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석님과 시용님의 첫 번째 대화 : 성경에 대한 해석 
 
 
 
 



안녕하십니까 리장입니다. 2006년 베스트 내글내생각으로 선정된 희석님과 시용님의
토론글이 너무 많아 부득이하게 두분과 상의하에 시용님이 직접 재편집을 해서
다시 게재하게 되었습니다. 

실상 베스트 내글내생각으로 선정된것은 두분의 토론내용이지만 해당 논의보다 조금 더 확장된 내용에 혹시나 관심이 있으신 분들을 위해 박시용님께서 이 토론의 전편에 해당하는 글에 대한 링크를 요청하셨습니다. 그리 큰 무리가 없다는 판단이 들어
첫번째 대화 끄트머리에 '더 읽고 싶은 분에게'라는 타이틀의 링크를 첨부하였습니다. 

보시는 분들의 편의를 고려해 희석님 부분을 녹색, 시용님 부분을 검은색으로 
표기하고 댓글을 주제마다 나누어 본문에 포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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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석님의 질문)

시용님께 : 첫번째 대화를 신청하며


안녕하세요. 저는 상병 송희석이라고 합니다. 라고 재미없는 인사말부터 먼저 올립니다. 시용님의 두 개의 글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으며, 그러한 논의에 관해 심도 깊게 이야기해보고자 글을 남겨봅니다. 다만 이러한 글을 쓸 때 저는 심각한 고민이 생겼습니다. 다름 아니라 저는 무신론자가 아닌 유신론자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무신론자이라면, 헤겔의 정-반-합 논리에 의거하여 좋은 담화를 나눌 수 있겠지만, 결국 우리는 신을 믿지만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사이에서 오는 다른 괴리로 논의를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이것은 반쪽자리 논의가 될 여지가 충분하지만 그로인해 새로운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면 저는 과감히 비기독교 인을 자처하고 기독교인들에게 바보소리를 들을지언정 대화를 신청하는 바입니다.

대화의 첫 번째 신청 - 성경무오설과 성경유오설

저는 일단 이러한 내용을 쓰기 전에 먼저 여기서 말하는 내용들은 한신대와 장신대 신학과 학생들이 대부분 배우고 있는 내용이거나, 논의되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허나 시용님은 신학과 학생은 아니신 것 같고, 절실히 믿는 한 기독교인이라 생각하며, 시용님 글 주변에 성경을 읽어본 적이 있는가? 라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기에, 모든 의문의 대답은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는 성경근본주의적 해석자라고 여기며 초점을 그곳으로 맞추고 이야기를 이어나가겠습니다.

일단 정경에만 국한시켜봅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경을 설명해야 할 텐데, 정경이란 의미는 많은 책 가운데서 어떤 책은 어떠한 특별한 이유로써 특별한 존중의 대상이 되는 책으로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 책은 필연적으로 권위를 갖게 됩니다. 어떤 책은 다른 책들보다 더 거룩하다는 ‘캐논’의 관념은 특별한 신성을 가졌다는 일반적 합의를 본 다음에 생기게 된 것입니다. 결국 성경은 ‘거룩한 책’이라는 말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유대교로부터 상속받은 것은 구약성서입니다. 예수가 그의 교훈 가운데서 구약성서에 자주 언급했고, 그의 제자도 같이 언급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 가운데 거룩하고 권위 있는 책이 존재해 있던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당시 구약성서가 당시 유대인들이 읽고 있던 종교서를 다 포함한 것은 아니고, 여러 가지 책 가운데서 선택된 책들이며, 다른 종교적인 책이 갖지 못하는 권위가 부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영감의 책으로서 성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경의 목적 - 즉 구약성서 -은 옛날 유대인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썼으며, 신으로부터 온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 즉 성서는 영감과 권위의 책임을 알게 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성서는 모든 종교적 교훈의 근본이 되며 규범이 되어 어떤 교훈이든지 그것이 구약성서에 비추어보아 거기에 맞지 않으면 참이라고 인정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럼 이제 논의를 넓게 봅시다. 구약성서의 처음 눈부신 다섯 권은 기원전 400년에 정경이 된 다음에 ‘모세의 율법’ 이라고 불렸는데, 후에는 유대인들이 이를 다만 ‘토라’라고만 불렀습니다. 이 토라는 인류가 가진 고전 중의 고전이며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인정받으면서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 3대종교에서 신적계시의 책으로 여김 받은 책인 것입니다. 특히 신의 우주창조에서부터 시작하여 신의 백성이라 불리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役事), 활동했는지를 세밀하게 묘사했으며, 더욱이 저들의 최대의 율법 제정자이며 예언자이고 지도자인 모세의 죽음까지의 역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특히 창세기는 더더욱 재미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모세오경 중에 창세기만 살펴보면

천지창조->인간창조->아담과 하와의 타락->가인과 라멕->셋의 자손->용사->홍수->노아의 자손->바벨탑->아브람의 조상->아브라함과 이삭->야곱->요셉과 야곱의 아들들 이라는 순서도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여기서부터 의문점이 생깁니다. 만약 모세오경중 창세기 및 기타 4가지를 전부 성경무오설에 입각해서 모세 한사람이 썼다고 한다면 그것은 해결할 수 없는 곳으로 다다르게 됩니다. 이제 그 점을 살펴볼까 합니다. 이러한 모세의 저작설에 관한 전승여부를 따지는 것이 바로 성경이 무오한지 유오한지 알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a) 설화, 율법의 반복과 병행

- 아브라함이 위기에 처했을 때 자기의 처 사래를 누이동생으로 일시 가장시킨 일이 두 번 반복되었습니다.(창 12 : 10~20, 20 : 1~18)

- 아브라함이 아들을 얻는다는 약속을 세 번이나 받았습니다.(창 15 : 4, 17 : 16, 18 : 10)

- 이삭 이름의 뜻을 네 번이나 말하고 있습니다.(창 17 : 17~19, 18 : 12~13, 26 : 6)

- 하갈의 이별 이야기가 두 번 나옵니다.(창 16 : 4~14, 21 : 9~21)

- 야곱의 이름변화가 두 번 나옵니다.(창 32:28, 35:10)

b) 설화, 율법의 불통일

- 두 가지 서로 모순된 창조설화가 있습니다.(창세기 1장에서는 7일간의 창조순서가 식물, 동물, 인간으로 되어 있는데, 창세기2장에서는 하루 동안의 창조순서가 인간, 동물, 식물로 되어 있습니다.)

