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독서후기]「69(Sixty Nine)」,「Speed」- 무엇이 우리를 열-받게 하는가  
상병 정근영   2009-01-25 02:12:49, 조회: 739, 추천:3 

「69(Sixty Nine)」- 무라카미 류
「Speed」- 가네시로 가즈키

이틀만에 이 두 권의 책을 다 읽고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2년 전에 나는 아무 생각없이 낄낄대면서 「Revolution No. 3」를 읽을 수 있었지만, 그것 못지않게 유쾌하고 또 즐거운 이 책들을 읽으면서도, 난 이상하게 예전처럼 남의 일 보듯이 그저 웃으며 읽어넘길 수가 없었다. 일전에 육이은 씨는 '어느 과거와의 재회'라는 글에서 거침없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즐거워 했지만, 이들의 일탈에 공감하지 못하고 그저 대리만족이나 느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나는 씁쓸한 미소만 머금을 따름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학교라는 체제에 갇혀 순한 양처럼 어른들의 말만 따르며 바깥으로 나가기를 두려워했던 내가, 자신들을 짓누르려 하는 세상을 향해 겨침없이 발걸음을 내딛는 그들의 모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과감한 용기와 실패를 두려워할 줄 모르는 그들이 무모함이 난 부러웠고, 또 그만큼이나 낯설었다. 나는 이들의 거침없는 열정과 에너지의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문제는 여자다. 탈락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암컷을 손에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혼상대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불특정 다수의 암컷이 문제였다. 암컷에게 잘 보일 수 없을 때 남자들은 살 맛을 잃고 마는 것이다. - 「69」, p. 60

「69」의 주인공인 겐이 벌이는 일련의 사건들은 어처구니 없게도 '레이디 제인'이라는 학교 제일의 미소녀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시작된다. 그렇다. 아무리 투쟁이라는 테마와 히피문화가 온 나라를 휩쓸던 시대였다고는 해도, 열일곱의 피끓는 청춘에게 애초에 '투-쟁'이니 '혁-명'이니 하는 따위의 것들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들에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건 하루라도 빨리 동정을 떼는 것이었고, 그들은 여자의 감촉과 축제의 즐거움과 자신들을 짓누르려 하는 세계로부터의 일탈을 통한 아찔한 쾌감에 목말라 있었다. '반-체제'니 '투-쟁'이나 '사-상'이니 하는 것들마저도 이들에게는 즐겁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었다.


넌 무슨 아이디어를 내는 데는 천재적이지만, 실제로 아무 것도 하지 않잖아?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이상하지만, 눈 앞의 여학생과 먹을 것만 밝히잖아. - 「69」, p. 20

겐을 움직이게 했던 것은 체제의 부조리와 불합리함을 날카롭게 꿰뚫어보는 냉철한 지성이 아니라, 이와세의 말대로 많은 여학생들의 관심과 선망을 얻고자 하는 남성 본연의 욕구였다. 레이디 제인과의 대화에서 비롯된 '바리케이드 봉쇄'로부터 시작해서, 결국에는 열혈 청춘들의 신나는 축제로 끝을 맺은 '모닝 이렉션 페스티발'까지, 이 모든 것들은 말하자면 '리비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69」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이 점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쉽고 가볍게 꺼내놓을 수가 없는 10대들의 성적인 욕구를 유쾌하고 발랄한 필체로 이리저리 돌려말하지 않으면서 대담하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이를테면 '북고 전공투에 들어오면 섹스도 할 수 있다고 오다키와 나리시마가 은근히 자랑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사실이었던 것이다. 더러운 놈들, 좀 더 진솔한 태도로 투-쟁하지 못하고, 라고 나는 분개하고, 또 눈물이 나올만큼 부러워했다'와 같은 문장들은 묘하게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공감대를 형성하게끔 만들었다. 아마도 많은 남자들은 이렇게 직설적이고 노골적이면서도 천박하지 않은 겐의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의 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평범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평범한 학교생활을 했던 대다수의 남자들 중에 과연 '섹스'를 말하면서 얼굴이 붉어지지 않고, 대담하게 '여자랑 자고싶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낼 수 있었던 고등학교 1학년생이 과연 얼마나 있었겠는가. 초, 중학교 때부터 성에 눈을 뜬 몇몇의 아이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렇게 피가 끓는 시절에 타오르는 성욕을 남몰래 억눌러야만 했던 우리들에게, 이 책의 주인공인 겐의 거침없는 말과 행동은 신선한 자극이 된다. 마치 가려운 등을 긁어주는 효자손처럼 말이다.


