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문화사, 과연 역사학의 새로운 비전이 될수 있을것인가?  
병장 이 원   2009-08-11 01:01:28, 조회: 167, 추천:0 

공유하고픈 텍스트 - <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책세상문고의 15번째 책)>
                            <고양이 대학살>

사실 요즘 책 읽는데 제한이 많이 되는게 사실입니다. 왜그런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문지킴이를 연타로 들어가고, 밤에는 건물경비를 밤에 2번씩 들어가는게 이유인 것 같습니다. 문지킴이때는 좀 정신줄을 잡고 읽지만, 아시다시피 풀배터리에게 건물경비는.. 피곤한 육신을 스릴있게 달래는 시간이라는 생각에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까닭인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구멍이 많이나  있지요. 
이런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이 책이 문고판이라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서입니다. 문고판 읽는 주제에 무슨 놈의 자랑이냐, 라고 하시면 뭐 할 말은 없지만, 이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물론 주제가 역사이긴 하지만, 역사 이전에 인간의 탐구라는 면에서 어떻게 보면 제 생각을 좀 넓게 해준 것 같아서요. 후후 

이 책에서 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역사탐구의 방법론입니다. 기존의 역사 탐구의 방법론들로서는 근대적인 역사인식의 스타트를 끊은 사람은 랑케라고 할수 있습니다. 랑케의 ‘사실로서의 역사’ 중심으로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랑케의 ‘사실로서의 역사’는 사료의 엄정한 비판과, 원사료에 대한 엄밀한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데 그 특징을 찾을 수 있을겁니다. 하지만 랑케의 역사연구방법의 일차적인 대상은 ‘국가’였고, 랑케의 사학은 19세기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지고 유럽과 미국에 전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 각 국가의 정치와 외교의 역사가 중요한 주제로 떠오르게 되었고, 20세기 중반에 들어 사회사의 도전을 받게 됩니다. 

정치사의 장점은 거시적으로 큼지막하게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는게 장점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수능 국사를 준비하면서 선사-고조선-원삼국-삼국-후삼국-남북국-고려-조선-일제강점-대한민국과 같은 공식을 외우는 것 처럼요. 하지만 이 같은 역사서술은 역사의 방향이 일부 지배층의 의해 결정되어지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고, 또한 정책 결정 과정에 목소리를 반영시킬 수 없는 절대 다수의 민중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단점입니다. 아마 국사책에서는 국가나 영웅적인 개인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글을 많이 보실수 있을겁니다. 주어가 각 개인이죠. ‘문무왕과 김유신이 삼국통일을 완수 했다.’라고 서술했을 때, 과연 문무왕과 김유신 개인이 한 나라를 몰락시킬수 있었을까요? 물론 아닐겁니다. 문무왕의 배후 지지세력이나, 전쟁에 참가했던 민중들의 생각이 철저히 배제되어 있는 것을 볼수 있죠. 
이렇게 영웅 중심적이고, 지배자 중심적인 정치사의 이러한 성격에 대한 비판으로 사회사가 출현하게 됩니다. 사회사의 기본적인 전제를 잘 설명해주는 것이 이 책에 실려 있군요. 동독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쓴 대사입니다. 

읽을줄 아는 노동자의 질문
일곱 대문의 테베는 누가 건설했는가?
책에서 당신들은 왕의 이름을 볼 것이다. 
왕들이 바위덩어리를 쌓아올렸는가?
여러번 파괴되었던 바빌론은 
누가 그렇게 여러번 걸쳐 일으켰는가?
금으로 반짝이는 잉카의 리마에서 인부들은 어떤집에 살았는가?
인부들은 어떤집에서 살았는가?
만리장성이 완성되던날 밤
석공들은 어디로 갔는가?   ...................본책 page 23~24