- 두 가지 홍수설화가 있습니다.(창 7 : 12절에는 홍수기간이 40일로 되어 있고, 창 7 : 24절에는 150일로 되어 있습니다.)

- 요셉의 바로에 대한 두 가지 충고가 있습니다.(창세기 41 : 34절을 보면 풍년 때 5분의 1의 곡식을 저장하라고 요셉이 바로에게 진언하고 있으나, 창세기 41 : 35절에 보면 모든 곡식을 모으도록 진언하고 있습니다.)

- 모세의 장인의 두 가지 이름이 있습니다.(출 2 : 18절에는 르우엘, 출 3 : 1, 4 : 18절에는 이드로라 되어 있습니다.)

c) 연대의 불일치

- 사래의 연령이 이상합니다.(창 12 : 11절을 보면 사래가 애굽의 바로 왕의 호기심을 살 정도로 어보였다고 하나, 창 17 : 17절을 보면 아브라함 보다 열 살이나 젊다고 되어 있으니 사래가 65세정도였을겁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나이가 그때 75세였기 때문입니다.)

- 창세기 34~35장이 포함하는 연대가 이상합니다.(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이 죽기전 고향으로 돌아와(창 33 : 18)아버지를 장사지냈습니다.(35 : 29). 야곱이 라반과 함께 있던 기간은 겨우 20년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31:45). 창세기 34~35장 기록은 야곱의 생애 중에서 약 60년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창세기 37 : 2절에 보면 요셉이 17살에 그의 형들을 성가시게 굴었다고 하며, 야곱이 라반에게 7년간 종살이하고 나서 혼인한 지 9년 만에 요셉을 낳았으니, 그때가 고향으로 돌아오기 4년 전이었는데, 이렇게 보면 34~35장 사이의 사건은 13년 이상을 넘지 못합니다.

- 애굽에서 살던 시간이 이상합니다.(출 12 : 40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의 애굽거주기간이 430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출 1~12장에 보면 요셉이 39세 때 자기 형제들이 애굽에 입국했으며, 그가 110세에 죽었으니(창 50 : 26)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한 기간은 71년간이 됩니다. 출 7:7절에는 출애굽할 때의 모세의 나이는 80세였습니다. 그러므로 출 1:6~8이 포함하는 기간은 1:9~22의 사건 기간을 합쳐서 250년간이 됩니다.)


d) 과학의 창조시기와 성경의 창조시기 불일치

과학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창조의 기원은 모세오경에서 찾는 것이 일반적 이였습니다. 이에 따라 6일간의 천지창조와 노아의 홍수이야기를 바탕으로 지구의 연대를 계산했는데, 이를 모세지질학이라 부릅니다. 모세지질학을 통해 추정된 지구의 연대는 6000년 내외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과학의 시대에 이르러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직 새로운 지질학이 등장하면서 모세지질학은 지지를 얻기 어려워집니다. 지구에 나이에 대한 문제는 결과적으로 우주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발전시켰습니다. 17세기 이후의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우리는 우주의 나이가 137억년 정도고, 지구의 나이는 45억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신의 창조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고 성경에 대한 무오설로 우주의 기원과 나이를 재단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자 이제 저는 비기독교인으로 기초적인 성경유오설에 입각하는 질문들을 던졌습니다. 제가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성경무오설에 입각하여 수많은 죄들이 버젓이 일어났다는 점 때문입니다. 특히 근대교회에 폐쇄성을 드러내는 사례는 미국의 존 스코프스 라는 재판이 있습니다. 1925년에 미국 테네시 주 의회가 공립학교에서 기독교의 천지창조설에 반대하는 이론을 가르치는 것을 금하는 법률을 통과시킨데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데이턴의 한 고등학교 생물교사로 있던 스코프스는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쳤고, 결국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진화론 금지법은 1967년에 가서야 겨우 폐지된 것입니다.

이 재판만으로 끝난 것은 아닙니다. 성경해석을 통해 과학적 진리를 입증하려는 시도는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창조과학회’의 활동입니다. 창조과학회는 새롭게 발견되는 과학 이론과 성경 해석을 연결해 성경의 진리성을 과학으로 입증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성경과 과학의 연결을 통해 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경무오설에 입각해 성경적 진리와 과학적 진리를 동일하게 보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그들에게 성경은 과학교과서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기독교인들이 과학을 효과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성경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창조과학회는 일종의 강박관념에서 출발한 듯 합니다. 과학적으로 입증되어야만 성경의 진리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연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못한다면 성경의 내용은 모두 부질없는 것으로 전략하는 것일까요? 설사 성경이 모순되는 점이 있다고 해서 성경 그 자체로 진리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은 없을까요? 성경에 대한 문자적 해석으로 과학적 진리를 입증하려는 그들의 시도가 기독교에 얼마나 이득이 될까요? 설사 성경무오론자들의 입장에 동의하여 성경에 오류가 없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문제는 그러한 성경의 무오성이 인간의 욕망까지 무오하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 내려가는 인간이 성경의 무오성을 그대로 담아낼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성경 해석을 통해 얼마나 많은 비극이 발생했는지를 떠올린다면 저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을 거라 사료됩니다. 

저는 여기서 ‘의심의 해석학’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의심의 해석학이란 한마디로 한 주체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문서들이 어떤 질서를 강화했는지 밝혀냄으로써 보편적이며 절대적이라 여겨왔던 진리의 허구성을 추적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읽어야 한다는 성경에 의심의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은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허나 이때의 의심은 다른 믿음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얼음장 밑으로 얼지 않은 물이 흐르듯, 겉으로 드러나 진리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을 거두면 성경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믿음인 것입니다.

주권자 신과 죄인 된 인간이라는 아우구스티누스적 구조는 근본적으로는 모든 인간을 수평적 관계에 놓고 있으므로 적어도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어떤 중심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만든 자들에 대한 의심은 새로운 기독교 세계관을 만들어 날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로 성경을 ‘해체’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 시용님께 물어보겠습니다. 시용님은 ‘성경’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위에 제가 열거한 이야기를 듣고 성경을 ‘해체' 시키실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성경이 무오하다 주장하신다면 그러한 무오 성으로 인해 수많은 과거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첫 주제인 성경 무오설과 성경 유오 설에 관한 시용님의 답변을 진심으로 기대하는 바입니다. 

