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호선이 멈춰섰을 때 
 
 
 
 


지하철 2호선. 서울시 주변을 뱅 돌아 순환하는 열차. 사람들은 그 전철 안에서 출근을 하고 출근시에는 퇴근을 꿈꾼다. 혹은 등교를 하며 하교를 꿈꾸고, 하교시에는 다음날의 등교를 걱정한다. 혹은 퇴근을 하며 출근을 걱정한다. 인파와 인파가 맞물리는 사이 사이. 전철은 그 사이사이를 비집고 빠앙빠앙 플랫폼으로 들어서는 일들을 반복한다. 하루는 그렇게 순환한다. 일거리가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플랫폼에 도착할 즈음에는 물러서라는 경고메시지를 띄운 채. 어차피 제 몸에 탑승시켜 배출할 운명인 것을 알면서도.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것임을 스스로 알면서도. 지하철은 그렇다. 2호선의 경우는 더욱 혼잡스럽게도 그러하다. 모든 노선은 지하철 2호선에 연결되어있다. 서울 곳곳으로 퍼져나간 2호선 지하철의 행로는, 중심부를 꿰뚫고 나가는 1호선 보다도 둥글지만 오히려 더욱 첨예하다. 일상을 꿰뚫는 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사건 자체는 둥근 사건이었다. 그러나 일의 발단은 뜨겁고 날카로웠다. 

만남은 항상 우연하다. 2호선이 지나치는 역들은 항상 필연적이다. 그런 점에서 항상 인연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정작 그 필연에 탑승하는 사람들 자체는 그러한 진리를 모르고 멍하니 음악을 듣고 시시껍절한 일간지나 보고, 만화를 보며 키득대거나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멍하니 창밖을 본다. 혹은 속한 공간에서 벗어나 다른 이들과의 접촉을 꿈꿔 수화기를 붙들어 댄다. 그것은 지하철의 비애다. 내 새'끼들 내 새'끼들. 지하철은 그래서 그들을 태울 적마다 띠리리리 울린다. 너희들은 내 새'끼 노라고 신호를 한다. 

말했듯이 사건은 뜨겁고 날카로웠다. 

당산역에서 합정역으로 지나가는 당산철교의 위에서, 어느 햇볕 좋은 날 지하철은 멈춰 섰다. 그러려니 그러려니, 대수롭지 않은 무심함들이 지하철이 품은 새'끼들의 머리속에서 스쳐갔다. 그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어느 도시에서는 불이 난 지하철이 달리기도 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리고 어떤 다리는 변기 속으로 퐁당퐁당 빠지는 대변처럼 무너져 내린 적도 있었다.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런 사건 사고에 비하면 이런 일이란 참으로 둥근 사건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지하철 2호선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그 자체로도 그랬다. 혹 그 열차에 타고 있는 급박한 사람들에게는 이 아무렇지 않은 사건도 피 말리는 하나의 큰 사건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약속시간에 늦거나, 회사 면접에 늦거나, 선보러 가는 장소에 늦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크나큰 기회를 잃어버리는 사건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열차로서는 알 바 없는 일이었고, 그 곳 철교 위에서의 일광욕이 더욱 중요한 필연적 사건이었다. 물론 열차에게 의지가 있어 스스로 멈춰 섰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합정역을 지나 홍대입구역에서의 사소한 문제가 생겨 앞선 열차가 출발하지 못하는 관계로 인해 철교를 지나던 도중의 열차가 멈춘 것 뿐이었다. 
열차에게는 객관적인 사건일 지라도, 시간대로 보았을 때 열차 안에 탑승한 사람들에게는 다행이었다. 개개인으로 보았을 때 어찌 이 사건이 다행이겠냐만은 전체적인 관점에서 평해보았을 때 다행이라는 이야기다. 오후 12시를 조금 넘은 시각, 그야말로 점심시간대에 유동인구가 거의 없는 이 시점에, 열차안에 타고 있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오히려 그것은 한산함에 가까웠고, 한 칸에 적으면 5명에서 많아봐야 20명 정도가 타고 있을 뿐이었다. 빈자리들을 반짝이는 햇볕들이 채우고 있었다. 따뜻한 초여름의 오후 멈춘 열차 안은 그랬다. 한산한 정적이 흘렀다. 그것은 4.-5 칸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7명의 사람들이 각각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행여 어떤 사람은 서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 사실 한 명은 서있었다. 지하철에는 자리가 비어도 앉지 않는 사람들이 꼭 있기 마련이었다. 그것은 제각각의 이유로 살을 빼기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는 노릇이고 혹은 앉는 행위 자체의 귀찮음에서 오는 업그레이드 된 나태함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었다. 이유야 어쨌건 4-5칸에서 한사람은 서있고 다른 사람들은 제각각의 위치에서 자리를 잡고 햇볕이 내리쬐는 열차에 앉아 나른한 오후를 받고 있었다. 

