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독서후기] 단 하나의 문장 - 하나의 본문과 하나의 주석.  
상병 김요셉   2009-01-30 13:43:36, 조회: 322,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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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와선, 요즈음 책마을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지나간 북소리인지도 잘 모르겠을 여러 논란과 논쟁과 논밭들을 모조리 쌩까고 대뜸 사랑타령입니다. 커피보다 코코아가 땡기는 겨울날입니다. 흐흐흐
*
그렇습니까? 독서후기입니다.(사실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언제나 군중 속에서 한 사람을 포착해 내고 그가 속해있는 집단에서 그를 가려낸다는 것. 그것이 아무리 작은 집단이더라도, 가족이든 다른 뭐든 간에. 나아가 그 사람에게 고유한 무리들을 찾아내고 그가 자기 안에 가두어놓고 있는, 아마 완전히 다른 본성을 가졌을 그의 다양체들을 찾아낸다는 것. 그것들을 내 것에 결합시키고 내 것들 속으로 그것들을 관통하게 만들고 또한 그 사람의 것을 관통해 간다는 것. 천상의 혼례, 다양체들의 다양체들. 모든 사랑은 앞으로 형성될 기관없는 몸체 위에서 탈개인화를 실행하는 것일 뿐이다. 또한 바로 이 탈개인화의 가장 놓은 지점에서 비로소 누군가가 명명될 수 있으며, 자신의 이름이나 성을 얻고, 자신에게 속하며 자신이 속해 있는 다양체들을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가운데 가장 강렬한 식별 가능성을 획득한다.
들뢰즈 / 가타리. ‘늑대는 한 마리인가 여러 마리인가’, <천 개의 고원>, 76p (주1)


(주1)
1.
단 하나의 문장이 있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든 하나의 문장이 있다. 그 표현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도 아니고 그 속뜻을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나 몇 번을 되풀이해 읽어도 아직 다 읽지 못한 듯 문장 끝머리의 마침표가 무색하다. 여기에 마침표가 찍혀있어도 되는 것인지, 혹 문장이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줄의 사족이라도 덧붙여져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심하지만, 막상 사족이나마 덧붙여보려 해도 차마 그 문장에 이어붙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가령, ‘사나운 짐승들이 한곳에 모여 꿈을 꾸듯 장려한 날들이었다.’ 와 같은 문장. 김형중은 이 문장이 들어간 한 구절만으로도 윤대녕의 단편 ‘편백나무숲 쪽으로’는 단박에 절편이 된다라고 했다. 사나운 짐승들이 꾸는 꿈은 얼마나 크고 맹렬할 것인가. 그 꿈들이 한 곳에 모여 눈 감은 채 잠들어 있는 그 곳은, 그 날들은 또 얼마나 원대하고 웅장한 시원과도 같을 것인가. 그러나 그 이상은 말할 수 없다. 쓸 수 없다. 짧은 문장 속에 암시된 사나운 짐승들의 꿈을 어렴풋 짐작하고 음미할 뿐이지, 섣불리 해석하고 단정하려다간 꿈은 커녕 모인 짐승의 숫자조차 제대로 헤아릴 수 없다.

또한 가령, ‘나는 네가 좋아’ 와 같은 문장. 
윤대녕의 문장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 짧은 문장을 한 호흡만에 다 읽지 못하고 한참동안이나 들여다보았다. 덮고 나서도 아직 다 읽지 못해 틈만 나면 다시 꺼내 되풀이해 읽었다. 아주 짧은 문장이므로, 그 기표만을 받아들일 때에는 찰나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으며 단번에 다 외워버릴 수 있었으나 꼭 굳이 종이 위에 적힌 글자를 들여다보아야만 했다. 그래야 뭔가 조금이라도 더 보일까 해서.
‘좋아한다’ 라는 감정을 표현하기까지 그 - 혹은 그녀가 한 번이라도 잡아채거나 스쳐보냈던 수많은 감정의 가닥들을 짐작하고 싶었다. 얼마나 많은 의미와 얼마나 많은 시간이 또 얼마나 많은 공간들이 이 하나의 문장 이전에 있었던 것인지 짐작하고 싶었다. 허나 단 하나의 가닥도 제대로 보일 리 없다. 그와 나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으며, 그의 일상은 내 것과 전혀 다른 별개의 것이다. 나는 그의 머리속은커녕 그가 오늘 아침에 밥을 먹었는지, 먹었다면 무얼 먹었는지조차 쉽게 짐작할 수 없다. 때문에 -
그가 어째서 나에게 ‘좋아한다’라는 말을 했는지조차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평소 어떤 낭만을 꿈꾸고 어떤 터무니없는 이상을 바라왔던들 정작 낭만이 현실로 들이닥치면 마냥 좋아하기 보다는 의심이 앞서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그 문장은 어떤 조짐도 없이 불쑥 나타났다. 도적이 들이닥치듯이.