덧. 총 세 가지 주제로 대담을 신청하겠습니다. 진심으로 좋은 글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박시용님의 답변)

예.. 글 잘 읽었습니다. 성경에 대해 많이 연구하시고 여러가지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 같아 반갑습니다. 잘 파악하신대로 전 신학생은 아니며 절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성경을 읽는 관점에서의 기준을 잡기위해 앞의 두 글을 작성했었습니다.

그러나 희석님께서 저에게 몇가지 질문을 던지신것과 같이 저도 몇가지 여쭤보겠습니다. 우선 성경을 많이 공부하신 분의 입장으로써 이렇게 저에게 '성경의 무오, 유오적 관점'을 물어보시는 의도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단지 제 입장을 들어보시고 싶으신 겁니까? 희석님께서 혼자 단정지으신 '성경근본주의적 해석자'로서의 제 입장을요? 아니면 한 기독교신자의 신앙의 원점을 흔들고 싶어하는 반론인지요..

밑의 제 글에 희석님께서 남겨주신 리플에선 감정적인 논점이 아닌 논리적 답변을 부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저를 절실한 기독교 신자라고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저 절실합니다. 아니, 더 '절실'하지 못해서 안달입니다. 참 어려운 입장에 처하기 쉬운곳에 있으면서도 주님을 사랑하고 주위사람을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글을 읽고 '성경을 해체시킬수 있냐'니요. '겉으로 드러나 진리행세를 하는 것을 거두라'니요. 온라인 게임도 아니고 '노템전'이라니요. 그럼 제가 어떤 답변을 드려야 합니까? 이 '게임'에 노템전으로서 절실한 기독교인이 성경을 해체해 가면서 답변을 드려야 합니까? 답변을 드렸다 칩시다. 그런데 제가 어물어물대다가 게임에 졌습니다. 그러면 속이 시원해지시겠습니까?

'성경'에 대한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논쟁이 수반되기 쉽다는 것 알고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동인구 많은 '책마을'에 제가 장편의 긴 글을 두번이나 올린것은 물론 '네피림과 사람의 딸들'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드리고 싶었기도 하지만 성경을 읽는 궁극적 목적이 그것을 읽고 '무오냐 유오냐'의 안으로 수렴되는 논쟁보다는 성령에 감동되어 '하나님을 목숨처럼 사랑하고 부모,형제를 사랑하라'는 밖으로 발산되는 '행위'가 우선되어져야 된다고 믿기 때문에 성경을 읽는 관점에 대한 정립이 필요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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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래도 제가 아는 지식의 한도 안에서 답변 및 제 입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꼭 희석님의 글에 대한 답변 말고도 '성경의 정경화의 과정과 해석되는 관점'에 대한 글이니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이런 경우를 한번 가정해 봅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언젠가 말하고 행동한 것을 타인이 기억하여 구두로만 전달되다가, 후에 다시금 적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다시 기록했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분명히 문서 이전의 어떤 단계를 전제할 수밖에 없을것입니다. 그리고 기록된 것을 복사해서 남기거나 전달했을 때 원본과 사본의 문제가 개입될 수밖에 없을것입니다. 더군다나 사본이 여럿 발견될 때는 어떤 것이 참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가 하는 문제까지도 생길 수 있습니다. 이 때 우리는 원저자는 누구이고 전제 가능한 어떤 편집가가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등의 문제를 숙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다른 언어권에 이 문서가 전달되었을 때는 번역의 문제가 뒤따르고 어떤 다른 사회로 유입될 경우에는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사회구조를 통해서 민중 속에 전달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위에 언급한 유사한 문제점들을 보유하면서 일정한 과정을 거쳐서 오늘 우리의 손에까지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파내듯이 어떤 고정불변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만일 성경이 그런 모습의 것이라면 도리어 그 문헌의 역사성과 내적인 가치가 더 의심스럽지 않았을까요?


구약성경의 형성을 봅시다.

지금 현대인의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39권으로 되어 있는 구약성경은 본래부터 지금과 같은 순서대로 번역되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본래 히브리어 구약성경(palestinian Cannon)은 24권으로 되어 있으며 크게 세 부분으로 나란히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율법(토라), 예언서(네비임), 성문서(케투빔)가 그것이며, 이렇게 구분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주전 190년경으로 추정합니다. 역사적으로는 제일 먼저 정경으로 채택된 문헌이 율법이고 마지막으로 성문서가 정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틴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에서는 구약성경을 재분류하게 됩니다. 우선 세 부분의 구약성경을 네 부분(오경, 역사서, 시가 문학, 예언서)로 재구성하였으며, 성문서에 속해있던 다니엘서를 책 본래의 성격을 따라 예언서로 재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부 책들은 상/하권으로 나뉘었습니다.

(1) 율법서(토라)

본래 히브리인들은 구약성경 중에서도 다섯 권의 율법서를 제일 귀하고 거룩하게 여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율법서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불러주어 쓰게 했다고까지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자세히 검토해 본 결과 여러 자료가 합성되어 오랫동안 발전되어서 이루어진 산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위 서로 상이한 자료가 율법서 속에 섞여 있다는 연구 결과는 결코 율법서의 권위와 가치를 하락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우리는 성경 속에서 생생한 역사적인 체취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율법서의 진정한 저자나 편집자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여러가지 이야기들과 법률들이 모여서 구두로 대대에 전승되다가 기록되었다는 문서설의 주장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먼저 남쪽 유대 왕궁에서 솔로몬 왕(B.C. 970~931)의 사망 후에 성경의 문화가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 문서는 처음부터 하나님을 여호와(Jehovah)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때문에 J문서(B.C. 850)라고 부릅니다.

다음으로 북쪽 이스라엘에서 또 하나의 E 문서(B.C. 750)라는 성경 문서가 쓰여지기 시작했습니다. E 문서는 하나님을 히브리말로 엘로힘(Elohim)이라고 발음하였습니다. J 문서가 창조 기사부터 쓰기 시작한 것과 달리 E문서는 아브라함의 역사에서부터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 또 하나의 특징입니다.
유대 요시아 왕 때인 주전 621년에 일종의 종교개혁이 단행되었는데 이 때 발견된 문서(열왕기하 2:8~20)를 D문서(B.C 621)라고 부릅니다. 이 문서는 현재의 성경 중에 신명기(Deutronomy)와 비슷한 것으로 판단해서 첫글자 D를 따서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이 문서는 발견 즉시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락되었고 유대 나라의 법으로 삼는 데 까지 이르렀습니다.

