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폴라로이드 파노라마 
 
 
 
 
Fiction입니다
그러니까. 칼럼과 두 가지로 달라요. 하나는 현실과 관계가 없다는 거.
하나는 저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전제 및 배포를 금한다는 거.



  폴라로이드 파노라마








  헤어졌다.

  그녀와, 헤어지게 되었다. 까뮈는 삶이 왜 부조리한 것인지에 대해 묻지 않았다. 부조리로부터 삶을 시작했을 뿐. 마찬가지로 나 역시 묻지 않았다. 다만 까뮈는 '대답하지 않는 세계에게 무한히 질문하는 것'으로 부조리로부터의 삶을 이끌었다. 마찬가지로 나도 두어 달 동안 대답하지 않는 그녀에게 무한히 질문하였다. 왜. 왜. 왜. 내가 싫은 거니. 그가 그렇게도 사랑스럽니. 나와 사랑하면 안 되겠니. 그리고 삶, 시작이다. 생물학적 삶이 어머니의 고통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인간학적 삶은 인간의 고통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일까. 아니 아니, 상관없다. 이제는 무감각하다. 아픔에 익숙해질 수 있는 인간은 없다. 다만 무감각한 인간이 남는 것이다. 이렇게, 나처럼. 마찬가지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거짓이다. 다만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7년.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아니. 절대적인 시간이었다.

  막 태어난 아이에게 있어 자궁 안의 열 달이 절대적인 시간인 것처럼. 그러나 누구라도 그 열 달의 시간을 잊어버리고 만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세상은 자궁처럼 따뜻한 곳도 축축한 곳도 아닌 주제에 미친 듯이 밝다. 우스워서 눈물이 날 정도로. 그런 곳에서 살아가다 보면 따뜻하고 축축하고 어두운 곳에서 지낸 날들을 잊기 마련이다. 아니. 그래야 살아갈 수 있는 건가. 아니. 아니. 아니. 모르겠다. 그저 친구가 필요하다. 세계는 나를 꼬옥 안아주는 그런, 따뜻한 자궁 같은 곳은 아니니까. 7년. 수정란이 착상하고 분열하고 손발이 생기고 해서 아이가 되는 그 열 달 동안 나는 대학에 입학하고, 군대에 가고, 제대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갔다. 그리고 이렇게 태어났다. 조인우. 생후 2개월. 어머니는 없다. 두 어머니 모두 다른 남자에게 가버렸다.

  덕분에 정신없이 친구들을 만났다. 정신없는 친구들을 만난 것일까. 오랜 친구들. 새로운 친구들. 나 돈 없어. 요즘 아르바이트도 못 하고 있어. 비정규학번-그러니까 4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사람들-에서 비정규직으로 업종을 전환한 친구들에게 전화. 전화. 전화. 술. 사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걸 잃어버렸어. 그리고 침묵. 친구들의 하나같은 답변. 너. 헤어졌구나. 응. 너희들은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런데 그녀 왜 나를 떠나갔을까. 그녀 왜 내게 너는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눈물은 술잔을 채우기 위해 남겨두어야 할 것 같아 그 정도로 전화를 끊고 술을 마시러. 때로 울기도 하고 때로 웃기도 하고 미친 듯이 웃기도 하고. 사랑을 잃기 전과 다름없는 나날들. 다만 조금 달라진 웃음과 눈물의 비율. 하지만 모든 것은 비율의 문제. 백프로 행복한 삶은 누구에게나 불가능해. 그렇다고 해서, 아니 어쩌면 그렇기에 팔십프로 행복한 삶은 칠십프로 행복한 삶보다 질적으로 행복한 거야. 쓸데없는 이야기들.

  그런 삶 속에서 그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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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각이와의 술자리. 장소는 신촌. 신촌에 사는 정치학과 대학원생 백수의 홈그라운드. 그러나 대학원생 백수에게는 홈그라운드마저도 적대적. 달빛보다 얇은 지갑. 고인 빗물처럼 흐르지 않는 시간들. 그런 속에서의 술자리. 인원은 셋. 나. 현각. 현각의 애인, 린아. 쓰리섬을 위해 나쁘지 않은 인원. 물론 목적은 스리섬이 아닌, 위로. 불쌍한 인우를 위한 위로. 완결된 문장으로 끄적이고 싶지 않은 기분.

  오랜만이야
  응. 그래 오랜만이다

  생각해보니 두 달 전부터 인터넷을 전혀 쓰지 않았다. 자취방에서 빈둥거리는 주제에. 랜카드를 뽑아버린 노트북을 도구삼아 이것저것 끄적거리고는 했다. 내가 전화할 때를 빼고는 핸드폰을 켜 두지도 않는다. 자취방에 집전화같은 것이 있을 리가 만무하고. 고립된 삶. 다만 내가 연락하고 싶을 때만 연락한다. 하지만 그래서 연락할 수 있는 친구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내가 연락하고 싶을 때 연락이 닿는 친구를 놓칠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나는. 그래서, 오랫만에 전화를 해 본, 그나마 최근에 사귄 친구. 그리고 린아. 그의 애인. 전에 한 번 현각이와 함께 본 적이 있는. 특이한 이름 덕에 절대로 잊기 힘들.

  잘 살고 있냐
  그럴리가
  그렇겠구나

  잘 살고 있는데 비 오는 날 친구와 친구 애인과 술을 마실 리가 없잖아. 다행히 눈물을 보이는 대신 실없는 웃음을 흘릴 수 있었다. 창문 밖으로는 비가 흐르고. 술잔으로는 술이 흐르고. 그렇게 여름밤은 우리의 곁으로 흘러가고. 재미있는, 친구들. 친구란 좋은 것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나는 그 사실을 잊고 있었는지. 멍하니. 아무 이야기 없이 맥주잔을 기울이고. 미친 듯이 떠들고. 웃고. 비가 오고. 스피커에서는 너바나의 'Heart shaped box'가 흐르고.

  ...나는 그대의 심장 모양의 상자에 몇 주간 갇혀 있었네...

  몇 주간 그녀의 심장 모양의 상자에서 내쳐져 있었다. 노래를 중얼거린다. 이야기한다. 즐거운 그. 그녀. 내 앞에 있는 행복한 그와 그녀. 그리고 내게 보이지 않는 행복한 그녀와 그. 아니.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눈 으로 비가 내린다. 우는 일은 나중에. 비를 맞으면서 하자. 우산으로 가려지지 않는 비가 눈 앞을 흐를 때 즈음에 자연스럽게 생각하면 된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 사이에만 사랑이 존재할 수 있어.

  허튼 눈물을 피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허튼 소리. 그렇게 또 나는 허튼 소리를 시작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어. 나와 그녀를 묶어줄 수 있는 말. 눈 앞의 그와 그녀를 묶어줄 수 있는 말. 그리고 내게 보이지 않는 그녀와 그를 떼어줄 수 있는 말. 이쯤되면 말이 아니라 어떤 주문이나 진언이 아닐까.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말야. 총체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모든 것을 나눌 수는 없겠지만. 되도록 많은 것을 나눌 수 있어야 해. 그리고 자기 삶의 목적이란 건 중요한 거잖아. 같은 길을 걷지 않는데 어떻게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거지

  그리고 이어지는 나의 조잡한 연애론. 스스로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두 달 동안 하릴없이 진행했던 지적 유희. 전공과 삶을 때려치고 사랑에 대한 철학적, 일 것 까지는 없는 수상한 고찰에 매달렸다. 그런 결과물. 7년의 세월을 두 달에 압축하는. 그러나 이미 시대착오적. 그리고 횡설수설. 횡설수설을 잘라먹는 린아의 한마디.

