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내글내생각]모텔과 숙박업소의 성정치학  
상병 박원익  [Homepage]  2009-07-07 10:50:56, 조회: 642, 추천:4 

1.  

  언젠가 슬라보예 지젝이라는 한 인기 있는 철학자가 '자유의지'의 문제에 관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례를 든 적이 있다. 그것은 이미 철이 지났다고 할 수 있는 오래 된 구소련의 농담이다. 친구 사이인 두 남자가 있었고, 그 중 한 남자가 시베리아의 어느 도시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 그 남자는 남아 있는 친구에게 자신이 가는 도시의 실상을 편지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편지가 모조리 검열된다는 것을 아는 두 친구는 모종의 암호를 짜게 되는데, 빨간 잉크로 쓰인 구절은 거짓말이고, 검은 잉크로 쓰인 구절은 진실만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서 얼마 후 편지가 도착했는데, 놀랍게도 거기에는 검은 잉크로 도시의 주거조건이 너무 좋다는 찬사들만이 나열되어 있던 것이다. 거리에는 미녀들로 넘쳐나고, 영화관에서는 최신 영화들을 무상으로 틀어주고, 생필품은 풍족하고 기타 등등... 그런데 편지 말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적혀 있었다:

  "너무나 완벽한 이 도시에, 유감스럽게도 단 한가지가 부족한 게 있는데, 그것은 '빨간 잉크'라네......"

  이 사례에서 슬라보예 지젝은 정치적인 의미에서든 어떤 의미에서든, 우리가 무엇에 의해서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끼는지를 알려준다: 우리가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의 부자유스러움을 분절Articulate할 바로 그 언어, "빨간 잉크"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농담이 의미심장한 것은, 통상적으로 구소련에서 '자유'가 결여되었음을 표시해주는, 미녀(?)와, 최신영화와, 생필품의 결여가 사실은 구소련의 진짜 문제였던 게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참고로, 슬라보예 지젝은 자신은 구 공산권 유고슬로비아 출신이었고, 당시 젊은 나이에 반체체 활동분자로 활동한 바 있었다.

2.

  사실 장정일과 마광수 이후 성해방 담론이 어느 정도 대중화-통속화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적 금기와 억압에서 이미 자유로워졌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연예인들이 이전에는 낯부끄럽게 여겨졌을 성적인 코드를 스스럼 없이 드러내고, 그것이 상품화되는 상황을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이제는 소위 말하는 '야동'을 본다는 것이 더 이상 은밀한 금기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대타협의 대상(나는 어머니 사이에서 이러한 타협이 있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식상해진 사실이다. 성인용품에 관해서도 개방된 의식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굳이 음성적인 방향으로 가지 않더라도, 거리마다 숙박업소들이 즐비한 상황은 이를 보다 극명하게 보여주지 않는가? 무엇보다 젊은이들의 '모텔문화'를 보자. 모텔에서 방을 잡고 '논다는' 게, 그게 굳이 성적인 문란함에서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다 하더라도, 언제든지 성적 상황에 연루될 준비가 되어 있음을, 혹은 그들 사이의 성적 긴장감을 이미 즐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표지는 아닌가?

  나는 여기서 분명 성적 자유 혹은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한국에는 이미 어떤 '성적 해방구'라고 할만한 것이, 굳이 68혁명을 거치지 않고서, 무상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유럽에서 진행되었던 성적 해방이라는 게, 혁명에 준하는 사회적 소요를 거치고서 겨우 획득된 것인 반면, 우리에게는 그러한 '과정'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무상의 성적 해방이 주는 '위화감'의 정체를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마치 외국인에게 이야기하듯이, 한국에 대해 다음과 같이 편지를 쓰는 것이다. "여기에는 성생활을 만끽할 수 있는 모든 게 있어, 거리마다 블라인드를 친 성인용품점들로 넘쳐나고, 인터넷에는 최신 성인 컨텐츠가 저렴하게 상영되고, 모텔은 환상적인 인테리어와 초고석 인터넷이 구비되어 있지. 연인과 즐길 수 있는 모든 수단이 있어... 그런데, 편지의 말미에는 결국 다음과 같은 고백이 들어가야하지 않을까?

"그런데, 아무래도 우리 집에서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우리가 어쩌면, 세태가 문란해졌다고 개탄하는 바로 그 이면에는, 우리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권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사실을 분절Articulate할 언어가 전적으로 부재하다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며, 그것이 바로 그 언어를 획득하기 위해 젊은이들이 투쟁까지 불사했던, 성적으로 해방된 유럽과, 우리 자신들과의 어떤 비참하기까지 한 차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석훈 씨가 <88만원 세대>에서, '첫경험의 경제학'에서 이야기했듯, 성적 자기결정권은 단순히 성에 대한 개방적 의식을 갖췄는지 여부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유럽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동거권과, 주거권의 문제, 그리고 경제적 독립이 가능한지의 여부 등속의 사회경제적 권리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면, 아무리 성에 대해 관념적으로 '진보적'이라고 해도 사태는 마찬가지이다. 이 점에 관해서라면 특히 양보할 수 없는데, 예컨대 마광수가 아무리 성애적인 글을 써 제끼더라도, 네이키드 뉴스에 이용자들이 아무리 몰리더라도, 사태는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이다. '관념적'으로라면, 우리는 태고적부터 이미 성에 관해서 '진보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관념적인' 차원에서 성적 해방의 구호들은 정작 그 자신이 적대하는 보수적 가부장적 성윤리의 외설적 이면을 구성한다.