열일곱 살 소녀들의 몸이 명령에 따라 기계처럼 움직이는 걸 보는 것은 유쾌하지 못한 일이다. 이런 8월의 염천에, 허름한 체육복을 입고 지시에 따라 움직이기 위해 열일곱 살의 육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미끈하고 탄력있는 피부는 해변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향해 환성을 지르며 달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69」, p. 145

그런데 이처럼 거침없고 대담한 겐의 말은 전혀 야하거나 외설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성'에 대해 말할 때면, 쉽게 풍겨져 나오게 마련인 음울한 쾌락과 어두운 욕망의 그림자가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어떤 순수함마저 보이는 듯 하다. 아마도 그것은 그들이 순수하게 '섹스'라는 것을 동경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마치 처음으로 사랑에 빠지게 된 여학생처럼 말이다.


아름답지 않은 것, 초라한 것은 악이며, 아름다운 것이 선이라는 명쾌한 기준. 이런 단순한 세계관 앞에 사상이 깃들 틈새는 없다. - 「69」, p. 274

이렇게「69」에서 피상적으로 드러나는 청춘의 순수한 욕망 안에는 보다 깊은 무엇이 내재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섹스'란 곧 '여체'였고, '여체'는 곧 '아름다운 무엇'이었다. 그리고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선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섹스'를 동경했던 것은 아름답고 선한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젊음의 순수한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른들이 강요하는 '안정', 예를 들면 '진학', '취직', '결혼' 등이 아니라 자신들을 즐겁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무엇'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스스로가 추구하는 것을 위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체제가 규정하는 가치를 이미 거부해버린 그들은, 자신들을 짓누르고 억압하려 하는 세계에 대해 분노할 수 있었다.


「SPEED」의 주인공은 오카모토 가나코라는 매우 평범한 여고생이다. 가나코를 변화시키는 모험은 작은 사건에서 시작된다. 아니, 자신과 관계하고 있는 누군가의 죽음을 작은 사건이라 칭하는 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으니, 어느 날부터인가 시작된 일상의 불협화음이라고 해 두자. 책 중 가나코의 말을 빌려, 자신의 세계가 조금 뒤틀려버린 날에 가나코는 의지할 수 있는 친구이자 동경의 대상인 가정교사 아야코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집에 오는 날이면 늘 그렇듯 아야코가 자신의 말을 듣고 적절한 조언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던 가나코는 오늘은 올 수 없다는 아야코의 말을 듣는다. 그리고 그렇게 아주 조금 뒤틀려버린 하루가 지나고 며칠 후, 난데없는 아야코의 죽음이 가나코를 찾아온다.

자신과 가까이 있는 누군가의 죽음은 한 인간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는 듯 하다. 가나코는 어쩌면 아야코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냥 슬퍼하기만 하며 자신의 안에 있던 존재를 망각해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가나코를 움직이게 한 것은 아야코와 자신과의 사이에 존재했던, 사소하지만 결코 그 의미가 가볍지는 않은 한 가지 약속이었다. 아야코와 그녀 사이에 흘렀던 진실한 교감의 흔적들은 절대로 아야코가 자살할 리 없다는 믿음을 그녀에게 심어주었다. 가나코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살한 것이 아니라고.

이런 주인공을 위해, 드디어 극적인 만남의 순간이 도래한다. '더 좀비스'라 자신들을 칭하는 네 명의 사내와 가나코의 만남이. 그리고 이들을 만나면서 가나코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세계가 뒤틀리기 시작한다. 신영복이「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투-쟁은 멀리서 맴돌면서 볼 때에는 무척 두려운 것이지만 막상 맞붙어 씨름할 때에는 그리 두려운 것이 아니며 오히려 어떤 창조의 쾌감같은 희열을 안겨주는 것'이라 말했듯, 뒤틀린 세계와의 투-쟁(다시 말하면 낯선 세상으로의 모험과 일탈)은 그 주인공에게 아이러니하게도 두려움과 쾌감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가나코는 드디어 자신 내부에서부터 시작된 변화와 마주하게 된다.