  그래. 그럴 수도 있겠는데. 그런 걸 가지고 남의 사랑을 재단할 수는 없잖아
  물론이지. 그저 나의 사랑이 그렇다는 이야기야. 적어도 지금의
  그런 식이라면 너는 길하고 친해질 수는 있어도, 사람하고 친해질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사람도 길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그리고 이어지는 이런저런 이야기들. 기독교에서 시작해서 어떤 정치인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정신병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다가 불교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룰루랄라.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GO를 쓴 작가 가네시로 카즈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첫 작품인 GO는 좋았지만 이후의 작품들은 최악이었다. 플라이 대디 플라이는 그 중 단연 최악이었다. 멋져 보이는 폼을 너무 많이 잡는다. 하지만 그건 중간에 쓴 레볼루션 No.3도 똑같지 않냐. 응. 그런 것 같아. 하지만 그의 최악은 역시 ‘플라이 대디 플라이’지. 하지만 그런 식으로 첫 작품을 아름답게 쓰고 나중에 폼만 잡다 망한 작품은 많다. 왜. 그 만화. '상남 2인조'는 나이스였는데 '반항하지마'는 쓰레기였던 것처럼. 그런데 GO 영화 봤니 응. 나쁘지 않다던데. 난 안 봤는데. 플라이 대디 플라이도 영화화된다더라. 이준기가 출연하나 그렇지 않나. 젠장. 그런 걸 영화화하다니. 그래 그 말 들으니까 갑자기 민트 초콜렛이 먹고 싶다. 린아씨는 단 거 좋아하는구나 응. 그리고 그냥 민트를 좋아하기도 해. 그래 나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아. 다만 민트 쥐레프는 한 번 먹어보고 싶어. 그게 뭔데 몰라. 한 번도 실제로 먹어본 적은 없는데. 민트와 관련된 술 아니면 차인 듯. 페니로얄티도 괜찮을 것 같아. 너바나 노래에 있잖아. 김윤아가 리메이크하기도 한. 앉아서 페니로얄티를 들게나. 페니로얄 티, 민트 차라고 알고 있는데. 현각씨도 말좀 하지 푸훗. 현각이 아직 어려서 이런 이야기 잘 모른단 말야. 아니 내가 뭐 얼마나 어리다고. 너희랑 한 살 차이밖에 안 나잖아.

  장마 때 쏟아지는 비처럼, 끊어짐 없이 쏟아지는 유쾌한 이야기들. 즐거움. 위안. 세상에. 여자애한테 위안을 받게 될 줄이야. 하긴, 내가 아팠을 때 가장 아파해 준 친구의 연인이다. 그 정도의 신뢰는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만남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게다가 첫 번째 만남에서 나는 순식간에 필름이 끊겨버렸다. 첫 번째 만남 하루 전날, 7년간 사랑해왔던 그녀와 헤어졌으니까.

  몇 잔의 맥주를 마시는 동안, 비는 그치지 않았다.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밤은 더욱 어두워졌다. 그래서일까. 비 더 많이 내리는 것 같기도 하고. 눈 앞 그들의 연애 이야기를 듣고 위안을 받고 나의 연애 이야기를 하고. 차피 나는 나를 떠난 그녀를 기다릴 생각이니까. 그녀는 어차피 내게 돌아올 수 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밤. 미드나잇. 열두시. 집에 갈 시간이다. 현각이는 내일 고향에 내려가봐야 하니까. 그러나 나는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적당히 취한 채 텅 빈 방에 들어가는 것만큼 공포스러운 것은 없다. 한때 그 공포를 이겨내려는 심산으로 언제나 머리가 돌아버리도록 술을 마시다가 수전증에 걸린 적이 있을 정도로.

  린아씨. 안 바쁘면 나랑 술좀 먹자. 현각이는 이만 보내고
  어. 그를까.
  현각아. 나 돈 좀 빌려줘. 보시다시피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

  천천히, 천천히 그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내게 주었다. 귀여운데다가 소심한 녀석. 마치 나 같은 녀석. 그랬으니까 아마 내가 울 때 그렇게 함께 울어 주었겠지. 힐끗. 나를 한 번 쳐다보고 돈을 준다. 소심한 남자가 쿨한 척 하는 것은, 커트 코베인이 월드컵 주제가를 부르는 일 만큼 어색하다. 그 만큼 힘든 일이니까. 그리고 인사. 안녕. 잘 가. 그리고. 아니, 내일 아침 차 타고 가야겠다. 같이 놀자. 그래. 일단 자리를 옮기자고.

  하하. 나와 나의 그녀와 나의 그녀의 그가 처음 만난 것도 이런 식이었는데. 아까 거기서 그렇게 맥주를 마시고 나서, 배는 고프고 더 놀고는 싶고. 그래서 여기서 지금처럼 오뎅탕을 시켜먹었는데. 베에엑. 메롱. 어떤 말이라도 상황이라도 친구들과 웃으면서 떠들면 농담이 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으며 우리는 그렇게 즐거운 하룻밤을 보냈다. 다만 안타깝게도 현각이 녀석. 피곤한 지 중간에 결국 잠을 이기지 못하고 누워버렸다. 얼마만일까. 사랑을 시작한 이후로 한 여자애와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 아니. 비겁한 혼잣말이다. 보다 정직하자면 이런 것이다. 얼마만일까. 4년 전, 두 여자를 한번에 사랑함으로써 나의 그녀에게 상처를 준 이후로 한 여자애와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한 것은. 여자애의 핸드폰 번호를 내 핸드폰에 저장하게 된 건. 그리고 첫 차에 실려가는 그들에게 인사하고, 나는 나의 집으로 돌아왔다. 편의점에서 소주를 한 병 사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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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어났다.

  오후 두 시. 이상하게도 새벽까지 술을 마시면 절대 수면 시간이 줄어든다. 새벽 세시에 잠에 드나 아침 여덟 시에 잠이 드나 두 시면 깨어나곤 한다. 물론 똑같은 시간에 깨어난다고 해서 똑같은 컨디션인 것은 아니다.

  삼분의 일쯤 남은 소주병이 탁자 위에 서 있다. 결국 다 마시지는 못했구나. 한 모금 넘기고, 잠시 입에 물고 있다가 이내 뱉어버린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스스로 비참한 것 까지는 용서가 되는데 비루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그다지.

  핸드폰을 켜 본다. 하도 오랫동안 날아온 문자들을 무시한 덕에 안부 문자 같은 것은 더 이상 오지 않는다. 멍하니. 담배를 입에 문다. 왜 담배는 혼자 피우고 있어도 비루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머리가 조금 더 멍해진다. 강 위로 뜨는 안개가 더욱 짙은 것처럼, 알콜 위를 부유하는 담배 연기는 그렇게 치명적이다.

  문자를 보낸다. 린아씨. 안 바쁘면 술이나 마시자. 문자가 온다. 그래 누구누구 오는데. 응. 인우랑. 조인우랑. 그렇게 두 명. 어제랑 똑같이 셋이 마시는거지. 이내 문자 대신 전화가 온다. 어디서 볼까. 신촌. 아 나 집 너무 멀어. 그러면 어떻게 해 대학로는 어때. 대학로. 대학로라. 버스 타고 가면 한번에 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내가 버스 노선을 몰라. 그러면 지하철 갈아타고 와. 여섯 시. 늦지 말고. 4번 출구에서 보자. 그래.

  전화를 끊고 후회했다. 미친. 뭐 하는 짓이야. 고향의 아버지한테 얼러 받은 생활비도 바닥을 긁고 있다. 아니, 그런 게 핵심이 아니잖아. 남의 연인한테 데이트 신청이라니. 아니. 데이트 신청은 아닌 것 같은데. 모르겠다. 잠깐 생각하다가 생각하기 귀찮아서 담배를 또 한 대 피웠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잠시 생각을 하기 위해서 담배를 피우곤 하는데. 7년간의 사랑이 끝난 후에 정상적인 상태란 존재하지 않는다. 비일상의 천국. 창문을 열지 않은 채로 좁은 방에서 두 개 째의 담배를 피우는 것은 좋지 않기에, 창문을 연다. 한 두 방울 세 네 방울씩 방 안으로 난입하는 빗방울. 저리 가. 들어오지 마. 내 방은 너무 좁다구. 그래도 자꾸 들어온다. 그렇다면 내가 나가주지.

  지하철을 타고 대학로로 향한다. 오랜만에 가 보는 대학로. 밖으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지하철은 무한의 상념을 선물한다. 노선이라도 알아보고 버스 타고 갈 껄.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을 텐데. 귀에 꽂은 이어폰으로 음악이 흘러나온다. 군청 일화. 파랗게 맑은 날씨, 라는 제목의 일본 음악. 한곡반복재생.

