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부(Taboo) 
 
 
 
 
‘저건 뭐냐?’
날씨가 좋아 베란다 문을 열어놓았는데 봄철 내내 한주도 거르지 않고 심고 뿌리고 어느덧 베란다가 좁아져 지나다니기도 힘들 정도로 들여놓은 화분 중 막 땅을 디밀고 머리를 내민 싹이 하도 기운이 없어 보여 나무젓가락을 지주대로 세워 노랑 고무줄로 묶어놓은 것을 보고 어머니가 물으셨다.
‘해바라기’
‘해바라기는 집안에다 심는 거 아니다’
어머니는 끓여놓은 차도 마시는 둥 마는 둥 빵 하나를 던져놓고 가버리셨다.

어릴 때 생각이 난다. 나는 할머니 치마폭에 쌓여 자랐는데 할머니께서는 시집오시기전 천석꾼이라는 토착 지주의 세 번째 딸로 고생을 모르고 자라다가 열여섯에 소두마리에 지참금을 바리바리 싣고 침모 한사람을 앞세워 시집왔는데 그 잘난 서생이었던 남편이 10년도 못살고 사상문제에 걸려 옥살이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서 자식 넷을 데리고 모진 고생을 하시다 첫째 딸(고모)과 막내(아버지)를 빼고 가운데 두 자식마저 오롯이 먼저 앞세운 가슴 아픈 사연을 많이 가지고 계신분이다. 당신 살아계실 동안 늘 ‘내 살아온 얘기는 책으로 써도 한권으로는 모자란다’고 항상 입버릇처럼 말씀하셔서 정말 한때 할머니의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써 볼까 생각도 해보았다. 그렇지만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도 있고 또 박완서 선생님의 미망도 있으니 이 미천한 솜씨로 나서서 과연 할머니의 굴곡진 삶을 제대로 풀어낼 리도 만무하고 또 할아버지가 뿌린 업보가 너무 커서 우리가족이 연좌제에 풀려난 것도 겨우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이니 사실 그럴 정신이 없었다. 그나마 이정도로 추스르고 사는 것도 어른이셨던 할머니와 어머니 덕분인데 그런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사상냄새가 조금만 풍겨도 새파랗게 넘어가실 정도로 우리를 세상과 떨어뜨려놓기 위해 무진 애를 쓰셨다. 

대개 우리 윗세대 어른들이 그러하듯이 우리 집 어른들도 불교에 토착신앙을 접목시킨 무속 신앙적 종교를 숭배하셨는데 그 신앙심이 무척 대단하셨다. 사실 할머니께서는 그 당시로서는 드물게 언문을 깨치셨고 주역을 공부하셔서 사주풀이를 능숙하게 하셨던 분으로 할머니께서 나를 예뻐하시고 싸고도시는 것도 이런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할머니께서는 일찍 눈이 안 좋으셔서 책을 읽기 힘드셨는데 손님(주로 친척분)들이 오시면 나를 불러 책을 주시고 몇 페이지를 펴라 하시면 내가 그 페이지를 읽어드리고 할머니께서 풀어주시는 말씀을 손님들에게 알아듣기 쉽게 풀어드렸다. 어렸으니 뜻도 모르고 그저 할머니께서 말씀하시던 것을 그냥 주워 섬겼을 뿐인데 나중에는 이것도 꾀가 나서 손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그냥 냅다 도망을 쳐버리기도 했다. 
어린 마음에 간절한 바램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의 눈길을 감당하기도 힘들었고 또 그 사연이 맨 날 우울해서 즐겁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100원씩 200원씩 하며 나에게 수고비를 주시기 시작하셨는데 그리하여 모종의 거래가 성립된 것이었다. 

