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병의 사랑에 대한 감각2 
 
 
 
 
* 인용문은 죄다 에리히 프롬 - 사랑의 기술에서 따온 것입니다.





1. 자본주의와 사랑? 자본주의적 사랑!

주말 TV에서는 끊임없이 공개적 짝짓기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양대 방송국은 황금 시간대에 비슷한 플롯의 오락 프로그램에서 ‘사랑합니다’도 모자라 ‘완전사랑합니다’를 남발해 온 것도 이젠 새삼 환기하기엔 철지난 얘기가 되어간다.
물론 개개인을 붙잡고 묻는다면 아무도 이런저런 쇼 프로그램들을 정말 ‘리얼’한 것으로 믿는다는 사람은 없겠지만, 중요한 점은 사람들이 그 같은 방송들의 허위성을 알면서도 마치 그것을 믿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공중파 기본 수신료만 내고 ‘리얼 버라이어티 쑈쑈쑈 연애행각'을 구매하고 있다. 소위 잘나가는 연예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어찌 정분이 나지 않으리, 차라리 우리에겐 그런 ’만들어진‘ 환경, 부자연스러움이 더 자연스러운지도 모른다.

사랑이 정략적 결혼 후에 따라오는 부부 사이의 우정과 같은 부가물로 밖에 존재하지 않던 시대에 비해 오늘날의 ‘자유연애’는 많은 것을 쟁취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나눔에 있어 말그대로 ‘자유’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 현대 연애의 원인으로써의 사랑은, 잘 포장된 퍼스낼리티 상품의 가치를 교환해서 얻는 욕구 충족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오늘날 우리가 '연애'라 부르는 것은 -보통 성적 매력과 결합된- 사회적 기준에 걸맞는 남성다움과 여성스러움으로 자신을 포장하여 상품화하고, 마침내 대상과의 상대적인 값어치를 비교하여 적절한 수준에서 매매하는 것이다.

지젝의 표현대로 지구가 멸망하는 것은 예측해도 자본주의 없는 지구는 상상하지 못하는 현대인은 사랑도 자본적으로 하고있다.

"내가 거래를 하러 나갔다고 하자. 상대는 사회적 가치의 관점에서 보아 바람직해야 하며 동시에 상대자도 나의 명백한, 또는 숨겨진 재산과 능력을 고려한 다음 나를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와 같이 자기 자신의 교환가치의 한계를 고려하면서도 서로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최상의 대상을 찾아냈다고 느낄 때에만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질 수 있다..............시장지향적이고 물질적 성공이 현저한 가치를 갖고 있는 문화권에서 인간의 애정관계가 상품 및 노동시장을 지배하는 것과 동일한 교환형식에 따르더라도 놀랄 이유는 하나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사랑은 받는게 아니라 주는것'이라는 말을 되뇌이지만 그 뜻이 공허하게 울릴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 지점으로부터이다. 우리는 매력적으로 외모를 가꾸고, 쾌활한 모습을 보여주며 매너있게 행동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종류의 노력에서 ‘상품으로써의 자기가치’를 폐기하지 못하는 한 '주는' 행위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 
더 나아가 상대의 퍼스널리티와 매력을 얻기(구매하기) 위해 사용 혹은 발휘된다면, 대상에 대한 성실함이나 정신적인 지지 같은, 그 가치가 제아무리 비물질적이며 정치적으로 올바른 항목이라 하여도 -다만 그 방법이 세련되지 못할 뿐- 김중배의 다이아몬드만큼 자본적인 사랑의 방식인 것이다. 


2. 열정과 열정 사이.

“1920년대에는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튼튼하고 성적매력이 있는 소녀가 매력적이었다. 오늘날의 유행은 오히려 가정적이고 얌전하기를 요구한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매력적인 '포장‘이 되려면 남자는 공격적이고 야심적이어야 했으나 오늘날은 사교적이고 관대해야 한다.”

사랑의 방식이 일정한 이데올로기에 기대고 있다면, 사랑의 대상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 스스로의 것이라는 믿음 또한 환상에 불과 한게 아닐까? 사람들은 ‘시대’의 방식에 따라 ‘시대’의 대상을 택하면서도 ‘열정’과 ‘일체감’이라는 연막탄을 기꺼이 껴안으며 사랑이 온전히 자신에게 속한 것이길 소망한다.