  ...신주쿠엔 비가 와. 너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제목에 대한 기대를 나쁘지 않은 방식으로 채워주는 노래. 재료공학과로 대학에 들어가 정치학과로 대학을 졸업한, 사진을 공부하고 있는 어느 친구가 대학로의 어느 갤러리 까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삼 일 전이었나. 대학로. 나의 그녀의 그가 살고 있는 곳인데. 거리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아니, 대학로는 좁지 않다. 덜커덩. 덜커덩. 서로에게 고개를 기대고 있는 맞은편의 소년 소녀들. 버스를 탔어야 했는데. 마주 본 채 앉아서 갈 수 밖에 없는 지하철. 갈아타는 역. 우르르 움직이는 사람들. 배터리가 떨어져가는 MP3 플레이어. 충전. 했어야 하는데. 아. 돈. 안 갚았구나. 학비를 벌기 위해 몇 개씩 일을 하는 그녀에게, 집에서 꼬박꼬박 돈을 타다 쓰는 나는 기껏 MP3를 사기 위해 돈을 빌리고 아직 안 갚았구나. 아. 젠장. 그리고 바닥을 긁는 통장 잔고. 생각하기 싫어. 생각하기 싫어.

  10분 정도 늦게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대학로에, 너무 오랜만인지라. 집에서 여기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잘 몰랐다. 저 멀리로 그녀가 보인다. 뭘 하고 있는 거지 나는.

  ...전략 따위는 전혀 없어. 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뇌가 물기를 빼앗기고 메말라...

  음악이 주는 암시 따위에 마음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 음악을 꺼버린다. 늦어서 미안. 지하철이 너무 막히더라고. 서울시는 지하철을 좀 줄여야 할 필요가 있겠어. 습관화된 농담일지라도 새로운 사람에게는 즐겁다. 여름 날. 장마. 따뜻하지는 않은 날씨. 그렇다고 춥지도 않은 어두운 어느 날. 뭐라도 좀 먹을까. 아니. 귀찮아. 좀 걷자.

  그렇게 조금 걸었다. 특별한 지향점 없이. 중얼거리면서. 나는 이상하게 생에 대한 강박을 느끼고 살아가는 것 같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의미한 것 같아. 그래서 잠깐 기다렸다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10분만 가면 되는 곳을 삼십 분 넘게 꾸물꾸물 걸어서 가곤 하는 타입이야. 그래서 영화나 애니메이션 대신 책이나 만화책을 좋아해. 페이지는 내가 넘기는 거지만 프레임은 시간이 넘겨주는 거잖아. 그게 끔찍해. 소설을 쓴다고 앉아서 정치사상 같은 재미없는 것을 전공하는 이유도 그런 게 아닐까. 내가 만들지 않은 세상에서 사는 일은 유쾌하지 못하니까.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거야. 지금 이렇게 걷고 있는 게 좋아. 이렇게.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 보다는. 게다가 비까지 오잖아. 아프다. 이상하게 비가 오면 심장이 빠르게 뛰는데. 행복할 때는 비가 오면 죽을 것 같이 행복한데. 지금은. 아. 아. 음. 저기서 잠깐 비를 피해가는 게 어떨까. 마로니에 공원의 구석, 어느 이동통신사가 만들어 준, 비를 피할 수 있는 거리무대를 가리키며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떠들었다. 빌어먹을, 강박증. 그런 강박 때문에 나는 두 달 동안 그녀에게 온갖 언어를 쏟아부었다. 그게 아닌데. 그게 아닌데. 그리고 지금 그녀에게 온갖 헛소리를 쏟아부으며, 쏟아지는 빗속을. 그게 맞나. 그게 아닌데.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선 채로 잠시 쉬었다. 유리로 된 지붕 아래의 무대와 의자는 이미 충분히 젖어 있었다. 장마였다. 소나기가 아니라. 며칠 전 부터 내리기 시작한 그런 장마. 세상의 모든 곳이 자궁처럼 축축할지도 몰라. 지금이라면.

  어디로 갈까. 무엇을 할까. 글쎄. 그림이라도 그릴까. 어머, 종이랑 연필을 안 가져왔어. 항상 가지고 다니는데. 뭐야. 미대생이 그림도구도 안 가지고 다니고. 그런데 볼펜 있냐. 나 필기구 하나도 안 가져왔다. 뭐야. 글 쓴다는 녀석이 필기구도 안 가지고 다니고. 사는 게 그런 거지. 나. 이상한 징크스가 있어. 뭔데 이상하게 어떤 물건을 가져올까 안 가져올까 고민하다가 가져오면 쓸 일이 없고, 안 가져오면 쓸 일이 생겨. 그림 그릴 꺼 가지고 올 껄.

  에이. 뭐. 술이나 먹으러 가자. 대학로에 아는 집 좀 있어 집에서 가깝다면서.
  응. 몇 집 있어.
  가자. 오늘은 당신이 안내하세요.

  술이나 먹으러 갈 것처럼 한두 걸음 걷다가 다시 멈추고. 건너편 화장실 벽에 흐릿하게 남아 있는 낙서. 저거 내가 그렸는데. 학부생이던 시절에. 그림은 재미있는 것 같아. 그림이 재미있어서 저런 걸 그린 건 아니었지만. 사실 나는 미술을 그다지 잘 알지 못한다. 그저 관심만 조금. 밤의 화가 로트렉이나 광기의 화가 고흐 따위의 뻔하고 대중적인 취향을 가진 정도. 그림은 전혀 그리지 못한다. 저 그림은 무슨 정신으로 그렸을까. 아마 정치적인 어떤 상징이었을텐데. 글을 쓴답시고 이것저것 주워섬기던 시절 주워들었던 미학 이야기 몇 가지가 떠오른다. 그리고 고흐. 고흐. 갑자기 떠올랐다. 

  “고흐 말인데. 광기에 찬 예술가라고는 하는데, 내 눈엔 그렇게 안 보여. 비록 그의 그림들은 열정적이고 비이성적인 어떤 광기를 보여주는 그림들이지만, 내 생각에 그는 정말 천천히, 진지하고 진득하게, 결코 붓을 마구 휘두르는 게 아니라 계산적으로 냉정하고 섬세하게 그렸을 것 같아. 아마 지금 그가 태어나서 컴퓨터 그래픽스를 한다면, 결코 함수나 툴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도트가 모니터 반 만하게 보일 정도로 최고로 확대해서 일일히 수작업으로 점을 찍었을 것 같아. 결코 저기 화장실 벽에 있는 낙서를 그린 사람처럼 그리지는 않았을 꺼야”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고 싶었다.

  오. 정확해

  라는 미대생의 말을 듣기 위해서였나. 그런 건 아니었을 텐데. 그런데 고흐가 정말 그런 녀석이었나. 느낌이라는 건 의외로 믿을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흐. 그렇게 그려주어서 고맙네. 당신이 대충 붓 가는 대로 와일드하게 그렸으면 내가 어쩔 뻔 했어. 고흐 덕분인지, 생각하기도 조금 편해지고 다시 어디론가 가고 싶었다. 아니, 그냥 어디론가 갔을 것이다. 그녀가 폴라로이드를 꺼내지 않았더라면.

  오. 폴라로이드다“

  응 의아해하는 그녀. 폴라로이드가 뭐가 어때서, 라는 표정으로.

  “3일전에 사진 공부하는 내 친구가 나보고 하나 사라 그랬는데. 넌 딱 폴라로이드라고
  응. 내가 봐도 넌 딱 폴라로이드야.
  그런데 폴라로이드. 비싸지 않냐. 그래서 난 폴라로이드 타입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상관 없어. 현각이가 사준거거든. 필름이야 인터넷에서 한번에 왕창 사면 싸고

  그렇게 이것저것 살펴보고,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드디어 발걸음을 옮겼다. 잔뜩 굳은 자세로 일곱 시 사십 분을 가리키는 시계판 위로 빗방울이 흐른다. 가자. 오늘은 내가 안내할께요. 비록 대학로에는 적대적이지만. 한 군데 정도 괜찮은 곳은 알고 있어. 강박증이라니까.

