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일상이야기 하나 : 가지로가지 말것  
일병 이승진   2009-07-09 15:49:49, 조회: 190, 추천:0 

'가지로'라는 말이 성급하게 튀어나와선 안되지 않을까. 
가지로-라는 말은 심각한 권위를 부여한다. 
권위는 다시 소통의 비대칭을 만들고 만다. 
바로, 지금, 이자리에서 불완전한 글은 함께 쓰여져 나갈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우리의 축제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논하기 이전에 현재의 축제는 어떠한가라는 물음을 그 앞에 놓아본다. 나의 모교에서는 특정 기간이 되면 '축제'가 벌어진다. 그러나 여기서의 모교는 나를 한 번도 낳아준 적이 없으며 축제는 자생적으로 벌어진 판이라기 보다는 이벤트 업체와 학교측의(그리고 그 주체는 어용 총학?) 강압적인 놀이동산임을 밝힌다. 
축제란 어떠하고 축제란 무엇인가하고 질문을 던질 때, 많은 사람들은 구체적 상을 떠올리지 못한다. 우리에게 축제란 그렇게 미약한 심상에 불과하며 실질적인 문화적 합의가 '발생'된 적 또한 없었다. 그 이유를 나는 축제라는 단어가 20세기 초에 물건너온 낯선 개념이기 때문이라고 탓하고 싶다. 축제라는 말은 祭라는 말에서 추측해 볼 때 제사 즉, 제의적인 성격을 가진 집단의 행위다. '물론 축제라는 단어가 일본을 거쳐서 들어왔기 때문에 정확한 개념을 추측해본다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슬그머니 발을 빼본다.그러나 대체 축제에서 기리고 있는 바는 무엇인가.두꺼운 재질의 천으로 된 소주병모양의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알바생은 무엇을 기념하고 추모할 것인가. 쭉빵한 슴가의 나래이터 누님들은 그 교태로 무엇을 손짓하고 어디로 유혹하는가.
'민중의 미끄럼틀'이라는 말이 있다. 모교에서 버스로 10-20분 정도 가면 촌스러운 이미지를 쌔삥한 건물로 빡빡하게 채워버린 민족*대가 있다. 경악. 그들은 민중의 미끄럼틀이라는 식겁한 단어조합으로 다큰 대학생들에게 속도감을 안겨주고 있었다. 풀리는 다리의 망연자실함은, 동경하던 권위가 무너졌기 때문이 아니라, 이른바 축제라는 것이 이미 기존의 문화를 잃어버리고 천편일률적으로 벌어지는 일종의 쇼였음에 통탄했기 때문이다.
다시 나의 모교 이야기로 돌아간다. 당시 오버 더 스카이를 외치던 학생대표님께서는 민중의 미끄럼틀을 한껏 오바하셔서 더 많은 놀이기구를 교정안으로 들여왔고 삐끼 출신의(어찌보면 이것도 하류문화라고 해줘야 할까) 정책국장님은 신나게 사회를 보셨다. 학교의 축제가 시작함과 동시에 수많은 대형 플랜 카드가 곳곳이 달려서는 보는 이를 흥분케했다.

“축제 안보고 집에 가는 남자애들은 야동보러 가는거다”
“멍석 깔아줘도 못먹는 너는 찌질이”
“100주년,120주년, 훗 우린 600주년이다”
“소녀시대와 함께하는 당신, 오늘만은 **인”
“원더걸스와 함께하는 당신, 오늘만은 **인”
“입실렌티,아카라카? 그게 뭔가요? 먹는 건가요?”

수많은 원색적인 열폭과 비난의 문구들. 40여개의 플랜카드를 모두 적어서 시시껄렁한 분석도 해보았지만. 붙여둔 대자보는 1시간만에 강제 철거 당했다. 그건 훼방이 아니었는데.
시시콜콜 적기도 민망하여라.

그렇게 우리 ‘훼방팀’은 난동에 실패했다. 찢어진 대자보에는 지지의 댓글들이 달려있었지만 그것만으론 슬프다.


