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자유의 역사』, 존B 베리 
 병장 진규언 04-26 10:44 | HIT : 245 



 흔히 생각은 자유라고 여겨진다. 뇌속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일들은 오롯하게 자신만의 자유로운 소유물이며, 권한과 책임을 갖는 것은 온전히 자신뿐이라고 말이다. 그것을 제약하는 것은 오로지 경험의 제약과, 상상력의 한계라고 여겨진다.

 대한민국의 헌법에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 즉 기본적인 인권을 이야기할때에 '신체의 자유',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등 온갖 자유를 보장한다. 그러나 유독 '사상의 자유'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비슷하게나마 대한민국 헌법 제 19조에는 양심의 자유가 게시되어 있고, 제 20조에는 종교의 자유가 기재되어 있다. 반면 당신들의 대한민국 헌법 제 37조 2항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율로 제한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애초에 사상적 자유는 주어지지 않은 상태내에서 모든 것을(사상을 포함한) '제한할 수 있다'라는 법안의 폭력성이며, 자유와 권리의 본질을 망각한채 그 침해 가능성만을 열어두고 있는 당신들의 헌법의 모순적 태도이다. 

 사상의 자유는 자연적인 권리가 아니다. 인류가 수천년을 배회하는 가운데 피를 통한 투쟁으로써 겨우 얻어낸(그러나 온전히 얻어졌다고 착각할 수 있는) 부산물이다. 사상의 자유가 천부인권이라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역사를 모르는 무지몽매한 泳汰隔킬? 현실에서 지나치게 이상적인 면만을 취하는 편식가임에 틀림없다. 이를 역사적으로 고찰해보고자 한다. 역사를 아는 것은, 과거 수천년전의 지식 또는 경험들이 통시성을 지님으로써 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것을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혹은 과거의 시행착오들을 (현대를 포함하여) 가까운 미래의 누군가는 겪지 않게 하기 위함일 수도 있다.


 자유로운 이성의 시대
 그리스와 로마시대는 서양역사의 근원이며 지금까지도 세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서방세계의 물질적 사상적 토대이다. 그 시기를 구성했던 구성원들의 업적은 실로 막대하다. 문화와 예술, 건축, 음악, 기하학, 수학, 수사학, 물리학, 천문학 등 현대까지도 영향을 받지 않는 학문 체계를 찾기 힘들 정도이다. 그러나 그들의 근본적이고 궁구한 업적은 바로 '사상과 토론의 자유'를 무한히 보장하였던 시대 분위기 그 자체에 있다고 본다. 소크라테스의 수제자 플라톤이 그의 대표작 <국가론>에서 자유를 풀어가는 방식을 '대화'를 통해 구현한다. 여기에서 보여준 것과 마찬가지로 사상의 자유는 무한한 대화와 토론을 통해 보장되었다. 문제제기-반론-재반론-재재반론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들속에서 생각의 폭은 확장되었고, 앎의 끝을 향하려는 학자들의 노력은 제한없이 계속되었다.

 이를 보장하였던 시대적, 정치적 배경에는 '신정분리'가 있다. 보다 이전의 정치 형태나, 동양의 고시대에서 보여지는 종교와 정치적 결합이 그리스-로마시대에는 엄격하지 않더라도 배격되었다.(혹은 이것이 추구되었다.) 신정분리가 갖는 함의는 종교적 이름으로 사상의 강요를 저지르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신전의 사제는 엄격하게(때론 느슨하게) 정치와 분리되어 생각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었고, 그것이 현실정치에서 정책으로 구현되는 것은 먼 일이었다. 그리스인에게는 성서가 없었다고 한다. 다만 문자로 전해지는 일련의 종교적 제의등은 제사장 계급의 전유물이었으며, 일반 대중에게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등은 신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의미상의 모호성 때문에 공격을 받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소크라테스가 사상의 자유를 침해 받아, 생각을 강요당하고 억압당한 전례를 들어 그리스로마시대가 정신의 자유를 온전히 보장하지 못한 시기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초년생일무렵과 플라톤 등의 제자를 키워낼 무렵에 토론과 대화가 활발했던 시기를 보면, 말년에 국가에게 박해 받았던 이유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저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는 (정권의 교체나 정치 노선의 변화 등과 같은)단순히 정치적인 희생물이었으며, 정치적인 이유때문에 처형당했다고 말이다. 죽는 순간까지 모종의 사상적 강요는 보여지지 않는 정황을 볼때에 이 이야기는 일견 타당하다. 

