근 그 상업성을 비판받게 되었습니다. 인디게임 제작팀 테일 오브 테일즈(Tale of Tales)의 미셸 사민은 “(역설적이게도) 주류게임의 대항자로 나타난 인디게임이 상업적으로 성공했을 때나 큰 회사로부터 인수되거나 투자를 받았을 때 축하를 받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즉, 인디가 결국에는 인디가 아니게 될 때 축하를 받는 셈입니다. 이와 함께, 돈냄새를 맡고 '인디'를 일종의 마케팅용 브랜드로 활용하고자 하는 회사들도 나타났습니다.

  인디운동이 (상업적으로) 팽창하면서, 인디게임으로 대박을 치고자 하는 사람들도 생겨났고, 경쟁은 치열해졌습니다. 결국 왠만해서는 사람들에게 노출되기도 힘들어 졌습니다. 인디게임을 배급하는 사이트가 생겨났고, 그 배급망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결국은 또 배급망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겁니다.

  원로 게임 디자이너인 크리스 크로포드는 인디게임의 내용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인디게임이 상용게임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뭔가 특이해 ‘보이는’ 것에만 신경 쓸 뿐이지, 실제로 독창적이거나 진정성이 있는 게임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 상업화를 비판했던 미셸 사민도 “여전히 인디게임에 희망이 있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것이 상업자본과의 독립은 여전히 스스로의 선택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류로 진출하기 위한 경력을 쌓으려고 인디를 거치는 것이든, 어떤 높은 이상을 가지고 인디에 열정을 바치는 것이든, 결국 전적으로 제작자의 의사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인디 싱어송라이터 오지은 씨가 말했듯이, “홍대라서 인디가 아니고, 실력이 모자라서 인디가 아니고, 인더펜던트하기(독립적이기) 때문에 인디”니까요.


◎ 아트게임 (artgame)

  아트게이밍(예술게임)은, 게임이라는 매체를 이용해 예술적인 표현을 하고자 하는 움직임입니다. 특히 게임의 상호작용하는 특성에 주목하여, 상호작용을 새로운 예술적 표현 방법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상호작용이나 컴퓨터의 연산능력을 활용한 뉴 미디어 아트 역시 아트게임의 한 흐름으로 비춰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뉴 미디어 아트가 비디오 아트처럼 열린 공간에서의 전시예술의 성질을 띠는 반면, 아트게임은 예술영화가 개인적인 경험을 제공하듯,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합니다.

  한 때는 게임계 내에서 ‘게임은 예술이 될 수 있는가’하는 오래되고, 반복되어온 논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논쟁은 예술을 정의하기 어려운 현대의 예술사조 앞에서 무의미한 소모전에 불과했습니다. 각자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달랐기 때문에, 뚜렷한 결론이 나올 수 없었습니다. ‘예술이 될 필요 없다’는 주장을 펼치는 일명 ‘골수 게이머’들은 게임의 본질은 ‘재미’이며, 예술이 됨은 그것을 상실시키는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아직 아트게임은 그 사례가 그리 많지 않고, 예술의 정의가 혼란스럽듯 그것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나타나지도 않습니다. 때문에 시리어스 게임이나 인디 게임과는 달리 그것을 만든다고 나서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제이슨 로러의 경우, 자신의 게임을 아트게임이라 칭하지는 않지만, 아트게임을 지향한다고 스스로 말합니다). 다른 두 움직임과 달리 아직은 논의 상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주류가 상실한 상호작용을 찾아서

  이 대안에는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류게임 화려한 치장 속에 감추었고, 또는 잃어버린 것, 바로 ‘상호작용’입니다. 시리어스 게임은 “상호작용을 통한 설득”, 인디게임은 “독특한 아이디어와 디자인”, 아트게임은 “예술적 표현으로서의 상호작용”으로 그 목적이 어떻든 상호작용이 게임의 중심에 서있음을 주장합니다.

  모든 예술적 표현의 미디어는 우리의 현실 세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합니다. 음울한 소설은 건조한 문장으로, 푸른 하늘풍경은 수채화로, 화려한 액션은 빠른 카메라웍으로, 애절한 사랑노래는 현악기로, 각자의 미디어는 현실의 느낌을 각자의 표현방법으로 치환합니다. 게임의 표현방법은 스토리도 아니고, 그래픽도 아닙니다. 게임에 있어 표현은 상호작용을 통해야만 합니다. 게임의 플레이어는 게임의 규칙 기반의 구조 속에서 제한된 상호작용을 하게 됩니다. 게임 작가의 작가적 의도는 바로 그 ‘규칙 기반의 구조’와 ‘제한된 상호작용’에 담기게 됩니다.