‘할머니 할머니는 이런 걸 어떻게 다 알아? 할머니 무당이야?’
그러면 할머니께서는 무척 역정을 내셨는데
‘이건 주역이라는 공부다. 점쟁이하고는 틀려. 세상 이치란 건데 사람 사는 게 다 이 안에 있는 거야. 사주팔자는 하늘이 주는 거라 아무도 못 고치는 거야’
할머니께서는 어린 내게 이런 운명론적인 사상을 은연중에 주지시켜 주셨지만 발칙하게도 나는 이 사주란 것을 그다지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할머니를 찾아오시는 분들 중 똑같은 사주를 가진 사람이 꽤 있었는데 사는 모습이 모두 틀렸기 때문이다. 이 또한 필연적인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어린 내 머리로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이것저것 읽기 시작한 책 중에 계몽사의 위대한 위인전 탓인지 인생은 개척하는 자의 것이란 말이 더욱 마음에 들었기 때문인데 요즘 들어 새삼 할머니의 숙명론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왜 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집에는 유난히 터부가 많았다.
월드컵 이후로 우리나라가 적색 공포에서 벗어났다고 하지만 이전 세대이신 어머니는 빨간색을 무척이나 싫어하셔서 나는 어려서부터 한번도 빨간색의 옷을 입어본적도 없었고 집안에 빨간 물건도 없었는데 유일하게 빨간 것은 항상 술을 많이 드셔서 빨간 아버지 눈 밖에 없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긴장의 연속이었던 우리 집에서는 문지방을 밟아서도 안 되고 어께를 짚어서도 안 되고 아침에 원숭이란 말을 입에 내서도 안 되었다. 아침 거미는 손님이지만 저녁거미는 재수 없어 잡아 죽이고 밥을 먹으며 말을 하면 안 되고 밥그릇은 바닥에 놓으면 안 되고 젓가락으로 밥을 먹어도 안 되고 국물을 먹을 때도 소리 내어 먹으면 금방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렇게 할머니는 방에서 어머니는 마루에서 닳아서 빤닥 빤닥한 화투장으로 하루 운수 패를 뜨면서 세월을 이기셨다. 어머니의 고생은 할머니의 시집살이가 심해서가 아니라 이런 문제가 많은 집안에 시집을 오셨다는데서 시작된 것인데 삶의 고단함은 당시 최고학부를 졸업한 신여성에게도 비켜가지를 못했고 할머니의 종교에 맹목적으로 동화되어 버리셨다. 할머니의 터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는데 심지어 날개달린 고기는(닭이나 오리) 풍이 세니 먹으면 안 먹는다 하여 그 흔한 통닭한번 못 먹었고 비린고기는 먹는 게 아니라 하여 고등어나 삼치 꽁치 이런 고기는 드시지를 않았고 기껏 조기나 민어, 대구처럼 비싸기 때문에 정말 어쩌다 맛볼 수밖에 없는 고기를 드셨다. 이슬람교도도 아니신데 돼지고기도 드시지 않으셔서 나는 취직을 하여 회식이라고 삼겹살 집에 가서 그냥 젓가락만 빨다가 왔다. 나는 스물 몇 살이 훨씬 지나 닭고기를 먹었고 돼지지고기도 처음으로 맛보았지만 결국 날것이라며 비린 것은 먹지 않는다 하여 회는 아직도 먹지 못하고 있다. 
하도 어렸을 때 하지 말라는 것이 많아서 번번이 어머니와 다투기도 하였는데 왜 하지 말라고 하냐고 따지면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크거든 집나가서 네 마음대로 하고 살아라’ 하시면서 당신 집에 있을 동안은 당신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엄포를 놓으셨다.
내가 남들보다 세상 살기가 좀더 힘들었던 것은 이런 탓도 분명히 있으리라.

그런데 그 터부가 너무 싫어서 나는 한동안 제멋대로 살았던 적도 있었는데 어느 새 자신도 모르게 오롯이 어머니의 그림자를 밟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 화들짝 놀라곤 한다.
이사를 갈 때면 어머니께 전화를 해서 날짜를 정해달라고 하고 어디에다 못을 박지 말라고 하면 코웃음을 치다가도 못을 들고 한참 벽을 노려보다가 결국 스티커 못을 붙이고 만다. 생일을 양력으로 바꾸려고 몇 번시도한 적이 있는데 아무리 얘기를 해도 그러거나 말거나 항상 음력생일에 전화를 하고 빵을 사다주시는 어머니께 져서 결국 지금도 생일을 음력으로 하고 있다. 침대를 놓으며 북쪽으로 머리를 두지 않기 위해 방을 좁게 쓰고 있고 결국 할머니 식성대로 닭고기나 오리고기를 별로 즐기지 않고 돼지고기도 잘 안 먹고 생선도 흰 살 생선을 좋아하고 머위나 산나물에 좋아라 괴성을 지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마당 한 켠에 할머니가 즐겨 심으시던 조금은 청승맞아 보이던 맨드라미를 좋아하고 자주 종기가 나서 상처에 붙여주시느라 화분에 기르던 민들레를 나도 화분에 기르게 되었다.