3.

  사실 이것은 또한 막수주의에서 오래동안 논의된 상부구조-하부구조의 문제를 환기하지 않는가? 막수주의의 기본적인 입장은, 강박적인 잉여가치 창출을 통해 자가증식하는 자본주의적 매트릭스와 결부된 사회경제적 현실은, 그것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재현하는 상부구조의 차원에서 전혀 다른 외관과 모습으로 표상된다는 것이다. 가령 우리의 '표상'하길, 우리는 우리가 정당하게 일한 대가를 공평하게 되돌려받는 것이며, 그러한 대가를 받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 근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시민사회적 노동윤리에서부터, 국가란 창출된 부를 효율적으로 재분배하는 장치이다라는 이데올로기적 차원까지... 엄연한 사회경제적 현실을 '전치'하는 무수한 이데올로기적 차원들을 열거할 수 있다. 그러나 막수주의의 입장이 일으키는 기본적인 역설은, 정작 이러한 '전치'와 '왜곡' 이면의 진정한 사회경제적 현실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느냐이다. 그것 역시 '표상'되지 않으면 안되지만, 바로 그것이 '왜곡'을 일으켰던 바로 그 원인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유사 이래 막수주의자들은 '언어'의 문제를 피해갈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마저 피해갈 수 없었다면, 그것은 왜 우리를 피해가지 못하겠는가? 

  가령 우리가 자신의 성적 생활양식을 표상하는 바로 그 방식이 근본적으로 왜곡되었다고 생각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것을 '달리' 표상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성적 권리를 '다르게' 정식화하는 것이다. 예컨대, 성적 권리를, 자신이 더 좋은 인테리어를 구비한 판타스틱한 모텔에서 어떤 성적 환타지를 구현할지에 대한 권리로 표상하는 것을 멈추고, 다른 방식으로 그 권리를 재정식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서만, '진짜'로 성적 해방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권리를 다르게 재정식화할 바로 그 언어적 능력이, 우리에게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부분에서라면, 가령 등록금 문제라든지 하는 것들에는 조금이나마 의분을 가질줄 아는 우리들 중 몇몇조차 '성생활'만큼은 자신이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쩌면 등록금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성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건, 굳이 마광수가 아니더라도 말할 수 있는 건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우리가 진짜로 '의분'을 느껴야하는 건, 바로 우리에게 '빨간잉크'가 완벽하게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7-08 11:03)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8-24
16:09:06 

 

일병 박정민 
  "그런데, 아무래도 우리 집에서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물론 자취방이나 부모님이 안 계시는 집을 말하는 건 아니겠죠. 아.. 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지.. 정말 우리나라는 성적 자기결정권이 없는 건가요. 여성이 침해받는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죠. 2009-07-07
11:06:19
  

 

병장 양동훈 
  부담감이라고 봅니다. 
성적인 코드에 대한 얘기들이 쏟아져 나온다고 하지만, 정작 그것은 '나 자신'과는 멀리 떨어져 있나봐요. 동성간에는 거리낌없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정작 이성과 함께일 때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도 그렇구요.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간의 생각의 괴리감도 있겠지만, 
그런 것보다도, 
여전히 드러내 보이기에는 거림칙한 그런 뭐랄까... 
아. 
표현하기가 참 어렵네요(..껄껄) 2009-07-07
11:20:55
  

 

병장 김범수 
  오오오, 좋은 글~ 

근데, 나는 집에서 하는건 상관 없는데, 부모님이 상관 있을것 같네요. 2009-07-07
11:35:38
  

 

일병 오학준 
  분절Articulate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2009-07-07
11:36:12
  

 