  7년간 가끔 대학로에 오면 들르곤 했던 아사히 맥주 직영점. 레스토랑과 호프의 중간 정도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적당히 부담을 주는 가격에 위에 그다지 부담을 주지 않는 양을 자랑하는. 나는 미친 걸까. 통장 잔고. 오늘을 살고 죽는거다. 라는 낭만을 믿기보다는 월말이고, 방학이다. 며칠만 자취방을 뒹구는 것이다. 함께할 사람이 없으면, 돈을 쓸 일도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습관처럼 2층 흡연석으로 올라간다.
  
  대학로에서는 좋은 추억이 없어. 여기선 거의 항상 싸우기만 했던 것 같아. 아. 하나 있구나. 둘이 완전히 취해서. 그 애를 들고 종로까지 걸어가본 적이 있어
  그 정도면 괜찮네
  글쎄. 7년을 상징하기엔 그다지. 역시 이 곳은 내게 적대적인 곳인 것 같아

  며칠 전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심했다던 그녀와 고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 다행히도 시푸드 샐러드로 귀결. 그리고 맥주를 조금씩 마시며 이야기들을 마셨다. 두 달 전의 나라면 혼자서 한 접시를 먹을 수 있었을 텐데. 삶은 살아본 만큼만 알 수 있다. 예측하지 못하는 일들이란.

  왜 널 보면 맛있는 걸 먹고 싶을까
  응 너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몇 번이나 봤다고. 아마 오늘이 세 번째일 텐데. 첫 번째는 너 본 거 기억도 잘 안 나는데 사실
  흥. 난 기억나는데. 그 날 만난 현각이 친구들 중에 제일 귀여웠다고 네가
  요시모토 바나나 단편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 식욕과 성욕은 같은 거라고
  응 나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이런 미친.
  그 이야기 때문에 여자친구가 바나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난 그 이야기 때문에 바나나에 잠깐 빠질 뻔 했고. 아니, 실제로 잠깐 빠져 본 것 같기도 해. 아. 그 대사가 나오는 게 이런 식이야. 한 남자와 여자가 나오는데, 남자인지 여자인지가 조금 먼 곳에서 파는 돈까스가 너무 먹고 싶어서 차를 타고 가서 두 시간쯤 걸리는 곳에서 돈까스를 사 와서 그걸 먹으면서 하는 이야기야. 담담한 어투를 가장한 횡설 수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그냥 맛있는 맥주를 마시는 수 밖에.

  그리고 이야기하는 수 밖에. 넌 왠지 인상파를 좋아할 것 같아. 아마 보통 사람이라면 네게 포스트모던이나 팝아트를 좋아할 것 같다고 이야기할 것 같지만. 오. 어떻게 알았어 응. 그냥 느낌이야. 이러니저러니 해도 너는 안이 따뜻한 사람인 것 같거든. 맞아. 특히 드가이를 좋아해. 드가이 당연히 모르는 화가인데. 아. 그냥 인상파 화가야. 음악은 특별히 좋아한다고도 싫어한다고도 하지 않을 것 같고. 어. 맞아. 굉장한데. 칵테일은, 글쎄, 모르겠다. 이상하네. 왜 모르겠지. 다른 건 모르겠지만 상대가 좋아할 것 같은 칵테일에 대해서는 틀린 적이 없었는데. 네가 어떤 칵테일을 좋아할 지 도저히 감이 잡히질 않네. 당연하잖아. 나 칵테일 잘 몰라. 별로 안 좋아해. 아. 그래. 그럼 내가 반쯤 맞춘 걸로 해두자. 

  나는 어떤 사람일 것 같아 그을세. 난 잘 모르겠는데. 음. 나는 바로크 스타일을 좋아해. 별로 어울리진 않지만. 고딕이나 바로크가 주는 인공적이고 텅 빈 아름다움의 느낌이 좋아. 안이 차가운 사람이라 그럴까. 나도 포스트모던을 좋아할 것처럼 생겼지만. 그건 텅 빈 아름다움이 아니라 텅 빈 것 자체, 무의미한 인공 같아서 싫어. 뭐. 고흐나 로트렉이 바로크적 화풍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로트렉 응. 로트렉. 밤의 화가. 왜 아. 현각이도 로트렉 좋아하는데. 그래 몰랐는데. 역시 나랑 닮은 녀석이구나. 로트렉은 사람을 못 그려서 좋아. 엥, 무슨 말이야 로트렉만큼 사람을 잘 그리는 화가가 어디 있다고. 그런가. 그림이라는 거, 처음 접할 때 본 화가 중 하나였어. 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였던지라, 그렇게 그리면 못 그리는 건줄 알았지. 지금 보면 또 느낌이 다르겠다. 지금도 아무것도 모르고, 붓 잡을 줄도 모르지만. 로트렉. 로트렉. 사람을 그리는 게 너무 어려워서 난 지금 글쓰는 일을 포기할까 생각하기도 하는데. 지잉. 진동음. 앗. 전화 왔다. 응. 친구랑 놀고 있어. 알았어. 나중에 보자. 누구 응. 친구야. 현각이 아니. 군인이야. 군인 아저씨. 아니 군인 동생.
  
  하하. 나도 한때는 군인이었는데. 차라리 그때가 편했던 것 같아. 적어도 사랑의 문제에서는. 뭐야 이런 상황은. 그녀는 내가 군대 갔을때도 기다려 주었는데. 후배랑 잠깐 좋지 않은 일이 있었을 때도 마찬가지고. 이제는 내가 기다려야 할 차례겠지. 여신은 내게 돌아올 거야. 나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 비록 지금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지만. 그것 때문에 아프긴 하지만. 기다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여신이 내게 돌아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아. 도덕적인 차원에서의 옳음이나 그름의 문제가 아니야. 자기가 가진 삶의 논리에 비춰서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거지. 너는 행복하니. 행복해 보이는데. 모르겠다. 어제 보니까 행복하게 잘 싸우던데 현각이랑. 뭐랄까. 내가 제일 행복하게 사랑했던 때의 모습 같았어. 2년째였을까. 서로 쉽게 삐치고. 싸우고. 부딪히고. 그러다 여자가 삐치고. 남자가 매달리고. 풋. 그러면 여자가 용서하고. 그러다가 여자가 용서를 하지 않으면 그걸로 끝나고. 웃겨. 관계는 여자에게 달리고 만 걸까. 모든 사랑이 모든 삶이 특별한 무엇이지만 결국 삶은 하나라는 걸 느꼈어. 웃기게도.

  오. 그래. 맞아. 결국 삶은 하나야. 쉽게 말하는 문장들이 정말로 그 이상의 진실인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아. 그리고 그렇게 싸우다가 지치면 결국 여자도 감정이 변하는 거야. 그래서 어느 순간에 용서를 하지 않게 되는 거지. 응. 사실 모든 잘못들이 나를 짜증나게 하고 화나게 하는데. 현각이는 때로 나한테 칼을 박아넣고 가끔씩 그걸 비틀기까지 해. 그런데도 내가 이 남자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스스로에 대해 화가 나. 그래도 용서해. 그렇다고 상처가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그것들이 반복되면 결국 여자는 용서를 그만두는 것 같아. 나도 때로 지치고 힘들고. 아마 너의 여신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그나저나 감정에 대해 옳고 그름이라는 말을 사용하다니. 너는 신념의 인간인 것 같아. 아. 너 학교 다닐 때 학생 운동 같은 거 했다고 했지.

  신념의 인간이라니. 당치않아. 그냥, 삶에 대한 강박을 가진 것 뿐이야

  피식. 중얼거리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대학 시절의 남자 친구들의 조언은 실로 무의미한 것이었음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이봐. 내게 필요한 건 ‘다른 여자나 만나봐. 인생은 즐기는 것. 화려한 싱글이 되는거지’라던가 ‘요즘 삶이 지리해 죽을 것 같았는데, 그래서 파키스탄 여행이라도 하려는 찰나였는데,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어. 답지않게 7년이나 사귀더니. 정기적으로 상황 보고해줘. 소설 쓰는거 연습한다면서. 무엇보다 내가 요즘 너무 심심해서.’ 따위의 말이 아니었는데.

  그래도 대단한데. 한 사람과 7년동안 사랑을 나누는 건 쉬운 일이 절대 아닐텐데. 그런 건 천운이 따라줘야 되는 일 아냐 같이 죽는 커플 다음으로 위대한 것 같아.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선. 하지만 네 여신은 그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무튼 그래도 너희한테는 천운이 따라준 거야.

