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 글쓰기의 자유. 

글은 독서가의 근간이고 우리들의 소통의 기본입니다. 기본적으로 글은 우리의 사유와 생각들에서 비롯되고, 우리의 생각은 자유롭고 경계가 없을 때 가장 극한의 지점을 향해 날아갈 수 있겠지요. 따라서, 개인의 사유에 그 어떠한 제약도 주어져서는 안되는 것이죠. 자유와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모든 수준의 단위 사회들이 최소한 성문으로 사람들의 사유의 자유와 불책임을 표방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사유에 제약이 있으면, 사유는 그 제약을 중심으로 치명적으로 왜곡됩니다. 우리는 옳음을 도출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 자유로운 사고와 사상을 위하여 책을 읽는 것이고, 독서 동아리들의 근간은 결국 바로 우리들의 대화와 사색을 위한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독서 동아리들은, 모든 책모임들은 보다 더 높은 자유와 아름다운 진리와 옳음을 위한 사색들을 위할 수 있을 때에만 빛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유가 제약되어야 할 경우가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타인에게 그 글과 사유로서 폭력을 저지를 수 있는 경우에 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타인을 비방하거나, 타인을 욕하거나, 타인을 수치심에 젖게 만드는 경우가 아닌 이상에는 모든 사유는 자유로워야 합니다. 누군가를 직접 모독하거나 다투는 것이 아닌 이상, 모든 글들은 그 자체로서는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음모나 정략이 담긴 글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음란하거나 모종의 욕망을 위해 에둘러 쓰여진 글들을 쓰지 말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직접적으로, 부정하거나 폭력적인 의사를 드러낸 글이 아니라면 그 글을 쓰는 자체를 막아서는 안됩니다. 모든 규제는 합목적적인 글과 사유의 소통을 가로막고, 우리의 성장을 저해합니다. 

받아들여질 수 없는 글이 있다면, 그것은 토론이나 합의에 의한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 회원들 통념에 의해, 혹은 모든 이들의 지혜를 모아 이뤄진 판단에 의해 음모나 욕망이 내포된 글로 인정될 수 있다면, 그때는 그때에 가서 그 글을 금지해야할 것입니다. 그 글에 대해 반대하거나, 그 글을 부정하는 내용의 또 다른 글을 쓰고, 혹은 각 모임의 문화에 맞는 방법으로 글을 적절히 차단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위기로부터 모든 이들을 차단하려는 그 모든 시도는 결국 실패하거나, 혹은 차단된 구성원들을 허약하게 만듭니다. 우리 스스로 모든 위협에 최대한 꿋꿋이 맞서낼 수 있도록, 모든 위협이나 욕망에 직접 대처하고, 그에 대해 직접적으로 논의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실로 책을 읽는 것만큼의 지혜와 성찰을 얻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장할 것이고, 우리가 구성하는 사회는 그만큼 건강해질 것입니다. 