위의 글과 정서를 같이 하는 사회사는 역사속에서 발언권을 얻지 못하고 잊혀진 민중들의 정당한 몫을 찾아준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사가 ‘위로부터의 역사’라고 한다면, 사회사는 ‘아래로부터의 역사’로 정의할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사는 1950년대와 1960년대 의 막수주의 역사가들과, 1930년대에 발생한 아날학파의 의해 주도되었습니다. 이들은 정치제도에서 눈을 돌려 노동자, 하인, 여성, 소수 인종집단등 역사에서 소외되었는 계층이 갖는 사회적 성격을 이야기 하고, 평범한 대중들의 일상생활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죠. 요즘 유행하는 ‘생활사’나 중인들을 주체로 쓴 역사책들이 그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막수주의를 가장 짧은 문장으로 표현하라면 ‘평등’일겁니다. 막수주의의 대표저작인 <<볼마운틴당 선언>>에서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고 밝혔는데, 이말은 동훈씨가 좋아하는 투쟁이라는 단어가 같는 과격하고 폭력적인 숨은 뜻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인류의 역사는 평등을 구현해 나가기 위한 과정의 역사였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가진자 혁명은 왕과 귀족의 억제와 폭압을 타파하려는 것이고, 그것에 이어지는 못가진자 혁명은 궁극적으로 계단 없는 평등사회를 만들려는 것으로 목적을 삼겟지요. 이러한 전제를 통해, 평등사회를 이상향으로 삼고, 이러한 이상향은 존재한 적은 없으니, 그들이 서술하는 역사의 주체는 당연히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막수주의의 단점은 가진자와 못가진자, 억압자와 피억압자라는 이분법적인 역사서술을 낳게됩니다. 죽어라 싸움만 시키는거죠. 하지만, 막수주의 역사학은 역사학의 성격을 변모시켜 농민이나 노동자 계급에 대한 연구의 홍수를 일으켜 ‘아래로부터의 역사’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죠. 

또한 중요한 것이, 아날학파입니다. 아날학파의 역사인식론은 변하지 않는 것들에게 주목하는 것에 있습니다.그 변하지 않는 것들은 지리와 풍토같은 배경입니다. 사람은 변해도 땅은 그대로 남아있듯이, 변화하는 것에 주목하기 보다는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지요. 전쟁이나 정치같은 ‘사건’들은 바다에 비유하면 물거품같이 꺼져버리는 표면에 불과하고, 진짜로 중요한 역사연구의 대상은 지리나 기후처럼 은 곳에서 흐르며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변하지 않는 구조라고 주장했지요. 이 같은 아날학파의 역사학이 파생시킨 긍정적인 면은 이들로 말미암아 사회나 경제사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었고, 이전까지 간과되었던 인간생활의 여러 영역이 역사학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같은 배경을 가지고 본문에서는 네가지의 역사 인식론을 설파합니다. 두껍게 읽기와 다르게 읽기, 작은 것을 통해 읽기, 깨트리기가 그것입니다. 이 네가지의 인식론은 역사를 조금더 풍부하고 사소한것에서 거대담론을 찾으려고 노력한 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두껍게 읽기는 단순한 현상에서 수많은 의미의 층위를 들추어 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겟습니다. 예를들어, ‘산을 올라간다’라는 행위는 단순히 올라간다는 행위지만, 고사리를 캐기위해 산에 올라가는 것과 시체를 묻으로 산에 올라가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비유가 비약적이지만,  현상적으로 산에 올라가는 것은 누구나 파악할 수 있지만, 그 속에 많은 의미의 층위를 담고 있는 것을 파악하는 것은 다른 것일겁니다. 

