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le Park] 컬트적 사회 
 
 
 
 
컬트적 사회



문화는 향유하는 대중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고 하지만 요즘의 대중은 기존의 대중들이 아니다. 오히려 과거의 대중들보다 적극적이고 자기 주장이 강하다. 그리고 자신의 취향에 알맞는 문화를 가지고 훌륭하게 재생산하며 소비한다. 자신이 향유하는 문화를 철저하게 컬트화 시킨다. 얼리어답터라는 초기 수용자로 대표되는 매니아적 집단에서 더 발전한 프로슈머들의 세상이다.

-=포지셔닝

마케팅 용어에서 '포지셔닝'이라는 용어가 있다. 제품이 잠재고객 -A라는 용도로 사용되는 제품을 마음에 품고는 있지만 아직 그런 제품이 없어서 잠재적인 생각만 가지고 있는, 따라서 A라는 용도로 사용되는 제품이 시장에 출시가 되었을 경우 당장에 구매할 용의가 있는 고객층을 뜻한다.- 의 마음속에 위치잡는 것이 바로 '포지셔닝'이다. 제품의 특성을 부각시키며 잠재고객의 마음속에 확고한 제품의 입지를 굳히는것. 그것이 바로 '포지셔닝'인 것이다.물론 시장에서의 위치 설정을 뜻하는 제품 포지셔닝이라는 말도 있지만 여기서 다룰 것은 소비자의 마음속에서의 위치설정을 뜻하는 광고 포지셔닝이다. 이 '포지셔닝 전략'은 과잉 커뮤니케이션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로 하여금 메시지를 듣도록 만드느냐 하는 생각들을 구체화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아직도 경영/마케팅 분야에서 베스트셀러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블루오션 전략도 사실 새로운 포지셔닝 전략과 다를바 없다. 레드오션 시장에서 1위를 탈환하는 것보다 미개척된 블루오션이라는 시장을 만들고 그 시장에서 초반 선점자의 우위를 차지하며 1위자리를 고수하는 것. 포지셔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포지셔닝 전략'이란 쉽게 말해 자신의 제품을 소비자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방을 세분화하여 들어 앉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2,3,4등을 모두 기억할 만큼 머리가 좋지 않다. 따라서 각기 방의 1위만을 기억한다. 수십년전 자동차가 처음 발명되었을때 자동차라는 방에 오랫동안 1위로 포지셔닝 되었던 것은 '포드'였다. 그러나 폭스바겐은 자동차라는 방을 'Think small'이라는 유명한 카피를 통해 작은차라는 블루오션 시장을 개척했고, 다르게 말하자면 소비자 마음속의 자동차라는 방을 세분화하여 작은차의 방을 개설했고, 그 작은차의 방의 1위 자리에 폭스바겐의 비틀을 들어앉혔다.

그 뒤 자동차 회사들은 각기 자신의 브랜드의 고유한 속성을 부각시키며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인 자동차라는 방을 계속 쪼개고 쪼갰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부자들이 타는 차라는 방을 만들었고, BMW는 비지니스맨을 위한 감성적 차라는 방을 만들었고, 볼보는 안전함이라는 방을 만들어냈다. 이로써 자동차라는 시장도 브랜드의 수만큼 파편화되고 컬트화되어 제각기 다른 의미로 소비자들의 마음속에 포지셔닝하고 있다.

그들이 포지셔닝하기위해 기를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최고인 것보다 유일한 것이 더 기억되기 쉽다.'는 명제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적으로 역사상 유례없는 문화의 컬트화, 일상의 컬트화를 경험할 것이다. 개성을 중시하고 차별화된 소비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적 사회에서 이러한 경향은 지속될 전망이다. 브랜드는 각자 고유의 가치를 지니고, 유일한 것이 되기 위해 소비자의 취향과 요구에 적극 맞춰 제공된다. 그런 의미로 요사이 유행하는 튜닝 붐에서도 작금의 컬트화 경향을 엿볼수 있다.

