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Libris] 새로운 단계에 대하여 
 
 
 
 

[……]작가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두 가지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슬쩍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름길도 없다.[……]

- 스티븐 킹,「유혹하는 글쓰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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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있었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이 4강에 들었다. 2002년 월드컵에서는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이 4강에 들었다. 굉장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서 이런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던 걸까? 물론 거기에는 전폭적인 지원(조금 미흡하지만), 훌륭한 감독, 선수들의 타고난 재능, 그리고 약간의 운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선수들 개개인이 부단히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분명 구슬땀을 흘려가며 훈련했고, 경기 전후는 물론 비시즌일 때도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흔히 사람들은 그들의 경기를 보면서 "내가 해도 저것보다는 잘 하겠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이 (흔히 하는 말로) '밥만 먹고 축구만 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들이 축구에 (또는 야구에) 투자한 시간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인지, 그리고 그들의 노력과 열정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정한다. 그들의 축구는 (또는 야구는) 우리가 할 수 없는 단계의 것이라는 것을 순순히 인정한다.
  다른 얘기를 좀 해보자. 우리는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 같은 과학자들을 알고 있다.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그들의 연구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며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일임에도 어렵게 설명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의 연구는 부단한 노력의 산물이며, 때로는 고통과 아픔을 수반하는 힘겨운 과정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을 인정한다. 그들의 연구가 우리들이 쉽게 할 수 없는 단계의 것이라는 것을 순순히 인정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문제는, 유독 '글쓰기'의 영역에서만은 이런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글은 한글만 배우면 쓸 수 있는 것이고, 따라서 별 노력이 필요치 않다는 '정반대의 논리'가 오히려 많은 이들에게 퍼져 있다. 그 글의 종류가 소설이든, 시든, 수필이든, 논리적인 글이든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글들을 쓰는 데에는 별다른 훈련이나 투자가 필요치 않다고 쉽게 생각해 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자주 한다. 축구나 야구를 잘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지 않으면서. 피아노를, 또는 바이올린을 어떻게 해야 잘 연주할 수 있는지는 묻지 않으면서. 과학적 탐구에서 어떻게 하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인지는 묻지 않으면서.
  그렇다면 과연 글쓰기는 별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가? 물론 절대로 그렇지는 않다. 글쓰기는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을 통해 성장하는 하나의 기술이다. 공을 많이 차 보지 않고서 훌륭한 축구선수가 될 수 없듯이, 글을 많이 읽고 쓰지 않고서는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없다. 이건 이 세계를 구성하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이다. 들인 시간만큼 인간은 발전한다. 그것은 머리를 굴리는 일이라고 해서 예외가 되지 않는다. 그럴듯한 거짓말을 지어내는 일(이를테면 소설을 쓰는 일 같은)이라고 해서 특별히 '무노력'의 대우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진짜로 말하고 싶은 문제는, 이런 '글쓰기'에만 특별적용되는 정반대의 논리 - 글은 별 훈련 없이도 쓸 수 있는 것이다 - 가 '글읽기'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이런 논리를 가진 사람들에게 글이란 별 훈련 없이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카프카의 소설은 김하인의 소설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둘 다 읽을 수 있는 '한글'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종류의 글만이 존재한다.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글,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글. 이들은 '글을 읽는 데에도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므로,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글은 모두 불필요하다며 배척한다. 그 글은 쉬운 것을 괜히 어렵게 비비 꼬아놓은 것이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현학적으로 썼다고 말한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얼마든지 알 수 있다. 우리가 유치원 때 아는 것은 초등학교 때와 다르며, 중학교 때의 지식은 고등학교 때와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것은 대학교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지금까지 연구해 온 지식은 끝도 없이 널리 펼쳐져 있으며, 그것은 단순히 머리를 굴리는 일, 그러니까 문학이라던가 철학 같은 분야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직 가 닿지 못한 단계는 얼마든지 있다. 그 단계가 더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채 무턱대고 비난하기에는 곤란한 부분들이 얼마든지 상존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굳이 '현학적인 글쓰기'를 시도하지도 않았고, 어렵게 쓰지도 않은 글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며 불평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글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글을 읽는다는 것부터 일정 정도의 지식을 전제로 한다). 만일 그런 글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런 글은 누구에게도 도움을 줄 수가 없다. 그런 논리가 만약 문학에 이르면 문제는 심각하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소설이나 시 같은 건 없으며, 그런 것이 있다면 그건 개똥이다. 좆이다.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로 전이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김영하는 이렇게 말한다.

[……]이 단계로 전이하는 과정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마치 초보 운전자들처럼, 바이엘을 배우는 피아노학원생처럼,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정하면 된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냥 '이해할 수 없는 글'을 만났을 때, '나는 글읽기의 초보다'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해해 보려고 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이해가 된다면 당신에게 유익할 것이다. 당신은 자기 자신을 한 단계 뛰어넘은 것이고, 그로 인해 성장했을 것이므로. 인간이 겸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기가 무얼 모르는 것인지 깨달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가 가 닿지 않은 영역이 어디인지 알면,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때 비난하면 된다. 별로 밑지는 장사도 아니다.
  이 간단한 일이 왜 불가능한가. 그건 자존심 때문이다. 글쓰기와 읽기는 축구나 바이올린처럼 눈에 보이는 명백한 과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를 속이기 쉽고, 자기 자신을 인정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인정하지 않는 일은 자기소모적인 성격이 된다. 누구도 그 과정을 명확히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떼를 써서 그게 통한다면, 과연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므로 인정하라. 그 작은 행위가 당신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이다.