자, 이쯤에서 '더 좀비스'가 무엇인지 간략히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나처럼 가즈키의 책들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너무도 잘 알고 계실 테지만, 안 그런 분들도 많으리라고 생각하기에.(나는 친절하니까) 구성원 하나하나를 살펴보자면, 우선 리더격인 미나가타와 타고난 파이터인 박순신, 그리고 왠일인지 이 책에서는 비중이 적은 가야노와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인 야마시타가 있다. 매우 특이하게도 고등학생 수준의 아이들이 모여있는 집단에서 으레 일어나게 마련인 권력의 분화가 이들에게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미나가타가 암묵적인 리더의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그들이 관계는 어디까지나 수평적이다. 그들에게는 '우정'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사회가 규정한 가치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것을 향해 과감히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신념. 그것이 그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오카모토는 올바른 일을 하려고 하잖아? 우리는 아직 어떻게 하면 세계를 바로잡을 수 있는지 방법은 모르지만, 일단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볼 생각이야. 영문을 알 수 없는 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어. 그것 때문에 험한 꼴을 당해도 좋아. 부서진 세계 속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 「SPEED」, p. 192


이제 가나코는 톱니바퀴처럼 맴돌던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두 발로 딛고 서서 눈 앞의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한다. 무라카미 류가 1969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는 점에서「69」에서는 어느 정도 글과 독자 사이의 극복할 수 없는 괴리감이 느껴지는 반면, 가즈키는 이 작품에서 평범하고 나약한 여학생이 모험과 일탈로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탈피하고 새롭게 성장해가는 모습을 그리면서 독자들의 심정적인 동의를 이끌어 낸다. 더 이상 세계는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적응해 나아가야 할 절대적인 무엇이 아니었다. 이미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끝난 그들에게 실패와 성공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실패를 하든, 또는 성공을 하든 최소한 그들은 당당했고 떳떳했으니까. 아니, 어쩌면 결말은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모험을 두려워하고 낯선 세상에 발을 내딛을 용기가 없는 사람이 자신을 극복할 수 없듯이, 반대로 이미 두려움을 이겨낼 신념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세속적인 의미의 성공과 실패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혹여 그들이 실패했더라도 그들은 실망하기는 했을지언정 좌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옳지 않은 것에 분노하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에 대해서도 앞으로 내딛으려는 젊음을 보여주기에 그들은 아름답다.