바벨론 포로 시대와 그 이후 제사장의 무리와 경견한 학자들이 유대인의 자기 동일성을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선민에 얽힌 역사, 종교제도, 성전 의식법과 절차 등을 수집 편찬하게 되었습니다. 제사장들이 주도했다고 해서 P 문서(B.C. 500~450)라고 부릅니다. 주로 레위기와 오경의 나머지 역사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리하여 주전 400년 경에 지금의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다섯권이 제일 먼저 경전으로 수락되었습니다.

(2) 예언서(네비임)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 역사를 관찰하고 판단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받아 자기 동시대인들에게 서슴없이 선포한 사람들입니다. 예언(Prophecy)이란 말은 단순히 앞일을 점치거나 예견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대신 전하는 대언자, 즉 히브리말로 '나비'를 말합니다. 따라서 성경의 예언이란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명령한 것이라면 과거, 현재, 미래를 막론하고 전하였던 것입니다.
'전기 예언서' 네 권의 책은 주로 역사서에 속합니다. 물론 이 역사는 '나비'들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적 입장에서 그 역사를 관찰하고 해석했다는 측면에서 예언서라고 부릅니다. '후기 예언서'에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 위대한 예언자들의 예언 활동이나 시나 산문의 문학 방식을 따라 소상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언자들의 메시지는 권위와 감동, 책망과 희망으로 민족 공동체를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게 해 주었습니다. 특히 주전 5세기에 이르러는 마지막 예언자 말라기 이후 예언 활동이 끊기게 되자 그 앞서 활동했던 위대한 예언자들의 메시지는 더욱 소중한 정신적 유산으로 여겨지기에 이르렀습니다. 따라서 그후 예언자들의 메시지가 소중히 수집되고 보존되었으며, 또 열심히 연구된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언서들이 실제로 언제 수집되고 편집되었으며, 또 발행되었을까요? 이 문제는 정확한 해답을 얻기 힘듭니다. 다만 학문적인 탐구를 기반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전기 예언서의 기록 연대는 대체로 B.C. 621~600년으로 추정되며, 후기 예언서는 주로 B.C. 8세기에서 B.C. 4세기 중엽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전기와 후기 예언서들은 그 후 계속해서 B.C. 2세기까지 증보 또는 가필되어 현재의 형태로까지 발전되었으며 B.C. 200년 경에 이르러 정경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예언자들의 영향력은 대단해서 신약성경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3) 성문서(케투빔)

성문서는 구약성경의 세 번째 부분으로서 전자와는 달리 성격이 다른 여러 책들을 모아 놓은 것이기 때문에 동질적인 통일성을 가진 것이 못됩니다. 케투빔이란 말도 '여러 가지 문서를 수집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시(시편,잠언,욥기), 다섯 두루마기(아가, 룻기, 애가, 전도서, 에스더), 예언(다니엘), 역사(에스라, 느헤미야, 역대기)로 이루어진 이 성문서들은 오랫동안 종교 문학으로 간주되어 전승되었습니다. 율법과 예언서에 비해서 다소 가벼운 책들로 여겨지기 쉬운 것들이었습니다만 히브리 백성들에게 널리 읽혀지고 영향을 크게 미치고 있었기에 계속 보존되어 왔던 것입니다. 따라서 성문서 책들은 주전 4세기에서 혹은 3세기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익명의 책들이어서 저작자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해당 문체나 내려오는 전승, 인물의 특성등을 파악하여 과거의 어떤 위대한 인물이 쓴 것으로 돌릴 수 있었고, 그렇게 함으써 권위 있는 정경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 책들이 공식적으로 성경으로 채택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11권의 책들은 하나하나가 개별적으로 정경으로 인정받는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성문서의 모든 책들이 정경으로 결정된 것은 얌니아(Jamnia)회의에서 였습니다. 이 회의는 요하난 벤 자카이의 영토하에 '팔레스타인'얌니야에서 주후 90년에 열렸습니다. 이 회의의 결과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가 모두 정경으로 확정되었고, 그 후 어떠한 변경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구약성경은 A.D. 1세기에 이르러 완전히 현재의 형태로 완성되었습니다.



이렇게 35세기에 걸쳐 내려온 성경이 어떻게 해석되는지, 또 어떻게 해석되어 왔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보겠습니다.


1)고대의 성경 해석

전통을 지나치게 중시하던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을 해석하면서 많은 경우 소위 율법주의라고 불리는 '문자주의' 내지 '형식주의'에 빠져있었습니다. 예수께서도 유대 지도자들의 경직된 율법주의에 대해서 매우 통렬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습니다.(마태복음 23:1~30). 그러나 유대 학자들이라고 해서 다 그런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아 문자주의에 대립되는 새로운 성경 해석을 시도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물론 오늘과 같은 학문적 방법은 되지 못하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방식이었습니다. 바로 그는 유대인으로서 알렉산드리아에 유학한 필로(B.C. 25~ A.D. 40)였습니다. 필로는 소위 알레고리적 해석(Allegorical Interpretation)을 시작했는데, 그에 따르면 성경에는 '문자적 의미'와 '알레고리적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알레고리적 의미라고 주장합니다.
본래 알레고리란 유비적이라는 뜻으로 '숨겨져있는 의미를 밝히기 위한 철학적 방법'이었습니다. 예컨대 필로는 창세기 2:10~14에 있는 에덴의 네 강은 슬기,절제,용기,정의의 네 가지 덕을 나타낸다는 식으로 해석했습니다. 필로의 알레고리 방법을 계승한 학자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A.D. 190~202)였습니다. 그는 누가복음 15:11~32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 다시 돌아온 탕자에게 아버지가 준 옷은 영생을, 신발은 영혼의 승화를, 살찐 송아지는 그리스도를 나타낸다고 해석하였습니다. 동시에 유명한 신학자들인 터툴리안이나 오리겐도 성경자체는 우화적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문자적으로 해석해서는 안되고 알레고리적 해석을 해야 문자적 의미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숨은 의미를 밝힐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소위 오리겐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누가복음 10:29~37) 해석은 유명한 알레고리에 속합니다(강도를 만난 사람/아담, 예루살렘/하늘, 강도/마귀, 사마리아인/예수, 여관/교회 등)

