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 대한 오해 2 - 프로이트 할아버지 
 
 
 
 
나도 프로이트 좋아해요-  아- 네, 그런데요

프로이트는 정말 유명하다. 정규교과과정 중 국어시간, '문학의 즐거움'이라는 단원명 아래, 현실법칙의 억압 때문에 숨어있던 무의식적 욕망이 발현, 해소되는 장으로서의 '문학'을 배웠거나 주입당했거나, 공감했거나 졸았든 간에, 아마 학생들은 '무의식'적으로 프로이트를 받아들였던 것 같다. 많은 이들이 프로이트가 심리학자라는 걸 알지만, 동시에 심리학자라면 프로이트말고 달리 떠오르는 사람이 없는 형편이다. 심리학의 역사가 아직 짧고, 프로이트가 심리학보다 유명한 탓이라지만 아무래도 대중의 인식이 지나치게 편중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는 프로이트는 분명 위대한 업적을 남긴 심리학자임에 틀림없으나 이제는 무덤에 묻혀 때때로 참배를 받는 것으로 충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마음 속에 있는 언행을 밖으로 내뿜지 못하고 꽁꽁 쌓아두는 사람, 나도 내가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사람이라면, 프로이트의 연구자세에 절로 박수를 보내게 된다. 그가 바로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끌어와, '관찰에 드러나지 않는 것을 가정'하고 이를 통해 사람의 정신을 분석하는 심리학을 연구했기 때문이다. 그는 우선 '꿈'을 주목한다. 꿈꾼 경험에 비추어 보면, 우리가 수면 중 꾸는 꿈 속에서 만큼은 의식(각성)상태와 달리 일종의 자유와 환상이 허용되는 것만 같다. 그런데 프로이트가 보기에 이는 진짜 자유가 아니고 자유로 여겨지는 것 뿐이다. 각성된 의식생활 속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하지만 (존재하는) '사실'이 꿈 속에서 견뎌내지 못하고 분출되는 것이라는 게 그의 기본 가정이다. 즉 일상생활에서 --나아가 어린시절부터-- 여러 이유로 억압당해온 소원과 욕구를 꿈 속에서 충족하는 것이라 보았다. 멋진 설명이다!


이러한 가설을 바탕으로 세워진 프로이트의 이론은 꽤 '과학적'인 입장을 견지한 것으로 보인다. 정신병에 대하여 '마녀사냥' 수준을 넘어선 뒤라도 여전히 수용소에 가두고 '최면술' 따위에 의존하는 것 외에 속수무책이었던 당시에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는 병증의 치료를 위해, 불안을 느끼게 하는 진심을 감추거나 시인하고 싶지 않는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도록 억압하는 과정에 개입한 상징들을 알아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병에 대한 해답은 이미 환자가 가지고 있으며, 의사는 억압과정을 해명하고 환자 자신이 억압으로 인해 야기된 혼란 상태를 조정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치료가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환자를 쇼파에 앉혀놓고 환자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 과거의 기억에 관하여 묻거나 최근 꾸었던 꿈의 내용, 환자의 말투나 자세, 사소한 버릇을 조사 관찰, 기록했으니 그의 작업이 수량적 연구가 아닌 기술적(descriptive) 연구일지언정 함부로 '비과학'이라 내치는 것은 섣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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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과학과 사이비과학을 나누는 기준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리고 프로이트에게 그 잣대를 적용한다면 어떨까. 자잘한 이견이야 있겠지만 오늘날 과학자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기준에 동의한다. '반복가능성',  '측정가능성',  '경제성',   덧붙여  '재활용성',  '통섭력'. 