독서는 바로 그런 이유에서 하는 것입니다. 건강한 민주주의란, 본디 시끄럽고도 지저분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창백한 유리와 싸늘한 철창 안에 갇힌 사파이어같은 찬란함은 우리와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그런 아름다움은 아닐 것입니다. 탁 트인 하늘 아래 비바람 맞아가며 시끄럽게 울부짖는 짐승과 같은 것들이, 그 어떤 목줄과 울타리에 뒤덮이지 않는 더럽고 비루하며 힘겨운 것이 비로소 민주주의일 수 있을 겁니다. 민주주의의 사회 속에서 살기로 한다면 그 어떤 자라도 시끄러움, 그리고 부당한 규제에 합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부당함과 부정의함을 거부해야할테고, 우리는 그러기 위해 독서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해서 그렇습니다. 철저히 무력하고, 철저히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우리들이 그나마 한 줄기 남은 자유 논의의 장마저 제약받고 규제받는 것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대화는 말해지기 위해 존재하고, 그러지 못한다면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직접 거부할 수 없다면, 우회적으로 거부해야할 것이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성실성과 우리 사유의 치밀함으로 그 규제를 벗어나려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우리는 규제 없이 풀린 가운데에서 보다 조밀한, 민주의 자유가 부여하는 선험의 규제 아래에서 더더욱 성실하게 사유할 수 있어야할 것입니다. 우리의 토론에 제한을, 규제를, 제약을 두어서는 안되는 그 모든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P.S. 현실론을 아직 말씀하시는, 마지막 단락의 내용이 이해가 안된 분이 있을지 몰라 부연합니다. 게임이나, 기타 여러가지 주제에 대한 모든 규제는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곳의 분위기를 만들고 보다 성실하고 심도있게 대화를 나눔으로써 그런 규제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제목을 게임으로 달고 있을 뿐, 그 내용에 대해서는 그 모든 성실함과 깊은 사유로서 채워넣음으로서,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냄으로써 우리는 선의의 규제에 우리의 선의로서 자연스레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중에 우리의 글과 주제들을 가리키며 나무라는 그 모든 분들에게, 우리는 그 제목 아래 가로 놓인 진실함을 열며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제를 가로막는 모든 시도는 위험합니다. 시끄러운 가운데서 우리는 진리의 한줄기 빛 그 말단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저는 사회가, 책이, 인간이, 그리고 그 모든 향기를 함께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게임이 정말로 좋습니다. 


P.S.2.  돌아서 갈 수 있는 길을 왜 질러서 가려 합니까. 대화의 폭을 줄일 수 있는 모든 시도는 다시 말하면 규제입니다. 높은 분들과의 대화가 그 자체로 확실한 보증을 담보할 수 있다면 대화해도 좋겠지만, 저는 직접 게임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이 어떤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으리라고 쉽게 생각할 수는 없군요. 대화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낼 수 없다면, 대화해야한다고 말하는 자체가 또 다른 규제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기종씨가 우리의 자율을 거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생각해 보십시오. 차라리, 글에서 말했듯이 우리끼리 적절한 대화와 합의를 통하여 노골적인 게임 광고 (저번에 슈퍼로봇대전 W가 출시되었군요!! 같은 것은 지양해야하겠죠 사실) 들이 아닌 다음에야, 적절한 게임에 대한 분석이나 감상, 다른 장으로 넘어가는 류의 글들을 권장하고 그런 글을 쓰는 분위기를 만든다면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이를테면 지금 올린 유작의 글 같은 경우, 지극히 사회과학적이고 사회학의 방법론에 입각한 글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런 글들이 게임 글이라는 제목을 달고 올라왔다면, 오히려 그 편이 간부분들에게 더 쉽게 어필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지금 대화해야한다거나, 규정에 없는 것이므로 해선 안된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군요. 같은 이치라면, 이를테면 고스트라이터에서는 창작을 본연으로 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잡담도 금지되어야하는 것 아닐까요? 책마을에서 지금까지 오간 대부분의 장문의 글들이 한 책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개개인이 해낸 사유들을 바탕으로 하기에 금지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당연히 반론을 하시겠죠. 맞습니다. 생각을 크게, 넓게 하자는 것입니다. 창작을 위한 모든 행위를 게시판에서 할 수 있고, 그중에 서로를 격려하고 대화를 나누는 잡담이 포함되는 것은 아마 당연한 것일 겁니다.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대화할 수 있고 이는 책 자체를 직접 담보하는 것이 아니어도 된다는 겁니다. 게임을 통해서, 그런 대화나 사유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글들을 써낼 수 있고, 책마을의 게임 글들을 지극히 분석적이고 사유적인 것들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런 글들을 보면서, 너희 왜 게임 얘기나 하냐고 꾸짖을 편협한 사람은 생각외로 많지는 않을 겁니다. 차라리, 연구 주제가 좀 독특하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왜 '높은분'들의 사고를 앞질러 규정하려 합니까? 우리가 먼저 우리의 자율 속에서 최대한 우리의 성실성을 입증한 다음에, 그 다음에 비로소 대화에 나서도 늦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우리의 성실성을 바탕으로 끝까지 그 어떤 비판에 직면하지 않을 가능성도 또한 갖고 있습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