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는 기성복이 없다-맵시를 위하여 
 
 
 
 
지금 분위기가 조금 걱정스런 면이 있습니다. 필진 대 반필진, 뭐 이런 구도로 전개되는 것도 염려스럽고, 미움 받고 있다던가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걱정이 됩니다. 글쓰는 것과 글 읽는 것에 대한 원영씨의 글은 많은 오해를 풀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임에 분명하지만, 뭔가 첨언을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무작정 너는 생각없이 일반화를 하느냐, 비아냥 거리느냐고 다그칠 것도 아니고, 왜 미워하느냐, 매도하느냐, 다구리다, 당신들이 글을 어렵게 쓰는거다라고 받아칠 것도 아닙니다.

먼저, 쉬운 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분명 쉽게 써달라, 굳이 그렇게 빙빙 돌려서 써야 하는가의 의문, 현학에 대한 것. 저는 글 쓰는 사람은 모두 직업으로서의 작가는 아닐지언정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생각으로 자신의 언어로 무언가를 창조해내기 때문인데요,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성경말씀을 인용한다면 더 크고 혼란스러운 논쟁이 일어날테니 생략하겠습니다. 어쨌든 글을 창조하는 사람은 당연히 자신의 창조물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책임이 있는 만큼 창조하는 작업에 관해서 권리도 있습니다. 그것은 영준씨의 '전술'이라는 용어처럼 작가의 재량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이 곳에서의 '글'은 사람들과의 소통, 그리고 더 본질적으로는 자신과 세상과의 소통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세상과 어떻게 상대해 나갈지는 자신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지, 어떤 규격화된 방식이나 누구의 구미에 맞추어 글을 쓴다는 것은 제가 몇 번 언급한 기성복을 일괄 제작하는 것과 다름 아닙니다. 진중권이나 홍세화, 박노자, 김규항 등 정말 글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 중에는 까대기에 가까운 신랄한 어조로 자신만의 스타일의 글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것을 가지고 호불호를 말할 수 있을지언정 그들에게 이런 식으로 혹은 저런 식으로 글을 써달라 말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건 그 사람에게 진중권이길, 홍세화이길 포기하라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생각을 담고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마주합니다. 그 과정에서 세상의 일부인 '자아'외의 다른 '타인'들과의 연결을 위해 명확한 의미의 글을 쓰는데, 문법이나 문장구조, 적절한 근거 등의 최소한의 형식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 언제나, 분명히 요구됩니다. 하지만 다들 아시듯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누구나 만족스러운 글은 없습니다.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기자 같은 사람들도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글을 쓰지만, 신문 사설을 보면서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부지기수일 뿐더러, 베스트셀러가 되는 유명한 책들도 이해가 되지 않거나 공감할 수 없다는 반응은 조금만 주변을 둘러보면 쉽게 만날 수 있을겁니다. 원영씨가 본문에서 기술하고 있는 것처럼 글읽기는 문자해독력만 갖춘다고 완성되는 쉬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수놓는 무수한 고전들은 그 탁월함을 대대로 인정받지만 그렇다고 읽기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번역의 문제도 물론 있겠지요. 하지만 근원적인 문제는 읽는 사람의 역량 부족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맵시가 나도록 정확한 치수를 재고, 취향에 맞는 옷을 찾기 위해 여러 매장을 돌아다녀야 맘에 쏙 드는 옷을 발견할 수 있듯, 노력하지 않고서 맘에 드는 옷을 사 입을 수는 없습니다. 노력하지 않으려면 그냥 매장 쇼윈도에 걸린 옷을 사든가, 누구나 막 입는 기성복에 만족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자기만의 맵시는 이미 물 건너간 이야기겠지요. 누구나 입고 만족할 수 있는 옷을 만들라고 하면 옷 디자이너는 아마 단색의 민무늬 티셔츠를 내놓지 않을까요.

그러니, 이 대목에서 저는 나직히 제 생각을 말하고 싶네요. 글을 쓰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방식들에 대해 관용을 베풀어달라고 말이죠. 그 관용은 '어디 니 맘대로 써봐라'라는 시혜의 의미가 아니라 <당신의 방식을 존중하고, 나 또한 열심히 읽겠다. 그러나 그 후에 의문이 나는 것은 가차없이 비판의 칼날을 들이밀겠다>의 방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디가 어떻게 문제가 있는 것 같다라고 분명히 지적하는 것은 물론이구요. 그러니 글 쓰는 사람은 분명 최소한의 기본사항들-문법이나 근거, 문장의 주술관계-를 지켜야하겠죠. 분명히 논지를 드러낼 수 있도록 글을 써야 하겠구요. 하지만 글의 전개 방식이나 은유니 비유나, 예시들에 대해 간섭할 수는 없습니다. 시인들에게 획일화 된 시어를 사용하라는 주문은 더 이상 시인의 시가 세상을 읊는 노래가 아니라 그저그런 유행가 가사로 만들어버리는 저주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조금 더 첨언하자면, 모니터 상에서 휠을 굴리는 글을 읽는 방식과, 댓글이라는 사고의 깊이를 허용하기 힘든 순간순간적인 소통의 매개, 자기 말을 하는데는 다들 익숙하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듣거나 비판받는데 익숙하지 않는 세태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더 부각되는 것은 아닌가 추측도 해봅니다.

