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野譚)1 
 
 
 
 
비오는 여름밤.

어두운 밤 너머 들리는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로 밤샘 근무가 심심하지 않다. 
멀지만 가깝고, 깊지만 얕은 그 소리.. 나는 지금 한권의 책을 읽으며 희미한 새벽을 보내고 있다. 읽고 있는 책은 한권으로 재미있게 읽는 조선왕조오백년야사. 상당히 두꺼운 책인데 내용은 가볍고 정감있다. 마치 옆에서 늙은 교수가 손자에게 말해주는 역사이야기라 할까 이미 알고 있던 것의 되새김과 새롭게 알게 되는 것에 대한 신선함. 지식의 교감은 늘 담백하다. 이 담백함이 책 읽는 재미중 하나다.
                                     
책을 읽고 있던 도중 잠시 소변이 마려워 소(所)내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있는데 우연히 소변기 위에 앉은 작은  청개구리를 보았다. 어떻게 여기까지 기어 올라왔는지 약간 놀랐다.

살짝 손가락으로 집으면 터저버릴 것 같은 작은 청개구리.
밖은 어둡고 소(所)는 밝으니 사람이 아니더라도 살아있는 것들이 기웃거리는데 그중 개구리는 어디서 나타나는 건지 모르겠지만 하나 둘씩 펄적 펄적 뛰며 나타난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만난 청개구리를 자세히 보니 귀여운 구석이 보였다. 자르르 윤기가 흐르는 매끈한 피부, 시선이 어딘지 모르지만 무언가를 바라보는 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변화없는 표정. 소변을 다 보았는데도 나의 시선은 청개구리에 고정되었다. 그러던 중 청개구리는 어디론가 뛰기 시작했다. 그 작은 것이 잘도 뛰었다. 몇번 뛰더니 반대쪽 문뒤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바지를 올리고 화장실을 나왔다.

돌아와보니 사관(司官)은 자고 있었다. 나는 다시 책을 읽었다. 100페이지에서 200페이지로 넘어가던중 피곤함에 기지개를 켰다. 천장을 보니 형광등은 무의미한 파동으로 내리 쬐고 파리들은 죽은 듯 굳어있다. 주변에 켜 놓았던 모기향은 거의 다 타고 있었고 적막 가운데 사관(司官)의 규칙적인 숨소리만 들린다. 다시 책을 집어들어 읽다가 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근무교대 한다는 말에 눈을 떴을 때 소(所) 창문 너머로 변 상병(兵)이 서있었고 나는 교대하라는 손짓을 지었다. 불편하게 자서 그런지 몸은 인위적으로 꼬여있고 기분은 녹슨 쇠톱같다. 사관(司官)은 아직까지 자고 있다. 대체 언제까지 잘려고 하는지.. 이제는 잠꼬대도 한다. 굳어버린 의자를 의지한 채 허리를 돌렸다. 뼈마디가 추어지는 것 같은 소리에 나도 놀란다. 다시 허리를 반대편으로 돌렸을 때, 졸음으로 무거운 내 두 눈에 재미있고 기이한 풍경이 보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작은 청개구리 10 ~ 15 마리가 소(所)안에서 제 집인양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내 눈을 의심했지만 그건 분명 화장실에서 보던 딱 그만한 크기의 청개구리들이였다. 방충망에 붙어있는 개구리. 바닥에서 머뭇거리는 개구리. 쓰레기통 위에 앉아있는 개구리.. 개구리들은 저마다 다른 쪽을 바라보고 있다. 숨쉬는 것을 빼고는 움직임도 없다. 시간의 차이에 따라 때가 되었는지 그들은 뛰었다. 어디로 가는 지, 왜 거기를 가려고 하는지, 거기에 가면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는 그들의 뜀뛰기를 잠시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지루했는지 허리를 돌려 잠을 잔다.

다시 눈을 뜬 것은 동틀 무렵이었다. 해가 뜨려는지 새벽의 파란 빛이 옅다. 문득 꿈에서 본 것 같은 현실에 의자 뒤를 돌아봤지만 개구리들은 없다. 아무 곳에도 없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소(所)안에는 그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무언가가 있었다고 말하기 전에는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있었다고 말해도 믿지 않을 것 같은 그런 픽션이 되어버렸다. 그때 창문너머로 변 상병이 근무교대를 위해 서 있었다. 순간 바라본 변 상병의 얼굴은 개구리였다. 그리고 날 보고 웃으면서 말한다. 

서 병장님 근무교대 하겠습니다.    

나는 멍하게 바라봤다. 변 상병은 어디론가 가버렸다. 
비는 그쳤다.사관(司官)은 아직도 잔다. 나는 혼자 남았다. 나도 어디론가 가버리고 싶다. 다시 잠을 잔다. 

  
 
 
 
상병 김현동 (20060729 041338)

잘 읽었습니다. 서범님의 첫 칼럼. 
글이 서범님 이름과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병장 엄보운 (20060731 101612)

담백.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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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병장 박진우 (20060731 145023)

운치있군요. 한자어의 적절한 활용. 
역시 서범님.    
 
 
병장 조주현 (20060801 093822)

잔잔하다    
 
 
병장 주영준 (20060801 134421)

드디어 출동하셨군요. 잠자던 정파의 작문계 인사들이 두려워지는 요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