  천운이라니, 이봐. 그래. 같이 죽는 건 천운의 영역일지 모르겠는데 나는 같이 사는 사람의 영역에서도 실패해서 친구의 연인한테 위로나 받고 있다고요. 젠장.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이야기한다.

  “그런데 예술가들은 왜 그렇게 많은 사랑을 할까”

디에고 리베라나. 파블로 피카소나. 많잖아. 어제 이야기해본 사람들. 작가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 많지 않나 글쎄. 나는 모르겠는데. 그리고 나는 예술을 하고 싶지만 일편단심으로 사랑해보고 싶어. 지금 나의 여신을 기다리는 것처럼. 혼자 중얼거리는 내 머리로 떨어지는 그녀의 자문자답.

  예술가들은 어디서나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어서 그런거야

  아. 그래서 네가 예뻐보이는 거구나, 하는 실없는 소리를 하는 나. 그렇게 단호하게 나한테 예쁘다고 한 건 네가 두 번째야, 돌아오는 실없는 소리. 하하. 하긴. 예쁜 것에 대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으면 예술가가 될 수 없을지도 몰라. 감정을 통제한다는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다만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만이 존재할 테니까. 하지만 통제하지 못하는 감정으로 행복하더라도 아름답더라도 그건 위험하잖아. 옳지 않다고. 이를테면 지금 우리는 행복하지만 계산서를 보는 순간 잠시 아플 수도 있겠지. 아니 잠깐, 계산서를 보는 순간이야말로 순간의 불행이고 지금의 행복이 영원인 지도 모르겠지만. 그나저나 예쁘다는 말, 첫 번째는 현각인가 아니. 아까 전화온 군인 동생. 중얼중얼 그렇게 창가로 내리는 비. 예뻐.

  비 오는 밤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아름다움이 있어. 비가 오면 대기 중의 불순물들이 빗방울에 씻겨 내려서 공기가 맑아져. 그러면 대기 중 빛의 투과율이 높아져서 전반적으로 세상이 훨씬 밝아지게 돼. 게다가 사방으로 산란하는 빛덩이들이 세상을 온통 적시고 있는 물에 반사되기까지 하니까. 정말 밝고 아름다운 밤이 태어나. 어울리지 않게 이래뵈도 빛을 상당히 좋아하는 타입이라서. 그래서 여기서 나갈 때 까지 비가 계속 내렸으면 좋겠어. 비가 그치면 위험해. 비가 내리는 밤이라고 해도 비가 계속 내리면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빛을 산란시켜서 미친 듯이 아름답거나 밝지는 않거든. 하지만 잠깐동안 비가 그친 밤만큼 위험할 정도로 아름다운 건 없어. 그러니까 비, 밤새 계속 내렸으면 좋겠어. 비처럼 중얼중얼.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이야기 사이로 예의 그 폴라로이드를 꺼내는 친구. 사진. 찰칵. 사진 찍히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의 인간이 아닌데 나는. 그런데 이상하게 폴라로이드는 그다지 큰 거부감이 없는 걸. 정말로 나는 폴라로이드 타입일까. 멍한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 내 옆으로 오는 그녀. 손을 주욱 뻗고. 이 버튼을 누르면 되는거야. 이건가 내가 사진으로 찍은 사람들은 대체로 슬퍼지던데. 잠시의 정적. 두꺼운 유리창 밖, 환청처럼 느껴지는 빗소리. 그치지 않고 내리는 비 오던 날들의 이런저런 추억들. 셀 수 없는. 7년이란 짧은 세월이 아니니까. 빗방울 만큼 셀 수 없을. 그러나 빗방울처럼 흐릿한.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슬퍼진다니까. 그런 생각은 길 위에서. 비를 맞으면서. 셋 둘 하나. 동시에 그녀는 하나 둘 셋. 찰칵. 아무튼. 다행히 술도 다 떨어졌고. 슬슬 자리를 옮겨야 될 것 같은 생각도 들고. 울고 싶기도 하고. 과거와 기억의 차이에 대한 적당한 이야기들을 하며 비슷한 환경을 지닌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점에 잠깐 놀라고. 잠깐의 놀라움이 가라앉을 만큼 이야기를 하고. 빈 술잔을 두고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었다. 폴라로이드 사진이 인화되고, 결정적으로 담배가 떨어졌다. 그래서, 나오기로 결심했다. 오. 의외로 단정하게 나왔는데. 그러게. 정말로 난 폴라로이드 타입인건가.

  계산을 치르고, 밖으로 나왔다. 비가 그쳐 있었다.

  “위험한데”
  “그르게”
  “술에 취하고, 밤에 취하고, 비에 취하다보면 사람에 취하게 될 지도 모르는데”

  걸었다. 대학로. 익숙하지 않은 공간. 익숙한 신촌이나 대학로나 내게 적대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샌들에 옭매여진 발은 물에 젖어 적당히 부어버리고, 샌들의 스트랩을 따라 빨갛게 잘 찢어져 있기까지 하다. 절뚝. 절뚝. 철벅. 철벅. 따끔. 담배를 피우며. 지잉.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응. 응. 저녁 먹고 나와서 걷고 있어. 대학로. 오늘 밤엔 들어가겠지. 응. 알았어. 잘 자고. 응. 현각이니 응. 혹시 이녀석 나 때문에 불안해서 잠 못자는거 아냐 아니야. 그애 잠 많아서 아무리 힘들어도 잠은 잘 자. 걸었다. 비 잠시 그친 밤거리. 익숙한 공간. 다시 내리고 말 확신이 대기 속의 물기처럼 가득한.

  술이나 더 마시자. 어디서 글쎄. 이번엔 네가 안내하세요. 네 홈 그라운드니까. 홈 그라운드라고 해도 난 술을 잘 안 마셔서 잘 모르겠는데. 그래 그럼 아무데나 그냥 걸어보자. 걷다보면 어디든 나오겠지. 그런데 너 집에는 어떻게 가려고 뭐. 길에서 자든가 하지. 비도 그쳤는데.

  “대학로는 재미있는 곳이야. 서로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진 길들이 골목을 맞대고 있어. 걷다 보면 정말 의외의 장소들이 나오곤 해”

  나는 잘 모르겠는데. 어쨌거나 나는 이 곳을 잘 모르니까. 그렇게 또 한번의 미드나잇. 천천히 다시 비가 내리고. 비가 그치고. 우산을 펼치기가 귀찮았다. 하늘이 내려 주는 것 중 하나쯤은 곱게 받아주는 것이 예의일지도 모르니까. 눈 대신 비다. 그리고 우산을 씌워주는 그녀. 고마워. 뭐 이런 걸 다. 라고 이야기하기엔 애매한 상황인 것 같기도 하고. 애매한 상황을 오래 견딜 수 있는 나는 아니니까. 그렇게 아무 곳에나 충동적으로 들어가고 싶었는데. 아무 곳도 보이지 않아. 비가 내리면 빛이 산란되어서,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니까. 

  적당히 빙글거리면서, 대학로에서 한번 가 보고 싶었으나 어디인지 도무지 모를 곳들을 모조리 찾아내고서야 우리는 이상한 호프에 불시착했다. 3일 전에 통화한 친구가 일하고 있는, 절대로 안내 없이는 찾기 힘든 곳에 있다고 장담한 갤러리 까페와, 3달 전 그녀와 함께 가기로 했었던 북 까페를 비롯하여. 생각지도 않은 우연들이 겹치는 날들. 인생에 그다지 많지 않아. 딱 한 번 있었나 내겐.

