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이런 젠장, 모두 가지로를 외칠 것  
병장 윤현상   2009-08-08 13:49:40, 조회: 102, 추천:0 


우선 꿈 얘기부터 해야 되겠다. 요새 나는 연이어 발생하는 훈제연어 습식과 광부님의 아이템 할당으로 인해서 각종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지난 한달 간, 그리고 아마도 이번 한 달간 책마을에 통 못 들어 온 것도 그래서였고. 아니, 사실은 책마을에 못 온다는 그 자체만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하루하루를 비비적거리며 지내다가 얼마 전인가 꿈을 꾼 거다. 요지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책 마을이 폭탄 맞아 사라져버린, 너무나 생생한 꿈이었다.

새벽 4시에 벌떡 일어나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꿈을 한번 되새겨보고, 다음날 아침 조심스럽게 남의 컴퓨터 빌려 앉아 책마을에 접속해보니, 휴- 다행히도 접속이 되더라. 물론 책마당이 날아간 걸 보고 흠칫하긴 했지만. 간만에 들어왔는데 마침 월베투표기간이길래 조금이지만 읽은 글들 중에서 찍어두었던 글들로 투표도 한 표 던지고, 요새는 어떤 글들이 올라오나 주섬주섬 살펴보기도 하는데, 준우님의 글이 눈에 띄었다. 내글/내생각의 성격에 관한 글과 그에 달린 리플들. 그와 관련한 몇 편의 글들. 

지난 책가지 논쟁에 이어 내글/내생각 논쟁. 책마을에 논쟁이 잦아지는 것은 분명 올바른 일이지만, 이 연이은 논쟁은 뭔가 특별하다. 텍스트의 문제가 아니라 텍스트를 수용하는 공간의 문제여서 인걸까. 어쩌면 무엇인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다시 입이 간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참견하기 좋아하는 참견쟁이의 습성이 다시금 발현되는 것이렸다. 

지금부터 말할 것들은 책가지와 내글/내생각에 대해서 내가 지금까지 8개월동안 책마을에 거주하며 느껴왔던 모든 생각과 문제의식의 총집합이다. 말하자니 조심스러운 것은 내가 책마을에서 어디까지나 아웃사이더라는 점이 하나요, 글을 샅샅히 읽지 못하는 내 상황에서 이 글이 중복이자 뒷북이 아닐까 두렵다는 것이 둘이다. 발화에 있어서 중요한 요인중에 하나가 분명 타이밍일 것인데... 이런 고민에 지난 책가지 논쟁 때도 글을 달지 않았는데, 이번에 이렇게 엄청 뒤늦게 그와 관련해서 글을 올리는 건 다 그놈의 꿈 때문이다. 젠장.

우선 많이 이야기되었던 책가지의 권위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좋은 글들을 모아놓는 책가지는 책마을이 어느 정도의 수준, 혹은 방향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이정표임이 틀림없다. 사람들은 책가지/명예의 전당을 읽으면서 ‘예전에 이곳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 이런 사유를 했고, 이렇게 소통을 했구나, 나도 그에 뒤지지 않게 한번 해봐야겠다.’ 라고 의욕을 불태울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책가지는 그런 면에서 우리의 과거이고 책마을이 지나온 역사다.

그러나 이러한 책가지의 ‘역사성’이 책가지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권위는 어디까지나 현재형이며, 공간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성립한다. 책마을에서 사람들은, 그리고 나는 책가지에 옮겨진 글들을 그 자체로 한편의 훌륭한 ‘작품’으로서 평가하는 것 같다. 적어도 책가지에 간다는 것은 ‘이 글은 내용적으로 훌륭하며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인정하였다.’ 라는 것을 의미한다. 책가지로 옮겨진 글들은 그러한 평가에 힘입어 권위를 획득하게 되는 듯하다. 

책마을에서 사람들은 명예의 전당에서 그리고 책가지에서 평범한 20대의 사유를 뛰어넘는 압도적인 포스를 풍기는 글들을 접한다. 이런 글들을 접한 보통의 20대들은 자연스럽게 그 글을 작성한 사람들을 동경하게 되고, 책가지에 보낼 다른 글들도 그 정도의 수준을 요구하게 된다. 이른바 ‘가지로-’를 외치는 커트라인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높아진 심리적 커트라인이 책가지에 권위를 부여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다. ‘가지로-’의 높은 심리적 커트라인을 뚫고 책가지로 옮겨간 글들은 그 내용이 무엇이든지 간에 동일한 권위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동훈님의 ‘책가지에 보내는 선전포고’가 그 방향을 잘못 잡았다고 본다. 책가지의 권위는 옮겨간 글의 내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가지로 옮겨진 글들이 화석화되는 것도 마찬가지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겠다. 책가지로 옮겨진 글들은 그 순간 권위를 가지게 된다. 어떤 권위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에서 권위를 가진 무엇인가에 ‘옳습니다’이외의 말을 던지는 것은 힘든 일이다. 여기에 책가지라는 공간이 지니는 과거성이 더해지면서 “책가지는 현재의 토론공간은 아니다”라는 모두의 인식이 책가지로 옮겨진 글들을 화석화시키는 것이다.