 로마의 마키아벨리는 그의 대표적 저서 <군주론>에서 보여주듯이, 치국책으로서의 종교를 강조한다. 그는 종교가 통치에 필수적이며, 통치자는 종교가 거짓임을 알면서도 종교를 지지할 의무가 있다고 가르쳤다. 그 이유는 종교가 가지는 도덕적 내지는 윤리적 가치가 일반 대중에게 전이되면 보다 효율적인 국가 운영이 가능해 지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국가를 향한 충성심은 곧 신을 향한 믿음으로 간주되며,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종교적인 제약이나 양심의 가책없이) 전쟁등을 통해 국가의 팽창을 이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듯, 그리스로마시기는 종교적 치우침이나 사상의 강요보다는 무한한 토론과 대화의 자유가 주어진 상태내에서 국가를 위한 치국책으로 종교를 이용하거나, 종교인을 이용하는 비교적 자유로운 이성의 시대였다


 구속된 이성 중세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 공인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시대는 잠시 역사의 뒷켠으로 물러나게 된다. 밀라노 칙령을 통해서, 기독교는 국교로 인정받게 되며 엄격하게(혹은 느슨하게) 보장되었던 신정분리의 원칙은 깨지게 된다. 종교재판, 마녀사냥 등 기독교의 불관용으로 보여지는 역사적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교황(기독교)의 권위은 카노사의 굴욕을 계기로 팽창하게 되고, (수백년이 지난 페르시아 전쟁의 복수라고 여겨지기도 하는) 십자군 원정을 통해 절정에 다다른다. 교황이 인정하지 않는 로마황제는 있을수도 없는 일이었으며, 교황의 인정은 곧 세계를 다스릴 권한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종교와 정치는 밀접하게 관계를 맺게 된다. 이 시기는 문학과 예술도 숨을 죽인 까닭에 암흑기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자유로운 토론과 대화가 새로운 사상과 문물을 만들어 내는 씨앗임을 감안하면, 종교적 가치에 매몰된 개인들이 전부였다는 점에서 중세시기의 역사적 퇴보를 발견할 수 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인문주의의 참 뜻은, 예술과 문화의 새로운 전환이 전부가 아니었다. 물론, 이탈리아의 북부에서 시작되었다고 다수를 통해 전해지는 르네상스 운동이 건축사, 예술사, 문화사 전반에 끼친 영향은 과거의 어떤 시기를 돌아보아도 가장 큰 가치를 지닐 것이다. 그러나, 주목해야할 점은 그것을 보장했던 것은 '개인주의'를 통한 개개인의 창조성의 발현이었다. 과거로 돌아가자. 라는 기치의 과거는 그리스로마 시기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의미하며, 이 사상의 자유를 (다시)획득함으로써 개인의 삶의 질 고취를 이룩하고자 했던 것이다. 종교개혁은 그동안 오해되고 있었다. 루터파, 칼뱅파등 '신'기독교주의자들이 주장하였던 것은 진정한 의미의 종교적 자유 보장이 아니었다. 당시 로마카톨릭의 권위에 대항하여 나온 것이 새로운 종교들이었는데, 로마에 의하여 핍박받았던 시기에는 '무한한 종교적 자유'라는 깃발을 높이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기독교'의 범위 내에서만 자유를 허락하였고, 타 종교들에 대하여는 이단이라는 칭호를 서슴없이 부여하기에 이른다. 이 조차도 본인들이 자유를 보장받은 이후에는 다른 모든 종교에 대하여 불관용함을 만천하에 드러내 보이며 교세를 확장해 나간다. 종교개혁은 '종교적 자유'의 보장이라는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새로운 종교적 억압의 수단이었다는 점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자유를 강조하다 자유를 얻고 난 뒤에 (타인의 모든)자유를 축출해내려는 노력들은 결코 합리화 될 수 없다. 