# 나의 책마을은 무엇이었나

고백하건데, 나는 요즈음에 책마을에 올라오는 글을 열심히 읽지 않는다. 물론 예전에도 일상이야기라든지 연재소설 등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긴 했지만, 요즈음에는 심지어 '내글내생각'과 '독서후기'도 잘 읽지 않고 있으니 무언가 변하긴 한 것 같다. 그래, 확실히 나도 예전에 비해 많이 변화하기는 했다. 책마을을 처음 알았던 5월부터 11월까지 나는 그냥 유령이었고, 앞의 지훈씨의 글에서도 나오듯이 그저 침묵하는 자에 불과했다. 처음 책마을을 접했을 때, 나는 사바넷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진정한 소통과 사유의 장이 인트라넷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첫 번째 충격을 받았고, 명예의 전당과 책가지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글들이 내가 예상하고 있는 수준을 훨씬 상회한다는 사실에서 2차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마이너의 눈치를 보며 몰래 접속해야 한다는 점까지 더해서, 나는 '책마을'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안방 장롱에 고이 모셔져 있던 비디오를 몰래 보면서 느꼈던 희열과 충격, 그리고 몰래 한다는 쾌감(?)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책마을이 나에게 이렇게까지 깊숙히 들어와 박힐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주옥같은 글들을 보고 '참 좋은 글이구나!'하고 감탄을 했을지언정, 내가 이곳에 끼어들어 텍스트를 내뱉을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짬의 법칙이 적용되는 이곳에서 당시 내가 갓 배터리 두칸을 채웠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스스로 글솜씨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탓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쓴 글에 생길 무관심이 두려워 차마 나의 언어를 쏟아놓을 수가 없었다. 도전할 용기도 가지고 있지 못했던 나는 이미 이 게임에서 패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남에게 나의 글을 보여주기가 부끄러웠던 나는 대신에 차분히 책을 읽으며 짤막한 감상과 느낌을 노트에 적어나갔다. 의지를 잃지 않고 꾸준히 책을 읽다보니 어느새 2008년은 저물어있었고, 나는 40여권 정도의 책을 읽었다. 무려 2~3개월만에 이 정도를 독파하신 우중님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수준이지만, 나는 그래도 어느 정도는 만족했다. 그것은 예전에 속독하던 버릇을 버리고 느리게 읽으면서 책을 올바르게 이해하려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2008년은, 읽은 책들이 가치는 둘째 치고라도, 그 어느 해보다도 풍요롭고 알찬 독서경험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가네시로 가즈키의「영화처럼」을 읽다가 나는 문득 나의 생각과 감정을 남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좋은 느낌으로 읽었던 책을 소개하고 싶었고, 남들처럼 명쾌한 논리와 화려한 비유, 그리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책마을에 다가가고 싶었다. 더 이상 방관자나 관중, 유령에 머물러 비겁하게 모니터 뒤에 숨어 있기는 싫었다. 나도 오직 텍스트로만 존재할 수 있는 이곳으로 뛰쳐나와 마음껏 뛰놀고 싶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소통에 대한 갈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책의 가치를 중시하고 글쓰는 행위를 동경하는 사람으로서 가질수 밖에 없는 허영과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의 글을 내뱉고 싶다는 욕심이 낯선 세계로 진입하는 두려움을 넘어선 순간 난 진지하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모든 글을 노트에 먼저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것은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생각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기도 하려니와, 갓 만들어진 허접하고 가벼운 글로 책마을의 가치를 손상시키기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내개 '책마을'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은 그리 가볍지가 않았기에 함부로 아무 글이나 내뱉어 놓을 수는 없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소통의 공간인 책마을에 대해 내가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였다.

그렇게「퀴즈쇼」의 독서후기를 쓰면서, 나는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고, 나는 며칠씩 머리를 쥐어짜면서 조금씩 글을 써나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글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과분할 정도의 칭찬을 해주는 것을 보고 나는 깨달았다. 아름답고 멋진 글들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부족할지언정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진심을 담은 글은 읽은 이의 가슴 속에 오롯이 다가가 스며들 수 있음을. 나는 책마을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 누구를, 무엇을 위한 책마을인가

몇 달 전이었던가, 책마을 시즌 2에 관한 논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을 때 나는 '20대를 위한 소통의 장'을 만들자는 얘기에 심장이 멎을 듯한 전율을 느꼈다. 당시만 해도 논의에 활발히 참여하지 못했던 나는, 아마도 이 문장에 자극을 받아 뒤늦게나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69」의 겐에게 '페스티벌'이, 「SPEED」의 가나코에게 '더 좀비스'가 그러했듯이 나에게는 '책마을'이라는 이름은 아마도 그 때부터 동경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단언코 '책마을'은 '페스티벌'보다도 즐거웠으며 '더 좀비스'보다도 매력적이었다.

내가 이런 글을 쓰면서 굳이 독서후기라는 타이틀을 빌린 것은, 앞의 두 책이 젊음에 관한 논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요즘(이미 지나갔는지도 모르지만) 뭔가 시사하는 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동기씨가 올린 '청춘의 종언'은 물론이거니와, 동욱 씨가 올린 '20대 예비저자들을 위한 글'까지 최근 한두달은 어느 때보다도 활발히 '젊음'과 '20대', 그리고 책마을의 정체성과 소통의 문제에 대하여 많은 말들이 오고 갔다. 나도 한 번쯤 이런 내용의 글을 쓰고 싶던 찰나, 요행히도 '젊음'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 두 권을 책을 읽게 되었기에, 부족한 글실력을 만회하고자 이렇게 책의 힘을 빌려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요즘의 내글/후기 게시판에는 가벼운 글이 많아졌다. 앞에서 말했듯이, 내가 요즘 책마을에 올라오는 글들을 열심히 읽지 않는 까닭은 이런 이유에서다. 요즘에는 하루에도 열 편이상의 일상이야기가 올라오고, 그 비슷한 수준의 내글/후기가 올라온다. 일상이야기는 원체 잘 안 읽는지라 논외로 하고라도 내글/후기에 어울리지 않는 가볍고 노력이 들어가 있지 않은 글들이 많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새삼 글의 수준을 논하자는 게 아니다. 동석님의 말마따나, 일기장에나 쓸 법한 글들은 노트에 고이 모셔두자는 얘기다.

