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로 필화(?!)를 겪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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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글내생각] 짝패 : [에덴의 동쪽] / [야망의 세월]  
일병 김예찬   2008-12-10 15:03:14, 조회: 239, 추천:2 


고아원 시절 부터 사랑하던 연인을 자신의 출세를 위해 차버리고, 내연녀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하자 강제로 낙태시키고, 탄광 파업을 일으킨 노조 위원장을 사고사로 위장하여 살해하고, 아파트 단지 건설을 위해 불법으로 빈민촌을 철거하고, 빈민촌 철거 반대 운동을 하는 학생을 빨갱이로 몰아 남영동에 쳐넣어 고문하고, 그린벨트 해제를 위해 정치적 로비를 일삼고, 이러한 로비를 위해 탈세는 기본이며, 사업에 방해가 되는 자는 청부폭력으로 물리친다.

[에덴의 동쪽](이하 '에동')에서 주인공들 이상의 존재감을 가진 빛나는 악역 '신태환'(조민기)의 행적이다. 신태환은 (건설회사를 실질적인 모태로 했다는 점에서 모 재벌 기업을 연상케하는) 태성 그룹의 데릴사위로 들어가 태성 그룹의 팽창을 위해서라면 피도 눈물도 없는, 불법과 폭력, 비도덕으로 얼룩진 경영자가 된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고아 출신이던 신태환은 결국 태성 그룹을 재계 서열 몇 순위 안에 올려 놓는 굴지의 경영인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러나 신태환의 성공 이면에는 그의 거침없는 행보에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 - 헤어진 옛 연인, 강제로 낙태 당한 옛 연인, 그에게 살해 당한 노조위원장의 가족들, 빈민촌 강제 철거 과정에서 죽어간 어린 아이 등 - 이 있고, 이들에 의해 신태환은 그의 태성 그룹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아픔을 겪게 된다.

[에동]을 열심히 보면서 (가끔 사랑스러운 이연희에게 이해할 수 없는 대사를 줘서 짜증나기도 하지만) 신태환이라는 캐릭터 만으로도 한국의 재벌 기업 성장사를 관통하는 굵직한 시나리오를 누가 썼는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나연숙 작가가 그 주인공이었다. (비록 건강 상의 이유 때문에 최근 들어 작가가 '일일 드라마'의 최강자 이홍구 작가로 교체되기는 했지만, [에동]의 큰 틀은 나연숙 작가가 잡아두었다.) 나연숙 작가가 누구냐, 바로 89~90년에 방영되여 큰 인기를 누렸던 [야망의 세월](이하 '야망')의 작가가 바로 그녀이다. [야망]은 샐러리맨에서 대기업 회장에 오른 성공 신화의 '실존 인물'(그 인물은 정치계로 데뷔했다. 우리가 모두 아는 바로 '그 사람'이다. 공교롭게도 [야망]에서 '유인촌' 현 문화체육부 장관이 주인공 역할을 맡았다.)을 다룬 드라마였다. 평범한 샐러리맨이 능력 만으로 재벌 기업의 회장이 되었다는  드라마의 내용은 한국의 고도 경제 성장 속에서 소외되었던 평범한 서민들에게 한국 사회는 '능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는 평등한 사회라는 암시와 재벌 기업이야 말로 한국 경제의 견인차라는 두 가지 함의를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것은 87년의 민주화 이후 대통령 직접 선거를 이뤄냈다는 성취감에 의해 정치적 열정을 소진하고 그 대신 경제적 성공을 향한 열망이 커져 가고만 있던 90년대 초반의 한국 중산층 사회에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야망]은 대 히트를 쳤고, [야망]의 실제 주인공은 드라마의 인기를 통한 명성과 이미지를 통해 정치 무대에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샐러리맨으로 입사, 건설 현장 경험을 통해 대기업 회장까지 올라가는 [야망]과, 고아 출신으로 태성 그룹의 데릴사위가 되어, 태성 건설의 성공을 바탕으로 그룹 총수까지 올라가게 되는 [에동]의 신태환은 유사한 인생 역정을 보인다. 그러나 그 둘에 대한 나연숙 작가의 묘사는 극과 극을 달리는데, [야망]이 그야말로 '성공 신화'라면 [에동]은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성공 신화'의 이면에 숨겨진 어둠과 그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떻게 묘사되는지는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한 개인의 '성공 신화'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야망]과 [에동]의 두 인물은 일종의 '짝패'라 할 수 있다. 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 이후 '세계 속의 한국'으로 국력이 신장 되었던 한국 사회가 바라본 '주인공'의 일대기가 [야망]이라면, 압축적 경제 성장의 그늘 아래서 배제되고 고통 받았던 사람들의 문제가 계속해서 제기 되고 있고 무엇보다도 '또 다른 경제 성장'의 모토가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60~80년대의 고도 성장기를 재인식해보아야한다는 자기 반성이 바로 [에동]의 신태환을 통해 나타나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바로 그 [야망]을 썼던 나연숙 작가가 2008년의 이 시점에 [야망]의 짝패로 [에동]을 쓰고 있다는 것이 반가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글머리에 제시 되었던 신태환의 악행들 중 [야망]의 '주인공'이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비록 [야망]에는 나오지 않았겠지만.)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5-15
13:40:23 