 하지만 본의아니게 종교개혁자들의 노력은 자유의 대의에 기여하였다. 이것은 면죄부 판매 반대, 반박문 등을 통해 기존 기독교의 권위를 흔든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철옹성같았고 빈틈없이 자행되었던 교회의 폭력에 항거하는 모습을 모임으로써 기존의 권위가 흔들릴 '수 있다' 라는 것을 보여주었고, 이것은 이들의 종교가 새로운 권위를 갖게 되더라도 언제든지 붕괴될 수 있다는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해내었다. 모든 권위는 파괴되고 짓밟힐 수 있다는 것을 공개한 사건이다.

 합리주의의 성장과 지리적인 발견
17~19 세기, 3세기에 걸쳐 역사에서 합리주의를 표방한 이성이 전면적으로 등장한다. 과학적 발견과 발전은 성서의 권위를 무참히 흔들었고,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압력등은 구약에서 보여지는 잔혹함과, 구신약에 걸쳐 고르게 나타나는 비 과학성을 비판하기에 이르른다. 종교(대표적으로 기독교)가 국가통치에 있어서 일반 대중들의 덕의 실천에 필수 불가결한 존재임을 알았던 위정자들은 이 조류를 막아보기에 애쓰지만 결국 무위로 돌아간다. 결정적인 사건은, '역사비평'과 '지리상의 발견'이었다. 성서에 역사적인 연결고리가 누락되어 있음을 발견한 것이나, 바스코 다 가마, 콜럼버스 등이 이룩한 지리상의 발견은 기존 교회의 권위를 내동댕이 치기에 충분하였고, 그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행해지던 사상적 강요는 급격한 위축을 경험하게 된다.


 저자는 이렇듯, 비교적 자유로왔던(그렇게 여겨지는) 그리스로마시대에 비하여 서양의 중세와 근대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합리화되었던 종교적 폭력을 비판한다. 현재 서양이 누리고 있는 사상의 자유는 기본적으로 종교적 강요를 뿌리침에서 비롯되었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종교를 벗어나서는 어떠한 논의도 불가능했던 시기에 사상의 자유=종교적 폭력으로부터의 탈피 라는 등식이 성립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부 불가지론자들의 주장과 같이 신학은 이성밖의 행위이며 상상속의 체계에 불가능하다는 이론 등은 기존의 권위를 근간부터 흔들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종교vs자유주의 라는 이분법적인 논리가 일면으로 설득력을 지닐 수 있는 가능성은 여기에 있다.

 생각해볼 점
 당신들의 대한민국 국가안보에 관한 음핵적인 법률에 대해서도 계속 논의해 보아야 한다. 자극에 민감한 부분이라 이곳에서 충분히 건드리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문제제기는 언제 어디서든 계속되어야 하며, 가능한 범위내에서나마 생각을 나눠보는 것이 적절하다. 고 믿고 싶다. 어떠한 통치방법은 그 시기에는 최선일 수 있다.(이라고 믿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현대에까지 최선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일전에 나들이 길에 택시를 탄 적이 있다. 기사아저씨는 70년대를 주름잡았던 박하스 님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양한다. 그러나 아저씨는 몰랐을까. 찬양,고무,선동의 죄라는 것이 이 법률의 핵심적인 처벌 사유였음을. 고발해야 할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반대 논리를 머리속에 탑재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지나치게 소모적일까 두려웠고 이미 계층적으로 분화된 이상 지극히 온당한 생각을 나누는 것이 가능해질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혹은 모른다. 아저씨는 내가 박하스님과 그 추종자들의 신분적 뿌리와 같은 복장을 갖추고 있었으니, '같은 편'이라고 생각을 했을지는. 그러거나 말거나 진정한 사상의 자유는 이것의 논의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이상이자 바람이지만 체제의 전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만큼 강인하고 건전한 사람들이 많다고도 믿는다. 찬양,고무,선동에 쉽사리 이끌려 자신의 신념을 홀랑 태워버리고 북극 툰드라로 향할 사람은 많지 않다고도 믿는다. 이제서야 드는 생각은, 나에게 찬양,고무,선동의 행위를 했던 이 택시운전사 아저씨를 고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교육시장에서의 권위주의도 심각한 문제이다. 얼마만큼 배운 알량한 지식인지는 잘 모르나, 가방끈이 학생들보다 조금 길다고 학생의 '신체적', '사상적'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현 교육 체계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나, 내가 학교를 다닐때는 그러했다. 두발 자율화 '추진'은 학생회장 입후보자의 단골 공약이었으며, 심지어 고속도로까지 경험했다는 점에서 신체적 자유까지 심각하게 타격을 입었음을 보여준다. 요즈음이야 두발자율화다, 교복자율화다 말이 많은걸 보면 오래살고 볼일이며 세상 참 좋아졌다. 근데 아직도 나는 모르겠다. 두발의 상태와 공부의 효율성이 어떠한 상관관계를 지니는지는. 박경민(가칭)이라는 내 친구는 일종의 지위를 이용하여 머리를 한껏 길렀는데, 이 녀석은 이쁨을 받았으며 결국 샤대에 입학하고 만다. 더 두고볼일이다. 

