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책을 읽는가. - 책가지 던지는 나의 출사표. 
 
 
 
 

나는 왜 책을 읽는가. 책가지에 던지는 나의 출사표.






난 신자유주의가 싫다. 그 인간미 결여된 괴생명체가 경제학적 측면에서 지배사상으로 퍼져나가는 것은 물론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서도 영향력을 더욱 더 크게 뻗치고 있는 것을 보고있자면, 내가 하려는 경제학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절규가 절로 나온다. 뭐 전공하세요? 경제학이요. 반사적으로 대답하고 나서는 후회한다. 신자유주의학이 아니라 진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경제학은 다른 모든 학문과 마찬가지로 완벽한 학문이 아니다. 정치학과 같이 인간의 역사와 함께 태동한 경제학은 수 많은 법칙과 이론을 만들어내어 두터운 학문적 토대를 만들어냈지만, 그것으로 현실의 경제를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기하급수적으로 복잡해져 가는 현대 시장경제체제를 산술급수적으로 쌓여가는 지식으로는 당해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하물며 신자유주의야 말할 것도 없다. 경제학의 작은 조각에 불과한 그것이 복잡다단한 - 더 이상 경제학만의 문제가 아닌 - 현실 사회의 전반적인 구조를 명쾌하게 풀어내어 진단하고  해결책까지 완벽하게 제시한다는 건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어떤 집단이 자신의 이익을 목적으로 특정 상황, 특정 계층에게만 유리한 일리(一理)를 사회 전반에게 적용할 수 있는 진리(眞理)로 호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 역시 다수가 잘살 수 있는 경제학적 처방을 원한다. 하지만 지금 사회에 팽배해진 열광적 자유지상주의는 올바른 해법이 될 수 없다. 자유경쟁하고 자유무역하면 모두 부자가 될거라는 그들의 만병통치약 선전은 고속도로 휴게소의 두꺼비 기름과 다를 바가 없다. 신자유주의적 처방 한 번으로 우리 사회의 경제학적 모순들이 효율적으로 해결되고 우리 모두가 결국에는 잘살 수 있게 된다는 그 사상에 나는 제동을 걸고 싶다.

거시적으로 신자유주의는 부국(富國)에서 빈국(貧國)으로의 자본과 상품은 최대한 보장하고, 빈국에서 부국으로의 노동은 최대한 억제하는 것을 말한다. 세계무역기구,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등으로 무장한 선진국의 갖가지 전략들은 빈국의 자본, 상품 시장을 강제로 열어젖히는 반면  자신들의 나라에 들어오는 빈국의 노동자들은 법적, 외교적, 사회적, 문화적 힘으로 막아내고 있다. 비교우위? 그것이 조금의 진리를 포함하고 있다고 가정한다 하여도 지금의 세계는 '인격적 자본, 상품'과 '비인격적 노동'만이 존재할 뿐이다. 

150% 성장했다는 주식 시장의 배당금과 차익 중 단 1%도 사회적 약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투기성 아파트 청약에는 몸싸움이 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들지만 소외받고 헐벗은 이웃에게는 그것의 1%도 온정이 돌아가지 않는 무한 경쟁 사회.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사회의 모습인가?
인생에 있어 가장 걱정 모를 나이의 초등학생들이 점심을 굶고 결식아동이라는 딱지를 달거나  가장 아름답게 피워나야할 중,고등학생들이 생활을 위해 시급 2,3천원에 자신의 잠재력을 팔아야 하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이들을 두고 '경쟁, 경쟁. 경쟁!'을 말해야 하는가? 무엇이 먼저겠는가.
약자를 배려하지 않고 못사는 건 개인의 노력 부족이라는 천민 자본주의적 시각이 널리 퍼진, 말그대로 약육강식의 이 사회는 신자유주의의 쓰나미가 덮쳐버린 대한민국이다.

난 지금의 경제학이 소수의 기득권층을 공고히 하기 위해 그들의 시녀 역할만을 행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너무 많은 의심이 든다. 내가 수많은 경제학적 정책과 제도 중에 무엇이 옳은 지 알게 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확신한다. 아니, 확신하기 전에 느낀다.  이건, 아니다.



난 이 신자유주의에 제동을 걸고 싶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 그들처럼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잊지 않기 위해서 읽고,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고 싶기에 책을 읽는다. 한 가지 이익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버리는 판단을 하지 않기 위해 책을 읽고 있다. 내가 훗날 무엇인가를 추진하여 내가 옳다고 여기는 바를 혼신의 힘을 다해 이끌어 나갈 때, 내가 지금의 신자유주의의 광풍처럼 좁은 시야로 사안을 관찰하지 않기를 바란다. 두루 살피고 무엇이 옳은 길인지, 무엇이 우리 모두를 위하는 길인지 밝혀내고 싶어서. 그렇기에 난 오늘 책을 잡고 있다.