'반복가능성'은 다른 사람이 독립적으로 같은 연구를 수행해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야한다는 것을 말한다. 현상에 관한 가설 및 해석, 이론을 만들었을 경우 이는 새로운 분석과 실험을 통해 거듭 입증되어야 한다. 그래서 통제가 용이한 연구실에서 물질을 대상으로 행한 실험과는 달리 프로이트의 이론은 '반복가능성'에 태생적 한계를 갖는다. 많은 정신분석학자들에 의하여 아무리 방대한 량의 데이타를 쌓았다하더라도, 각 데이터는 서로에게 독립적일 뿐이다. 상담자와 내담자의 역동적인 상호작용 가운데 얻어진 기록물은 각각 해 당사자의 해 문제에는 의미있어도 단일한 사실을 증명하는 다수의 증거가 될 수 없다. 녹음된 목소리를 틀어주지 않는 이상 어떤 뛰어난 연구자도 매번 같은 목소리와 느낌을 전달할 수 없고, 내담자 역시 상담자가 자신의 첫사랑과 닮았다느니, 털이 너무 많아 혐오스럽다느니 하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무의식의 세계를 저도 모르게 펼쳐보이긴 커녕 한층 더 방어적이 될 가능성마저 존재한다. '훌륭한 상담자들이라면 결국 같은 결과가 반복된다'라는 말은 억지스럽다. 전문가가 하든 내가 하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가 해보든, 동일한 여건이 보장되고 (변인통제),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우리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확보된 '보편성'은 누군가가 그 사실에 공감하지 못하고 거부할지라도 여전히 그에게 마저 적용된다는 점에서 매우 강력하다. 공감하고 믿는 자에게 구원을 가져다 준다는 이유로 '과학적'이라 할 순 없는 것 아닌가.


'측정가능성'의 측면도 사정은 같다. 결과를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척도로 측정할 수 없다면 그 결과를 일반화 할 도리가 없다. 결국 '척도'라는 것은 조금 전 제시한 '반복가능성'을 내포하고, 프로이트는 마찬가지로 무기력할 뿐이다. 물론 다양한 환자들에 대한 수많은 조사기록을 일관된 기준을 세워 수량적 자료로 변환하고 이를 토대로 한 통계 분석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 경향성을 밝혀낼 수는 있겠다. 예를들어 어떤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대체로 어떤 과거를 갖는 경향이 있다라든지 하는 식의 유용한 정보. 이는 특정 과거가 현재의 병증에 대한 원인이 된다는 인과해석에는 불충분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어설픈 '예측성'을 얻을 수 있으니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고집스럽게도 숙련된 노老의사의 치료경험과 직관에 의존하고 만다. 쌓아둔 자료를 가지고 마음껏 재구성해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 다시 그에 걸맞는 사례를 들어 적용한다는 것은 어쩜 추리소설의 작가가 치밀한 플롯을 구성하는 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픽션(fiction). 이것이 대문호(大文豪) 프로이트가 오늘날 처라리 문학시간에 자주 회자되는 이유이다.  


이론의 '경제성'이라면 조금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단순한 것이 진리다', 오캄의 면도날처럼 우리는 가장 많은 정보를 가장 적은 노력으로 이끌어 내는, 가장 심플하면서도 아름다운 형태의 진실을 원한다. 단지 감정적으로, 미적으로 원할 뿐 아니라 가치의 우열을 따져도 그렇다. '밥을 굶었고 돈이 있고 평소 군것질을 좋아하는 군바리는 짬밥이 맛이 없는 경우에, PX에 간다' 라는 걸 연구결과라고 내놓는 건 조금 낯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 건 안 봐도 비디오, 내 동생도 안다. '군바리는 언제나 PX에 간다'. 단순한 이 문장이 사실이라면 얼마나 강력하고 유용한 정보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프로이트의 이론은 말쑥하고 (사실이라면) 강력하기까지 하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본능에 충실한 id, 도덕규칙을 따르는 착한 superego,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현실의 ego. 그리고 꿈틀대는 생의 활력, 성적 에너지 libido 까지. 거침없이 쏟아지는 이런 몇가지 개념만으로도 인간 삶의 모든 질곡을 설명하는 데 모자람이 없을 지경이다. 

