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아프게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정치적으로 짜증내기. 
 
 
 
 
어디선가,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글을 쓰는 양도 늘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과연 그런 것 같다. 어디서든 글을 볼 수 있고, 어디에든 글을 남길 수 있는 인터넷에서는 미니홈피와 블로그에 쉴 새 없이 글이 올라온다. 예전같았으면 일기도 쓰지 않았을 사람들이 미니홈피에 꼬박꼬박 글을 남기고, 생전 편지도 쓰지 않았을 사람들이 방명록에 안부를 남기고, 감상문이나 논설문이라면 진저리를 쳤을 사람들이 후기나 칼럼을 쓰고 있는 것이다. 

너도나도 혈안이 되어 자기 이야기를 하느라 바쁘고 자기 이야기를 보여주느라 바쁘다. 적당히 매너있게 다른 사람의 글에 리플도 달아주고, 다른 이의 공간에 흔적도 남겨주는 예의를 강조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사람들은 예전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시대가 온 것 같다. 가끔 악플이나 무관심 같은 소통의 문제들이 거론되기는 하지만, 어쨌든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소통의 기회가 넓어졌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과 사람의 소통만이 아니다. 무언가가 사라지고 있다. 아날로그적 감성이나 추억 따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보다 근본적이고 보다 총체적인 문제이다. 게다가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꽤나 거창해보이지만, 어쨌든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열린 게시판을 통해 사회적 대립과 갈등에 관해 이야기하곤 한다. 사람들은 제각기 가진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그러한 사회문제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피력할 것이고, 이리저리 리플이 달린 후에 과열되는 양상이 보이면 적당히 '군인은 정치적인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한동안 사회 이슈에 관한 글은 수그러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과정이 아니다. 어떤 정치적 견해가 옳다는 것도 아니다. 언론이 제시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정치적 견해만을 가지고 재단하는 태도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사건을 바라보는 정치적 견해는 분명 개인의 자유이다. 그리고 군인이 아니라면 인터넷에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도 개인의 자유일 것이다. 하지만, '주장'을 하기 위해 내세운 논거는 무엇일까. 어떠한 정치 이데올로기가 우월한가 하는 문제에 대한 각자의 견해이다. 여기서 사실관계와 득실의 이해관계는 실종된다.

환경이 소중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환경이 소중하다는 이데올로기 자체는 절대적일 수 없다.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면서 경제적 이득을 누릴 수 있는 방책을 모색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경제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경제가 소중하다는 이데올로기 자체는 절대적일 수 없다. 되도록 환경을 보존하면서 경제적 이득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내세우는 것이 최선이다.

위의 두 문단은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언론과 인터넷을 포함한 각종 주장들은 서로의 주장에 대해 반대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결국 우리는 목적지로 가기 위해 길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길의 우월성만 가지고 싸우며 자신이 왜 이 길을 주장하는지를 목청높여 떠드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 길을 주장하는 나 자신'이 있을 뿐, '길을 찾는 나 자신'은 없다. 그렇게 해서 '주장의 무한반복'만이 광장을 메우고, 아무도 '사실관계'나 '이해관계'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들의 판단근거가 그들이 불신하는 언론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언론이 내놓은 사실관계와 이해관계를 자신의 정치적 견해로 풀어내어 자신의 주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것이 언론이 그토록 대중의 불신을 받고 있다는 통계에도 불구하고 굳이 사건에 관한 자료의 출처와 더 깊이 알기 위한 참고자료들을 알리지 않는 이유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정치적인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 전반적인 현상이다. 책을 읽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을 강화시킬 수 있는 책을 원하지, 자신과 반대되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책을 읽지는 않는다. 영화를 볼 때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영화를 소개해주는 사이트를 찾을 뿐이고 그 테두리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최선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내가 생각하고 내가 주장하는 것을 남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고, 남에게 알리며 자신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어차피 나와 반대되는 입장에 선 사람들의 주장은 귀담아 듣지 않을 테니까.