또한 다르게 읽기는 똑같은 사실을 두고도 서로 다르게 보는 것을 말합니다. 기존의 고정화된 시선에서 ‘왜’라는 질문을 통해 한 역사적 사건이나 현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도 예를 들면, 장희빈에 대한 연구를 들수 있겟군요. 조선왕조실록 중 숙종실록에서 경종실록까지 나타나는 장희빈의 대한 이미지는 ‘악녀’였습니다. 수많은 역사가들이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신뢰하여 근 30년간을 장희빈=악녀라는 시선을 거두지 못하였고, 그 배경을 중인출신의 장희빈이 원자를 낳고 그 원자를 세자로 만들기위해서 인현왕후를 저주하고, 숙종에게 해골가루를 다량으로 함유한 솜으로 어의를 만드는등의 ‘악랄한’행동에 시선을 고정시키죠. 결국 장희빈은 나중에 중전에서 희빈으로 강등당하고, 결국은 사약을 받으면서 그녀의 일생은 결국 ‘나쁜년은 망한다.’라는 식의 명제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럿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장희빈에 대한 ‘다른’연구가 이루어 지면서, 장희빈에 대한 인식을 조금은-물론 기존의 이미지가 너무 센까닭이겟지요 후후-긍정적으로 바꾸어 놓기에 이르렀습니다. 장희빈은 중인출신이었습니다. 중인출신은 정말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신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인들이 큰소리를 내기위한 1차적인 수단은 경제력이었고, 그 경제력을 손에 쥔 중인들은 더큰 2차적이자 권력의 핵심인 정치를 잡기로 마음을 먹었던 겁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장희빈은 좀더 주체적으로 중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것이고, 이러한 시도는 장희빈을 한국적 부르주아 세력의 정치권으로 들어가기위한 몸부림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귄선징악적인 유교적 역사관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당시의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장희빈을 연구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작은 것을 통해 읽기를 역사용어로 바꾸자면 ‘미시사’가 될수 있습니다. 사소한 작은 사건을 통해서 큰 담론을 형성하려는 목적의 읽기 방법이죠. 한 예로 들자면 ‘서시의 상아젓가락’을 들고 싶네요.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서시에게 바치는 뇌물을 관리하는 한 신하가 어느날 집에 돌아와서 통곡을 하더랍니다. 나라가 망했다면서요. 그 이유를 듣자하니, 서시에게 상아로 만든 젓가락 두쌍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왕-서시커플의 젓가락이었겟죠. 하지만 이 말을 듣던 부인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고작 젓가락 때문에 통곡이라니. 하지만 그 신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론 젓가락 자체는 아주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소. 하지만 상아젓가락을 쓰기 시작한다면, 그 상아젓가락에 어울리는 고급 식기들을 사용할 것이고, 그 고급식기에 담으려면 고급요리를 담아야 할것이고, 고급요리를 먹기 시작한다면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내부를 꾸며야 할것이오. 이 어찌 사치의 시작이라고 하지 않을수 있겟소. 군주가 사치를 시작한다는 것은 나라가 망하는것과 같소..”라고 했답니다. 물론 예전에 읽은 글이라 이글이 어디에 나와있는지는 까먹었지만, 작은 것을 통해 읽기의 전개과정은 이 신하의 한탄과 매우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것을 통해 그 작은 사건이나 물건이 사용하게 되는 과정이나, 의미를 사유해 보면서 큰 맥을 파악할수 있는 일종의 추리와 비슷하겟죠. 

마지막 사유의 방법으로는 깨트리기입니다. 일종의 관념을 완전히 부수어 다른 관념으로 서술하는 것을 말합니다. 책에서는 ‘포르노그라피의 역사’라는 책을 예로 들었군요. 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포르노 그라피는 예나 지금이나 이미지가 더럽고, 하위문화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어둠의 동영상이라는 일종의 부정적이고 숨기고 싶은 일종의 금기 아닙니까?-물론 세상이 바뀌어 현재에는 남자들사이의 로망이 되어가고 있지만 서도요.- 그래서 유교권국가나 기독교권 국가들은 이런 포르노그라피는 무조건 ‘감추어야하는것’으로 여겨지는 것으로 당연한 이치겟지요. 하지만 “금욕을 강조하는 기독교의 전통속에서 쾌락을 동반하는 성은 역사서술에서 배제되어 왔고, 인간 정신의 고귀함만이 역사서술의 대상이 되었으며, 육체는 쾌락의 장소, 즉 타락의 장소로 비하되어 역사의 전당에서 어떤자리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p112 하지만 성이 아무리 은밀하고 개인적인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변화는 각 시대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분위기를 반영하게 마련이지요. 마치 조선시대의 성을 대하는 태도와 지금 21세기의 성을 대하는 태도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조금은 변화된 것처럼요. 특히 포르노그라피를 연구해야하는 이유가 개인적인 성의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전환되는 매개체가 되었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르네상스와 과학혁명, 계몽사상, 프랑스 혁명등 현대의 출현과 연결되어있는 역사적인 전환점들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지요.(!) 더구나 인쇄소의 발달은 포르노의 발달에 기름칠을 하고 불을 붙인 격이 되어 대중화된 결과 포르노의 대한 겸열과 통제의 필요성이 촉발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높으신 분들만 은밀히 즐기면 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값싸게 포르노그라피를 얻을수 있엇기 때문이죠. 이런 사실과 함께 포르노는 절대왕정을 비판하는데 도구로 사용되었고, 이러한 사실은 포르노그라피가 민주주의의 확산과도 싶은 관련성을 가진다는 추정!에 확신을 불어넣죠. 더구나 포르노 그라피는 동성애, 매춘, 성차별의 문제는 물론, 사회적 차별-그것이 성차별이든, 사랑의 형태의 대한 차별이던간에- 이라는 쟁점과도 관계를 맺고 있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포르노그라피는 연구되어야 된다고 하며, 이것에서 역사적인 연구의 당위성이 생긴다고 설파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렇게 연구한다는 것이 역사적인 연구에 대한 의문이 드는데, 이것은 역사의 연구가 지니는 장점중 하나는 인간이 시간속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만들어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의 경과를 주관적이고 왜곡된 방식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사람이라면 부정하거나 극복할수도 없죠. 하지만 역사학은 역사를 통해 다른사람이 다른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관찰하도록 하면서, 시간 속에 산다는 것을 왜곡되지 않은 형태를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도구를 지정해준 것이죠. 우리는 역사학을 통해서 시간을 경험하고 있으며 이것을 통해 우리자신의 시간의 겸험 역시 다른사람에 의해 다른 방식으로 측정될수 있으이라는 것을 이해할수 있게됩니다. 