안타까운 것은 현대 심리학에서는 프로이트의 이론만큼이나 경제적이면서 앞의 두 기준도 충족시키는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무의식'은 더이상 측정불가의 영역에만 남아있지 않다. 간접적 방법으로, 의식 한계 수준의 자극을 준 다음 자극여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짐을 보임으로써 무의식의 영향에 대한 측정이 가능하다. 가령 이런 식이다. 사람이 도저히 인식할 수 없는 속도로 몇 밀리세컨드, 극히 잠깐 동안 화면에 먹을 것을 보여주고, 무엇을 보았는지 묻는다. 물론 정답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수많은 참가자들의 답안은 무작위로 분포한다. 그러나 이에 이어서 나는 ____ 을 산다 와 같은 문장의 빈 칸을 완성하는 과제를 주면 재밌게도 음식 자극에 노출된 사람들은 빈 칸에 '음식'을 채워넣는다는 통계적 결과를 얻게 된다. 이를테면 암묵기억implicit memory, 습관화habituating과 같은 간편한 개념으로도, 굳이 유아시절 '구강기'-- 입으로 성적 만족을 얻는 시기-- 때 욕구 충족이 적절히 이뤄지지 못해 지금 당신이 손가락을 물어뜯는 거라고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고 깔끔한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아예 fMRI로 직접 고해상도 뇌 사진을 촬영할 수도 있다. 자극에 따른 뇌의 활성화 영역, 잠이 든 후, 즉 의식이 없는 상태의 뇌 사진을 확인함에 따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무의식'의 실체도 조금씩 벗겨지고 있는 실정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재활용성'과 '통섭력'의 차원에서 보면 '자아'와 관련한 성격심리학의 연구와 '꿈'에 대한 인지신경과학의 성과를 주목하게 된다. 최고의 과학이란 다양한 방향으로 후속 연구와 발견을 자극하고, 거듭 재인용 됨으로써 본래의 원칙과 이론의 진위를 끊임없이 시험하는 '재활용성'을 가져야 한다. 프로이트의 id, ego, superego의 개념과 비견할 자기확인이론self-verification theory를 소개해본다. 

                              타인의 인식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긍정적   부정적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자기  긍정적                                     
인식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부정적       !모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표가 너무 구려서 미안해요, 헷)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 보는 이 등에 따라 달라지는 '자아'사이의 차이를 만들지 않으려는 근본적인 동기, 자기 일관성self-consistency을 갖고 있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자기일관성이 높은 사람이 삶에 대한 주관적 만족도가 높은 경향이 있다. 그런가하면 한편으로는 더 나은 '자아'를 갖고자 하는 자기향상욕self-enhancement 역시 강력한 동기이다. 자기향상욕이 왕성한 사람이 행복을 느낀다는 결과 또한 당연하다. 그렇다면 위의 표에서 보듯 자기인식이 부정적인데, 타인의 인식이 긍정적인 경우를 살펴보자. 쉬운 예로 겉보기에는 외모도 수려하고 친구도 많아 다른사람에게 좋은 이미지로 기억되는 사람이, 정작 자기 자신은 자기비하와 패배주의에 빠져서 허덕이는 경우이다. 여기서 '자기일관성'과 '자기향상욕'사이의 긴장이 나타난다. 내가 보든 남이 보든 '부정적'이어서 '자기일관성'을 유지하는 편이 내가 보기엔 늘 부족하고 '부정적'인 모습이지만 적어도 남의 눈에는 '긍정적'인 편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다. 아마도 다른 많은 요소들의 영향도 고려해야할 것 같다. 개인이 얼마나 성취지향적인지, 얼마나 외로음을 타는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프로이트를 위시한 정신분석학의 '덩어리'진 모호한 개념과 비교하면, 구체적이고 환원적인 관점에서 보다 폭발적인 의문의 꼬리를 낳고 새로운 발견을 촉진한다. 환원주의의 맹점은 주의해야하겠지만, 환원의 노력없이 전체 그림에 대한 좋은 설명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나무와 풀 각각의 이름조차 모르면서 숲 전체를 보고 그저 울창하니 참 좋다.는 말은 공허하다. 


