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기록, 명랑한 김강록 씨의 화답입니다. 22 
 
 
 
 
병장 주영준 

곤돌러스 돼지고양이. 굴러다니는 한마리 통통한 코리안 숏헤어. 시인부락의 '한때' 사파 3대 거두.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아, 두려운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구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런 사람'일지도 언제나처럼 중요한 모든 일은 여신에 달린 것이니까. 아, 김형진이나 허원영처럼 내 글에 답 안하면, 이번엔 그냥 안 넘어갑니다. 죽여버릴 꺼에요. 머리 위에 신나를 들이붙고, 담배에 불을 붙일 겁니다. 셋이 묶어 놓고. 아니, 셋 플러스 원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one for 샤니. 

45. 당신의 글은 재밌습니다. 아프구요. 굉장히 좋은 글입니다. 詩에 대해선 결코 좋게 평가할 생각이 없습니다. 당신이 못 쓰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모든 詩를 증오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정말 열심히, 각잡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날카로운 감수성을 위해 노력하는 타입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대체 뭐가 문젭니까, 당신의 패배주의는 방패는 집어치우고, Face to face, sword to sword로 달려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젠. 방패의 존재 이유는 나처럼, 공격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얼빠진 표정이 드러나는 것이 무섭기 때문입니까. 

☞ 마치 벼르고 있었다는 투로 질문을 던지시니, 만약 그동안 우리 사이에 어떤 공감과 공명이 있었다면 저 역시 벼르고 있었다는 투로 대답해야겠지요. 방패를 집어치우고, 어딜 향해서 뭘 들고 어떻게 달려들란 말입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시기가 문제입니다. 지금 말입니까 당신이 지난 2년 동안 어떤 해법을 찾아 삶을 꾸려왔는지는 구체적인 내막까지 제가 함부로 넘겨짚어 헤아리지 못합니다. 어쨌든 하지만 저의 지난 2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입니다. 설령 앞으로 제가 정말 무언가를 해낸다 해도 지금으로선 저는 철저히 무능합니다. 단지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결의와 각오만으로, 당장 제가 이미 뭐라도 된다는 듯이 말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글을 쓰는 일이 물론 어느 정도 효용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너머의 실천이 수반되어야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제가 마련한 답안의 공백들이 어떻게 해야 비로소 채워질 수 있을지 진작부터 알았지만 그것들은 많은 경우 좀 더 시간이 흘러야만 해결 가능한 일들이었습니다. 그래도 마냥 넋놓고 지낼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 달리 선택의 여지 없이 정신 건강 유지의 차원에서 책을 읽고, 딱히 썩 진지하지만은 않은 글들을 쓰면서 소일하고 지냈습니다. 헌데, 그게 뭐 대수라고 애써 의미를 부여해가면서 스스로 기특하다는 듯이 자위하겠습니까.

제가 오직 오늘의 저 자신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다면, 저는 패배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이야기들밖에는 들려드릴 수가 없습니다. 물론 언제까지고 이러고만 있을 작정은 아니구요. 조만간에 뭔가 한 가지라도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성취를 쥐고 나서, 그때 가서 밝고 힘찬 목소리로 다시 말하겠습니다. 지금 겉으로 보이는 저의 어떤 패배적인 어조─그리고 저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결코 그런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여드리지도 않았습니다─가 걱정되신다면, 그런 걱정이라면 붙들어 매셔도 됩니다. 저는 그래도 됩니다. 자신있는 사람은, 다시 날아오를 자신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그래야겠다고 믿는 때에 얼마든지 추락해도 됩니다. 자, 이제 터무니없었던 기다림의 시간도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당신은 좀 더 남았지만. 메롱.


46. 이상하게 당신만 보면-실제로는 두 번, 그것도 한번은 당신이 바빠서 한번은 내가 바빠서 열마 보지도 못했지만-허벅지를 한 번 걷어찬 후에 한 번 걷어차이고 싶은 기분이 듭니다. 뭐랄까. 누구나 그렇듯이 나 역시 여러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라, 어떤 사람들이 가진 특정한 면에서 자주 공명하고는 합니다. 당신에게 느껴지는 그러한 공명은 '소심함'에서 왔습니다. 나와 당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는 조금 다른 것 같지만. 

그래서 말인데. 다음에 만나게 되면 한번씩 허벅지를 걷어차는 것으로 합시다. 조낸 씨게 까는 겁니다. 단. 최근에 급속한 체력 저하를 겪었고 앞으로도 겪을 제가 먼저 차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혹시 전에 축구나 무에타이 동아리에서 활동한 적 없죠 혹시 당신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면 왜 그랬는지. 아니라면 왜 안 했는지. 종합적으로 대답해 주세요. 우리는 소심한 사람이라는게 내 생각입니다. 틀렸습니까 

☞ 우선 저는 기본적으로 당신을 좋아하는지라, 먼저 허벅지를 조낸 씨게 걷어찬다거나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등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좀 은원을 가리는 편이라 당하고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겁니다.

