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코멕 맥카시의 <The road>를 읽고  
상병 홍명교   2009-04-16 15:08:02, 조회: 139, 추천:0 

[독서후기] 코멕 맥카시의 <The road>를 읽고

작년 초가을에 <No country for old men> 영문판을 읽고, 뭔가 정체불명의 전염병에 걸린 것처럼 건조해진 마음을 애써 달랬던 기억이 난다. 입대 전에 코엔 형제가 만든 걸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고 감독과 작가에 대한 무한한 경외감에 휩싸였던 그 작품 역시 코멕 맥카시의 작품이다. 그는 군더더기와 감정을 덜어낸 건조하고 견결한 문체로 폐허가 된 현대 미국 사회를 그려낸다. 이 점은 폐부를 찌를 정도로 우리의 가슴을 옥죄고 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적나라하게 물질화?표면화시키기 때문에 더욱 오장육부가 얼어붙게 만든다. 지난 가을 <No country for old men>에 이어 산 <The road> 원서를 읽다가 그 질릴 듯한 건조함과 ‘무자비함’, ‘불친절함’에 질려 읽기를 포기하고 덮어두었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6개월 후, 나는 진중문고에 꽂힌 번역본을 꺼내 읽게 되었다. 번역가 정영문의 탁월한 번역에 의해 다시 태어난 이 소설은 원작의 그 느낌이 고스란히 살아돌아오는 느낌이다. 물론, 번역이기에 완벽히 옮겨졌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이것은 최상의 번역이라고 믿는다.

이 소설은 잊기 어려울 정도로 기이하고 독특하며, 절망의 상태를 신랄하게 그려낸 이 소설은 가히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한 소년과 아버지가 지독한 어둠과 죽음에 대한 공포,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겪는 세상의 멸망 이후의 땅의 그 광폭하며 고독한 경멸감은 소설의 문체 안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이 소설에는 어둠만이 가득하다. 까만 어둠, 오직 까만 어둠 말이다. 요컨대 예술작품 또는 서사란 형형색색의 아름다움과 돌변하는 광채의 변이도가 만드는 서사성과 감동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어온 사람들에게 이 소설은 어쩌면 이것이 과연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기승전결의 딱 떨어지는 서사 안에 좌절 속에서 비상하는 영웅의 이야기에 익숙한 우리 독자들에게는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점점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도저히 고양하는 희망의 빛이 좀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잠시 식량과 빛을 찾은 것 같으면 이내 더 큰 절망이 찾아오고, 더 큰 어둠과 파괴가 다가온다. 

말하자면, 소설의 주인공인 부자 일행이 요행으로 죽음을 면하게 되면 독자는 가슴을 쓸어내리듯 안도감이 들지도 모른다. 아주 잠시 말이다. 그러나 작가는 다시 이 세상에 과연 그 절묘하게 우연적으로 등장하는 희망의 존재라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이냐고 따지듯이 되묻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의문을 더욱더 키우게 되는 것이다. 인간(특히, 아버지-남성들)에게 심어진 현대사회의 암울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극단의 지점까지 몰아넣는 것이다. 그리고 점점 의심하고 회의하게 만든다. 괴물처럼 변해가는 인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문명. 그러나 그 고행의 끝에 아주 어렴풋한 성냥 불빛같은 휴머니즘과 ‘신비주의’가 있다. 그렇다. 신비 내지는 판타지. 그것이 아니면 그 어떤 빛도 말할 수 없는 리얼리즘 그 자체로서의 절망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늘날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최후의 희망은 바로 그 ‘신비’일지도 모른다. 신비로부터의 희미한 휴머니즘. 그것은 이 소설에서 “신”적 존재이다. 이제는 그 누구도 믿지 않지만, 이 땅의 마지막 인간인 아버지에게 아주 희미한 불빛처럼 사그라들고 또 살아나는 휴머니스트의 역사를 다시금 부여하는 것이다. ‘암흑의 비주얼’ 안에서 꺼져가는, 그러나 희미하게 ‘아직’ 빛나고 있는 작은 손전등의 역사를.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1
15:36:54 

 

병장 김형태 
  일단 The road를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군요. 이제는 많은 소설들이 그렇듯 기승전결로 딱 떨어지지 않아 기승전결에 대한 조바심은 들지 않겠지만, 무엇보다 희망의 끈이 보이지 않는 다는 대목에서 저 책을 갖고 다락방에 올라가 삐그덕 거리는 소리와 함게 불을 모두 끄고 랜턴하나만을 켜두고 읽고 싶은 생각이 드는군요. 또 '신비로움 속의 휴머니즘'도 직접 느껴보고 싶군요. 명교씨의 글을 오랫만에 접하지만, 역시 명교씨만의 특유함으로 다시금 소설로 안내하시는 군요. 

좋은 후기 잘 읽었습니다. 2009-04-16
16:12:33
  

 

상병 진수유 
  <No country for old men>는 꼭 한 번 원서로 사서 읽어보고 싶군요. <The road> 도 마찬가지 입니다. 

저도 좋은 후기 잘 읽었습니다. 2009-04-16
16:27:27
  

 

일병 김태건 
  저도 읽었습니다. 읽는 내내 뭐랄까 커다란 그늘이 저를 가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기분좋게 서늘 한 것이아닌 아무느낌없이 무덤덤한 그늘이랄까... 
인간의 내면을 본듯한 느낌이면서 제가 그런 상황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면서 감정이입을 많이 한 소설이었습니다. 
여운이 길었죠. 
남들에게 소개하길 무서운 소설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정말 무서운 소설이라고. 2009-04-16
19:30:11
  

 

병장 이동열 
  으음. 소심한 태클입니다. 로드의 역자는 정영목씨일겁니다. 저녁먹은 책마을의 그분과 동명이인이더군요. 허허. 주제 사라마구의 책도 많이 옮겼고, 실력있는 번역가라 생각합니다. 

이상하게 저는 로드가 썩 끌리지는 않았습니다. 희망을 발견하려고 애를 써도 발견되지가 않으니깐요. 명교님 말씀대로 점점 불안해지더라구요. 저와는 크게 맞지않은 소설이었지만 명교님의 언어로 바라본 로드는 새삼 다른 느낌이군요. 좋은 후기 잘 읽었습니다. 2009-04-17
09:23:44
  

 

상병 차종기 
  동열님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희망을 발견하려고 해도, 발견하기 힘들죠. 
어떻게 보면 혼자 남은 아이가 희망일지도 모르겠으나, 혼자 남은 아이가, 재 뿐인 
세상을 어떻게 홀홀단신으로 이겨나가겠습니까. 저도 읽고 나서 맘 속에 남은 건, 
수의같은 하늘과 눈 대신 내리는 재뿐이었습니다. 

또한 끔찍한 상황을 덤덤하게 풀어내는 듯한 그 문체도 부담스러웠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