이렇게 볼 때 '꿈'에 관한 인지신경과학의 연구는 '통섭'의 생생한 현장이다. 다양한 현상들에 대한 여러 설명을 연결, 일치시킬 수 있을 때, 그 설명은 경쟁력이 있는, '통섭'력을 지닌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활성-종합 모델' 가설에 따르면, 우리가 꾸는 꿈의 기제는 다음과 같다. 

 잠이든 상태에서는 감각 정보가 거의 입력되지 않기 때문에, 의식적 두뇌는 뇌간에서 시작된 충동들에 따라 내적으로 활성화 된다. 충동들이 만들어내는 혼란 속에서 의식적 두뇌는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려 애를 쓴다. 즉 다양한 이미지들을 앞뒤가 맞는 일관된 이야기속에 짜맞춰 넣으려 한다. 그러나 감각 정보의 순간적인 입력이 부족하다. 결국 의식적 두뇌는 감각적 실재와 연결되지 못한다. 자고 있을 때에는 몸의 움직임에 따라 생기는 자극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뇌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한다. 즉,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 에드워드 윌슨, 통섭 중에서 발췌


잠이 깨어있을 때 받아들인 정보를 정돈하고 통합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은 익히 밝혀진 사실이다. 잠 안자고 공부하는 것은 벼락치기에는 유효할지 몰라도 장기적 학습의 측면에서 볼 때 치명적이다. 위의 '활성-종합 모델'은 이러한 사실과도 잘 부합한다. 결국 '꿈'은 프로이트가 말한 것 처럼 뇌의 검열을 통과하는 숨겨진 기억과 야만적 감정의 산물이 아니라 뇌의 기억은행 속에 있는 정보를 재조직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수현상일 뿐이다. 

물론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활성-종합 모델은 꿈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의 주장처럼 꿈이 모두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해석 가능하진 않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작위적이진 않은 것 같다. 아마도 그 사이 어딘가에 자리잡은 복잡한 원리가 있지 않을까 추측하게 된다. 그것은 프로이트는 아니라도 융 심리분석의 원형일 수도 있다. 융의 이론이 뇌과학을 통해 슈퍼컴퓨터의 무수한 시뮬레이션을 거쳐 입증될지도 모른다. 인류 문화 전반에 걸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인간행동양상을 신화에서 찾아내는 작업과 유전자에 기초한 후성규칙에서 찾는 작업은 점차 그 거리가 좁혀져 이제 겹쳐지기 시작했다. 이런게 통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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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프로이트의 이론과 정신분석학이 전적으로 무용(無用)한 것은 아니다. 유용하다! 이들이 정신병 치료에 대한 충분조건이 아니라하더라도 여전히 심리분석없이는 치료를 시작하기조차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학적 기반은 전술한 바와 같이 취약하다.더불어 행동, 발달, 인지, 신경과학으로 점철되는 현대 심리학 작업의 첨단에 덧씌워진 무고한 혐의와 오해는 벗겨져야한다. 스킬(skill)을 얻는 쪽은 되려 정신분석학적 입장의 상담가들이다. 좋은 상담자가 된다는 것은, 수없이 많은 임상경험과 훈련을 요구한다. 그리고나서도 환자와 궁합이 맞지 않으면 부득불 실패하기 마련이다. 보편적 진리, 아니면 그에 가깝게 다가서려는 노력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진실은 '소통'이나 '공감'에 앞서 있다. 정신병의 원인이 되는 뇌의 생리적 결함을 발견하고 고치는 작업은 환자의 공감에 기대지 않는다. 

프로이트Freud(1856~1939), 그의 대표작 꿈의 해석,1900 으로 출판년도처럼 그야말로 20세기를 지배했다. 이 씹-쌔-기의 엿같은 시대배경의 덕을 좀 봤으리라. 세계대전도 있었고, 산업화도 한창이었고, 그런 낯선 환경이 낳은 정신병자도 증가했으니. 아니, 무엇보다도 성행위와 성적 억압에 대한 거리낌 없는 인정, 이것은 주효했고, 단연 최고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때문에 프로이트를 비난할지라도  나는 그 때문에라도 프로이트를 좋아한다. 하지만 좋아한다고 죽은 사람만 계속 붙들고 있는 건 어리석다. 프로이트가 살아있던 옛 시절에도 파블로프Pavlov와 스키너Skinner는 사람을 동물취급한다는 이유로 비난받았다. 지금도 그들은 생리학자, 행동주의 심리학자라고 호명될지언정,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대중에게 '심리학자'의 대명사가 되는 것과 같은 영광은 결코 누리지 못한다. 이는 마치 가장 좋아하는 과학자를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뉴턴, 아인슈타인 정도를 꼽는 것과 같다. (황우석 박사가 빠지는 바람에 몇 명 안되는 숫자가 더 줄었다. 개인적으로 다윈을 좋아한다.) 