간혹 저를 두고 소심함에 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누누이 강조지만 그건 소심한 게 아니라 섬세한 겁니다. 우리 좀 더 디테일하게 갑시다. 생활정보지 가판대는 어떻습니까. 그걸로 머리를 한 대씩 조낸 씨게 내려치는 겁니다. 실제로 제가 정말 때려주고픈 생각이 드는 어떤 사람들과의 액션 씬을 상상할 때마다 소품은 항상 생활정보지 가판대였기에, 저는 이제 때리고 맞는 풍경에서 그것을 빼놓기가 힘듭니다. 당신도 배웠다 했지만 저 역시 검도를 잠깐 배운 일이 있으니, 생활정보지 가판대로 각각 빠른머리 100대씩, 어떻습니까.

농담이고, 저는 당신을 못때립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신이라면, 하등 제가 때려야 할 당위나 때릴 수 있는 명분도 없습니다. 물론 제가 싸움을 제법 할 줄 알거나 즐기는 축에 드는 건 더더욱 아닙니다. 하지만 역시 은원에 대해서는 민감하지요. 만약 저를 정녕 그렇게 조낸 씨게 한 대 때리신다면, 저는 마치 장차 이 세상에 대해 그러할 것처럼 당신에게 드라마에 나오는 악녀와도 같이 복수하게 되지 싶습니다. 저는 섬세한 사람입니다.


47. 당신은 가위바위보나 동전던지기로 중대한 결정을 할 수 있습니까 

☞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에 그것을 가위바위보나 동전던지기에 의지할 정도로 저는 허술한 사람이 아닙니다. 선택의 기로에 선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온전히 자신의 선택에 의해 뭔가를 결정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요. 이 시대에 우리가 뭔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건 축복입니다. 저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으로 그 축복을 누리고자 할 것이고, 또한 지금껏 그렇게 해왔습니다. 때론 저의 선택이 빗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가장 저다운 답이라면 틀렸더라도 저로선 만족입니다. 비록 실패할지라도, 그것은 온전한 제 몫의 실패니까요. 하지만 다른 무엇에 의탁함으로써 제가 제 삶의 문제적 지점에 전면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그리 쉽게 박탈 당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병장 박민수 

단단한 글 속에 흘러넘치는 유머. 그것을 통해서 당신은 어떤 사람일까하는 궁금함을 갖게 만드는 사람. 

48. 어쩌면 29번이나 35번과도 관련이 있는 질문이 될 수 있겠지만. 지금의 강록님이 되기까지, 영향을 끼친 무언가 혹은 누군가가 있다면. 이야기 한번 들어보고 싶네요. 

☞ 진작부터 내 삶은 이러이러한 인물 혹은 다른 무엇의 영향을 받아왔다라는 생각을 가지고서 그 답변을 마련해놓지 않은 사람이라면, 답변하기 힘든 질문입니다. 제가 과연 무엇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왔을까요. 저의 촛점은 늘 제가 영향을 주는 구체적인 무엇이 아니라 그것과 저와의 관계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제게 영향을 끼치는 일련의 것들과의 관계에서 온전한 주체였을까요, 아니면 종속적인 주변부였을까요. 물론 좋은 영향  나쁜 영향의 구분도 의미가 있겠지만,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자체가 좋으냐 나쁘냐의 문제 역시 없지 않습니다. 저는 항상 제 삶을 온전한 저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를 골몰해 왔기에 이제 와서 글쎄요, 아마 A, B, C, 뭐 이런 것들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요라는 식으로 답변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너무 심각할 것 없이 그냥 편한 마음으로 아마도 A, B, C를 나열해도 될 일이지만, 만약 그렇게 답한다면 KOEI, 당구, 비트겐슈타인, 뭐 이런 항목들이 들어가겠지만, 그런 답변은 결코 제 진의를 충분히 담아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부득이 어지러운 얘기가 길었습니다.


49. 강록님께서 전공을 바꾸신다고. 음. 전과를 하신다고 가정을 했을 때. 면접관이 자네는 왜 우리과를 지원했나라는 물음을 던진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 (※ 저희 학교에는 전과 제도가 없습니다. 아무튼,) 그런 상황을 가정 하에, 우선 속에 있는 구체적인 대답까지는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아이템은 가로챔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보안 유지를 해야 할 만큼 경쟁력 있는 것이라고 자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상황을 어떻게 적당히 둘러대서 답변은 답변대로 성실해보이고 저는 저대로 보안을 지키느냐가 관건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해버리죠 뭐. 

