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캐롤, 『거울 나라의 앨리스』 
 
 
거울나라의 앨리스


- 들어가며

동화의 고전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고, 익숙하도록 들어본 이름일 것입니다. 하지만, 작가인 루이스 캐롤은 이 앨리스 이야기를 훨씬 치밀하고도 재밌게 구성하여 앨리스의 속편인 <거울나라의 앨리스>를 지었다는 사실은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등장하는 시작도 끝도 없는 코커스 경주라든지, 헤이허(3월토끼)와의 이상한 점심식사라든지, 스페이드여왕의 황당한 이야기들은 잘 알려져 있지만, 속편에 등장하는 험티덤티나 트위틀디-덤형제의 이야기, 여왕이 되는 앨리스에 대한 이야기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책이 완역된 것도 2001년에 이르러서이니, 그동안 어지간히 판타지나 동화에 관심이 없는 분들이면 원전을 읽어볼 이유도 없고 해서 이 책을 만나볼 기회가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면, 이 책은 한국 독자들이 읽기에 조금은 낯선 정서들이 굉장히 많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자면 그만큼 이 작품에는 유럽인들의 뿌릿속까지 파고들어있는 정서의 핵심을 만나볼 수 있고, 그런 소재들이 어떻게 하나의 이야기속에서 살아 숨쉬는지를 맛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작품으로 다루어질 수 있습니다.

제 친구들은 이미 고등학교때 영어 원전으로 이 책을 읽기를 굉장히 즐겼습니다. 굉장히 쉬운 문장으로 되어있는데다가 어린이를 대상으로 씌여진 작품이기때문에 영어공부하기에 가장 좋은 소설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친구들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읽을까말까를 고민하던 바로 그때 이 책이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저하지 않고 <거울나라의 앨리스>를 사들게 되었습니다.


- 상식, 논리학, 그리고 체스

루이스 캐롤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써내려갈때 일단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무작정 앨리스를 3월토끼 뒤를 따라서 굴속으로 보내면서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앨리스의 이야기는 전혀 질서가 없고, 그렇기때문에 모험담이 될 수 있고, 그러므로해서 유쾌한 넌센스Nonsense의 세계를 경이롭게 그려내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캐롤이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이야기를 짜놓았으며, 커다란 배경 속에서 돌아가는 거울나라의 세상과 앨리스가 여왕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재치있고 일관되게 짜넣으므로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능가하는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는 평범한 열살짜리 꼬마아이 앨리스가 어느날 갑자기 시계를 보며 뛰어가는 3월토끼를 <목격함>으로서 이상한나라Wonderland로 끌려들어갑니다. 에릭 랍킨같은 환상문학평론가들은 이런 경이로움의 <목격>에 의한 주인공의 인식변화를 통하여 세상의 질서가 왜곡되는 바로 그 시점을 "문학속에서의 환상"이라고 정의하며, 앨리스는 이야기 처음부터 이런 완전한 "인식의 전복"(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 갑자기 설정되면서 진행되는 이야기자체가 완전히 뒤죽박죽인 말 그대로 넌센스Nonsense의 세계)으로 시작되어서 무질서하게 뒤죽박죽 이야기가 전개되었다고 말합니다. 종이카드로 되어있는 병사들이나, 담배를 꼬나물고 인생무상을 이야기하는 애벌레나, 달리기를 하는 생쥐들이 무차별적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앨리스의 이야기 처음부터 이렇게 무질서하게 현실 패러다임이 "왜곡"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 앨리스는 "너희들은 한낱 종이조각에 불과해!"라고 외치고 스페이드 여왕의 왕국이 사실은 한낱 종이팩에 불과하다는 현실(리얼리티)을 인식하면서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오고 끝을 맺게 됩니다.