나는 당황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그 문장을 둘러싸고 일어났거나 일어났을 그 수많은 일들 말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짐작할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일 것이다. 허나 그 문장이 나에게 이미 와버린 것을, 막아서거나 쫓아 보낼 기회조차 주지 않고 불쑥 다가와 버렸는데, 그걸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마음은 이미 어지간하게도 심란해 가만히 있어도 애가 타는 것이, 그냥 내버려 두고서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을 모양이다. 별 수 없다. 오독이라도 해야 한다. 곡해라도 해야 한다.


2.
나는 아직도 예술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바람에 지는 잎새에도 괴로워 할 줄 아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늘어난다면 보나마나 삶은, 세상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우드스톡에서 일어났던 것은 분명 ‘혁명’이였으며 그 혁명을 통해 사람들은 조금 더 자유롭고 열린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리라. 예술을 통해 이룩한 혁명, 이제 인류의 희망은 그것뿐이리라 믿는 나는 지독한 골수 탐미주의자다.
히틀러도 애초엔 화가였다지. 탐미주의자 네로는 로마에 불을 질렀다지. 내가 아무리 철없는 탐미주의자라도, 적정선의 타당한 윤리와 법도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안다. 내게도 윤리가 있다. 보편하지도 않고 타당하지도 않으나, 대게의 탐미주의자가 가지는 쇠뿔같은 고집으로 끌고 다니는 윤리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예술이라고 해서, 그것이 아름답다고 해서 다 될쏘냐. 대게의 탐미주의자가 그렇듯이, 그 윤리는 아주 단순하다. 단순해서 어거지에 가깝다. 사랑, 사랑, 사랑. All you need is love. 사람에 대한 애정, 사물에 대한 애정과 자연에 대한 애정이 담긴 예술만이 인류를 구원할 것이니, 억지스러운 고집으론 무슨 거창한 대안 따위는 없어 고작해야 무려 이천년 전에 예수가 그렇게도 부르짖던 ‘사랑’따위를 끌어다 쓰는 것이 전부다. 그러니 나는 골수 탐미주의자에 꼴통 보수주의자다. 언제까지 케케묵은 사랑 나부랭이나 노래하고 있을텐가.

오독과 곡해는 탐미주의자와 꼴통 보수주의자가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미덕중의 하나다. 들뢰즈가 직접 그랬었던가, 아니면 역자가 했던 말이던가. <천 개의 고원>을 읽으며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아주 작은 부분에서의 이해만으로 나머지까지 쉽게 판명해버리고 다른 것에 섣불리 대입하려는 환원주의라고 했다만, 본디 환원주의라든지 성급한 일반화 따위 또한 오독과 곡해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미덕중의 하나 아니던가.
그렇다보니, 들뢰즈의 책에서 이 문장을 발견했을 땐 어찌나 반갑던지. “모든 사랑은 앞으로 형성될 기관없는 몸체 위에서 탈개인화를 실행하는 것일 뿐이다. 또한 바로 이 탈개인화의 가장 놓은 지점에서 비로소 누군가가 명명될 수 있으며...”
그것 봐. 내가 그랬지. 결국 사랑이라고. 

그 아이가 ‘네가 좋아.’ 라는 문장을 쓰던 바로 그 순간, 내가 그 문장을 읽던 바로 그 순간, 바로 그 때 일어난 어떤 일은 분명 ‘사랑’의 한 종류였다. 틀림없다. 그 찰나에 내가 짐작코자 했던 수많은 감정의 가닥들은 시간과 공간들은 아마 완전히 다른 본성을 가졌을 그의 다양체들이였을 것이다. 그 아이들의 다양체들이 가진 색과 질감이 분명 ‘사랑’이였을 것이다 단정할 수는 없다. 말했다시피 우리는 꿈에서 꿈으로 마음을 전달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허나, 뭐 그게 그리 중요하겠나.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오독과 곡해로 살아왔는데, 그 아이가 이러저러한 감정으로 저러이러한 단어와 문장들을 내뱉어 놓은 것이 본디 무슨 뜻이였는지는 썩 중요치 않다. 어떤 말이든 간에, 나는 이제 ‘사랑’으로 읽는다. 이미 그렇게 곡해했다.
‘사랑’인 이상 그렇다면 그것은 예술이고 인류 구원의 장엄한 희망일 것이니, ‘기관없는 몸체’를 실행하는 혁명일 것이니, 이거야 말로 정말이지. 사나운 짐승이 한 곳에 모여 꾸는 꿈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어떤 ‘무엇’이 아닌가. 