다시 돌아와서, 본론으로 가자면 지금 우리는 ‘포르노그라피’라는 말을 들으면 어둔방안에 혼자있는 나 자신을 상상하지만, 역사적인 맥락에서는 포르노그라피가 만들어졌을 때 성욕의 도발이라는 문제는 오히려 부수적인겁니다. 그것은 정치적인 목적에서 -상위계층을 풍자하기 위한- 경우가 많았으며, 이런점에서라도 포르노그라피가 형성되었던 과정을 이해하여 그 역사를 경험함으로서 현재의 성에 대한 담론이 지는 문제점을 날카롭게 인식할수 있게 되는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후후 

이러한 문화사를 바라보는 저의 개인적인 시선은 ‘신선하다’였습니다. 학부생일때나 지금이나 ‘재미’있는 것을 무지하게 좋아하는 저로써는 흥미가 당기는 문화사가 맛있는 간식이었죠. 하지만 그때 드는 생각은 오래가지는 못하겟다.라는게 저의 결론이었습니다. 이것은 간식이지 주식이 될수 없다는 저의 고정관념이 한몫을 했고, 아직 기존의 정치사적인 역사의 서술에 익숙해진 저의 뇌로서는 아직 받아들이기 힘든 점이 많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의문이 드는 것은 이런 사유가 얼마나 담론을 조성하는데 도움이 될까 였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문화사의 약점은 거대담론 만들기의 빈약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조그마한 것들과 어떤 특수한 상황만을 가지고서 일반화시키는 것은 정말 일반화의 오류이자, 어떤 시대를 지배해온 큰 틀의 이야기를 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대적인 조류로서 역사를 접근하는 방법에 이러한 흐름은 어쩌면 당연한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치사에서 사회사로, 사회사에서 이제는 문화사로 조금씩 시선의 옮겨지는 이때, - 감히, 문화사로 옮겨진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텍스트들과 소설, 그리고 드라마들이 그것이지요.-이런 책들이 나온다는건 새로운 시선들이 자꾸만 주목을 받는 다는 뜻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문화사적인 역사적 방법론에 대한 책을 지금에 와서 읽고 이렇게 후기까지 쓰고 나니, 조금은 더 유쾌하게 또는 복도바닥에 붙은 껌까지 새롭게 보일 것 같습니다.(웃음). 위에서부터 다르게 읽기, 두껍게 읽기, 작은 것을 통해 읽기, 깨트려서 읽기 같은 사유의 방식은 우리가 생각하는데 많은 창의력을 주고, 또한 빈약해진 역사의 연구의 둘레를 조금 더 확장시켜줄 마법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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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부끄러운데, 많이 까주세요. 아직 어설프디 어설프답니다. 
그리고 예찬님께 여쭈어보았던 푸코를 깨트리기에 한번 적용시켜 서술해보고자 했는데 
저의 내공이 딸리는지라, 어떻게 시작을 해야할지 감이 안잡히더군요. 

