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가면 
 
 
 
 

‘언니 오빠가 밥도 안 먹고 방에서 나오지를 않아요. 오빠 죽을 것 같아요. 언니 미안해요’

스물다섯 겨울 대천바다로 갔다.
석 달 동안 물 한 모금 넘긴다는 것조차 고통스러웠고 눈을 똑바로 뜬 체 천정을 보며 불면의 밤을 보낸 것이 몇 일인지세기를 그만둔 얼마 뒤였다. 전화 한통을 받고 바로 짐을 싼 뒤 밤 기차를 타고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길을 따라 올라갔다. 

지친 걸음으로 민박집을 찾았지만 나의 옷차림을 훑어보고 방이 없다고 안 된다고 했다. 냉정하게 팔 장을 낀 주인장 어께 너머로 보이는 텅 빈방들로 적막감이 감도는 민박집을 나와 또다시 다른 민박집으로 향했다. 
몇 번을 망설이다 나에게 방을 안내해준 할머니는 잠이 들 만하면 문을 두드리며 필요한 것 없냐고 물어댔고 돈은 안 받을 테니 내일 아침을 같이 먹자고 했다. 군불을 얼마나 세게 지폈는지 너무 뜨거워서 덮으라고 준 이불까지 깔고 타올 한 장으로 배를 덮고 팔 베게를 한 체 천정을 보고 있는데 처음으로 눈물이 흘렀다. 가슴은 거대한 바윗돌이 짓누르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몸을 웅크리고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소리죽여 흐느끼며 결심했다.

‘오늘만 울고 다시는... 다시는 울지 말자’

아침 바다를 보며 모래사장에 서있는데 누군가 멀리서 소리쳐 불렀다. 할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먹고 있는데 내 눈치를 보며 할머니가 입을 떼셨다.

‘어제 말이야. 까만 옷을 입고 퀭한 눈으로 서있는데 꼭 색시가 죽으러 온 것 같았어. 몇 푼 벌어보려다 송장 치우는 줄 알고 아이구 얼마나 무섭던지.’

사랑에 대한 가치관이 정립되기 전에 불현듯 찾아온 사랑이었다.
당연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미친 듯이 가슴이 뛰었고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고 전화에 매달려 밤을 지새도 입에서는 달콤한 냄새가 났고 눈은 별처럼 반짝이며 볼은 붉게 빛이났다.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모든 행태를 답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별이 왔을 때 스물다섯동안 알아왔던 나의 세계가 무너져 버렸다.

그 이후 사랑이란 본질에 많이 몰두했다. 
어떻게든 잊어보려는 노력대신 정면으로 다가가 그 사랑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나면 이 고통이 사라질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 또 다시 그런 사랑에 빠지면 내 심장이 견디지 못하고 폭발할 것 같았다. 원래 고집이 세기도 하거니와 감정에 휘둘린다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고 또 그런 나를 겪어보니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내 자신을 컨트롤 하지 못하는 상황이 불쾌했고 자존심이 상했다. 

얼마 뒤 열 아홉 번째 남자라는 영화를 보았다. 수잔 서랜든이 나왔는데 나는 그 여자의 캐릭터가 좀처럼 잊혀지지 않았다. 그 여자는 야구시즌이 오면 매니저도 없는 신인 야구선수를 만나 사랑과 함께 그를 진정한 남자로 만들어 시즌이 끝나갈 무렵 미련 없이 떠나보내고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면 또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살다보면 몇 번이고 봄바람처럼 살랑거리며 사랑이 찾아올 수도 있다. 

사랑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그런데 이번에 이렇게 했으니 다음번에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마지막 사랑인가.
어디다 실컷 하소연하고나면 마음이 편해지기라도 할까.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가슴이 덜 아플까. 
나에게는 그 사랑의 추억이 눈물나게 아련하고 그립지만 그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정말 사랑에 정형적인 답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A형에 별자리가 쌍둥이좌인 사람을 믿지 말기 바란다.
차가움과 뜨거움이 공존하지만 본질적으로 머리와 가슴이 따로 존재하는 이중인격자일 가능성이 많다.
그 이후로 가슴은 냉랭한 체로 머리로 사랑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았지만 더 이상 이별에 슬퍼하지 않는다.

나는 좋은 사람이다.
친구로선 더할 나위 없지만 나에게 상처받고 떠난 사람들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랑에 대해서는 내가 과연 좋은 연인이었는지는 자신 있게 말을 할 수가 없다
상대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가슴에서 머리를 떼어내고 나니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지리멸렬한 사랑을 종교처럼 가슴에 안고 살아도 되는 걸까.
내가 처음으로 가졌던 종교와도 같았던 그 사랑은 이제 너무도 희미해져서 누군가 그 사랑했던 사람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수 십초의 암전이 생기지만 그 커다란 손과 고른 치열을 드러내며 활짝 웃던 미소와 낮은 저음으로 농담을 속삭이던 목소리, 입술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마치 내 온몸을 혈액처럼 떠돈다. 

- 세월이 가면 -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면 
나는 저 유리창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진 못하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먼 훗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취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혀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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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장 김성엽 (20060629 170625)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 듯한.. .. 

잊는다 해도..   


병장 주영준 (20060629 170710)

A형 쌍둥이자리. 그녀.   


병장 한상원 (20060629 172158)

아아-   


일병 송영윤 (20060629 174956)

A형 쌍둥이자리. 나...털썩... 
혹시나 이중인격적으로 살고 있지는 않나 돌아봅니다...   


일병 김현동 (20060629 175229)

아아아-   


병장 박서진 (20060629 184441)

←A형 쌍둥이자리(...)   


병장 박시용 (20060629 192830)

정말로 끝이라도 난 너를...   


상병 이희웅 (20060629 205150)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 
또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   


병장 이석현 (20060703 130712)

사랑 이야기는 언제나 뭉클하죠. 
너도나도 아는 이야기이기 때문이것 같아요.  
 

  
 
 
 
상병 이영준 (20060711 101729)

정말, 우리를 이어주는 인연의 실이라는게, 존재하겠죠 
은호와 동진을 끝내 이어주었던 그 붉은 실처럼...    
 
 
병장 강승민 (20060711 142944)

아..사랑도 글로 쓰게되면 조금은 아름다워 질수도 있구나. 이렇게 위로가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저도 글을 쓰고 싶습니다. 
아..그런데 수잔 서랜든이 나온 아홉번째 남자, 골프가 아니라 야구 아닌가요 아닌가    
 
 
일병 김동호 (20060712 072549)

가슴이 그냥 저미네요    
 
 
병장 송희석 (20060712 074517)

승민야구 맞습니다. 오래된 영화죠.    
 
 
병장 이동일 (20060712 132014)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듯한.. 

그리.....움..    
 
 
병장 강민임 (20060723 123453)

나도 A형에 생일은 5월말. 쌍둥이자리...    
 
 
상병 임태석 (20060724 013214)

다행히 피해갔네요- A형에 5월1일 황소자리- 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