  축구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축구경기는 규칙 기반의 구조를 가집니다. 그리고 그러한 규칙은 선수의 행동을 제한합니다. 만약 축구에서 손을 쓸 수 있게 했다면, 축구라는 경험은 우리가 아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이 됩니다. 유사한 틀을 가지고 있지만 규칙이 달라 그 경험이 전혀 다른 것으로 변한 미식축구가 좋은 예입니다. 만약 우리가 경기를 통해 다른 경험을 하길 원한다면, 규칙을 바꿔야 합니다. 단순히 친구들끼리 모여서 축구를 할 때는 오프사이드 규칙을 빼서 경험을 유연하게 바꾸고자 하는 시도가 그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유니폼이 어떤 무늬를 가지는지는(다른 팀이 서로 구분되는 유니폼을 입고 있기만 하다면) 큰 의미를 가지지 않습니다. 경기장이 규칙대로 규격을 맞췄다면, 낡은 경기장이든 새로운 경기장이든 축구라는 게임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게임의 본질을 변하게 하는 것은, 항상 규칙과 그 구조의 변화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게임을 할 때 주목해야 할 것은, 현란한 그래픽이나 음악, 스토리가 아닙니다. 그 규칙과 구조 속에서 자신이 어떤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지 입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온라인게임이 그저 레벨업을 반복하는 구조라면, 화려한 갑옷 그래픽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겉만 화려할 뿐 그건 판타지가 아니라 노동에 다름 아닙니다.

  대안게임은 상용게임이 게임을 '팔기 위한' 겉치장을 대신해 팔아버린 상호작용을 되찾아 오려고 합니다. 그 목적이 무엇이든, 겉으로 현혹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통해 그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8-24
18:47:18 



병장 김예찬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요새 국내에 인디 게임 전문 리뷰 블로그들도 생기면서 인디 게임의 인기가 날로 높아져가는 것 같더군요. 저도 몇몇 작품을 접해 본 적이 있는데 상당히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시리어스 게임'이라고 하니까 가자 지구를 다룬 게임이 생각나는군요. '이슬람 테러리스트'와 민간인 캐릭터들이 나오는데, 오인해서 민간인 캐릭터를 쏴 죽이게 되면 다른 민간인들이 점차 '이슬람 테러리스트'들로 변해갑니다. 결국 화면은 유혈난무로 치닫게 되죠... 2009-08-18
15:27:07




상병 최준원 
  잘 읽었습니다. 인디게임은 예전부터 플래쉬스타일로 많이 있었는데 정식 인디게임에 관한 글은 처음 읽어보네요. 제 생각엔 상호작용을 되찾은 게임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상호작용을 잃은' 무분별한 폭력성과 선정성이 난무하는 게임을 엄하게 규제하는게 더 시급한것 같습니다. 비료를 주기전에 썩은 뿌리는 잘라내야하는 법이니까요. 2009-08-18
16:17:51
  



상병 정택민 
  아아, 저는 이런 글들이 좋습니다. 대상에 대한 커다란 관심이 없으면 쓸 수 없는 글. 재미있게 읽었고, 추천 한 방 찍고 갑니다. 아트 게임이 많이 제작되었으면 하는군요. 아직까지는 어떨지 감이 안옵니다. 
글을 읽으면서, 인디 부분이 나왔을 때, 예찬씨가 분명 댓글을 달텐데...라는 생각을 했는데... 후후 좋아요 좋아. 요즘 인디에 관한 글들 참 재밌습니다. 특히나 뭔가 '있어 보이는' 인디 라는 이름의 허영이 자꾸 머릿속을 맴도네요. 게임에도 그런 부분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2009-08-18
16:21:53
  



병장 서지곤 
  위의 <여정>이란 게임은 꼭 한번 해보고 싶군요.(笑) 

한가지 아쉬운 점이, 중간에 나오는 대안게임의 분류(시리어스, 인디, 아트)에 이목이 쏠려서 말씀하고 싶으셨던 제작자와 게이머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내용이 조금 묻힌 것 같습니다. 그냥 얼핏 보면은 게임 잡지에 나오는 기사같은 느낌이랄까요? 결론 부분에서 상호작용이나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풀어주셨으면 좋았을걸- 하는 기분입니다. 

상용게임과 대안게임의 구분을 명확하게 설명해 주셨네요. 덕분에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지금껏 아무 생각 없이 플레이 해 왔던 여러 게임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계기도 되었구요. 