그러나 이 방법 속에는 전체적인 의미에서 성경의 본래적인 의미를 왜곡하고 작위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위험이 다분히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 사람의 이유는 '네 이웃이 누구냐?'하는 것이 주제인데 이 주제를 벗어나 매우 부분적이고 엉뚱한 해석을 만들어 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세기 위대한 성경 번역가인 제롬도 초기에는 알레고리적 해석에 치중하면서, 이 방법을 과거의 문자적인 해석을 극복하는 합법적이고도 필요한 작업으로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후기에는 문자적이고 역사적인 방법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위대한 성자로 알려져 있는 어거스틴역시 초기에는 알레고리적 해석을 상당히 많이 사용했으나, 점점 후기에 이르면서 이 방법을 피했습니다. 후기 어거스틴은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성경 구절과 알레고리로 해석해야할 구절을 구별하려고 했으며, 이를 위한 구체적인 지침까지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어거스틴의 궁극적인 판단의 기준이란 다름아닌 '사랑'이었습니다. 즉 문자적인 의미를 받아들이는것이 사랑이라는 대 주제에 어울리면 그 해석은 옳고, 맞지 않는다면 그 구절은 알레고리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중세의 성경 해석

중세의 시대에는 성경를 교회의 전통에 들어맞도록 해석하는 일에 골몰했습니다. 따라서 성경는 언제나 교회의 권위와 전통밑에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방법에 있어서도 고대 시대의 알레고리적 해석 이상을 더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성경은 중세 카톨릭 교회의 질서와 권위를 인증해 주는 부수적인 역할 이상을 기대받지 못한 것입니다.
물론 중세기에도 수도원을 중심으로한 수도사들에 의해서 성경연구가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자연히 성경을 신비적이고,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12세기에 이르러 다시 학파에 따라서는 문자적인 의미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알레고리적 해석이 너무나 깊이 뿌리를 내려 종교개혁이 일어나기까지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3) 종교 개혁시대의 성경 해석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문제는 기독교 역사상 중요한 역사적 분기점을 만들어 내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어 왔습니다. 예컨대 16세기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분리될 때 가장 결정적인 기준이 되었던 것도 성경관이었습니다. 즉 로마 카톨릭교회의 전통과 제도에 밀려서 그 의미를 제대로 나타내지 못했던 성경이 종교개혁을 통해서 다시금 기독교 신앙의 심장부에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중세 교회의 이탈된 권위와 경직된 전통에 항거하려는 종교개혁 정신은 성경에 대한 본질적인 자세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즉 종교개혁 정신은 성경을 교회의 권위나 전통보다 더 우위에 놓게 한 것입니다. 비로소 성경은 종교개혁 정신 속에서 자기의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1) 종교개혁 정신과 성경

종교개혁은 16세기 유럽 전역에 걸친 종교적 기류를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이는 초기 종교개혁의 조짐은 중부 유럽의 왈도파, 후쓰파 그리고 영국의 롤라즈파가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권주의에 항거한 것에 기인합니다. 특별히 당시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은 기독교의 복음을 교리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제도적으로 잘못 사용했던 교황권의 문제였습니다. 이 개혁 운동은 어거스티니안 수도사이며, 뷔텐벅대학의 성경학 교수였던 마틴 루터가 1517년 로마 카톨릭 교회의 면죄부 판매에 항거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죄가 이미 하나님에 의해서 용서되었기 때문에 면죄부를 사는 사람에게는 죄로 인한 책임을 교회의 권위가 용서해 줄 수 있다는 로마 카톨릭의 주장에 의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루터의 의문은 곧 이웃 마을에서 성 베드로 성당을 건축할 기금을 모으려는 목적으로 면죄부 판매를 했던 텟젤과의 논쟁을 발생시켰습니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급기야 신학 논쟁을 위한 95개조 항목의 테제를 내어놓았다.

여기서 그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처방해 준 그런식의 참회나 공적이 과연 하나님의 용서를 가져올 수 있느냐고 강하게 항변하고 있었습니다. 도리어 루터는 하나님이 용서하심이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라는 공로로만 발생할 수 있으며, 교회의 참된 보화란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의 거룩한 복음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루터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절대적 권위과 존재한다면 그것은 곧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다고 귀결짓게 됩니다. 루터가 의미하는 구원이란 인간 자신에 의해서 실천되는 의로운 공로를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갖는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이룩된다는 것으로 이는 곧 성경 연구를 통해서 확신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따라서 종교개혁의 대명제는 "오직 믿음으로만(sola fide)", "오직 은혜로만(sola gratia)" 그리고 "오직 성경으로만(sola scriptura)"입니다.

(2) 루터와 칼빈의 성경해석

루터 역시 초기에는 알레고리적 방법을 사용했으나, 나중에 알레고리적 해석을 포기하게 됩니다. 루터의 성경해석의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번째 원리는 '성경의 문법적, 역사적 의미를 해명'하는 것이었습니다.

두번째 원리는 '성경을 성경 스스로가 해석한다'고 하는것입니다. 이것은 성경 스스로가 무엇을 말씀하는지를 인간이 듣는것입니다. 그는 성경 자체가 그 자신의 해석자여서 모든 것을 증명하며 판단하며 밝혀준다고 했습니다.

세번째 원리는 '성경은 성령을 인도함을 받아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성령을 통해서 기록되었으므로 성령의 내적 조명 가운데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루터의 이러한 입장은 교회의 궈위를 성경위에 두고 교황이 아무런 오류 없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는 로마 카톨릭에 대한 반박이었던 것 같습니다. 루터의 이러한 원리는 칼빈에게까지 영향을 주어 칼빈으로 하여금 '성령의 내적 증거'에 관한 교의를 발전시키게 합니다.

네번째 원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을 성경 해석의 핵심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 놓으신 복음의 이야기에 입각해서 풀이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루터의 판단기준은 에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소위 성경을 읽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한다는 입장은 당시 로마 카톨릭의 성경 해석학적 발상을 전적으로 뒤집는 대전환을 이룬 셈입니다.

