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5월 2일을 추억하며. 마츠모토 히데토를 위하여. 
 
 
 
 
1998년 5월 2일은, 토요일이었다. 

적당히 따뜻한 그 날에도 무수한 사람들이 그 날 생겨나고 무수한 사람들이 그 날 사라졌겠지. 그렇게 그 날 어떤 예술가가 불타올랐다. 마츠모토 히데토(松本秀人). 샤벨 타이거의 리더였던, X-japan의 기타리스트이자 헤어스타일리스트였던, hide with spread beaver와 zilch의 리더였던 히데는 그렇게 우주로 날아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중학교 3학년, 열다섯 살의 소년이었던 나는 평소와 같은 주말을 보냈으리라. 날씨가 좋았더라면 폭죽을 하늘로 쏘아댔겠지. 그렇지 않다면 책을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하였으리라.

그 날, 날씨가 좋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내가 문방구에서 몇 백원 짜리 불꽃 로켓을 사서 하늘로 띄워보냈기를 바란다. 우뚝 솟은 로켓, 녹슬기 전에 발사. 물론 나는 그 시절 그를 알지 못하였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하고야 처음으로 일본 음악을 듣게 되었다. 처음으로 들었던 곡은 분명하게 X-japan의 紅이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일음을 좋아하고 이런저런 것들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그런 친구로부터 듣게 된 것이다. 딱히 좋지는 않았다. 시끄럽달까. 예나 지금이나 웅장하고 세련된 것들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처음으로, 히데의 곡을 듣게 되었다. 내게 X를 들려주었던 그 친구로부터. Rocket Dive를 듣게 되었다. 우연한 계기로. '별로 내 취향은 아닌데, 네가 좋아할 것 같기도 하고'하는 친구의 부연 설명과 함께.

어떤 예술사회학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고흐를 알고 난 뒤의 삶은 고흐를 알기 전의 삶과 같을 수 없다고. 마찬가지다. Rocket Dive를 듣고 난 뒤의 삶은 이전의 삶과 같을 수 없다. 단 한번 들은 것으로 빨려들어간 음악은 20년이 조금 넘는 삶에서 이것이 유일하다. 폭풍처럼 다가오는 인트로. 폭주하는 엔진음을 닮은 기타와 베이스. 장난스럽고 요염한 보컬의 목소리. 밝으며 어딘지 모르게 애절한 멜로디. 그 모든 것을 충동질하는 미칠 듯한 화려함. 춤추며 사그라드는, 불타오르는 장미를 떠올리게 하는 그런. 나는 폭발적으로 압도당했다. 눈 앞 가득 몰려오는 바퀴벌레 떼의 기억보다도, 날카로운 첫 키스의 경험보다도 강력하게 나는 압도당했다.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하던가. 위대한 예술 작품 앞에서 그것이 풍겨내는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의하여 압도당해 아무런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증상을 보이는 것을. 나는 히데의 Rocket Dive에서 그것을 느꼈다. 아직까지도 때로 그 곡을 들으면 눈물이 흐른다.

음악이라곤 너바나밖에 모르던 시절이었다. 너바나의 공허하고 반복적인, 나를 곡으로 잡아 끄는 진공의 음색에 깊숙히 빠져들었던 시절이었다. 커트의 목소리는 새까만 늪처럼 나를 빨아들인다. 나는 그에게 저항할 수 없었다. 히데는, 달랐다. 그의 목소리는 그의 음악은 단 한 곳도 비어있지 아니하였다. 화려하게, 터질 듯 가득 찬 그의 음악은 나를 그야말로 '압도'했다. 내게 커트가 무無의 음악이라면, 히데는 만滿의 음악이었다. 