“후, 후. 안내말-씀 드립니다. 현재 홍대입구역에서 작은 문제가 발생하여, 열차 운행이 지연되고 있으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안내 말-씀 드립니다. 현재 홍대입구역에서....,... 작은 문제가 발생하여 열차 운행이 지연되고 있으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죄송합니다” 

칼칼한 음성으로 울려퍼지는 안내방송. 열차안의 스피커는 교체된지 오래된 모양으로 징징징 울려댔다. 귀가 따가운 정도는 아닐지라도 거슬리는 음향임에는 틈림없었다. 그러나 한강으로 반짝이는 햇살들처럼 열차 안의 사람들은 그러한 음향에 무심했다. 다만 그 음향이 내뿜는 소리의 의미, 즉 사건에 대한 설명과 앞으로 미래에 대한 설명 자체가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렸을 뿐이었다. 몇몇은 그러시든지 하는 표정으로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고, 몇몇은 한숨을 푹 내쉬며 시계를 꺼내 보기도 하고, 몇몇은 아랑곳하지 않고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 노약자석에 앉은 40대 아저씨는 신문을 양쪽으로 크게 펼쳐 펄럭거리며 ‘얼씨구’ 하는 말을 내뱉었다. 

4-5칸에는 함께 타고 있는 일행이 한 명도 없었다. 함께 이동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아니 이것은 틀린 말이다. 현재 철교 위에 멈춰있는 열차 안에 타고 있는 이들은 사실 모두가 함께 이동하는 일행이였다. 그것은 자의고 타의고를 떠나 운명적인 것이었다. 열차가 띠리리리 울리며 출발할 때 내리지 않은 것.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함께 일행이 되어야 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모두가 한 길에 서있다는 것. 그들은 제각각의 자리에 앉아 제 갈 길을 가는 모냥으로 한 철로 위에 한 열차 안에 앉아있었다. 햇살이 하나로 부서지는 열차 안에서. 


“쓸~데~ 어없이이 누~운물이 흐을러~” 

일명 라이브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띠롱띠롱 게임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는지 키판을 만지작 거리던 20대 여성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식으로 벨이 울리는 핸드폰을 쳐다보며 발신자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재껴 머리카락을 휘 돌리더니 전화를 받았다. 

“아 응, 가는 중이야, 응. 응. 아니 아까 출발했지. 지금? 아 여기... 여기가.. 당산. 응 당산인데 지금 지하철 무슨 문제 있다구 잠깐 열차가 멈췄어. 응. 어? 야 내가 멈춘거냐? 문제가 생겼다는데 어떡해.. 응 그래. 그렇다니까... 몰라. 금방 출발하겠지. 응” 

그녀는 낭랑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대화내용을 빌어 추측해보자면 친구인 듯 했다. 고요한 열차 안으로 통화내용이 가득 담겨 울렸다. 열차 안의 사람들은 좋건 싫건 그 대화에 동참해야 했다. 그것도 반쪽짜리 대화에 참가해야 했던 것이다. 미완성된 대화가 울리면 추측이 뒷받침 되어야 했다. 사람들이 모여 모여서 저 여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상대는 누굴까 하고 머리를 맞대 상의를 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제각기 머리 속에서 여러가지 가능성들을 무심히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었다. 열차는 가만히 있었다. 마치 상념에 잠긴 것처럼. 당산철교위에서. 