그래서 지금은 21세기, 프로이트를 알고 기리되 그를 넘어서야한다, 그리고 일선에서는 이미 넘어섰다. 


나도 프로이트 좋아해요-  네, 죽은지 꽤 됐어요. 성격은 고약했어도 훌륭한 분이셨는데...

끝.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찌나 의심이 많은건지. 무자격 의사가 많았던 탓인지, '상담'이 인기가 없습니다. 외국에서는 실연 후 괴로움을 호소하며 돈 내고 상담을 받고 평온을 되찾는 경우가 흔하지만, 한국에서 최고의 상담가는 '술'인 것 같더라고요. 완전 광기어린 사람에게는 여전히 심심찮게 '굿'을 해주는 것도 볼 수 있지요. 정신분석적 입장이든 행동치료의 입장이든 '이상심리학', '상담심리학' 역시 척박한 형편이어서 안타까워요. 중고교에 전문상담교사를 배치한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어젯밤에 피아노 치는 여자를 다 읽었는데, 우워, 끝장이네요, 추천해봅니다. 전지현의 劍 아니었으면 일주일만에 다 읽기가 빠듯했을 지 싶은 약간 진도나가기 빡센 책이지만.  

  
 
 
 
병장 황민우 (20060729 134529)

훈재님 반갑습니다. 책마을 게시판에 제가 대답형식의 글을 달았으니 한번 읽어보세요.    
 
 
병장 고계영 (20060729 155758)

드디어 훈재 민우 크로스의 '퓨전합체 시너지효과!'가 풀가동되는 것인가... 
표까지 그려넣은 그의 2번째 랩 작열. 흠. 역시 모니터로 읽는 것은 힘이 들군요. 프린트프린트..2장ok. 
훈재&민우 '대담'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궁금한 것은 나중에 따로 질문해도 되는겁니까    
 
 
병장 김정훈 (20060730 101557)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반복가능성, 측정가능성, 경제성을 위시로 조금 빗나간, 프로이트에 대한 견해. 글 자체는 프로이트와 비과학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통섭적인 글로 기억되네요. 프로이트에 대해서 비슷한 생각이에요. 그래서 저를 기억하고 계셨는지도 모르겠네요. 
여담이지만, 통섭이란 책 이해하기 굉장히 어려워 100페이지 가량 읽다가 관물대에 처박아 뒀다는.. 
다윈을 좋아하는 심리학도라, 이거 굉장히 오묘한 조합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윈에 대해 진화론에 대해 말씀 나누고 싶어요. 다시 한번,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상병 이훈재 (20060730 154254)

계영  크으-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할 뿐이에요. 긴 글을 못 쓰는데, 이 글이 제가 쓴 것 중에 제일 기네요. 질문은 언제든지 환영이에요. 아는 범위에서 힘 닿는대로 답변할게요. 그런데 이 글 써놓고 보니까 좀 괜히 용어만 남발하고 어려워보이기도 하고 그렇네요. (저는 글이 어려운 건 글쓴이도 내용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정훈  반가워요. 굿바이 프로이트라는 책의 독서후기의 댓글에서 봤던 그 분 맞으시죠 방금 다시 검색해보았어요. 그런 맥락에서 이 글의 제목도 굿바이 프로이트 라고 써 볼까 하다가 그건 너무 4가지 없어 보여서 프로이트 할아버지로 정하고, 통섭을 향해 가려고 무진 애를 써봤어요. 

