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다는 것_어느 평범한 소시민의 고백 
 
 
 
 


부끄러운 사실을 고백하기 전에 미리 말해두고 싶은 건 이후에 쓸 내용들은 어느 누구처럼 삐딱한 세상을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다거나 또는 뛰어난 언어학적 능력과 해박한 지식으로 부조리한 세상에 통쾌한 카운터 펀치를 날린다거나 그 부조리한 현실을 묵묵히 참아내며 원숙한 통찰력으로 올바른 길을 가려고 노력하는, 흔히 말하는 '진보'적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삐닥한 세상을 그저 삐딱하게 걸어가면서 삐딱하게 가는지도 모르던 또는 알면서도 올바른 길에 대한 불편함과 고단함을 외면하고 그저 그렇게 '사는게 다 그런 것'인 '살다보면 다 그렇던' 세상과 타협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묻어가려던 우매하고 평범한 한 소시민의 고백이다 



세상과 자아가 제대로 분리되지 않던 어린 시절에는 나와 나 이외의 것들과 명확히 구분이 가지 않아 내게 주어진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항상 경이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경제적인 문제 정치적인 문제 문화적인 문제들은 그저 먼나라 이야기 같고 그냥 세상은 나와 이음동의어처럼 또 다른 나였던 그 때에 누구나 그러듯이 내게 주어진 눈 앞의 현실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려울 것이 무엇인가. 특수한 어린시절을 보내지 않고서야 먹여주고 재위주고 보살펴주는 부모님이 계시고 따뜻하고 소중한 친구들이 옆에 있다. 동네 놀이터에서 구름 사다리를 건너가며 동네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고 가끔은 무릎팍에 상처가 나면 후시딘을 발라주며 잠시잠깐 이것이 안나서 상처가 남으면 어쩌나 하는 생리적인 고민을 해주면 되는 것이다. 

한창 세상 무서운줄 모르고 철없이 놀던 어린아이에게 세상의 무서움을 알려준 건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이다. 그 때 우리 집은 고상한 말로 표현하자면 가세가 기울었고 속된 말로 하자면 망했다. 그냥 망한 것도 아니고 쫄딱 망해서 갑작스레 찾아온 가난은 어렸을 때부터 부잣집 딸로 자라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던 어머니에게 삶의 고단함을 선물했다. 상류층은 아니었지만 별 부족함 없이 자란 나 역시 '가난'이란 말이 가져다 주는 삶의 먹먹한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어느날 어머니가 저녁이 되자 집안의 불을 다 끄고 조용히 숨죽이시는 걸 보고 형과 같이 숨죽이면서도 그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의지하고 기댈 곳을 상실해보린 어머니는 평소 꼬박꼬박 나가시던 교회에 철야기도를 나기시며 또 다른 안식처를 마련하시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다. ‘보통’ 크리스챤이었던 어머니는 그 때부터 ‘독실한’ 크리스챤이 되었다. 당신의 믿음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고 난 지금까지도 그 영역에는 손을 대지 않고 있다. 가끔 어머니와 신앙과 종교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해보지만 결코 그 선을 넘지 않는다. 그 믿음이 깨지는 순간 왠지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만 같은 불안감 때문이다. 나의 부조리한 신앙관은 여기서 기인한다. (얼마 전 대현님과 진우님의 논쟁을 보면서도 속으로는 대현님의 신념에 동조하면서도 진우님의 신앙을 거부할 수 없었던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한 몸인 것처럼 나에게 어머니는 종교와 신앙과 삶이 한 몸이었던 분이다.)

가난하다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라 불편한 거라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그 말은 가난한 삶을 살고 있는 질풍노도의 시기의 청소년기를 보내는 철없는 소년에게는 그리 마음에 와닿는 얘기는 아니다. 어머니가 다니시는 교회 분들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궁핍한 삶은 면할 수 있었지만 그 당시 또래 친구들과 **월드에 가며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을 즐기지 못한다는 단순한 사실 하나도 내겐 부끄러운 현실이었다. 그 또래의 아이들에게 가난이란 매일 일용할 양식을 구하지 못해 주린 배를 채우지 못하는 현실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적어도 대상에 대한 인식의 문제이기에 난 어린 날에 그런 사치스런 고민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은 학교를 다녀와서 TV를 보다가 우리 사회에 아직도 빈곤층이 많다는 기사를 접하고는 그리고 그 중에 아직도 극빈층에 속한 사람들이 몇퍼센트나 된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더군다나 가만히 계산을 해보니 그 몇퍼센트에 나도 속한다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그 자리에서 꽤 오랫동안 고민을 했다.      