전화통화를 하는 그녀는 긴 생머리에 옅은 화장을 하고 있었다. 약간 광대뼈가 튀어나온 얼굴형으로 시원시원한 외모를 하고 있었다. 노란 니트티에 청바지를 입은 그녀는 제법 상쾌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앞쪽에 앉은 청년은 주머니에 손을 꼽고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그녀를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노래 와중으로 간간히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대화. 몇 번을 더 힐끔거리다가 그는 이 사태가 따분한 듯, 혹은 힐끔힐끔 훔쳐다 보는 일이 권태롭거나 챙피한 듯이 후우 한숨을 몰아쉬며 기지개를 켠 뒤에 맨손 세수를 했다. 얼굴이 벌게졌으나 금방 원색으로 돌아왔다. 

다들 그 하고 많은 빈자리들 중 오직 끝자리들만 차지하고들 앉아있다. 기댈 곳이 있어서인가 아니면 서로를 최대한 멀리두기 위한 계산법인가. 열차는 묵묵부답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힐끔거리던 청년 옆쪽으로 문 앞에 봉을 잡고 선 남자가 있다. 정장을 입은 그는 주머니에 한손을 꼽고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대한 상념에 잠겨 거대한 강을 바라보고 있는 듯 보였다. 그의 얼굴로 강물에 반사된 햇살들이 알록달록 거렸다. 잠시 생각을 하던 차에, 그는 시계를 한번 보고 내려놓은 가방에서 무언가 서류뭉치를 꺼내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머리를 긁적긁적, 서류를 뒤적뒤적 앞뒤로 훑어보며 남자는 몇 번 입술을 비죽거렸다. 

한 쪽에서는 막대사탕을 열심히 이쪽저쪽으로 굴리며 문자를 주고받는 여학생이 있었다. 달그락 달그락 하는 소리가 설탕소리 같다. 이렇게 바쁜 움직임 와중에도 그 건너편 아주머니는 잠을 청한다. 안내방송을 들었는지도 의문이다. 뽀글뽀글한 전형적 아줌마 퍼머를 하고, 등산복 비슷한 조끼를 입은 아주머니는 스스로 팔짱을 낀 채 끄덕끄덕 잠을 청한다. 

신문 펄럭이는 아저씨 건너편의 할아버지도 잠을 잔다. 어쩔 수 없는 여유와는 다른 무엇의 여유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았다. 할아버지는 그저 이 오후의 햇살이 내리쬐는 열차 자체가 하나의 산책인 듯 했다. 그것은 굳이 움직이는 열차가 아니라도 좋았을 것이었다. 아니 사실 어떻게 보면 컴컴한 지하를 통과하는 명목상의 지하철보다는 잠시 숨을 쉬기 위해 주둥이를 뻐끔 내미는 잉어마냥 터져나온 이 지하철의 지금 모습이 더욱 좋았을런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하기야 잠을 청하고 있는 지금에 와서는 그러한 감흥들도 모두 잠든 일들일 뿐이겠지만. 

제각기 열차를 타고 제각기 열차에 앉아 제각기의 할일들을 한다. 그것들은 하루를 돌리는 일들이다. 조그만 일들 하나하나가 모여 둥그런 하나의 하루를 이룬다. 지하철역 하나하나가 서울 곳곳에서 제 위치를 잡고 둥그렇게 자리를 잡는 지하철 2호선의 열차 안에서 그들은 그렇게 발을 딛고 앉아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지하철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둥글둥글한 지하철도 움직여야 노선이 완성되는 것이다. 활동하지 않으면 선으로서 죽어버리는 하루가 되어버리는 것처럼, 이 지하철도 죽어버릴 지 모르는 일이었다. 

드르륵 

드르륵 

칸과 칸을 연결한 이중문이 열리고 닫히고 열리고 닫혔다. 4-6칸에서 한 청년이 걸어 들어왔다. 이물질이다. 제각각의 칸들은 분리되어있었는데 침입자가 생긴 것이었다. 사실 그런 것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다만 누가 왔나 하고 흘끔 쳐다 볼 뿐이다. 그들은 자기가 왜 쳐다보는지 조차 자각하지 않는다. 어느새 자기가 속한 칸에 어느 정도의 정을 두고 소속감을 가지게 된 이래, 누군가가 오면 자기 공간으로의 침입으로 간주하여 독수리를 경계하는 망구스처럼 눈치를 살피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었다. 들어온 청년은 한순간의 공기를 맡고 주위를 살핀다. 그가 누구인가를 궁금해하는 몇몇 터줏대감들과 눈이 마주쳤다. 