  오해를 막기 위해 첨언한다. 지금까지 쓴 글은 전부 내 경험에 기반한 것이다. 이전에도 몇 번이나 말했듯이, 나는 한때 시니컬한 인간이었으며 이해되지 않는 글은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한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며, 내가 모르는 더 높은 단계, 새로운 지식의 수평선은 반드시 존재한다. 이것은 내가 말할 수 있는 몇 안되는 확고한 진리다. 인류 전체가 가 닿지 못한 '미지의 영역'도 무한한데, 그것이 한 명의 인간이라면 오죽하랴.
  결코 이 글을 '니들은 낮은 단계에 있어'라는 식의 우쭐거림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그럴 자격도 없는 인간이거니와, 어떤 의미에서, 그럴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우리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들여다 볼 수 있는 더 높은 단계가 있다는 간단한 사실을 말이다. 그러므로 "인정"하고 "발돋움"하면 된다. 그때부터가 새로운 시작이다. 까뮈를 읽은 이후의 내가 그 전의 나와 같지 않고, 김수영을 읽은 뒤의 내가 이전의 나와 같지 않게 된다. 내가 예전에 경험했듯이. 그리고 지금도 매일 새롭게 경험하고 있듯이. 

  
 
 
 
상병 박종민 (2006/03/23 23:15:57)

아. 허원영 팬클럽이 창단된다면 
분명 1기 연명부에는 제 이름이 들어가 있을 겝니다.    
 
 
병장 노지훈 (2006/03/23 23:27:37)

아직 제게 책은 계단이에요. 이 다음 계단으로 올라가기 위한 계단.    
 
 
병장 이상준 (2006/03/24 08:48:54)

브라보! 전 욕심을 좀더 내서 원영씨의 글쓰기를 배워야겠어요.    
 
 
병장 주영준 (2006/03/24 09:20:28)

변신하기 전의 마인 부우는 변신 후의 마인 부우와 같지 않게 된다. 이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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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그렇다면, 변신 후의 홀쭉한 원영 부우의 내공은 어느정도가 되는거지?    
 
 
병장 김태경 (2006/03/24 09:43:21)

전 원래 읽기에 쉬운 - 이해하기는 어렵더라도! - 일본 소설을 주로 읽었어요. 그러다가 책마을을 만나고 필진들 글을 읽고 추천도서를 읽으면서 독해력이 많이 떨어졌다는걸 느꼈죠. 짧은 글을 읽으면서도 머리속에 정리가 안되어서 메모를 하면서 읽기도 하고, 얼마전에는 쥐스킨트의 에세이를 아예 옮겨적다시피하면서 읽었어요. 글을 읽으면서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되었죠. 

원영님 글을 읽으면서 막연히 머리속에 떠있던 이런 생각이 정리가 되는것 같아요. 왜 나는 글을 맛있게 못쓰나, 왜 필진들 글은 꼼곰히 두세번 읽지 않으면 이해가 안되나 원망만 했던게 생각나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초절정 딴소리 영준님의 도발에 넘어가지 맙시다! 에헴!    
 
 
상병 조주현 (2006/03/24 09:54:57)

...Want You!    
 
 
병장 최정근 (2006/03/24 10:32:44)

대학교 수학 1문제를 푸는데 30~40분 걸리는 문제도 있습니다. 업무 보고 A4 2장 짜리를 치는데도 1~2시간 걸립니다. 수학의 난제였던"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문제를 푸는데는 수백년이 걸렸습니다. 때로는 과연 이런것들이 그런 가치가 있냐는둥 혀를 내치기도 합니다. 3자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아닐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사람들을 "진정한 프로"라고 해주고 싶습니다.    
 
 
병장 한상원 (2006/03/24 12:34:26)

영준// 원영씨는 마인 부우로 확정된건가요? 그런데 변신 몇단계의 마인부우죠? 호호. 첫단계의 부우로 예상이 됩니다만. 최종 단계 부우도 어울릴듯. 켁    
 
 
상병 조용준 (2006/03/24 13:55:47)

상원// 전 최종단계에 한표 던질게요.(끌려간다)    
 
 
상병 고계영 (2006/03/24 18:27:21)

아침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고 바로 밥먹고 다른곳으로 달려가야하는 처지여서 - 오늘로서 끝이지만- 원영님의 글을 쓱- 보고는 급!프린트 하고는 그 '다른곳에서' 정독이라는 것을 해보았습니다. 
A4 2장과 이제는 흐릿하게 나오는 코너와 전기세?!가 아깝지 않은 글이었습니다. 

인정이라는 말이 가슴에 많이 남았습니다. 이 인정이라는 말에는 '그래 네가 이겼다!'라는 식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는 마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이타심이 풍겨져 오는 것만 같아 따듯했습니다. 서로가 다른 것을 인정하고. 자신을 인정하고. 남을 인정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요즘 세상인것 같습니다. 
이 글은 한 가지의 기준으로 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다시금 생각해보고 가슴에 새겨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병장 김대현 (2006/03/29 20:10:45)

말되게 풀어놓기 어려운 얘기를 말이 되게 풀어놓는 것에 일가견이 있는 글솜씨. 
아, 나도 얼개써야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