그렇게 나는 히데에 압도당했다. 우연찮게 다른 친구 하나가 과외 선생으로부터 히데의 앨범 Ja, Joo를 빌렸다. 내가 먹고 물어주었다. 그렇게 그의 곡들을 하나 둘 찾아보았다. 모든 곡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가 정확한 정보를 알게 될 때까지, 나는 그가 자살한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몇 몇 친구들에게 그의 음악을 추천했다. 모두가 마음에 들어했다. 그럴 수 밖에. Dice의 징징거리는 노이즈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Goodbye와 Tell me의 낮게 울리는 목소리는 섹시하다고 밖에는 할 수 없었다. 여전히 Rocket dive는 나의 킬링트랙이었다. 마치 디스 플러스처럼, 술을 마실 때나 글을 쓸 때나 책을 읽을 때나 그 웅웅거리는 소음은 내 귀를 어지럽혔다. 장난스럽고 귀여운 hurry go round도 좋았고, 이유 없는 애절함을 불러일으키는 멜로디의 ever free나 eyes love you도 마음에 안 들 리 없었다. 이상하게 명곡임이 분명하고 히데의 色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doubt나 pink spider는 그다지 마음에 차지 않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zilch시절의 음악이 좋다는 것은 음악적인 이유 이상의 무엇인가 신비한 이유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정신없이 그의 음악을 들었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정신이 없어질 수 밖에 없다. 여전히 메인은 rocket dive. 유쾌한 가사와 엔카풍이 요염하게 어우러진 beauty & stupid도 rocket dive만큼 들은 것 같지만. 그대가 좋아하는 69체위. '이러시면 안되요'는 OK 사인. 화려하기에는 지나치게 길고 단조롭다고 느껴진 misery나 한계파열도 열심히 들었다. 단조롭기는 해도 화려한 hi-ho야 말할 것도 없고. 대학에 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히데 베스트의 전 곡 가사를 외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일본어라곤 사요나라, 정도밖에는 할 줄 모르는데. 대학에 갔다. 그의 정확한 사인을 알게 되었다.

'과로사'

아티스트로서 맞을 수 있는 최고의 피날레. 과로사. 자살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회사원이라면 과로사 역시 어렵지 않다. 하지만 과로사한 아티스트는. 곡 작업 중 과로로 불타오른 아티스트는. 비록 조금 어처구니 없는 몰골로 죽어버린 그였지만, 과로사라는 것은 예술가를 꿈꾸는 모든 이들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만한 죽음이다. 그렇다. 그는 과로로 죽었다. 그의 예쁜 분홍빛 머리카락처럼 그렇게 그는 흩날렸다. 곡 작업을 마치고,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서, 죽었다. 자살로 오인될 만한 몰골-목에 끈을 묶은 채 쓰러진-로 죽어버리고, 자살이라는 오보가 떠돌았다. 몇 몇 팬들이 그를 따라 자살을 시도했다. 곧 제대로 된 사인이 밝혀졌다. 과로사. 약년 서른 셋. X-japan해체 이후 제대로 된 솔로 활동의 화려한 시작에 시동을 걸던 그는 그렇게 불타올랐다. 미소라 히바리-일본 가수. 몰라도 될 사람 이름을 아는 이유는 히데의 추모인파와 비견되기에. 그리고 그의 곡 중 하나를 링고가 리메이크했기에<쿠루마야상>-이후로 최대의 인파라는 5만의 인파가 그를 추모했다. 5월 2일, 어느 봄날에 그는 그렇게 가버렸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곡 중 하나인 hurry go round는 '봄에 다시 봐요'로 끝난다. 그리고 다음 해 그의 기일, 무수한 인파가 그를 추모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이십 대의 끝자락에서 요절한 절망의 시인 기형도의 죽음에 비견될만한 그런 죽음의 신탁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가 그렇게 사라질 때 나는 그를 모르던 15세 소년이었다.

그는 15세 때 친구 집에서 들은 락 음악이 자신을 바꾸었다고 이야기다. 뚱뚱하고, 프라모델을 좋아하는, 미용일을 가업으로 삼는 집의 장남에서 아티스트가 되었다고. 힘이 들 때면 15세 시절의 자신과 이야기한다고. 15세 즈음에, 뚱뚱하고, 불꽃놀이 정도의 취미를 가진, 적당히 보수적인 집의 장남이었던 나는 그의 음악을 듣고 세계가 흔들리는 충격을 받았다. 세계가 흔들리거나 말거나, 스물 세살이 되도록 나는 아무런 세계를 만들지 못했다는 게 차이일까. 하지만 차이를 좁혀나갈 거다. 언젠가는.

히데 뮤지움-히데 사후 그의 동생이 그를 기리며 자신의 밥길을 찾기 위하여 차린 히데 박물관-은 2005년 8월 폐관했다. 가겠다고 백팔번쯤 결심했지만 결국 가지 못한 채 그것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아직도 전시물은 그대로 전시한다는 소문이 들리는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 없다. 언젠가 내가 다시 세우고 말테니까. 그 전에 나는 글을 쓴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 한 권짜리 장편을 하나 구상중에 있다. 작년 이맘 때 즈음부터 1년을 묵혀 온 그런 구상이다. 구상용으로 산 노트의 반 정도를 채운 그런 것이 있다. Rocket Dive라는 제목으로 무사히 그 작품이 탄생 할 수 있다면 나는 주저없이 히데에게 나의 첫 작품을 헌정하고 싶다. 차피 언젠간 만나게 될 사람이다. 가끔 노래방에서 오리지널 앨범판과 트리뷰션 앨범판으로 두 번 Rocket dive를 부르고는 하는 기염을 토하는 나니까. 별로 나쁠 것은 없다. 무수한 팬들이 그의 영전에 바친 편지의 한 마디를 그에게 하고 싶다. 고마워요.



