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몇년 전 제가 썼던 글입니다. 사실 어느 학부 강의 시간에 냈던 과제물인데, 옮겨 볼 기회가 되어 한번 올려봅니다. 당시, 사범대생으로서 '좋은 선생님과 가장 소중한 교육은 무엇일까' 나름대로 고민하며 써 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
  이제 나의 대학 생활도 마지막 한 학기만 남겨놓게 되었다. 늘 그랬듯이 숨 가쁘게 몰아친 한 학기를 마치고, 나는 방정리를 시작했다. 그러다 시선이 어느 곳에 오래 머물렀다. 저쪽 한 구석에는 한때 내 사랑을 듬뿍 받았던 음악 CD들이 어두컴컴한 빛만을 가끔씩 내뿜으며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분명 3년도 훌쩍 넘은 것 같다, 한때 나와 허물없이 뒹굴었던 친구들에게 다소 어색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별안간 그들과 내 자신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정말 그랬다, 별안간 울렁하는 감정이 내 목을 타고 가파르게 올랐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나를 몇 시간 동안 깊은 감회 속에 빠져들게 했다. 벌써 어떤 부분은 기억 바깥으로 아련해져버린, 그런 세월의 흐름이 던져주는 낯선 서글픔들이, 고등학교와 재수 시절, 또 누구 못지않게 당당했던 대학 신입생 시절들에 대한 회상과 함께 밀려왔다. 가장 내 스스로 자신에 넘쳐있을 때 음악은 항상 가장 친한 친구들이었고, 때론 오아시스 그 자체가 되어주었다. 강렬한 Rock의 열정, 어깨가 들썩거리는 Funk, 눈을 감고 있으면 가끔 눈물이 오르는 Blues, 특히 나는 사물놀이와 Jazz의 짜릿한 만남의 場을 잊을 수 없다. 정말 행복했다고 자부한 그런 시절이 내게 있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나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나는 그들과 '순수한' 마음으로 대하는 법을 조금씩 잊어갔던 것 같다. 정확히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더 문제인 것은 그와 함께 내 커다란 꿈들 역시 점차 이지러져 갔던 것이 아닌가 하는 깊은 아쉬움이다. 이럴 때 슬프게도 <김수영 산문집>에서 읽었던 타골의 ‘장난감’이란 시가 떠오른다. ‘아이야, 너는 땅바닥에 앉아서 정말 행복스럽구나. 아침나절을 줄곧 나무때기를 가지고 놀면서! 아이야, 나는 나무때기와 진흙에 열중하는 법을 잊어버렸단다.’

  나는 이번 기회를 통해 그들과 다시 대화할 수 있게 되었고,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져 있음을 좀더 투명하게 자각할 수 있었다. 특히 한 친구의 음성을 다시 듣게 되었을 때, 마침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곡의 제목은 ‘세계의 문 - 유년의 끝’ (신해철이 이끌었던 '넥스트'의 곡)이었고, 그 중에서도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주었던 구절은 이러했다.

   “이제 타협과 길들여짐에 대한 약속을 통행세로 내고 나는 ‘세계의 문’을 지나왔다.”

  과연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나는 무사히 세계의 문을 통과한 것인가 혹은 통과하는 중에 있는가. 아니면 아직 그 문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을 지키고 있는가. 사실 진부할 수도 있는 이 얘기가 지금 이 시점에서 이토록 큰 물결을 내게 던져주는 것은 왜일까. 그만큼 내가 이런 심정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사회에서 ‘타협’이란 말은 맥락에 따라선 가장 온건하고 민주적인 단어일 수 있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보면 한편 가장 치욕적이고 반민주적인 단어이기도 하다. 이 점이 내 등골을 서늘하게 한다. 

  갈수록 세계의 문은 위풍당당한 위용을 자랑하며 굳건해 지며, 한때 서슬 퍼랬던 삼손의 머리카락은 썩둑썩둑 잘려 나간다. 너도나도 자본주의 사회는 정말 참혹한 상황으로 흘러가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난 그동안 어쩔 수 없이 세계의 문으로 들어가는 통행세를 꼬박꼬박 잘 납부하고, 그 영수증 또한 잊지 않는 철저한 타협자가 된 것 같아 가끔 씁쓸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아직은 내게 힘이 충분하다. 난 초심으로 돌아갈 맑은 두 눈을 잃지 않았다. 다시 부드러운 두 눈빛으로 내 유년을 회복할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일평생을 공소시효로 하는, 내가 나에게 거는 가장 크고 무거운 약속으로 남을 것이다. 

  이제 나는 사범대 학생으로서 졸업을 앞두고 있고, 일련의 수순처럼 진로라는 화두를 붙잡고 깊이 고심하고 있다. 교사로서의 신성한 길과, 학자의 길로 향하는 긴 여정을 놓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두 가지 길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분명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솔직히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내 주변의 친구들처럼 오랫동안 깊이 고민해 보지 않았다. 그 점이 늘 미안하고, 부끄럽다. 그리고 때로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학생을 가르치는 일 중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내 나름의 뜻을 가지고 있다. 사실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다. 얼마 전 방 정리를 하다 우연히 만나게 된 옛 친구들의 다정한 목소리들, 또한 ‘세계의 문’에 그 비밀 한 자락이 있는 게 아닐까.

  문제는 ‘마음’이다. ‘마음’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아니다. ‘마음’을 가르쳐 준다는 것은 거짓이고, 다만 ‘느끼게’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마음’으로 다른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교육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마음’은 결코 쉽게 얻어지지 않을 것이다. ‘세계의 문’을 아무런 양심의 저항 없이, 고등고시 패스하듯, 육상선수 허들하듯, 훌쩍 소화해 낸 사람에게 남의 ‘마음’은 그렇게 쉽게 흔들려 주지 않는다. 나는 지금껏 내 마음을 정말 세차게 흔들어 준 ‘선생님’을 안타깝게도 만나지 못했다. 

  내 마음을 정작 떨리도록 흔들어 준 것은 찰리 채플린의 몇몇 영화들, 특히 ‘독재자’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었고, 만년의 아인슈타인이 어린애처럼 웃었던 사진 한 장이었고, 앞서 말한 여러 음악친구들이었고, 조동일 교수님의 바로 선 학문이었다. 

  나는 그 소중한 만남들을 심장 속, 뼈 속에 깊이 간직하고 영원히 내 삶의 원천으로 삼고 있다. 이렇게 궁극적으로 교육은 다른 사람의 근본적 삶을 이루는 핵심영역을 파고드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독단적인 진리로 가장하여 한 사람을 세뇌하는 것 혹은 조종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자기 삶 스스로를 끊임없이 냉철하게 점검하며, 세상과 어려운 힘겨루기를 할 수 있는 삶의 열정, 그 힘을 제공해 주는 것을 말하며, 그것은 잊을 수 없는 ‘감동’을 동반해야만 한다. 그래서 그 학생들이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나무때기, 진흙’과 놀았던 소중한 기억을 잊지 않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