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초과한다는 것, 용량을 넘치는 모든 것은 파괴적이다. 나는 용량을 넘치는 글을 여름동안 써냈다. 지나치게 글은 많았고 감정은 넘쳤다. 아마, 그 모든 것은 오로지 나를 위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나를 경멸한다. 경멸은 가장 강렬한 자기애라고 혹자는 말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다. 그저 나는 내가 마음에 들질 않는다. 나를 위해 그 많은 글을 써냈다고는, 그래서 믿을 수 없다. 나는 누군가에게 보내기 위해, 혹은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그 많은 글을 쓰려고 했다. 내가 가려는 길에 그 누군가의 눈에 들 수 있는 유일한 것이 글이라고 생각했기에. 아마도 이것도 초과된 감성의 덕분이었으리라. 

글쎄. 그 누군가, 는 사실 일종의 대명사와 같았다. 동시에, 현실적으로 내가 접한 유일한 대안이기도 했다. 그 이에게 마음에 들 여지가 없다는 것은 따라서 내 글쓰기에 대한 사형의 언도와 다를 바 없다. 글을 쓰는 것에 목적이 있었기에, 목적을 상실한 뒤에는 글을 쓸 여지가 없는 것이다. 글을 쓸 이유를 상실한 뒤에는 그저 자신의 길을 다시 걷기 시작하면 된다. 나에겐 내가 갈망하던, 그리고 지난 여름동안 걷지 않았던 길이 있다. 아마 그 길을 이제 걸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른 사랑하는 이를 혹은 사랑할 수 있는 이를 만나려면. 내가 생각하던 나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렇듯 나는 모른다. 모든 것을 모른다. 의미를 부여하던 몇 안되는 믿음은 그 근거가 너무도 약했기에 이리도 손쉽게 부러진다. 다른 의미가 생긴다면 아마도 믿음은 다시 일어설지 모른다. 그러나 자라나는 방향은 매우 다를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아, 글이 너무 암울하다. 조금 바꿔볼까. 안녕하세요 여러분. 가을이군요. 하늘이 높고 말은 살찐다. 예. 가을입니다. 가을은 독서, 그리고 공부의 계절이죠. 저도 요새 공부 좀 해보려고 합니다. 글은 어떻게 하냐고요? 공부하면서, 글을 써야겠죠. 아는 것이 없어서 글을 쓰기 사실 힘들었답니다. 고작해야 학부 2, 3학년 전공 수준으로 사회 현상 분석한다고 법석대는 꼴이 어찌 보기 좋겠어요. 그래서 다시 공부 좀 하려고요. 아는 것을 쌓아야 글을 쓸 수 있지 않겠어요? 문체 적응 안 된다. 다시 바꾸자. 그저 난 사랑하고 싶었고 사랑하기 위해 글을 썼으며 사랑하고자 공부했다. 그리고 사랑은 그 꿈의 꼬리를 감추고 하늘로 떠나가 버렸다. 글을 쓸 이유가 없고, 나의 모든 의지도 함께 날아갔다.........[후략]
- "절필언 - 커피 세 모금" 06. 9. 21 중 발췌



이승만 대통령이 처음 집권하고 여러 가지 국제들을 지정할 때 맞춤법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왜 소리나는 대로 표기하면 안된다는 것인가. 굳이 맞춤법을 이리저리 맞대고 외우고 고민해서 써 내리는 것이 소리나는 대로 편하게 쓰는 것이 나쁠 이유는 무엇인가. 도리어 더 좋지 않던가. 위당으로 알려져 있는 한 각료는 당시 대통령의 그 제안에 대하여 확고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각하. 맞춤법은 쓰는 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읽는 이를 위한 것입니다.” 

간단한 이치다. 복잡해 보이는 모든 문법의 규칙은 바로 저 한 가지 원칙에서 출발한 것이다. 단지 소리나는 대로 글을 쓰는 것은 쓰기에는 편하지만 가독성을 저해한다. 쓰는 이는 하나지만 읽는 이는 여럿이라는 원칙에서, 가독성을 높이고 오류를 줄인다는 원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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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언을 쓸때 원칙은 단 하나. 
주제를 택해 냈을 때, 내가 중학 시절까지는 분명 모르던 걸 그 이후에 배운 것이 하나 있고, 
또한 고민해서 내가 지금 이 글 내에서, 글을 쓰기 전까지는 미처 모르던 것을 하나 이상 써낼 수 있는 주제를 잡는다. 

단지 그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