일병 김예찬 
  조금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그냥 권한 있는 분이 삭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08-12-10
15:13:26
  



병장 김민규 
  위험까지는 모르겠네요. 문제는 제가 두개의 드라마를 다 보지 못했다는데 있군요. 쩝. 
어쨌든간 분석하신대로면, 에덴은 작가의 돌아보기 정도가 되겠군요. 여전히 의문은 남습니다. 세간의 주목을 끌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사용되었을지 모른다는 그런. 마치 스포트라이트에서 국가적으로 여론을 조작하는 음모가 있다는 식으로 그린것처럼 말이죠. 이건 본 사람만이 판단할 수 있겠군요. 2008-12-10
15:24:39
  



병장 김민규 
  저는 그랬거든요. 스포트라이트보면서. 아, 진짜 맘만 먹으면 저런 일 못할 것도 없겠구나. 방송사 하나쯤 구워삶는 것 쯤이야. 픽션이지만 어느정도 어두운 역사속에서 실재했겠구나. 그러면서 자연스레 3자를 향한 분노가 더해져 드라마에 더욱 끌려가는 효과를 발휘하더군요. 

내부적 결속을 다지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 외부에 적을 상정하는 것 아니던가요. 흐흐 2008-12-10
15:26:25
  



병장 정병훈 
  저는 보통 책을 내는 작가들에만 관심이 많아 드라마 작가나, 잡지에 글을 올리는 작가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나연숙이라는 작가가 어느정도 유명한지도 당연히 모르고 있지만, 에동의 유명세는 들어서 익히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정리를 하니, 두 드라마의 특징이 한눈에 쏙 들어오는게 깔끔하군요. 2008-12-10
15:49:24
  



병장 이동석 
  이게 위험한 분위기가 위험한게 아닐까- 뭐 그런생각이 들면서 간만에 후르릅 2008-12-10
15:54:55
  



병장 이동석 
  전 개인적으로 이런 거창한-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거기다 소몰이창법의 주제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노래만 나와도 채널을 돌려버리곤 합니다. 게다가 전 송혜교주의자이기전에 노희경-주의자기때문에 그사세-본방사수에 열과 성을 다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덴의 동쪽은 워낙에 시끌벅적해서, (주로 이연희의 발연기-에 대한 이야기던데, 전 개인적으로 이연희의 연기가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모를래야 모를수가 없어요. (시청률 1위라는데 주위에 보는사람이 없습니다. 아, 어머니는 보시는구나) 2008-12-10
16:11:04
  



상병 김상윤 
  이연희의 연기보다는 난 슬플때 학춤을 춰 라던가 하는 이상한 대사를 아무생각없이 넣어버리는 대본이 문제다.. 라는말을 들은 기억이 나는군요. 

에덴은 보는데 야망은 못봤으니 이거야 원.. 그나저나 에덴은 80년대 때부터 밤에 너무 졸려서 못봤어요. 나중에 재방송으로 연속방영해주면 봐야되나 음. 
궁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본건 태사기 밖에 없는듯 흐흠 2008-12-10
16:20:24
  



병장 이동석 
  음, 요딴 드라마 타령으로 끝내려는게 아니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어쨌거나 참으로 적절한 짝패-가 아닌가 싶어요. 시의도 적절하고요. 에덴의 동쪽 내용에 대해 여론은 어떤지도 궁금하군요. 허허. 그냥 이연희 욕하면서 보는건 아니겠죠? (이연희의 잘못이라기 보단, 소속사와 드라마 제작사의 담합이 빚은 참극일뿐입니다. 지못미- 이연희) 2008-12-10
16:50:22
  