  “재밌는 날이야. 우연이 겹치는 날들. 재미있네.”
  “로망이지. 우연이란. 어제 들은 너와 네 여신의 만남 이야기는 최고였는데. 소설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이상한 호프에서의 첫 마디. 1층에 자리한 호프에 적당하게 취한 사람들. 나. 너. 여기 모든 사람들. 그리고 적당히 취한 이야기들의 시작. 미술이라니. 문학이라니. 정치라니. 젠장. 알 게 뭐야. 그런게 삶에서 중요한가. 차라리 사랑이라든가 키스라든가 섹스라든가 하는 게 더 중요할지도 몰라. 어제 새벽에 현각이가 옆에서 자고 있을 때 하던 그런 이야기들 같은. 밤의 무게에 어울리는 이야기들. 키스. 섹스. 사랑. 어깨에 키스해주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 눈에 키스하는 것을 좋아하는 남자. 이런저런 이야기들. 첫 섹스는 대학교 1학년 때. 어. 나도. 그리고 비밀이지만, 동성 친구와 그야말로 몰래 바람난 적도 있고. 오. 우리는 희한한 데서 비슷한 사람들이구나. TV에서 시끄럽게 노래하는 여가수. 아. 나 채연 좋아해. 고흐. 로트렉. 너바나. 채연. 장미꽃. 바로크. 일본 소설. 그런 걸 좋아하지. 오. 답잖게 대중적인 취향이네. 응. 그래서 대학생 때는 심지어 맑시스트이기도 했어. 폴라로이드는 대중적인가 글쎄. 사귀기 전에 키스부터 하는 건 너나 나나 그랬었으니까 대중적이네. 바람을 피우는 건 어제 이야기했잖아. 피차일반. 그러니까 내 말이 현각이 잠 못잔다니까. 지잉. 마침 오는 전화. 현각이네. 양반은 못 되는구나. 응. 응. 술마시고 있어. 알았어. 응. 인우야, 바꿔 달래.

  여보세요. 응. 집이냐. 고향 내려간다면서. 뛰어와. 같이 술이나 마십시다. 두시간 줄게. 그정도면 되지 않나. 토마토를 세 개나 먹었다니. 쳇. 다음에 만날 땐 나도 토마토 사줘. 세 개다. 즐거운 밤이네. 난 쓰레기짓 안해. 친구 연인한테 집적거린다거나 하는. 푸핫. 그래 그래 알았어. 혼자 술마시면서 DVD보는 것보단 그래도 기어나오는게 재밌을텐데. 뭐 보냐. GO 더듬거리는 한국말로 연기하는 일본 배우들이 너만큼 귀엽다던데. 소심한 우리들. 아아. 뚝. 어. 뭐야. 끊어졌다. 린아야, 핸드폰 약 다 된 것 같은데. 꺼졌어.

  핸드폰 꺼트리기. 후배랑 잠깐 바람났을 때 써먹던 수법인데. 푸하. 그런 식이라서. 남자 아니. 여자애. 완전히 내가 나쁜 자식 된 거지. 오. 그건 정말 나쁜 짓이야. 이런 쓰레기같은 녀석. 알아요. 알아. 그래서 그 일 이후로 평생 여자 후배랑 만나게 될 일이 없을 줄 알았어. 응 내가 왜 네 후배가 되는거냐. 나 너랑 동갑이야. 재수와 휴학덕에 아직 졸업하지 못하고 있을 뿐. 그런가. 아무튼 학번은 다르잖아. 다행이다. 현각이라도 있어서. 그게 무슨 말이야 아. 누군가의 애인이 아닌 여자를 만나는 게 난 무섭거든. 너 같은 녀석이라면 더욱. 위험하잖아. 아니. 누군가의 애인이라서 더 위험하려나. 몰라. 아무튼. 가능성을 닫아놓는 건 가능성을 열어놓는 일 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니까.

  “난 현각이 친구로 너랑 같이 있는거 아니야. 네 친구로 있는 거지”

  응. 그래. 차라리 그 편이 좋겠다. 친구 애인하고 새벽 두시에 술마시고 있으면 이상할테니. 아니. 그게 더 이상한가. 몰라. 술이나 마시자. 그런데. 그 화가 누구지. 왜. 작년인가에 죽은 사람. 고독 속에서 살면서 그로테스크한 그림들 그려내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아. 네 글자였는데. 오. 나도 그 사람 알아. 근데 이름이 정말 갑자기 생각이 안 나네. 그. 왜. 해골 둘이 부둥켜안고 섹스하는 일러스트레이션. 어. 그래 그거. 아. 그거 누구지. 에이. 뭐 그게 중요한가. 하긴. 그게 중요한가. 아름다우면 되지. 확실히 대중적인 취향이구나. 응. 그런데 그거 알아 그 사람 화보집, 진품이 거의 없다더라. 아. 그래. 그런 걸 정치학과 석사과정이 알 리가 없지. 인간도 진품은 거의 없잖아. 그런데 너 팔에 털 되게 많다. 나의 그녀도 그랬는데. 매력적이야. 호. 그런 점에선 대중적이지 못한 취향이로군. 어라. 어느새 다 마셔버렸네. 좀더 마실까. 아. 노래 부르고 싶다. 노래방이나 갈까. 그것도 좋겠네. 나가자.

  비가 오고. 우산을 펼치고. 그녀도 우산을 펼치고. 막상 나오니까 또 어디 들어가기 싫어지는데. 마로니에 공원 가서 좀 쉴까. 대학로 길은 좁은 걸까. 따로 우산을 들고도 자꾸 몸이 부딪히네. 떨어지는 빗방울들은 서로 얼마나 많이 부딪힐까. 시나 다시 써 볼까. 안 써본지 몇 년 된 것 같은데.

  짙은 어둠이 깔린 마로니에 공원 구석의 유리 지붕. 젖어 있는 의자들. 축축해. 서 있기는 싫고. 앉아야지. 쏟아지는 비. 쏟아지는 비. 뭐라도 좀 마실래. 멀리 보이는 자판기. 철벅. 철벅. 절뚝. 절뚝. 따금. 나를 위한 커피 하나와 그녀를 위한 녹차 한 캔. 이런 거 좋아할 것 같은데. 오. 잘도 맞추는군. 그러게. 그녀도 녹차를 좋아했거든. 비 속으로 사라지는 혼잣말.

  멍한 눈. 아. 대학로를 싫어하는 이유가 하나 더 기억났어. 이 근처에 잘 만한 곳이 없어. 모텔은커녕. 한참 비집고 두리번거리다가 겨우 여관 하나 찾고. 차라리 찜질방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것도 안 보이고. 그래서 싫었던 것 같기도 해. 음란한 성격인지라.

  그래 찾기 어렵지 않은데. 저 쪽에도 있고. 와아. 비 많이 온다. 재밌는걸. 현각이랑은 이 시간까지 이렇게 있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어디든 들어가서 쉬고 있었지. 마찬가지로 밝히는 성격이라서. 푸훗.

  그렇게 비. 흐르는 감정. 정지된 시간.

  “선희라고 했나. 너의 여신.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일 것 같아”
  “응. 당연하지. 너랑 현각이도”

  정지된 시간. 정지되어 이어진 한 시간. 혹은 두 시간이었나.

  “존 레논과 오노 요코 커플은 굉장해. 음악과 미술의 만남이라니”

  그런가. 어디든 걷자. 음란한 남자랑 밝히는 여자랑 이런 데 있으면 위험하니까. 그렇게 걷다가 보았다. 요시모토 바나나. 응 네이밍 센스가 굉장한걸. 요시모토 바나나라니. 아직 열었을까 들어가보자. 쳇. 닫았네. 오. 여기 칵테일 소주 장난 아닌데. 민트 소주. 로즈 소주. 히비스커스 소주. 민들레 소주. 와우. 다음에 여기 꼭 와 보자. 그래. 그럽시다. 대학로에서도 유쾌한 추억들을 만들어 볼 수 있겠어. 그르게. 아. 또 술이나 마시고 싶다. 뭐야. 인우 너 알콜중독이냐. 아니. 그냥 술을 좋아해. 그래서 조금이라도 알콜중독 증세가 나타나면 바로 끊을 거야. 평생동안 술과 함께 즐겁고 싶거든. 그래. 꼭 그래라. 하지만 증세가 조금이라도 나타나기 전에, 무언가 조금 이상하기만 해도 끊기를 바래. 우리 아버지. 알콜중독으로 돌아가셨거든. 아. 그래. 잠깐 사귀었던 후배 아버지도 그랬었는데. 이 시간에 하는 술집이 있을까 그런데. 새벽 다섯시인데.

  나는 전반적으로 불성실하고 운도 따르지 않는 성격이지만, 새벽 다섯 시에 술집을 찾는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성실하고 운도 따라주고 하더라고. 믿어 봐.