사실 이전의 학과에 비해 지금 제가 새롭게 지원하는 학과는 이른바 '돈이 안되는' 학과입니다. 저도 언젠가는 부양의 책임을 짊어져야 할 것이고 그러한 현실적인 문제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모든 것은 현실이고 무슨 일을 하건 간에 거기서 성취를 얻기 위해선 자신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저는 제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그 방법까지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시련을 저를 강인하게 만드는 과정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타 학과에 비해 다소 불리한 경제적인 전망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제가 바로 경쟁력이니까요. 맡겨만 주십쇼, 이 땅의 순수학문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에, 하지만 지나치게 헝그리 정신을 해당 학과와 엮어서 부각시키면 면접관들의 심기가 불편해질 수 있으니, 한번 면접 관련 컨설팅을 받아봐야겠군요. 왜, 요새 그런 거만 가르치는 데도 많다면서요.


50. 누군가와 친구가 되는 건 어떤 거라고 생각하시는지. 

☞ 친구란 그것이 무엇이냐를 숙고하기 이전에 이미 삶 속에 실재하는 것이기에, 꼭 어떤 구체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문제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선 언젠가 우리나라 말에서 장차 존댓말을 없애겠다는 둥의 한가득 치기를 안고서 깝죽거리던 옛 시절에 한번 생각해본 적이 있었어요. 말하자면, 친구는 인류가 지금껏 형성해온 대인 관계 양식 중에서 유일하게 쌍방이 평등한 관계입니다. 게다가 서로를 구속하지도 않고 명확한 이해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동시대적 감성을 공유하며 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친구는 인류가 오래 전에 발명했으되 아직도 그 잠재력이 온전히 실현되지 않은 위대한 대안입니다.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사례라면, 요 아래 비슷한 질문에서 다시.


영준님의 무시무시함을 뛰어 넘고서, 제 질문에까지 무사히 당도하실 수 있길 빌어봅니다. 아아. 

☞ 에이 설마, 군생활 아직 반년이나 남은 깜깜한 주영준 정도야.



상병 박종민 

도덕적 결벽증. 윤동주적 감성이랄까. 
그 베이스에 날카로움이라는 줄기와 위트라는 잎을 가진 커다란 나무. 

질문은 이미 다른 분들이 다 해주셨습니다(웃음) 



상병 배준환

심도있는 재치, 그리고 근영양. 

51.따라 할수 없는 극강의 강철같은 발랄함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것인지 
저같이 따라하려해도 도저히 안되는 사람을 위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 23년 동안 동생을 괴롭히고 8년 동안 당구장에서 당구보다 말겐세이 놓는 데 열중하다보면 강철같은 발랄함, 까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른 사람 놀려먹으며 희희낙락하는 걸로 자기 정체성을 삼게 되곤 합니다. ……사실 저는 니체를 따라서 강철같이 명랑해지고 싶었지만, 이를테면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달까요. 보다시피 강철같이 유치해지고 말았습니다.


52. 밖에서도 계속 강록씨 글을 훔쳐볼수 있는 공간이 있을까요 

☞ 한숨나오게 나태한 사람들이 컴퓨터질하는 세상 sighworld.nate.comkimpro82에 지금껏 이곳에 게재했던 거의 전문이 있습니다.


53. 게다가.. 이름때문인지 강록씨의 이미지는 오광록씨를 은근히 떠올리게 하는데.. 
이런의견에 대해서 한말씀.. 
자리를 빌어 비트겐을 알게해준것에 대해..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 오광록씨의 연기라면 저도 몇 편의 영화를 통해 인상깊게 보았습니다만, 딱히…….



상병 김현동 

생각보다는 정상적일 것 같은 분. 

☞ 물론이죠! 제가 실제로는 친구들 중에서도 제일 정상입니다.

54. 가장 친한 친구가 어떤 분인지 소개해주세요. 

☞ 힘든 질문입니다. 특정한 누구를 지목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섭섭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질문은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이런 잔인한 질문의 답을 받아내시겠다면야, 눈 딱 감고 칼같이 연공서열을 적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고등학교 친구들인데, 大영일고등당구스쿨 공채 24기 목동의 정프로, 문래동 최프로, 개봉동 신프로까지 하여 22 복식 엔트리가 성립합니다. 우리가 만나서 당구만 치는 건 아니고, 라고 말하고 싶지만 정말 만나면 술도 거의 안마시고 통상 거의 당구만 칩니다. 대학가에서 으레 발견할 수 있는 식음 전폐하고 당구만 치는 환장한 죽돌이들, 그들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들 사이에서 하루 평균 당구장 체재 시간이 가장 짧은 사람입니다.

그들은 고교 시절부터 쭉 함께 해온 오랜 벗들입니다. 재수 시절에는 매일같이 학원도 잘 안나오고 잠만 쳐자던 저를 걱정해주고, 전화해서 깨워주고, 그래서 당구장으로 불러들이곤 하던 이들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곁에 있어 주었습니다. 언젠가 세상과 벽을 쌓고서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먼저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 용기마저 상실해버린 채 점차 폐인이 되어가던 저를 기어코 대명천지 아래로 불러내 당구장으로 끌고 간 것도 그들입니다. 제게도 힘든 시절이 있었으나 그들이 함께 있어 저는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는 그들에게 별 도움이 되어주지 못한 채 받기만 하던 경우가 많았지만, 저는 그들을 저의 친구이자 은인으로 여긴답니다. 저는 평생을 두고 그들이 제게 끼친 은덕을 갚아나갈 것입니다.