하지만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 이야기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넌센스의 세계를 그려내고는 있지만, 그 넌센스의 세계의 법칙 자체가 굉장히 통일성있고 일관되게 그려집니다. 이야기는 앨리스는 키티와 화이트스노우라는 두마리의 (검은색과 흰색) 고양이를 데리고 놀면서 시작됩니다.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와 전혀 다른 방법으로 거울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앨리스는 줄곧 고양이들과 놀면서 물어봅니다. "키티야, 생각을 해보자. 만약에, 우리가 이 거울속에 들어가 산다고 생각을 해봐.." "키티야, 네가 인간이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보자...."와 같은 질문들을 하면서 고양이들과 놀고 있습니다. 이것은 논리학에서 말하는 "가정"입니다. 논리학에서는 논증을 위해서 명제,논거,추론이라는 세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어야하지만, 그중 가장 먼저 오는 "명제"라는 것은 가정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가정이 논거에 의해서 정당성이 입증된다면 그 다음에는 명제를 바탕으로 추론을 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가정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명제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것이 논거에 의해서 참임을 획득하였을때, 다음에는 추론이 가능하다는 거지요. 
쉽게 다음과 같이 말씀드릴수가 있습니다. "나는 사람이다."는 명제는 가정입니다. 그런데, 이 명제가 지시하는 대상이 "사람"이라면 자신은 스스로 "사람임"을 입증하는 셈이니 논거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나는 사람이다."라고 말한다면, 이 명제는 참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명제를 가지고 생각을 해본다면, 이것 역시 처음에 명제로 상정될 때는 가정이 되지만, <이제껏 죽지 않은 과거의 사람은 없다>라는 논거에 의해서 이 명제의 참이 증명됩니다. (이것은 귀납법이지요.) 그리고 추론이라함은 이 두가지 명제를 바탕으로 "그러므로 나는 언젠가는 죽는다."를 끌어내는 것입니다. 논리적 도출로 새로운 명제를 끌어내는 방식입니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는데,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시작부터 이런 "가정에 의한 명제"로 시작합니다. "내가 ~라면...", "만약 ~라고 해보자"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고양이에게 던지면서 앨리스는 그 명제가 참일때의 상황을 설정해 놓습니다. 그리고 그 가정이 명제로 변하는 순간은 <이상한 나라>와 마찬가지로, 거울이 안개처럼 녹아버리는 경이로운 현상의 목격에서부터입니다. 이때무터 터무니없을것 같은 상황이 "가정"이 아니라 "명제"로 변하게 됩니다. 이것은 현실이 아니라 하나의 <어린이이야기Fairy Tale> 즉 소설안에서의 꾸며진 이야기이기때문에 가능합니다. 이미 전작인 <이상한 나라>에서는 이런 터무니없는 사건에 대한 개연성, 있음직함이 확보되었기때문에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의 작용이 가능한 것이지요. 

"키티야, 만약 우리가 저 거울속에서 산다고 생각해보자. 저들은 항상 반대로 살아야할까? 저 거울 너머의 세계에는 우리처럼 추울까? 불은 어떻게 지펴야할까?"

앨리스는 호기심 속에서 이런 가정들을 끊임없이 생각해보고, 그것이 <명제>로 정당화되는 거울나라에서 여행하는데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즉, <거울의 나라>는 <이상한 나라>처럼 완전히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임이 분명하지만, <이상한 나라>에서는 가질 수 없었던 하나의 <명제>를 획득하고 이야기를 끌어나가며, 그것이 바로 이야기의 핵심이 되버립니다. 그것은 바로 <거울>이라는 양면성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뒤쪽에서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굉장히 논리적 관계를 바탕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끝으로, 체스게임에 대해서 곱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책 서두에서도 나와있지만, 앨리스는 이 거울나라의 폰(기사)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열한수만에 앨리스편의 하얀 말이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수수께끼처럼 묻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푸는 한수 한수의 방법이 바로 이 이야기의 진행과 플롯을 만들어나갑니다. 이것은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문학가들 뿐만이 아니라 논리학자, 물리학자, 수학자들이 이 작품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얽혀있는 복잡다단한 세계상들이 간단하고 심플하게 하나의 재밌는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 모든 건 반대로!