저는 그 책을 두 번 읽었는데 좀 낫네요. 군에 있어서 읽을 수 있었을지도. 생각난 차에 빌려준 거 돌려받으면 발췌독이라도 다시 해보려고요. 그리고 다윈, 최근에 각광받으니 저도 좋아요. 다윈에 관한 글 하나 써주세요.    
 
 
병장 김동석 (20060730 161721)

[프로이트를 좋아하세요  프로이트여 안녕] 이라면 프랑수와즈 사강의 오마주로도 적합할 터인데. 
어쨌든 파블로프나 스키너와는 달리 프로이트가 정감이 가는 것은 자신의 이론대로 여자에 휘둘렸기 때문일지도.(이론의 실천) 뇌과학보다 심리학이 더 인기를 끄는 건 그만큼 아직도 사람들이 덜 솔직하기를 바란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병장 강승민 (20060731 085646)

저두 아무것도 모르던(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고1때 문학(하)권에 나와있던 그글을 읽고 무지 감명을 받았었지요~흐흐 
피아노 치는 여자 오~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다는 쩝    
 
 
병장 김정훈 (20060731 121417)

훈재  맞아요~ 그 때 글을 남겼었더랬죠. 주로 눈팅만 해오는 편이라. 기억해주셔서 고마워요 헤헷. 
다윈에 대한 글보단 진화론에 대한 글이 괜찮을 거 같애요. 형편없는 실력이지만, 한번 올려보도록 할께요. 너무 기대는 말아주세요!!    
 
 
상병 이훈재 (20060731 202332)

동석  프랑수와즈 사강에 대해서 더 알려주세요. 처음 들어보았어요- 
아 그리고 원래 사람은 좀 고약해야 매력있잖아요 헤헤. 스키너도 자기 딸인가를 방에 가둬놓겠다 어쩌겠다 해서 좀 못 되먹었다는데, 욕만 디립다 먹은 듯 해요. 그리고 사실 뇌과학이 fMRI에 너무 의존하면 재미가 없기도 해요. 뇌에 피 쏠리는 사진을 보아도 인과관계나 작동기제를 쉽게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관련이 있는 것 같다는 정도에서 신기하고 흥미롭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요. 늘상 그런 이야기만 되풀이하다보니 질리기도 하고요. 물론 내막은 후속연구나, 이론적 가설을 세워 집요하고 깊이있는 연구들이 계속되겠지만 그건 대부분 일반 대중 뿐만아니라 보통 심리학 전공자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어려운 과학용어로 가득차 있을테니까요. 심리학 책들이 빈번히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과 비교하면 뇌과학 책이 가끔 선전하는 모습이 참 대견스러운 일입니다. 

승민  저도 그 때 참 감명받았어요. 야설 문학광의 자기합리화 도구로도 딱 이었고요 히히. 피아노 치는 여자 마냥 좋기에는 너무 독설적인가요 결국 주인공은 남자를 찌르지 않고 자기 어깨를 찌르고... 

정훈  진화론에 관한 글, 기다릴게요! 사회생물학이나 진화심리학에 관심이 있거든요. 그리고 저도 별 볼일 없어요. 벌써 무얼 써야하나 짱구 돌리는데 딱 땡기는 게 없어요. 그래서 그냥 날림으로 뭐든 써 볼까 생각하고요. 파이팅입니다!!!    
 
 
병장 김동석 (20060801 075351)

프랑수와즈 사강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슬픔이여 안녕』의 작가입니다. 아주 좋은 작품이지요.    
 