“야 이 병'신아!” 

침입자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것은 갑작스러운 공격이었다. 심지어, 자고 있던 할아버지와 뽀글뽀글한 아주머니도 잠을 깼고, 통화를 하던 여자도 말을 잠시 멈춘 채 그를 바라보았으며, 신분모던 아저씨는 신문을 한쪽으로 접었다. 음악을 듣는 청년도 갑작스런 큰소리에 놀라 이어폰을 뺐다. 서류뭉치를 보던 남자도 서류를 다리 쪽으로 슬그머니 내리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문자를 보내던 여학생도 사탕 먹던 입을 헤 벌린 채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살어! 그렇게 살라고!” 

침입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딱히 누구를 쳐다보았다거나 지정한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가 아는 누구가 있겠거니, 그래서 보자마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기억이 있어 재랄을 했겠거니 싶었던 사람들도 그의 행동거지에 의아해 했다. 침입자는 그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천천히 앞으로 움직였다. 때로는 고개를 옆으로 휘휘 돌리며 사람들을 응시하기도 했다. 그와 눈빛을 주고 받은 사람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언제까지 그러고 사나 보자고! 어?!!” 

발악하듯이 그는 몇 차례 더 성깔을 있는 힘껏 부리고 나서 다시 이중문을 드르륵 드르륵 열고 옆 칸으로 옮겨갔다. 열차는 멈춰서 있는데 그는 움직이고 있었다. 한 마리 반항아였다. 다른 이들은 운명에 순응한 채 모두들 꼼짝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것은 따분하거나 짜증나거나 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오직 그 운명 속에서 자기 할 일들을 조그맣게 찾아 제 각기의 스스로를 되찾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들에 비해 그 청년은 4-5칸으로 들어서던 순간부터 시작해서 침입자이자 날뛰는 미꾸라지였다. 

반응은 조금 느렸다. 
졸고 있던 할아버지는 어린놈의 새'끼가 정신 빠진 짓을 하고 휩쓸자 열이 뻗친 모양인지 혀를 차며 ‘별 미'친놈’이라고 중얼거렸다. 음악을 듣는 청년은 한쪽 이어폰을 한손에 든 채 어이없다는 웃음을 픽 하고 지었고, 통화 중이던 아가씨는 상황보고에 여념이 없었다. 

“아니 학생, 요즘 저런 젊은이가 많나?” 

신문을 접은 아저씨가 음악 듣는 청년에게 물었다. 청년은 깜짝 놀라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질문에 대해 생각하는 듯 했다. 어이없는 질문이었다. 기성은 젊은이들을 한 떼로 몰아 문제시 하려는 경향이 있다. 학생이라고 불린 젊은이는 그러한 집단적 모욕감을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상황자체가 재미있는 일이라서, 자기도 어이없다는 듯 대답 하는 것이 보람찼다. 

“아, 아니요. 저도 저런 사람은 처음 보는데요” 

열차가 정지된 이래 최초의 소통이 이룩되고 있었다. 열차는 정지했는데 함부로 새'끼들이 놀음을 놀았다. 제각기의 언어로 내기를 하고 있었다. 

“별 저런 미'친놈이 다 있어” 

잠이 화들짝 깬 모양인지 화가 단단히 난 표정으로 아주머니도 대화에 동참했다. 사탕을 빨던 여학생이 흐흐흐 웃으며 카드득 카드득하고 입에 있는 것을 깨물어 먹었다. 

“응응. 알았어. 조금 늦을 것 같다. 미안해~ 응. 금방 갈게 좀만 기다려” 

삑 

통화를 하던 여자도 핸드폰을 닫았다. 

“아니, 저런 사람도 저런 사람이지만, 요즘 보면 부쩍 예수쟁이들이 늘었더라구요” 

정장 입은 남자도 서류를 들고 제스쳐를 취해가면서 자기 의견을 피력했다. 낯선 사람에게 말걸기가 쉽지 않은데 자기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는 모양인지 말소리는 약간 떨리고 있었고, 말이 끝난 뒤에는 얼굴이 조금 빨개지는 모습까지 보였다. 