뭐 세상 다 그런거 아니겟어요. 허허허(먼산)

그럼 좋은 하루되세요~ 후후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8-24
18:38:39 

 

병장 김지호 
  기존 역사 연구 방법(?) 이랄까요. 정치사적 측면만으로 역사를 바라보기엔 좀 좁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사적 측면은 어찌보면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정치사적 측면’에 익숙해진 눈으로는 부족한 점이 없잖아 있기야 있습니다만 -. 

예를 드는 것이 맞을지는 모르겠으나 단재 신채호 선생의 ‘낭가사상’, 즉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란 용어도 문화사적 흐름으로 보고 싶습니다.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을 묘청 = 민족주의 뭐 이런 시각으로, 김부식 = 사대주의 이렇게 보고 있으니까요. 2009-08-11
05:08:04
  

 

병장 이석재 
  저는 아날학파에 대해서 좀 더 공부해보고 싶긴 합니다. '변하지 않는 그 무엇'에 대한 탐구는 가장 길게 살아남을 테니까요. 

저도 또한 정치사를 중심으로 역사를 봅니다만, '정치'라기 보다는 '구조'쪽을 더욱 유심히 살펴봅니다. 어느 한 시대를 풍미한 인간이나 국가를 보자면, 그 원인은 글에서 쓰셨듯이 한 사람이 아니라 어느 '피라미드'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였을 테니까요. 그 피라미드를 조금만 살펴본다면, 정치뿐만이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도 볼 수 있기는 합니다. 물론 단점은 '깊게'들어가지는 못하겠지만요. 2009-08-11
09:11:36
  

 

병장 양동훈 
  원// 까 달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깔끔한 글인데요. 키킥. 

1. "조그마한 것들과 어떤 특수한 상황만을 가지고서 일반화시키는 것은 정말 일반화의 오류이자, 어떤 시대를 지배해온 큰 틀의 이야기를 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문화사의 단점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단순한, 미시사의 단점일 겁니다. 그리고 '정치사' 역시도 미시사적인 오류를 무수히도 많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당장 원씨부터도 말씀하셨잖아요. ‘문무왕과 김유신이 삼국통일을 완수 했다.’ 이런게 전형적인 미시사적 오류가 아닐런지요. '백제는 의자왕의 방종으로 망했다.'와 같은 맥락이겠지요. 

2. "그렇기 때문에 중인들이 큰소리를 내기위한 1차적인 수단은 경제력이었고, 그 경제력을 손에 쥔 중인들은 더큰 2차적이자 권력의 핵심인 정치를 잡기로 마음을 먹었던 겁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장희빈은 좀더 주체적으로 중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것이고, 이러한 시도는 장희빈을 한국적 부르주아 세력의 정치권으로 들어가기위한 몸부림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귄선징악적인 유교적 역사관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당시의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장희빈을 연구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장희빈의 '악녀' 이미지는 그녀가 중인계층이었다는 것에서 출발해서는 긍정적으로 바꾸기 힘들 겁니다. 제가 예전에 썼던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인식은 어떠해야 하는가(대강 이런 제목인 것 같은데)' 라는 글에서도 대강 이런 내용을 서술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중인 계층의 지배층 진출 시도'라는 것에 장희빈의 이야기를 대입시키는 것은 지극히 '거시사'적인 시각인데, '장희빈은 악녀였다.'라는 것은 그것과는 약간 방향이 틀어진 곳에 있는 시각이기 때문이죠. 

이는, '장희빈은 악녀다' 라는 이미지를 그대로 두고 말 그대로 '다르게 보기'를 하는 것일 뿐입니다. 

차라리 '장희빈은 악녀다.'라는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려면, 정치투쟁적 관점에서 보기보다는 '조선의 본처와 첩에 대한 근본적인 차별'과 '정치적인 행동을 하는 여성에 대한 지극한 편견' 등에서 출발해야겠죠. 껄껄. 

석재// 꺄항. 저는 정치사보다는 '전쟁사'를 중심으로 역사를 봅니다. 아. 이게 문제일지도 몰라요. 키킥. 