상대방의 모습이나 목소리가 자꾸 머릿속에 떠오를 때, 하루 종일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몇 시간씩 전화통화를 하고 시시콜콜한 개인생활을 늘어놓으며 '사랑에 빠지고 있다'고 느끼고, 영화 포스터 카피는 남녀가 서로 죽고 못살 때 ‘위대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랑 = ‘열정 내지 일체감의 공식을 의심하는 것은 일종의 불경이요, 금기이며 전적으로 사랑이 부족에 기인하게 된다.
하지만 열정과 일체감을 맛본 사람은 누구나 UMC의 노래가사처럼 '우리가 처음 손을 잡고, 네가 내 오토바이 뒤에 앉아 소리지르고, 친구들과 술 마시다 눈마주쳐 수줍게 웃던 순간들이 과연 사랑이었을까, 우리 정말 사랑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순간 또한 피해갈 수 없다. 이는 사랑에 대한 좀 더 본질적인 접근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한 질문이다.

“......남남으로 지내오던 두 사람이 갑자기 그들 사이의 벽을 허물어 버리고 밀접하게 느끼고 일체라고 느낄 때, 이러한 합일의 순간은 생애에 있어서 가장 유쾌하고 가장 격앙된 경험의 하나이다(..........) 사실상 그들은 강렬한 열중, 곧 서로 ‘미쳐 버리는’ 것을 사랑의 열도의 증거로 생각하지만, 이것은 기껏해야 그들이 서로 만나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는가를 입증할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체화된 습관과 가치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고통스런 답변을 듣기 보다는 문제를 회피하거나, 문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나간 기억속의 옛 연인을 (과장되며) 로맨틱한 기억으로 묻어두던지, 잘못된 대상을 선택했으므로 다른 ‘진짜 사랑’을 찾던지, 다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낯선이’와 벽을 허물고 나선 다시 실망하고 싫증내며 권태로워 하기를 반복하는 경험뿐이다. 여기서 얻을 것은 기껏해야 상대와 ‘밀고 당기기’ 내지 적당한 거리두기, 신비감 유지 등 ‘파국의 지연’ 이상 일 수 없다. 

구매하고, 소모하고, 또 구매하고, 효율적으로 소모하고.


3. 아직도 가야할 길

기껏 말하고자 하는것이 성애에 인색한 관념적, 개념적인 사랑이나 플라토닉 러브의 숭고함 같은것은 아니다.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사랑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정도의 반의 반 만큼이라도 그것에 성실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 체제 안에서 최소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까지 다니며 20여년 세월 내내 지식을 습득하고 기술을 익히며 경험을 쌓는 우리가, 적극적으로는 아침형 인간(덜덜덜...)이 될 전의마저 충만한 우리가, 정작 사랑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충분한 지식을 얻는 유일한 길은 사랑의 ‘행위’에 있다. 이 행위는 사상을 초월하고 언어를 초월한다. 사랑의 행위는 대담하게 합일의 경험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그러나 사고에 의한 지식, 곧 심리학적 지식은 사랑의 행위에 있어서 충분한 지식을 위해 불가결한 조건이다. 다른 사람의 실상을 보기 위해서는, 오히려 내가 그에 대해 갖고 있는 환상, 곧 불합리하게 일그러진 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나는 다른 사람과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알아야 한다. 인간을 객관적으로 알게 될 때에만 사랑의 행위를 통해서 나는 인간을 궁극적 본질에 있어서 알 수 있다.”

무수한 원인과 논거를 가진 것은 그 원인이 사라질 때 함께 철회될 것이고, 아무런 이유 없이 생겨난 것은 역시 아무런 이유 없이 스러져버린다.

적어도 사랑에 있어서 궁극, 혹은 영원이라는 단어는 ‘부단한 노력의 여정’ 앞에서만 쓰이는 수사일 것이다.

심리학에선 심리학자, 철학에선 철학자, 사회학에선 사회학자이신 칼.M 형님의 일침에 귀기울여보자면, 

"'인간을 인간으로서' 생각하고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로 생각하라. 그러면 당신은 사랑에는 사랑으로만, 신뢰에는 신뢰로만 교환하게 될 것이다. 예술을 감상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예술적 훈련을 받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 영향력을 갖고 싶다면, 당신은 실제로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발전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당신의 모든 관계가 당신의 의지의 대상에 대응하는, 당신의 '현실적이고 개별적인' 생명의 분명한 표현이 되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사랑을 일깨우지 못하는 사랑을 한다면, 곧 당신의 사랑이 사랑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만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생명의 표현'에 의해서 당신 자신을 '사랑받는 자'로 만들지 못한다면, 당신의 사랑은 무능한 사랑이고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모두 (짐짓 엄숙한 표정에 노현정 아나운서 톤으로) “공부하세요.”