  성실과 운으로 한 군데 찾았다. 지하 술집. 여섯시까지 영업. 그때면 첫차가 다니겠지. 그러면 집에 가는거야. 후웃. 긴 하루였다. 요구르트 소주 먹고 싶어. 뭐. 있으면 시키자. 걸어 내려간다. 지상보다 밝은 지하의 술집. 어. 요구르트 소주 있잖아. 지나치게 달콤한 걸. 운이 좋은 날이야. 라면이 서비스 안주라니 굉장해. 대학로는 생각보다 좋은 곳이었구나. 당연하지. 내가 사는 집 근처라니까. 그래 있다가 데려다주도록 하지. 그러시든지.

  그렇게 새벽 여섯시가 찾아왔다. 열 두시간의 만남을 기념하며 한 잔. 오. 얼음이 잔에 떨어졌다. 행운의 징조라는데. 그래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나가자. 와. 밖이 제법 밝은데. 비가 오는 덕에 아주 밝고 희망찬 새벽은 아니지만. 추워. 비 오는 날의 새벽. 자궁에서 막 기어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야. 그런데 집에는 어떻게 아. 여기서 버스 타면 됩니다. 풋.

  버스에서 MP3를 다시 켜 보았다. 켜지지 않는다. 약이 다 된 걸까. 침수되어 고장난 걸까. 고장이라면 이런. 통장 잔고. 사는게 뭐 그런거지. 별 수 없이 그녀의 이어폰을 한 귀에 꽂고 그렇게 잠깐 졸았다. 노곤한 나른함. 이봐. 일어나. 응 응. 다 왔어. 정말 금방이구나. 자. 난 여기서 마을버스 타고 집까지 올라가면 되고 넌 저기 지하철 역에서 지하철 타면 될 것이야. 그래. 즐거웠어. 와우. 꽃가게다. 여섯시에 여는 꽃가게가 있네. 잠깐만. 기다려. 한 송이에 천원이라. 배가 고플 때 천원어치 김밥 대신 천원어치 장미를 뜯어먹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 집에 가다 배가 고프게 되면, 뜯어먹도록 해. 여기. 

  흐음. 꽃 말야. 현각이한테는 비밀로 해야 되는 건가 
  글쎄. 편하신대로. 이런 일 한 두 번 있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아. 여기서 파란 장미를 팔기도 하는데. 오늘은 없네. 혹시 파란 장미의 꽃말이 뭔지 아니 
  아니. 난 꽃에 대해선 전혀 모른다고. 그냥 장미를 좋아할 뿐이야.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

  그건 너무 슬프잖아. 있었다고 하더라도 사지는 않았을 것 같아.
 

  
 
 
 
상병 박종민 (20060724 081248)

이거 좀 수정되었군요. 시간이 없어서 그냥 눈으로 훑고, 
시간 날 때 제대로 읽어보려고 책가지를 클릭했더니 
글은 어디로 이런 배신감에 부들부들. 
반칙입니다. 썼다 지우는게 어딨어. 

선리플 후감상입니다. 
이번엔 못지우게 리플도장 찍어두려고.    
 
 
 병장 김동환 (20060724 082950)

소설같은 삶을 사는 우리 영준씨.    
 
 
상병 박종민 (20060724 101501)

아, 아사히다. 하지만 아사히는 레스토랑고 호프의 중간이라기보다 
28 정도 흣. 대학로 이야기 너무 반가움. 

아, 그러니까. 감상을 쓰자면, 
당신의 여신과 이별한 것이 이런 훌륭한 영감을 준다면, 
감히, 저는 당신의 여신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랄 수 밖에.. 

라고 말했다간, 영준씨가 정모때 때릴 듯. 
말이 그렇다는 이야깁니다. 

잘 읽었어요.    
 
 
병장 김희곤 (20060724 102316)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일까 픽션이라니 픽션으로 믿어드리리다.    
 
 
병장 송희석 (20060724 102459)

흥. 아직 멀었어요. 제가 일생에서 소설을 읽고 전율을 일으킨적이 겨우 몇손가락 안에 뽑는데, 그중에 영준씨가 리플레이에 올렸던 5가지 색깔소설은 분명 나에게 전율을 일으켰단 말입니다. 이 소설은 거기에 못미치는군요. 하지만 재미는 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병장 김형진 (20060724 115942)

상희씨는 참 천사같은 분입니다. 
나도 상희씨랑 친하게 지내야겠다.    
 
 
 병장 김동환 (20060724 123444)

희석 오. 5가지 색깔 소설은 뭔가요 저도 좀 보여주실수 있을까요 

형진 나도 껴줘요.    
 
 
일병 김지민 (20060724 181524)

내일 다시읽어야지. 
나도 색깔소설 보고싶어요.    
 
 
병장 이영기 (20060724 182651)

일단은, 나는 네버 결코 절대 못 쓸 좋은 글.    
 
 
병장 주영준 (20060726 080902)

동환, 희곤  픽션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려면 아마 내 다리가 5cm는 더 길고 273% 증가된 매력의 얼굴을 하고 있어야 할껄요. 혹시나 일어난다 해도 아마 내가 그런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미칠 듯. 
형진  네. 그렇습니다. 
희석  그거. 찾아볼께요. 그닥 좋진 않았는데. 
종민  존재가 아닌, 부재로도 나를 이끌어주는 나의 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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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같이 소설 쓰고 있는 지민씨나 진우씨의 평이 기대되었는데. 쳇.    
 
 
 병장 박진우 (20060726 114455)

영준 
이번주 중으로 올리겠음. 이런식으로 압박하면 좇치안타!    
 
 
일병 김지민 (20060726 122650)

진우 동감. 
영준 다시 읽어 봐야함    
 
 
일병 김지민 (20060727 090718)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 끝마무리가 참 인상적이에요. 
소설 전반적인 틀을 구성하는 감성은 정말 굉장하군요. 본인의 채색이 들어가서 그런건지, 하기사 어쩌면 그때문에 자꾸 픽션 자체로서의 감상이 떨어지고 있는지도 몰라요. 제가 뭐 영준씨를 알면 얼마나 알겠냐만은. 아무튼. 하루 날밤 까는 이야기로서 이정도의 묘사과 상징을 그려낼 수 있다는데에 참 놀랍습니다. 저로서는 상상하기 어렵군요. 다만 아무래도 극적 전개가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나봐요. 하기사 이런 감성으로는 지금의 상태도 좋긴 합니다. 
소설 중간 중간에 들어가는 잡 이야기들 (예를들면 가네시로 카즈키)이 조금더 소설과 연계되는 상징성을 띄었으면 좋았겠다 싶기도 합니다. 

자꾸 이거 쓰면서 느끼는건데, 내가 이런 말할 자격이 있는셈인지. (킁) 
일단은 영준씨가 원하는것 같아서. 푸푸푸    
 
 
상병 이훈재 (20060730 215808)

올라왔을때 읽고 방금 다시 한번 읽어봤어요 

그냥 콱 현각이 여자친구 빼앗아버리는 건 어때요. 재밌게 읽으면서 아 이러다가 모텔들어가는 거 아닐까 하는 음흉한 기대도 좀 했는데-! 정말이지 척박한 세상입니다. 선배 군대가면 선배 여자친구랑 놀다 놀다 그러다보면 사귀고, 나는 잘 사귀다가 입대하고 깨지고, 나들이 나가서 자석에 끌리듯 어쩔 수 없이 다시 그녀의 미니홈피를 확인해보면 또 왠 아는 선배랑 사귀고 있고, 눈물 콧물 다흘려 이제 다 말라 비틀어질 무렵에 전역하고 나와서는 후배 여자친구랑 놀다놀다 그 놈 군대가면, 아 인간적으로 이러면 안 되지만 또 사귀고. 아 미친 10우랄탱탱. 그렇게 돌고 도는 건가요. 허허. 뭐 제 얘기가 아니라 군에와서 접한 수많은 선후임들의 사랑 이야기의 현실적 비극이라지요. 으 그런의미에서 용재관의 유령 팀의 분발을 촉구합니다. 

