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거 참 젠장. 미치겠는게, 6교시가 또 오고야 말았다. 이제 이 6교시만 끝나면, 저 광활한 만주벌판보다 조금 더 넓은 운동장을 건너가야 할 시간이 오고야 마는 것이다. 




사실 등교할 때는 느끼지 못한다. 교문을 들어서기 전까지는, 나도 너희들과 마찬가지로 폐에 공기를 집어넣었다 내뿜는 똑같은 사람임을 느낀다. 일종의 나도 너희와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거다. 




저 교문만 나서면, 내가 얼마 전 새로 산 운동화를 아닌 척 티내며 다닐 수 있는데, 어제 환장하게 깎은 내 머리를 바람결에 휘날리며 여학우들 옆에서 샤방한 워킹을 선보일 수 있는데 말이다. 저 교문만 나선다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교문을 나선 뒤의 이야기다. 




내 신분이 학생이니만큼, 학교영토 내에선 난 어중간한 성적을 가진, 그렇다고 제대로 놀지도 못하는, 한마디로 어느 학교나 털면 우리 과장님 비듬만큼 많이 나올 법한 그저 그런 고등학생이었다. 마치 탈북자들이 제 3국 영토로 인정되어 법 효력이 발휘되는 타국 대사관에 홍길동처럼 월담하여 들어가듯, 날 2류학생으로 인정한 내 모교에서 난 6교시 땡치자마자 학칙이 미치지 못하는 바깥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홍길동이었다. 하다못해 적어도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는 내 등수는 떨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긴 뭐 등수는 어디까지나 먼저 살아봤다는 뜻의 선생(나에게 ‘님’ 자를 붙일만한 선생들은 정말이지 한 손안에 든다.)들이 하사하신 숫자들에 불과했으므로, 뻥 차버리고 나훈아의 무시로를 흥얼거리면 그만이었지만, 




당췌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 사이에서 나뉘는 부류(소위 잘나가고 못나간다는)만큼은 절대로 비주류에는 발길을 들여보내고 싶지 않았다. 




다들 익히 경험으로 알고들 있겠지만 적어도 그 시절 고등학교에서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리는 방법으로 두서너가지 정도가 있는데 그걸 간략히 설명하자면, 좋게 말해 남자답게, 평범하게 말해 좀 놀아야 했음이었고, 다른 방법으로는 엠씨스퀘어를 쓰는 친구들을 조롱하듯 유유히 반 1,2등 안에 드는 것뿐이었다. 

그 둘 다가 아니라면, 나처럼 어깨가 부딪히는 좁은 복도에서 홀로 어깨를 피해주는 인간이 되거나. 




아무튼, 이따위 잡생각에 6교시는 10여분 밖에 남지 않았다는게 어이없을 따름이었다. 







오 이런 젠장할, 난 아직 저 운동장을 건널 마음의 준비가 안됐는데. 무엇보다 오늘 내 하굣길 빈자리를 채워 줄 친구를 아직 섭외 못했는데. 이런 젠장할, 이제 빨리 아는 놈 하나라도 잡아 저 교문까지라도 같이 가 줄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이런 망할. 아니면 또 휴대전화를 들고 문자를 보내는 척, 전화를 받으며 바쁜 척, 도망쳐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머리에 일자, 정말이지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저러나 이러나 마나 시간은 갔고 스피커는 딩동댕동인지 딩댕동인지 동그랑땡인지 21세기 감각에 어울리지 않게 16화음으로 울려댔고 그 와중에 머리 속에서 허참 선생님은 남성팀 대 여성팀 몇 대 몇을 외쳐댔고 옆에서 송해선생님은 전국을 외쳐서 나도 모르게 허둥지둥 노래자랑을 외쳤고, 옆에서 책가방은 책 좀 그만 담으라고 같이 외쳤고, 언제 교실로 들어왔는지 21세기는커녕 20세기와도 어울리지 않는 안경과 헤어스타일을 하고 19세기까지도 먼저 살아본 듯한 담임은 전날부터 마음속에 담아둔 듯한 라임으로 프리스타일 잔소리 랩핑 종례를 시작했고, 리스너들은 리듬에 몸을 맡기고 인상을 찡그려 가며 플로우를 타고 있었다. 곧 MC담임은 랩 소재가 다 떨어졌는지 지쳐보였고, 이마에 ‘1’을 새긴 리스너대표는 눈치껏 일어나 그의 랩에 경의를 표한 다음, 모두들 안녕히 계시라는 상투어로 화답하고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그러니까 지금, 꼭, 마치, 내 정신세계는, 




한마디로 나조차도 이해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내 덜 떨어진 걸음걸이로 (그렇다고 내가 무슨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운동장을 혼자서 지나오면, 내 자존심은 욕 한마디 먹지 않고도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피폐해져 있었고, 그렇게 반신불수 교문을 나와 용감하게 교문 앞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남자답게 놀아주시는 그들 앞을 지나 갈 때쯤이면 내 자존심은 본야스키에게 하이킥을 당한 듯 K.O패 당한 뒤, 정신을 잃고 축 늘어져 있었다. 하교를 하느니, 차라리 부모님 앞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편이 쉬웠다면 쉬웠다고나 할까. 