 신체적 자유는 이쯤해두고 사상의 자유는 더 심각하다. 수해 전 한 고등학생이 학교의 종교행사에 불참하겠다는 1인 시위를 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2004년에 그랬던걸 보면 3년이나 지났는데, 지금에야 모를일이지만 당시에 진심을 담아 박수를 보냈다. 서양에서야 수백년전에 논란이 시작된 사항을 가지고 왜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이제서야 시작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기독교와 다르게 이 땅에서는 대중적인 종교가 없었으니 종교적 권위에 대한 투쟁이 싹틀 수 없는 상황이었다니 그렇다 치자. 잠시 이야기가 새나갔지만, 그도 결국은 샤대에 입학했다고 하는데 그것도 잘 모를일이다. 경험을 되살려 보면, 생님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이합집단이 있었다. 교장단들이 주축인 세력과 평교사들이 주축인 세력들. 수업시간마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강요받느라 내 머리속은 바리에떼해 졌다. 다행이다. 양측의 이야기를 함께 들을 수 있는 토양에서 자라나서. 이 토양이 아니었다면 퍽이나 달라졌을 것이다. 

 자유를 표방하는 심각한 극보수주의자이다. 어찌보면 요새는 체제의 유지와 번영을 위하여 폭력을 묵인하고 암묵적으로 조장하고 방조하고, 심지어 솔선수범하여 폭력을 행하는 한마리의 짐승이다. 학벌사회의 폐해를 잘 알면서도 일정부분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것이 비상식적인 일임은 알고, 상식적인것이 상식으로 통하는 사회를 꿈꾸고자 한다. 꿈조차 꿀 수 없다면 그 어찌 슬픈 일인가. 어떤 갸륵한 고등학생의 책 제목이 가난하다고 꿈조차 꿀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의 비슷한 어떤 것이었다. 마찬가지이다. 억압받는다고 하여, 사상의 자유라는 꿈조차 꿀 수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과의 비 합치성 때문에라도 더 꿈꿀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우월감이라도 갖지 아니한다면 힘들지도 모르니..


... 라고 저자가 말한다. 내 생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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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병 임승관 
 저는 과연 지금 우리나라를 비롯한 이 시대가 진정한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의문이 듭니다. 이것이 신체의 자유가 됐든 사상의 자유가 됐든 과연 아무런 제약없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지.... 그 제약이 그 사람이 원해서 만들어진 제약이든 그렇지 않은 제약이든 그것에 의해 자유가 어느정도씩은 억압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04-26   

 병장 이건룡 
 좀 오버 하겠습니다. 