'책마을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애초에 책마을이 존재할 수 있었던 취지를 생각해보자. 책을 읽고 사유하고, 그 사유를 나누는 소통의 장으로 존재했던 책마을이다. [내글내생각]과 [독서후기]가 있기에 [일상이야기]도 있을 수 있는 것이도 [연재]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곳이 책마을이기에,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느다. 단순히 자신의 신변잡기식 이야기나 연재소설만을 올리려고 책마을에 오는 사람들에게, 까놓고 말해서 다른 게시판에 가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책마을에서는, 다른 데서는 쓸 수 없는, 오직 이곳에서만 쓸 수 있는 글이 올라왔으면 좋겠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아니느냐고 반박하지 마시라. 누구나 쓸 수는 있지만, 아무 글이나 무턱대고 올리라는 말은 아니다. 이 글을 보고 울컥하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혹시 명예의 전당이나 책가지에 자리잡고 있는 글들을 읽어보았느냐고. 그 글들에 박혀있는 치열한 사유와 진실성에 고개숙여 보았느냐고. 지금은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이 공간이 얼마나 힘겹게 탄생할 수 있었는지를 아느냐고. 꼰대성 말이 아니다. 최소한 책마을이 어떤 공간이었는지 대강이나마 알고 글을 쓰는 것이, 이곳에 자리를 잡으려는 이들이 해주어야 할 몫이다.

8개월간 책마을에서 굴러먹은 사람으로서 무분별한 글들로 인해 책마을의 가치가 손상되는 것을 나는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다. '당신들만을 위한 책마을이 아니잖아요?'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우리들만의 책마을이 아니라면 '소녀시대 만세'나 내뱉고 사라지는 당신들만을 위한 책마을은 더더욱 아니라고. 이동석의 책마을과, '오늘은 작업이 빡세군요(울음)' 이라는 글을 남기는 행인 1의 책마을이 의미하는 것은 결코 같지 않다. 아니, 나는 단언코 동석 씨의 책마을을 사랑하는 마음이 100만배쯤은 더 클 거라고 확신한다. 그렇기에 나는 계속적으로 소-통을 외치는 그들을 위해 이렇게 펜을 드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글이 과격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책마을의 문을 닫아놓자는 얘기가 아니다. 민규씨의 표현을 빌려, 마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목마른 자에게 오아시스가 될 수 있는 책마을로서 언제까지나 존재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글을 올리기 전에 한 번쯤 생각해줬으면 한다. 이 글이 오랜 시간 가꿔져왔던 책마을에 부끄럽지는 않은 글인지 말이다. '저는 그런 멋진 글을 쓸 수 없어요'라고 되묻는 분들에게는 앞에 있는 본인의 책마을 경험담을 읽으신다면, 어느정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도 불과 두세달 전까지만 해도 그래왔으니까.


"가나코, 여자라고 얌전하게 그냥 기다려서는 안 돼. 먼저 술래잡기를 하자고 나서서 술래가 되는 거야. 놀이를 시작하는 게 늘 남자애여야 한다는 법은 없잖니?"
"그렇지만 가나코의 기분도 알 것 같아. 그애들은 좀 특이하니까. 그리고 터프하지. 그렇지만 가나코, 그애들도 처음부터 터프하지는 않았어. 하늘을 날려다가 몇 번이나 추락하고, 누군가에게 날개를 잡히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조금씩 강해져서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새에 가까워져 가는 거야. 가나코 짱도 조금씩 강해져서 그애들이 있는 세계로 날아가 같이 놀아봐. 정말 즐거울 거야" - 「SPEED」, p. 275