위에서 이 이야기는 하나의 가정이 명제로 정해졌을때 발생되는 추론들에 대해서 잘 보여준다고 지적했습니다. 이것은 거울나라로 들어간 앨리스의 모든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거울은 우리와 뭐든지 반대입니다. 따라서 거울나라에서 통용되는 제1명제는 <모든 상식은 반대가 된다.>입니다. 루이스 캐롤은 이점을 이 작품의 핵심으로 끌어다놓고 작품을 썼습니다. 따라서 이야기는 엄청나게 신기하게 변합니다. 환상문학 평론가이자 신비평가였던 츠베탕 토도로프는 <문학에서의 환상이란 독자가 작품을 읽으면서 작품속 세계의 낯선 환경에 경이감을 느끼고 그 경이에 의해서 현실과의 괴리 사이의 머뭇거림>이라고 지적합니다. 즉, 우리가 환상 이야기나 동화를 읽어나가면서 얻게 되는 경이로움과 재미, 즐거움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생활과 완전히 다른 어떤 이질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캐롤은 이 소설에서 그런 이질감을 <상식과는 반대가 진실인 명제가 된다>로 상정한 것입니다. 따라서 캐롤이 거울나라의 정원에서 언덕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뒷걸음질을 해야하고, 제자리에 서있기 위해서는 미친듯이 뛰어야하고, 앨리스가 목이 말라서 갈증을 풀어달라고 붉은 여왕에게 부탁했을때는 바삭바삭한 비스킷을 주는 것입니다. 모든 상식은 여기서 반대가 되고 그것이 곧 “참”인 명제가 됩니다. 이런 생소한 상황이 하나의 <가정>이 아니라 <참인 명제>가 되므로써 일어나는 신기하고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거울나라 앨리스>의 첫번째 매력입니다.



옛날 이야기가 모두 모였다!

위에서 말씀드린 첫번째 매력은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커다란 핵심이며, 문학이론에서도 중요한 개념으로 언급되는 <내재적 리얼리티>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이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야기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유럽 어린이들에게 굉장히 친근한 동요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사건의 주인공으로 놓고 친근하게 풀어나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작품에는 수많은 동요가 불려지고 있습니다. 영국에는 마더구즈Mother Gooze라는 굉장히 유명한 동요집이 있습니다. 이 동요집에는 수많은 영국 옛날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주인공들이 되는데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사건을 풀어가는데 많은 실마리를 만들어줍니다. 예컨데 저 유명한 험티덤티Humpty Dumpty라는 캐릭터가 대표적입니다.

험티덤티는 사람모양의 거만한 달걀인데, 마더구즈의 노래에 보면 이 달걀은 왕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담벼락 위에서 왕을 기다리다가 떨어져서 깨져버린다는 줄거리입니다. 앨리스는 잡화점에서 양에게 달걀을 하나 사는데, 그 달걀이 갑자기 험티덤티가 되지요. 그리고 앨리스는 험티덤티의 동요를 떠올리고는 그 인물들과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인물들을 번갈아가면서 생각합니다. 트위틀디-트위틀덤과의 이야기도 그렇지요. <사자와 유니콘>이라는 영국 어린이들에게는 매우 친근한 재밌는 마더구즈의 한편을 따와서 또 앨리스가 스스로 케揚 잘라내는 일을 맡으면서 마찬가지로 <거울나라>의 반대로명제를 가지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대목은 이 작품의 백미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거울나라>의 이야기는 캐롤이 얼마나 어린이들을 사랑하고 친근하게 접근하려고 노력했는지 바로 이 부분에서 잘 드러나있습니다. 어린이에게 친근한 인물들을 실제 주인공들로 불러오고 그들에게 재밌는 <거울나라 사건>을 맡기면서 일어나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어린이들을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기에 가장 훌륭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작가였다면 갑돌이갑순이 같은 익숙한 이야기를 자신의 작품으로 끌어다쓰는 시도를 하는것입니다.



체스의 움직임과 앨리스의 모험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는 체스에 기반해서 쓰여진 소설입니다. 그래서 작품 서두에서 체스의 상황을 전제하고 <열한수 만에 앨리스의 팀이 승리하기까지>라는 명제를 달고 있습니다. 거울나라의 모든 상식이 <거꾸로>통용되는것이 첫번째 명제였다면, 이 작품에서 사건을 이끌어나가는 두번째 명제는 바로 이 <체스게임의 명제>입니다. 따라서 이야기의 사건은 이 체스게임의 문제에 대한 대답으로 진행됩니다. 룩Rook인 험티덤티는 왕을 호위하기위해 등장했다가 잡혀서 박살이 나고, 검은 기사가 앨리스를 잡기 위해서 다가왔을 때, 흰 기사가 앨리스를 보호한다고 기사 옆에 나란히 등장하는 것도, 이 이야기에 대한 체스의 상황이 바로 다음 수가 폰의 프로모션(폰이 체스 마지막까지 가면 퀸으로 바뀌는 규칙입니다.)이기 때문에, 그 전에 붉은 말은 앨리스를 잡아야 해서 나이트가 앨리스의 근처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흰 말은 앨리스를 프로모션시켜야하기 때문에, 일부러 한 수를 벌기 위해서 검은 말 옆에 나란히 이동하면서 체크메이트(장기로 치면 장군!)을 하므로써 앨리스를 살려주지요. 가장 마지막에 앨리스가 여왕으로 프로모션했을때도 붉은 여왕이 흰 퀸(앨리스)를 잡으려 바로 옆으로 다가오는것이며, 흰 여왕은 그러한 붉은 여왕을 견제하여 흰 폰을 프로모션 시키기 위해서 마찬가지로 앨리스의 옆에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체스의 규칙에 따라서 진행되는 앨리스의 이야기는 굉장히 치밀하고 규칙적이며, 그러면서도 질서정연합니다.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의 이야기가 그저 무작위적이고 무차별하게 벌어지는 황당한 이야기로 넌센스의 세계를 보여줬다면, <거울 나라>에서는 이런 체스의 규칙을 거대한 질서로 가지고 소설의 이야기 자체를 하나의 체스판처럼 상정하는 흥미로운 결과를 도출합니다. 이 작품을 읽을 때 이 부분은 절대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며, 또한 매우 재밌고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문학어가 가지는 의미들, 앨리스에서 보여지는 해체철학의 의미들.