유유상종이라고, 혹은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저만 봐도 이미 확연히 드러나는 사실이겠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잘 생기고 키도 크고 온 몸이 근육질에 총명하고 성실하며 강인날렵다정다감하고 인생을 책임감 있게 잘 삽니다. (음화화화. 진짭니다) 든든하고, 배워야 할 것들도 많은 친구들이지요. 시대의 풍랑을 함께 헤쳐나갈 그들이 있기에, 그 점에서만큼은 저는 행운아입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大영일고등당구스쿨 공채 24기 OB입니다.



병장 송희석

질문 3번은 개인적인 질문이라 여기고, 질문 하나 더 하겠습니다.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55. 이 글은 분명 주영준님글 연장선상에 있는 글입니다. 저역시 강록님의 알수없는 패배주의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지만, 이미 그것에 관해서는 준응군을 통해 다 이야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전 강록님이 굳이 언어적유희를 할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언어적 유희를 즐기는것에 대해 궁금합니다. 

강록님은 분명 언어적 유희, 다르게 말하면 일반 사람들이 쉽게 깨닫기 어려운 단어(물론 단어자체는 쉽지만, 그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다른 뜻을 품게 만들어버리기에 어렵다고 생각합니다.)를 씀으로 인해 오히려 소통을 원할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시진 않습니까 만약 그런생각을 해본적이 없다면, 단 한번이라도 아주 평이한 단어로 쓴 평이한 글을 우리에게 선보여주실 생각은 없으신지 궁금합니다. 

☞ 누가 들으면 제가 굉장히 어렵게 빌빌 꼬아서 글을 쓰는 줄 알겠습니다. 물론 어떤 논쟁적인 상황에서라면 글은 최대한 간결명료한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경우가 있고 별로 해당 사항이 없는 경우도 있지요. 사실 제가 전면적인 논쟁을 위해 글을 쓰는 경우는 몇 안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저 자신의 문제를 위해서 글을 씁니다. 나중에 그 글을 읽게 될지도 모를 사람들은,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한 사람이 하나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방식은 단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누군가 자신의 삶에 가장 충실한 글을 쓰고자 한다면 그것은 (바르트식으로 말하자면) 21세기 현대 국어라는 공적 언어와, 제 평소 사고관과 습관이 반영된 스타일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그것은 글을 쓰는 시점에서 처음부터 주어져있는 것이며 결정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단지 저에게서 나올 법한 얘기를 제가 사용할 법한 방법으로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희석씨가 요구하시는 방식의 글은 쓰고 싶다고 쓸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 억지로 지어내지 않는 바에야 그런 글은 처음부터 불가능합니다.



병장 박형주

이건 강록씨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지만 제가 답을 찾고 있는 문제들이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이 분 요즘 안 보이네, 언제 오시려나. 

56. 작년 하반기에 질풍노도의 기세로 칼럼을 쏟아내던 강록씨의 발랄한 에너지가 퍽 인상적이었는데요. 올해 들어서부터는 작년에 비해 사뭇 진지하고 신중한 고민이 묻어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칼럼의 수도 줄었고 과거 강록스러운 글이나 코멘트도 잘 보이지 않고 말이죠. 나갈 날이 가까워 오며 앞날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건가 싶기도 하고 내적 성숙()인가 싶기도 하는데요. 다소 달라진 문제의식의 변화에 대해 어떤 일신상의 이유라거나 심경의 변화라거나 하는 게 있었는지 묻고 싶네요. 

☞ 사실 작년 하반기에는 제가 좀 바빴습니다. (저는 경리병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바쁜 일과 속에서 제 생활을 뺏기기 싫어 반발심에 더욱 글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누구나 그러하듯이, 주로 입대 전의 제 지난 시절을 돌이켜보는 데 주력하였습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과거에 가지고 있는 저의 어떤 지향을 새로운 생활 때문에 빼앗기고 싶지 않았던 거겠죠. 그래서 과거에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여전히 부당하다 말했고 과거에 제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에 대해 여전히 옳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습관적으로 의지적이고 습관적으고 발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부터는 사정이 달라졌어요. 책을 읽고 싶으면 책을 읽을 시간도 어느 정도 있고, 글을 쓰고 싶으면 글을 쓸 시간도 어느 정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바쁜 일과 속에서 자꾸만 잃어가는 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 이란 것은 자연히 동기로서의 힘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실로 자연스러운 변화입니다. 그리고 여유가 생긴 만큼, 혹은 종전의 과업이 어느 정도 일단락된 만큼 과거가 아닌 오늘의 저를 돌아보게 되었죠. 헌데 군에 와서 글을 쓰겠답시고 펜을 만지작거리는 모든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는 '룸펜적'입니다. 그런 자신을 직시한다면 패배감은 필연입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다른 사람에 비해 딱히 유난히 특이한 입장에서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근래의 글들만 봐도, 제가 보기에 이건 영락없는 말년 병장이 영락없는 말년 병장의 파토스를 가지고서 쓴 영락없는 말년 병장의 글입니다. 저 혼자 딴 세상에서 군생활을 한 게 아닌 바에야, 우리는 어차피 비슷한 입장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며 자연스럽게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기 마련입니다.