꿈을 판단할 법율따윈 존재하지 않아.
<hide, eyes love you 中>


p.s 얼마 안되는 넷츠고 이용기간 동안 나는 두 개의 팬클럽에 가입했다. 조PD in stardom. Hide with psycommunity.

p.s 2 나는 히데에서 엑스로 뻗어나가는 길보단, 히데에서 zilch로 뻗어나가는 길을 선택했다. 그런데 도무지 샤벨 타이거 시절의 곡은 구할 수가 없다. 어디서 구할 방법이 없을까. 더불어 zilch 정규 앨범도. 

p.s 3 팩트의 언급에서, 사실과 다른 부분들이 존재할 지도 모른다. 그러려니 해두렴. 어차피 기억이란 정확하지 않은거야.

p.s 4 허원영군. 좋은 하루 보내고. 봄에 만나도록 하자.

p.s 5 과로로 쓰러진 예술가의 이야기는. 칼럼입니다. 왜냐하면, 난
그런 당신의 세계가 좋아.
<hide, Hi-Ho 中> 

  
 
 
 
병장 허원영 (2006/05/02 14:18:06)

히데 씨, 당신은 ['내가 죽기 전까지 계속 앨범을 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최초의 아티스트] 였습니다. 나는 당신의 음악을 계속 듣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어디까지 발전해 나갈 수 있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봄에 만나요'라고 말했던 당신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군요. 봄에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오늘 하루는, 아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당신의 음악을 종일 듣고 싶지만, 불행하게도 여건이 안되는군요. 그냥 머릿속으로 가사를 흥얼거릴 뿐입니다. 


p.s. 4. 봄, 이라고 하기엔 늦은 봄이지만, 어쨌든 다시 봄에.    
 
 
 병장 박진우 (2006/05/02 15:17:29)

아,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그의 앨범이... 
일단 뮤직플레이어에 들어있는 로켓 다이브부터.    
 
 
상병 권정민 (2006/05/02 15:57:23)

붉은 젊음    
 
 
상병 박종민 (2006/05/02 16:12:35)

좋아요. 사방의 벽지를 히데의 사진으로 도배하고, 
'뷰리~앤 스투핏 아아하~'를 넋나간 듯 하루에도 수십번씩 흥얼거리던 
중고등학교 시절로 촉촉히 젖어들기에 충분한 글입니다. 
덕분에 불타올랐습니다. 釧 다이브, 다이스, 에바프리 끄응. 
나들이 가면 먼지를 훅 털고 페이버릿 리스트로 다시 올려야 겠어요. 
또한! 같이 묵혀두었던 링고사마의 그런지하고 스윙감있는 드럼소리와 約速이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그 중독성 음악. 싱글 本能도 떠올랐습니다. 버닝버닝. 
저의 중.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했던 일본 음악들이 다시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mr.children, hide with spread beaver, siam shade, janne da arc, shina ringo, deen, snail ramp, porno graffiti, oblivion dust, lacrima christy, le couple, t-square, sharna q, move, m-flo(누가 뭐래도 엠플로는 99년 planet shining앨범이 최곱니다), mad capsule markets, DJ hasebe와 zeebra 패밀리들(macho나 mummy-d같은). 아아, malice mizer(한 때 미나상 사진 모았었는데 부끄), raphael....... 영준님 고마워요. 덕분에 듣고 싶은 곡들이 기억속에서 끝도없이 쏟아지는군요.    
 
 
상병 송희석 (2006/05/02 18:59:41)

나의 중학교때는 x-japan과 자드가 최고였는데......(고3때 히데가 죽었다는것에 대해 슬퍼할 여유도 없었지만...) 
고등학교로 넘어가니, 드래곤 애쉬라는 모 괴상한 그룹에 잠시 심취하다가, 이제는 일본음악에 점점 멀어져가는 나를 보면서, 영준님이 한없이 부러워 지네요. 잘 읽고 갑니다.    
 