어쨌든 어제 오늘 이런저런 글들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서 많이 배우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있구나. 그냥 글을 쓴다고 해서 그게 다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예전에 언어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언어사용'에 있어서 글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간의 간격이 멀어진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외에도 가상 공간에서 댓글이라는 매개로 오가는 대화에도 많은 문제가 있음을 보았습니다. 사실, 이 책가지에 글을 쓰는 것은 엄청난 부담입니다. 보잘것 없는 글들로 게시판의 빛을 흐리게 할까 걱정도 되고, 다른 필진에 비해 허술한 것이 드러나면 어쩌나 하는 염려로 '확인'버튼을 누르는 그 순간까지 다시 글을 읽습니다. 내가 불필요하게 추상적인 용어를 남발하지는 않나, 이 단어의 의미는 나만 알면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고 겉멋만 든 것은 아닌가 말이죠. 제 나름대로 소통의 폭을 넓히기 위해 쉽고 간명하게 글을 쓰려고 정성을 들입니다. 변명같지만 글 올리는 간격이 길어지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A4 서너장 정도의 글을 한편 쓰는데 길게는 일주일까지 걸리니까요. 어쨌든 이런저런 불평, 불만들이 나오는 것은 애정과 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댓글이 그리 많이 달리지 않더라도 다들 읽어주고 계시다는 이야기이니까요. 

지극한 사랑이 때론 지독한 증오로 화하듯, 그 사랑과 증오의 감정을 넘고 넘으면 그때 우리는 서로 깊이 공감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너무 몰아치지는 맙시다. 지금 아슬아슬한 경계에 다다르고 있는 느낌입니다. 저는 이 대립들이 결국은 생산적인 깨달음을 모두에게 줄거라 생각하지만, 그 전에 통할 수 없는 언어들로 행간에 배어있는 차가운 감정들로 서로를 상하게 한다면 결국 무의미한 소동으로 전락하는 수가 있으니까요. 영준씨 말대로 읽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이나 다같이 즐거워야 하는 것 아닐까요.

애초에 문제제기를 하신 분이나, 동의 혹은 반대를 하신 분들 모두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못하는 것은 제 방식을 고수할겁니다. 그게 글쓰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이 사랑하는 이 곳에서 어줍잖은 직함이나마 달고 있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부터라도 더욱 열심히 쓰고, 더욱 열심히 읽도록 하겠습니다. 다음번에는 이런 변명으로 글을 쓸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아, 그리고 희망사항, 언제나 즐거운 글쓰기, 유쾌한 글읽기 했으면 좋겠습니다. 
 

  
 
 
 
병장 한상원 (2006/03/24 00:44:44)

원영씨의 글에 제 나름의 보론을 달다가 길어져서 칼럼으로 올립니다. 오해를 막기 위해 밝히지만 이것은 순전히 저 개인의 견해입니다. 책가지에 올린다고 필진들의 의견이 아니듯이요. 이 글에 대한 화살은 오직 저에게 쏴주시길.    
 
 
병장 노지훈 (2006/03/24 00:50:07)

친절한 상원씨 글 또 조회수1 획득~!    
 
 
병장 한상원 (2006/03/24 00:56:55)

축하해요. 조회수1 놀이 분야를 개척하셨군요. 호호.    
 
 
병장 김형진 (2006/03/24 07:26:44)

아니, 촌장이 되더니 이상해졌어 저 분!    
 
 
병장 김태경 (2006/03/24 09:10:58)

아니예요, 전에도 저런끼가 보였다니깐요. 지훈님을 진정한 책마을 폐인으로 선정합니다-. 핫핫. 

아참, 상원님 글 잘 읽었습니다. 비판하셨던 분들이 이런 글들도 읽어보셨으면 좋겠네요.    
 
 
 상병 박진우 (2006/03/24 09:16:15)

아하하. 
이런 칼럼들이라면 프린터 토너가 남아나지 않겠는걸요. 
계속해서 올라오는 칼럼들. 

칼럼을 뽑은 종이는 1그램. 
그 무게는 1톤급 코끼리.    
 
 
상병 민경국 (2006/03/24 17:59:24)

증오와 사랑은 상대방을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의 양 극단이라고 하죠. 
그래서 가장 무서운 병은 화병과 상사병이라고도 하고요. 
하지만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변화를 말할 수 없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번 더 생각하고 쉬어가고 고쳐보는 것도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간단답글의 한계에 대한 한상원 병장님의 지적에 동의합니다. 
'간단답글달기'를 클릭하기 직전만이라도 호흡을 가다듬는 것은 어떨까요.    
 
 
병장 정광훈 (2006/03/25 03:38:02)

좋은 글입니다. 
유쾌한 글쓰기!!!!(원츄우)    
 
 
상병 박민수 (2006/03/25 16:12:31)

즐겁고, 유쾌한, 한 가지 덧 붙여 따뜻한 책마을. 잊고 있었습니다. 저만 그렇게 느끼는 건지도 모릅니다. 과거와 현재. 변화에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사라져서 아쉬운 부분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언제부턴가 떠올리지 못 했던, 지난 날의 감정들. 같은 자리에서, 같은 화면을 보고 있으면서도 그 때와 지금, 하얗게 열리는 창을 처음 대했을 때에 느끼는 두근거림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활발한 토론도 좋지만, 굳이 상처를 주고, 또 아파할 필요는 없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달려들기 전에 한번만 더 차분하게 서로의 입장과 생각을 들여다본다면, 상원님께서 위에서 말씀하신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벗어나 편안한 마당에서 펼쳐지는 소통의 장을 모두가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상원님께서 쓰신 마지막 문장을 보고, 저도 모르게, 어쩌다가, 이렇게 주절주절, 이런 답글을, 쓰게, 되었군요. 매일같이 올라오는 멋진 글들, 그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읽기만 하는 한 회원의 그저그런 넋두리라고 생각해 주세요. 음.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