최근 강유원씨의 홈페이지를 찾아 자주 들락거리면서 공부하는 법이라던가 학문하는 태도에 대한 글을 많이 주워섬겨보았는데, 그에 비춰보아 많은 사람에게 매우 도움되는 글을 쓴 것 같아 스스로 마음이 흡족하다. 
부제로 ‘수박 겉핥기식 편협한 스펙트럼의 독서로 자신의 논거와 사유가 빈약한 사람이 고작 남의 책에서 문구 따와 짜깁기 하는 방법’ 이런 것이 어울릴 것 같아서 이다.


사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보름도 좀 더 넘었는데, 나들이도 겹치고 하여 진도가 안나가 치열하게 고뇌하던 차에 맘이 하 수상키도 하고 더 써봤자 드러낼 밑천도 없겠다는 것을 자각하는 경지를 얻어 이젠 마음의 평안을 얻고저 한다. 피-쓰. 

  
 
 
 
상병 송희석 (2006/05/05 19:27:28)

사족인데, UMC가 혹시 언더에서 활동하던 힙합그룹아닌가요? 우지가 속해있었고, 신촌에서 그 어디더라 까먹었네, 주로 활동하던 클럽이 있었는데, 마스터플랜 말고, 그 뭐시기, 암튼, 맞나요?    
 
 
상병 안대섭 (2006/05/05 19:31:43)

생각하시는 그 인물이 맞을겁니다. 우연히 노래를 접하고, 후에 프로필에 대해서 얘기를 들은게 있긴한데 다 까먹었어요. 성균관대 다니다가 군대갔다던가 하는 얘기 말곤 기억나지 않네요.    
 
 
상병 송희석 (2006/05/05 19:34:31)

대섭/ 이런, 제가 예전에 잠시 좋아했던 녀석들인데, 4대통신시절 UMC음악은 꽤 신선했습니다. 마치 오래전 45rpm처럼 말이죠. 아무튼 음악이야기는 여기까지고, 글 잘 읽었습니다. 이글의 전체적 핵심은 부단한 노력이라는 거죠?    
 
 
 병장 노지훈 (2006/05/05 19:36:30)

슈비두비둡~ xs denied~    
 
 
병장 정치훈 (2006/05/06 02:38:47)

전 슈비두비둡 처음엔 좋다고 들었는데 듣다보니 가사 자체에서 거부감이 드는건 왜인지.. 마치 본인들만 고생해서 랩한다는 느낌?    
 
 
병장 김형진 (2006/05/06 08:35:40)

그러니까, 대체, 그 안상병은 언제 병장이랍니까. 
언제적 안상병이래.    
 
 
병장 주영준 (2006/05/06 15:36:28)

형진 / 그러게 엄보운 상병도 이젠 엄병장이고 우리의 만년상병 김강록이도 병장 단지 옛날인데. 
근데 우리 만년병장 김형진은 도대체 언제 말년병장에 제대한다냐.    
 
 
상병 안대섭 (2006/05/06 16:46:45)

당분간 상병입니다. 쳇.    
 
 
상병 송희석 (2006/05/06 16:49:52)

대섭/ 설마 대섭님도 저처럼 진급이 혹시 누락되는 뭐 그런것입니까?    
 
 
병장 김형진 (2006/05/06 17:08:43)

영준 // 그러게요. 공군병장은 5호봉이 시작이라던데, 우리의 영준씨는 언제 병장생활 시작인거요? 
병장 진급한지 꽤 오래 된 것 같은데 말예요.    
 
 
병장 주영준 (2006/05/06 17:19:06)

형진 / 축하해주세요. 오늘 기준으로 딱 두달만 더 기다리면 드디어 병장 시작이네요.    
 
 
상병 안대섭 (2006/05/06 17:30:01)

영준님 병장 시작하시면 저도 병장 시작입니다. 진급 누락 보다는 그냥 짬이 찌글할 뿐이죠...후...    
 
 
상병 송희석 (2006/05/06 17:33:54)

대섭/ 그래도 다행이네요. 전 징계로 인한 진급누락인데 말이죠. 쩝.    
 
 
 병장 박진우 (2006/05/12 08:57:29)

아흑. 대섭님의 글을 세번이나 읽었는데도 요지를 못 찾겠어요. 

요지는 앞니와 어금니 사이. 으헤~    
 
 
상병 안대섭 (2006/05/12 10:55:38)

글이 허접하니 요지를 못찾으시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뻔뻔) 
제가 블로그에 조금 장문을 올려놓으면 이를 아는 지인들은 '세줄로 요약해라'라고 당당히 요구하죠. 

어쨋든 요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사랑이라는 단어와 개념은 이러저러하게 오염될 수 밖에 없으므로 사회과학이든 정신분석이든 철학이든 뭐든 끌어다가 마구 두들기고 때려봐야 진짠지 아닌지 간이라도 볼 수 있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세줄로 요약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