아마도 그 때부터 난 쓸데 없이 돈을 쓴다는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모든 것들을 경멸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쓸데없이 돈을 쓰고 다니던 내 스스로에 대한 경멸이기도 했다. 길거리에서 아무 생각 없이 과자를 사먹는 녀석들을 배부른 부르주아라고 생각했고 밥을 밖에서 사먹는다는 것은 내게 가장 혐오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다.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도서관을 뺀질나게 드나들 때도 매점에서 파는 기껏 돈 500원 하는 국수 하나 사먹는 걸 싫어해서 매일 커피 두 잔으로 끼니를 떼우곤 했다. 난 그것이 현재 내게 주어진 현실에 대한 당연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후에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말씀드리니 왜 그랬냐며 나를 책망하셨지만 그리고 나도 그 당시에 우리들이 기껏 500원하는 국수 정도는 사먹을 정도가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난 군것질 하는 습관을 줄였고 많은 책을 읽었으며 빈 속에 마시는 커피의 낭만을 알게 되었다. (커피는 빈 속에 마셔야 그 향과 맛을 제대로 알 수 있다는 것이 아직도 내 변하지 않은 생각이다)  


어린 날의 꿈에 대한 동경은 후에 이런 사치스런 고민들로 인해 많이 축소되어 버렸고 그나마 있던 소망들은 이상한 형태로 변질되고 말았다. 도서관을 다니며 보아온 다양한 책들을 통해 올바른 세상에 대한 꿈과 소망을 꿈꾸게 되었지만 그보다는 내 궁핍한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강렬한 욕망을 뿌리칠 수가 없었기에 하루에도 수십번씩 복권에 당첨되어 떵떵거리는 삶을 꿈꾸었고 올바른 세상 살기 좋은 세상도 결국 돈이 없으면 불가능하지 않냐고 꿈조차도 돈으로 매수해 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올바름에 대한 나의 인식은 점점 나와는 상관 없는 저 먼나라 이야기가 되어 버렸고 그래도 끝까지 그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자 했던 내 의지들과 그것을 가차없이 배반해 버리는 현실에서의 내 이중적인 모습들은 고통이었지만 나중엔 그 고통에도 익숙해져 별 다른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   

첫수능을 망치고 재수를 해 다시 시험을 쳤을 때 예상외로 수능점수가 잘나오자 그 동안 친구들에게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걸 해야 행복하다는 나의 말을 철저히 배신하고 전공은 보지도 않은채(물론 그 당시에는 내가 그걸 하고 싶다고 내 스스로를 속였지만) 상위권 대학에 원서를 냈으며 안정권으로 쓴 대학조차도 평소에 별로 생각해 본적도 없는 소위 '비젼'이 보이는 대학에 원서를 냈다. 신은 나의 이런 노력들이 괘씸하셨는지 덕분에 난 평소에 별로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대학에 가게 되었다. 하지만 도무지 학교에 적응할 수가 없어서 학교를 다닌지 두달도 채 되지 않아 지금 자퇴하면 등록금의 반을 돌려준다기에 별로 생각해보지 않고 바로 자퇴를 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동안 생각을 했다. 내게 주어진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해야만 하는 것 그것이 올바른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내 삶에 과연 정당한 것인가. 올바르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올바른 삶이란 어떤 삶일까. 그리고 내게 가난이란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가난이란 것이 왜 나에게 부끄러운 것인가. 세상은 여전히 삐딱했고 난 여전히 그 세상의 피해자였다. 가난이란 건 내가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명백한 알리바이였다. 가난하지 않았다면 난 누구 못지 않게 올바르게 살았을 것이라고 모든 것을 가난의 책임으로 돌려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외부로 드러난 난 어떠했는가. 내부의 갈등과는 상관 없이 그저 ‘쿨’ 한 척 하느라 바뻐서 내 마음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이야기를 했다. 어찌보면 볼 볼일 없는 배불뚝이 동네 아저씨와 펑퍼짐한 아줌마들이었지만 꿈과 이상에 대한 삶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 생각한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그들의 삶 속에는 내가 그 동안 모르던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세상의 풍파에 시달리다보니 다소 빛이 바랬지만 그들의 꿈은 아직도 건재했고 무엇보다 희망이 담겨 있었다. 나보다 더 불편하게 살면서 더 열정적이었던 그들의 삶은 부조리하고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고 있는 나의 무지와 편견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냥 가만히 지켜봐주었다. 시멘트 같이 딱딱하게 굳어 있던 내 마음은 그들의 따뜻한 시선으로 인해 어느샌가 마시멜로 같이 점점 말랑말랑해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난 가난이 내게 준 선물을 기억해냈다. 대체로 허영심이 강했던 우리 집안 내력을 보아하니 그리고 소시적에 좀 살았던 그 때의 나를 뒤돌아보니 내가 그럭저럭 ‘잘’ 살았다면 나의 허영심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을 것이고 덕분에 난 오만하고 방자했을 것이다. 어려운 사람들의 고통을 보면서도 그것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게으르고 나태한 개인들의 의지부족이라는 주류 언론들의 선전에 속아 아무것도 모른 채 그들을 비난했을 것이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결정합니다”라는 잔인한 광고 문구가 버젓이 전파를 타고 방송이 되는 사회를 개탄하는 어느 저명한 사회 평론가의 탄식에 귀를 기울이기는 커녕 거의 선전에 가까운 광고 문구처럼 나를 결정하기 위해 번드르르한 살 곳을 찾아 아둥바둥거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난은 나에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나보다 더 힘들게 사는 자들을 이해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주었고 삐딱한 세상을 다소 불편하더라고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선물했다. 가난은 나의 교만함과 어리석음을 조용히 잠재웠고 덕분에 난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구석구석에서 세상을 맑게 정화시키는 소중한 것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공부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가난은 나에게 내 삶이 소중한만큼 다른 이의 삶도 소중하다는 인식을 하게 해주었다. 그제서야 난 내 주위의 사람들을 진정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난 어머니와 마주 앉아 거진 10년 만에 어머니에게 부끄러운 고백을 했다. 가난하게 살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내겐 가난이란 것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주었지만 누군가는 그것이 오히려 방해가 됐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다른 무엇을 통해서 세상과 대화하는 법을 터득했을 수도 있다. 다만 내가 이제서야 말하고 싶은 것은 누군가가 이미 얘기했던 것처럼 가난이란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단지 불편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불편할 수 밖에 없다는 당위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기에 난 내 불편한 삶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또 누가 알겠는가. 이렇게 살다보며 가난을 삶의 가치관으로 삼고 있는 어느 다큐멘터리 감독처럼 나에게도 불편함을 넘어 편안하게 다가올지 모를 일이다. 