일병 김예찬 
  아마 그냥 이연희 욕하면서(아니면 저처럼 이다해 여신님 - 이연희 인형님께 열광하면서) 보는 분위기 같아요. [에덴의 동쪽]에서 태성 건설에 의해 빈민촌이 철거되는 내용이 나오는 가운데 [PD수첩 - 기륭전자 파업 1000일의 이야기]가 TV 하단 자막으로 예고되는 상황이 있었는데 무언가 씁쓸한 기분이 들더군요. 빈민촌 철거 이야기는 이제 대중문화적으로 소비되고, 기륭전자에 대해서는 PD 수첩이 아니면 어디에서도 다뤄주지 않죠. 그리고 드라마 속의 태성 건설 빈민촌 철거에는 분노 하면서 기륭전자를 다룬 PD 수첩은 아무도 보지 않는 사람들도 그렇고. 2008-12-10
17:36:06
  



상병 이지훈 
  이것 참, TV도 좀 보고 살아야하는데 말이죠. 아침방송은 여전히 내고향 버젼의 음식이야기가 대부분이군요...기륭전자, 무슨 이야기인지 자세히 듣고 싶은데 위험할까요? 2008-12-11
00:18:02
  



일병 이석현 
  에동 재밌게 보고있지요, 야망을 보지못해서 일단 아쉽네요 
80-90년대만 해도 '파이를 키워서 나눠먹는다'가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었고, 그에따른 대기업위주의 성장 또한 당연한 것,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지금은 모두들 결과를 알고 있죠? 2008-12-11
08:46:55
  



병장 이동석 
  기륭 노조에 대한 이야기 자체는 위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하는것만으로도 위험해지는 체제는 위험합니다. 

중소기업의 신화-이자 입지전적인 전설인 기륭-의 실체는 사실 비정규직에 대한 착취로 이뤄졌다-뭐 이런 이야기인데, 자세한 이야기는 못하더라도, 에덴의 동쪽에 나오는 기업의 이야기와 다를것 없는, 사실 우리가 아는 기업들의 이야기와 비교해서 새로울것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지훈님 같은 사려깊은 분조차도 기륭에 대해 잘 모른다는건, 그야말로 언론이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는 말이지요. 전 이태까지 방송이나 신문에서 기륭-에 대한 보도를 본적이 없습니다. 그나마 있어도, '불법'시위를 '진압'했다는 짤막한 단신이나 작은 꼭지나 있을뿐이지요. 그들이 왜 수백일동안 위험천만한 투쟁을 하는지 뭐 그런것 보단, 박철-옥소리와 조성민 친권 주장에 관심이 많더군요. 아홉시 뉴스 너마저- 2008-12-11
09:10:25
  



병장 이동석 
  저도 잘은 모릅니다만, 관련된 글을 하나 옮겨놓을께요. 오늘 일과시간 이후에. 2008-12-11
09:11:17
  



일병 김예찬 
  [야망]을 못보신 분들이 많을테지만, (사실 저도 어릴 적에 재방송으로 본 기억 밖에 없습니다. 잘 기억도 안나요.) 이 글에서 중요한 건 [야망]의 '실제 주인공'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위치에 올랐나 이겁니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 사회는 '그 사람'으로 상징되는 개발 체제의 악역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구요. 2008-12-11
16:17:06
  



병장 문두환 
  하아-아껴두었다가 읽기를 잘했군요. 

이 댓글도 이 '위험한' 사회에서 '위험한' 댓글이라면 지워셔도 상관 없습니다. 

과거 우리나라의 화려한 성장기에 YH무역에서 일하던 그는 지금은 정계에 몸을 담고 있습니다. 그가 예전에 산업성장을 일궈냈다고 하는 '그분'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가 사뭇 인상적이었죠. 요는 이렇습니다. 지금의 경제발전이 소수 몇 명의 탁월한 지도에 의해 이뤄졌다는 말에 자신은 모멸감을 느낀다. 살인적인 노동시간에 최저임금도 되지 않는 근로여건을 견뎌낸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이 가능했다. 라고 말이죠. 고도의 경제성장 속에 얼마나 많은 그늘이 있었던가요! 여러가지로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이 많은데 나중에 글로 한 번 정리해봐야겠군요. 2008-12-11
19:38:47
  



일병 김예찬 
  음, [야망의 세월]의 실제 주인공이 누군지 물어보시는 쪽지가 와서, 혹시 모르시는 분들이 있을까봐 힌트 남깁니다. 

야망은 영어로 '앰비션'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