역사를 보고 고민하고 연구하는 데 있어서, '모든 시대의 모든 분야를 깊게 들어가서 본다.'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평생을 역사연구에만 올인해도 불가능할 겁니다. 통사에 집중하면 개별적으로 파고 들어갈 여유는 부족하고, 개별적으로 파고 들어가는데 집중하면 통사를 전반적으로 이해할 여유는 부족하겠죠. 아마 인간으로서의 한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껄껄껄. 2009-08-11
09:29:02
  

 

병장 정근영 
  흥미롭군요. 
저도 학교 다닐 때 신문화사를 한번 들여다봤기에(비록 맛만 잠시 본 거지만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글이군요. 
제대로 읽고 댓글달게요, 흐흐 2009-08-11
09:45:15
  

 

병장 정근영 
  먼저, 오랜만에 문화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어주신 원씨께 감사를 드립니다. 참고하신 텍스트도 마침 제가 신문화사를 공부했을 때 보았던 책들이라 왠지 더욱 익숙하게 느껴졌어요. 

말씀하신 문화사의 네 가지 방법론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의문점이 몇가지 생겨서 이렇게 댓글을 달아요. 

제가 지금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작은 것을 통해 읽기에서 원씨가 말씀하신 부분이 제가 그때 공부했던 내용과는 약간 달랐던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문화사는 정치사, 경제사, 또는 사회사와 구별되는 용어라고 볼 수 있고, 문화사를 다르게 일컫는 미시사는 거시사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볼 수 있을 거에요. 여기서 ‘작은 것’에 대해 원씨가 이해한 내용이랑 제가 알고 있던 부분이랑 어긋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요. 저는 ‘작은 것’을 거시적인 사회구조 전체가 아니라 파편화된 개인에 대해 주목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거든요. 예를 들면, 「고양이대학살」에서 직공들이 부르주아들의 고양이를 죽인 것에 대해, 자기들보다 오히려 더 높은 대접을 받는 고양이에 대한 직공들의 개인적인 분노가 ‘고양이대학살’이라는 사건을 일으킨 원인이 되었다는 거에요. 다시 말하면, 원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작은 사건이나 사물, 혹은 어떤 행위에서 큰 것을 유추한다기 보다는, 커다란 구조에서 벗어나 미시적인 개인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한다는 거죠. '고양이대학살'이라는 사건은 결국 직공들의 개인적인 원한에서 시작된 거니까요. 
아이쿠, 점심시간이라 가봐야 될 것 같은데, 이따가 또 올게요. 흑 2009-08-11
11:27:45
  

 

병장 양동훈 
  근영// '작은 것'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미시사'는 파편화된 개인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맞습니다.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나아간다기 보다는요. 그런데, 문화사를 다르게 일컫는 말이 미시사가 될 수 있나요? 약간 다른 범주의 이야기같다는 느낌인데. 허허. 2009-08-11
11:32:31
  

 

병장 이 원 
  동훈// 
제가 이해한게 조금씩은 틀린것 같군요. 사실 장희빈에 대한 내용은 동훈씨의 의견이 맞는것 같아요. 제가 조금 빗나가게 된 배경이, 저는 장희빈이 신분상승을 위한 욕구를 다른 곳에서 찾았어야 하는데-이를테면 인현왕후전-실록을 예로들었고, 지금 와서 이것을 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네요. 한참 씨름하다보니 정신이 뱅글뱅글 돌았다고 밖에는 후후후 2009-08-11
12:58:15
  

 

병장 이 원 
  근영// 

하지만 작은 것을 통해 읽기가 꼭 미시사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작은것을 통해 읽기를 미시사로 아예 정의하는 것은 아닌것같습니다. '작은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을 뜻할수도 있지만, 작은 사건이나 사물, 또는 행위를 뜻할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고양이 대학살에서 나온 미시사의 의미는 근영씨의 말씀이 맞는 것 같군요 후후 2009-08-11
17:56:55
  

 

상병 홍령건 
  문화사라는 개념 상당히 재밌는 개념이네요. 문화라는것. 그 시대의 문화를 반영한 것을 보면 대충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자그마한 문화의 산물이지만 그것을 통하여 대충 이해를 할 수 있겠지요. 

