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짱의 사회학 - 약간은 진부한 이야기 
 
 
 
 
몸짱의 사회학 - 약간은 진부한 이야기



언젠가부터 '몸'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얼짱, 몸짱, 메트로섹슈얼부터 크로스섹슈얼까지 몸에 관한 담론과 유행이 끊임없이 생산되고 변형되는 일련의 사회현상은 도저히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예쁜 얼굴이 자산이 아니었던 적이 언제 있었으며 탄탄한 근육질의 남성 육체가 예찬되지 않았던 적이 언제 있었겠냐만, '몸'이 시대의 트렌드이자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하게 된 최근 몇년의 상황은 분명 전통적인 멋진 외모와 몸에 대한 선호 경향과는 차이가 있는 새로운 현상이다. 분명 십년 전에는 S라인이라는 말이 없었고, 건장한 남성 연예인들이 근육질의 몸매를 드러내놓고 자랑하는 일도 훨씬 드물었다. 김종국은 90년대에는 그저 노래 잘 하는 인기 댄스그룹의 멤버에 불과했었지만, 언젠가부터 대중은 그의 노래에 주목하는 것 이상으로 그의 탄탄한 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건강한 몸, 아름다운 몸에 대한 선호 현상을 해석하는 관점도 여러가지다. 신체를 드러내는 것에 대한 금기로부터 해방되어 그 아름다움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즐기게 되었다느니, 유용한 자산으로서 몸이 인식되기 시작했다느니, 웰빙 열풍 등과 마찬가지로 물질적 풍요에 기반한 소비문화의 확산으로서 몸을 가꾸는 것에 주목하게 되었다느니 해석은 제각각이다. 하지만 각각의 관점에 기반한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것이 가치있는 만큼 그 다양한 주장을 저울질하고 적절하게 자리매김하는것 역시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별로 새롭지도 섬세하지도 않은 관점을 통해 이 사회현상에 주목하고자 한다.

얼짱과 몸짱의 유행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르다. 얼짱은 기본적으로 타고나는 것이고 설령 만들어지는 것이라 해도 몸짱을 만드는 것에 비해 훨씬 많은 노력과 투자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얼짱이 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일 수밖에 없으며, 어느 정도 선호되는 스타일이 있다고 해도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의 얼짱이 존재할 여지가 있다. 김태희와 한가인과 김옥빈과 문근영을 모두 얼짱이라 부르는 데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 네 미인의 외모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차이를 감지할 수 있으며 어떤 이미지를 선호하느냐에 따라 각자 '가장 예쁘다'고 느끼는 사람도 다를 것이다. 반면 몸짱은 그것이 근육 있는 탄탄한 몸이든 S라인이라 불리는 몸이든 기본적으로 자기관리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고('제가 얼마나 노력하는데요' - 전지현), 개인차는 있겠지만 노력만 한다면 누구든 몸짱이 될 수 있다. 동안 이미지의 정태우가 어느날 갑자기 벗은 몸을 자랑하고, '국민 약골' 이윤석은 과학적인 트레이닝을 통해 '국민 몸짱'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았던가. 그리고 몸짱을 판별할 수 있는 비교적 객관적인 표준이 존재한다. 얼짱은 미스 코리아를 뽑는 것처럼 미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이 적용되지 않지만 몸짱은 미스터 코리아 대회가 어느 정도 양적으로 측정될 수 있는 근육의 발달 정도를 기준으로 삼듯 남녀에 따라 그 기준은 다르지만 표준형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가 몸짱 유행을 얼짱과는 다른 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함을 의미한다.