-=튜닝

자동차 튜닝에서 시작되어 핸드폰 튜닝, PC 튜닝, 신발 튜닝, 청바지 튜닝까지. 모든 것이 너와 나를 구별짓기위한 아바타 옷입히기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주의에 종속되어 소비가 소비를 낳는 소비적인 뫼비우스의 띠를 걸을 뿐이다. 장 보드리야르의 말처럼 '사회가 풍요로울수록 상품은 사용가치를 넘어 상징가치로서의 의미를 더 가진다.' 모든 상품은 각자의 상징가치로서 소비자에게 선택당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의 튜닝은 돈-지-랄이다. 생산적인 담론따위 만들어내지 못하고, 튜닝에서 소비자는 소비자일뿐 진정한 생산자가 되지 못한다. 생산자가 제공하는 허울의 생산에서 소비자는 생산-튜닝-을 하고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건 결국 소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소비자는 직접 핸드폰 튜닝의 부속품을 제작하지 못하고, 신발을 칠하는 물감이나 신발에 붙이는 재료들 또한 구입해야하고, 기본 캔버스가 될 신발 또한 구입해야한다. 청바지를 더 예쁘게 꾸미기 위해 고급의 재료를 구입해야하고, PC의 케이스 또한 재활용하거나 창조할만한 물건이 되지 못한다. 싸이월드의 미니홈피 스킨을 제작할수도 없고, 미니미의 옷을 소비자가 그려서 입힐수도 없으며, 사용자 임의대로 블로그의 형식을 변경할수 없다. 회사가 제공해준 스킨을 사야하고, 미니미의 아이템을 구입해야하고, 회사가 제공해준 블로그의 몇가지 형식들 가운데에서 선택해야한다. -물론 아닌 경우들도 있지만 그건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튜닝은 소비라는 행위에 맞물려있다.- 어느 칼럼니스트의 말처럼 튜닝이란 자본주의 소비문화에 대한 또다른 투항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튜닝은 심화되고 상품들의 컬트화는 계속될 것이다. 고객, 즉 소비자의 입맛대로 만들어낼수 있는 상품들은 개성을 중시하는 이 시대에서 더욱 더 힘을 얻을 것이기때문이다. 그것이 자본주의에 종속되어 부속을 팔건, 공짜로 내주건, 자급자족을 실현하건간에 그런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들에게 중요한건 '최고가 아니라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경계허물기

신기한 까페들이 등장하고 있다. 아라비아 문양이 어지럽게 수놓인 카펫과 침대가 즐비한 베드까페, 고양이, 앵무새, 도마뱀등 다양한 동물을 만날수 있는 펫까페,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북까페에 회의실을 겸비한 문학까페. 등 획일화된 까페만으로는 부족한 모양인지 여러 문화를 포섭하여 컬트적이고 복합문화적인 공간으로 변모한 까페는 '유일한 것'이 되기 위해 오늘도 여기저기 까페와 함께 할 문화를 찾아나서고 있다. 

IT 상품 역시 '유일한 것'이 되기 위해 컨버젼스화 하고 있다. 디카는 PMP를 덥썩 물었고, PMP는 DMB를 집어삼켰다. 네비이션은 PMP와 몸을 합쳤고, 휴대폰이 카메라와 MP3를 끌어들인건 이제 기본사양이 되어버릴 정도로 컨버전스는 점점 더 다양하고 어울리지 않을것만 같은 분야간의 통합으로 파편화, 컬트화를 계속적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전의 칼럼에서도 말했듯이 경계허물기는 현실이고 미래다. '최고인 것보다 유일한 것이 되기 위해'모든 것은 퓨전되고 믹스되고 사회에 존재하는 상품, 문화 등 모든 분야들은 무너진 베를린 장벽처럼 모든 담장을 부수며 유일한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

-=컬트적 사회

바야흐로 컬트시대의 도래다. 윈도우와 리눅스의 오랜 우월성 싸움이 이제는 윈도우는 체계적이고 조직화된 프로그램으로, 리눅스는 오픈소스와 프리웨어라는 프로그램으로 인식되면서 취향의 문제로, 다양성의 평화로 바뀌어버렸다. 최고인 것이 동종의 라이벌 회사에 의해 유일한 것으로 치환되어지고 각기 동급의 상품으로, 문화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한 문화상품을 좋아하고 즐기는 같은 취향의 매니아, 폐인 집단이 그 문화로 '헤쳐모여!' 하고 있고, 부던한 수면화 작업 -음지의 성격을 띤 그들을 양지로 끌어 올리고, 일상으로 끌어올리는 일련의 작업을 뜻한다. 인터넷의 보급과 열성있는 엘리트 오타쿠 들이 그 작업에 한 몫 거들어 주었다.-을 통해 그들도 이제 사회에서 소외된 집단이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일부분의 컬트집단으로 인식하고 있는 추세다.