내게 그런 축제가 어떻느냐고 재밌게 즐길 수 있으면 되지 않느냐고 권위적인 목소리로 말하던 정책국장님의 잘생긴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축제는 ‘왁자지껄’ ‘시끌벅적’ 하면 되는 거라는 그의 말에는 고향을 알수 없는 유령같은 축제의 난잡한 이미지가 뚝뚝 묻어난다.
아 이런 익숙한 축제는 어느 나라의 것인가. 누가 지어낸 허무맹랑한 소리인가. 빼빼로 데이만큼 화이트데이만큼이나 친숙한 축제는, 누구를 위해 있는 것인가. 차라리 화이트데이가 생리대의 날이었으면.

우리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2년이라는 세월을 대학이라는 마지막 유토피아를 꿈꾸며 달려온 불쌍한 세대다. 이 12년에서 약 1/4정도는 수면시간이었고 생존을 위한 시간을 제한 모든 시간들은 모두 ‘생산적인’ 학습에 투자되었다. 이미 우리의 미래는 예고되어 있지 않았나 싶다. 이 학습의 유일한 목표는 장시간의 노동을 견딜 수 있고 불평을 터뜨리지 않는 묵묵한 대한민국의 일꾼이었으니까. 대학이라는 말도 안되는 신기루를 목표로 사회는 미성년자들을 기만하고 착취해왔다. 우리의 유일한 꿈은 공장에서 찍어낸 듯 똑같은 꿈이었다. 우린 꿈조차 꾼 적이 없다.

난 지금 꿈을 꾼다. 마음껏 소리지르고 날뛰며 파괴하는 추잡한 꿈이라고 비난해도 좋다. 그런 비난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비난하는 사람들 스스로를 달래기 위한 또 하나의 환상이다. 조금 낯설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일상의 축제를 제안한다. 우리는 수많은 비일상을 위해서 일상을 소모한다. 우리의 유희는 언제나 그런 꼴이다. 중간고사를 치기위해 장시간을 투자하고 쥐꼬리 같은 시간(월급이 아닌)으로 투입해버린 시간을 어떻게든 보상밭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친다. 침대에 몸을 던질 때 쯤에야, 왠지 노는 것도 노동같은 이상한 상황에 직면했다는 걸 깨닫는다. 전투적으로 놀아‘제끼는’ 우리의 비일상은 어느 시점엔가 허무함을 동반한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동을 볼 때도 마찬가지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인도를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놀고’있는 것이 우리의 일상과 단절된 이상한 행위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허무해진다.

언제나 길게 쓰는 글은 내키지가 않는다.
그럼 이쯤에서 끊는다. 다들 죄송. 하.

가지로 가버린 글이 너무 천대받아서...차라리 가지나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곰곰히 생각해 본 결과, 공통적으로 품고있는 전제가 깔리지 않아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
그래서 써봤음. 써보다가 역시 주절주절하는게 참 보기 않좋아서. 아, 이건 참. 아아. 아아.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8-24
18:20:55 

 

상병 박원익 
  사족이지만, 저도 그 미끄럼틀을 봤을 때 손이 부들부들 떨렸습죠. 고대 성X대의 가장 큰 치적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저는 학교의 공간을 저렇게 '사유화'하는 게 해방이자, 젊은 발랄함이라고 생각했던 저들의 무지함, 저들의 몰염치함, 저런 만행이 앞으로 우리에게 펼쳐질 새로운 신세계의 전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밖에 말할 수 없네요.. 2009-07-09
16:10:46
  

 

일병 이승진 
  고마워요 원익님. 여기까지를 넘어선 무언간 말해지지 못하고 빙빙도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아리네요. 언젠간 함께! 부들부들떨면, 아 끔찍해라. 2009-07-09
16:14:41
  

 

책마을 
  축제 이야기도 물론 생각을 정리한 후 리플을 달 생각이지만, 일단 가지로 이야기부터 먼저 하겠습니다. 