제 각각의 일들은 흩어졌다가. 하나의 충격으로 인해 깨어지지 않고 오히려 달라붙었다. 방금 전까지 제각각의 열차를 탔던 사람들은 4-5칸에 모여 한사람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뭘 그렇게 살라는거야? 저나 잘 살 것이지. 떨어진 자리들에서 언어들이 튀어나와 서로의 몸에서, 귀에서 부숴졌다. 
그렇게 열띤 토론, 내지는 뒷 담화, 내지는 이야기가 꽃피는 가운데 안내방송이 나왔다. 

“아, 아, 열차, 출발하겠습니다.” 

덜컹, 소리가 나고 열차가 출발했다. 열차는 움직여 다시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방금 전까지 이야기를 꽃피우던 사람들을 제각각의 자리에 인사도 없이 떨어뜨려 놓았다. 
지하철역들은 각각 있고, 그것들은 2호선인데, 둥근 2호선인데, 그들은 또 서로 제각각의 자리를 찾아갔다. 헤어질 땐 아무런 말도 없었다. 응당 제각각이었으므로 처음부터 그러했으므로 필요없는 것들 따위는 필요 없는 것이었다. 지하철 2호선은 오늘도 제각각의 역에서 멈춰서고, 띠리리리 울리는 소리로 제 새'끼들을 받고 있다. 무덤덤하게, 우연하게, 이 역에서 저 역으로 그러나 날카롭게, 필연적으로. 또한 둥글게 둥글게. 
말했다시피 이 사건은 중요한 사건이 아니거니와, 둥근 이야기다. 


 

  
 
 
 
상병 이영준 (2006/06/14 11:00:13)

2호선을 참 많이 이용했는데, 정말 저랬어요. 
참, 삭막하죠?    
 
 
 병장 홍석대 (2006/06/14 11:32:37)

와, 김지민님 글 잘쓰십니다. 멋져요. 정말. 
잘 봤습니다!    
 
 
병장 고계영 (2006/06/14 12:49:2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 글이 논픽션인지 아닌지는 그리 중요한것 같지는 않고.. 
그저 생각나는 것은, 어릴 적 처음 서울에 갔을 때 - 8살- 
많은 사람들에 놀랐고. 거리를 걷는 사람중에 단 한 명도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다는 것에 놀랐고, 
그 수 많은 사람 중에 자신이 '다른 사람과 같이 존재 한다'라는 것을 느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라는 느낌을 느낀 어린 저의 모습에 제일 놀랐었더랬습니다..    
 
 
일병 이건룡 (2006/06/14 15:11:36)

갑작스런 사건 그리고 우연한 지하철사고 활짝 핀 웅성거림 그리고 지하철 운행재개로 일상 생활로의 전환을 위한 '봉합'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병장 박준응 (2006/06/14 18:37:46)

약간 두서없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야기의 흐름을 조금만 더 다듬고, 
얘기하고 싶은 것을 조금 더 강렬하게 모은다면, 
(개인적인 사견 보태서)신춘문예 내도 될 듯(웃음) 

좋은 글 재밌게 읽었어요(찡긋)    
 
 
상병 권오규 (2006/06/14 18:43:34)

글 정말 잘 쓰시네요. 잘 읽었습니다.    
 
 
일병 김지민 (2006/06/15 10:48:38)

과찬이십니다. 
굳이 메시지를 담으려고 했던 건 아니고, 제각각이었던 이들이 어떤 사건으로 인해 뭉쳐지는 것을 재미있게 나타내고 싶었는데, 이런식으로 진행이 되어버렸습니다. 허허. 
결말이 조금 더 날카로웠다면 하는 아쉬움도 있구요.    
 
 
병장 정광훈 (2006/06/15 14:25:23)

지하철 2호선이라 .. 
자주 이용해서 스스로한테는 조금 특별한 존재죠. 

지하철하면 사람들의 "심드렁"한 표정만 생각나요. 
가끔은 저런 돌발적인 사건이 일어날때마다 
실없는 미소를 짓게만드는 공간, 

그리고는 다시 심드렁..    
 
 
하사 윤석호 (2006/06/15 19:56:52)

Oh! Good!    
 
 
병장 박민수 (2006/06/16 02:09:34)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병장 엄보운 (2006/06/16 10:24:05)

아. 정말 글을 잘 쓰시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