최고이고 더 우월한 것만을 좋아하는 -예를 들면 국내 프로야구나 프로축구보다 더 재밌는 MLB나 월드컵을 즐겨보고, 양질의 추천도서보다 베스트셀러의 책들만 골라보고, 박스오피스 1위의 작품만을 챙겨보고, 시청률 1위의 드라마만 보고, 음악차트 상위권의 음악만 찾아듣고, 명품에 목매고, 대기업에 매달리는 우리네 현실이 그렇다.- 한국인들에게도 컬트화 바람이 불고 있다. 

시청률은 낮지만 그 드라마를 꾸준하고 열성적으로 지지해주는 '드라마 폐인.' 대기업, 좋은 직책-돈과 명예-을 버리고 삶의 여유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조금 낮은 회사로 옮기는 '다운시프트족.' 제품의 제작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프로슈머집단.'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 없어도 실망치 않고 제 기쁨에 동인지를 제작하고 코스프레를 즐기는 '아마추어 만화동호회.' 

비록 주류는 아니지만 이들의 문화상품,회사에 대한 애정과 애착, 사랑의 크기만큼은 주류라 할정도로 높고 치열하다. 또, 주류가 아니면 어떤가. 유희의 인간답게 즐기는게 주 목적인 사회에서 그들은 자신의 문화상품을 즐기면서 그 대상을 패러디나 의견개진등의 방법을 통해 더 풍성하고 심화된 콘텐츠를 양산하고 있다. 그들은 '최고인 것보다 유일한 것을 원한다.' 그에따라 소비하며 생산한다. 프로슈머고, 포지셔닝이고, 튜닝이고, 경계허물기다.

컬트적인 사회로 접어들어도 각 문화간의 장벽이 곤고해지지 않는 이유는 경계허물기때문만도 아니고, 타인의 행위에 무관심한 작금의 쿨한 세태 때문도 아니다. 그건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사랑하면서도 또 다른 것을 사랑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애정이란 늘상 그런 것이다. 소니의 사이버샷에 열광하면서 우리는 애니콜의 슬림폰에도 열광한다. 또, 에반게리온을 좋아하면서 건담을 좋아하기도 한다.-간혹 극우적인 성격의 건담 오타쿠들은 인간과 너무 닮은 메카닉이라는 이유로 에바를 증오하기도 하지만.- 우리때문에 각 시장간의 장벽은 언제나 소통가능하다. 

모든 인간은 여러 문화상품에 애정의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것이다. 이 애정의 양다리로 서로 연결된 문화상품들은 삶의 양식이 된다. 소시민적 일상이 되기도하고, 부르주아적 표본이 되기도 하고, 가난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컬트의 모음은 주류고 대중이고 세계다. 컬트적인 사회는 각자 다른 방향과 목적지로 내달리고 있지만 서로 연결된 인간의 애정의 양다리로 인해 파편화되지 않은채 컬트적인 것들은 인간이라는 구심점으로 모여 온전히 주류로 등극하게 된다.

이 컬트적 사회의 가지가 어디까지 뻗어나가게 될지 사뭇 궁금해지는 요즈음이다. 

  
 
 
 
상병 송희석 (2006/06/18 15:23:39)

비주류문화가 계속 비주류문화로 남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해서 비판할 여지는 없죠. 만약에 제가 언더그라운드에서 비주류음악을 하는데, 어느 주류기획사에서 시설과 장비와 그 모든 최고의 환경을 주겠다고 한다면 얼마든지 갈것 같은데 말이죠. 왜냐하면 좋은 환경에서 더 좋은 비주류음악이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도 할수 있거든요. 이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병장 박진우 (2006/06/18 15:32:49)

그건 말이죠. 황정민의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이나, 김수로의 꼭지점 댄스나, 넬의 서태지 레이블로의 편입현상과 비슷하게 봐도 되겠죠? 황정민씨는 대학로 극단에서 지독한 언더생활을 경험했고, 아마추어리즘으로 무장되었던 배우였지만 지금은 충무로에서 내노라할만큼 주류로 등극한 배우지요. 김수로씨 역시 충무로 단역생활을 하던 수십년 전만해도 자신이 문화 열풍의 구심점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거구요, 넬 또한 서태지라는 강력한 후원을 업고 주류로 올라섰거든요. 

저는 이 글에서 그들을 비판하려는게 아니에요. 오히려 그들에게 '더욱 더 마음껏 컬트화하라.' 라고 주문하고 지지하는걸요. 그들이 주류로 등극하는 것 또한 사실은 다양성의 관점으로 본다면 컬트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아요. 글에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최고가 되기 위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유일한 고유의 아우라를 구축해나가라는거죠. 모든 개인은 개인을 추구해야하고, 모든 각자는 제멋대로 살아야한다고 생각해요. 단, 인간과의 소통의 연결고리는 남겨둔채 말이죠. 