사실 어릴 때 주입된 이런 무의식적인 관습은 무서운 것이다. 내가 좀더 다른 환경에 살았더라면 이런 터부를 가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유를 모르던 대부분의 터부에 조상님들의 지혜가 숨어있다고는 하지만 그거야 요즘에 하는 말이고 어렸을 때 하지 말라고 윽박지르던 어른들은 그리 친절하지가 않았다. 덧붙이자면 여자아이는 남자아이와 달라서 하지 말라는 것이 남자아이보다 곱절은 더 많았다. 이것은 무척 불편한 일이었고 나를 세상에 주눅 들게 하는 일 이었다.
숙명론에 조예가 깊으셨던 할머니는 수많은 터부를 어머니와 우리에게 물려주셨고 어머니는 힘들었던 세상에서 우리를 떼어놓기 위해 또 많은 터부를 만드셨다 나는 이분들을 사랑하지만 그 분들과 다른 길을 걷기위해 노력중이다. 

그렇지만 나에게도 사소한 몇 가지 터부가 있다.
이른 봄날 그해에 처음으로 보게 되는 나비가 노란나비면 올해는 좋은 일이 있을 거라 믿고 양치질을 하고 거울을 들여다보며 씨익 웃다보면 옛날 덧니가 있던 자리가 살짝 벌어졌는데 내가 돈을 모으지 못하는 이유가 저리로 돈이 새는 거라 믿는다. 나는 선천적 경쟁심 결핍형으로 온갖 발랄한 짓은 다해도 남들과의 경쟁은 소질이 없기 때문에 절대로 둘 이상 하는 내기 운동이나 내기 게임은 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열 사람이 같이 길을 가다 돈을 주워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행운 부재(不在)론 소유자로 복권이나 경품 행사는 나랑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뭐 이 정도가 내가 극복할 수 있을 정도이니 딱 좋다. 나는 요즘도 터부를 가지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어머니가 어떤 이유로 해바라기를 집안에다 키우는 것이 아니란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열심히 키울 생각이다. 
나는 해바라기를 좋아한다.

 

  
 
 
 
상병 송희석 (2006/05/19 16:39:02)

터부라, 터부라, 왜 나에겐 터부가 없는것일까?    
 
 
병장 신현준 (2006/05/19 20:38:15)

터부가 하지연님의 모습으로 자리 잡은 것같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리 나빠 보이지 않네요. (웃음)    
 
 
 병장 김동환 (2006/05/22 07:59:02)

저도 해바라기를 좋아해요. 집에서 키울 엄두는 안나지만. 힛.    
 
 
상병 이벌찬 (2006/05/22 08:21:44)

어느 새 자신도 모르게 오롯이 어머니의 그림자를 밟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 화들짝 놀라곤 한다. 
=>ditto    
 
 
병장 최무강 (2006/05/22 19:05:20)

돈을 모으지 못하는 이유는 과도한 지출로 인한 결과!    
 
 
상병 허동훈 (2006/05/24 11:43:18)

터부가 뭔가요? 터부는 금기 아닌가요? 
혼동이 가는 글들이 있어서... 엄밀히 따지고 싶진 않은데 제가 부족해서 잘 이해를 못하는건가요? 
꼭 징크스를 얘기하는 것 같아서. 
터부를 무겁게 다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터부시하다. 금기하다. 집단의 구성원끼리 암묵적으로 금하는게 터부가 아닌가요? 
집단 무의식 같은것.    
 
 
병장 신현준 (2006/05/29 00:59:05)

터부(taboo) 
?①미개한 사회에서 신성하거나 속된 것, 또는 깨끗하거나 부정하다고 인정된 사물?장소?행위?인격?말 따위에 관하여 접촉하거나 이야기하는 것을 금하거나 꺼리고, 그것을 범하면 초자연적인 제재가 가해진다고 믿는 습속(習俗). ②특정 집단에서 어떤 말이나 행동을 금하거나 꺼리는 것. ¶우리 집에서는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터부로 되어 있다./그들에게 회개를 요구하는 말은 동서의 대립이라는 오늘의 상황 때문에 우리들에겐 터부가 돼 있다.≪최인훈, 회색인≫ ?①사위02.?②금기05(禁忌)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