P.S  
제법 득도한 것처럼 얘기를 했지만 난 군대에 와서도 돈의 유혹에 흽쓸려 분명 옳지 못한 것임을 알면서도 당나라 군대의 용병이 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면서도 이 때 아니면 언제 그런 곳에 가보겠냐며 나와 다른 이들의 삶을 보고 싶다는 아주 뻔뻔하고도 유치하고 낯간지러운 이유로 나와 다른 이들을 속이곤 했다. 깨달음은 얼어죽을 깨달음. 아직 한참 멀었다.   

P.S 2
나에겐 가난이란 존재의 문제라기 보다는 인식의 문제였다. 혹시라도 나의 글이 진정 어렵게 살았던 분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혹시라도 불편함을 느꼈다면 그저 철없는 어린아이의 넋두리 정도로 보아주셨으면 좋겠다. 
* 병장 노지훈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6-06 16:44) 

  
 
 
 
병장 박형주 (2006/06/03 00:45:23)

<가지로~> 

차분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줄 아는 감수성이 아름답습니다. 다큐멘터리 감독은 김동원 감독인가요? 김규항 블로그에서 비슷한 소개를 본 듯도 하고.    
 
 
병장 한상원 (2006/06/03 01:15:24)

<가지로~!!!> 

좋은 글에 괜히 엄한 이름 붙이고 싶진 않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천년도 더 전에,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부가 아니다, 부는 단지 유용하고 다른 것들을 위해 존재할 뿐이라-라고, 부가 우리 삶에 선사하는 것 역시 가난이 건네는 선물과 그 본질적인 혜택 면에서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해준 것에 저는 여전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잘 읽었어요.    
 
 
병장 박민수 (2006/06/03 08:30:33)

<가지로.>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절망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것, 믿음을 버리지 않고 계속 살아가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석윤님의 솔직한 고백에 뭍어난 선의와 세상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마음에 많은 것을 느낍니다. 저도 잘 읽었어요.    
 
 
상병 송희석 (2006/06/03 09:42:46)

<가지로> 

내가 이분을 괜히 필진으로 추천했던 것이 아닌데 말이죠. 그런데 역시나 거절했습니다. 음하하하.    
 
 
병장 김석윤 (2006/06/03 12:13:53)

형주//김동원 감독님이 맞습니다. 전 김규항씨가 이번에 낸 책에서 보았지요.(웃음)    
 
 
병장 김동석 (2006/06/03 13:33:26)

<가지로> 

이것으로 책가지행.    
 
 
하사 윤석호 (2006/06/03 22:44:08)

<가지로> 

사족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추천을 하지 않을수가 없네요. 잘 쓴 글, 잘 읽고 갑니다.    
 
 
상병 정멸 (2006/06/06 21:21:39)

적응하기 힘든 분위기네요(민망) 
<가지로>를 꼭 써야 하는것인지요? 
아무튼, 글 감동적으로 잘 읽었습니다. 
때로는 가난한 자신의 신세를 탓하며 제 스스로를 현실 보다 더 
가난한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본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가난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힘 없이 떠나 보내야 했던 것, 
살아 있는 가족을 위해 자신은 그냥 아파하며 아무런 힘 없이 떠나도 된다고 
하던 그 분의 말. 

모든게 몽롱한 옛 이야기 처럼 들리는 것은 
아파한 만큼의 시간이 어느덧 흐르고 흘러서 그 상처가 
아물어 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난하다고 죄가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왜 타인에게 짓눌리고 무시 당해야 하는건지 모르겠어요. 
단지, 남들 보다 경제적 수안이 적을 뿐인데요. 

힘을 내자고요. 웃고 살다보면 어쩜 저주를 부은 듯한 이 세상에 
떵떵 거리며 웃을 날이 생길테니까요. 
석윤씨 화이팅입니다.(왕웃음)    
 
 
 병장 노지훈 (2006/06/11 11:52:10)

이제야 읽어서 죄송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병장 엄보운 (2006/06/15 10:08:17)

새벽녘의 어슴푸레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