그런 컬트적 사회는 가지를 계속 뻗어나가 이 지구가 감당할수 없을정도로 큰 바오밥 나무가 되어버릴 거구요. 전 그런 세상을 바라고 기다리고 있구요.    
 
 
상병 박진욱 (2006/06/18 15:48:04)

사소한것 딴지 하나. 
[수십년전 자동차가 처음 발명되었을때 자동차라는 방에 오랫동안 1위로 포지셔닝 되었던 것은 '포드'였다. 그러나 폭스바겐은 자동차라는 방을 'Think small'이라는 유명한 카피를 통해 경차라는 블루오션 시장을 개척했고, 다르게 말하자면 소비자 마음속의 자동차라는 방을 세분화하여 경차의 방을 개설했고, 그 경차의 방의 1위 자리에 폭스바겐의 비틀을 들어앉혔다. 
그 뒤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자동차 회사들은 각기 자신의 브랜드의 고유한 속성을 부각시키며 자동차라는 방을 계속 쪼개고 쪼갰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부자들이 타는 차라는 방을 만들었고, BMW는 비지니스맨을 위한 감성적 차라는 방을 만들었고, 아우디는 안전함이라는 방을 만들어냈다. 이로써 자동차라는 시장도 브랜드의 수만큼 파편화되고 컬트화되어 제각기 다른 의미로 소비자들의 마음속에 포지셔닝하고 있다. ] 
이 부분에서 마지막 문장은 동감이 가지만, 그 앞부분은 조-금 과연 이 브랜드와 맞는 말이긴 한가 싶은 수식어의 조합이네요. 
VW의 비틀은 [국민차] 이지 [경차] 라는 클래스에는 안 들어갈테고요 (애시당초 경차 자체가 일본하고 한국밖에 없는 문화), BMW의 묘사는 조-금 고개가 갸웃거려지고, 아우디에 대해서는... 그거 아무리 봐도 볼보의 이미지. 

... 여튼 딴지를 넘어서 본론으로 가보자면. 

결국 [유일함을 위한 소비] 로 모든것이 가고 있는데, 궁극적으로 말해 그 [유일함] 이 종래에는 [유일하지 않은것] 과 다를바 없지 않나. 실제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변하는건 아닌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같은데 내가 그것들을 위해 해야 하는게 늘면, 난 대체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거지? 라는게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이고, 그래서 얼리아답터를, 튜너를 때려 치고 양산품의 세계에 백기투항했거든요. 

그리고... 국내와는 사정이 다르지만, 일본같은 경우는 동인지로 돈 벌 수 있나보더군요. 코가 윤이 동인지 팔아서 집 사서는 세무서에서 코미케에 난입했다던가 하는 전설도 전해지고, 뭐 비슷한 경우로 동인 작가가 페라리(...) 몰고 다니는 경우도 있고, 일단 세금같은게 없고 하기 때문인지 꽤나 경계 대상인것 같기도 하고요.    
 
 
상병 박진욱 (2006/06/18 15:54:58)

아. 그러고보니 한가지 더. 비틀의 탄생은 페르디난도 포르쉐 박사가 아돌프 히틀러의 뜻에 따라 만든 국민차. 인거 기억하시죠? 이것도 나름 몰개성한 이야기입니다만. 
BMW나 아우디도 2차대전 전부터 있던 메이커고 -BMW는 전쟁중의 항공기를 제작했고, 아우디의 4륜 마크는 전쟁 후 4개 메이커가 합병했다는 상징. 비슷한 예로 옆나라의 후지중공(스바루)의 쏟아지는 별 마크가 있습니다- 다임러 메르세데스는 자동차의 시초인 다임러카의 그 가문이란걸 생각하면... 좀 기초자료의 팩트에 문제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상병 박진욱 (2006/06/18 15:56:19)

뭐랄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 이건 박진우 병장님이 저번에 말씀하셨던 "장르에 투항" 과 비슷한 느낌이에요. 아무리 비주류를 지향하더라도 어느 순간 그 자체가 하나의 흐름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병장 박진우 (2006/06/18 16:03:57)

본문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비틀은 Think small이라는 광고카피 하나로 폭스바겐의 차는 '작다' 라는 포지셔닝을 해냄과 동시에 매출의 급상으로 이어지는 놀라운 효과를 얻어냈습니다. 경차가 아니라면 '작은차'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그리고 지금에 와서야 그 의미가 조금 퇴색되고 희석되긴 했지만 그때 당시에는 꽤나 센세이션이었다고 광고학 수업중에 들었습니다. 

