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독서후기]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상병 김남우   2008-10-27 09:57:57, 조회: 810, 추천:2 

-2.
사실 후기나 감상이라 하긴 민망하고. 평이라 하긴 더더욱 부끄럽고. 단지 글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기 위해 억지로 토해낸 오기에 불과합니다.


-1.
책을 이미 읽으신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어서 그렇냐구요? 그 반대이지요. 책의 '내용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거든요! 흐흐.


0.
술을 많이 마셨다.
지치지도 않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바닥난 몸과 정신에 계속해서 술을 들이붓더니 급기야는 꿈에서까지 마셨다. 꿈 속에서 마신 술은 전설의 취생몽사라도 되는 것일까, 푹 자고 일어나자 마자 정신을 못 차린다.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으실으실 떨린다. 단순히 취했다, 라고 말해버리면 2% 부족할법한 그런 놀라운 느낌, 중독자들의 감각에 비추어지는 세계가 어떤 식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마침 술 깨기에 딱 좋은 얼큰한 커피를 파는 카페를 알고 있으니 비틀거리며 집을 나선다. 온 몸을 덜덜 떨며 담배를 피웠고, 얼큰한 커피를 마시며, 앉은 자리에서 들고간 책을 한 호흡에 다 읽는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 마자 한 마디. 아 XX. 속았어.


1.
2007년 10월 24일에 처음 읽었다. 입사하기 하루 전 날 이였고, 다음 날 회사 정문 바로 앞에 도착할 때 까지 읽었음에도 마지막 30페이지 가량을 남겨두고 책을 덮어야 했다. 헬무트와 이길용과 강시우와 정민의 삼촌의 이야기들, 쉴새없이 들이닥치는 서사들 속에서 나는 자주 길을 잃고 헤멨으나 끝내 출구를 찾지 못한 채 회사에 들어가야 했다. 네 달이 지나서야 다시 책을 찾았으나 없다. 잃어버렸다. 그 서사들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2008년 10월 19일, 그러니까 꿈에서 마신 술에 만취해 있던 날 다시 읽었다. 무려 1년여만에 마지막을 보았으나 홀린듯 다시 첫 페이지를 펼쳤다. 10월 20일에 다시 읽었고, 10월 21일에 다시 읽었다. 22일에도, 23일에도...


2.
김연수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를 읽고 다시 거듭 읽으며 내가 찾아 읽어내려 애쓰던 것은 '행간'이였다. 읽을 때 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새로운 문장들이 쏟아져 나왔다. 또한 그의 언어들은 몸서리게 외롭고 괴로웠으나, 그 누구의 의도도 아니며 이미 스스로 거기에 있었다는 듯 외로운 언어들 사이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시니피에들은 저마다 "사실은 그런게 아니야"라며 속삭였다. 유령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 거짓이라며, 이해나 소통 따위 불가능한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그렇게 외로운 것 만은 아니라며 나를 위로했다. 그 위로 속에서 나는 황홀해했다. 그러나 시니피앙 역시 이에 지지는 않아서, 때때론 시니피앙이 시니피에를 집어삼키고 처절한 고독으로 나를 엄습하기도 했다. 작품을 낼 때 마다 끊임없이 발전해나가는 작가라더니 그 말대로 이미 꽤 많은 글을 써 온 김연수는 너무나도 능수능란한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렸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어떤 것이 진심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 애초에 진심이라는 것 부터가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었으나 그와 상관 없이 나는 절망과 황홀, 불가해와 희망 사이를 넘나들었다. 자주 숨이 막혔다.
이제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몇 번이고 연달아 읽으며 나는 행간을 찾아 헤메지 않는다. 소설의 마지막까지 다 읽지 못하고 책을 덮었던 지난 가을이였다면 모를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마지막을 보는 순간 모든 언어는 사라져버렸으므로. 제법 긴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이끌어가는 동안 단 한 번도 힘을 잃지 않던 서사는 충분히 압도적이라 할 만 하지만 마침내 깨닫는다. 김연수는 나를 속였다. 글 속에 가득 찬 서사는, 그렇게나 강하고 위대해 보이던 서사는 마지막 순간 증발해버린다. 그것은 힘이 없다. 차라리 사족이며 차라리 사라져버려도 괜찮을 부산물에 불과하다. 다 무슨 소용인가. 결국에는 강시우가 남기고 간 한 장의 사진만이 남는데. 정민의 삼촌에 대한 폭력의 서사 대신에 벚꽃 흐드러지게 핀 벚나무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밤도로의 이미지만 남는다. 헬무트의 비극적인 사랑에 대한 서사 대신에 라흐마니노프의 선율만 남는다. 모든 서사의 시작이자 중심인 피에르 루이스의 나체사진은, 심지어 그 자체에 대한 어떤 서사도 전해지지 않는다. 피에르 루이스가 그 사진을 정말 찍은것인지조차 불분명하다.
결국엔 '나'가 강시우에 대해 기록한 녹색 노트도 아궁이 속에서 불태워 사라져 버릴 것인데, 그렇게 모든 뜨겁고 강렬했던 서사들은 더듬더듬 안녕을 고하고 사라져버릴터인데, '단 하나의 실날같지만 확실한 무엇'만이 남을텐데. 정말 다 무슨 소용이란말인가. 어쩌면 사라지는 것은 서사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 장의 사진도, 그 이미지와 장면과 순간들도, 하나의 실날도, 급기야는 그것들마저도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아니, '모른다'가 아닌 '그럴 것이다'. 소설을 되풀이해 읽을 수록 '모른다'라는 불신은 '모른다'에 대한 확신으로 바뀌어갔다. 그럼 이제 무엇이 남는가. 이 길고 복잡한 서사의 끝에서 내가 맞딱뜨리는 것은 대체 무언가. 오랜 생각 끝에 짐작하기로, 그것은 아마