인터넷은 여론을 뚜렷하게 응집시켜주는 힘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여론'이며 또한 그 '여론'에 불씨를 당기는 '언론'임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갈등의 골은 깊어졌고 서로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시도보다는 자신이 따르는 편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세(勢) 불리기'를 위한 '주장'들이 난립하며 꾸준히 업데이트되는 이슈에 따라 열심히 '헤쳐모여'를 따라가는 양상을 굳히는데 성공했다. 소통의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소통은 오히려 이전보다 요원해졌다. 물론 우리가 정치가와 언론의 수완에 놀아난 것만은 아니다. 이건 모두의 자작극이다. 골치아프게 최선의 길을 강구하는 대신 정치적 제스처에 적당히 울고 웃으며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늘어놓는 편한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두셋의 진영에 적당히 설득력있어보이는 쪽으로 붙어서 분노를 표출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아주 쉬운 일이며 아무런 해도 없다. 물론 아무런 득도 없다.

한 펑크 뮤지션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우리는 알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외면하고 있다. 알아야 할 것을 찾지 않고 찾아야 할 것을 찾지 않는 세계에 사는 우리는, 그렇게 혼란 속에서 길을 개척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우리가 증오하는 대상이 숨쉬는 이유가 바로 자신의 눈먼 증오에서 비롯한 것임을 애써 외면한 채. 그렇게 세상은 굴러간다.

========================================================================================

예전에 썼던 글을 생각나는 대로 머릿속에서 대충 복원한 거라 임팩트가 좀 별로군요.

* 병장 노지훈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6-05 22:01) 

  
 
 
 
병장 김동석 (2006/06/05 17:37:11)

중요한 건 우리가 반대편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실재'를 경험하고 무엇을 받아들일지를 알아가는 일련의 과정을 생략한 채, 우리에게 던져진 사실만을 보고 세상을 재단하는 현상을 타파해야 한다는 것이죠. 앉아서 펌글 보고 떠들기만 하는 '플레이머'와 '키보드 워리어'의 세상에서 벗어나야 진짜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을 찾고 서로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기회를 거머쥘 수 있을 겁니다.    
 
 
상병 송희석 (2006/06/05 18:03:13)

분명히 당연한 소리인데도 불구하고 참 가슴을 울리는 글이네요. 이럴때 써먹는 답글 하나 있죠. 
<가지로~!>    
 
 
상병 허익준 (2006/06/05 18:05:17)

[책가지-] 추가. 
소통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들어주기"라죠. 반대편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는 것이 순차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상병 권영욱 (2006/06/05 18:26:18)

흐름이 많으면 방향성도 많아질터    
 
 
상병 황민우 (2006/06/05 19:51:58)

이에 대해서는 제가 예전 일기장에 쓴 글이 있지요. 
"상념만이 유령처럼 떠도는 '하이퍼텍스트'시대의 망자들" 
실체가 없는 논쟁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듯.    
 
 
병장 김석윤 (2006/06/05 21:40:56)

<가지로> 
왠지 나도 모르게 뜨끔해지는 글이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병장 정동민 (2006/06/06 08:55:46)

정말 100% 공감하는 글입니다. 인터넷에 리플로 벌어지는 일련의 논쟁을 읽으면 
쟁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기 보다는 짜증만 나지 않나요. 예전에 과반게시판에서 
논쟁이 붙었을 때, 한 선배가 "너희들 논쟁에는, 서로를 받아들을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하다"라고 
답글을 달더라구요. 
논쟁이 소모적으로 계속되는 경우는 윗 글처럼 애초에 논쟁에 참여한 사람이 "논쟁"자체에만 
관심이 있는 경우이거나, 아니면 논쟁하는 상대를 아예 인정하지 않는 혹은 못하는 경우거나 
그런 것 같애요. 인터넷에서는 대체로 전자 쪽인거 같지만.    
 
 
병장 박시찬 (2006/06/14 09:00:36)

소통은 희미하고 주장은 흐드러지게 난무하죠. 
이슈에 따라 헤쳐모인다는 말이 참 와 닿네요. 
통찰도 날카로우시고 글도 참 잘 쓰셨습니다. (웃음)    
 
 
병장 엄보운 (2006/06/15 10:09:33)

동석님만이 쓰실 수 있는 글입니다. 

더불어 동민씨의 답글에도 크게 공감합니다.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