경제학은 사람들이 그것에 거는 엄청난 기대를 영원히 충족시켜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시간이 갈수록 복잡해져만 가는 경제상황과 여타 문화 제반과 뒤얽혀 있는 문제들을 지금보다 훨씬 더 투박하고 세련되지 못한 방법으로 풀이해 나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오늘 내가 읽는 다양한 분야의 책 한 권 한 권이 모여 그 때의 내가 좀 더 옳은 방향으로 무엇인가를 추진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아직 젊은 나이에 굳어버리지 않은 나의 두 눈으로 수 많은 세계상을 습득하고 지성의 파편을 조금씩 모아나갈 수 있다면, 먼 훗날 나는 나만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내 몸을 던져 그것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그래-  믿고 싶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진정한 인간미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사회를 알며, 헐벗은 이웃에게 눈을 돌리지 않고.  우리가 발전해 나가야 할 길을, 우리 모두가 함께 걸어나갈 수 있는 그 길을.  나는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여러 책들에서 얻을 수 있길 간절히 기원한다. 

인간이 빠져버린 지금의 주인 없는 학문인 경제학에  미약한 나의 힘을 보태  따뜻한 빛을 내는 인간의 학문으로, 인간을 위한 방법론으로 다시 태어날 경제학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




알프레드 마샬은 중세를 지배했던 세 가지 학문. 신체적 건강을 위한 의학, 정의의 구현을 위한 법학, 정신의 완성을 위한 신학에 위대한 학문 하나를 더 추가하고자 했다. 그것은 바로 물질적 풍요를 위한 경제학이다. 모두가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각기 달려나갈 수 있는 제반조건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경제학. 약자를 위한, 모두를 위한 경제학을 나는 행하고 싶다. 마샬이 말한 제 4의 성직이 나의 길임을 믿는다. 

  
 
 
 
상병 엄보운 (2006/03/17 20:27:52)

쓰고나니 너무 거창하게 시작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이 글은 최대한 솔직하게 또 마음 속 깊이 감춰두었던 것들을 꺼내는 계기라는 취지로 작성했습니다. 책가지에 올라온 글들과 비교해보자면 많이 부족해 속상하기도 하지만, 저만의 색깔을 찾아나가는 여행을 여러분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설램으로 무례를 무릅쓰고 글을 올리겠습니다. 

경제학과 책. 저의 칼럼은 이 두 가지 화두로 써나가겠습니다.    
 
 
병장 김태경 (2006/03/17 20:38:23)

조회수 1의 달콤함이 이거였군요. 게다가 보운님의 얼개라니! 
경제학이라, 지금까지의 필진분들과는 조금 다른 글을 볼수 있을까 기대되는군요. 
앞으로 좋은 글 많이많이 기대하겠습니다.    
 
 
 병장 한상천 (2006/03/17 20:41:50)

예전에 리장이던 성범씨도 경제학에 상당히 관심히 많았죠. 사회적인 발전에는 언제나 경제학이 발전에 곁에 있었기에 사회사를 알기위해서는 꼭 필요한 학문이다. 이런식으로 이야기 한거 같아요. 사람과 사람을 알고 사회를 알기위해 그리고 자신이 얻고자 하는것등 많은 이유때문에 다들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합니다. 오랜만에 경제학과 책에 관심을 이야기 하는 분이 생긴거 같아 책마을이 다시 활기를 얻는거 같습니다. 수고해주십시요!! 화이팅.    
 
 
상병 임보람 (2006/03/17 22:33:31)

엄보- 반장다워! 하하 
난 운동이나 해야지 뭐 
아무튼 이름만 봐도 언제나 반가운 이 내마음    
 
 
상병 송희석 (2006/03/17 22:35:50)

출사표 만큼 첫 칼럼을 기대하는 바입니다!(부담을 팍팍 줘야지!)    
 
 
병장 한상원 (2006/03/18 02:06:29)

우와, 저는 정치경제학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많은 도움 기대하겠습니다~! 기대기대.    
 
 
병장 노지훈 (2006/03/18 04:39:48)

보운님 좋아요.    
 