'태초'가 아닐까 하고.

어떤 글을 하나의 세계라 할 때, 그 세계가 온전히 창조되기 이전의 태초가 그곳에 있지 않나 싶다. 쌩뚱맞게도, 찬란한 언어의 세계도 아니고 언어의 틀을 압도하는 시니피에의 세계도 아닌, '태초'가 있다. 속았다는 생각에 다시 읽고 나니 이번엔 홀렸다고 할 수 밖에 없다. 태초라니. 無라니. 암흑이라니. 어안이 벙벙하다. 이 태초에서 김연수는 이미지를 만들어 냈겠지.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과, 장면들을 만들어냈겠지. 그리고 그것들이 다시 그 방대한 서사들을 낳았겠지.
태초까지 왔으니 이제 여기서 다시 어떤 세계가 잉태될 지는 모른다. 무엇도 잉태할 수 없다면 한동안 그 無 속에 빠져있을 수 밖에 없다. 시니피앙 없는 시니피에 속에서 방황할 수 밖에 없다. 여기까지 와서 번복한다. 김연수의 서사들이 아무 쓸데없는 사족이며 부산물에 불과하다고 했다. 의미없는 것이라고 했다. 아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태초에서 어느 순간 태어나 어둠 속에서 머물던 시니피에의 자식들이다. 지독한 열망과, 슬픔과 혹은 희망의 결정체들이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철저한 사람이였거나 글쟁이였더라면 어쩌면 한동안 삶을 제대로 살지 못했거나 절필을 선언했을지도 모른다. 도저히, 김연수가 태초에서 잉태한 압도적인 서사들을 삶들을 시니피앙을 극복하고 내 삶 내 글을 창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러해 절망했다. 무엇이라도 쓰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 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단 한 문장이라도 써 보자 싶어 펜을 들었으나,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무엇을 쓴다면, 김연수의 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베껴 쓰는 것 밖에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헤어나오지 못해 글을 뒤적거리며 하다못해 밑줄이라도 그어보자 싶어 글을 뒤적거리는 나는 그러나,
참 어줍잖은 인간이라서 다행이다. 그리고
치욕스러운 방법이긴 하다만 내 것은 아니나 또 다른 나를 압도할 만한 서사와, 이미지와,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를 읽어나갈 수도 있다. 이제 김연수의 새 소설을 읽어야겠다.
김연수가 계속해 글을 써 주어서 다행이다. 김연수만큼 혹은 그보다 더 좋을지도 모르는 글을 쓰는 작가들이 또 있어 또 다행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살아갔을까. 끔찍하다. 글은 나를 태초의 암흑 속으로 떨어뜨리곤, 또다시 나를 구원해낸다.