 삐딱하게 들릴시겠지만 폭력에 희생되어진 자유, 이러한 진실의 발굴현장 속에 (총체적으로 조망되어진)종교의 개입이라는 발상은 버라이어티한 다빈치 코드적인 종교의 결의(음모론) 수준 같습니다. 단독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기존의 권위를 근간부터 흔들 수 있는 가능성'수준에서의 자유는 '구명'될 수는 있지만 다른 전복적인 '구원'으로의 가능성까지는 나아갈 여력이 없어 보입니다(애석케도 여기까지가 제가 던지는 물음이자 벽입니다). 자유만큼 진실 되게끔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 이 없지만 고립된 발상과 일정한 책임의 부재는 부조리한 지점으로 내몰리게 합니다. 타인의 자유의 연동과 결별하는 소유적인 의미로. 

"나 자신의 신체의 향유 말고는 그 어떤 향유도 내게 주어지지 않으며 혹은 주어질 수 없으리라. 이는 직접적으로 분명한 것이 아니며 그렇지 않을까? 추정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좋은 향유, 그래서 자신의 유일한 자산인 이 향유 둘레로 인권이라 불리는 소위 보편적 법의 보호막을 칩니다. 아무도 내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방식 데로 내 신체를 사용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 이지요 그 제한의 결과는 모두에게 향유가 고갈된다는 것입니다." 

 라캉의 위의 글은 자유의 한 역설적인 지점을 가리킵니다. 타당할지언정 엄밀히 말해서 과도하고 의미화 될 수 없는(동기가 어긋나는) 자유의 돌일 킬 수 없는 지경에 이름을, 소화하기 거북한 것에 대해 말합니다. 이는 양심의 한계와 어떻게 '양심'이 커 가야할 필요를 말해 줍니다. 방법이라기 보다는 방법을 공부하는 차원(물음제기라는)에서 예전에 노트에 적어놓은 바를 토대로 인용/사유를 구성해 봅니다. 


 지젝은 <신체없는 기관>에서 자유란 '인지 된, 알려진 필연성'에 불구한 것이 아니라 인정된/떠맡은 필연성, 이 인정을 통해 구성되는/실현되는 필연성이다 말합니다. 즉 필연으로 주어지는/받아들이는 것으로 밝힌 바 있습니다. 다시말해 가만히 기존의 권위를 근간부터 흔들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 남겨두지 않습니다. 

 그에 따르면 "자유는 내가 결코 전적으로 환경의 희생양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제나 나는 어떤 환경이 나를 결정하는 최소한 자유를 이용한다." 라 밝힌 이후 전복적으로 자유는 소급적으로 주어진다는 물음까지 나아갑니다. "자유는 본래 소급적이다. 가장 본질적인 차원에서 자유는 마무래도 아무데도 아닌 곳으로부터 새로운 인과적 연계를 시작하는 자유행위에 불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필연성들의 어떠한 연계/연쇄가 아닌 나를 결정할 것인지를 승인하는 소급적 단위의 더 맡겨진 필연성이다." 

 이는 원인에 대한 결과의 과잉에 대한 이러한 언명이 자유의 가능성에 관해 이러한 언명을 재전유할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단지 다양한 물체들의 물질적 현실에 대한 비물질적 과잉이 있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과잉이 물체들 자체의 층위에 내속적이라는 데에 있습니다(*이전과 이후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지층적 순서로 포개어 놓은 거대한 공존의 시간으로써). 

 그에 반해 총체적으로 조망되어진 지식은 인식론적으로 주체성은 환영이거나, 아니면 현실은 그 자체로 비 자체입니다. 이러한 자유의 형상에 따라 부상되어진 가늠적 직관화를 떠맡아야 할 윤리적 필연성 따위는 없습니다. 과학의 논리를 끝까지 따라갔을 때 출현하게 될 새로운 자유의 형상에 불구 할 뿐. 원인에 대한 결과의 과잉은 '결과가 소급적으로 자신의 원인임의 원인임을 의미'합니다. 