칼빈은 성경 해석에 지대한 관심을 둔 종교 개혁자였습니다. 루터와 마찬가지로 칼빈도 역시 성경을 전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는 책으로 이해합니다. 그는 성경의 저자는 바로 하나님이며 하나님께서 이 성경을 통하여 친히 말씀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교회로부터 그 권위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며, 오히려 교회가 성경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반대로 역설하였습니다. 이처럼 성경이 하나님의 전적인 권위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성경 해석은 '성령의 내적 조명'에 의존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칼빈의 성경 해석의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그는 성경 속에는 그때마다의 한경에 따라서 이해를 달리 해야 될 표현들이 많이 있다고 함으로써 '성경 저자의 체험이나 환경, 역사적 배경'을 참조하였습니다.

두번째로 성경 해석의 원리는 '명료성과 간결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본문을 바르게 드러내기 위해서 세운 원칙입니다. 장황한 해석은 도리어 본문을 왜곡시킬 위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세번째의 원리는 성경 본문의 구절들은 순수한 의미, 즉 '실제적이고 단순한 문법적인 의미'가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들의 성경 해석은 '성령의 내적 조명', '성경은 성경이 바로 해석자라는 것' 그리고 '성경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루터가 기독교 성경 해석의 창시자요 기초자라면, 칼빈은 그 원리를 체계화한 주석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종교개혁 이후의 성경 해석

종교 개혁자들의 성경 해석에 대한 발상의 전환은 당시 성경에 대한 일치된 해석을 내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 내긴 했지만, 많은 부분에서 자의적이고 독단적인 성경 해석은 억제되었습니다. 종교 개혁 이후 로마 카톨릭에서는 트리엔트(Trient)종교 회의를 열어 이를 반박하고 나섰습니다. 따라서 개신교 정통주의(Protestant Orthodoxy)에서는 카톨릭의 견해에 반대하는 강한 입장이 구축되었습니다. 종교 개혁 초기의 루터나 칼빈의 경우와 달리 성경의 한마디, 한 점이라도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일어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는 소위 경직된 '축자영감설'(Verbal Inspiration)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 입장에 따르면 성경은 하나님 말씀 그 자체이며 성령에 의해 영감된 책이기 때문에 과학적, 역사적, 문자적 오류가 전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문제점은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 개개인의 체험이나 역사적 배경, 가정과 교육 등 저자 자신의 개성을 철저히 무시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성경의 권위를 문자자체에 둠으로써 성령의 내적조명으로 인해서 획득되는 성경의 권위를 오히려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종교 개혁자들이 '오직 성경으로만'이라고 주장한 것을 개신교 정통주의자들은 '성경의 문자적 무오성'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런 것입니다. 이 점은 종교개혁의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오히려 성경 해석은 후퇴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개신교 정통주의의 축자 영감설에도 불구하고 17,18세기의 합리주의 학문의 기류를 타고, 합리적인 성경해석이 서서히 머리를 들고 나오기 시자한 것도 이 때입니다. 합리적 성경 해석이 나타나게 된 배경은 당시 철학적이고도 역사적인 학풍의 등장, 근대 과학의 발전, 비판학의 발달, 그리고 개신교 정통주의 비타협적인 성경해석에 대한 반동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성경 해석에 있어서도 본문비평과 고등비평이라는 새로운 해석 운동이 불붙기 시작한 것이죠. 이 운동은 교회 속에 두가지 다른 모습을 만들어 내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기독교로 하여금 축자 영감설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을 구분하게 해 준 것과, 성경 주석을 교회나 교리적 규범으로부터 독립시켜 성경을 다른 문헌과 동등시하여 문법적, 역사적 해석의 규칙들을 과감하게 성경에 적용시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류는 다른 한편으로 성경을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다른 책과 동일하게 취급한 나머지 성경도 이성의 척도에 따라서 해석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17세기 유럽의 기독교가 지나치게 이성의 척도로만 성경을 보려고 하자, 동시에 이에 대한 반동으로 17세기 말 소위 경건주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운동은 루터의 복고주의를 부르짖으며, 성경을 읽는 자는 반드시 중생(거듭남)의 체험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릅니다. 이 운동 역시 당시 기독교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으며, 개신교 정통주의의 배타적인 축자 영감설에서 벗어나서 보다 더 종교개혁자들의 원리에 충실하게 한 공헌을 하기도 했습니다.


5) 현대의 성경 해석

(1) 현대의 성경 해석학은 독일학자 쉴라이엘마허에게서 시작됩니다.

이제까지 성경을 읽는 관점을 열거해보면서 성경 본문의 문법적, 역사적 의미를 중요시 할 것인지 혹은 영적인 의미를 중요시 할 것인지, 그리고 성경의 본문이 무엇을 말하고 있느냐를 밝히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쉴라이엘마허에 이르러서는 그 방향이 전환되었습니다. 즉 성경 본문은 물론 그 본문을 해석하려는 해석자 자신을 해석에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성경의 본문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그 본문을 해석하는 자가 아무런 전이해나 조건 없이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으며, 오히려 해석자 자신의 감정을 그 본문에 이입시켜 본래의 성경 기자와 함께 느끼고 체험해야 그 본문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 저자나 해석자나 모두 인간의 보편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해석자는 원저자의 상황과 처지에 서서 저자가 의도했던 것을 채굴해 보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리학적 해석'은 많은 부분에서 설득력이 있기는 하나, 현재 해석자가 체험할 수 이쓴 것만을 과거의 본문에서 발견할 수 밖에 없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2) 쉴라이엘마허의 심리학적 해석학에 딜타이와 하이데거의 해석학을 접목시켜 현대의 성경 해석하을 꽃 피운 학자는 독일 말벅대학의 교수인 볼트만입니다.