몸짱 유행 이전에 운동으로 발달된 몸에 대한 시각은 운동 선수가 아닌 이상에야 그저 운동 열심히 해서 잘 빠지면 좋은 것 이상이 아니었다. 이제는 누구나 몸짱이 되기 위해서 닭가슴살과 계란 흰자를 먹어대고, 유산소 운동과 근육 운동의 차이를 알고 있으며, 원하는 부위별로 어떤 운동이 필요한지 알고 있다. 주위에서 즐겨보는 잡지가 맥심이나 GQ에서 멘즈 헬스로 바뀐 것은 이곳만의 현상일까? 운동도 무작정 열심히 해서는 안 된다. 이두근와 삼두근과 복근을 각각 발달시키면서도 전체적인 라인이 잘 나오도록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 예전 같았으면 '몸 좋은 연예인' 한마디로 다 설명되었을 법한 비와 권상우와 차승원과 김종국은 이제 누가 어느 부분의 근육이 발달했고 어떻게 다른지 모두가 알고 있다. 몸은 한없이 세분화되고 발달시키려면 체계적이고도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멋진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순간도 방심하면 안 된다('제일 무서운거... 체중계!'). 나이가 들수록 근육은 약해지고 젊었을 때만큼의 아름다운 몸매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해야 된다. 몸짱은 겉으로 나타난 몸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라이프스타일이다.

몸짱을 라이프스타일이라고 했을 때 그 내용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 시스템에 충분히 익숙하다. 지난세기를 풍미했던 노동분업 시스템,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의 메커니즘은 본질적으로 몸짱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생산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철저한 분업으로 생산 과정을 분할하고 라인을 최적화하며, 노동자의 신체를 분 단위로까지 통제할 수 있는 엄격한 노동 규율을 적용하는 그 시스템 말이다. 포스트 포드주의니 하는 말이 나온지도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 생산 시스템과 몸짱의 라이프스타일이 같은 사회적 의미를 지녔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회현상으로서의 몸짱 선호에 내재된 메커니즘이 가장 자본주의적인 익숙한 생산 양식과 유사하다는 점은 분명 주목할 가치가 있다. 인간의 몸은 생물학적으로 선사 시대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는데 건강하고 멋진 몸을 위해 해야 할 일은 자꾸만 늘어난다. 마치 졸업하려면 토익점수와 한자 자격증과 영어강의와 이중전공이 필수가 된 요즈음의 대학생들처럼, 남들만큼 일하고도 모자라서 새벽부터 일어나서 학원을 다니든 일을 더 하든 하라는 생활습관이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남보다 더 자세히, 더 철저하게, 더 열심히 해야 몸짱이 되든 취업을 하든 부자가 되든 뭔가 할 수 있다. 

몸짱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체계적이고도 지속적인 트레이닝은 그 자체로 권위가 된다. 가령 웨이트를 할 때는 바른 자세와 지속시간이 있고, 팔의 각도까지 정해져 있다. 과학적 분석에 따른 합리적인 운동방법은 그렇기 때문에 반박할 수 없는 절대적 권위를 가진다(어느 방식이 더 과학적이냐 하는 논쟁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20대 평균치를 충족시키는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는 몸은 모자란 몸 혹은 열등한 몸으로 규정되고, 정상적인 몸 혹은 우월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과학적 트레이닝의 권위에 몸을 복종시켜야 한다. 웨이트에서 적절한 팔의 각도가 지니는 권위는 거수 경례시 손등도 손바닥도 아닌 손날이 보여야 한다는 규범의 권위 이상으로 절대적이다. 신체의 가장 세세한 부분까지 미칠수록 권위는 더욱 정당성을 가진다. 그 절대적 권위 아래서 신체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통제해야 할 객체가 되고 바람직한 몸은 규범에 복종하는 몸이 된다. 몸짱이 되기 위한 트레이닝은 우월하고 주체적인 신체를 만드는 것이 아닌 규율과 통제에 순종하는 신체를 만드는 과정이다.

몸짱 유행은 풍요로운 사회에서 질적으로 나은 생활이 선호되는 것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신체의 해방을 통한 개인의 해방과는 더더욱 관계가 없다. 그것은 무한경쟁으로 나타나는 사회 분위기를 말 그대로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부단한 트레이닝으로 다져진 몸매의 아름다움은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승리해 성공과 부를 거머쥔 이들의 아름다움이다. 자기 몸매 하나 관리 못하는 사람이 이 경쟁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을 리가 없고, 게으른 자신의 생활습관에 상응하는 사회적 낙오는 지극히 합당한 결과다. 몸짱은 시대의 인간형이다. 숭배하라, 저 아름다운 육체를.