아우디나 볼보는 사전지식 미숙. 이고... 

얼리어답터를 추구하다가 양산품의 세계에 백기투항한 진욱씨 또한 유일한 존재라는 점에서 지지합니다. 암, 그렇구 말구요. 제 주장은 퇴계선생이 했던 네가 옳다, 너도 옳다. 라는 대답과 일맥상통합니다. 이 세계에 나와 완전히 똑같은 사람은 없는 법입니다. 내가 무얼하건 그 행위는 나라는 존재의 유일한 것이니까요. 

따라서 저는 본론에서 말했듯이 [생산자가 제공하는 허울의 생산에서 소비자는 생산-튜닝-을 하고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건 결국 소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라는 말을 한거구요. 생산자가 제공하는 허울의 생산도 좋고, 진정한 재생산도 좋고, 뭐든지 좋다는 겁니다. 제멋대로 살아가는 것이 변화를 위한 행위라면 그 모든 행위는 저에게 납득가능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체되는 길로 접어든다면 저는 그 정체를 깨부수기위해 노력할것이구요. 

또, 아마추어 동호회는 문단이 두개로 나뉘어서 잘못 이해한것이겠지만, 저는 한국인들에게 부는 컬트화 바람을 짚어낸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외국에서 동인지로 먹고사는건 다른나라 이야기밖에 되지 않구요.    
 
 
 병장 박진우 (2006/06/18 16:09:36)

그리고 비주류에 대해서 또 다른 말을 하자면 

황정민씨가 주류로 올라섰지만 그는 계속 비주류로 넘어가기 위해 애를 쓸까요? 아닐겁니다. 그는 황정민다운 연기를 하기 위해 애를 쓸겁니다. 주류라는 흐름과, 비주류라는 흐름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멀티적인 관점을 가지고 황정민씨는 황정민 개인의 독특함과 개인적인 가치를 더 깊게 파고 들겁니다. 그리고 대중들은 그러한 황정민씨에게 열광할거구요. 

유독 이 문제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봤지만 종착역은 [철저한 개인에의 추구]더군요. 저의 [장르에 투항] 역시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셔야하구요. 저는 장르라는 기존의 틀 안에서 철저하게 개인을 추구할겁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파편화시킬거고, 더이상 나눠지지 않는 단위로 장르를 세분화시켜버릴겁니다. 그 다양성에서 후발자들은 가능성을 찾고, 대중들은 소통을 찾아냈으면 하거든요. 

획일화는 재미없구요, 정체는 늘 진부합니다. 
모든 것은 다양해져야하고, 변화를 위해 몸부림을 쳐야합니다. 

그것이 삶이니까요.    
 
 
상병 박진욱 (2006/06/18 16:15:16)

그게... 언어학적 유희. 로 보이시겠지만. 경차는 작은차이지만, 작은 차는 경차가 아니거든요. 
소형차. 라는 분류가 엄연히 따로 존재하는 이유는 거기 있고, 티코 이전에 우리의 언어 사전에 경차도 없었고 말이죠. 
이 경차. 라는건 어디까지나 폭과 전장, 엔진 배기량이 규정된 차로, 한국과 일본에만 있으며, 그마저도 한국과 일본의 경차 규정은 [다릅니다]. 일본의 경차는 한국에서도 경차이지만, 한국의 경차는 일본에서 소형차입니다. 미미한 (10cm) 차 폭과 미미한 (140cc) 배기량의 차이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오죠. 

한국에서 경차의 포지셔닝이야 뭐 배기량 기준 세금이 비교적 저렴하고 고속도로 이용료나 주차비가 조금 싸다... 정도이지만, 일본에서의 경차라는건 사회 초년생 한달 월급에 필적하는 비싼 [차고지 증명] 을 면제받을수 있거든요. 거기에, 버블기의 경스포츠카나 경SUV(...)가 있고 해서, 경차. 라고 일률적으로 말해도 꽤나 독특한 생태계입니다. 그쪽은. 
미국이면 아메리칸 머슬 V8의 힘이어 솟아라- 하는 곳이니 이런 쪼잔한 차 따위 있을리가 없고. 
유럽의 경우도 [이 정도로 작은 차] 라면 역사를 뒤져 피아트 500, MCC SMART 같은 녀석들이 나오긴 합니다만, 현재 시장에서는 그다지 대접받지 못하는 신세입니다. 