제가 지금까지 해 왔던 게임들은(그 게임의 작가들은), 저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을까요? 새삼 궁금해 집니다. 2009-08-18
17:16:00
  



상병 전진호 
  저도 여정을 해봤는데... 정말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게임이었죠. 재미있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추천 드립니다. 2009-08-18
17:36:53
  



병장 김범준 
  인디의 대표주자인 <월희>와 <쓰르라미울적에>가 그런 식으로 상업화하는데 성공했고 결국 인디로서 성공한 상업게임이 되었지요... 

쩝 2009-08-18
19:56:47
  



일병 박준우 
  범준//인디게임이라기보단 벤처게임이라고 표현하는게 더 적절할거 같은 게임들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2009-08-19
00:13:25
  



일병 송단아 
  동방 프로젝트도 대박을 쳤죠 처음엔 1명이 시작했지만... 요즘도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합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정말 좋은 내용이 많은 것 같습니다. 2009-08-19
06:50:33
  



병장 김예찬 
  단언할 수는 없는 문제겠지만 일본의 '동인 게임'을 인디 게임이라고 보기엔 좀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비쥬얼 노블이라는 포맷이 '인디 게임'하고는 좀 안맞는 것 같고.. 다른 범주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2009-08-19
07:42:51




병장 서지곤 
  비쥬얼노블 장르가 기원을 미연시에 두고 있으니 순수 인디라 보기 힘들고, 마찬가지로 동방 프로젝트를 필두로 한 대부분의 동인게임은 코미케 판매라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기에 위 글쓴이께서 말씀하신 인디게임과는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얼마전 공개된 뱅가드프린세스같은 프리웨어도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캐릭터성을 내세운 마니아 게임이란 한계가 있지요.) 2009-08-19
08:14:00
  



상병 장범식 
  잘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게임의 중심을 이루는 요소가 상호작용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상호작용이 사용자의 단순한 쾌락만을 채워주는 방향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건 제작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용자의 문제가 더 큰 것 같은습니다. 수요가 없다면 공급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결국 사용자 스스로가 반복되는 노동으로 '빠르고 쉽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성취'나 '폭력성'이라는 단순 쾌락을 얻는걸 경계해야 문제가 해결될 것 같습니다. 읽어버린 '상호작용'을 되찾아 오기도 해야겠지만 사용자의 기호 문제 자체에 더 많은 개선이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탄산음료가 몸에 안 좋다는건 알지만 그 톡톡쏘는 느낌과 달콤함에 너도 나도 자꾸만 마시게 됩니다. 탄산음료 생산 업자는 점점 더해가는 그 수요에 맞게 더더욱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마신다'는 음료의 중심 요소에 '톡톡쏘는 달콤함'을 첨가하게 되는 문제와 비슷하다고 봅니다. 이런 반복되는 일련의 과정을 지탱시켜 주는 제일 큰 부분은 '너도 나도 자꾸만 마시게 되는'부분, 더더욱 소비하고 가격을 치르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디라는 이름으로 태어나기에 갖는'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는데요, 전에 예찬씨가 올리신 인디음악에 관한 글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풀어 보겠습니다. 개발자가 인디 게임을 자기 만족이나 성취의 일종으로 혼자 만들고 혼자 즐기지 않는 이상 사용자의 손에 들어오기 전까지 일련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그 과정이 '유통 및 배급'과 '소비'라는 형태를 갖는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유통, 배급, 소비의 행위를 장악하고 있는 건 '주류'입니다. 개발이라는 것 자체는 독립적일 수 있지만 결국 현대의 사용자는 어떤 방식으로든 '소비'를 통해서만 그 것을 손에 넣을 것입니다. (인터넷으로 무료 배포되는 게임이라도, 배포자 이용자 모두 인터넷 제공 업자와 다운로드 트래픽 제공업자를 거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발자는 소비자와 만나기 위해 주류를 피할 수 없고 결국 독립적이던 개발 행위 자체도 주류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게 덫이 아닌가 합니다. 인디가 추구하는 독립성 이전에 하나의 '게임'이라는 상품으로서 갖는 자기 모순이라 할 수 있겠죠. 정리해보면 '인디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게임이기에 갖는 태생적 결함'이라는 말로 쓸 수 있겠습니다. 이런 문제는 비단 인디 게임 뿐만 아니라 '직업'을 '특기나 적성', 더 크게는 '자아 실현'이라는 '독립적 요소'로 바라보는 저희 자신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2009-08-19
09:27:35
  



병장 김예찬 
  범식님이 잘 정리해주셨군요. 문제는 (사실 어려운 문제지만 상대적으로) 작게 봤을 때는 '새로운 유통 형식'을 고안해 내는 것 같습니다. 크게 봤을 때는 끝없이 '자본'의 힘으로 구조화되는 고리 자체를 끊어내는 것이겠구요.. 2009-08-19
10:11:44




병장 김밝은해 
  김예찬님// <9월 12일>이라는 게임 말씀하시는 것 같군요. 그것도 아마 글 속에서 언급한 이안 보고스트의 회사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기억합니다. 기회가 되시면 <아이티: 삶의 댓가>(Haiti: The Cost of Life)나 <다르푸르는 죽어간다>(Darfur is Dying)도 한 번 해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서지곤님// 게임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는 이후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루려고 합니다. 의견 감사해요. 