0.
한 번 더 번복. 내겐 아직 죽을 힘이 남아 있다는 심정으로 번복.
다행인 것이 하나 더 있다. 덜덜 떨며 까페에 앉아 김연수의 소설을 읽었던 그 날, 며칠 전 처음 만났던 그 아이를 떠올렸고 불러냈다. 만나서 말했다. 이렇게 말했다. 내가 방금 읽은 이 글은 서사로 가득 차 있지만, 결국엔 서사는 중요하지 않다. 이 글에 서사는 없어져도 괜찮다. 너와 나 사이에도 역시나 서사는 없다. 이제 겨우 단 두 번 만난 것 뿐이므로.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내가 방금 김연수의 글을 읽었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서사 없이도 너를 불러 만날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단지 보고싶다 라는, 이틀전의 첫 이미지로 떠올린 '네가 좋다'라는 짤막하고 막연한 감정만으로도.
태초에서 시니피에가 탄생하고 김연수의 글이 탄생했듯이, 이제 나와 그 사람 사이에서도 어떤 서사가 탄생하기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 사람 뿐만 아니라, 내가 앞으로 만나고 겪게 될 모든 것에서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나 역시도,
김연수식으로 따지자면 80년 5월의 광주에 나의 아버지가 없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금 이 땅에서 술 마시고 연애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니까. 더군다나 내 아버지는 5월의 그 날이 되기 불과 한 달 전에 광주에서 빠져나가 그 날에 광주에서 한두시간이면 도착하는 목포에 있었으니 더욱 더 우연이고, 그러니 나 역시도,
김연수의 눈에는 불가해한 우연의 존재이고 압도적인 서사로 비칠지도 모른다.
김연수가 절대 이해하지 못할 서사들이 그 아이로 인해 또 다른 무수한 것들로 인해 탄생할 것이다. 얼핏 이해한다 뻥이라도 칠랍시면 그의 멱살을 잡을만한 놀라운 시니피에들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정말 그럴 것이다. 그렇게 믿어야 한다. 믿고, 살아가야지. 나 역시도 내가 누구인지 얼마나 외로운 지 알 수 없으나, 누구도 알 수 없으나 내게도 단 하나의 확실한 실날같은 무엇이 있을 것이다. 그 실날로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2-14 13:03)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1
15:20:41 



병장 고동기 
  이번에도 김연수님의 책을 살까말까 살까말까 망설였는데. 
안되겠습니다. 꼭 사야겠네요. 2008-10-27
10:04:16
  



상병 김남우 
  꼭 사세요! 정말 좋아요. 히히힛. 2008-10-27
14:44:24
  



병장 이동석 
  저는 80년 5월에 아버지는 어디 계셨는지 차마 못 물어보겠습니다. 왜냐면 제가 지금 이 글을 읽고 눈을 껌뻑이며, 하품을 하면서 댓글을 달고 있기때문이죠. 

김연수의 책을 읽어봐야겠습니다. 2008-10-27
16:50:37
  



병장 정병훈 
  흠.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히히 
저도 몇개의 글을 써 놓긴 했지만. 독해 능력이 뛰어나질 못한편이라 말이죠. 

뭐. 전 항상 외로움을 타고 제가 누군가 고민하며 살고 있답니다. 휴- 2008-10-27
18:25:33
  



상병 이우중 
  잘 읽었습니다. 
김연수는, 꼭 다시 읽어봐야겠군요. 
뭔가 오해하고 있던 것 같아요. 하기야, 모든 해독은 오독이라니까요 뭐. 
다시 오독하게 되더라도 한 번 더 곰곰이 곱씹어 봐야겠어요. 2008-10-27
21:42:03
  



병장 김동욱 
  "<없었습니다>라는 존칭과 <후회는 없어>라는 비칭 사이의 거대한 틈새에서 말해질 수 없는 모든 것을 읽어내는 장면, 퉁명스런 기록의 틈 사이에서 소멸해간 삶의 흔적을 상상력으로 움켜내는 장면. 그게 바로 김연수적 아우라가 탄생하는 지점이 아닌가 싶어요." 

07년 여름 작가세계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마 김연수 특집이었지요. 그때 문학평론가 정(뭐였는데 기억이 잘 안나네요, 정과리인가)이 한 말이 문득 생각이 나서 한번 옴겨봅니다. 남우님이 말씀하시는 '태초'를 '거대한 틈새에서 말해질 수 없는 모든 것' 정도로 옮겨놓는건 저의 오독일지도. 

결국엔 그의 말마따나 '진실(내지는 태초)은 말해질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도네요. 그래서인가요 그 '압도적인 서사' 역시 그리 쉽게 증발해버리는 것이. 그 시절 광주가 모든 이를 '우연한 존재'로 만들어 놓았기에. 그렇게 애초에 우연적 존재인 우리에게 오히려 빈틈없는 서사는 참으로 역설. 

'김연수적 아우라'에서 헤어나오기가 참 어렵네요. 
잘 읽었어요! 2008-10-29
01:21:50
  



상병 김남우 
  그놈의 존칭과 비칭 사이. 유령작가를 읽고 그에 대해 언급하던 사람들은 꼭 그 부분을 짚고 넘어가는군요. 말씀하신 정모 평론가도 그렇고 정여울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제 친구도 그렇구요. 정말 기가 막히게 잘 썼단 말이죠 김연수. 