흠 그렇다고 해서 정치사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개념인것 같습니다. 어쨌든 역사가의 관점에서 볼때 가장 객관적으로 볼수 있는 자료들이 바로 증거품이니까요. 물론 그 시대의 승리자에 의해서 적히기도 했겠지만 일단은 가장 객관적인 역사를 도출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냥 제 부족한 생각에는 여기 나온 방법들을 적당히 섞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잡생각이 드는 군요. 허헛 2009-08-12
00:24:29
  

 

일병 지승인 
  령건님, 어령스러운 느낌이군요. 적당히 섞어보는 비빔밥문화. 푸하K. 문화의 산물이 절대 자그마하지는 않죠.(그것도 결국 '정치'사죠) '정치'사라고 나누어서 부르는 게 더 정치를 탈정치화시키지는 않을까요. 2009-08-12
08:57:49
  

 

상병 홍령건 
  흠.. 승인씨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네요. 허헛,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겠어요. 2009-08-12
09:18:45
  

 

병장 정근영 
  동훈 / 아, 죄송합니다. 제가 급하게 쓰다 보니 좀 오해할 만한 부분이 있었네요. 신문화사와 미시사는 분명히 다른 개념이 맞습니다. 그런데 신문화사와 미시사라는 연구방법이 서로 상충되는 부분이 없이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학계에서 신문화사와 미시사를 굳이 구별짓지 않는다고 그때 교수님이 그러셨어요. 신문화사라는 것도 또한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강조하는 만큼 미시사에서 '개인'에 중점을 두는 것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요. 그런데 갑자기 혼란스러운게, 본문의 문화사와 제가 배운 신문화사가 다른 건가요? 맥락상에서는 같은 개념으로 보이는데, 약간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으음. 新이 괜히 들어가지는 않았겠죠? 

원 / 그렇군요. 제가 문화사와 미시사를 결부시켜 생각했기 때문에 너무 편협한 시각에서 '작은 것'을 이해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말씀하신 '작은 것'이 말 그대로 사소하고 작은 어떤 것을 말한다기 보다는 그 동안의 역사에서 '소외되고 주목받지 못했던' 것 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말씀드린 대로 '고양이대학살'에서 저자인 단턴은 '인쇄공들이 고양이를 죽이는'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행위에서, 당시 부르주아들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를 발견하고, '고양이대학살'이라는 사건이 지배층에 대한 피지배층의 혁명적 봉기를 상징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기때문에 말씀하신 '서시의 상아젓가락'의 이야기는 미시사의 예로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것은 그냥 비약일 뿐이지요. 미시사도 또한 역사연구의 한 방법이기 때문에, 치밀한 검증과 확인을 통해 그것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2009-08-12
11:01:42
  

 

병장 양동훈 
  '서시의 상아젓가락'의 예는, '상아젓가락을 통해 역사의 미래를 읽는다.'를 따지는 '미시사의 예'로 쓰이기보다는, 저런 일화를 통해서 저 당시의 왕실이 부패했으며 또한 백성들은 이런 시각을 견지하고 있었다는 식의 '미시사의 예'로 쓰일 수 있겠죠. 

만일 저 예가 '미시사의 연구방법'에 대한 비유로 쓰였다고 하자면, 그것은 확실히 비약일 듯 싶습니다. 아마 원씨의 표현방식을 통해 원씨의 의도를 추측해본다면, 근영씨의 말이 옳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문화사와 신문화사라. 후덜. 저 역시도 개념정립이 안 되어 있어서.. 키키키f 2009-08-12
13:35:57
  

 

병장 이 원 
  근영// 
그렇군요. 저도 너무 작고 사소한것에 치중하다 보니 이것에 대한 연구 방법의 예를 잘못들어버렸군요. 후후 제 나름대로 소화하고 이해한다고 하다보니 편한데로 글을 쓰는 못된 버릇이 나온것 같군요 후후 제대로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러고 사실 기존의 정치사적 역사서술의 반발이라는 점도 망각하고 써버렸군요. 나름 제것으로 소화했다고 생각했는데, 동훈씨의 댓글과 곁들여 생각하니, 작은것을 통해 읽기에 대한 개념정리가 다시 요구되는군요(웃음) 
정말 고마워요 후후 

참. 뱀발이지만, 근영씨도 얼른 한자 주시지요? 후후 2009-08-12
22:25:38
  

 

병장 정근영 
  원 / 별 말씀을요, 하하. 저야말로 간만에 문화사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한 번 해보게 되어 감사한 마음인걸요. 으음, 한자는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할게요. 그런데 아직 갈지 안갈지도 확실하지가 않은 상황이라, 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