볼트만은 본문 안에 포현되어 있는 것과 그것을 읽고 해석하는 자와의 공통적인 체험을 강조하면서 해석자의 전이해(pre-understanding)를 강조합니다. 그에 따르면 소위 이 전이해 없이는 어떤 해석도 가능하지 않으며, 전이해에 따라서 해석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 본문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자와 해석자의 삶이 서로 연결되어야 하며 소위 전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쉴라이엘마허의 '심리학적 해석'을 볼트만은 '실존론적 해석'으로 발전시킨 것입니다.
따라서 볼트만은 인간 실존을 중요시합니다. 인간 실존의 이해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입장에 섭니다. 하나님에 대한 질문은 결국 인간 본래성에 대한 질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 볼트만에게는 인간 실존이야말로 바로 하나님 이해를 위한 하나의 '전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가 제시한 해석 원리를 '비신화화'라고 부릅니다. 그에 의하면 성경은 당시 만연되어 있었떤 신화적 사고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인으로서는 성경에 나타난 신화적 사고와 언어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바로 이 신화를 비신화화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비신화화란 성경 속에 나타나 있는 신화를 단순히 제거하자는 것이 아니라, 바로 '실존론적으로 재해석'하자는 것을 의미합니다. 볼트만에게 있어서 실존론적인 재해석이란 성경에 대한 '역사 비평학'을 의미합니다.

(3) 현대의 성경 해석학을 마무리 지으면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스위스 바젤의 신학자 바르트입니다.

바르트는 소위 현대 성경 해석학이 원로으로 삼아 왔던 '역사 비평학'에만 의존하지 말고 다시 정통주의를 회복하자는 신정통주의의 입장에 섭니다. 그는 성경 해석학이란 무엇보다 먼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분명한 전제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성경 해석의 근본 전제도 인간 실존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가 됩니다. 그는 말하기를 신학자는 현대인들을 향해 하나님에 대해서 말해야 할 의무를 느끼지만, 바로 그 하나님을 만날 때에는 인간의 언어를 상실하고 단지 하나님 앞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다고 합나다. 단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 분에게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일 뿐이라고 까지 말합니다.


6) 성경비평의 정당성과 한계점

이제까지 성경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지라도 성경을 아무런 역사적 배경이나 문학적 비평이 없이 읽고 또 이해한다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는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성경 비평의 정당성이 어느 정도까지를 말하는 것이며, 또 그 한계점이란 어디를 말하는 것인지 규정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바로 그 성경 비평의 한계란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함축적이든 명시적이든 성경속에서 발설되는 곳'임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 한계로부터 우리는 비로소 성경을 비평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이 한계선을 넘어서면 성경은 비평의 대상이기를 중지하고, 도리어 우리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비평의 주체가 됩니다.

소위 이데올로기적 틀을 가지고 성경을 비평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에 이데올로기의 굴레를 씌우지 않는다는 말은 곧 성경비평의 척도를 오직 성경자체로부터 가져온다는 것을 의미하며, 성경 밖에서 가져온다는 말은 아닙니다. 물론 외적,형식적인 면에서 볼 때는 얼마든지 바깥으로부터 성경을 비평할 수 있습니다. 즉 성경은 역사적인 책이므로 역사적인 방법을 통해서 주석 되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즉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의 구원 행동이 발설된 내용의 경우에는 다르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성경을 읽고 해석하려는 근본 의도를 벗어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손상당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경 비평과 진리 인식은 신중하게 구분되어야 합니다. 이는 성경에 대한 '학문적 해석'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가 구분되어야 하는 원리와 마찬가지 입니다.


7)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해석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실 때 언제나 새롭게 각각 다른 방식으로 하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모든 사람에게 보편타당한 방식으로 하셨기에 성경은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한 책입니다. 소위 성경을 해석한다는 말은 곧 그 본문(text)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 사항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첫째로, 성경 해석은 교회의 결속체 안에서 생깁니다. 성경 해석은 해석자가 사적으로 본문과 만나는 것만은 아닙니다. 단지 사적인 해석에만 머문다면, 그 해석의 옳고 그름을 바르게 판단할 기준을 상실하고 맙니다. 따라서 성경 해석은 언제나 교회 공동체 안에 전승된 전통 안에서 이해됩니다.

둘째로, 성경 해석에 있어서 본문은 단지 오랜 객관적 대상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해석자의 현존에 '당신'으로 나가서는 현재적 주체가 됩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내가 성경 본문을 이해하고 해석하여 완전히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내가 본문에 의해 정복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해석을 위해서 여러가지 학문적 방법이나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해석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성경 해석의 본문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가장 참된 표준은 성경 자신이라는 점입니다. 성경 해석의 궁극적 목적은 사상이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문제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상은 판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보다 더 큽니다.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보다 '성육하신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가 더 우선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이 셋째 형태인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와 증거를 위해서 성경은 계속 읽혀지고 또 해석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 사건 속에서 우리는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새로운 삶, 즉 '새로운 생명' 아니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부가적 설명 하나..

성경의 첫부분엔 왜 창세기가 와야 했을까요? 으레 성경하면 창세기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는 인상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창세기는 항상 창조론과 진화론등 여러가지 학설들끼리의 논쟁을 끄집어 들어야만 하는 부담을 안고 출발하게 마련이었습니다. 

창세기는 이 세상 문화의 기원에 대한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는 진화론과의 마찰을 불러일으키려는 목적에서 기술되지 않았습니다. 진화론의 대결은 수준높고 전문적인 해답을 줄 수 있는 창조과학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어도 창세기의 가치가 손상되는 일은 없을겁니다. 이른바 창조신앙이라 불리우는 내용은 진화론이 강력히 대두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성경을 바탕으로 하는 기독교인들의 신앙이요, 세계관을 형성해 왔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는 과학적 기술이 역사적 기사거리가 될만한 정치적 이론의 산물이라기 보다는 이른바 창조의 신앙고백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그 진가를 인정받아야만 합니다. 진화론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시대에까지 창세기가 전해주는 '창조신앙'은 세계의 주인으로서의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아담으로부터 비롯되는 인간의 죄에 대한 철저한 고발과 구원의 계획에 관한 서론에 해당한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창세기의 중심사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세기에는 천지만물의 기원을 포함하여 축복과 저주, 죄와 구원, 사회와 문명, 기술과 산업 등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주제들이 총망라되어 있습니다.