 
상병 김청하 (20060801 111256)

지난번 칼럼보다 조금 어려운 내용이긴 합니다만, 전반적으로 즐겁게 읽었습니다. (인지)신경학이 심리학을 열심히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심리학도 신경학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는 하나의 학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먼 미래겠지만. (그 전에 민간인이 될 수 있을까.. 병장 이훈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잠깐)   
 
 
병장 주영준 (20060801 190510)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오오. 전공 칼럼 풀어내기의 무서움(나. 나는 대체 언제)    
 
 
 병장 박진우 (20060801 191842)

박종민-제레박 연합 광고학 칼럼이라도 연재해야할 분위기인데 이거    
 
 
상병 이승일 (20060801 192037)

재밌게 읽었습니다. 사실 프로이트 자신이 유물론자였고, 신경과학자였습니다. 새우의 신경계를 연구해서 학위도 땄죠. 하지만 신경계를 연구해서 인간의 심리까지 도달하려면 너무 오래 걸릴 것이라는 점을 프로이트는 알았고, 순수 현상학적인 심리학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러나 그도 결국 자신의 정신분석학이 신경과학으로 흡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상담을 싫어할까 ... 라는 문제는 참 재밌는 것 같네요. 자기 심리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해서가 아닐까요 누군가에 의해 분석받는걸 싫어하고 ... 
청하 그 전에 민간인이 된다에 만원 걸겠습니다.    
 
 
상병 김청하 (20060802 014341)

승일 ...과연 통일 되기 전에 민간인이 될 수 있을까요. (덜덜)   
 
 
병장 이훈재 (20060802 140633)

동석  감사합니다. 차기작 리스트에 올려놓아야겠다. 

청하  쪽지로 이야기 나눈 '우려했던 문제'가 드러났어요. 쉽고 재밌게 가면서도 내용을 담아내야하는데, 일단 낯선 용어가 일정 갯수를 넘어서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도 같고요. 프로이트의 유명세에 지나친 기대를 거는 바람에, 프로이트 식으로 진행하는 실제 상담을 예로 드는 것을 빼버린 것이 좀 후회도 되고요. 진우 씨가 자주 외쳤던 것 모냥으로 이제는 사실 모든 분야에서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대죠. 먼 미래가 아니라 현재, 우린 다 민간인이 되서 이 일에 앞장서게 되겠지요. 절대 '지민씨급' 이런 걸로 상심말아요 홍홍 

영준  교육학 3부작 잊지 않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 교육학 좋아합니다. 

진우  기대할게요. 진우씨 결심만 하면 종민이 놈은 제게 맡겨도 좋음 후훗. 이 놈 아까도 눈 뜨고 자고 있는 데, 가슴팍에 읽던 책이 예쁘게 사뿐 앉아있기에 봐줬음. 

승일  와. 역시 프로이트는 만만히 볼 사람이 아니군요. vision쪽으로 연구하는 어떤 심리학과 교수님 방에 갔더니 보기에 따라 여자의 나체 그림으로도 볼 수 있는 프로이트 옆얼굴 그림이 걸려있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서 상담이 크려면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같은 TV프로라도 더 인기를 끄는 게 나아요. 행동치료아닌 일상적 상담이 활발해지기가 쉽지 않은 거 같아요. 서양과 다른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의식에 관한 연구를 알고 있었는데 기억이 잘 안나요. 젠장. 갑자기 흥미가 생기는데! 아무튼 상담, 타로카드 카페나 고민 상담해주는 미녀 바텐더라던지 이런 쪽이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승일 씨도 곧 병장    
 
 
상병 김청하 (20060803 105016)

훈재 음, 저는 사람들은 모르는 용어가 몇 개 이상 나오면 무너지며, 이 때 글의 난이도와는 관계없이 각 개인의 고유값이다 가설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몇 개'는 글 자체보다는 여러가지 '사회적'인 척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는데 이거 어떻게 증명해야 할지. 글을 올리고 어디까지 읽으셨습니까, 하고 물어볼 수도 없는거고 말이지요.   
 
 
병장 이훈재 (20060804 172037)

청하  제가 가독성(readability) 연구 및 실험을 해 본 경험이 있는데 정말 쉽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글을 어떤 식으로 읽는 지 모르기 때문에, 글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하기도 하고, 글 속에서 완전히 말도 안되는 문장을 찾아내라고 하기도 하고, 글을 무성의하게 읽을 것을 우려해서, 글 읽기 전에 미리 다 읽은 뒤 글에 대한 찬반의 입장을 물어볼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기도 하고요. 별로 말끔한 결과를 얻진 못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