위의 세가지 이야기는 <이상한 나라>와는 전연 다른 <거울나라>를 읽으므로써 느낄수 있는 앨리스 이야기의 진수를 맛보기에 충분합니다마는, 그것과는 별개로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소재라서 한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철학적인 의미로 아주 중요한 것들을 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나라>에서도 종종 드러나지만, <거울 나라>에서는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의 특징이 바로 언어유희입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설화에서도 등장하듯이 언어유희는 민담이 가지는 본질적인 즐거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 언어유희와 언어놀이(영어로는 라임Rhyme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는 시문학의 중요한 특질을 가지면서 유럽 구전민학의 중요한 특질을 형성합니다. <이상한 나라>에서 등장하는 대표적인 언어유희를 한번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 이야기는 길고도 슬퍼My Tale is long and sad”
“네 꼬리가 길다는건 알겠는데, 왜 슬픈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I can understand your tail is long, but I can’t understand why do you sad”

여기서 생쥐는 이야기가 길고 슬프다는 표현으로 Tale is long and sad를 말했지만, 앨리스는 tale을 tail로 잘못 알아들으면서 “꼬리”에 대한 이야기로 오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해체의 철학자로도 유명한 프랑스의 자크 데리다는 <우리는 모두 언어의 덫에 걸려있다>라는 유명한 문장을 남기면서 차연差蓮에 의한 언어의 의미가 미끄러짐을 지적했습니다. 데리다는 차연을 통하여 하나의 기표(언어)는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 될 수 있으며, 그것은 서양의 역사가 음성중심주의의 구어적 생활에 연계되어 발생하는 오류라고 지적하며 텍스트와 언어위주로 진화한 이성중심주의를 비판하였습니다. 어찌보면 이런 데리다의 해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분야가 바로 이 문학의 언어유희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문학어는 은유어(즉 메타어)이기 때문에 중층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러가지로 해석이 되는 하나의 단어입니다. 음성중심의 언어는 하나의 의미를 전달 할 수 없다는 것도, 우리가 <말하여 지는> 단어는 하나인데, 발음과 스펠링의 문제로 그 하나의 의미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캐롤은 단순히 이런 언어유희를 그저 문학적 즐거움으로 동원하여 작품을 썼지만, 여기서 등장하는 언어의 오해들은 데리다적인 의미를 굉장히 많이 함축하고 있습니다. 