창조론을 비롯한 그 이후 인류의 범죄와 가인의 살인이야기, 노아의 홍수, 그리고 바벨탑이야기에 이르는 모든 노정은 하나의 이론적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다름아닌 성경을 구원의 책으로 간주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특별히 창세기를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사역에 있어서 그 서막에 해당하는 귀중한 본보기로 간주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신앙고백이며, 성경의 권위에 대한 인정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의 원역사를 통하여 성경에 대한 주변지식을 얻게 하기보다는 분명한 신앙의 진보를 희망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창세기의 원역사는 구원의 관점에서 재조명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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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읽느라 수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수십세기에 걸쳐 해석된 성경의 관점을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변함없는 활자로 이어져 내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신학자들이 각자 조금씩, 아니면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희석님께서 제게 질문하신 '무오설과 유오설'도 이 역사속에서 해석되었던 '개신교 정통주의자'들의 한가지 '관점'에서의 논쟁범위라고 생각됩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무오설과 유오설'의 논쟁이 되는 구절들을 나열해가면서 까지 답변을 해달라고 하시는건 저에게 단순히 성경을 해석하는 관점에서의 질문이 아닌 그것을 넘어선 '시비조'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그렇지 않다면 죄송합니다만)

글쎄요..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으로서의 저는 성경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성경은 범접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 성경이 권위를 갖게 되는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성령의 부름속에서야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 두꺼운, 일독을 할라치면 6개월, 1년씩 걸리는 방대한 내용의 책이 결국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 그리고 구원을 목적으로한 부활'에 구심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입니다. 사도신경 아시죠? 그 사도신경이 성경의 핵심입니다. 사도신경의 한 글자라도 거짓이라면 성경은 성경이 아닌 단순히 잘 쓰여진 책한권, 허구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것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다시 오기 전까지의 기간동안 결국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그렇습니다. 제가 저번에 남긴 두 글들에서 말씀드렸지만, 자세한 신학적 내용이나 '~론'에 관한 궁금증은 신학을 전공하신 목회자분들에게 질문하시길 권합니다. 그래서 희석님께서 요번 주일에 꼭 부대에 있는 교회라도 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찾아가셔서 제게 했던 질문들을 던지셔 꼭 '성숙된 답변'을 받을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히 병사 두명이서 인트라넷 게시판의 글로 갑론을박을 통해 어느 한쪽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수긍할 수 있을정도의 결론을 도출해 낼 정도의 명제라면 초대교회 이후로 2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렇게 싸워가며 '피비린내 나는' 사건을 초래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희석님이 옳게 유추하신대로 저는 신학 전공을 하지 못하여 많이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더욱 많이 배우고 또 배우고 은혜받은 만큼 실천하려 노력중입니다. 그래서 저번의 긴 글들에서도 어려운(잘 알지도 못하는) 신학적 배경지식으로서의 성경해석이 아닌 '구원을 위한' 관점을 정립하기 위해서의 글로서 설명드렸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글들이 얕은 지식으로 인한 '기독교의 관점'에서 벗어난 성경의 해석이나 관점을 제시한건 절.대.로 아닙니다. 기독교론에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왔던 올바른 관점에서의 구원론이며, 전혀 색다른 관점의 재해석도 절.대.로 아닙니다.


그리고 사족이겠지만 마지막으로 한말씀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글을 쓰심에 있어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번정도 생각해 보시는게 어떨런지요. 희석님께서 본인은 크리스천은 아니어도 유신론자라고 밝히신대로 그 누군가 '절대자'를 믿고 계신다고 생각됩니다. 저에게도 그런 절대자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저 스스로 해체'하라고 하신것은 왈과왈부를 떠나 종교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되며 희석님께서 그렇게 걱정하신 '감정적인 논쟁'의 씨앗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도.. 힘든 군 생활. 주님께서 희석님을 눈동자처럼 바라봐 주셔서 제대하는 그날까지 건강하게 지켜주시길 기도드립니다.. 









더 읽고 싶은 분에게 







*아래는 첫번째 대화에 달렸던 답글입니다.



병장 조용준 (2006/05/18 11:34:29)

...꽤나 강렬한 내용이네요. 특히나 성경 부분은 제가 일일이 찾기 귀찮아서(...) 안올렸던 부분인데. 
기왕에 사해문서와 라틴어가 기초로 된 성경 내용을 분석해보는것도 재미있습니다. 내용이 꽤 많이 다르거든요. 단지 여기서는 아이템빨의 부족으로 할수 없다는게 치명타.라는게 문제죠. 
더불어서 캐논의 성립, 그리고 정교와 카톨릭에서의 교리 차이를 캐보면 점점 성경의 절대적 진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의심이 솟아날 수 밖에 없습니다. 

뭐 이건 조금 어려운 방법이고, 가장 쉬운 방법은 목사 세분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알 수 있죠(먼산).   


상병 송희석 (2006/05/18 11:40:43)

용준/ 여기는 노템전이 원칙입니다.(좌절) 또한 모세오경은 원래 오경비평사까지 언급해야 하는데, 문제는 절대자료부족인것입니다. 솔직히 윗글에 이말까지 첨부하고 싶었습니다. 
현 목회자들은 대체로 구약보다 신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설교의 재료들을 구약보다 신약에서 찾습니다. 그것이 바로 구약에서 무오설을 주장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구약이 수천년간의 걸쳐 인류에게 준 위대한 영감과 올바른 생활에 지침서라는것을 이해하지 못한체 오로지 무오설에 입각해 설교를 하다보니 사람들에게 반감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고, 두번째 주제는 신약부분도 포함됩니다.   


병장 조용준 (2006/05/18 15:13:44)

희석// 오호라. 신약까지 해체하시겠다.라는 희석님의 목표. 한번 기대해보겠습니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얼핏 내놨던 결론. '괜히 성경에만 기대다가는 크나큰 함정에 빠지게 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말처럼, 해석하기 나름인 부분이 꽤 많더군요. 구약이건 신약이건간에 말이죠. 
사실 히브리어-그리스어-라틴어-영어-한국어라는 4중 번역을 한 국내 성격으로써는 저런 약점이 더 극명히 드러나 버리죠. 해석하는 사람의 자의적인 부분이 상당부분 첨가되어 버리니까요. 

이런 의미에서 이슬람은 참 대단하죠. "코란을 읽고 알라를 따르려면 일단 먼저 아랍어를 배워라!" 
...최소한 자의적 해석을 막기 위한 너무 억지적 논리긴 하지만요.   


상병 송희석 (2006/05/18 18:50:21)

용준/신약을 해체할 생각 없어요. 기독교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기필고 요한계시록을 안집고 넘어갈수는 없다는 뜻에서 신약을 포함하겠다는 것이죠. 특히 요한계시록을 말이죠. 기독교가 갖고있는 미래의 대한 개념을 우리는 깊이있게 탐구해봐야 할것입니다.  




* 병장 김동환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6-09 1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