3.
단 하나의 문장이 있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든 하나의 문장이 있다. 어떤 기표를 가지고 있든간에 ‘사랑한다’로 해석되는 그 문장이 있다. 그런 문장이란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좋아, 어떻게 써야 할까. 나에게 단 하나의 문장을 준 그 아이에게 답장을 주어야 할 터인데, 무어라 써야 할까. 무슨 말로 시작할까. 그걸 굳이 말해야 할까. 아주 오랜 고민 끝에, 마침내 펜을 집어든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공저 중에서 한 구절을 옮겨쓴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먹기를 기대하면서. 그 아이가 부디. 내가 무슨 말을 하건 ‘사랑한다’로 알아먹을 수 있길 기도하면서.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2-04 09:00)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1
15:17:30 

 

병장 정병훈 
  난독증에, 어쩌구 하시더니. 클클클 - 시간나는대로 읽어보겠습니다. 
요셉씨의 글은 좋아하니까. 후후후- 2009-01-30
13:55:41
  

 

병장 김민규 
  아, 눈물납니다. 

외설과 예술을 가늠하는 조건마저 사랑일까요. 저야말로 고작해야 무려 이천년전에 그가 부르짖던 '사랑'을 끌어다 쓸수밖에 없는 골수 탐미주의자에 꼴통 보수주의자로, 제멋대로의 해석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환원주의에 빠져있는데, 

"단 하나의 가닥도 제대로 보일 리 없다. 그와 나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으며, 그의 일상은 내 것과 전혀 다른 별개의 것이다. 나는 그의 머리속은커녕 그가 오늘 아침에 밥을 먹었는지, 먹었다면 무얼 먹었는지조차 쉽게 짐작할 수 없다." 

'나는 네가 좋아'라는 그나마 직설적인 감정의 증거마저 없는데도, 그저 스쳐가는 몇몇 단어들에 설레여 짐작하고 오독하고 곡해하며 편의주의적인 그 무엇을 하고 있어서, 이토록이나 애절하게 수소와 산소가 더해진 분자 몇 개가 눈가에 맺히는지 모르겠네요. 이것을 사랑이라고 해야할까요. 그야말로 자아에 대한 진정한 곡해가 아닐지요. 내 속이 무엇을 말하고있는지조차 모르겠는데, 상대방의 파편 몇개를 마음대로 단정하는건 무슨 경우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오해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해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가지로- 보내겠습니다. 2009-01-30
14:06:39
  

 

상병 김요셉 
  난독증의 산물이 - 맞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싶은건데! 라고 느끼신다면, 제대로 읽으신 겁니다. 흐흐흐. 2009-01-30
14:08:25
  

 

상병 김요셉 
  어어라. 민규씨. 세상에나, 대체,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처럼 알아먹는 사람이 여기 또 있었군요. 

예. 이건 정말로, 난독과 오독과 곡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아에 대한 곡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나는 왜 결국 개떡처럼 쓸 수 밖에 없는가. 라고 날이면 날마다 한탄하던 중에, 
민규씨같은 분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2009-01-30
14:14:20
  

 

일병 송기화 
  찰떡같이 말한 건 그래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할 텐데 그것도 쉽지 않아요. 
제 멋대로 오독하고 오해하고 곡해하였더니- 사랑스럽네요. 야호. 2009-01-30
14:19:26
  

 

병장 김민규 
  개떡을 송편같이 빚어놓고는 개떡이라고 하면 그것도 하나의 곡해입니다. 크크크 

이런 젠장, 이 글 읽고 만남3. 까지 읽고나니 정말로 보고싶어져버렸어요. 다행히도 - 월요일이면 나가는군요. 