 
상병 박종민 (2006/05/02 21:17:36)

오늘이 무슨 날인지. 일본음악을 다시 들으라는 하늘의 계신지. 
가네시로 가즈키의 플라이 대디 플라이의 첫장을 펼쳤더니. 
"지렛대만 있다면 지구라도 움직여 보일 수 있다."라는 아르키메데스의 말과 함께, 
우주 최고 감성 밴드 mr.children의 리더 사쿠라이 가즈토시씨가 작사한 가사가 나오더군요. 
"날개를 펼치고 빛이 비치는 곳으로." 
아, 오늘 상쾌한 날이군요.    
 
 
병장 박시용 (2006/05/02 22:03:38)

아아..마침 지금 히데의 Hurry Go Round를 배경음악으로 듣고있다가 이 글을 읽어버렸어요.. 

다들 비슷하시겠지만..X로 시작해서 알게된 히데는 정말 우상이었습니다. 음..남자와의 동성연애도 나쁘지 않겠다..라고 부끄럽게도 살짝 생각해본적도 있었고(솔직해 지자구요.. 다들 히데 사진보면서 한번쯤은 그랬었죠..?) 

중학생때, 친한 친구에게 삐삐로 '히데가 죽었다'라는 음성메시지를 받고나서 달려가서 켠 교실의 티비(케이블이 나와서 채널V가 나왔었습니다.)에서 사실로 확인하자마자 쓰러져서 앰뷸런스 실려가서 응급실 갔었습니다. 그리고는 약 한달동안 귀에 이어폰을 빼지 못한채로 같이 히데를 좋아한 친구랑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었죠..주위에서는 미친x 보는 눈으로 취급하고.. 

저의 좌우명되는 말 중 하나가 "음악에 편식하지 말자!"여서 수많은 장르의 음악과 잡다하게 듣는 편인데도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 듣자마자 울었던 곡'은 딱 2개였는데, X의 Last song과 히데 추모앨범의 요시키가 편곡한 Good-Bye 였습니다. 정말 지금들어도 울컥합니다. 그래서 잘 못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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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제가 군대오기 전에 중국대사관 근처 수입음반점에서 얼핏 zilch앨범을 본것 같긴 한데요.. 20만원이었던가? 여하튼 지금은 잘 모르겠네요.. 2년 가까이 되었으니..여하튼 옛 향수에 젖게끔 한 글 감사합니다.    
 
 
병장 이재성 (2006/05/03 02:20:06)

오랜만의 옛 생각이 나는군요.. 위에 종민님이 적으신 그룹중에 모르는 것도 있긴 하지만서도.. 
한반에(고1때) 일본음악에 관심이 있던 친구는 저에게 처음 X-JAPAN 들려준 친구와 
제가 퍼트렸던 다른 한 친구 .. 총 3명이었었답니다.. 그때는 다들 이상하게 쳐다보았던... 

아무튼.. 저는 그때만해도.. 요시키를 더 좋아했었더랍니다 (땀..) 
그 뒤에.. 히데음악 들으면서..(저도 Rocket Dive 군요).. 점점 빠졌었다는..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나는군요..    
 
 
병장 주영준 (2006/05/03 16:04:52)

나는 아직도 요시키와 토시가 헷갈립니다. 히데 외에 듣는 찾아서 듣는 일음이라곤 시이나 링고 정도랄까요. 아, 얼마 전부터 Pe'z도 괜찮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만. 역시 음악과 친하지 않은 사람이라서, 어렵군요. 그리고 시용씨에게 올인합니다. 하하. 저는 트리븃 앨범에서 이상하게 라르크의 ever free가 울컥하더군요. rocket dive는 솔직히 사실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곡 자체가 원체 명곡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랄까요. 

새로운 별들이 춤추는 세계로, Sail Away!    
 
 
병장 이민호 (2006/05/04 13:50:12)

예전에 mr.big좋아해서.. 
인터넷으로 테잎이든 cd든 구해보려구 발버둥쳤던때가 있었네요..(웃음) 

그 시절 원피스란 만화도 좋아해서..일본판으로 애니를 구해서 보다 오프닝곡 중...(지금은 기억이 가물..)좋은 곡이 있어서 무작정 인터넷서핑을 일주일동안 했다는..... 
뭐...결국 그 노래를 부르는 밴드 동영상까지 구했었던 한때의 추억이 떠오르게 하는 글이네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병장 박형주 (2006/05/05 15:55:22)

그래도 엑스가 더 좋다.는 쪽이랄까요. doubt나 pink spider쪽이 그나마 끌리는듯도 싶고. 사실 히데의 앨범들을 아주 열심히 듣지는 않았다는 이유겠지만. 투팍 십주기 되는 때 이런 글을 써보자 싶은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