자, 이제 저는 진짜 집에 갑니다. 그동안 저는 혼자 괴로워하는 일 외에는 이렇다할 소일거리가 없었지만, 그것도 끝입니다. 나가면 저는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겠죠. 펜 대신 삽을 들며 기뻐하듯이, 저는 지금 자신감과 의욕으로 넘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저는 현재 곧 집에 갈 말년 병장입니다. 약오르지롱 메롱.


57. 복도에서 옷깃을 스치며 몇 번이나 지나쳤을지 모를 사람으로서 묻습니다. 강록씨가 몇 번이고 강조하곤 하는 패배주의란 것은 진짜 낙오자의 정서는 아니라는 건데요. 신해철은 과거 서태지가 nothing to lose의 '낙오자 정서'를 대변한다면 자신은 알량하게나마 잃을 게 있는 '비겁자 정서'라고 표현하곤 했었고, 저는 강록씨의 '패배주의는 또다른 자부심의 표현'이라는 말에 베지터와 주유의 정서를 예로 들어 답변한 적이 있습니다. 자, 컴플렉스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혹 자신이 패배주의를 강조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극히 가식적인 행위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나요. 반에서 일이등 하는 애들이 '시험 완전 망쳤어'하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것처럼 말이죠. 만일 그렇다면 당신의 패배주의가 당신에게 가져다 주는 심리적 효과는 무엇인가요. 

☞ 오늘의 제가 오직 오늘의 저 자신에 대한 글을 쓸 수 밖에 없다면, 침울한 나날들에 쓸 수 있는 글은 오직 침울한 글들 뿐입니다. 절망도, 제게는 제가 도달해야 할 제 삶의 일부입니다. 저는 다만 안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그것을 구태여 외면하려 애쓰지 않음으로써 보다 제가 처한 현재의 삶에 몰입하고 싶었습니다. '심리적 효과'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제게 한동안의 패배감은 정말로 실재하는 것들이었습니다. 반에서 1, 2등 하는 아이들이 '시험 완전 망쳤어'라고 하는 말도 그 아이들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해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오히려 정말 '재수없는 경우'는 딱히 평소에 비해 망친 시험도 아니면서, 그야말로 자기 평소 실력대로 성적이 나왔으면서도 그것을 현실로 인정하지 않으며 그저 관용적으로 망쳤어, 라고 말하는 이들이 아닐까요. 그들은 진정으로 절망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그렇게 보이고 싶을 뿐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날아올라야 할 하늘이 현저히 높은 이들에게 오늘은 정말로 극도의 추락 상태입니다. 저는 자신이 있기 때문에 절망하고 자신이 있기 때문에 패배감에 젖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끝, 저는 집에 갑니다. 메롱.


58. 앞으로 무슨 일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하고자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 비슷한 문항들이 많았으나 지금껏 구체적인 얘기는 안했습니다. 일부러 어느 정도 피한 건데, 자, 저는 자칭 사회과학도이며 앞으로 계속 진학을 하고 싶다 하고 그리고 간간이 프랑스를 동경한다는 말들을 흘립니다. 그렇다면 정황상 뻔한 것 아닙니까. 답은 진작에 나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떤 목표 지점을 아무리 돌아가려 해도 끝내 이를 수밖에 없었던 확고한 단 하나의 정답으로 만들고 싶지, 인위적인 선언을 통해 젊은 인생을 너무 일찍 좁은 길목으로 몰아넣고 싶진 않습니다.

자, 다시 차근차근 말씀드리겠습니다. 송일국이 처음부터 나는 한혜진과 결혼해서 고구려를 세워야지라고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뉴턴이 설마 저 사과가 떨어지면 만유인력을 발견해야지라며 나무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겠습니까. 저는 저 자신을 지금 당장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도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 믿습니다. 때로는 꿈조차 제약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종류의 꿈이란 것 역시 대개 이미 존재하던 세계로부터 일종의 속임수로서 주어지는 것들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결코 인생을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만, 그래서 누가 물어보면 몰라, 안가르쳐줘라며 얼버무릴 수밖에 없습니다. 