나는 다시 소통을 위해 펜을 든다. 그 날갯짓이 가나코와 같이 미약하고 불안하지만, 난 그래도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더 좀비스'보다도 매력적이고 든든한 이동석과 김무준과 김민규, 김동욱, 홍석기, 김예찬, 김요셉, 고동기, 송기화, 정병훈, 이석재들이 있지 않은가. 침묵하는 자들이여, 그리고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책마을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얼굴들이여. 부디 마음을 열고 책마을에 다가오기를 바란다. 무릇 진심은 외면받지 않게 마련이니.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1-27 15:55)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1
15:16:43 

 

병장 이한준 
  부끄럽습니다. 무작정 떠오른 것을 텍스트로 옮기고 그것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자위가 몸 속 깊은 곳에 뿌리박혀 있었는데, 이 글을 통해서 그 가시가 뽑혀나간 기분입니다. 지금껏 인식하지도 못했던 가시였지만 그것은 있어서는 안될 것이었습니다. 이 장소, 이 책마을이란 공간은 그래서는 안되는 곳이었습니다. '무작정' 떠오른 글이라는 것은 그저 텍스트, 텍스트보다도 못한 디지털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다듬고 완성시킬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지금껏 '가벼운 교감' 이라는 자위적인 생각으로 무게와 진심이 실리지 않은 글을 게시했던 것을 반성합니다. 

기분 좋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을 약간만 먼저 볼 수 있었더라면 밑에 싸지른 텍스트를 올리지 않았을 텐데. 삭제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므로, 자기반성의 여지로 남겨두겠습니다. 2009-01-25
02:24:43
  

 

병장 이동석 
  드디어 근영님 글이 올라왔군요. 2009-01-25
02:42:19
  

 

병장 이동석 
  선수를 뺐겼군요. 저도 독서후기와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엮어 보려고 했는데, 
일단 가지로-를 외치고 

논의는 좀 더 생각해보고 제 글로 올리겠습니다. 2009-01-25
02:52:50
  

 

상병 정근영 
  한준 / 아닙니다. 제 의도가 그래도 온전히 한준님에게 전해진 것 같아 저야말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2009-01-25
02:55:13
  

 

병장 이동석 
  그건 그렇고 

... 

우리나라에서 평범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평범한 학교생활을 했던 대다수의 남자들 중에 과연 '섹스'를 말하면서 얼굴이 붉어지지 않고, 대담하게 '여자랑 자고싶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낼 수 있었던 고등학교 1학년생이 과연 얼마나 있었겠는다 

... 

아무래도 제가 이상한 놈인 모양입니다. 아니 그런데, 중학교때도 뭘 따먹었네 어쩌네 하는 말 하지 않아요? (제가 좀 후진 동네 살긴 했지만, 흐흐) 친구 별명이 아예 섹스-인놈도 있어서 남여합반인데도 야 섹스- 책빌려줘 이러고 댕겼는데 (그래서 여자들이 싫어했나?) 2009-01-25
02:56:17
  

 

일병 이영경 
  이동석님/ 언제나 독특한 경우는 있는 법이죠. 2009-01-25
02:57:35
  

 

상병 정근영 
  동석 / 어이쿠, 동석씨 아직도 안 주무시는군요. 이 야밤에 활동하는 올빼미 분들이 꽤나 많은 것 같습니다. 음, 사실 이 글은 굉장히 정체성이 애매합니다. 원래 독서후기로 올리려던 글이 완성을 못시키고 질질 끌다보니, 독서후기 부분과 책마을에 대한 부분이 이어지지가 않는군요. 에구, 이게 아닌데 2009-01-25
02:58:41
  

 

상병 정근영 
  동석 / 얼렐레, 이거 실시간 댓글로 가는 건가요. 근데 제 댓글 밑으로 이어진 동석씨의 댓글은 꽤나 충격적이군요! 으음, 저희 동네가 후져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누구누구 따먹었네 떠들고 다니는 애들은 그닥 많지 않았어요. 그나저나, 노트에 쓴 글을 급하게 옮기다보니 부분부분 오타들이 많군요 2009-01-25
03:02:02
  

 

병장 이동석 
  영경/ 제가 독특하다고 말하려는게 아니라 우리 세대간에 지역적 편차나 계층간 차이를 한번 인식해보자-고 한건 개소리고, 우리 동네는 이러고 놀았는데- 정도 되겠습니다. 