우리들의 소중한 소통의 공간인 책마을에 쓸데없는 권위, 혹은 화석화된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타개할 방법을 찾지 않을 수 없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행동을 제시하고 싶다. 먼저, 가지로의 기준을 다소 낮추어 더 많은 가지로를 외칠 것. 다음은 책가지로 간 글에 댓글을 달 것.

권위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 권위를 허용함으로써만 무너질 수 있다. 중세 귀족들의 생활방식을 부르주아들이 따라함으로써 귀족들의 권위는 무너져 내렸다. 백인남성들의 특권이던 선거권을 흑인 남성들이 차지하고, 여성들이 차지함으로써 백인 남성들의 선거권을 통한 권위는 해체되었다. 책가지에 가면 권위가 생긴다고 가지로를 외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책가지에 더 높은 권위를 부여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어디선가 책가지 논쟁 때문에 가지로를 외치는 수가 줄어든 것 같다는 댓글을 본 듯 한데, 정말로 그렇다면 이는 슬픈일이다. 보다 많은 ‘가지로-’의 외침은 그만큼 책가지의 권위를 떨어뜨릴 수 있다.

책가지로 간 글에 댓글을 다는 것은 책가지의 과거성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동시에 보다 심화된 토론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는 일이다. 현재 공지에 가 있는 준우님의 글이 지적하듯이 최근의 내글/내생각은 그 순환속도가 너무 빠르다. 이는 심도 있는 이야기를 위해 좋은 일은 못 되는 것이 사실이다. 가지로를 외쳐서 좋은 글을 책가지로 보내고, 보다 글의 순환이 느린 그곳에서 진지하고 천천히 토론한다면, 책가지의 현재성을 회복함과 더불어 내글/내생각의 빠른 순환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월베추천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보자. 최근 책가지에 추천글로 가는 글들이 없어지면서, 가지로가는 대부분의 글들은 월베추천을 통해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책가지의 권위를 더욱 공고히 할 뿐만 아니라 책가지로 간 글이 화석화하는 현상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월베를 뽑는 이상 책가지의 권위를 의식하여 ‘가지로-’를 외치지 않는다 할지라도 책가지의 글은 계속해서 업데이트되며, 책가지의 권위는 여전히 유지된다. 아니, 오히려 월베는 투표수까지 나오기 때문에, 3표라는 절대량만 도달하면 책가지로 가는 ‘가지로-’라는 외침보다 더더욱 권위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또한 월베는 1달 간격으로 뽑기 때문에 가지로 간 이후 지속적인 소통을 할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본래 월베는 훌륭한 글이 이런저런 이유로 묻혀졌을 때 그 글들을 발굴해내는 작업의 일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가지로-’의 외침이 줄어들면서 어느새 월베추천이 좋은 글을 선별해내는 주된 루트가 된 것으로 보인다. (추천에 의해 가지로 간 글의 수는 7월에 4편, 6월에 5편이었는데, 불과 반년전인 1월에는 16편이었다. 반면 월베로 선정되는 글 수는 매달 점점 늘어나고 있다.) 월베가 책가지로 갈 책을 선별하는 주된 루트가 되면서 심지어 훌륭한 글이 책가지로 가지 못하고 묻히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이달의 월베추천이 춘추전국시대를 맞은 것도 훌륭한 글들이 미처 책가지로 보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달에는 또 얼마나 많은 좋은 글들이 묻히게 될지!

결국 내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다음의 세 가지다. ‘가지로를 외칠 것’, ‘책가지에 댓글을 달아 책가지를 소통의 공간으로 변화시킬 것’, ‘월베를 이용한 글 선정을 줄이도록 할 것’. 모두 구조의 변경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들이다. 주민들의 의식 변화와 참여를 통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진정한 변화는 이를 통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내게 허용된 시간이 별로 없어 급히 줄인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8-24
18:40:34 



상병 장동욱 
  이곳 글들 중 내글내생각, 이라는 글을 보면, 서로간의 의견교환, 소통은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책가지의 글들이 명문일수 있으나, 쓸모없는 필요 이상의 권위 부여는 죽은 글을 만들 뿐이고, 다른 우상을 만들어낼 뿐이 아닐까 싶습니다. 탈권위가 일종의 대세인 상황에서, 소통을 막고 권위의 장벽을 쌓는 것은 어떻게 보면 좋지 않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본문에 대단히 동의하는 바입니다. 2009-08-08
15:31:08
  



병장 차종기 
  도대체 누가 , 어떤 권위를 부여한다는 것인지,? 2009-08-08
16:58:20
  



병장 김형태 
  어느정도 동의합니다. 핵심을 짚어주신 내용이 많아요. 
그리고 이글이 페이지가 넘어가기전 
가지로-를 외쳐야겠군요. 2009-08-11
08:02:13
  



병장 김예찬 
  여기에 가지로를 안달면 어디에 가지로를 외칠까요.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