병장 김동석 

59. 군대에 오신 이후로 전역을 앞둔 지금까지, 군생활에서 아쉬웠던 것과 이것만은 잘했다고 생각한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그리고 '군대'라는 틀 안에서 자신의 신념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사안들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했는지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제가 군에 다소 늦게 온 편이긴 하지만, 끌려오지는 않았습니다. 학교 생활은 지지부진했고, 저는 입대를 그 돌파구로서 적극적으로 선택했습니다. 영어공부 같은 건 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제가 영어 따위, 뭐 이런 식으로 기능적인 공부를 경멸하기 때문이어서라기보다는, 제게는 그보다 더욱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게 가장 알맞은 시기에 군에 와서 당장 제게 가장 필요한 숙제들을 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제 인생이 최고였던 적은 드물지만, 대체로 최선의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아쉬운 점은, 글쎄요. 내가 군생활하면서 아쉬운 점이 뭐가 있을까, 라고 생각해봐야 할 정도면 그건 별로 아쉬운 게 없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2년 동안의 군생활을 제 방식대로 저답게 잘 풀어헤쳐왔다고 생각합니다. 아쉬운 점은, 없습니다.


60. 강록씨에게 있어 '웃음'이란 무엇입니까. 만약 당신께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라진 2부 원고를 쓰게 된다면 어떻게 쓰시겠습니까. 

☞ 제가 웃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시중에 나도는 이른바 '先웃음 後행복' 론에 대해서는 비관적입니다. 거짓 웃음은 있는 그대로의 일그러진 표정보다도 비참합니다. 그것은 삶이 아주 갈 때까지 가서, 자기 얼굴로 짓는 자기 표정으로부터조차 완전히 소외당한다는 뜻이 아닙니까.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절망하는 게 자신의 삶에 가장 충실하는 길이죠. 행복하고 싶다면 행복할 수 있는 삶의 조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저 웃기만 해서는, 해결이 안됩니다. 제가 만약 희극론을 쓴다면 그 제목은 아마 '유물론적 희극론'이 될 겝니다.


61. 글을 쓸 때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특히, 강록씨는요. 

☞ 자판으로 치는 것보다는 직접 종이에다 펜으로 쓰기를 좋아합니다. 엎드려 누운 채로요. 이를테면 '내 마음의 풍금'에서 전도연이 깨작깨작 숙제하는 느낌, 초등학생 김지은이 동시를 쓰는 느낌이랄까요. 특히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그 자세로 다리를 ㄴ자로 구부린 채 살랑살랑 흔드는 것입니다. 어차피 글은 저 좋자고 쓰는 건데, 너무 지나치게 '본격적으로 각 잡고' 글을 쓰고 있다는 느낌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오래 전의 어떤 풍경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우리는 옛적에, '나는 오늘 슈퍼에 갔다'는 유의 일기를 몇 줄 적고서 그 위에 크레파스로 단세포적인 그림을 그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할 수 있었습니다.


62. '학교 선배'인 강록씨는 초중고등학교에 대한 추억이 남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추억 하나씩만 이야기해주신다면 

☞ 하나만 이야기하라니, 쳇. 두 개 얘기하고 싶은데. 아니 다시 자세히 보니까, '하나씩만'은 또 뭡니까. 어쩌라는 겁니까. 음화화화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저는 부산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산등성이에 지은 아파트라서, 축대만 넘어서면 모험의 여지가 무궁무진했지요. 친구들과 올챙이도 잡고, 옥수수서리도 하고, 지금 생각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 순수하게 증류된 형태의 '아이'처럼 살았습니다. 제가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되자 담임 선생님께서는 울면서 제게 현미경─커서 훌륭한 과학자가 되라는 뜻이셨을까요─을 선물해주셨습니다. 무슨 드라마 같죠 자, 드라마는 거기서 끝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저는 大영일고등당구스쿨의 공채 24기 신입생으로 당첨되었습니다. 당구도 당구지만, 학교 앞 레코드 가게를 아지트로 삼아 친구들과 여러가지 작당을 하였습니다. 당구장을 가든 노래방을 가든, 그냥 집에 버스를 타고 가든, 그곳은 반드시 한번씩 거치는 웨이포인트였지요. 저는 이곳에서 비로소 '공동체'라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가게 이름이 '음악이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나중에 제가 건설할 당구장 이름 후보들 중의 유력한 하나가 바로 '당구가 좋은 사람들'입니다. 최소한 제가 받은 만큼은 후세에도 물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병장 조혁장

근영슈타인강록님. 

63. 요새 글 쓰는게 너무 힘이 듭니다. 답변하나도 달기 힘듭니다. 
왜냐면,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게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을 수 있는데(틀리다는 건 아님) 
괜히 썼다가 바람직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에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강록님도 이런 경우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이 특히나 그렇게 말했으니까.)어떻게 해결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저도 다시 읽어보았을 때 아니다 싶은 글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죠. 처음부터 끝까지 100% 자기 마음에 드는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마치 야구장에서 완봉승을 기대하는 것과도 같은 일일테니까요. (롯데 만세! 이대호 홈런!)