그건 그렇고 제가 엊그제 피아노 치는 여자 감명깊게 읽어서 그런지 영준 씨의  세상은 자궁처럼 따뜻한 곳도 축축한 곳  같은 표현이, 에리카가 어머니한테 잡혀 사는 걸 표현한 거랑 묘하게 겹치네요. 피아노 치는 여자의 적나라한 독설적 표현에 완전 뻑갔어요. 헤헤    
 
 
병장 박형주 (20060731 040804)

뒤늦게 읽었습니다. 어쨌든 나는 소설을 잘 안 읽는 사람이기 때문에 끝까지 읽은 것만으로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다음 편 기대할게요.    
 
 
병장 주영준 (20060801 082039)

지민  극적 전개는 역시, 피해갔달까요. 콱 현각이 여자친구를 빼앗아버린다거나 하는 식의 전개는 소설 내적으로 좀 이상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정치사상을 공부하고, 학생운동 출신에, 수상한 연애론을 가지고 있고, 강박증적 성격인데다가, 꽤 오래 연애를 하다가 친구에게 연인을 빼앗긴 녀석이 하루만에 극적 전개에 이르는 건 지나치게 소설적인지라. 잡 이야기는 나름대로 연결시키려 했는데. 음. (일테면 가네시로 카즈키는 후에 영화 GO를 보는 현각이와 연결) 지민씨 말 듣고 보니 좀 더 고민해봐야 할 듯. 고마워요. 

훈재  그런 건 도의적으로 옳지 못해요. 는 농담이고. 도덕적으로 옳은 책은 없다. 잘 쓴 책과 못 쓴 책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지민씨에게 한 것과 마찬가지의 차원에서 이런 식으로 전개했습니다. 물론 현실적 비극은 그런 식으로 자주 일어나고는 합니다만...역시 나는 비극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형주  오. 감사합니다. 단편이라, 이 소설은 그냥 이렇게 끝납니다만. 당분간 소설만 쓰게 될 것 같습니다 아마. 

진우  그래서 자네는 대체 언제 쓸 건가! 물론 압박은 조치 않다만. 편하신대로. 나도 빨리 화장실을 질러주겠어.    
 
 
 병장 박진우 (20060801 190135)

왜. 이 소설이 읽기 싫었는지 이제야 알 듯 하네. 
픽션이라고 당당히 밝힌 네놈의 저의는 깡그리 무시하고, 너와, 그사람과, 그분과... 그리고 여신과. 

에세이잖냐. 

차라리 에세이라고 해. 그게 납득하기 편해. 내 입장에선.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중에 유일하게 소설중에 나오지 않는 사람은 나뿐이니까. 나는 에세이로 읽어버리고 말테야. 

그래서. 
주영준의 머릿속은 이런것이구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지. 소설이라는게, 미니플롯이건, 일상주의적이건, 포스트모던하건 간에 하나의 일관된 주제같은 걸로 꼬치를 꿰듯이 꿰어져야하는 그런 속성의 줄글인데도. 
너무 여기저기 찌르는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공허한 문단과 문장이 꽤나 눈에 많이 띄인다는 것. 감수성은 날카롭되, 문학적 스킬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 하긴 그 특출난 감수성은 어딜가나 먹히겠지만. 

지민씨가 지적했듯이, 실제의 어떤 인물이 나온다면 그 인물에 대한 형상화가 명확해져야한다고 생각해. 어떤 브랜드 네임이 나오는 것 또한 마찬가지고. 왜냐하면 실제의 것이 허구에 포함되는 순간 허구는 실제의 비루함으로 떨어져버리거든. 다시 말해서 소설을 읽을 필요가 없어진다는 뜻이기도 해. 그럴거면 차라리 살아버리고 말지, 책은 왜 읽어. 이런 느낌일까. 
그래서 나는 가급적이면, 정말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은 현실의 것들을 소설로 편입시키는 것은 하지 않으려고 하고. 편입시킨다고 하더라도 그 인물이, 그 물체가 캐릭터와 사건에 끈끈한 유기적인 속성으로 연결되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을 하거든. 그게 바로 현실의 허구화 일테고. 
그렇지 않는 현실은 혼자 겉돌아버리고, 소설을 전복시키는 수도 있어. 현실이 가지고 있는 랑그, 엠블럼. 등이 독자의 머릿속에서 짖어댈테니까. 네가 원하는 빠롤과 소설적 의미는 전혀 설득되지 못한채 죽어버릴테고. 

뭐. 그런식이야. 너무 네 안에서만 맴돈다는 느낌도 강하고, 
자기중심적인 문체도 한 몫 거들고, 
곁가지가 너무 빠져나가서 산만해보이기도 하고. 

정식 문학도가 아닌 이상, 문학적 비평은 못해주겠군.    
 
 
병장 주영준 (20060801 193650)

반론 두 개. 
1. 일단 픽션성의 측면에서. '픽션이라고 당당히 밝힌 네놈의 저의는 깡그리 무시'는 말이 안 되잖아. 시라고 우기는 소설에 대해서 시라고 우길 수는 있겠지만, 픽션과 논픽션으로 읽히는 건 뜻이 다르다. 한 스페인 병사가 머리에 총맞고 쓰러지는 장면을 담은 로버트 카파의 사진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이 기획사진이냐, 스트레이트 포토냐 하는 건 이것이 어떤 식의 앵글을 쓰는가 하는 것보다 당연히 중요한 문제이며 다른 차원의 문제. 그리고 이것은 픽션입니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의 에필로그에 아무리 류가 릴리를 다시 보고 싶다고 지껄여봐야 그건 픽션이라고. 릴리가 있든 없든. 마찬가지로, 이것도 픽션이라고. 230% 증가된 망상에 입각한. 

2.감수성이라. 감수성이 메마른 타입의 인간이라 다른 사람 답글에서도 도무지 감수성 이야기는 잘 모르겠음. 일단 욕하는 것 같지는 않으니까 좋은 뜻으로 받아들이겠는데. 아, 예전 언젠가 부락에서 밝혔던 적도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내 문학에 대한 설명에서 사회과학에 대한 설명보다 말을 많이 아끼는 편이지만, 오해받는다고 생각할때는 오해에 대해선 지르는 타입이라 반론하는 것인데. 

기본적으로 '지민씨가 지적했듯이...'이후로의 문학론에는 대체로 동의한다. 미시마 유키오도 다자이 오사무에 대해 그런 식으로 이야기했었지 아마. '문학이 일기와 다름없다면, 그건 집에서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백반을 굳이 나가서 사먹는 짓과 똑같은 짓이다' 식으로. 아. 물론 이건 문학의 현실 기반성픽션성의 문제가 아니라 '절제된 형식미학'과 '명확하지 못한 형상화'에 대한 문제일 테고.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절제된 형식미학보다는 명확하지 못한 형상화를 일정 정도 즐기는 타입이야. 

일단. 중심 소재로 쓰려고 했던 폴라로이드는 사실 소설 전체와 그다지 유기적이지 않아. 차라리 요시모토 바나나가 유기적이지. 하지만 그럼에도 제목과 제법 중심적 소재로 폴라로이드인 건, 삶이 그렇다고 생각하거든. 실제로 센터에 있을 만한 것 보다 그저 세계 안에서 이미지적으로나 소모되는 소재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응. 그게 내가 생각하는 형식미학일 지도 모르고(그렇다고 리얼리티를 살리는 문제에 천착하는 건 아닌데) 겉돌아버리는 다른 소재들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고. 뭐. 나름 유기적으로 끌어다 쓰고 싶었는데 너와 지민씨가 똑같이 지적하는 부분을 보고 다시 읽어보니 확실히 '필요 이상으로'-왜 필요 이상이라는 표현이 굳이 붙냐면 나는 필요한 정도로 헛도는 건 내 나름의 엄격한 형식미학이라고 생각하니까-헛도는 느낌이 강하기도 하고. 음. 두 주인공 사이의 공유점 확장에 대한 예시로 좀 억지로 끌어붙인 것들이 많아서 산만하다는 것도 인정할 수 있겠음(사실 중요한 상징으로 쓰일만 한 건 레논-요코 커플이나 요시모토 바나나와 관련된 이야기 정도. '밤의 화가' 툴루즈 로트렉은 배경과 관련하여 좀 더 다듬어 사용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나머지는. 글쎄다. 하나 하나 지적하기엔 무리겠지만 헛도는 경우도 많지요). 

아모튼, 조언은 고맙소.    
 
 
일병 김지민 (20060802 101559)

응 맞아. 레논-요코 커플은 참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