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두 여자의 한 남자>, Marguerite Duras  
상병 홍명교   2009-04-16 15:08:51, 조회: 79, 추천:0 

<두 여자의 한 남자(Dix heures et demie du soir en ete)>, Marguerite Duras
2009. 4. 1 ∼ 8

뒤라스 자신은 부인했다지만, 작가는 흔히 ‘누보 로망’ 작가로 꼽힌다. 이는 작가의 소설들이 갖는 스타일적 특징과 그 스타일로 구현해내는 세계의 구성‘들’ 때문이다. 나는 뒤라스의 소설을 이제 처음 읽는데다 누보 로망이라고는 로브그리예의 <질투>나 그의 영화 <에덴 동산 그 이후>과 <지난 해 마리앵바드에서> 그리고 뒤라스가 각본을 쓰고 알랭 레네가 연출한 <히로시마 내 사랑>정도 밖에 보지 못한 초짜이지만, 로브그리예와 뒤라스라는 누보 로망의 두 작가를 접하면서 누보 로망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문학이 갖는 공통점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앞으로 몇 권의 누보 로망 소설들을 더 읽기로 결정했다. 이는 누보 로망을 간략하게 건너뛰고 프랑스 문학과의 여행을 어느 정도 종결지으려고 했던 내 애초의 계획을 조금 수정한 것이다.

이 소설은 마리아(Maria)가 그의 남편 피에르(Pierre)와 친구 끌레르(Clare), 그리고 스페인의 어느 작은 도시(La ville)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의 용의자 로드리고(Rodrigo)의 사이들을 배회하며 그려내는 ‘하룻밤’ 사이의 시공간의 풍경이다. 이 풍경은 대단히 여성적으로 묘사되는데, 이 점은 숨겨져있는 ‘서술자’의 지위를 마리아의 그것과 유사하게 겹쳐지는 것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든다. 물론 주인공인 마리아는 곧 서술자이진 않다. 다만 서술자는 하나의 카메라코기토가 되어 오직 마리아가 지나가는 공간과 시간, 그리고 그녀가 바라보는 것, 느낌, 촉각, 그리고 무의식 등으로 풍경을 펼쳐낸다. 체험과 상상으로 이루어진 이 하룻밤은 로브그리예가 <질투>에서 ‘본’ 풍경과 닮아있다. 그것은 대단히 비극적이고 음울하며, 중년의 권태로움으로 가득 차 있고, 또 시각의 냄새를 풍기며, 공통적으로 ‘사랑’ 내지는 ‘치정극’이라는 공통 소재를 갖고 있다. 아마도 ‘사랑’은 누보 로망을 형상화하기에 가장 적합한 소재가 아닐까 싶다. 인간의 시각이 따라가는 가장 원초적인 주제는 다른 그 무엇보다도 ‘사랑’과 질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뒤라스 소설들의 일관된 주제는 다름 아닌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연구자들의 분류에 따르면 actoriel 서술유형을 갖는다. 그것은 독자의 방향 중심이 독자가 이야기의 조직자로서, 서술자에 의해 인도되는 서술적인 환경으로 향하게 되는 스타일을 지닌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 소설을 읽는 우리는 서술자가 그려내는 풍경과 마리아만의 상상들 속에서 하나하나의 시각적이며 공간적인 단서들을 조합하며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조직해내게 된다. 이 점은 소설을 단지 독단적이며 권위적인 서술자(작가)에 의해 구성되는 작가의 전유물로 사고해온 기존의 소설들과 다른 지점이다. 이야기는 아주 다양한 부분에서 열린 공간, 열린 시점으로 나아간다. 요컨대, 추측성 어휘들이 많이 등장하는 점, 상상의 묘사 등이 많은 점은 바로 이러한 상상과 강박을 통해 열리는 무한한 이야기 조직의 가능성을 만든다. 피에르와 끌레르의 정사가 이루어지는 장면은 마리아의 상상인지, 아니면 그녀의 꿈인지, 옅보는 것인지 헷깔리는 부분이 많은데 이런 점은 열린 상태를 의도한 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대위법으로 겹쳐져 구성되는데 두 부부와 한 여자 끌레르 사이에서의 사랑의 순환,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들이 도정한 여행지 스페인의 작은 도시에서 벌어졌다는 어느 부부와 로드리고 파에스트의 아내의 연인 페레즈 사이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이 그것이다. 두 이야기는 마리아를 중심으로 만나며, 후자는 철저히 부차적인 이야기로서 중심 이야기를 보조하고 은유하는 기능을 한다. 요컨대 용의자인 로드리고는 마리아가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는 대상이 되기도 하고, 또한 무의식 속에서 분출되는 욕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이는 로드리고가 죽인 그의 아내와 내연남이 피에르와 끌레르와 대위되는 것과 맞닿아있다. 이 밖에 이 소설이 담고 있는 많은 상징과 은유, 그리고 시선에서 비롯되는 시각적 향유는 문학이 갖는 가능성을 독자의 상상력에게로 돌린다는 점에서 가히 ‘누보’라는 수식이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기존의 문학이 작가가 독자에게 주제의식이나 인간사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인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던 것과는 다른 문학을 시도한 작가이다. 이야기의 가능성을 최대한 개방하고, 많은 부분을 독자의 책임과 몫으로 돌리게 한 스타일의 혁명을 시도했으며, 문학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벌였다. 이 소설을 계기로 그녀의 다른 소설들도 읽기로 했다. 앞으로 읽을 다른 작품들과 마르케스나 로브그리예 등 다른 작가들을 통해서 누보 로망의 시각과 상상력을 좀 더 가지려 한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1
15:37:23 

 

상병 진수유 
  잘 읽었습니다. 2009-04-16
16:19:26
  

 

병장 이동열 
  꾸준히 올려주시는 명교님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예전 독서후기에서도 '누보로망'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미력한 저로서는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기회에 '누보로망'에 대해서 글로 정리해주시면 감사할 것같은데, 너무 염치없는 부탁이겠지요?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