상병 박원익 
  박정민/물론, 나름의 자기결정권이라는 게 있지요,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러한 권리를 어떻게, 표명하느냐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분명 어떤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고요. 가령 그게 동거권이라든지, 주거권, 그리고 노동권과 맞물려 돌아가지 않으면, 그것은 단순히 성인 쇼핑몰 고객의 권리 수준에 그칠 것입니다. 
양동훈/사실 꺼림찍한 건 요즘은 별 문제도 아니지요(웃음) 
김범수/항상 부모님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말 '관용적'인 부모님이 '그것'에 대해 관대하다 하더라도, 여전히 암묵적으로 금지될 수 밖에 없는 게 있습니다. 마치, '야동'에 관한 피차 합의가 되어 있는 부분, 예를 들어 아들이 방문을 걸어잠구고 있으면 거기에 대해 어머니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지만, 모른채 한다든지, 이런 게 사실은 해방이 아니지요. 
오학준/분절分節이란 보시다시피 Articulate의 번역어인데, 다른 역어로는 '절합' 같은 게 있습니다. 분절이라면, 가령 (한컴사전 예를 들면) 음절을 자음과 모음으로 분절하다라는 식으로 '분리'해서 그 구성요소를 분명히 하다는 의미가 강하지만, 사실은 Articulate의 본의미는 그렇게 '분리'해서 다시 '재결합'한다는 이중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로 비평이나 언어학에서 많이 쓰는 용어이고요. 특히나 번역어이어서 조금 생경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령 용법상에서, "자신의 권리를 분절하다"는 것은, 우선 자신의 권리를 '언어적으로 표현'하다는 것이고, 또한 단순히 관례적인 방식을 넘어서, 그러한 권리표현의 언어의 구성요소를 하나하나 검토하고 일신해서, 그것을 다시 새로운 방식으로 재결합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 어감으로 파악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사실은 잘난척 하는 용어라기보다는, '구조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것의 세례를 받은 오늘날의 지적 풍토(물론 유럽 인문학계 사정이지만)상 불가피하게 자주 쓰이는 용어이고, 사실 서구 철학책이나 인문학 영역의 번역서들을 접할 때 빈번히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인용한 지젝도 실제로 '분절'이라는 번역어를 썼고요. 구조주의란 간단하게 말해서, 어떤 언어적 표현이 불러일으키는 의미효과가,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이나 외부 세계의 영향을 받기보다는, 언어적 구조 자체의 변별적 요소들의 관계망으로 구성된다는 사고방식입니다. 가령 체스의 말들은 다른 말들과의 '차이'에 의해서 비로소 그 위치와 기능을 부여받는 것이지, 그것이 무언가를 지시하거나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은 아니지요. 그래서 '분절'이라는 단어에서도 표명永資, 언어를 구성하는 변별적 요소들을 규명하고, 다시 그것을 공시적으로 결합하는 게 구조주의의 접근법인 거고요... 2009-07-07
11:57:14
  

 

병장 김범수 
  책마을에 입주한 이후로, 처음으로 (아마 마지막이 될지도) 말할게요. 
가지로, 

라라라라~ 2009-07-07
12:17:45
  

 

일병 오학준 
  원익 / 설명 감사합니다. 어감상 바디우의 '사건'이라는 개념은 지금 이 '분절'이라는 말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는 걸까요? 2009-07-07
13:44:43
  

 

일병 심현주 
  앗, 저는 빨간잉크가 조금 있는것 같기도 합니다. 흐흐. 2009-07-07
14:18:06
  

 

상병 윤정기 
  음, 얼마전의 제 글에서도 밝힌바 있지만 '드러내 보이기에 꺼림칙한 것들'에 관한 소통의 방식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뒷담화 까지 말라'고 했고, 원나잇을 한 남자에 대해서 여성의 입장에서 거릴 껏 없이 얘기할 수 있는 사회적/개인적 분위기를 원했습니다. 
'진짜' 성적해방과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원익씨가 말하는 '언어적 능력의 결핍' 에 대해 동의하고 싶네요. 지젝한테두요. 허허. 2009-07-07
14:45:11
  

 

병장 김형태 
  '우리가 진짜로 '의분'을 느껴야하는 건, 바로 우리에게 '빨간잉크'가 완벽하게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가지로- 2009-07-08
08:18:11
  

 

병장 차종기 
  초큼 이해가 어렵지만, 
이런건 가지로 가야죠, 
가지로- 2009-07-08
09:47:44
  

 

상병 권홍목 
  하하 정말 등록금보다 더 중요한 문제일텐데 말이죠 
가지로- 2009-07-08
10:12:58
  

 

상병 박원익 
  앗, 벌써 게토로 보내져버렸군요. 
오학준/물론, '사건'이라는 것과 분명 연결될 여지가 있겠지요. 어쩌면 저는 자신의 곤경을 분절해내는 언어라는 게 단순히 당사자의 '역량'에 달려 있다기보다는, 모종의 사건적 지점을 경유해서 비로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가령 신촌의 즐비한 모텔들을 보면, 바로 여기가 어떤 '사건의 현장'이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듭니다.(웃음) 
윤정기/흠, 사실, 성적 해방은 제 1차적인 관심사는 아니지만, 그게 제일 자극적인 소재인것만큼은 사실이지요. 
권홍목/저는 오히려 등록금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후후. 단지, 성적 쟁점을 통해 비쳐봤을 때, 그 문제가 새롭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