근영/ 이제 자야겠습니다. 어익후, 졸려라. 

그리고 근영님 글에서 나온 표현대로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진심을 담은 글은 읽은 이의 가슴 속에 오롯이 다가가 스며들 수 있"으니까 이음새따위는 문제도 아닙니다. 흐흐. 2009-01-25
03:04:19
  

 

일병 이영경 
  이동석님/ 큭, 독특하다는 것에 의미보다는 뭐랄까, "그럴수도 있는 것이죠." 랄까요. 아무튼 저는 남녀공학은 대학교와 국민학교때 경험한 것이 전부인지라.. 남자만 있다면 더 그렇다죠. 2009-01-25
03:08:47
  

 

상병 김용준 
  음....너무 길어서 처음에 보지 않으려한 1人이였지만 훑어보니 술술 읽히더군요. 흠흠. 


[69]에서 가장 인상 깊은 말... 

'청춘의 순수한 욕망 안에는 보다 깊은 무엇이 내재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섹스'란 곧 '여체'였고, '여체'는 곧 '아름다운 무엇'이었다. 그리고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선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섹스'를 동경했던 것은 아름답고 선한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젊음의 순수한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음...저를 예로들자면 저의 초중고 시기의 욕망은 오로지 '강함, 우정, 섹스(=여자)' 이런거 였습니다. 그 중 '강함'은 첫 번째 이유는 약육강식의 생존사회(학교마다, 지역마다 그룹들이 생기죠.)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두 번째 나의 소중한 사람들(친구들)과 어울림(소속감)과 지키고(소유욕) 싶었으며 세 번째 나의 강함을 뽐내고 싶어서였던거 같네요.(우월감?) 근데 이런 이유를 가지고 있던 '강함'도 과연 순수한 열정에 속할까요? 저는 치기어린 아해의 투정과 아집의 결정체로 보이네요. 흑흑. 

'섹스(=여자)'... 저는 정말 그냥 암울한 쾌락에 도취되서 여기...저기 너무 많은 곳을 다녔었습니다. 이유를 생각해보자니...마땅히 안 떠오르고 오로지 '하기위해!'라는 말만이 제 머릿속에 떠올랐던거 같습니다. 저도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다녔던 1人으로써 저는 너무 빨리 '잘못된 성'을 접하고 그것이 진리인양 여기며 지내며 살아왔던거 같습니다. 킁- 

'우정'이 그나마 젊었을 적의 가장 순수한 무엇이며 아름답고 선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역시나 저는 그 순하디 순한 욕망인 '우정'마저 저만의 세계에서 통하는 언어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와 '친구 아니면 적'이라는 상대주의를 적용시켜서 자기합리화를 시켜버렸습니다. 오.로.지! 저만을 중심 
으로 돌아가는 기벽(氣癖)으로 쌓은 성(城)안의 군주(君主)로 군림했던 것이였어요. 

다시 생각해도 정말 아찔한 저의 예전 성격입니다. 후회가 되기는 하지만 미련은 안 갖습니다. 지금의 저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1人이 되어 있고 하루하루 또 변해가는 눈을 뜨고 세상을 보는 1人이니까요.(옹알옹알) 


[SPEED]에서 가장 인상 깊은 말... 

'실패를 하든, 또는 성공을 하든 최소한 그들은 당당했고 떳떳했으니까. 아니, 어쩌면 결말은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모험을 두려워하고 낯선 세상에 발을 내딛을 용기가 없는 사람이 자신을 극복할 수 없듯이, 반대로 이미 두려움을 이겨낼 신념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세속적인 의미의 성공과 실패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혹여 그들이 실패했더라도 그들은 실망하기는 했을지언정 좌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옳지 않은 것에 분노하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에 대해서도 앞으로 내딛으려는 젊음을 보여주기에 그들은 아름답다.' 

지금 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아직 한참 아니...너무나도 부족하지만 되려고 꾸준히노력하고 있으며 눈을 떠가는? 1人이니까요. 젊음에서 비롯된 우리의 '좌절, 슬픔, 시련'도 
하나의 교훈은 되리라 생각합니다. 너무 거기에 빠져서 우울증에 걸리는거는 조심해야 겠지만요. 끌끌끌. 