단순히 크기가 작은 해치백 (트렁크가 따로 없는 차) 가 경차. 는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이렇게 길게 주절주절 늘어놓았다는걸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슈릭 사라지겠습니다. 그러니까 클릭하고 골프랑 칼로스는 경차가 아닙니다! (...)    
 
 
상병 송희석 (2006/06/18 16:17:41)

진우/ 글자체를 제가 제대로 못읽었나 봐요. 전 글이 계속 컬트화에 대한 비판이 들어가면서, 비주류의 열정을 통해 배우자! 뭐 이런것인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답글을 보니 또 다르게 보이네요. 허헛! 그러나 변화란것은 결국 목적이 있기에 생기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여전히 진우님 글에는 계속 의문만 남네요. 아무튼 잘 읽고 갑니다.    
 
 
상병 박진욱 (2006/06/18 16:20:31)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언더에서 메이저. 라면 언급은 안하셨지만 윤도현도 있겠죠. 
뭐랄까. 윤도현을 보고 있자면, 다른 사람보다 더 크게 느끼는건데, 이전의 [개인] 이, 이 주류에 편입되어버리면 그 [개인] 으로 존재하지 못하는걸 느껴요. 
뭐라고 해야 할까. 음. 다양성의 부족? 비주류에서 올라선 주류가 오히려 더 비주류를 죽여버리는, 애매한 결과? 그런 이야기요. 
뭐, 그런 이야기를 처음 꺼내는건 아닌데, 일전에 누군가가 한 발언이 있어요. 
[대한민국에서 술, 담배 같은거 말고 취미생활이란게 진짜로 되려면 인구가 팍 늘지 않는 한 어렵다] 
란 이야기인데... 이 글을 보다보니 확연히 생각나는것은, [각자가 각자로 남아 있는걸 당연시 할 수 있는 시야] 오히려 그게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병장 박진우 (2006/06/18 16:29:31)

희석// 변화의 목적은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네요. 

진욱// 윤도현의 경우에는 윤도현의 처신도 있지만 대중들의 열광에도 문제가 있다고 봐요. 독특한 윤도현만의 색깔을 추구하지 못한 점도 있고, 그런 어중간한 주류에 열광하는 대중들에게도 문제가 있고. 

[각자가 각자로 남아있는걸 당연시 하는 시야]는 분위기를 중시하며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의 술자리에서 테이블의 모든 사람-심지어 술을 안먹는 사람에게까지도-에게 술을 강요하는 한국의 술자리 문화를 봐도 확연히 드러나죠. 이건 한국안에서의 문제이겠죠. [우리]를 강조하는 한국의 특성도 한 몫을 하고 있고. 이런 모습을 보면 한국인에게 '쿨'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데... 유행하고 있는 걸 보면 또 신기하죠.    
 
 
상병 박진욱 (2006/06/18 16:39:37)

[쿨] 에 대해서는... [가지지 못한것에 대한 동경] 이라고 해두죠 (웃음)    
 
 
병장 엄보운 (2006/06/18 18:22:56)

"제멋대로 살아가는 것이 변화를 위한 행위라면 그 모든 행위는 저에게 납득가능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체되는 길로 접어든다면 저는 그 정체를 깨부수기위해 노력할것이구요." 이 내용이 본문에서 좀 더 두드러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초반부 포지셔닝-튜닝 라인의 매끄러운 전개는 정말 돋보입니다. 진우씨 요즘 버닝하고 계시네요!    
 
 
 병장 박진우 (2006/06/19 07:36:39)

보운// 날카로운 분석. 완전 감사해요~ 
그리고 전 이 칼럼에서는 가급적이면 개인적인 의견을 제시하는걸 억제하고, 분석하는 투의 형식을 사용해 우리의 현실을 조금 진단해봤어요. 제 의견을 글에서 말하기란 아직도 한없이 부끄럽고 자신없는 일이라... 버닝은 아니고, 잠깐 불이 붙었을때 확 태워버리고 다시 잠수하는 스타일이라...    
 
 
병장 이석현 (2006/06/19 08:01:29)

글을 읽으면서 '댓글이 많이 달리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그렇군요.    
 
 
병장 김강록 (2006/06/20 09:36:51)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부활한 필연적 붕괴론으로 읽히는군요. 그것도 그렇고 갈수록 진우님의 글은 프로의 글쓰기란 느낌이 든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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