야호 2009-01-30
14:20:42
  

 

병장 정병훈 
  흥. 요셉씨도, 민규형도 3월이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두근두근. 2009-01-30
14:29:46
  

 

병장 김민규 
  그런데 말이죠, 무어라 써야 할까요. 무슨 말로 시작할까요. 그걸 굳이 말해야 할까요. 
"그의 다양체를 내 것에 결합시키고 내 것들 속으로 그것들을 관통하게 만들고 또한 그 사람의 것을 관통해" 가고싶은데, 그냥 그것뿐인데, 자기연민에 빠진 나머지 그의 의지를 끝내 곡해하고 말았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망설임때문에, 사실 나는 바로 이해했는데 그가 나를 오해하게 하면 또 그건 어찌해야 하는 건가요. 

으앙, 요셉님 나빠요. 머리털 빠지게 만들었어. 
조언을 주세요. 2009-01-30
14:31:56
  

 

상병 김요셉 
  민규/ 
저의 경우, 본능과 동물적 감각을 일깨웠...으허헛. 
지 멋대로 좋은 쪽으로 생각해 냅다 지르는게 제 방식이라서요. 흐흐. 

궁 안에서의 생활 때문에 상당히 소심해지긴 했지만, 그런걸로 갑갑해하는건 여엉. 싫어요. 제 속에서 날뛰는 욕망들을 마구 풀어 헤쳐 그녀에게 보내렵니다. 흐흐흐 2009-01-30
14:43:22
  

 

병장 김민규 
  광부님이 제게 주신 해법은 보다 과감하고 뜨거웠는데, 이 소심쟁이는 죽었다 깨나도 그렇게 못할겁니다. 한 문장으로 축약된 비급은 바로 - 

"역사는 밤에 이루어지는거야..." 

세상에 2009-01-30
14:47:56
  

 

상병 김요셉 
  으허허. 비급중에도 절세의 비급... 
세상에. 

민규씨도 3월에 나오시는건가요. 병훈씨와 제가 만나 술을 마신다면, 그 자리에 민규씨도 있는건가요. 흣. 2009-01-30
14:54:31
  

 

병장 김민규 
  몇일에 잡히느냐에 따라서 좀 조정을 해 봐야겠지요. 3월 한달 내내 나다닐 수는 없지 않겠어요? 흐흐 

근데 이 망할놈의 이빨때문에 그나마의 나들이도 쪼개야 할 판입니다. 모르는 사이 깊이 자리잡아 무럭무럭 자라난 사랑니 두 개가, 어느새 내 일부가 되어 평상심을 옥죄고 있네요. 밥도 못 먹을 지경입니다. 

왜 이걸 사랑니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아요. 2009-01-30
14:58:32
  

 

병장 정병훈 
  3월엔 제가 밖에 있으니, 서로 날짜를 잘 잡아서, 손에 손을 잡고 마법진을 그려- 
후레막장 정막장 선생을 소환해보세요. 같이 봅시다. 2009-01-30
16:26:35
  

 

상병 이석현 
  신들보다 위대하고 악마보다 치명적인, 
어린아이조차 위대한 꿈을 꾸게 하고 다 늙은이에게 젊음을 되찾아주는, 
고요함이 폭풍치는 듯 하는 순간과, 폭풍속에서 고요함을 느낄수 있는 순간을 만드는, 

이 모든 것들이 사랑이란 이름아래 가능한 것이죠. 2009-01-30
21:25:31
  

 

병장 고은호 
  아아. 가지로- 

어렵네요. 어려워. 기표와 기의 사이는 너무 멀어요. 
결국 저 자신의 내부에서 다시금 의미를 구성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네요. 

다만- 진심은 통하는 법이죠. 그렇게 믿을래요. 
아직 사랑은 잘 모르니까..(웃음) 2009-02-02
14:30:40
  

 

병장 정병훈 
  이거, 저의 농간으로 헛리플만 많이 달린것 같습니다. 저도 가지로. 2009-02-02
15:37:04
  

 

상병 이동열 
  이거 왠지 가지로를 채워야겠다는 의무감이 드는걸요?(웃음) 
베스트를 추천해놓았건만, 어떡하지 고민을... 

가지로- 2009-02-03
16:13:50
  

 

상병 정근영 
  아, 요셉씨의 글들에서는 독특한 울림이 느껴져서 굳이 글쓴 사람을 보지 않아도 이걸 쓴 사람이 누군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역시- 
새삼 요셉씨처럼 자신의 글에서 독특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몇몇 분들이 부럽군요 

미루다 미루다 이제야 읽었는데, 내용을 떠나서 참 좋네요. 
가지로- 한방 보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