...동인게임에 대해...// 
동인게임은 다소 미묘한데요. 주류에 대한 대안문화의 성격을 띠는 인디게임과는 달리, 일단 동인이라는 단어는 주류문화의 하위문화임을 의미하고 있으니까요. 동인게임이라는 것 자체가 앞으로 일본에서 인디게임의 의미를 가진다면 몰라도, 현재의 동인게임은 주류게임의 재생산에 가깝지 않나 합니다. 물론 독창적인 예외는 있지만, 아직 몇가지 예외일 뿐이구요. 

장범식님// 
저는 다소 낙관적(혹은 낙천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요. 디자이너가 자극적이지 않고, 삶과 인간조건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정과 사랑에 관심 기울이게 하고, 삶을 더욱 풍족하게 만드는 게임을 디자인한다면, 수요가 발생하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 그런 게임을 위한 수요는 없어보이지만, 그런 소설이나 만화, 영화, 음악에 대한 수요자들이 잠재적으로 그런 게임을 위한 수요자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예로 드신 탄산음료로 말하면, 같은 회사가 탄산음료만이 아니라, 차(茶)류도 판매하는 것처럼요. 

...그리고 결국 인디도 시장권력이 쥐어잡게 되었죠. 해외 인디 게임포럼을 가보면, 최소한 먹고 살만큼만 벌면 된다...는 인디 게임 개발자들의 소망이 있는데, 현실은 그게 쉽지 않습니다. 유명 배급망을 통하려면 게임이 '그럴 듯 해보여야' 하고, 거기에 이름을 올린다 해도 배급 사이트에서 그만큼 수수료를 많이 떼어 먹습니다. 스스로 사이트를 만들어 배급하면 그 수익을 거의 온전히 가질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노출되기가 어렵죠. 그래서 인디 게임 디자이너들은 대개 투잡을 가집니다. 다른 인디도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고, 고정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확신이 서야지만 인디를 전업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배급망으로 들어가든, 나가서 혼자 배급하든 수익을 내고 싶으면 유명해지거나, '그럴 듯 해보이는' 게임을 만드는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지금의 구조로는 인디도 결국은 소규모 비즈니스일 수 밖에 없습니다. 2009-08-19
11:47:13
  



상병 전진호 
  요즈음 들어 소위 '인디게임'들의 유통 통로로 각광받고 있는게 바로 Valve사의 Steam인거 같더군요. 아이디 하나만 있으면 스트리밍을 통해서 게임을 어디서든지 즐길수 있는 시스템인 Steam은 네트워크를 통해 게임을 공급하기 때문에 소위 '패키지'가 필요없죠.(그리고 패키지가 없다는 말은 기존 배급망(뭐 Eat All이나, 비밴디 따위의)을 통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죠.) 그리고 Steam의 수많은 회원들은 기존 배급망 수준의 파워를 가집니다. (더더군나 그림 파일 하나만 Steam 매인 페이지에 띄워도 그 광고의 파급력은.. 왠만한 돈을 들인 만큼이나 강력할것 같군요.) 
그래서 요즘 Steam을 통해 재미있는 인디 게임이 많이 나오는것 같습니다. 요즘 유명해진 Audio Surf라든가, Dawinia라든가 말이죠. 
이러한 유통 과정의 비 자본화를 통해 인디펜던트적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비지니스를 행할수 있는 시스템이 슬슬 갖추어져 가는건 좋은것 같습니다. 2009-08-19
12:32:23
  



병장 김밝은해 
  전진호님// 스팀 같은 다운로드 서비스 플랫폼들 역시 자본화된 유통과정입니다. 단지 디지털화되었을 뿐이죠. 스팀도 왠만큼 수수료를 떼먹는데다가, 그 곳에 들어가고자 하면 '그럴 듯한' 게임을 만들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스팀이 인디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지만, 또 상대적으로 스팀을 비롯한 서비스 플랫폼을 벗어나 진정 인디펜던트하게 가는 인디게임의 배급이 어려워지게 되었다고 봅니다. 2009-08-19
13:26:02
  



상병 진수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