음. 어떤 글을 썼는데 그것이 틀릴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는 경우라면, 혹 너무 이론적인 글을 쓰려고 하셨던 건 아닙니까. 딱히 권위있는 누군가의 이론의 빌리려고 했던 게 아니더라도, 그냥 편안하게 서술했어도 충분히 의미 전달이 되었을 무언가를 보다 일반화시키고 욕심을 부리다 종종 너무 멀리까지 나가는 바람에, 오히려 시도하지 않음만 못한 경우가 되곤 하는 것은 아닙니까. 제 생각엔 이 문제는 아마 이론으로부터 자유로운 글을 쓰시면 대충 어느 정도 해결될 겁니다. 땅땅땅. (이거 제가 너무 간단히 넘겨짚은 게 아닌지 모르겠지만─당장 이런 식으로 얼버무리는 것도 하나의 전략입니다. 음화화화화화)

아무튼,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살면 병이 나는 법입니다. 우리의 건강을 위하여, 화이팅!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입니다!


64. 강록님은 친구와 마누라의 차이점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 그것이, 장가를 안가봐서 그만.


65. 강록님에게 금지된 것과 금지되지 않은 것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데미안이 형이라고 하시길래. 저는 요즘 이것 때문에 고민입니다.) 

☞ 질문이 좀 더 구체적이었다면 좋았을텐데요. 문득 언젠가 어느 책에서 읽었던 금지하는 것은 금지된다라는 둥의 문구가 생각나기도 합니다만, 지금으로선 딱히 no idea입니다. 



병장 엄보운 

자. 여기까지 입니다.

☞ 원체 느릿느릿 작성되었으며 그나마 그날그날 기분따라 내용이 천차만별인 저의 장황한 답변들을 꿋꿋이 기다려주신 보운씨의 공덕을 이 자리를 빌어 기립니다. 감사합니다!





◎ 인터뷰





엄(보운) 
다음은 강록씨의 칼럼. 삶을 변화시키는 유효한 방법의 일부분입니다.


시중에 나돌던 싸움에 관한 소문들은 너 자신의 싸움에 관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들이 구구절절 옳을지언정, 다른 누군가의 싸움이지 너의 싸움은 아니다. 담론의 대리전에 휩쓸려 허공에 칼부림을 하지 말자. 너의 싸움은 너의 삶 속에 있다. 너 자신을 위해 싸워라!

진정 자기 자신의 싸움임이 확연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어떤 주저나 계산도 하지 않는다. 이 마당에 앎과 실천이라는 이분법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지식인이 그러한 민중의 동반자로 변모하기 위해서는 그는 자신의 직업, 즉 자신의 사회적 존재와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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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글을 읽고 '민중 속으로'라는 뜻의 Vnarod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는데요. 그렇다면 당연히 다음 수순으로 당신의 삶이 19세기 러시아 귀족 청년들의 그것과 어느 정도의 유사점이 있고, 또 차이점이 있는 지가 궁금해졌습니다.
좀 더 파고들어 제가 정확히 궁금한 부분은 그것의 '지속'에 대한 부분입니다. 하나의 사상이 반드시 자기완결적 정합성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것의 성공을 결정짓는 요소에 지속성이 갖고 있는 크기를 생각해본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강록씨의 또다른 보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첫 인터뷰 내용을 이 부분으로 잡았습니다.
러시아 귀족 청년들과 일단의 급진적 지식인들은 브나로드 운동으로 우리에게 높은 가능성의 세계를 보여주었지만, 필연적으로는 실패했습니다. 전 그것이 내부적으로 부재한 지속의 요인으로 생각하는데요. 이것에 대한 강록씨의 생각을. 위의 칼럼과 관련하여 이야기해주세요.

(필연적으로는 실패했습니다  필연적으로 실패하지 않은 운동이 어디 있겠습니까만은 전 강록씨가 성공하길 진정 바라는 사람임을 믿어주세요.)

강록씨의 이 글이 방법론적인 접근임을 되새겨보면, 이것의 지속적인 실현 가능성에 대해 타진해보자는 의도입니다. 개개인의 나약한 의지와 불명확한 정보 접근에 관한 필연적인 패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을 외치며 일어설 초인을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으나, 그렇지 못한 저나 책마을 회원들에게 약간의 힌트를 보여주십사 하는 마음도 크게 작용했고요.



김(강록) 
군생활은 어느덧 드디어 끝이 손에 잡힐 듯한 막바지에 이르렀고, 이제 말년을 제하면 제게 남은 날은 내일(자정이 지났으니 오늘이지요) 하루입니다. 지금 제 앞에는 내일 안에 마무리지어야 할 두 개의 과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 인터뷰고요. 그리고 하나는, 제가 빈 자리를 채울 후임을 위한 업무 인수인계입니다. 제가 진작에 더 열심이였다면 지금쯤 보다 여유있는 상황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저는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만 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리하여 결국, 후임을 택하게 된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제 지난 2년의 군생활을 보다 온전하고 홀가분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길은 이쪽이라고 저는 판단했습니다.