잘 읽어주셨다니 감사해요. 히히. 2008-10-29
11:04:51
  



상병 김동민 
  저도, 김연수 안 좋아했었는데(사실은 싫어했었는데), 이 소설 계기로 좋아하게 되었어요. 허겁지겁 읽는 통에 뭐라 말은 못 하겠지만. 2008-10-30
19:04:20
  



병장 문두환 
  그리고 외로우니까 사람인걸까요? 가지로! 2009-01-11
14:39:25
  



병장 김민규 
  80년 5월에, 저의 아버지는 상무대에 계셨더랩니다. Gee甲학교 후반기 교육생 신분으로요. 그 독특한 신분적 특성 덕분에(?) 공분하며 참여는 못 했지만, 그랬기에 다행히 나가서 현장을 수습하는 일은 안 해도 되셨다고. 

"다행인 것이 하나 더 있다. 덜덜 떨며 까페에 앉아 김연수의 소설을 읽었던 그 날, 며칠 전 처음 만났던 그 아이를 떠올렸고 불러냈다. 만나서 말했다. 이렇게 말했다. 내가 방금 읽은 이 글은 서사로 가득 차 있지만, 결국엔 서사는 중요하지 않다. 이 글에 서사는 없어져도 괜찮다. 너와 나 사이에도 역시나 서사는 없다. 이제 겨우 단 두 번 만난 것 뿐이므로.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내가 방금 김연수의 글을 읽었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서사 없이도 너를 불러 만날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단지 보고싶다 라는, 이틀전의 첫 이미지로 떠올린 '네가 좋다'라는 짤막하고 막연한 감정만으로도." 

아. 미치겠네요. 가지로- 가지로- 가지로- 2009-01-12
10:26:28
  



병장 이동석 
  남우, 아니 요셉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홀연히 나타나 놀라운 언어를 펼친 여느 그 누구처럼. 가지로-를 외치는데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죠. 그래서 가지로-도 분위기를 탑니다. 맥카페-의 광고 문구처럼, 인간은 상황에 지배당하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이미 검증받은, 친숙한 이름에만 가지로-를 외치는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글은 끝내 누군가는 알아보는 법이지요. 제 상투성을 반성하면서, 가지로- 2009-01-12
21:23:31
  



상병 김정민 
  얼마전에, 불과 1달 전에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읽었습니다. 
단순히 그 표지 삽화가 주는 무언가에 이끌려서 말이지요. 

솔직히 책장 덮었을땐 '뭐야 이게'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구요. 
제 독해력이 나뻐서 그런지. 정독하지 않고 틈틈히 읽어서 그런지.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책 내용이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나체 사진의 대한 서사,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얽히고 鰕 이야기. 
도대체, 아무것도. 
그래서 그냥 덮어버렸습니다. 예, 그게 끝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시한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이 글을보니 드네요. 

읽을 책은 산더미인데 제 지적능력은 
아무리 갈고 닦아도 늘지 않으니 답답하네요. (엉엉) 2009-01-13
10:28:45
  



상병 김요셉 
  어라, 이게 여기로 왔습니까? 어쩐지 url이, 바뀌었더군요. 2009-02-14
13:25:16
  



병장 김민규 
  1월 12일에 이미 Gee甲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나는, 뭐지? 
표절이다- 표절이야- 소녀시대 물러가라- 우워어 2009-02-15
04:06:11
  



병장 김민규 
  그나저나 이 글, 종종 떠올랐었는데 드디어 다시 만나는군요. 왜 이제 여기로 온거야? 투덜투덜.... 

"너와 나 사이에도 역시나 서사는 없다. 이제 겨우 단 두 번 만난 것 뿐이므로.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서사 없이도 너를 불러 만날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단지 보고싶다 라는, 이틀전의 첫 이미지로 떠올린 '네가 좋다'라는 짤막하고 막연한 감정만으로도." 

아, 다시봐도 압도적이야. 요셉님, 굳이 해피엔딩이 아니었어도 좋아요. 
2월 3일 구의동, 이 불가능한 우연이고 압도적인 서사였던것처럼, 요셉님의 '너와 나'도 그러했을 것을 믿기에 -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절망과 황홀, 불가해와 희망 사이에서 실낱같은 것을 믿고 살아가는 나. 

가지로를 외치길 정말 잘했습니다. 2009-02-15
04:1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