작품 처음에 등장하는 자바워키Jabberwockey라는 서사시가 있습니다. 이것은 가상의 동물은 자바워크Jabawalk에 대한 언어유희입니다. 자바워크와 동음이며 철자가 분명히 다른 재버워키라는 말을 통해서 (자바워키는 ? 쓸데없는, 의미없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한가지 음성어(말)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의미의 해석을 통해서 발생되는 오류를 문학적 즐거움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양과 카누를 저을때도 “Faether”가 가지는 여러가지 음성언어적 의미들 (양은 Faether를 노의 날개의 의미로 쓰고 있고, 앨리스는 깃털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의 오해를 통해서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데리다는 서양철학의 모든 텍스트들은 처음에 구전(소크라테스의 대화집처럼)되다가 나중에 글로 남겨졌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리고 후기구조주의적인 시각으로 하나의 단일 언어에서도 언어적 배경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의미로 오류되어 전달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지금까지의 철학들은 모두 “언어의 덫에 의해서 미끄러진다”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즉, “백조白鳥는 모두 하얗다.”라는 하나의 명제에서 “백조”에 대한 언어에는 다른 문화와 또 다른 문화가 가지는 의미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 명제가 참으로만 성립 될 수 없습니다. 영어로 백조는Swan이지만, 호주에서는 이 Swan중에 검은 종도 있었기 때문에, 이 명제는 유럽사람들의 Swan과 같은 의미가 될 수 없습니다. 언어의 이해의 차이에 의해서 하나의 간단한 문장이 이렇게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기 때문에, 이성중심주의의 철학은 본질적으로 정립될 수 없다고 데리다는 그의 저서 <해체>와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에서 지적합니다. 
한가지 더 예를 들자면, “사과는 불화를 낳는다.”라는 경구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왜 사과가 불화를 가져오는지, 이 문장에 대해서 납을할 수 없을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그리스에서 굉장히 신뢰할만한 명제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면, 그리스 신화에는 저 유명한 <헬레네의 황금사과>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의 분명한 참인 것 같은 명제도 <언어에 의해서> 완전히 하나의 의미는 붕괴되며 여러가지의미로 해체되는 상황으로 나아갑니다. 

데리다는 그리하여 논리어는 하나의 의미를 가질 수 없으며, 다원주의적인 많은 의미를 동시에 내포한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하나의 언어에 여러가지 의미가 포함되는 언어를 언어학적으로 “은유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문학어의 또다른 표현입니다. 많은 철학가들이 데리다의 철학어를 <문학비평어>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문학어는 태생적으로 은유어이며 많은 중층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워즈워드의 명시 <무지개>를 읽고 순수함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고, 어른의 무지함을 비판한다는 사람이 있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의 경외감을 노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미당선생의 <국화 옆에서>가 사십대 누이에 대한 회한을 그린것이라고 찬사를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시는 일제를 찬양하는 시라고 비난 하는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는 이유도 본질적으로 문학어는 하나의 단어에 여러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은유어-문학어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무닙니다.

이런 언어의 오류에 의한 미끄러짐 자체를 하나의 희화된 상황으로 설정하여 이야기의 재미를 끌어내는 캐롤 특유의 문체는 물론 읽는 이에게 해학과 즐거움을 주기에도 부족함이 없지만, 어쩌면 이러한 데리다의 해체에 대한 가장 단적인 텍스트를 제시해줄 수 있을듯이 보입니다. (데리다의 철학은 후에, 칸트의 윤리학과 마찬가지로 근대 형이상학을 비판하면서, 형이상학의 절대적 진리보다는, 중용의 위치에서 하나의 사건을 사유하여 판단해야하는 심판자의 위치로 돌아가야한다고 하머바스는 지적하기도 하지요.)


맺는말

캐롤의 <앨리스 이야기>는 겉으로 보기에 지극히 간단한 아이들을 위한 동화처럼 보여지지만 실상 그 안에 담겨있는 내용물은 놀랍도록 풍부하며 치밀하고, 흥미로운 생각할거리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위에서 지적했듯이 철학,문학,논리학,수학,물리학등 실로 다양한 분야에서 이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접근한다는 것에서도 드러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한가지 잊지 말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캐롤이 <앨리스>를 쓰게 된 이유가 아이들에게 상상력과 즐거움, 그리고 환상의 세계로 빠지게 함으로서 (거울의 나라에서는 그와 더불어 사고의 논리력도 한번 생각하게 해주므로써) 아이들의 정서를 더욱 맑게 해주고, 어른이건 아이건 할 것 없이 이 이야기를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운 상상력과 흥미로운 세계를 던져주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푸른꽃 평점 9.3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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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볼때 어쩌면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문학사상 최초로 SF적 사고실험이 투영된 작품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봤음.
아무튼 이것도 공본 독서사랑게시판으로 날라갈 예정. 

 

병장 안대섭 재밌겠다. 전에 서점 갔을때 보니 요즘 앨리스 꽤 괜찮은 판이 많이 나온것 같던데. 하나 살까.  2006/10/27    

상병 허익준 와악! 거울나라! 거울나라! 내가 동화 중에 가장 좋아하는 작품! 별로 관계는 없지만 미나가와 료우지씨의 소년만화 A.R.M.S에 나오는 자바워크, 화이트 나이트, 험프티 덤프티 등은 전부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사람들이죠.  2006/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