승진님의 지적처럼 '가지로' 시스템은 좋은 글을 선별하여 계속 보존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도 하지만, 책가지로 보냄으로써 더 논의를 지속시킬 수 없게 하는 부작용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책가지라는 공간은 실시간으로 리플을 달고 논의를 진전시키는 현재성보다는 이미 그 가치가 인정되었다는 과거성을 가지고 있는 공간이죠. 내글/후기 게시판이 책마을 주민들이 실시간으로 토론하는 '광장'이라면, 책가지는 어느 정도 텍스트의 가치가 인정된 책들이 있는 도서관이라고 해야할까요. (이미 글쓴이들과 토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오래 된 글들이 가는 명예의전당은 박물관이겠죠?) 

따라서 너무 일찍 가지로 가버린 글들은 (특히 논쟁적인 글일수록) 글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을 소진하게 됩니다. 저는 그 '일찍'의 기준을 '페이지가 넘어가느냐 마느냐'에 두고 있기 때문에, 가지로가 삼회 이상 나온 글이라도 페이지가 넘어간 후에야 책가지로 보내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몇몇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의문에 대한 답변이었고, 승진님의 이야기는 좀 다른 맥락이죠. '가지로'라는 주문이 가지고 있는 권위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으신 것 같습니다. 물론 '가지로' 주문은 글쓴이에게 영예로운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글에 대해서 자신의 어떤 견해를 표출하지 않고 그냥 가지로를 외친다면 글쓴이에게 좀 허탈감을 줄 수 있겠죠. 누군가 독서후기를 쓰면서 이 책은 그냥 짱이다! 추천이다! 이렇게만 쓴다면 저자는 물론 고맙긴 하겠지만, 허무한 느낌도 받게 될 겁니다. 

그 뿐만 아니라 '가지로' 주문이 시전된 글 자체가 가지게 되는 무형의 권위 같은 것에 대해서도 좀 이야기를 해볼 법 하긴 합니다만, 이 부분은 좀 더 생각이 정리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2009-07-09
16:24:38
  

 

상병 이재익 
  승진 / 학번 차이가 한두개밖에 나지 않겠지만 제가 학교다닐 때 소주병인간이나 나레이터들을 봤던 기억이 없는데 요즘엔 많이 심한가보네요? 
제가 처음 학교신문사에 들어갔을 때 경찰이 캠퍼스 안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금지됐었는데...휴학하기 전에는 경찰이 순찰을 돌고 가더군요...그것도 비슷한 것이라 봐도 무방하려나요? 물론 경찰은 공적인 존재긴 하지만 말이죠 
예전에 직원 분한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네요 
축제가 학생들만의 것이 되기에는 학생들의 참여가 너무 저조하다며, 사회적인 자극이 대학 내에서의 자극에 비할 바가 못되고 교우들의 기부와 참여를 유도해야하고 학교에서도 축제를 통해 무언가 이익이 되면 좋지 않겠냐며...요즘에는 더한가보네요...씁쓸합니다 
언젠가 성대신문사분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성대신문사분들이 조립식건물에서 열심히 땀흘리며 신문들 만들고 있었는데 그런건 좀 개선시켜줬으려나... 

원익 / 아무래도 미끄럼틀이 상징적 의미가 아니라 실질적인 물체를 말하는 듯 하네요? 
학생회가 한번은 운동권, 한번은 비운동권으로 되는 듯 했었는데 계속 그런 추세? 운동권이든 비운동권이든 학생들에게 다가간다는 명목 하에 외래 업체가 많이 들어오게 된 듯 하네요 
그리고 그런 걸 허가하면 학생회에도 돈이 들어오고... 2009-07-09
22:20:27
  

 

병장 최상민 
  저랑 다른 캠퍼스인신거 같은데 
전 학교생활을 제대로 안한것인지 
캠퍼스가 달라서 그런건지 
이런것들을 보지 못했다는 (땀땀) 2009-07-09
23:11:40
  

 

상병 김태경 
  승진/ 
학교 축제가 상업화된 쇼가 되어버렸다는 얘기이신가요? 아님 축제라는 행사 자체의 무의미함을 말씀하시는건가요? 저는 잘 모르겠네요... 2009-07-09
23:50:47
  

 