 
일병 이철영 (2006/03/18 22:20:20)

보운 역시 멋져 
분명히 같은 날 입학을 해서 (안 그래? 입학식에서의 우리들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같은 시간을 보내고 표면적으로나마 비슷한 이력을 지닌 나이지만 항상 부끄러워진다 
그 수많은 학문 중에서도 '전공'하고 있는 학문에 대한 뚜렷한 시각, 아니 그보다 미친듯이 질주하는 이 시대의 흐름에 떠밀려 다니는 것조차 숨가쁜 마당에, 옳든 그르든 자신의 생각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참 부럽습니다. 사실 그렇게 하려고, 그 정도의 지식인이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우리 이십대의 청년들일텐데 말입니다. 
옷이 날개라는 말도 있지만 요즘은 옷에 앞서 이른바 '옷걸이'가 좋아야 폼이 난다죠. 정우성이나 전지현은 '지오으에'만 걸쳐도 폼이 나더군요. 수많은 지식들이 옷이라면 그것을 수용할 건강하고 생기있는 정신이 옷걸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군대 와서 그나마 단어공부나 하는 게 다행이구나 했었는데 정신차려야겠습니다. 
'엄보운씨 내년에 경제학 좀 갈켜주어요~~'    
 
 
 병장 김동환 (2006/03/19 16:55:48)

반가운 보운님. 날카로운 경제학의 활용. 으흐.(웃음)    
 
 
상병 박준수 (2006/03/19 19:56:18)

화이팅!    
 
 
 상병 박진우 (2006/03/20 00:28:38)

문학적인 경제학이라! 기대할게요!    
 
 
상병 고계영 (2006/03/20 07:12:50)

그냥 '박민규'씨의 글이 생각나는 듯하고.. 하지만 그의 글의 주인공들이 화날정도로 반항적이지?! 않다는 점과는 뭔가 다른듯한 보운님의 글에 감동.감동.감동. 
저도 어찌되었든 사람살아가는 세상에 목적이 아닌 수단이라는 '돈'과 그저 종이쪼가리가 아닌 '책'이 
아주.정말. 중요하다라고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써 기대가 되는 보운님의 '얼개'였습니다. 
말그대로 얼개. 앞으로의 풀어나감을 기대하겠습니다. 
잊어버렸던 경제에 눈을 뜨게 해주옵소서.    
 
 
병장 김석윤 (2006/03/22 05:52:44)

언제나 명쾌한 보운 씨의 글. 감동 먹었어요. 문학을 사랑하는 경제학도라.. 정말 좋아요(스크랩해야지)    
 
 
상병 정재명 (2006/03/24 08:19:45)

늦게나마 답변달아봅니다. 
사회적 약자에 관심있는 경제학자라. 현실의 대세라는 강풍에 맞서있는 젊은이의 모습에서 
열기가 품어져 나오길 기대해 봅니다. 
다만. 경제학이나 경영학이나 돈에 기반하고 있을수밖에 없다는점을 제 머리속에 박아두고 
앞으로 어떤글을 쓰시는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겠습니다. 
(이미 쓰신글을 읽었음에.) 

또한번 느낍니다. 경제학과 경영학은 다를수밖에 없음을. 
그리고 기업의 목적은 이윤을 창조하는 것이다라고 믿고 배워온 저와 정확히 상반된다는 
그리고 회계는 기업활동의 모든것의 답이다 라고 알고 있는 저와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계실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 학풍의 영향을 많이 받은 생각입니다만.. ) 

한가지 당부드리고 싶은점은 다른사람과의 생각의 차이가 있을수 있음을 
그리고 그것에 대해 누구나 절대적인 진리는 없음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아주셨으면 
한다는 점입니다. 

아직 젊다고 그리고 아직은 현실과 다른 이론에서 헤엄치기도 급급할때이긴 합니다만 
세상의 중요함을 느끼고 있는 어느 경영학도.    
 
 
상병 엄보운 (2006/03/24 10:56:59)

상병 정재명/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생각의 차이를 존중하겠습니다. 재명님의 생각과 시선을 늘 의식하며 글을 쓰겠습니다. 계속 지켜봐주세요.    
 
 
병장 주영준 (2006/03/25 18:42:50)

피억압자를 위한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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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억압자를 위한 교육학. 이라는 책의 제목이 생각났어요. 민중교육자 파울루 프레이리의 저서 '페다고지(교육학)'의 full name입니다. 경제학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학문인줄 알았어, 라는 이유로 경제학을 전공하는 한 친구도 떠올랐어요. 그리고 또 많은 것들이 떠오르네요. 제가 사랑하는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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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할께요.