Ps. 가.지.로-! 
허허...그냥 제 생각을 조금 쓴다는게 이렇게 길어졌군요.(투덜투덜) 
근데...다들 안 주무시고 모하시는건가요? 낄낄낄. 2009-01-25
03:53:05
  

 

일병 이영경 
  eatting carrot. 2009-01-25
03:59:27
  

 

병장 이한준 
  가지로를 외쳐본 적이 없어서 망설였지만 책마을에 글을 올리는 사람이라면 보아야 할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하고싶은 말이란- 

가지로! 2009-01-25
03:59:55
  

 

병장 정병훈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군요. 
동기씨, 두환씨의 '독서후기제왕의 타이틀'을 이어받는 근영씨. 
설탕 갔다와서 탐독하겠습니다. 2009-01-25
07:18:19
  

 

병장 김민규 
  가지로 때립니다. 
먹먹해지는 아침이라 더이상의 말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아 2009-01-25
08:38:18
  

 

상병 이지훈 
  잘 읽고 갑니다 정말입니다 고마워요 흐 2009-01-25
09:28:54
  

 

병장 고은호 
  가지로-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다양한 물음. 그에 대한 대답은 결국 자기 자신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설혹 다른 사람이 말해준다 하더라도 '그 생각에 동의'한다는 대답을 필요로 하겠지요. 당연히 그 대답은 잘못되었을 수도 있고, 미숙할 수도 있으며,표현이 서툴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생각들에 진지한 고민과 사유가 섞여 있다면, 틀림없이 누군가 손을 내밀어 줄 것입니다. 

저는 이 곳 책마을이 그런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누군가 자신만의 진지한 대답을 올리고 그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서로 손을 내밀어주며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곳. 

그리고 지금 추진하고 있는 <시즌2>도 그런 곳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2009-01-25
10:28:08
  

 

일병 윤병철 
  가볍고 노력없는 글이 안되기위해 저도 노트에 적어서 충분히 생각하고 더 붙이고 한뒤 글을 올립니다. 요즘 올라오는 가벼운 더블엔터글들은 그때 그때의 감정을 그냥 던지고 사라지는것 같아요. 2009-01-25
15:32:05
  

 

병장 이우중 
  요즘 자고 먹고 일어나고 자고 먹고 일어나고 했더니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모레 나갔다 와서 다시 한 번 더 읽어보아야 할 것 같아요. 2009-01-26
16:39:57
  

 

상병 이석재 
  '더 좀비스'보다도 매력적이고 든든한 이동석과 김무준과 김민규, 김동욱, 홍석기, 김예찬, 김요셉, 고동기, 송기화, 정병훈, 이석재들이 있지 않은가. 

아니, 저는 아직 꼬꼬마 수준에 불과해서 이분들이랑 같이 연결지으면 안된다니까요. 하여튼 

잘봤습니다. 프린트한걸 읽으면서 잠시 멍해질수 밖에 없었군요. 2009-01-30
22:21:24
  

 

병장 정준영 
  글 잘봤습니다 

저도 두가지 책 모두를 접했는데 참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정근영 상병님의 글을 보니 다시 한번 못 느꼈던 부분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09-02-06
19:11:52
  

 

병장 최종대 
  식스티나인이라는 작품을 영화만으로 봤던 저로서는 
그저 재밌는 작품이구나 하는 생각 뿐이었는데 
(그와 더불어 내 학창시절이 너무 싱거웠다는 겉절이 양념도) 
작품을 분석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래저래 신기하기도 하고 
뭔가 생각의 차이라는 것도 느껴지고 합니다. 
어쨌든 저는 재밌는 음식만 골라먹는 편식주의자면서 
동시에 정답없는 음모론 같은 것들이나 파재끼고 있는 히피스러운 사람이니까요.흠... 2009-02-12
18:14:08
  

 

이병 문건영 
  69라는 책을 이번 외박에 사서 봐야겠군요. 점심시간인데, 선임들한테 걸릴까봐 빨리 읽게 되니 참으로 무섭습니다. 일병 달자말자 인사과 왕고가 되는 데, 아무튼 그 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2009-03-04
12:5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