BGM - 데프콘 '힘내세요 뚱'
 

  
 
 
 
상병 조주현 (2006/05/31 02:00:26)

잘 읽었습니다. 그닥 노력은 기울이지 않는 저이지만, 공감가는군요. 건강과 웰빙의 방편으로 몸을 만드는게 아닌 몸을 위한 몸만들기라는 느낌은 예전 진우씨의 글 기다림을위한 기다림의 재생산이라는 측면과도 은근히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건 저만 그런거겠죠? 아하으-    
 
 
상병 송희석 (2006/05/31 05:27:38)

오호! 몸짱을 노력으로 연결시키고, 그것과 비교한 얼짱! 게다가 그것을 사회와 연결시키는 이 엄청난 글을 잘 읽고 갑니다. 첫칼럼 답게 멋지군요. 으흐흐.    
 
 
일병 김현동 (2006/05/31 08:18:46)

재미있어요 흐흐. 

참고로 저는 태희씨보다는 가인씨(부끄).    
 
 
병장 한상원 (2006/05/31 10:31:05)

페미니즘의 몸의 정치학이라든지, 상품화되는 몸이라든지. 그런 맥락을 생각하게 하는군요. 몸짱은 여성에게만 국한되는 것처럼 보이던 몸의 상품화가 성별, 남녀노소에 무관하게 진행되는 현상이겠죠. 자기 관리라는 말로 미화되고 있지만. 정말 자기 만족인지 세태를 좇음인지를 스스로 아는 것은 내가 속한 세상이 매트릭스인지 아닌지를 생각하게 하는 파란 알약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시는군요. 호호.    
 
 
 병장 노지훈 (2006/06/01 02:55:30)

하지만 얼짱에 비하면 몸짱은 옵션일 뿐...    
 
 
상병 박종민 (2006/06/01 04:41:12)

마지막 BGM 줄을 추가해주심으로써, 글쓰기의 날카로움에 친절함까지 겸비하신-    
 
 
상병 이정호 (2006/06/01 12:58:15)

정말...마지막 비쥐엠이 압권이군요... 
뚱뚱한게 뭐 그리 큰 죄입니까아~ 난 욕심하나 없는 젊은입니다아~ 

하지만...저도 요즘 몸짱이 되기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병장 박진우 (2006/06/01 17:57:59)

요~ 이거 시부동 정모때 그 자리에 없었음에도 가장 침이 마르게 칭찬을 받던 인물들 중 두번째쯤에 랭크된 형주님의 칼럼이군요~! (첫번째는 아름다운 청년. 김대현이라고 굳이 콕 집어서 말하지 않겠음. 대현씨 없는 자리에서 대현씨를 칭찬했더니 대현씨를 모르는 사람이 그 이야기를 듣고 김대현을 신격화 하는것 아니냐 라는 질문까지 받았으니...으하하)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훌륭한 칼럼이군요! 으힛. 

주현/여기 또 나 없는데서 비행기 태우는 사람 발견. 으하하.    
 
 
병장 박형주 (2006/06/01 23:23:15)

진우/아니 저는 시부동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데 안주거리가 되고 말았구요. 대현씨라면 몰라도.    
 
 
병장 김강록 (2006/06/02 02:57:37)

하지만 몸짱을 말하는 당신은 글짱입니다.    
 
 
상병 송희석 (2006/06/02 08:01:10)

형주/ 그러니까 저처럼 글을 써야 안주거리가 안되죠. 흐흐.    
 
 
 병장 박진우 (2006/06/02 16:21:24)

희석// 아니, 희석씨는 다른 의미로 안주거리가 되었는데요. 
다들 민우님을 처음 보더니 이름을 얘기안해주고 나이가 많다는 것만 알려주니까 

아니! 송희석씨! 

라고 하더라는... 크크크.    
 
 
병장 이은호 (2006/06/19 18:19:37)

부지런해야합니다. 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