"지층적인 원환성 때문에 나는 나의 환경과 관계 맺는 방식에 있어서 그 환경에 의해 수동적으로 영향 받는 '영-층위'에 결코 도달하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그 대신 나는 환경과 관계하면서 언제나 -이미 나 자신과 관계하기 때문이다. 즉 언제나 이미 나는 "자유"의 최소치를 가지고서 내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방식을 감성적 지각들의 가장 기본적 층위에 이르기까지 미리 결정하기 때문이다." 

p.s., 면제부 판매는 교황의 권한으로 발행 했다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아마 카톨릭과 관련을 맺는 거라 생각됩니다.. '기존의 기독교'가 카톨릭이면 문제가 없겠지만요. 04-27   

 병장 김지민 
 이 글에서 정보전달 보다 규언님의 목소리가 들렸으면 싶지만, 그러기에는 소재가 너무 부적절(?)하다 싶기에 아쉬운 마음 접어둡니다 
 충실한 후기 잘 봤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읽으셨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아요 04-27   

 병장 이시인 
 니체, 듀크하임(Durkhime), 푸코(Foucault) 등의 사회과학자들은 하나 같이 주장하지요. 인간들은 사회의 속박으로 인하여 상상, 행동, 또한 모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유는 주어져 있지 않다고. 지금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는 사회에 의해 결정되어 있고 인생의 모든 결정들은 우리 주위의 환경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고. 
 그렇다면 과연 자유라는 것은 무었일까요? 정글북 아시죠? 정글에서 태어난 아이가 과연 인간적 사회의 속박에서 벗어나 있기에 자유라는 것을 만끽할까요?(웃음) 
 대학시절 때 사회과학을 1년동안 공부해 보면서 제 종교, 인생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 자유는 구속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고, 저는 이 벌집과 같은 사회의 속박과 구속에서 제 자유를 찾겠다고. 너무 현실도피적인가요? 
 사상의 자유를 가장 잘 보장해준다는 미국에서도 제 경험상 진정한 자유라는 것은 없답니다. 당연히 현재의 시스템을 개선하고자하는 규언님의 노력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그것이 또 다른 속박을 낳지 않을까요? 04-27   

 병장 진규언 
 건룡님, 답글 프린트 해서 세번 열심히 읽었습니다. 이리저리 생각이 떠도는 수준이라 다시 답글 적을 능력이 없음을 아쉽게 생각합니다. 지적해주신 부분 감사합니다. '기존의 기독교'는 로마카톨릭을 의미합니다. 

 지민님, 정보전달보다는 철저히 아집으로 만들어진 제 목소리이지만.. 보안관님이 피곤해 지실까봐 철저히 객관적인 글이라 칭했습니다. 두께가 두껍지 않았지만(300페이지가량) 일주일도 넘게 걸렸습니다. 천성이 게으른 탓이겠지요. 

 시인님, 옳은 말씀입니다. 벌집안에 갇힌채라야 자유의 실현을 갈구할 터이고 보다 진정한 의미의 그것을 바라겠지요. 그러다 보면 구속안에서 나름대로 목소리를 내면서 자기 위안으로밖에 그칠수도 있겠고, 자가당착의 오류에 빠질 수도 있겠고.. 전 아무리 생각해봐도 벌집을 깨부실 용기는 없을것 같습니다. 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은 애초에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처럼 그 시스템에 단 하나의 균열을 야기시킬 실천력도 없습니다. 시인님 말씀처럼 또 다른 속박을 불러올 수 있으니까요. 인간적 사회의 속박 내에서 제가 아는 범위내에서만이라도 자유를 이야기하고 싶다. 정도가 될것 같아요.. 04-27   

 병장 이승일 
 건룡씨가 지적하신 '자유의 역설' 에, 약간 다른방식으로긴 하지만, 매우 공감합니다. 자유를 위한 자유는 결국 우리에게 아무것도 남겨주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유는 오류의 가능성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자유주의의 공허함은 자유를 목적으로 착각했다는 점으로부터 비롯한다고 생각합니다. 

 존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을 읽어보신다면 이 글과 연계하여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 이 글에서 거론된 '사상의 자유' 는 실제로는 '표현의 자유' 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물론 사상의 존재는 오직 공적인 표현 속에서만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겐 이 둘이 아무런 차이를 갖지 않겠지만요. 그러나 표현에는 여러 층위가 있고, 인쇄 매체나 공공장소를 통한 표현은 그 중 하나일 뿐입니다. 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