상병 박원익 
  재익/예, 분명 '그' 미끄럼틀을 말하는 것 같네요. 글쎄요, 외래업체가 아무리 들어온다고 해도, 학생사회 자체와 분명한 선을 그어야겠지요. 저는 '미끄럼틀'을 보고, 혹은 그 당시의 축제를 보고 그 선 자체가 완전히 허물어지는 것을 보고 아연했던 것입니다. 단순히, 경향적인 문제로만 볼 것은 아니죠. 2009-07-10
08:15:08
  

 

병장 차종기 
  이상하게도 학교들의 축제가 다 똑같습니다. 
우리 학교도 그렇고 너네 학교도 그렇다. 
천막 몇개 펼쳐 놓고, 학생들 돈 모아서 술 장사나 시키다가, 
연예인 몇몇 불러서 노래나 부르고. 
어딜가도 특별할게 없습죠. 네네. 
저도 대학교는 일년 다니다가 왔지만, 축제는 별로 즐기지 않습니다. 
즐겁지 않기 때문에요. 2009-07-10
08:19:04
  

 

상병 성완제 
  600년이라.. 우리학교 말하는 것 같은데 
학교사람들이 몇몇 있나보네요 2009-07-10
08:29:18
  

 

일병 이승진 
  재익님, 원익님이 말씀하신 건 물질적인 미끄럼틀이 맞지만 그놈의 '미끄럼틀'이 가진 상징적인 공간침탈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축제가 학생들만의 것이 되기에는 학생들의 참여가 너무 저조하다며, 사회적인 자극이 대학 내에서의 자극에 비할 바가 못되고 교우들의 기부와 참여를 유도해야하고 학교에서도 축제를 통해 무언가 이익이 되면 좋지 않겠냐- 

(별 생각없이 한 말이라고 발뺌해버리면 조금 곤란하겠지만) 
결국 그분이 생각하는 축제는 '이익이 발생'해야만 하며 '이익'은 언제나 좋은 것이며 미리 만들어진 어떤 판에 '기부'와 '참여'가 이루어져야 하는 강요된 자발성따위를 전제로 하는 그런 이미지가 아닐까요. 

아메리칸 뷰티에서 오붓하게 가족 셋이 모여선 우아한 접시에 우아한 클래식을 들어야만 하는 그런 화목한 가정상같은 완벽한 허구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이미 학생들은 그런 허구를 무의식중에 (또는 의식적으로도) 거부하고 있는 것인데, '참여가 저조하다'라는 식으로 일축해버린다면. 결국 쌍방 모두 답답한 한숨이 나오는 건 마찬가집니다. 

중요한 건 역시 축제라는 거대한 행위에 대한 이미지적 일치, 개인개인간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거죠. 그리고 여기서 제가 묻고 있는 건 그 합의 지점을 함께 모색해보는게 어떠냐는 제안이었고. 

축제란 무엇인가 논하기 이전에 / 현재의 축제란 어떠했는지 써놨으니까/ 이제 논할 차례. 
역시 길게쓰는건 부끄러운 일이예요. 어허허. 

태경님, 그저 거대한(그리고 굉장히 엉성한) 문화의 단면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런면에서 절대 무의미하지는 않죠. 매우 유의미하죠. 
태경님의 무의미하냐는 질문은 이런게 아닐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의미있겠죠. 분명. 
누군가는 그런게 '좋고, 즐길 수 있다'라고 말할테니까. 이것도 또 단면. 뭉텅뭉텅 썰어버리고 싶네요. 

종기님! 즐기지 않는 우리들 잘못일지도. 푸하하. 

완제님, 몇몇있군요. 신호보내보기. 뿅뿅. 

+ 책마을님, 덧붙일까 말까하다가 조금 졸렬해보일 각오하고 썼는데, 잘 포착하고 풀어서 설명해주시니 저로선 그저 감사할 따름이네요. 2009-07-10
09:10:40
  

 

병장 차종기 
  재미가 없어요. 어딜가나 똑같은 축제니까. 
흐윽. 개인적인 취향이라서 그런가.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