마치 운동장에 한 걸음 나서서 모래를 ‘사박’, 밟는 순간, 트루먼 쇼의 트루먼이 된 마냥 모든 사람이 다 날 지켜보는 것 같은, 벌거벗겨져 다들 내 나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어서 부끄러워져, 얼굴을 가릴지 중요한 부분을 가릴지 정하지도 못한 채 교문을 미친 듯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늘상 든다는 거였다. 야 쟤 좀 봐, 쟤 왜 혼자 가냐? 그러게 불쌍하다. 쟤 왜 저러고 가냐? 하하. 어딘가 찐따 같지 않냐? 하하하. 원래 이상하잖아. 이 따위 환청들이(실제로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머리 좌우를 왕왕 거리며 날고,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권상우 아버지가 외치듯, 이도 저도 아닌 이 잉여인간 같은 놈! 이란 호통이 또 머리 상하를 왕왕 거리고, 덕분에 내 머리는 상하좌우로 왕왕왕왕거려 미칠 것만 같고, 뭐 그렇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였던가. 사실 뭐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의 머릿속은 같은 생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문만 벗어난다면 어차피 뿔뿔이 흩어져 자신의 집을 찾아 종적을 감춰버리지만, 모두들 교문을 향해, 같은 방향을 향해 가는 그 순간만은 남들에게 혼자인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지 않을까. 교문으로 모여들어 너와 나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면 좁혀질수록, 내 옆 빈자리는 상대방 눈에 더 크게 띄일 테고, 그럼 난 마치 빨간색 저그가 뉴클리어 조준을 당해서 조준점을 찾을 수 없듯, 눈길 둘 곳을 찾을 수가 없을 테고 뭐 그럴텐데.이런 빌어먹을. 




솔직히 모두들 나랑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었다. 그래서 수업종이 땡땡땡 치면 교문까지만이라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에 홀로여서 외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 그렇게 서성거리며 친구를 찾는게 아니었을까? 사실 뭐 교문만 벗어난다면 이 젊음이 멋이라고, 뭘 해도, 하다못해 침을 흘려도 멋져 보일 나이란 건 스스로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한창 좋을 나이인 이팔청춘 젊음을 무기로 다닌다 해도 과언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모두 다 같은 또래라 이 따위 젊음 정도로는 변별력이 없는 이 교내에서, 서로의 시선을 교환하는 장소인 교문을 통과하기 전까지가 모두에게 곤욕인건 사실이었으니까. 다 나처럼 사람이라 외로움은 느끼지 않나? 사실 뭐 외로워서 친구를 찾는다는 것도 있겠지만 진실은 자신이 주류로부터 잠시라도 속해 있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친구라고 부르는 집단권력에 모여들게 했던 건 아닌가? 그런건가? 그런거 아닌가? 아닌가? 아님 말구. 




그렇게 10대말의 혈기왕성한 고등학교 남학생들이 우글우글 모여서 교문을 나가 교문 앞에 진을 치고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며,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우쭐함을 느끼는 건, 외로움을 넘어서 집단을 만들고 그것이 힘이 되어 버리게끔 하는, 야생과 다를 게 없는 모습을 한껏 표출하는 일종의 영역표시와 같은 의식이니까, 저런 본능에만 충실한 금수와 같은 무리들이랑 어울리나 마나 뭐 허탈함 밖에 더 남겠어 하는, 나무 위에 걸린 포도를 신포도라고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는 마음 속 여우 한 마리가 운동장을 ‘사박’ 하고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오 이런 젠장. 이렇게 이런 식으로 백날 불평불만 해봤자 득 될 건 하나도 없는데. 매일 꿈 속에서나 어깨를 피해주지 않고 싸움을 걸어 흠씬 두들겨 패주는 것이나 상상하고 앉아 있어봤자 정신건강에 이로울 리 없는데. 날 받아 주지 않은 그들에게 화가 난 건지, 사뿐히 비켜 준 내 어깨에 화가 난 건지 아무튼 오늘도 운동장이 ‘사박’ 하고 밟히는 그 순간이 다시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또 애J은 휴대전화 액정화면만 쳐다보며 나가야 겠구만. 망할 놈의 세상. 







그때였다. 어제 막 상투를 자른 19세기 담임이 뉴클리어를 조준한 뒤 폭파시키듯, 빨간 분필이 그 기울기를 구하고 싶을 만큼 자로 잰 듯한 직선을 그리며 내 이마에 꽂힌 건. 













야 이 자식아! 너 교무실로 따라오란 소리 못 들었어? 이 자식이..일단 너 교무실로 따라와! 하는 꼬라지 하곤..자식이 말야.. 













아아.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내 자존심은 1시간 뒤 무사히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내가 불려가고 10분 뒤에 불려오신 어머니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