잠 못드는 오늘밤의 제 기분은 들쭉날쭉합니다. 시간이, 부족합니다. 저는 저와 살을 맞대고 함께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며 생활했던 후임들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이어지겠지만, 지금 하지 못하면 나중엔 결코 할 수 없는 다른 일들이 제 눈 앞에 주어져 있습니다. 염치 불구하고 이해를 구합니다.

브나로드 운동에 대한 저의 이해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이른바 '지식인'의 진정한 원동력은 민중의 고난에 대한 어떤 동정이나 당위적 도덕 관념의 대입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이 처해 있는 부조리한 특이지점에 대한 자각입니다. 지식인은 가장 결정적인 순간의 자기 부정을 통해 완성합니다. (by 사르트르)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제가 진정코 그렇게 믿는다면, 제가 지금 달려가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닙니다. 제가, 제가 말하는 그대로 행동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처음 기대했던 회원특집을 온전히 완성치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보운님께 또 하나 염치없는 부탁을 드려야겠습니다. 저의 회원특집이 게시판에 올라있는 모습을 잠깐이라도 보고 갈 수 있을까요. 그것이 인사라면, 이미 떠난 사람의 흔적처럼 남은 인사는 유언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결국 며칠 전 이것이 마지막 인사가 될지 모른다던 그 말은 하나의 예언처럼 사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마지막 짧은 인사가 다시 가능하거든 그 아래에서 나누고 싶습니다.

그동안, 보운씨, 그리고 모두, 정말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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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 좋게 달려든 첫 번째 특집이었는데, 생각한 것만큼 강록씨의 생각과 매력을 보여드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쉽고 오래 기다리신 회원님들께 죄송스럽습니다. 여유로운 운영의 묘를 발휘하지 못한 제 허물을 어찌 용서받겠습니까만은, 다음 번 동환씨 인터뷰에서 만큼은 실망스럽지 않은 모습으로 만족스러운 특집을 들고 나타나겠습니다.

벼르고 있던 인터뷰가 이렇게 마무리 되었음을 한없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만, 그 동안 인터뷰를 준비하며 강록씨 글들을 차근 차근 되짚어 읽을 수 있던 기회라 생각하며 아쉬움을 달랩니다.

그럼 이로써 김강록 (예)병장(진)의 모든 특집을 종결짓겠습니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강록씨에게 보내는 짧은 인사는 이 글 아래, 댓글로 달아주세요. 떠나가는 강록씨의 마지막 뒷모습에 우리 모두 일제히 거기에서 산을 쏘아줍시다! 전체 차려-ㅅ!


수고 많으셨어요, 강록씨. 나가서 뵙겠습니다. 

  
 
 
 
병장 주영준 (20060804 121145)

결론은 '받을어 거기!'    
 
 
병장 김희곤 (20060804 123155)

산을 내뿜어야죠!    
 
 
병장 고계영 (20060804 141934)

보운님 정말 수고 하셨습니다. 우와~ 오늘 병원에 갔었다면 맛 난거 사드리는 것인데. 하하하. 
두분다 수고. 강록님~ 안녕~ 거기.은 우리의 마음이죠. 하하하.    
 
 
병장 조주현 (20060804 150912)

어, 나 질문 안했었네..(털썩)    
 
 
상병 김현동 (20060808 135920)

자알 읽었어요. 아임 블레싱 유, 강록.    
 
 
병장 박민수 (20060808 152636)

멋져요.    
 
 
병장 박형주 (20060808 211412)

아흠. 룸펜 3부작은 결국 미완성일까나.    
 
 
병장 김강록 (20060808 234843)

형주  누구 맘대로 3부작을. 룸펜적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그것을 건너뛰는 방법 뿐이며 저는 감히 그렇게 해냈다고 생각합니다만.    
 
 
병장 엄보운 (20060809 080730)

병장 김강록 잠깐. 강록씨. 나가신 것 아닙니까    
 
 
병장 박형주 (20060809 085245)

보운  실은 나간척하면서 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강록  적극적으로 그것을 건너뛰는 방법이 곧 전역이라면 역시 필연의 왕국이라고밖에 할 수 없어요.    
 
 
병장 주영준 (20060809 085552)

전문인력 경리부사관 김강록 하사(진)아니었나. 
답변. 생각보다 169% 마음에 들었소. 그러면 정모때 가판대로 한대씩만 후립시다. 
(머리치기로) 
팔 들어 가드 가능으로. 먼저 치세요. 참고로 진심으로 찍는 겁니다.    
 
 
상병 김현동 (20060809 093533)

피 튀기겠다. 멀찌감치서 구경해야지.    
 
 
병장 박종민 (20060809 210314)

왜 꼭 1'69'%인가. (한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